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4 회) 금필은 두시간은 실히 지나서야 정신을 차릴수 있었다. 깨여보니 어둑시근한 움속이였다. 밖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고함소리,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들이 간간이 들려왔다. (여기가 어딜가? 내가 지금 어디에 누워있는걸가?) 소스라쳐 일어나려 했으나 마음뿐이였다. 몸은 천근만근으로 내리드리웠다. 다시한번 힘을 쓰던 금필은 뭔가 이상한 촉감에 흠칠했다. 누군가가
자기를 포근히 감싸안은것 같았던것이다. 온몸을 솔곳이 눌러안고있는것이였다. 부드러운 손가락이 금필의 얼굴에 닿았다.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올려주고있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맡아보지 못한 향취가 금필의 후각을 자극했다. (내인이 아닌가?…) 《거긴… 누구요?…》 금필이 부르짖었으나 그의 말소리는 입밖에 나지조차 않았다. 입술만 움직거릴뿐이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웬 녀인이 금필이 자기를 부르고있었다. 《랑자는 누구시오?…》 금필은 다시한번 물었다. 《정신을 차리셨군요. 조용하시오이다. 소리를 내면 죽소이다.》 녀인은 귀가에 대고 속삭이였다. 웬 녀인이 자기를 안고있는것을 알았을 때 금필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의 보호를 받고있는것이 분명한때문이였다. 그보다는 견훤의 군사들이
이미 성을 되차지한 뒤이고 지금 자기를 잡으러 돌아치고있을것이 뻔한 사실이였기때문이였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다니…) 금필은 어금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모든것이 실패였다. 금필은 난생처음 겪는 패배의 수치감에 온몸을 떨었다. (내 이제 무슨 낯으로 형님을 뵈온단 말인가. 하기는 형님을 뵙기나 하겠는가.) 금필은 탄식했다. 가슴속에서 후회심이 고패쳤다. 왕건이 얼마나 당부했던가. 이번 일을 잘해야 한다고… 그런데… 나는 지금 죽음의 문어구에
누워있다. 금필은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순간의 해이가 이런 실패를 가져왔던것이였다. (이젠 꼼짝 못하고 죽기만 기다려야 하는가!) 금필은 모든것을 포기하고말았다. 《정신차리세요! 정신차리세요!》 녀인이 다급히 흔드는 바람에 금필은 다시 눈을 떴다. 움 한쪽이 트이면서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어왔다. 문가에 또 한명의 녀인이 들어서고있었다. (?… ) 《언니예요?》 《응,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니?》 《방금 눈을 떴댔는데… 또 정신을 잃었어요.》 《어쩌면 좋을가. 온통 수라장이여서 의원을 찾을수가 없구나.》 《이러다간 사람을 죽이겠어요. 어쩌나…》 《어떻게 해서든 살려내야 한다. 우릴 살려주신분인데…》 (그러니 그 녀인들이였구나.…) 금필은 비로소 어제 자기가 살려주라 일렀던 두 녀인을 상기했다. 원쑤로 치부하며 비수까지 날렸던 그들이 생명의 은인으로
뒤바뀌여있는것이였다. 금필은 마음의 탕개가 풀려 다시금 정신을 잃고말았다. … 얼마 있지 않아서 금필은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무언가 달작지근한것이 입안으로 흘러들고있었다. 한모금… 또 한모금… (야! 물이 달기도 하구나!…) 그사이 갈증에 시달리운 금필은 사발채로 마시고픈 욕망을 겨우 참아가며 야금야금 주는대로 목을 추기였다. 《언니가 이분을 살리는군요. 군사들의 눈을 용케도 피했어요.》 《당분간은 밥짓는 일을 계속 해줘야겠어. 지금 낟알이 나올데는 그곳밖에 없어. 이렇게 한줌씩이나마 얻어낼데가 있으니 다행이다.》 금필은
언니라 불리우는 녀인이 자기를 위해 후백제군사들의 밥짓는 일을 해주고있다는것을 알아차렸다. (고마운 녀인들이구나!…) 금필은 두 녀인에게 몸을 맡긴채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다. 한편 성밖에서는 치렬한 접전이 계속되고있었다. 간난신고끝에 부여산성을 차지한 금필의 군사들은 금필의 행처를 찾아 다시금 고을성을 기습해왔다. 견훤의 군사들은 성우에서 맹렬히 화살을 쏘아댔다. 그 살비속을 뚫고 금필의 군사들은 엉엉 울며 공격을 계속해댔다. 견훤의 군사들은 이를 보고 착각했다. 금필이 빠져나가 여전히 군사를 지휘하고있는것으로 판단했던것이다. 금필의 군사들은 련사흘 희생을 거듭하며 이악스레 달려들었으나 매번 퇴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중과부적이였던것이다.… 이무렵 송악에서는 궁예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있었다. 리흔암이 청주남쪽으로 성과를 확대하여 어느덧 계룡산지에 이른것이다. 실은 유금필의 모험적인 공격으로 견훤의 군사 대부분이 부여와
흥성일대에로 쏠린탓에 덕을 입어 얻어진 성과였다. 궁예가 이것을 모를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금필의 공로는 모른체하고 리흔암이만 극구 칭찬했다. 왕건은 금필이 걱정스러워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부여성이 견훤에게 다시 함락되였다는 소식에 접한 왕건은 더는 참지 못하고 궁예틀 찾아갔다. 《금필이 그 사람을 걱정하는것이요?》 궁예는 룡상우에 비스듬히 기대여 누운채로 왕건에게 수선을 떨었다. 《좀 더 기다려보지 않겠소? 그야 리흔암이 같은건 거들떠보지도 않는 맹장이 아니요?》 《제 아우의 일이라 가만 앉아있을수가 없소이다. 대왕전하! 가서 도와주도록 허락해주소이다.》 왕건은 궁예의 이죽거림에 맞설 경황조차 없었다. 《원, 그렇게도 마음이 편안치 않으면 어서 가보시오.》 궁예는 마지못한듯 승낙했다. 그도 자기 령역이 금강계선까지 넓혀지는것을 나빠할리가 없었다. 이 기회에 견훤이 얼마만큼 용을 쓰는지도 한번 알아볼 필요도 있었던것이다. 왕건은 살같이 내달렸다. 흥주성을 순식간에 함락시키고 파죽지세로 내리조겨 부여성을 단숨에 에워쌌다. 견훤의 군사들은 부여성밖에서부터 왕건을 막아나섰으나 이틀만에 퇴각하고말았다. 금필이 이미 휘저어놓은것을 정리하는것이므로 싸움은 이내
결속되였다. 부여성은 왕건의 수중에 들어갔다. 움속에서 보름만에 금필은 구원되였다. 금필은 자기를 구원해주고 치료해준 두 녀인을 잊을수가 없었다. 하여 금필은 이들의 소행을 왕건에게 그대로 여쭈었다. 금필로부터 그간의 이야기를 들은 왕건은 즉시 두 녀인을 불러오게 하였다. 《기특한지고, 기특한지고.》 왕건은 두 녀인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들으며 연신 머리를 숙여 사례를 표한 다음에야 송악으로 되돌아갔다. 왕건이 떠나간 뒤에도 금필은 바쁜 나날을 보냈다. 차지한 지역을 정리해야 하였고 민심을 안착시켜야 하였다. 전해의 흉년이 영향을 미치고있어 집집마다 절량인데다 한차례의 싸움이 흽쓴 뒤여서 민심은 더욱 어지러워져있었다. 게다가 곳곳에서 이런 기회를
탄 도적무리들이 련속 나타났다. 송악의 궁예가 이곳에 관심을 돌려야겠으나 그는 이무렵에 와서 별나게 번져가고있었다. 송악에 온지 몇해 되지 않았는데 도읍을 쇠두레로 다시
옮길 생각을 하고있었던것이다. 아직은 소문뿐이여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였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있었다. 그것은 궁예가 쇠두레로 도읍을
옮기려고 벌써 그 준비에 들어갔기때문이였다. 궁예의 쇠두레에로의 환도는 아지태의 입바람때문이였다. 아지태는 송악이 왕건의 본거지이므로 공고한 곳이 못된다고 하였다. 패서일대를 포함해서 옛 고구려일대 사람들을 믿을것이 못된다는 설명이였다.
반면에 쇠두레는 궁예의 첫 도읍지인만큼 그의 지지기반이라는것이였다. 지금처럼 질풍노도로 주변을 정복할수 있은것은 쇠두레에서 시작을 잘 뗐기때문이라고 했다. 그 승세를 타고 천하를 거머쥐자면 쇠두레로 다시 가야 한다, 가서 새로이 나라의 틀거리를 세워야 한다, 그것은 고구려도 신라도 백제도 아닌 새로운 나라로 되여야 한다는것이였다. 지금의 기세로 보아 삼국통일은 눈앞의 일이니 다음은 압록강을 건너가 료동을 차지하고 그 넓으나넓은 중원지방을 다 차지하고 통치하는것이
궁예자신의 포부로 되여야 한다고 력설했다. 아지태의 달변에 궁예는 서서히 넘어가고있었다. 원래 의심이 많은 궁예는 자기에게 너무도 쉽게 귀순해온 패서지역 두령들을 은근히 경계하고있었다. 한때는 송악, 패서만큼 자기를 뒤받침해주는데가 없었다. 허나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충주와 청주세력들이 궁예자신에게 이마를 조아리고있고
한강남쪽지역도 자기 차지가 되였은즉 거기서도 새로운 지지세력이 형성될것이였다. 내가 송악에만 옴해있을 까닭이 무어람… 궁예는 후백제와 신라도 쉽사리 자기 수중에 떨어지리라 믿고있었다. 성공의 길에서 과신과 오만이 자라고있었다. 그것이 애초에 들었던 고구려재건의 구호를 줴버리는데로 탈선하여 오매불망 고구려재건만을 바라며
이때껏 고군분투하여온 왕건이며 금필이 등 고구려출신들에게 실망을 자아내고 격분을 야기시키리라는것을 그는 생각도 못하고있었다. 그것은 곧
궁예자신의 실패의 전주곡이기도 하였다. 허나 아직은 누구도 이것을 예측할수 없었다. 궁예의 기세는 여전히 충천했으며 그는 나날이 비대해지고있었다. 송악에서는 어떻든지간에 금필이 제일먼저 손을 써야 할 일은 기근을 극복하는 일이였다. 차지한 지역이 풍족해야 주둔한 군사도 덕을 입는 법이였다. 그런데 민가에 기근이 들었으니 군사들 역시 그 여파에 휩싸일수밖에 없었다. 금필은 생각다못해 왕식렴에게 사람을 보냈다. 그 시각 식렴은 청주포구에 틀고앉아 군량조달을 맡아보고있었던것이다. 식렴은 금필의 련락을 받은
즉시로 식량을 실은 배를 바다로 해서 금강을 거슬러올라 부여성에 갖다대였다. 식렴이 보낸 얼마간의 식량이 금필을 크게 도와주었다. 금필은 식렴이 보낸 식량을 군사들과 백성들이 절반씩 나누어 소비하게 조처하였다. 부여고을백성들이 그 덕을 보았다. 관청에서 일일이 가호마다 따져가며 호구책을 세워 죽물일망정 배고픔을 면하게 되였다. 도적따위도 자취를
감추었고 다른 곳에서처럼 떼죽음도 나지 않았다. 보리고개를 무사히 넘기고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금필을 칭찬했다. 색다른 무엇이 생기면 싸들고
금필을 찾아왔다. 미처 오지 못할 사정이면 금필이 있는 군막을 향해 한사람몫을 떠놓고 절을 한 뒤에 먹군 하였는데 이것이 풍속화되여 먼
후날까지도 계속되였다. 다른 곳은 몰라도 부여사람들만은 추석날에 반드시 《고시레》를 부른 다음에는 《금필레》를 부르고서야 음식을 들군
하였다.… 금필이 이곳을 지키고있는 기간 애타게 그를 생각하는 두 녀인이 있었다. 그를 구원해준 림씨자매였다. 그중에서도 동생이 더하였다. 견훤군사들의 수색을 피해 움속으로 금필을 안아들여간 그 시각부터 금필을 거둔것은 동생인 림씨처녀였다. 그는 금필의 옷을 벗기고 살맞은 자리를 처치했고 살독이 퍼져 고열속에 헛소리를 칠 때는 어린애를 달래듯 감싸안아주었다. 상처가 곪아터지자
제입으로 고름을 빨아내기도 하며 온갖 지성을 다하였다. 집을 수색하러 오는 군사들을 얼려넘기는데 든 품은 또 얼마랴. 언니나 동생이나 하나같이 극진하였다. 이들은 운명의 그날 금필을 원쑤로 치부하며 비수까지 날렸던 (칼을 날린것은 동생이였다.) 자기들을 죄가 없다며 용서해준 그 시각부터
금필을 사모하며 생명의 은인으로 가슴속에 새긴것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