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 회) 898년 무오년 정초였다. 무진주(광주)성안에서는 무슨 구경거리가 생겼는지 숱한 사람들이 모여
시끌덤벙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기치창검이 줄레줄레 늘어서있는 관청담장너머 안뜨락에 인총이 촘촘히 들어차가지고 무언가를 구경하느라 여념들이 없었다. 자세히 보면 구경거리란게 다른것이 아니고 오라를 지은 죄인 하나를 기둥우에 매달고 이리 빙글, 저리 빙글 돌리면서 채찍을 안기는 으쓱한
광경이였다. 웅성이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매를 맞는 죄인이라는게 하루전만 해도 이 고을의 우두머리던 무진주고을 성주라는것이다. 성주라면 이곳을
통치하라고 조정에서 내려보낸 서라벌족속일진대 무슨 연유로 개 목매달리듯 몰상스러운 꼴을 하고서 뭇매를 맞고있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러고보니 매를
드는 군사들의 차림새 또한 원래의 관군들의 복색과는 달라보이였다. 《완산주에 틀고있던 그 반변군사들이라고 하오다.》 《그럼 거 상주사람 견훤이 거느린 군사들이란 말씀이요?》 《옳게 봤어요. 서라벌조정에 맞서는 그 반란군이지요.》 《견훤이 그 사람이 본시는 관군 비장이였다던데 그만에 돌변해서 이제는 관군을 치는 반란군 두령이 되였지요.》 《들리는 소리론 백제를 다시 일으킨다 하였다더니 일을 치는구만요.》 《그런가보오. 저 성주란게 투항하라고 통첩을 했는데도 버티다가 저렇게 목매달렸다오.》 《까짓놈, 잘되였지. 서라벌것들이란 저렇게 목을 매고 치는 수라네.》 《그래도 제 임금은 배반하지 않겠다고 버티는걸 보오. 머리가 다 수그러지오.》 《온전한 임금이라면 또 몰라도 나라꼴을 이 모양으로 만든 그 잘난 치마꼬리를 무에 곱다고 버텨준단 말이요?》 《아따, 이 사람 보게. 치마두른 임금이 물러간지가 언제게. 지금은 헌강왕의 서자인 김요라구 먼저번 녀왕의 조카벌되는 사람이 룡상에
앉았다네.》 《거기선 서라벌 왕가내속을 잘도 아는군. 그럼 거 물러간 녀왕은 누구의 자손이였나?》 《진성녀왕은 경문왕 김응렴의 딸이였지. 오빠인 정강왕 김황의 뒤를 이어 올라가지구 십년은 그럭저럭 버티였지만 나라는 더 엉망이 되였다네.》 《지금 임금은 웬만히 구실을 한다는건가?》 《구실을 하면 저 꼴이겠나? 보게나, 거꾸로 매달린것을. 여기는 이젠 신라땅이 아니라네. 아래쪽 강진(전라남도)에서부터 웃쪽
완산주(전라북도)까지 여기는 이젠 견훤의 세상이란 말이네.》 이러니저러니 주고받는 말들을 대수 추려보면 지금 이쪽 서남해린근지역은 마지막으로 버티던 이곳 무진주가 깨여진것과 함께 이제는 완전한 견훤의
세상이 되였다는 소리였다. 《그렇소. 이제는 견훤의 세상이요!》 웬 체소한 사나이 하나가 이렇게 되받아 내뱉으며 활활 대청마루우로 걸어올라갔다. 저건 웬 놈팽이야 하고 옆에 있던 몇사람이 얼떠름해서 바라보는 사이에 체소한 사나이는 벌써 대청마루에 올라섰다. 그는 칼든 군사들에게
무어라 이르고는 씽하니 문지방사이로 스며들어갔다. 체소한 사나이가 사라지자마자 군사 서넛이 우르르 마당으로 내리닫더니 그때까지 매달고 치던 성주의 목을 가차없이 쳐버리고말았다. 악!- 아츠러운 비명소리가 마당가운데를 째며 스쳐갔다. 뒤이어 뜨락안팎은 또다시 죽가마 끓듯 와글거렸다. 방으로 들어온 사나이는 문틈으로 피끗 밖을 한번 내다보고는 더이상 그에는 관심이 없는듯 비단보료에 주저앉으며 차종지에 손을 뻗쳤다. 뚜껑을
열어젖히고 몰몰 김이 오르는 차종지를 입가에 가져다대는 사나이의 얼굴에 달콤한 웃음이 남실거리였다. 서른남짓 되여보이는 팽팽한 얼굴인데 그지없이
만족하다는듯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재머리를 떠는터에 숱적은 염소수염이 난들난들 호들갑을 떨었다. 이 사내는 능환이라고 견훤이 어렸을 때 이웃마을에 살던 소꿈동무이고 지금은 견훤이 첫손가락에 꼽아주는 그의 모사였다. 황소같이 우람한 견훤의 체구에 비하면 반푼밖에 안되는 몸인데도 기죽은 구석은 찾아볼래야 볼수 없을뿐더러 가느다란 실눈엔 오히려 야심이
번뜩이는것이 첫눈에도 벌써 례사내기가 아닌것이 알리였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능환은 상주 가은현의 이름없는 산골에서 견훤과 비슷한 해에 나서자라면서 힘으로는 견훤을 당하지 못하였지만 머리를
쓰는데서는 견훤보다 늘 앞서군 했던것이다. 둘은 다같이 자기 아버지들로부터 신라에 의해 몰락한 백제의 한을 언제든 꼭 풀어야 한다는 말을 밥먹듯 들으며 자랐고 도처에서 수풀처럼
솟구치는 반란군의 출몰을 보며 어린 가슴에 재기의 맹약을 쌓아왔었다. 견훤이 서라벌 수비군사로 뽑히웠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등을 떠밀어준것도 능환이였다. 장부는 군사를 알아야 하고 칼쥔이가 세상도 쥐는
때인만큼 성공의 지름길이 열리였을 때 주저없이 내달으라고 당부했었다. 이후에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꼭 찾으라고, 자기는 그때까지
두문불출하고 오직 병서에만 파묻혀있겠다면서… 그다음 일은 능환이 바라는대로 번져갔다. 아마도 견훤은 운이 좋은가보았다. 5년전쯤 되는 892년이였던것 같았다. 진성녀왕이 손수 나서서 견훤에게 어지를 내리기를 저 멀리 서남쪽 끝 강진땅에 반란군이 출몰하였는데
진압하러 간 장수마다 련전련패요 반란군은 이제 서라벌로 쳐올것이라 하니 이런 난감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견훤장수가 나서서 부디 막아 조정의
안존을 기하게 해주오 하며 눈물절반 사정절반으로 비장벼슬에 옥룡어주까지 내리는지라 짐짓 분부대로 하겠노라 약속하고 내달려간 끝에 견훤은 반란군을
보기좋게 진압하였다. 실은 칼질 몇번으로 규합해버리고만것이였다. 진성녀왕이 기뻐하며 올라오라 이르는것을 알은체 안하고 한해, 두해 슬금슬금 사방으로 무리를 모은것이 오천에 이르렀을 때 견훤은 드디여
능환을 불러들여 조언을 구했다. 견훤의 련전련승하는 소식을 들으며 그가 언제 부르겠는가 애가 타서 기다리고있던 능환은 한달음에 달려와 견훤의 머리가 돼주었고 그사이 품들여
꾸며온 구상을 펼치였다. 지금 당장 완산주를 차지하고 본거지를 꾸려야 한다, 미구에 이곳은 새로이 일어서는 후백제의 도성이 될것이다. 나라를 세우자면 민심을 모아야 한다, 민심을 모으려면 기치가 분명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기치는 무엇이여야 하는가, 그것은 두말할것없이
백제의 재건이다.… 견훤은 모든것을 능환에게 전적으로 위임한다고 선언했다. 《나는 쟁기를 휘둘러 땅을 넓히는 일을 하겠으니 뒤거둠은 능환이 네가 해라. 백성들을 어루만지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니라.》 《썩은 신라를 등진 민심이라 그걸 모으는 일쯤은 땅짚고 헤염치기인데요. 칼들고 몸을 내대야 하는 형님 일이 더 힘드실것이요.》 능환은 견훤을 더 걱정했다. 그도 그럴것이 신라조정이 언제까지나 저렇게 죽은 지네모양 꼼짝 않고 참고만 있을런지 단정하기
힘들었기때문이였다. 아무렴 신라가 다 죽을수가 있을가. 수백년을 자랑해오는 화랑인지 뭔지 하는 저들나름의 인재육성제도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그 많은 화랑도들이 백제를 다시 일으키겠다 윽윽하는 이쪽의 반란군을 곱게 앉아서 보고만 있지는 않을것이다. 언제든 구름처럼 밀려와서
뼈도 추리지 못하게 짓이겨 놓을런지 어이 알랴. 능환은 때때로 갈마드는 이런 위구심으로 마음 한구석이 늘 졸려있었다. 하지만 견훤은 배포가 유해서 종횡무진을 계속했다. 며칠전에는 완산주에 찾아온 량길의 사절을 기꺼이 맞이하고 제가 직접 답서를 써서 되돌려보냈다. 《그대가 나와 손잡자 함에 쌍수들어 환영하면서 신라서면도통지휘 병마제치지절도독 전, 무, 공, 등 주군사 행전주자사 겸 어사중승 상주국
한남군 개국공의 이름으로(견훤은 이 시기 스스로 온갖 명칭의 벼슬이름을 다 걷어차고 기세를 올렸었다.) 그대에게 비장벼슬을 하사하니 부대를
합쳐가지고 신라조정을 복수하자.》 견훤의 답신을 받아본 량길은 허구픈 웃음을 짓고말았다. 《이 량길이 나이도 나이려니와 그대같이 어벌 큰 인물과는 한솔밥을 나눠먹기가 송구하므로 고쳐 생각하고 정히 거절하는바이다.》이런 내용의
회답서가 날아오자 견훤은 코웃음치며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우리 그릇에 담길 물이 아니다. 내버려둬. 그는 이제 죽는다. 쇠두레 궁예란 놈을 이기지 못할거야.》 《그럴가요?》 능환이 기연가미연가 가늠이 가지 않아 기웃거리자 견훤은 자신있게 단언하였다. 《신라종실에 기대를 거는 꼴이 케가 틀린게 아닌가. 그는 대세의 흐름은 탔으나 세운 뜻이 가벼워 아니된다.》 능환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이였다. 견훤이 바로 보았던것이다. 이곳 완산주의 민심이 신라조정의 복구가 아닐진대 북원쪽 민심이라고
다를손가. 민심이 외면해버린 신라조정을 그냥 바라보고있는것자체가 민심을 또 한번 외면한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니 량길에겐 전도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량길이 궁예와 싸워 이기지 못하리라 예언한 견훤을 능환은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한편으로 능환은 미구에 궁예와 대치하게 되리라는 예감이 불쑥
들어 견훤에게 얼굴을 돌렸다. 《견훤형님! 형님이 땅을 넓히는게 급선무라 하신 말씀이 골백번 지당하오이다. 이제 궁예가 세우려는 후고구려와 우리가 세우게 될 후백제가
서로 대치되는 형세가 조성될것인즉은…》 《분발해야 한다. 병서에도 있지 않느냐, 선손을 쓰는자가 이긴다고. 서라벌쪽으로든 쇠두레쪽으로든 한치라도 먼저 차지하고 볼판이야.》 《알아들었소이다, 형님! 그네들은 고구려를, 우리는 백제를! 어디 누가 먼저 세우나 겨루어봅시다요.》 능환은 입술을 윽물고 일어났었다. (량길을 포섭하는건 시간랑비다. 그는 궁예와 싸우다 쓰러지라지. 그사이 우린 힘을 키워야 한다, 궁예세력을 누를 힘을!…) 그래서 이어진것이 엊그제 있은 무진주공략이였고 그닥 애먹지 않고 그곳을 타고앉을수가 있었다. 금년 한해는 차지한 땅을 다져놓고봐야 한다, 고을 성주들을 알쭌히 우리 심복들로 채워놓아야 한다, 한편으로 군사를 징발해서 그 수를 늘여야
한다, 그 다음해엔 다시한번 동정북벌! 그렇다, 바지끈 풀고앉아 차나 마시고있을 때가 아니다. 능환은 들었던 차종지를 획 방바닥에 깨버렸다. 벌떡 일어나서 허리매끼를 조이는 그의 눈에 야심찬 독기가 서리발을 쳤다. 누군가가 말했었다. 세상만물은 제나름의 모양새를 가지고있을뿐더러 존재하는 방식도 제나름으로 각각이고 사람도 이와 다를바 없어서 서로의
생김새가 판판 다른것은 물론이고 생각하는 속내도 각기 제나름이라고. 생김새는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사람의 생각이야 서로 같을수도 있는거지 매모조리 다 제 뿔뿔이로 제나름의 생각만 할수는 없는것이지만 실은
간혹 가다 그런 사람이 영 없는것도 아니였다. 그래서 사람도 각각, 생각도 각각이라는 말이 있는것인지… 강릉땅의 령주인 순식이란 사람을 두고 그렇게 말할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궁예에게 복종을 언약하고서도 나는 그런것을 모른다 하고 딱
잡아떼고 나앉아있기때문이였다. 896년, 그러니까 지난해 이맘때쯤이였다. 궁예란 애꾸눈이가 군사를 달고 이곳 강릉땅의 지경인 바로 이 대관령 고개마루에 나타나서 순식이 자기더러 무작정 항복하라고 을러메였다. 그때
순식은 이게 어디서 굴러온 헌바지 개똥싸개냐, 버릇 한번 가르쳐줘야겠고나 하고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나왔다가 뜻밖의 정황에 굳어지고말았었다. 떠돌이중이 되여 집을 나간지 삼년 하고도 여섯달이 지난 부친인 허월스님이 무리에 껴묻어와가지고 하는 말이 궁예와 싸우지 말고 그에게
항복하는게 좋으리라 하였기때문이였다. 너무나 어이가 없고 분통이 터질 요구라 차라리 바위돌을 들이받고 죽고나 말가 하다가 부친의 말은 법이라는 인륜도덕도 있는데다 도대체 무슨
쪼간에서 그런 까무러칠 요구를 하는지 알고나 죽자 하는 생각에 리유를 물었더니 우선 항복부터 하고 보라고 사정절반, 강압절반이였다. 할수없이 부친의 말을 따르고볼셈으로 항복인지 하는 죽기만 못한짓을 그예 저지르고말았었다. 하지만 그건 그때 일이고 궁예가 돌아간 뒤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싶게 싹 잊고 나앉아서 이전처럼 여전히 제 내키는대로 살아가고있는 순식이였다. 항복을 하였으면 그 무슨 조공인지 진상인지
하는따위의 아부하는짓에 어지간히 품을 넣어야 할터인데 순식은 궁예쪽에 대고 하다못해 하품이라도 한번 하는것을 여적 본 사람이 없었던것이다.
그쯤하면 누구든 이 사람은 확실히 제 나름대로 사는 사람이 분명하다고 단정할만 하였다. 사실을 말하면 그날 허월스님이 만류하지만 않았어도 궁예의 까까머리는 당장에 묵사발이 되였을터였다. 궁예는 대관령 고개가 강릉고을의 첫 관문이자 전방경계초소인것까지는 알고 접어들었지만 고개좌우 량쪽벼랑우에 집채만큼 큰 바위들을 쉰개는 더
넘을만큼씩 가려놓아서 한번 슬쩍 다치기만 하여도 날벼락치듯 내리떨어지는 돌탕에 짓이겨져서 뼈도 추리지 못하고만다는것을 전혀 모르고있었던것이다. 그것도 모르고서 궁예는 순식의 항복아닌 《항복》에 흐뭇해서 돌아갔다. 물론 강릉고을 성안까지는 들어가보았고 륭숭한 대접까지 받았었다.
그러나 궁예는 순식이 여전히 고을의 주인이라는것을 인정한것은 물론이고 투항이 아니라 순식이 제스스로 련합을 요구한것을 궁예가 받아들였다는 식의
명분을 내세운《항복》을 받아가지고 간것이였다. 내속은 어찌되였든 순식은 세상에 사내로 태여나 눈뜨고는 도저히 못할짓을 하였다고 두고두고 후회했다. 지금은 궁예란 사람에게 기운이
뻗쳐있으니 그와 서뿔리 맞서지 않는게 상책이요 당장은 그와 이웃하여 어울림이 좋으리라 하는 부친의 말에 복종한것이나 그건 정말이지 삭여내기
힘든짓이 틀림없었다. 그까짓 돌탕은 말고라도 일 대 일로 붙어봐도 그따위 중놈 하나 제끼지 못할 내가 아닌데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순식의 머리속을 휘젓고있었다.
어디서 돌멩이 하나 굴러오듯 난데없이 이마빡 한번 내민 놈을 칼질 한번 안해보고 항복이라니 이런 밸빠진짓이 어디 있담.… 마음 한구석에 이런 분한 생각을 늘 품고있는 순식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