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대낮같이 홰를 밝힌 군막안에서 금필은 왕건과 함께 회심의 미소를 짓고있었다.

(충주의 류긍달이 우리 성주님을 초청한다고?!)

금필은 지금 왕건의 옆에 서서 그의 손에 들려있는 편지말이를 내려다보며 생각을 더듬고있었다.

방금전 왕건은 4촌동생 식렴이 보낸 밀서를 받았었다. 이제 공격하게 되여있는 충주(아직은 중원경으로 불리우고있었다.)의 우두머리인 류긍달이가 왕건을 환영한다는 뜻을 보내왔다는것이였다. 한번쯤은 싸워보고 손을 들어도 들리라고 예견했던 곳인데 예상외의 반응이였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 왕건의 4촌동생인 식렴이고보면 믿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왕건이 차지해나가는 지역들엔 어김없이 식렴의 사전료해가 선행되고있다는것을 금필은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가평에서 량길을 격퇴한 뒤 이후의 남진은 왕건에게 전적으로 위임되고있었다.

궁예가 왕건에게 총대장 겸 도통사라는 직함을 내리고 남으로 계속 진격할것을 명령했던것이다.

궁예는 환선길과 리흔암이만은 송악에 떨구어놓았다. 송악의 내군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에서였다. 그러나 실은 이들이 왕건을 가로보는것을 알고 떼여버린것이였다. 홍유와 배현경, 김락, 김언 등은 왕건의 수하에 그냥 있게 했다. 그만큼 남하를 중요시했던것이다.

왕건은 궁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당성, 광주, 양주, 안성, 한주(서울)일대를 열흘안에 정복하고 잇달아 한달만에 수원, 펑택까지 점령한것이였다. 계속해서 괴양(충청북도 괴산)까지 진격해나간 뒤 잠시 멈춰섰다.

이제 왕건은 방향을 동쪽으로 돌려 충주를 치려고 하고있었다. 중부지대를 차지함으로써 서라벌을 압박하고 급속히 확대되고있는 견훤세력을 먼저 제압하려는것이였다.

왕건은 충주공략을 앞두고 견훤의 동향을 긴장하게 주시했다. 견훤이 량길이 차지하고있던 원주지역이 궁예에게 먹히우는것을 보면서도 어쩌지 못하고있는것은 아직 그의 힘이 딸리기때문이였다. 하기에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하였다.

충주는 서라벌에서도 중요시하는 곳이였다. 이전 삼국시기에도 신라는 이 지역을 유지하기 위해 무진애를 썼었다. 때로는 고구려에, 때로는 백제에 떼우기를 그 몇번… 그때마다 국력을 깡그리 동원하여 힘겹게 회복하군 한 땅이였다. 그런데 일시에 세력을 늘쿤 궁예에 의해 또다시 빼앗기게 될 운명에 처해있었다. 하지만 신라는 어쩌지 못한채 발만 구르고있었다. 신라 역시 힘이 진해가고있었던것이다.

왕건의 파죽지세같은 공격에 호족들은 전전긍긍했다. 형세의 진전은 너무도 파격이고 급전이였던것이다.

생각끝에 이들은 신라의 조정을 믿고 앉아있다가 함락당하기보다는 선손을 써서 자기들의 실체를 보유하자는데로 의논이 모아졌다.

이들을 이렇게 이끌어간것이 바로 왕식렴이였다. 충주호족의 우두머리 류긍달은 이전에 왕건의 부친과 장사거래로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왕건은 이전에 부친이 4촌동생 식렴과 함께 충주에도 들리군 하였던것을 생각하고 며칠전에 인편으로 식렴에게 류긍달을 찔러볼것을 지시했던것이다.

《형님들, 저녁진지 드시오이다.》

술희의 말소리에 금필은 생각에서 깨여났다. 군막을 들치고 들어온 손에 김이 문문 나는 고기점이 담긴 다반이 들려있었다. 뒤에 달고온 호위군사의 손에는 술방구리까지 들려있었다.

《충주공략을 성공코저 제 한턱 내는것이오이다.》

고소한 냄새가 군막안에 가득찼다. 다반우에 놓인 육붙이가 풍기는 냄새였다.

《자네 이게 뭔가? 백성들을 털지 말라는 내 령을 잊었나?》

왕건이 술희를 질책했다.

왕건은 군사들이 민가를 터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신칙해왔다. 군량은 고을호족들이 자진하여 내는것으로 충당하게 하면서 민가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도록 엄히 단속케 했었다. 왕건이 세운 이런 군률이 민심을 모으는데는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있었다.

《백성들을 털다니요? 이건 내가 저 뒤산 골짜기를 직접 뒤져서 잡은것이오이다. 이 술희를 어떻게 보구 그런 억측을…》

술희가 큰 눈을 휘빨며 짐짓 노여워했다.

《직접 잡은것이라? 그게 무슨 짐승인데?》

왕건이 흥미있는듯 고기점에 눈길을 주었다.

금필이 자세히 보니 그것은 개구리를 튀한것이였다. 금필은 이전에 매소물에서 술희가 잡아주는 개구리를 구워먹으며 허기를 달랜적이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왕건은 그것을 제꺽 알아보지 못하였다. 하기는 이름난 호족의 자손인 그가 언제 이런것을 먹어보았으랴.

술희가 재미있다는듯 술부터 따랐다.

《자, 한잔 드시고 맛을 보소이다.》

《이게 무슨 고기냐?》

《어디 한번 맞춰보소이다.》

《한마리 잡았으면 통것으로 구울것이지 쯧쯧… 그리고 요렇게 조박조박 찢어발겼으니 무슨 짐승인지 맞출수가 있느냐?》

술잔을 낸 왕건이 고기점을 하나 집어들었다.

《가만… 형님!》

금필이 급히 손을 저었다.

《왜 그러오?》

갑자르는 금필을 보며 왕건이 의아해하였다.

《형님, 그게… 개구리올시다.》

《뭣이?… 개구리라구?》

왕건의 두눈이 커졌다.

《그렇소이다. 이전에 우리 형제들이 즐겨 먹던것이오나 형님께서야 어떻게…》

《이보게 술희! 자네 지금 이게 무슨 해괴한짓인가?》

금필은 얼굴을 붉히며 술희를 나무랐다.

한동안 고기점을 들여다보던 왕건은 슬며시 입에 물고 한입 베여 씹어보았다.

(아니?…)

다들 긴장해서 왕건의 거동만 주시했다. 이제껏 히물거리던 술희도 주눅이 들어 자세를 웅크린채 궁싯거리면서 내가 우아래없이 놀아댄것이 분명쿠나 하고 후회하고있었다.

왕건은 씹은 고기점을 다 넘기고서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도통사님, 우리들이 그만… 버릇없이 논걸 용서해주시오이다.》 능산이 한걸음 나서며 머리를 숙이였다.

《아닐세, 아우들! 자네들은 이렇게 좋은것을 저희들끼리만 먹었단말인가?》

《저를 벌하여주소이다.》

술희가 무릎을 끓으며 빌고나섰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것이오이다. 용서해주시오이다.》

금필과 능산은 아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싶은 심정이였다.

(술희가 한짓이 얼마나 노여우면 저럴가?!…)

웬만해선 노여움을 타지 않는 왕건인줄 잘 알기에 이들은 저들이 너무 지나쳤는가싶어 속이 한줌만 해서 있었다.

《내 오늘 자네들한테서 큰걸 하나 배웠네.》 왕건이 말을 이었다.

《군사라면 응당 이런 상식쯤은 알고있어야 하네. 지금은 우리가 군량의 부족이 없으니까 그러지 일단 떨어지고보게. 이런걸로 대처함이 옳지 않은가? 어떤가, 금필아우!》

《실은 그렇소이다.》

금필이 다급히 말을 받았다.

왕건은 지금 진심을 이야기하고있는것이였다.

그제야 좌중은 안도의 숨을 쉬였다.

《자, 어서들 가까이 와앉게, 어서!》 왕건이 형제들을 손짓으로 불러앉혔다.

《이보게 술희, 자넨 신라 대승의 아들이라 들었는데 언제 이런 험한걸 다 먹어보았나?》

왕건이 술희에게도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말이 대승이지 우리 부친은 신라조정의 벌을 받고 패가한 사람이오이다.》

술희가 술잔을 든채 대답했다.

《아참,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던가?》

왕건이 그제사 술희의 래력을 상기한듯 끄덕였다.

《신라 경문왕때에 왕족간의 싸움끝에 밀리여나서 저 무진주 이웃인 혜성군으로 쫓겨나왔소이다. 서라벌지경밖으로 내버려진것이오이다. 거기 가서 옛 백제사람들을 잘 다스리지 못한 죄로 또 관직을 삭탈당하고말았소이다.》

《음, 그랬다고 했지. 무엇을 잘못 다스려 그리되였다고 했던가?》 《농민군의 폭동을 진압하지 못한 죄였지요. 격분한 부친께선 관할 고을사람들과 손을 잡고 조정에서 내려온 일행을 두들겨패주었지요. 그다음 산으로 들어갔었는데 가족이 멸살당하자 화김에 그만 자결하고말았소이다.》

《그래서 자넨 일찍부터 떠돌이를 하였나?》

《예, 그때 너무 급해서 절간에 들어가 숨어있어보았지만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소이다. 그래서 우선 살고볼판이라 무진주일대의 주먹패, 산적패를 가리지 않고 따라다니다나니 못하는짓이 없게끔 되였소이다. 그러다보니 제 그만 이렇게 막돼먹은 놈이 되고말았소이다. 오늘 일을 정말이지 노여워하지 말아주소이다.》

《안할 말을… 술희, 자네 앞으로 이런 호구지책을 혼자만 알고있지 말고 모든 사람들에게 다 알려주어서 급할 때 써보도록 하게.》 《알아들었소이다.》

《이왕에 한마디 보탤라치면 저 술희아우는 청개구리와 매미따위도 한입에 꿀꺽 해치우는 개비위라는것이오이다. 도롱룡을 세마리만 산채로 먹으면 허리병이 떨어진다면서 이전에 나에게도 강짜로 먹였소이다.》

능산이 옆에서 보태고나섰다.

《그래, 허리병이 정말로 나았나?》

왕건이 유쾌하게 웃으며 능산에게 물었다.

《사실을 말하면 그후로는 내 허리가 정말이지 아프지 않소이다.》 《하하하, 우리 술희가 이제 보니 보통 령험하지 않은걸.》

왕건이 즐겁게 웃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술희아우, 지금은 섣달인데 땅속에 들어가있는 개구리를 어떻게 그리 수월히 잡아낼수 있나?》

《겨울에 땅속에 들어가는건 들에 사는 잠개구리일종이온데 지금 우리가 먹는 이 개구리는 산에서 사는 북개구리라 하오이다. 산골짜기의 물이 고여있는 곳에는 틀림없이 돌밑에 이놈들이 엎드려있는데 이것들은 다음해 봄에 까날 알까지 볼록하게 배에 품은채 물속에서 겨울잠을 자오이다.》

《막내야, 넌 정말이지 모르는것이 없구나!》

왕건은 술희를 치하하기에 말을 미처 고르지 못해하였다.

《이보게, 금필아우! 우리가 송악에서 처음 만났을 때 저 술희가 술을 내지 않았다구 투정질하던 생각이 나누만. 우리 충주에 가서 저 술희의 배를 마음껏 불려주세. 거기서 누구 주량이 제일 세나 한번 겨루어봄이 어떤가?》

《그게 좋겠소이다.》

모두가 좋아하며 대답했다.

즐거운 웃음소리가 군막밖에까지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들은 거기서 오래 머물러있을수 없었다.

충주에 가보니 그달음으로 또 차지해야 할 곳이 내다보였던것이다. 청주(그때까지는 서원경으로 불리웠다.)였다.

하기에 왕건이네는 충주에 입성한지 닷새만에 청주를 향해 또다시 길을 떠났다.

바람은 비록 세지 않아도 눈까지 내리는지라 날씨는 스산했다. 이런 속에서도 군사들은 홑겹을 입은채로 부지런히 길을 대여갔다. 어떻게 하나 이해안으로 청주까지 차지해야 하였던것이다.

류긍달은 왕건을 붙잡고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충주성에 눌러앉아 겨울을 난 뒤에 조령을 넘어 남쪽 사벌주로 진격해야 한다는것이였다. 그는 서라벌쪽으로 한치라도 더 빨리 가르고 들어간 뒤에 동쪽으로든 서쪽으로든 가닥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이전 신라와 백제의 경계였던 이 지역은 궁예의 세력이 뻗쳐내려오면서 또다시 세 세력의 변방으로 되고말았다. 신라가 포기하지 않고있는 땅인데다 후백제는 마음뿐이지 아직 이곳까지는 손을 뻗치지 못하고있었다. 누구든 용을 쓰는쪽이 차지할 판이였다.

그러나 왕건은 서남방향을 택했다. 우선은 청주를 차지하려는것이였다.

청주를 먼저 타고앉아야 한다고 주장한것은 금필이였다. 금필은 새로이 일어서는 견훤이쪽을 중시할것을 왕건에게 조언했다. 쇠약해진 서라벌을 공략하는것이 급한 일은 아니였기때문이였다. 더우기 날아다니는 새도 넘기 어려워한다는 조령을 이 겨울에 넘는다는것은 힘만 빼는 일이 아닐수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청주는 달랐다. 견훤은 왕건이 충주를 타고앉은 소식을 이미 들었을것이였다. 그 속도면 청주도 잠시잠간이라는것을 그가 모르지 않을것이였다. 만약에 그가 전력을 다해서 올리민다면 먼저 차지할지도 모르는것이였다.

실은 그 시각 견훤이도 청주를 올려다보며 가슴을 치고있었다. 갓 일어선 견훤에게 청주는 마음뿐이지 아직 차지할 힘이 없었다. 그러나 겨울을 나고 봄이 잡힐 때까지만 힘을 모으면 승산이 없는것도 아니였다.

이런 사정을 꿰뚫어본 금필인지라 조급해하지 않을수가 없었던것이다.

이해안으로 청주를 차지해야 한다. 신라조정이 그토록 중시하였던곳, 그래서 신라5경의 하나로 지정하고 서원경이라 이름한 이곳을 타고앉으면 신라도 견훤이도 다같이 눌러놓는것으로 된다.

금필의 이같은 주장은 왕건의 생각과도 조금도 차이나지 않았다.

이들은 이틀만에 청주성앞에 다달았다.

청주일대는 충주보다 인가가 더 조밀했다. 지세도 펴이고 물산도 더 풍요해보이였다. 왕건은 주변의 부호들에게 호소하여 천을 모아 그것으로 군사들에게 백포를 만들어주게 했다. 추위를 조금이라도 면하게 하려는것이였다.

청주성에서는 생각밖으로 완강히 저항하면서 군사를 모으고 수비도 강화했다.

한판 싸움은 피할수 없게 됐다고 단정한 왕건은 우선은 청주성을 포위하게 한 다음 하루의 말미를 주며 항복을 권고했다. 그런데도 성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변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서라벌조정에 대고 그래도 행여나 지원을 요청하며 기다리고있는게 아닐가?

이런 생각이 들자 금필은 왕건에게 슬며시 권고했다.

《그만 기다리고 들이치지 않겠소이까?》

《신호가 오지 않아 그러네. 식렴의 선이 움직이지 않고있구만.》 왕건은 지금 미리 청주성에 들여보낸 식렴이 성안의 실정을 알려오지 않아 바재이고있었던것이다.

《병서엔 적을 모르고 싸우면 이기기 어렵다고 하였는데 금필아우 생각엔 어쩌면 좋겠는가. 이대로 한번 붙어볼가?》

왕건이 금필에게 묻는 말이였다.

《아무튼 싸움이 붙고보면 상대의 허점도 드러나게 될것이오니 싸우면서 적을 알아 대처해도 이길수 있으리라 생각하오이다.》

금필은 더이상 끌면 재미없겠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럼 한번 찔러보세. 보아하니 이곳 사람들은 한번쯤은 맞아보고서 손을 들어도 들자는 배심같구만!》

《아마도 그런듯싶소이다.》

금필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성을 칠 책략은 금필부장이 짜보오.》

왕건의 말에 금필이 즉시로 대답했다.

《먼저 성 오른쪽을 쳐서 그쪽으로 쏠리게 한 다음 그 반대쪽을 쳐서 그쪽으로 또 쏠리게 하겠소이다. 그러기를 몇번이고 반복하면서 잠을 재우지 않으면 래일 아침쯤 반응이 있을것 같사오이다.》

《성문을 까고 들어가지 않고도 심리적압박을 주어 그들이 스스로 굽어나오게 하자는거요? 》

《그렇소이다. 제 발로 항복해나오게 하자는것이옵니다.》

왕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내 생각과 신통히도 같을가!

지금까지 왕건은 남쪽으로 진격해오면서 될수록이면 피를 흘리지 않고 스스로 복종하도록 했다. 서로 죽일내기를 삼가하니 원쑤를 만드는 일이 적어서 좋았고 민심을 모아서 좋았다. 땅을 차지하는것은 곧 사람을 차지하는것인데 이왕에 더불어 살아야 할 사이고보면 죽일 필요도 없는것이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무작정 폭력만을 쓴다면 그 뒤끝은 필경 좋지 못할것이였다.

왕건은 금필이 매사에 자기와 척척 일맥상통하는게 사기가 나서 그의 계획을 쾌히 승낙했다.

《그럼 시작해보게. 난 구경이나 하겠네.》

《알겠소이다.》

왕건의 령에 따라 금필은 각 부장들을 모아놓고 군령을 내렸다. 군사들을 네몫으로 나눈 뒤 두패는 뒤에서 쉬면서 소리만 지르게 하고 두패는 각기 량쪽에서 엇갈라 공격하게 하였다.

추운 날씨라 가만히 앉아서 떠는것보다 움직이는것이 썩 나은지라 군사들은 흔쾌히 지휘하는데 따라 유희를 놀기 시작했다.

《금필형님! 저것들이 우리 속내를 알아챈것이 아닐가요?》

새날이 밝아올무렵 술희가 싫증난듯 중얼거렸다.

《이제야 알아차렸겠지. 우리가 바라는게 바로 저것이 아니던가?》 금필이 히죽이 웃으며 말했다.

《네에?…》

어리둥절했던 술희는 그제사 깨도가 되는듯 너털웃음을 쳤다.

《딴은 그렇구려.》

상대의 피를 보고싶지 않아 밤새껏 투항하기를 기다렸다는것을 성안의 주인들이 알아차렸다면 그것은 목적을 달성한것이라는것을 깨달은것이였다.

아닐세라 그때에 성문이 열리더니 말을 탄 사람 다섯이 줄줄이 달려나왔다. 다섯중에 한명은 뜻밖에도 식렴이였다. 식렴은 금필에게 같이 나온 청주성 성주를 소개했다.

《밤새 추위를 이기노라 뛰노는양을 보고 그만에 나왔소이다. 손님들께 인사불성이로소이다.》

청주성 성주의 챙챙한 목소리였다. 당콩알같은 두눈알이 잽싸게 구르는게 여간내기가 아닐상싶었다.

《우릴 불청객이라 하시는 말씀같소그려.》

금필이 눈을 치뜨자 당콩눈은 도리머리를 하며 입을 열었다.

《화친을 도모하러 온것을 늦게나마 알고 나왔소이다.》

《그럼 어서 성문을 여시오. 우리 도통사님께서 지켜보고계시오.》 금필이 재촉했다.

《조건이 있소이다.》

《그게 뭐요?》

《나를 궁예대왕과 만나게 해주시오.》

《그게 다요?》

《그렇소. 내가 궁예대왕과 만나는 그 순간부터 이 청주성은 그대들의것이 될것이요.》

《그건 틀림이 없소.》

식렴이 옆에서 곁들였다.

식렴은 왕건의 다음 목표가 청주임을 알고있었다. 그는 청주성에 들어가자마자 당콩눈이성주의 감시망에 걸려 잡힌 몸이 되였다. 이왕에 잘됐다고 생각한 식렴은 고심끝에 성주를 겨우 만났으며 그간의 정세와 세력들의 기운으로 보아 궁예쪽에 기우는것이 합리적이라고 루루이 설복하여 납득시켰다. 왕건이 이끌고 온 군사들이 성을 포위하고 밤새 허위공격을 하고있을 때에 이르러 드디여 당콩눈이성주는 결심을 내리고 궁예대왕을 직접 만나는 조건부로 귀순의 뜻을 표명하였던것이다.

그러나 이 시각 당콩눈이(그의 이름은 아지태이다.)의 배속에서는 무서운 야심이 꿈틀거리고있었다. 후에 그는 궁예의 모사가 되여 종당에는 궁예의 멸망을 앞당기게 하였다. 궁예가 미워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추악한 행위의 결과로 빚어진것이였다. 그러나 아직은 그가 귀순자일뿐이였다.

왕건은 군사 절반을 떨구어 청주성밖에 둔치게 한 다음 당콩눈이와 함께 나머지 군사를 이끌고 송악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궁예는 중원경(충주), 괴양(괴산), 서원경(청주)까지 점령함으로써 삼한땅의 절반을 차지한 명실공히 제일인자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이듬해 봄 궁예는 지금껏 차지한 지역에 대한 순행을 단행했다.

혈구(강화), 김포, 한양, 당성, 죽주, 북원, 서원경, 중원경을 거져 영풍(영주)과 명주(강릉)에 이르는 먼 로정이였다. 두달반을 이 순행길에 바쳤다.

이것은 갓 선포한《후고구려국》의 지경을 내외에 선포함으로써 신라와 후백제와의 경계선을 명백히 하는 의미를 가지였다.

이때 신라는 멀거니 궁예를 쳐다보고만 있는 정도였고 후백제의 견훤은 청주성 가까이의 평택에까지 올라와 진을 친채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처지에 있었다.

궁예의 위세는 자못 기세찼다.

동시에 왕건의 위신도 비할바없이 높아졌다. 왕건은 나이로 보나 전장터에서의 경력으로 보나 우위에 있는 궁예의 장수들과는 대비조차 되지 않는 높이에 올라있었다. 군사면에서 그가 궁예와 나란히 선 위치에 오른것이였다. 군사수를 놓고 봐도 궁예 수하의 군사가 3천이 채 되지 않는데 비해 왕건의 군사는 2천이 넘어있었다.

왕건의 이러한 키돋움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장수 환선길, 리흔암과 궁예의 모사인 중 가려와 청주출신인 아지태가 더 심했다.

환선길과 리흔암은 로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므로 대비할바를 쉽게 세울수 있었으나 가려와 아지태는 권모술수에 능하여 좀처럼 대적하기가 힘들었다.

궁예는 순행길에 청주에 묵으면서 아지태에게 완전히 빠져들어갔다. 송악에 돌아와서도 그의 달변에 심취되여 골방에서 하루고 이틀이고 아지태와 무릎을 마주하고있는것이 이제는 보통으로 되였다. 이때 와서 아지태는 자기 령지인 청주를 측근부하에게 떠맡기고 자기는 궁예와 한지붕아래에 들어 모사의 역할을 놀고있었던것이다.

이런 아지태를 가려가 결코 곱게 볼수는 없는 일이였다. 아지태가 조정에 마음대로 손을 대는 정도에 이르고보니 가려가 천거한 조정대신들이 수시로 그에 의해 재손질되고있었던것이다. 둘사이의 대립은 시시각각으로 격화되여갔다.

그러거나말거나 왕건은 이 모든것에는 관심이 없는듯 제 일에만 열중했다.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들어갔다. 그 시기 왕건은 부인을 맞아 신혼재미에 빠져있었다. 부인은 청주고을의 큰 부자인 류천궁(얼마전부터 류천궁은 호구와 조세, 공납 등의 업무를 보는 대룡부의 령이 되였다.)의 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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