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3 회)
4. 웅지를 펼치다 금필이 청주성을 떠난것은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의 대야성공격에 실패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금필은 지금 후백제의 서북변방을 공격할 임무를 받고 떠난 길이였다. 얼마전 후백제의 견훤은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였었다. 후백제의 존재를 과시하는것과 함께 신라로 하여금 후백제를 인정하고 함부로 맞서나오지
못하게 하자는데 목적이 있었다. 군사적으로는 궁예로 하여금 이후에 신라로 더 내려오지 못하게 저들이 그 길목을 차단함과 동시에 장차 신라로 밀고들어갈 전초기지를
만들려는것이였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견훤은 신라와의 첫 싸움에서 무참하게 패하였다. 신라가 아직은 그 정도로 쳐서 쓰러질 약한 나라는 아니였던것이다.
대야성을 지키는 신라군사들은 예상외로 완강했다. 보름이 넘도록 성을 에워싸고 파도식공격을 하였지만 끄떡도 안했다. 마지막무렵에는 성밖으로
쓸어나와 역습을 거듭한 끝에 후백제군을 오십리밖으로 쫓아내기까지 하였다. 이를 갈며 돌아선 견훤이 완산주에 돌아와 며칠을 앓은 뒤에 새롭게 방향을 정한것이 신라의 서북방이였다. 청주는 차지하지 못하였으나 그
서쪽지역은 어떻게 해서나 차지해보자는것이였다. 흥성, 례산, 당진, 아산일대를 차지하고 거기에 강한 방어진을 구축함으로써 궁예가 청주지역에서 더이상 서쪽으로나 남쪽으로 가지를 쳐나오지
못하게 하려는것이였다. 실은 신라의 대야성보다 먼저 손을 대였어야 할 지역이였다. 만문한 신라를 먼저 때려놓고 그 기세로 서북방공격을 잇자던노릇이 시작부터 뒤틀리고만것이였다. 견훤의 이 기도가 송악에 알려진것은 견훤이 파한 완산주 군사의 선발대가 이미 금강을 넘어선무렵이였다. 이 정보를 받은 궁예는 그에 대처할 임무를 리흔암과 유금필을 직접 불러주었다. 리흔암에게는 송악에 둔치고있는 자기의 수하군사를 데리고가도록
하였고 금필에게는 청주성방어군사의 일부를 갈라서 가지고가도록 하였다. 리흔암은 좌군을, 유금필은 우군을 맡게 했다. 송악을 떠나오기 전날 저녁 금필은 왕건을 찾아가 조언을 받았다. 왕건은 청주서쪽지역을 꼭 장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주 남쪽으로 전과를 확대해나가도 그 서쪽지역을 차지하지 못하면 공고한 점령이
못된다는것이였다. 그런 의미에서 청주남쪽으로만 내리공격하면 그만인 리흔암이보다 서쪽과 남쪽을 다 밀고나가야 하는 금필의 부담이 더 큰것이였다. 금필도 이 점을 류의하고있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건 궁예가 왕건과 경쟁을 건것 같기도 하였다. 금필이 왕건의 부장이고
리흔암이 궁예의 수하장수인것이 묘한 대립을 이루고있는것이였다. 《형님을 제껴놓고 직접 나에게 임무를 주는 그 속내가 심술스럽소이다.》 금필은 미간을 모으며 불쾌함을 표시했다. 그도 그럴것이 궁예는 이보다 한발 앞서 능산을 마군장군에 봉하여 쇠두레로 보내고 술희는
병부령수하의 군량조달 대리로 옮겨놓았었다. 뒤이어 금필을 왕건의 수하에서 떼내여 전방으로 내보내는것은 결국은 왕건의 수족을 토막내자는 속심
같았던것이다. 《그런 말은 듣기 거북하니 그만하게.》 왕건은 금필의 말을 제지했다. 금필은 머뭇거리며 왕건을 바라보았다. 왕건은 말과는 달리 얼굴은 웃음을 띠고있었다. 알만 한 사람들끼리 그런 말은 그만두자는 뜻을 담고있는
얼굴이였다. 왕건이라고 궁예의 속심을 모를리가 없는것이였다. 왕건이 있어 오늘의 궁예가 있고 마진이(궁예는 얼마전에 나라이름을 마진이라고 고치였다.)
있다고 말한다 해서 이에 다르게 생각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것인가. 궁예는 왕건의 힘을 빌어 성공의 탑을 한단한단 쌓아올릴 때마다 왕건을 귀히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시기하고있었다. 그것이 간혹 가다 한번씩 드러나군 하는것이였다. 《아무쪼록 몸조심하게.》 《예, 그럼 전… 참, 형수님께 인사를 드리고가야지.…》 금필이 일어서자 왕건이 그를 제지했다. 《인사는 인사고 저녁이나 함께 하세.》 왕건의 부인이 상을 보아 들여왔다. 금필은 왕건의 부인이 따라주는 술잔을 받아들고 정중히 례의를 표했다. 그리고 달디단 술맛을 온몸으로 음미하며 천천히 마시였다. 왕건도 흡족한 얼굴로 술을 들었다. 금필을 바라보는 류씨의 얼굴에 은근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류씨가 왕건과 혼례를 올린지도 어느덧 한달을 넘고있었다. 금필은 두해전 왕건이 청주고을 류천궁의 집에 묵으면서 지금의 부인을 취하던 때가 떠오르자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속이 깊고 궁냥이 넓은
청주의 류천궁이 구렝이 닭알녹이듯 왕건을 구슬려 자기 딸을 안겨주던 그 저녁에 누구보다 이를 기뻐하며 축배를 높이 든 사람이 바로 금필이였다. 이미전에 류천궁의 딸을 보며 금필은 그 자색과 지성미가 왕건과 가히 짝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였었다. 하지만 그런 문제에는 서뿔리
나서는게 아니여서 속으로만 바라면서 은근히 가슴을 조여왔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로 되였으니 금필의 기쁨이 어떠했겠는가. 하지만 왕건과
류씨부인과의 백년해로가 시작을 뗄 때처럼 일사천리로 이루어진것은 아니였다. 첫 상면이 이루어진 그날 밤이 지난 뒤 청주고을을 떠나 전장을
종횡무진하는 속에 실은 금필이도 왕건자신도 류씨부인을 까맣게 잊고있었다. 바빠난것은 류천궁이였다. 딸은 식음을 전페한채 독수공방하고있는데 왕건은 종무소식이였던것이다. 아무리 전장의 사정이라 하여도 이럴수가 있나. 생각다못해 류천궁은 딸을 데리고 송악으로 올라와 때마침 전장에서 돌아온 왕건에게 무작정
떠맡기였다. 그제야 사정을 알게 된 왕건의 일가친척들이 골방에 모여 의논을 거듭한 끝에 조심히 왕건에게 말을 떼였다. 가세로 보나 용모와 지혜로움으로
보나 한치도 기울지 않는 천상배필이니 혼인을 하는것이 좋으리라는것이였다. 왕건은 정중히 무릎을 꿇은채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안방을 꾸미고 반년을 기다려 류씨부인의 머리칼이 다 자란 뒤에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였었다.(류씨부인은 왕건과 하루밤 자리를 같이한 이후로 왕건이 찾아오지 않자 인차 절에 들어가 중으로 지냈었다.) 《참, 자네도 이제는 안방거취를 해야겠네.》 왕건이 화제를 돌렸다. 《나만이 녀인을 취하였으니 동생들 보기가 민망하기 그지없네그려.》 왕건은 그윽한 눈길로 금필을 바라보았다. 《저에 대한 걱정은 마소이다. 나같은게 무슨 녀인을…》 금필은 얼굴을 붉혔다. 《무슨 소릴 하시오. 나보다도 웃사람이 아니요? 내가 제 좋은 생각만 하고있었소. 욕 많이 하시오.》 왕건은 진심으로 말하고있었다. 《이번 일만 치르고는 마련을 보도록 하시오. 꼭 그리하시오.》 《알아들었소이다.》 금필은 왕건의 다심한 말소리에 눈물이 나올듯 하여 황황히 일어섰다. 《전 그럼 이만 물러가겠소이다.》 금필이 하직인사를 올리는데 류씨부인이 금필을 멈춰세웠다. 《잠간만!》 그리고는 두툼한 보꾸레미 하나를 금필의 앞에 내밀었다. 《속옷가지들이오이다. 가서 갈아입도록 하옵소서.》 《형수님! 고맙소이다.》 금필은 눈앞이 흐려지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금필은 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다나니 녀인의 다심한 손길을 모르고 자랐다. 철이 들어 그중 가까이 대해본 녀인이 있다면 이전 주인 송씨의 딸일뿐이였다. 그러나 그들사이도 정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였기에 주인과
하인사이의 담을 넘어보지 못하였다. 금필이 처음으로 녀인의 인자한 손길을 느낀것은 바로 류씨부인에게서였다. 청주에서 왕건이 류씨부인을 취하고 떠나는 날 아침도 일찌기
잠자리에서 일어나보니 금필과 술희의 머리맡에 각기 한개씩의 앵도화채그릇과 미음그릇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그전날 밤늦도록 과음한것을 생각해서인지
시원한 화채와 함께 낟알기운을 보충하라고 자상히도 정성을 기울인것이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그보다 더 감동을 자아내게 한것은 금필과 술희에게 갈아입을 새 비단속옷가지들을 내놓은것이였다. 게다가 군복까지 밤새 빨아
말리워서 다림발까지 세워놓았었다. 《제대로 되였는지 모르겠사와요.》 이마며 볼을 익은 능금알처럼 붉히며 류씨는 청고운 소리로 권하였었다. 그의 매력은 은근한 미소에 있는듯 했다. 목소리까지도 크지도 작지도 않고 그저 은근하게 들렸다. 주인인 왕건의 의형제동생들이라서 나이는
아래여도 형수된 마음을 기울여주는것이리라. 그때처럼 그는 지금도 금필에게 정을 기울이고있는것이였다. 타고난 성품 그대로였다. 용모도 마음씨도 행동거지도 모두 한가지로 그저 부드럽기만
한 가식이 전혀 없는 녀인이였다. 이런 류씨부인이기에 금필은 그앞에서는 언제나 친동생이 된 심정이 되군 했다. 하기에 이렇듯 말우에 앉아 행군해가는 속에서도 금필이 다시금
류씨부인을 떠올려보는것이였다. 련 이틀을 강행으로 이어댄 끝에 금필은 드디여 흥성고을근처에서 후백제군과 마주쳤다. 후백제군이 당진, 아산까지는 올리밀었을줄 알았는데 아직
그에는 채 미치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허나 고을을 털어 군량을 보충하고 옹근 하루를 휴식한 뒤여서인지 후백제군은 기세가 사뭇 딩딩했다. 반면에
숨가삐 달려온 금필의 군사들은 예상외로 맥을 추지 못하였다. 접전을 벌리자마자 뒤걸음질을 하는것이 그동안 청주성에 틀고앉아 배가죽만 불군 꼴이
헨둥하게 알리였다. 《멈춰서지 못하겠느냐! 비겁하게 어디다 대고 뒤걸음질이냐?》 금필의 고함소리에 물러서던 전렬이 주춤거리며 멎어섰다. 《누가 먼저 뒤걸음질쳤느냐? 썩 나서지 못할가?》 금필이 다시한번 노성을 터뜨리자 두명의 군사가 털썩 무릎을 끓었다. 《적을 앞에 두고 뒤걸음을 쳐? 너희들도 고구려후손들이 맞느냐?》 《창황중이라 그만…》 《용서해주신다면 죽기로 죄를 씻겠소이다.》 두 군사는 얼굴을 붉히며 용서를 빌었다. 《너희들은 내뒤를 따르라. 자, 군사들! 나를 따라 앞으로!》 금필은 쌍검도를 휘두르며 앞장에서 내닫기 시작했다. 와! 군사들은 다시금 후백제군을 향하여 전진했다. 금필은 간난신고끝에 겨우 후백제군을 멈추어세웠다. 잠시 숨을 돌리고난 금필은 군사를 둘로 나누었다. 부하인 장수 김언에게 절반 넘게 군사를 주어 정면으로 맞서게 한 뒤 금필은 나머지군사를
이끌고 흥성고을을 에돌아 내려갔다. 흥성의 썩 아래에 있는 부여성을 치려는것이였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는감도 없지 않았으나 주저없이 내달았다. 부여성 성주는 견훤이 총애하는 장수로서 만만치 않은 인물이였다. 군사도 군사려니와 이 일대의 백성들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이들은 견훤의
백제재건을 따르고있었다. 후백제의 부흥강병을 바라는 이들의 저항은 상상을 초월했다. 물 한모금, 쌀 한알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전해에 흉년이
들어 기근이 들었는데도 물러설 때면 지고가지 못하는 낟알섬들은 모조리 불살라버리였다. 금필은 민심마저 잃은 지금의 자기 처지가 매우 불리하다는것을 시시각각으로 느끼고있었다. 형세는 금필에게 어렵게만 되여있었다. 그러나 금필은 단념할수 없었다. 흥성을 점령하자고 해도 어떻게든 부여고을을 타고앉아야 했다. 부여고을만 타고앉으면 뒤를 끊기운 흥성이
손들고 나앉을것은 뻔한 리치였던것이다. 금필은 왕건이 성을 공략할 때마다 사전에 성안의 실정을 알아보고 방략을 세우던것을 생각하였다. 그렇다, 나도 상대의 허점을 찾아내보자.
강한 적에게도 약한 틈은 반드시 있는 법이다. 금필은 우선 간자를 파하기로 하였다. 뒤걸음쳤던 두 군사가 자진해나섰다. 저녁에 떠난 이들은 새벽무렵에 돌아왔다. 이들이 꽁져온
후백제군사의 입을 빌어 성안의 실태를 파악할수 있었다. 부여성안의 군사는 절반나마 줄어있었다. 흥성을 지원하러 솎아보낸것이였다. 부여고을은 금강하류 중허리에 위치하고있는데 고을 서쪽변두리를 감싸며 흐르는 금강이 천험의 장애를 조성해주고있었다. 금필은 금강이 밀물의 영향으로 하루에 두번씩 바다물에 밀려 불어난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이 강도 례성강과 다를바 없구나.) 금필은 강물이 바다물에 밀려 흐름속도가 최대로 떠지는 시각을 노려 강을 건느도록 령을 내렸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였다. 자시 초무렵(밤 11시경) 금필의 군사들은 물밀듯이 성안으로 쳐들어갔으며 고을은 드디여 함락되였다. 그러나 고을안의 백성들은 드세게 반발해나섰다. 군사들의 시체를 넘으며 맨주먹으로도 마구 달려들었다. 이들을 제지하는데 퍼그나 시간이
걸리였다. 금필은 수하의 군사들이 백성들에게 가하는 행패에 눈이 커졌다. 《백성들에게 손대지 말라!》 금필이 급히 령을 내렸으나 군사들은 들을념을 않고있었다. 《듣지들 못하느냐? 병쟁기들을 모두 내리라고 하지 않느냐!》 다시금 웨치는 금필의 고함소리에 비로소 군사들이 주춤주춤 손을 내리였다. 《이 계집들만은 절대로 용서할수가 없나이다.》 군사 하나가 하소하며 가리키는 곳에 두명의 내인이 주저앉아있었다. 그들의 발치엔 활이며 도끼같은것이 나딩굴고있었다. 《우리 군사 넷을 상하게 했소이다. 이 고약한…》 그 군사는 참지 못하겠다는듯 칼날을 높이 들었다. 금시 내려칠듯싶은 서슬에도 두 녀인은 눈도 깜빡 안한채 맞쏘아보고있을뿐이였다. 《아서라!》금필이 거듭해서 소리쳤다. 《아무리 그러하기로서니 부녀자나 늙은이, 어린것들에게 어찌 칼질을 한단 말이뇨!》 금필의 엄한 추궁에 쳐들렸던 군사의 칼이 굳어졌다. 《어서 칼을 거두지 못할가!》 그제야 군사는 칼을 내리웠다. 이때였다. 핑!- 금필의 귀전으로 칼이 스쳐날았다. 주저앉아있던 두 녀인중의 하나가 금필을 겨냥하여 던진것이였다. 《이걸 보소이다, 에익…》 그 군사는 다시금 칼을 들어 가차없이 내리쳤다. 악!- 비명소리와 쟁강- 하는 칼부딪치는 소리가 동시에 났다. 녀인은 쓰러졌고 군사의 칼은 빗나갔다. 금필의 칼에 맞았던것이다. 《변을 당하시고도 참으시겠소이까?》 그 군사가 주먹으로 땅을 쳤다. 《참아야 한다.》 금필은 군사를 위로하고 두 녀인에게로 돌아섰다. 《그대들은 너무하시오. 나는 그대들을 살려주라 하는데 어찌하여 되려 해치려는거요?》 금필이 분을 눅잦히며 침착하게 물었다. 《우리 후백제군사들을 죽인자 후백제백성들을 죽인자와 같사오니 어찌 용서할수 있겠소이까!》 둘중의 나이가 더 들어보이는 녀인이 내쏘는 말이였다. 《뭐라구?!…》 금필은 아연해졌다. 《마진이 우리 후백제와 무슨 원쑤진게 있다고 이리하시오이까? 우린 가만 있을수가 없었소이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소이다.》 두 녀인의
부르짖음에 금필은 머리가 아찔해졌다. (우리가 이들의 원쑤란 말이지?) 금필은 온몸의 힘이 순간에 빠지는듯 하여 흠칠 몸을 떨었다. 《이들을 집으로 데려다주라! 손끝 하나 다쳤다간 용서치 않을테다!》 《알겠소이다.》 군사들이 머밋머밋 분부를 따르기 시작했다. 《성안의 민가들을 수습케 하고 후백제군의 시체를 잘 처리하도록하라! 이후로는 그 누구든 성안의 백성들에게 절대로 불손한 발언이나 행동을
금하도록 하라. 알아들었느냐?》 《알아들었소이다.》 수하군사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금필은 한동안 망연자실하여 서있었다. 서로 부축이며 집으로 돌아가는 두 녀인이 어렴풋이 보이였다. (내가 저들의 원쑤란 말이지!… 하기는 제 사람들을 죽인자를 은인이라 할수야 없지 않는가!) 금필은 목으로 돌덩이를 삼킨 기분이였다. 가슴이 답답해왔고 숨쉬기조차 괴로왔다. 세력을 다투는 싸움속에 당하는 백성들의 고통이 사무쳐왔다. 지금껏 밟아온 땅덩어리들이, 무수히 베여버린 생명들이 이 시각 금필의 마음속을
이름할수 없는 자책감에 휩싸이게 하고있었다. 세상일이 말로 다 통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서로 죽일내기를 하지않고서도 마음을 합치고 땅을 합쳐 함께 오손도손 살아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것인가. 금필은 고민에 빠져 새날이 밝는줄도 모른채 성안을 오락가락했다. 《장수나리! 성밖에 경계를 파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조심히 여쭈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앞서 용서해준 두 군사가 걱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서있었다. 《낮참에야 무슨 일이 있겠느냐. 걱정말고 어서 쉬여라.》 금필은 이들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였다. 그런데 이날 밤에 끝내 일은 터지고야말았다. 후백제군에 의해 성이 포위된것이였다. 백성들이 자기들을 원쑤로 절규하는데 충격을 받은 금필이 그만 다음행동에 주의를 돌리지 못한게 실수였던것이다. 두 군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하루낮동안 성밖의 적정을 살피게 하지 못하고 모두 성안에 붙박아놓은채 휴식만 하게 한 결과는 예상외로 엄중했다. 후백제군이 부여고을 성밖에 있는 부여산성에 쫓겨가서 숨을 돌리는 한편 완산주에 급히 알려 지원군을 부른것이였다. 견훤이 최선을 다했으리라는건 뻔하였다. 완산주에서 부여는 곧추 잡아 이백여리밖에 안되였다. 마진군이 완산주의 이백리앞에까지 내려온 사실에 놀라지 않을수 없는 견훤이였다. 견훤의 궁궐이 벌둥지가 되고 견훤의 수하장수들이 앞다투어
달려나왔다. 이들은 부여고을을 에돌아 흥성어간의 중간에서부터 포위진을 펴나왔다. 금필이 부여고을에서 탈출해 나온다 해도 되돌아가지 못하게 미리
막아놓고보자는 심산이였다. 한편으로 부여산성에 쫓겨와있는 력량과 합세하여 고을성으로 내리공격해온것이였다. 금필은 후백제군이 이후로 어떻게 나올것인가를 따져보았다. 후백제군이 자기를 사로잡으려 할것이라는 예감이 갈마들자 그는 초조해났다. 장수는
모든것에 대처해야 한다는 초보적인 상식을 잊은것이 이런 화단을 불러온것이였다. 그는 후백제군이 자기의 퇴로를 먼저 차단하리라는것을 알아차렸다.
성안에 있다가는 끝장이였다. 하다면 어디로 빠질것인가? 금필의 머리속에 고을밖의 부여산성이 생각키웠다. 후백제군은 지금 고을을 포위하는데만 급급해있었다. 어떻게든 빠져서 산성을 타고앉아 거기서
방어를 하면서 다음의 행동방향을 또 찾아야 하였다. 그는 대담하게 부여산성으로 맞받아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 성밖의 후백제군이 잠에 취한 때를 노려 금필은 서남쪽 성문을 열고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이 시각 후백제군도 잠을 자지 않고있었으니 이들은 동남쪽 성문을 까고 들어왔던것이다. 금필은 성밖으로 공격해나가는 대오의 후미에
서서 뒤쪽으로 들어오는 후백제군을 막았다. 처절한 싸움이 벌어졌다. 아직 금필의 군사는 절반밖에 빠져나가지 못했는데 후백제군은 성문을 까제끼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금필은 온몸의 힘을 다해 후백제군을 막았다. 자기 군사들이 거의 빠져나간무렵 금필은 그만 날아오는 화살에 맞고말았다. 등에 박힌 화살을 뽑을새도 없이 달려드는 후백제군사들을 베여넘기던
금필은 쿵- 하고 울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그는 눈앞이 아뜩해졌다. 군사들이 빠져나간 서남쪽 성문이 졸지에 닫겨버리고만것이였다. 후백제군사 여럿이 금필에게로 달려들었다. 이 찰나 두명의 군사가 금필을 막아나섰다. 금필이 용서해준 그 두명의 군사들이였다. 한명은
달려드는 후백제군사들을 베여넘기고 다른 또 한명은 금필을 부축하여 길옆의 집 담너머로 밀어던지였다. 《빨리 피하시오이다. 우리 걱정은 마시고…》 두 군사는 반대쪽 골목으로 내뛰면서 적들을 유인해가기 시작했다. 담너머로 떨어진 금필은 가까스로 화살을 뽑아던지고 멀어져가는 두 군사를 가슴조이며 주시했다. 뒤로부터 달려드는 후백제군사의 칼에 한명의 군사가 그만 쓰러졌다. (아!…) 금필은 신음소리를 내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금필은 그런대로 적을 달고 골목으로 사라지는 나머지 또 한명의 군사를 바라보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