(제 19 회)

 

궁예의 변화는 상상을 초월하고있었다.

송악에서부터 밤을 패며 쓰고 지우고 하던 목책을 철원도성에 와서 다시금 꺼내들었다. 달포가까이 문을 잠그고 바깥출입을 하지 않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대신들과 관료전체를 조회청뜨락에 불러들였다. 그 무슨 《자술경》이라는것의 교리를 해설하는 강도회를 열려는것이였다.

대낮같이 불을 밝힌 대청마루에 선 궁예가 설법을 시작했다.

《나는 거짓을 일삼는 석가에게 중생을 살피는 대사를 양보하였었노라. 그런데 석가는 세상을 더욱더 엉망으로 만들고 도적놈만 창궐시켰노라. 하여 미륵인 나자신이 이를 바로잡으려고 하나니 그대들은 나를 믿고 나의 <자술경>을 따를지어다.》

그가 말하는《자술경》이란 스무권으로 되여있는 일명 《궁예대장경》이란 엉터리경전이였다.

궁예는 《자술경》에서 《미륵관심법》을 강조했다.

소위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관심법》은 부처만이 하는것으로 되여있는데 궁예는 자기가 바로 그 관심을 한다고 우기고있었다.

아무리 궁예를 보좌한다 해도 이 대목에서만은 가려도 그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싶은 심정이였다. 자기를 석가의 높이에 올려세우고있으니 이런 억지가 어디 있을것인가.

《그대들은 반성할지어다, 물욕과 색욕에 빠져있지 않는가를. 누구든지 나에게 거짓을 아뢰거나 간음을 일삼거나 모반을 기도한다면 이 철장을 받으리로다.》

그가 쇠몽둥이를 높이 들었다가 대청마루를 쾅 내리치는 그 서슬에 모였던 사람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얼굴들이 새하얗게 질리였다.

《다시한번 말하노니 나는 미륵관심을 한다. 나를 따르지 아니하는 자는 살기를 바라지 말지어다!》

금필은 궁예의 말같지 않은 소리에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기분이였다.

사화진싸움을 치른 뒤 송악에 올라와 장가를 든 금필은 왕건의 주선으로 라주를 잠시동안 장수 김언에게 인계하고 쇠두레도성에 눌러있었다. 궁예는 금필에게 이렇다할 군직을 따로 주지 않았다. 궁예가 보건대도 금필은 왕건의 그림자라고 해도 싫어할 사람이 아니였다.

왕건 또한 스스럼없이 금필을 대리인으로 대하는데 버릇되여있었다.

그런지라 왕건이 강도회에 가니 금필도 따라간것인데 가서 들어본즉 궁예의 횡설수설은 눈뜨고 들어주기 힘들 지경이였다.

궁예가 자기를 불교의 《성인》으로까지 둔갑시키고있는데는 제나름의 생각이 있어서였다. 궁예는 적지 않은 백성들이 저들에게 밥 한술 먹여준적 없는 석가모니를 죽을둥살둥 모르고 숭상하여 마지않는데 비해 허나새나 한 나라의 임금인 자기에게는 칭찬 한마디 없이 날이 갈수록 이리 삐쭉, 저리 삐쭉 눈만 빨며 멀리하는데 화가 났던것이다. 덕으로 백성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고금의 진리같은건 이미 뒤씻개하고 줴버린지도 오랜 주제에 분수에 넘치게 백성들이 따르는 그 부처님과 자기를 나란히 해볼 생각을 하였던것이다. 하여 너희 백성들이 믿는 석가는 이러이러한 무뢰배협잡군이고 실지 믿고 따라야 할 인물이 바로 나 궁예라는 수작을 눈섭 하나 까딱 안하고 내리먹이는 판이였다.

금필은 불교 그자체를 우습게 여기고있었다.

일체 욕망을 버리라는 교리가 그에게는 리해되지 않았다.

물욕이나 색욕을 버리라면 모르겠지만 사람이 자기가 하고싶어하는 생활의 모든 욕망을 다 버리라는건 도무지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모든 욕망을 버려서 머리속이 텅 비면 극락의 경지를 체험하게 된다 하니 이 무슨 괴변이란 말인가? 목적이 없는 인생은 무엇때문에 산단 말인가? 아무것도 아니가진것이 행복이란 말자체를 금필은 리해할수가 없었다.

그보다 더 리해할수 없는것은 왕건이 불교에 심취해있는 때가 많은것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왕건이 불교에 관심하는것은 리해되지 않았던것이다.

천하의 통일대업을 열망하는 그가 일체 욕망을 버리라는 불교를 가까이하다니…

금필은 생의 마지막까지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다. 그는 왕건은 따랐지만 불교는 따르지 않았다.…

이무렵에 금필은 옛 주인인 송씨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였다.

사냥갔던 궁예가 누군가의 화살에 맞아 죽을번한 일이 있은 뒤였다. 다사한 편인 송씨는 돌아가는 풍설을 곧이듣고 궁예가 화살에 맞아 진짜 죽은줄로만 알고 태자책봉을 운운하다가 역적으로 몰려 궁예의 철퇴에 맞아죽은것이였다.

내가 펀히 눈뜨고 살아있는데 뭐 뭐 제잡담 태자책봉을 한단 말이야?! 이게 무슨 변괴란 말이냐?!…

송씨는 궁예에게 딸을 바친 처지이니 (궁예는 송씨의 딸을 궁성안에 받아들이기는 하였으나 왕비로 삼는것은 한사코 반대해왔다. 이전에 세달사에 있을 때 절아래마을의 강씨성을 가진 사람의 딸에게 한번 정을 준것을 잊지 못해 그를 데려다 왕후로 앉힌것에 만족하면서 송씨의 딸은 왕궁안의 사당에 있게 한터에 그는 중아닌 중이 되여 눈물속에 세월을 보내고있었다. 환선길이가 궁예의 환심을 사보려고 온갖 감언리설을 다한 끝에 데려다놓았지만 가려의 반대로 송씨도 환선길이도 종시 뜻을 이루지 못하였었다. 궁예가 이미 세달사시절에 한창나이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강씨처녀를 범한 일을 아는 가려가 정 녀인을 취하겠으면 강씨처녀를 취하라 하여 성사시켰던것이다. 일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송씨두령은 자기 딸도 궁예의 안사람이 다 된것처럼 생각하면서 왕가행세를 례사로 하여왔었다.) 왕가의 일에 관여할법도 한 일이나 궁예에게는 그따위 횡설수설이 통할리 만무였다.

(내가 죽었다는데 통곡소리는 들려오는게 하나도 없고 장인이라고 꿈에도 생각을 해보지 않은 작자가 감히 태자책봉을 론해? 아이구, 저 두상을 어떻게 죽여야 속이 풀릴것이냐?)

궁예는 그날로 즉시 자기의 장끼인 쇠몽둥이를 휘둘러 분을 풀고말았다.

사냥터에서 궁예를 죽이려 한것은 후백제의 간무가 들여보낸 자객들이였다. 궁예는 이 내막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재습격을 우려하여 제가 죽었노라 소문을 내게 하고는 한동안 두문불출하였었는데 이를 알리 없는 송씨가 입빠르게 발빠르게 푼수없이 나섰다가 지레죽음을 당한것이였다.

금필은 송씨의 죽음앞에 슬픔을 금할수 없었다. 그는 금필을 거두어준 사람중의 하나이니 은인인셈이였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였다. 그의 약점이 죽음을 앞당겼다고 보아야 할것이였다. 입이 빠르고 다사한 약점도 문제였거니와 그보다는 덮어놓고 큰것에 가붙기 좋아하는 체질화된 그 비굴성때문에.

금필은 옛 성인의 격언을 하나 생각했다. 세사람이 길을 갈 때 셋중 누구든 자기 아닌 두사람은 반드시 스승으로 삼게 된다고 하였다. 한사람은 본받을바가 많아 스승으로 되는것이고 또 한사람은 그른바가 많아 잘못을 따르지 아니하게 되므로 역시 스승으로 된다는 것이였다.

금필은 송씨의 인물됨과 인생행로를 통해 제나름의 일가견을 또 하나 세울수가 있었다.

사람은 자기스스로가 힘을 키워야 하고 자기 힘을 믿고 살아야 한다고, 그리고 절대로 아부하지 말아야 한다고.…

금필은 궁예가 송씨두령을 가차없이 죽인것을 놓고 많은것을 생각하였다. 그가 자기에게 복속해온 지방령주까지도 파리잡듯 해치우고만것은 그의 정신상태가 이미 갈데까지 간것을 말하는것이였다.

금필은 왕건에게 철원을 뜰것을 제의했다.

왕건이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고는 있지만 그를 모함하려는 몇 안되는 간신들의 입놀림에도 궁예가 쉽게 넘어가 무슨짓을 벌릴지 모른다는 위구심에 마음을 놓을수가 없어서였다.

능산도 술희도 같은 생각이였다.

왕건도 이들의 제의를 받아들이였다.

금필은 은밀히 라주의 김언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장계를 올리도록 하였다.

궁예는 라주가 위급해졌다는 장수 김언의 편지를 받자 즉시 왕건을 불러 출병하라는 령을 내렸다.

왕건은 쾌히 응하고 떠나갔다. 금필도 술희와 함께 따랐다.

능산만은 궁예가 떨구었다. 그를 마군장군에 봉하고 그의 부대를 철원성밖에 둔치게 했다. 후백제의 습격에 대비해 궁성방어력량을 보강하려는것이였다.

철원도성을 나온 금필은 왕건과 함께 송악에 들려 하루밤을 묵었다. 먼저 왕건의 집에 들려 류씨부인에게 인사를 하였다.

금필은 류씨부인에게서 자기 부인 림씨에게 태기가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류씨부인은 오씨부인과 림씨부인이 거의 동시에 태기를 가졌다며 제 일처럼 기뻐했다. 류씨부인은 웬일인지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있었다.

왕건이 류씨를 정겹게 바라보며 물었다.

《부인은 동생들이 먼저 태기를 가진것이 그렇게 좋으시오?》

《제가 자식을 낳지 못해 왕씨집의 대를 잇는 중대사를 감당치 못하는 죄를 짓고있는차에 동생이 그 일을 하고있으니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 아니오이까!》

류씨는 왕건의 둘째부인 오씨가 잉태한것을 제가 당한것보다 더 기뻐하고있었다.

《금필아우님네도 시름이 없겠으니 내 마음이 놓이오이다.》

류씨부인의 진정이 담긴 대답이였다.

《부인! 그대의 마음 실로 아름답소구려. 고맙소이다. 정말 고맙소이다.》

왕건은 더없이 만족해하였다.

금필의 마음속도 뿌듯하였다.

909년, 금필은 왕건과 함께 다시금 라주로 떠나갔다.

견훤은 왕건이 다시금 라주로 내려온다는 소식에 결연히 일어섰다.

《이번엔 반드시 만회해야 하오. 군사, 해낼수 있겠소?》

견훤이 모사 간무를 보며 물었다. 이때 와서 간무는 모사외에 싸움의 조직과 지휘를 총괄하는 최고군직인 군사라는 직무까지 겸하고있었다.

《자신있소이다. 그동안 120척의 수군을 키워놓지 않았소이까.》 간무가 자신있게 대답하는데 여기에 능창이 끼여들며 아뢰였다.

《전하, 이번만은 이 능창을 믿어주시오이다. 저에게 왕건을 수장시킬 명안이 있사옵니다.》

능창은 6년전 제가 당한 패배를 만회해보려고 지금껏 준비해온 모든 전력을 깡그리 바칠 각오를 하고있었다.

견훤과 대처하기 위한 묘안을 꾸미는 일은 왕건의 군막안에서도 벌어지고있었다. 기우뚱거리는 배우에서 왕건은 수하장수들과 마주앉아 의논을 했다.

《금필부장, 그대의 안을 듣고싶소.》

왕건이 지명하자 금필이 일어섰다.

《이번에 견훤은 우리를 바다우에서 접전하여 바다우에서 결속하기 위한 전술로 나올것이오이다. 우선은 목포에 있는 우리 병선들을 에워싸고 제압하여 지원해오는 우리 함대와 절대로 련합하지 못하게 할것이옵고 한편으로는 우리를 멀찌감치 앞서 나와 맞이한 다음 어떻게 해서든 바다우에서 포위하고 일망타진할걸 노리고있을것이오이다.》

술희도 긍정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전면전은 피하되 하는 경우에도 될수록 륙지가까이에 가서 하며 한편으론 능창의 수군기지들을 기습격파하여 그들의 력량을 소모시킨 다음 해안을 봉쇄하면서 목포쪽으로 내리밀어야 한다는것이오이다.》

금필은 이미 알아낸 적정에 기초해서 정확하고 면밀한 전술안을 짜놓고있었다.

왕건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나는 다른 의견이 없소. 다만 싸움이 길어질수 있다는걸 예견해서 대응책은 세워두어야 한다는거요. 견훤은 그사이에 배를 120척이나 무었다고 하오.》

장수들에게 필요한 조언을 더 준 뒤에 왕건은 의논을 끝내였다.

다음날 견훤의 수군대장 능창이 선발대를 이끌고 올라와 왕건의 수군앞에 첫 선을 보이였다.

라주는 떼웠지만 바다는 여전히 저희들이 장악하고있다는것을 시위하려는것이였다.

금필은 왕건과 토의한대로 절반의 병력을 이끌고 능창의 선발대와 접전했다. 그사이에 왕건은 나머지병력을 이끌고 목포쪽으로 계속 전진했다. 금필은 처음엔 능창이 죽을둥살둥 모르고 자기에게만 덤벼드는것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올리였다.

왕건의 주력이 무사히 빠져나가는것이 다행이다싶어서였다. 그런데 능창은 금필이 해안가까이로 슬슬 우정 밀리우고있는데도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한듯 그냥 따라오기만 하였다.

(능창이 저놈이 왜 저럴가?…)

금필은 능창의 속내를 알수가 없었으나 해안가까이로 끌어다 치려는 목적은 이룰수 있다고 보고 내처 내달았다.

금필의 수군은 어느덧 해안과 린접한 무인도들을 에돌아 들어서고있었다.

이때 능창이네쪽에서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금필이 긴장해서 앞을 살피는 순간 무인도들에서 군사들이 튀여나오며 금필의 군사들이 탄 배를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능창이 무인도들에 복병을 두었구나!)

정황은 판단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금필은 포위에 들고말았다. 한쪽 옆에서는 배우에서 쏘는 화살이, 다른쪽에서는 섬에서 쏘는 화살이 날아들었다. 능창의 좌우협공에 걸린것이였다. 꼼짝 못하고 지리멸렬될수 있는 순간이였다.

술희가 벽력같이 고함쳤다.

《금필형님! 섬에 붙읍시다. 섬에 복병의 수가 많지 않은것 같소이다.》

술희의 말에 금필은 정신을 차리고 널려있는 섬들을 살펴보았다.

술희의 말대로 복병의 수가 많지 못했다. 이런 때는 섬으로 올라 나무숲에 몸을 감추고 방어하는수밖에 없었다.

금필은 령을 내렸다.

《모두 섬으로 오르라!》

한순간 우왕좌왕하던 금필의 군사들이 와 함성을 올리며 섬으로 육박해들어가기 시작했다.

술희가 판단한대로 섬안의 복병은 많지 못했다. 금필은 군사들을 섬에 올려붙이는데 성공했다.

후백제수군은 가까이에 다가와 화살만 날릴뿐 감히 섬에 오르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기세는 등등했다.

(이젠 독안에 든 쥐다!)

능창은 금필의 군사들이 타고앉은 섬과 다른 섬들사이를 병선으로 둘러막아 울타리를 쳤다.

금필은 꼼짝 못하고 갇히운 꼴이 되고말았다.

날이 저물었다.

후백제수군은 포위만 해놓은채 더 공격하지 않았다. 날이 밝은 다음 들이칠 생각인것 같았다.

금필은 골똘히 생각에 잠기였다. 이밤에 무슨 수든 써야 살수 있었다.

《형님, 요기나 하고 보소이다.》

생각에 잠겨있던 금필은 머리를 들었다. 술희가 뒤전에 와 서있었다.

《자네나 하게. 참, 식사는 어떻게들 하고있는가?》

《생쌀을 씹게 했소이다.》

《그래?!…》

금필은 한숨을 쉬였다. 자기가 군사들에게 불을 피우지 말라고 지시했던것이 생각나서였다. 능창의 수군에게 목표가 되여 습격을 받을 우려가 있기때문이였다.

《하오나 형님에겐 고기를 대접할수 있소이다.》

술희가 이죽거리는듯싶은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자세히 보니 술희의 뒤에 따라온 삼득이가 무슨 술부대짝같은것을 들고있었다. 삼득이는 부여성싸움때 금필에게 달려드는 적병들을 따돌리였던 군사인데 그 이후부터 금필의 호위군사로 있었다.

《이판에 무슨 고기타령인가?》

《믿어지지 않소이까?》

《이 섬에도 개구리가 있나?》

금필이 비웃자 술희는 삼득의 손에서 받아쥔것을 철썩! 하고 금필의 발치앞에 내던지였다.

《개구리가 아니라 가오리오이다.》

《가오리?!》

《이 삼득이와 함께 한놈 찍어냈소이다.》

술희는 어깨를 으쓱이였다.

《지금이 류월이라 이것들이 새끼낳이를 하러 모여들고있었소이다. 삼득이의 말을 듣고 둘이 모래불녘에 나가 물속을 들여다보았더니 이놈들이 한창 새끼낳이준비를 하고있지 않겠소이까?》

금필은 그제야 이맘때면 가오리들이 물밑 모래우에다 새끼낳이를 한다는것을 상기하였다.

(내가 알기에는 이것들이 이른아침 해가 떠오르는 때에 새끼를 낳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 밤중에…)

《불을 켜들고 비쳐보았소이다. 형님 분부를 어기긴 했지만 이렇게 한마리 생겼소이다.》

가오리는 길이만도 넉자반은 되여보이는 큰놈이였다.

《자, 내가 잠간새에 저며줄터이니 잡숴보소서.》

술희는 장도칼을 꺼내들더니 이리저리 가오리잔등을 누벼나갔다. 그다음 염낭에서 소금과 초까지 꺼내서 저민 살점들을 버무려 무쳤다.

《지금이 새끼낳이철이라 독이 있을라. 그러니 저리 치워라.》

금필이 손을 젓자 술희는 히쭉 웃으며 말을 받았다.

《한잔 걸치고 넘기면 일없소이다. 내 먼저 검식을 하리다.》

그리고는 한점 집어서 슬쩍 입안에 쓸어넣었다. 씹는듯마는듯 하더니 꿀꺽 소리가 뒤이었다.

금필은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키였다.

《형님도 한점 들어보소이다.》

《싫다. 삼득이 너나 생각있으면 같이 먹어라.》

금필이 사양하며 군졸에게 권하는 때였다.

《저… 나리, 한가지 생각되는게 있어 그러는데…》

삼득이 쭈빗거리며 입을 열었다.

《가오리들이 붐비는것을 보니 이 섬주위의 물밑이 깊지 않은것 같소이다.》

《그래서?》

《걸어서 섬을 빠져나갈수 있지 않겠소이까?》

《응?!…》

금필은 얼굴을 들었다.

삼득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속에 무언가 번쩍하는것이 있었던것이다. 가오리들이 새끼낳이를 한다고 볼것 같으면 이 섬주위의 물밑이 깊지 않다는것을 알수 있는것이다. 금필은 이전에 왕건과 함께 례성강 벽란포구나 정주포구일대를 시찰할 때 어부들이 가오리잡이를 하는것을 본적이 있었다. 물이 찌여 개펄이 드러나면 가오리들은 물곬으로 모여들어 새끼낳이를 한다. 서해연안은 물곬이 복잡하고 물온도도 서로 다르다. 개펄우의 물은 덥고 곬의 물은 차다. 가오리는 바로 이 찬물곬을 노리는것이다. 물곬은 개펄과 달리 다져진 모래층이다.

물깊이가 한자가 채 못되는 물속 모래우에서 가오리들은 한번에 일여덟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그러니 이 물곬만 타면 쉽게 해안에 붙을수 있는것이다.

금필은 무릎을 쳤다.

《이보게, 술희! 이제 당장 삼득이와 같이 가오리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다시 가게. 물곬을 찾아 우리가 빠져나갈 길을 열잔 말일세.》

《그러니 해안으로 붙자는거지요?!》

술희가 제꺽 넘겨짚었다.

《그래, 불편하게 배로 움직일것이 아니라 발로 움직이자는거야. 우리 임무가 해안을 훑어내리는게 아닌가. 배는 적당히 배합하세.》

《그게 좋겠군요. 능창의 수군기지들을 땅에서 쳐서 바다로 내몰아 먹자는거지요?》

술희는 환성을 올렸다.

《그렇네. 그렇게 되면 능창의 수군을 솎아내서 좋아, 목포쪽의 적군을 우리쪽으로 끌어당겨서 좋아, 우리의 퇴로가 안전해서 좋아, 후백제의 서해안을 우리가 장악해서 좋아, 총적으로는 우리 형님의 의도에도 맞아떨어지니 좋지 않은가.》

《하오면 형님! 내 곧 움직이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던 술희가 다시 주저앉았다.

《그래도 이것은 좀 건사하고 가야겠소이다.》

술희는 가오리를 절반 갈라 그중 한몫을 말끔히 삼키고서야 일어섰다.

《삼득이! 자네 정말 요긴한 조언을 주었네. 부여성에선 나를 목숨바쳐 막아주더니… 정말 고맙네!》

금필은 나머지몫을 삼득에게 통채로 주며 칭찬했다.

(군졸이라고 하찮게 볼게 아니구나!)

금필은 삼득의 어깨를 거듭해서 두드려주었다.

술희가 삼득이와 함께 찾은 물곬을 따라 금필이네는 섬에서 감쪽같이 빠져나갈수 있었다.

형세는 역전되였다.

밤사이에 섬을 빠져나온 금필이네는 해안으로 내리달리며 능창의 수군기지들을 조겨대기 시작했다. 그런줄도 모르고 능창은 날이 밝을 때까지 빈 섬만 포위하고있었다. 그가 섬에 올랐을 때에는 마진군사들은커녕 그림자도 볼수 없었다. 버리고 간 빈 배들만이 섬기슭에서 한가로이 떠돌고있었다.

능창은 다급히 배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이미 선수를 떼운 상태였다. 금필은 능창이 수년을 품들여 일쿼세운 기지들을 콩타작하듯 두들겨패고있었다.

금필은 목포를 바라고 질풍같이 내리쓸면서 해안주변의 무인도들을 속속 장악해갔다. 능창이 숨겨두었던 섬의 복병들이 다 녹아났다.

능창은 온몸의 기운이 빠지는감을 느꼈다.

(마진에 또 한명의 왕건이 있구나!)

능창은 금필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이렇게 주저앉을순 없다. 기어코 따라가서 금필이 너만은 복수를 하고야말테다!)

능창은 이를 갈며 일어섰다.

기를 쓰고 배를 몰아 무안반도아래 고이섬에 이른 능창은 거기서 금필을 기다렸다. 해안선을 따라 내려오느라면 어차피 금필이 무안반도를 에돌아야 할것이기때문이였다. 그는 이곳에다 금필을 수장할 우물을 파리라 작정했다.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