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한편 왕건은 승리를 경축하여 주연을 차리였다. 송악의 궁예에게 승전의 보고를 날린 뒤였다.

왕건의 금성공략구상은 삼일만에 현실로 되였다. 정주포구를 떠난 날부터 세면 엿새만에 얻어진 대승리였다.

왕건은 종례와 오다린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오다린은 왕건자신이 열다섯살되는 해에 부친과 함께 목포에 들렸을 때 이미 만나본 사이였다. 소금을 만들어 파는 오다린은 장사거래로 룡건과 가까운 사이가 되고있었다. 그때 왕건은 다섯살잡힌 오다린의 딸을 안아주며 고와서 어쩔줄 몰라했었다. 오다린의 딸 오씨는 왕건과 열살차이였다. 그가 바로 후날에 장화왕후로 불리워진 왕건의 둘째부인이였다.(장화왕후가 낳은 태자 무가 고려왕조의 2대왕이다.)

이번 금성공략에서 오다린의 공적이 컸다.

그는 이미전부터 왕건의 금성공략구상을 적극 찬성해준 사람이였다. 견훤의 그악스런 강박에 구워낸 소금을 군포미대신으로 말짱 빼앗기면서부터 쌓이고쌓인 반감이 마침내는 왕건을 돕는데로 이어진 그였다. 그는 이미 목포해안일대를 세밀략도로 그려 왕건에게 보내주었고 후백제의 보군과 수군중에서 목포싸움에 동원될 수가 얼마일것이라는것까지 정확히 알려주어 왕건이 승산있는 싸움을 할수 있게 도와주었다. 금성태수 종례를 포섭하여 그에게 왕건과 손을 잡도록 이끌어간것도 오다린이 한 일이였다. 이제부터 그는 마진의 땅이 된 이곳에서 왕건을 적극 도울것이였다.

종례도 학식이 있고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였다. 자기의 의거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를 모르지 않았지만 그는 주저없이 왕건의 편에 가담했다.

그는 후백제나 신라땅에서 나는 인물로는 절대로 삼국통합의 주역을 놀수 없다고 단정하고있었다. 이 두곳은 단군이래 겨레가 사는 령역의 한귀퉁이에 불과한만큼 발해까지도 포함한 전지역을 대표할수있는 인물은 고구려땅에서 나는 인물이여야 한다고 굳게 믿고있는 사람이 바로 종례였다. 그는 왕건이 바로 이 주역이 될수 있다고 보고있었다.

매 사람에게 손수 술을 부어주던 왕건이 금필의 앞에 와서 멈춰섰다.

《금필부장! 이번에도 수고하셨소.》

왕건의 나직한 치하에 금필은 어줍은 미소를 지었다.

《모두 대장형님의 공이라고 생각하오이다.》

금필의 말을 왕건이 정정했다.

《그보다 우리 대왕전하의 공적이지.》

《지당한 말씀이로소이다.》

리흔암이 재빠르게 맞장구쳤다.

《자, 그럼 우리모두 대왕전하의 강녕을 빌어 잔을 듭시다.》

왕건이 술잔을 높이 들자 저마다 잔을 들었다.

(형님도 참, 언제면 궁예의 부하노릇을 걷어치우겠는지…)

금필은 나직이 한숨을 쉬였다.

한달이 지나 왕건은 궁예의 부름을 받고 금성을 떠나갔다.

왕건은 떠나면서 금성을 라주라고 이름을 고쳐부르도록 하였다.(왕건이 왕이 된 후에 지어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왕건을 따라서 대다수 장수들이 떠나갔지만 금필은 몇몇 장수들과 함께 떨어졌다.

그사이 이곳의 민심은 완전히 안정되였다. 종례는 견훤에게서 받았던 금성태수관직을 그대로 차지하였고 오다린은 일약 목포성주가 되여 백성들을 돌보았다.

고을수비는 송악에서 파한 군사들이 주력이 되였다.

금필은 왕건의 추천과 궁예의 지지하에 여기서 군사들을 책임지고 이곳을 지키고있게 되였다.

얻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려운게 바로 땅이거늘 후백제의 등밑에 붙은 이 땅이 마진의 령토로 공고히 유지되는것은 전적으로 군사들이 어떻게 지키는가에 달려있었다. 금필은 이 중요한 임무를 군말없이 받아안았다.

이 시각 금필은 부여성의 림씨처녀가 자기를 찾아 송악으로 올라온것을 꿈에도 알수 없었다.

림씨처녀는 누구도 알아주는이 없는 송악으로 허위단심 찾아왔다.

도성에 이른 그는 무턱대고 금필과 왕건을 찾아달라고 졸라댔다.

모두가 라주공략에 나가있는 때여서 맞아줄 사람이 없었다.

왕건의 부인 류씨가 이 소식을 듣고 그를 불러들이였다.

그에게서 전후사연을 다 들은 류씨부인은 다정하게 림씨처녀를 이끌어 한방에서 지내였다. 류씨부인은 이 처녀가 마음씨 곱고 대가 바른데다 지혜가 있고 당돌해보이는것이 유금필과 조금도 기울지 않는 짝이라고 생각했다. 금필 당자의 말을 들어보아야 알겠지만 왕건이 돌아오면 그와 잘 의논해서 꼭 짝을 이루어주어야겠다고 마음먹고있었다.

류씨부인이 그토록 마음쓰며 기다리던 왕건이 송악으로 돌아왔다.

궁예는 개선하는 왕건을 성밖까지 나와서 마중하였다.

왕건이 궁예에게 아뢰였다.

《목포에서 령암, 무안, 금성까지 열한개의 성을 정복하여 대왕전하의 땅으로 만들었나이다.》

《바라기 힘든 일을 하였노라. 그대의 공적 력사에 길이 남을것이로다.》

궁예는 아주 만족해하였다.

궁예가 차린 주연에 참가하고 늦어 집에 들어온 왕건앞에 세 녀인이 반기며 인사를 올리였다.

한 녀인은 부인 류씨이고 또 한 녀인은 목포 오다린의 딸 오씨처녀였다. 오다린이 왕건과의 사생동거를 약속하는 표적으로 왕건에게 거두어주기를 부탁하여 왕건이 데리고온 처녀였다. 그는 류씨부인과 대번에 친하게 어울렸다.

왕건은 무르익은 복숭아마냥 불그레하게 물이 오른 오씨처녀의 귀염성스런 얼굴을 피끗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쪽의 녀인은 또 누구인가?…

나부시 절을 하는 그 녀인은 뜻밖에도 부여성에서 본 그 림씨처녀였다.

금필을 구원해주고 완쾌시켜준 기특한 그 처녀!

《이게 누구시오! 림랑자, 나의 제수가 아니시오?!》

왕건은 기뻐하며 처녀를 제잡담 제수라고 불렀다.

《아니?! 저는…》

처녀는 당황하여 빨개진 얼굴을 어디다 건사할지 몰라 허둥대였다.

왕건의 부인 류씨의 얼굴에 미소가 어리였다. 왕건이 제수라고 찍어서 부르는것은 마음속에 이미 금필의 내인으로 정해져있었다는것을 말하는것이기때문이였다.

왕건은 호탕하게 웃어제끼며 림씨처녀에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 송악으로 날아오시다니… 잘 오셨소, 정말 잘 오셨소!》 왕건은 유쾌하게 웃었다.

승전의 축배에 기분이 좋아서만이 아닌것 같았다. 이 시각에도 그가 마음속으로 금필을 생각하고있는줄을 류씨부인은 알수 있었다.

《어서 들어들 가십시다.》

왕건은 세 녀인을 이끌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왕건은 림씨처녀에게서 그동안 겪은 이야기를 들었다.

마진군의 공격으로 라주와 목포일대를 잃은 견훤은 리성을 잃고 길길이 날뛰였다. 그는 마진군의 주력이 라주로 내려와있는것을 기회로 삼아 부여성을 다시 공격하여 점령케 했다. 분풀이를 한것이였다.

력량상 대비가 안되는 싸움에서 부득불 마진군은 퇴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성을 차지한 후백제군의 행패는 무자비했다. 금필을 구원해준 림씨자매에 대해서는 릉지처참형을 내렸다. 이웃들의 도움으로 두 자매는 성을 빠져나오는데는 성공했으나 군사들의 포위에서는 벗어날수가 없었다. 바다로 해서 송악으로 가자고 작정하고 울포(충청남도 서천)쪽으로 방향을 잡아나가던 그들은 부여산성어귀에서 끝내 붙잡히고말았다. 다행히도 제 한몸 건사할 수준의 무예는 지니고있었던지라 두 자매는 군사들과 맞서기로 작정했다. 군사는 두명뿐이여서 일 대 일 격투를 어렵지 않게 치를수 있었다. 다시금 줄달음을 놓고있는 이들에게 성우에서 군사들이 화살을 어지러이 날리는 바람에 불행하게도 언니가 맞고 쓰러졌다.

산중턱을 에워둘러간 성벽쪽에서 왁자지껄 소리가 들리더니 한무리의 군사들이 달려나왔다. 사로잡으려는것이였다.

이때 피흐르는 가슴을 움켜쥔채 언니가 부르짖었다.

《애야, 어서 뛰거라! 꼭 금필장수를 만나 행복하게 살거라! 아! 사랑하는 동생아!》 그리고나서 성밑 골짜기의 내가에 몸을 던지였다.

《언니야!…》

불쌍한 언니였다. 남편을 여의고 혈붙이마저 병으로 잃고 혈혈단신이 된 언니, 언니가 죽다니…

림씨처녀는 목놓아 울었다. 울면서 뛰고 또 뛰여 천신만고끝에 끝내 송악으로 온것이였다.·

《우리 같이 사십시다. 금필아우가 말을 듣지 않으면 내 회초리를 쳐서라도 살게 하오리다.》

왕건은 림씨처녀를 위로했다.

《으-흑, 어르신님!》

류씨부인의 무릎에 묻었던 얼굴을 들며 처녀는 나직이 부르짖었다. 눈물에 젖은 처녀의 얼굴에 홍조가 비껴올랐다.

다음해(904년) 여름에 부여성은 금필에게 다시금 함락되였다.

왕건은 궁예에게 견훤의 령토확장기도를 꺾어놓는데서 부여성을 다시 탈환해내는것이 제일 급선무라고 루차 설명하여 승인을 받아냈었다. 금필은 군사를 이끌어 사흘만에 부여성을 타고앉았다. 금필과 나란히 부여성에 입성한 림씨는 언니가 몸을 던진 내가의 너럭바위우에 앉아 다시금 언니를 애타게 불렀다.

이후부터 이 내가를 림씨의 성을 따서 림천으로 부르고있었다.

금필은 부여산성에 거처하면서 림씨부인을 위로했다.

금필은 이곳에 있는 기간 민심을 위로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림씨의 언니가 부르짖던 말이 그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울리고있었던 까닭이였다. 그는 휘하군사들에게 복수심에 의한 그 어떤 행패질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다.

군사는 싸움으로 자기 목적을 실현해야 하는만큼 어쩔수 없다치더라도 백성들은 절대로 싸움의 희생물이 되여서는 안된다는것이 그의 신조였다.

부여고을 백성들은 금필의 처사에 감지덕지해하였다.

금필에게 부여성주 관직을 내려 영구히 있게 해달라고 상주까지 하였다.

그러나 금필은 부여고을 한곳만 살피고있을 사람이 아니였다. 그는 삼국통합의 중심위치에서 주역의 일익을 감당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재능과 실력의 소유자가 되였던것이다.

그는 한달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금 부여성을 떠나갔다.

그러나 부여성사람들은 금필을 잊지 못해하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곳 사람들은 부여산성안에 유금필의 사당을 지어놓고 봄, 가을 두차례 어김없이 제사를 지내였다. 금필의 혈족후손도 아닌 타성받이들이 조상의 풍속을 이어 유금필을 모시고있는것이였다.

부여산성밑을 흐르는 림천기슭 도로옆에는 하마비도 세웠다.

《대소인을 막론하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말에서 내릴지어다.》

그 누구든 유금필장수를 잊지 말고 오래오래 추억하라는 의미에서였다. …

또 한해가 지나가 새해 905년이 되였다.

금필은 목포에서 설날을 맞이하였다.

눈이 내리고있었다. 이해의 첫눈이였다. 소담한 눈송이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내려앉는다. 앉자마자 녹아서 땅을 적셔주었다. 송악과는 달리 이곳은 눈이 내려도 쌓이지 않았다. 날씨가 더워 곧 녹아버리기때문이였다.

금필은 지난 한해도 혈전속에 보냈다.

라주지역을 차지한 뒤 그 방비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다.

견훤은 틈만 보이면 접어들었다. 때로는 철기병으로 기습해와서 령암성을 완전히 둘러싸고 항복하라고 으름장을 놓다가 달아나기도 하였다. 성을 함락하지는 못해도 공포라도 주자는것이였다. 저희들이 다 죽지 않았다는걸 보여주자는 속심 같았다.

이전에는 한차례의 전투끝에는 발편잠이라는게 있었지만 목포와 라주에서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라주성은 말할것도 없고 주변 10여개고을을 지켜선 군사들모두가 잘 때 허리끈도 풀어놓지 못하였다.

금필은 이곳에서도 송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거의 다 알고있었다. 며칠전에도 술희가 찾아와서 왕건이 보낸 편지를 전해주고갔다.

왕건은 여전히 종횡무진하고있었다.

소문에는 왕건대장이 사람이 달라져 안방재미에만 빠져있다는둥 사냥에만 정신을 판다는둥 하지만 그는 결코 누구의 말처럼 세월이나 낚는 송악의 《강태공》이 아니였다.

지난해 섣달에 패서(대동강 서쪽)지역으로 진출한 왕건은 룡강, 한천, 평원 등 고을을 복속시키고 설전으로 돌아왔다.

금필은 왕건이 보낸 편지를 보며 흐뭇해했다. 그곳 또한 앞으로는 궁예의 령역이 아니라 왕건의 령역으로 될 땅이라고 믿는때문이였다.

금필은 썩 이전에 궁예와 첫 대면을 했을 때부터 애초에 그를 믿지 않았었다.

그를 신뢰하지 않는 까닭은 우선 그의 몸전체에 슴배여있는 위선때문이였다. 겉으로는 소박함과 선량함을 애써 표방하고있으나 한꺼풀만 더 벗기고 들어가보면 살기만 풍길뿐이였다.

그래도 한때는 두령으로 모셨던 량길을 악독스레 제거한것만 보아도 궁예라는 인물의 인끔을 알수 있지 않는가. 어디 그뿐인가. 고구려재건의 기치는 어디다 팔아먹고 국호까지 마진이니 뭐니 하고 고쳐부르게 하지 않는가. 이게 신의가 있는 놈인가. 그래도 제딴에는 줄창 민심을 뇌까리면서 민심을 이다지나 우롱할수 있는가. 민심을 배반하고 제 명을 다 살것 같은가. 금필은 이런 생각으로 해서 궁예를 미워했고 그가 오래 가지 못할것이라고 장담해버리고만것이였다.

왕건의 편지에는 발해가 지금 주변나라들의 각축전에 말려들어 숨가빠하고있다는 불쾌한 소식도 씌여있었다.

(발해! 고구려를 이어 동족의 슬기와 위세를 련련히 이어온 동족의 나라! 좀 있으면 우리와 손을 맞잡고 천하에 다시한번 그 위용을 떨쳐야 할 겨레의 나라가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니…)

금필은 가슴이 답답해났다. 생각같아선 당장에 뛰쳐나가 료하일대를 종횡무진하고싶었다.

이 시기 발해서쪽지역에서부터 중국본토에 이르는 광활한 대지는 또다시 분쟁과 혈투의 마당으로 되고있었다.

당나라는 황후 무측전의 전횡이 오히려 국력을 강화하는듯 기세를 올리더니 어느 사이 조락하여 몇갈래로 갈라져 싸우다 지친 상태였다.

거란은 대추장 야률아보기가 거란8부를 통합한 뒤 발해를 휘저어 들어가다가 잠시 돌아서서 지금은 중원대륙을 노려보고있는판이였다.

발해는 자기 령역에 분산되여 살고있는 갈래가 무수한 말갈족들이 어느 갈래는 거란에, 어느 갈래는 당나라에, 또 한갈래는 돌궐에 가붙으면서 내륙과 변방을 소란케 하여 발해침략의 구실이나 만들어주는통에 가뜩이나 거란과의 싸움에 지친 몸을 겨우 가누고있었다.

(세월이여! 너 잠시 흐름을 멈추지 않으려냐? 이제 우리가 그곳으로 갈것이니 기다려다오. 조상의 땅 료동아!)

금필은 북녘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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