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첫닭이 우는 소리에 금필은 깨여났다. 반쯤 열려진 퇴지문밖으로 아직은 어둠이 채 가셔지지 않은 하늘이 내다보였다. 늦여름의 서늘한 새벽바람이 방으로 스며들고있었다.

술희는 아직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져있었다. 이불은 차던져져있고 배꼽도 말짱 드러낸채로였다. 술희의 이불깃을 바로해주고나서 금필은 힘껏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토방마루에 나서서 다시한번 온몸을 비틀었다 폈다. 우지직하고 관절마디들이 튀는 소리가 났다.

뜨락엔 새벽안개가 자오록하게 감돌고있었다.

금필은 어제 저녁 왕건과 마주했던 저녁상을 생각하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천성이 개비위인 술희는 인사차로 마주앉은 왕건에게 저녁상에 술이 오르지 않았다고 트집을 걸었었다. 김이 문문 나는 삼계탕을 들여왔는데 꼭 곁들었어야 할 도깨비장물이 없다는 트집이였다.

왕건은 개의치 않고 술 한동이를 가져오게 했다. 자기는 아직 나이가 차지 않아 술을 삼가한다면서 금필과 술희에게만 제가 부어주었다.

《명망높으신 성주님께서 술을 하지 않으시다니요. 세상에 이보다 더한 웃음거리가 어디 있겠소이까?》

술희는 한껏 비웃으며 술대접을 밀어버렸다.

《나이야 차건 말건 성주님 직함이야 어디 가겠소이까? 가만… 그러니 우리가 성주님하고는 상대가 되지 않는단 말씀이 아니시오?》 《하하하…》

왕건은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금필과 술희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게 아니오라… 나이 스물이 되기 전에는 술을 하지 말라는 부친의 분부가 계셔서 그러하오이다. 자식된 몸으로 부친의 분부를 어찌 어기리까.》

왕건은 아직 스물전이였다. 옛날부터 스무살이 되여야 성년으로 치고 어른대접을 받을수 있게 되여있는 조상전래의 례의를 지금 일러주고있는것이였다. 그래서 스무살 약관의 나이가 될 때까지 겸허하게 사부(개인교사)를 계속 두고있는 왕건이였다.

금필은 슬며시 왕건을 쳐다보았다. 왕건이 무척 돋보이였다.

이 순간 금필은 아버지를 생각했다.

《금필아, 어린 나이에 술을 하는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개의치 말고 받아라.》

10여년전 고향을 뜨기 전날 밤 아버지는 술방구리를 들고 금필에게 손수 술을 부어주었다.

《내가 이제 떠나가면 혹 살아돌아오지 못할수도 있느니라. 그러니 사양말고 받아라. 이 시각부터 너는 어린애가 아니다.》

금필은 아버지가 부어주는 술을 정히 받아들었다. 그 한잔 술에 이제부터 스스로 장래를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분부가 담겨있었다.

금필은 이렇게 때이르게 성년식을 하였던것이다.

금필은 생존해계시는 아버지, 훌륭한 스승이 있는 왕건이 몹시 부러웠다. 그러나 금필에겐 이미 아버지가 없다. 스승이 없는것이였다.

왕건이 생일을 물었을 때 금필은 잠시 주저했다. 정확한 자기 생일을 모르고있었던것이다. 금필이가 자기가 태여난 해도 잘 모르는데는 기구한 사연이 있었다.

금필의 조상은 고구려 말에 다지홀고을의 우두머리였고 그 일대의 군사를 책임진 장수였다. 그 당시 신라와 야합하여 고구려를 무너뜨린 당나라놈들은 신라까지 먹으려 들었다. 신라와의 사전약속에 따르는 대동강이북만이 아니라 그 이남까지 다 요구해나선것이였다.

급해난 신라통치배들은 벌벌 떨기만 할뿐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이 꼴을 보고 고구려사람들이 가만 앉아있지 않았다. 조상대대로 살아온 땅을 외적에게 그냥 빼앗길수는 없는 일이기에 고구려유민들은 궐기했다. 당나라군을 몰아내기 위한 이들의 싸움은 각이한 양상을 띠고 벌어지기 시작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신라군과 보조를 같이하기도 했다. 고구려 마지막왕인 보장왕의 서자 고안승이 그러했다.

그는 고구려장수 검모잠이 남평양성(황해도 장수산성)에서 큰 규모로 항전군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거기로 찾아갔다. 검모잠은 고안승을 반갑게 맞아들이고 곧 고안승을 《고구려국》 임금으로 내세운 다음 신라에 이를 알려 인정케 하는 한편 당나라군을 몰아내는 싸움을 함께 하자고 제의했다.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할 처지인 신라통지배들은 이를 받아물었다. 하여 일시적인 련합이 실현되였다.

당나라군을 몰아내기 위한 고구려유민들의 항전은 고조되였다. 례성강류역의 주민들이 앞장에 섰고 다지홀사람들은 그 최선봉에 섰다.

그 무렵에 고구려장수 고연무도 부대를 이끌고 합류해왔다. 고연무는 고안승으로부터 태대형이라는 벼슬까지 하사받고 기세를 올렸다.

고구려군은 도처에서 당나라군을 짓이겨댔다.

673년 고구려-신라련합군은 서라벌로 공격해 들어오는 당나라군을 맹렬히 들이치기 시작했다. 호로하(림진강)와 왕봉하(한강)계선에서 당나라군을 보기좋게 격퇴하였다.

그러나 그이후부터 형세는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신라통치배들이 당나라조정과의 협상을 운운하며 적극적인 항전을 회피하기 시작한것이였다.

고구려군은 힘에 부쳐 일시 퇴각하게 되였다. 화가 동한 검모잠은 신라군을 따라다니다가 퇴각할바엔 다시 장수산으로 들어가 고구려군민만으로라도 항전을 계속하자고 주장했다. 이때 목숨을 신라에 의탁하기로 결심한 고안승은 비렬하게도 검모잠을 살해하고 서라벌로 도망치고말았다. 검모잠과 뜻을 같이하고 나섰던 금필의 조상도 이때 함께 살해되였다. 검모잠을 잃은 고구려항전군은 제각기 흩어져 소규모전으로 넘어가고말았다. 하여 당나라군을 몰아내는 싸움은 다섯해가 더 지나서야 겨우 끝을 맺게 되였다. 그것도 대동강남쪽까지만 회복한 상태에서였다.

싸움이 일단 멎자 신라조정에서는 고안승을 신라왕의 누이동생과 결혼시키고 김씨성을 주는것으로 그를 매장해버리고말았다.

후《고구려국》의 마지막자취마저 없애버리고만것이였다.

당나라군을 쫓아낸 뒤 고향으로 살아돌아온 고구려사람들의 운명은 비참했다. 가장을 잃은 가족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지였고 마을들은 쑥대밭이 되였다.

금필의 가문도 풍지박산이 났다. 조상을 잃은 금필의 가문은 자취마저 희미해졌다. 간신히 이어져오던 가문의 명줄은 금필의 대에 와서 완전히 끊어질번 하였다. 금필의 어머니가 금필을 낳고 그만 숨이 진것이였다.

금필은 외할머니의 품에서 동냥젖으로 자랐다. 외할머니는 나자바람에 어미를 잃은 피덩이를 안고 이집저집 다니며 어린것을 살려보려고 정신없이 헤덤비다나니 생일이고 뭐고 새겨둘 사이도 없었던것이다.

그 당시 금필의 아버지는 매소물현 관청에서 수비를 서면서 군역에 몸을 담고있었다.

고을경당에서 여는 무술경기에서 갑으로 당선된것이 그만 화근이 되였던것이다. 신라조정에서 전국의 경당들을 돌면서 우수한 사람들을 무작정 군적에 올려 끌어갔던것이다.

신혼살림을 시작한지 반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끌려는 갔지만 그는 남다른 결심을 품고 떠났다.

이왕 군역에 몸을 담을바엔 군사로 솟구쳐보자. 수하에 적잖게 거느릴 때까지 힘을 키우며 기다리느라면 때를 만나고 인물을 만날수 있으리라. 아, 고구려! 고구려를 다시 일으켜세울 위인을 만날수만 있다면 그까짓 군역살이고생이 무슨 대수랴!

그사이 안해가 죽은것도 아들이 태여난것도 모르고있던 그가 이 사실을 안것은 세해가 지난 뒤였다.

그즈음 신라조정에서는 병역년한을 연기하는 법을 내놓았다. 대신 병역살이하는 곳에 처자권속을 둘수있게 해주었다. 일종의 회유였다. 안해를 데려오겠다고 승인을 받고 고향에 와보니 그는 이미 저세상사람이 되였다. 장모만이 죽지 않고 버티고있었다. 장모는 문턱을 넘어서는 사위를 보는 순간 맥없이 눈을 감아버리고말았다. 단지 손자를 살려 유씨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그 하나의 생각으로 지탱해오던 마음의 탕개가 끊어지고만것이였다.

금필의 아버지는 돌아가기를 단념하고 그날부터 어린 아들애를 안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금필이 세살이라고 외우는것을 보고 나이만을 가늠하였을뿐 태여난 날도 모른채…

금필이 여섯살쯤 되는 해에 어떻게 알아냈는지 관청놈들이 끝내 금필의 아버지를 붙잡으러 왔다. 금필의 아버지는 미련없이 그들을 따라나섰다. 금필이 이제는 제발로 걸어다닐수 있게 되였으니 한시름 놓는다면서 치악산 쇠부리터 로인에게 맡기고 간것이였다.

쇠부리터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난 뒤 금필은 다지홀로 되돌아왔다. 고향사람들의 인정이 그리워서였고 태여난 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싶어서였다. 제 손으로 살아가느라 애를 썼으나 어림없었다. 이웃들이 덜어주는 밥술로 끼를 에울 때가 많았다. 가난한 살림들이라 나누는 정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들었다. 성의는 고마왔으나 금필에겐 눈치밥이여서 늘 목이 메군 하였다.

금필은 열다섯에 잡힌 해에 아버지마저 잃었다. 관청의 수비군사를 이끌고 농민폭동군에 합류해 싸우다가 잘못된것이였다.

당시 나라의 곳곳에서는 농민군의 폭동이 자주 일어났다. 이들은 신라조정에 반기를 들고 도처에서 관청을 치고 관리들을 처단했다.

오랜 기간 사람들을 모으고 뜻을 모아온 금필의 아버지도 이에 합류해나섰다가 좌절당한것이였다.

신라관군은 폭동군을 야수적으로 진압했다. 별로 맥을 추지 못하는 관군이였으나 간혹 가다 독을 쓰는 장수가 일을 치는 경우가 있군 하여 금필은 아버지마저 잃은것이였다.

금필은 농민군에 들어간 아버지가 짬을 내여 자기를 찾아왔다가 떠나던 그 작별의 시각에 한 부탁을 잊을수 없었다. 그날 아버지는 자기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어떻게 해서든 지용무를 갖추어 옛 고구려 회복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고 거듭거듭 당부하였다.

그날 밤 아버지는 아들에게 검을 금자에 도울 필자를 써서 금필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검을 금자는 려명을 앞둔 시각을 의미하고 도울 필자는 큰 뜻을 잘 받들라는 의미였다. 단군이래로 번성하던 이땅에 겨레를 구원할 인걸이 꼭 나질것이니 그와 손을 잡고 뜻을 모아 장부의 기개를 한번 떨쳐보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은 이름이였다.

금필은 아버지의 이 부탁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이날까지 살아왔다.

금필에게 능산이나 술희와 같은 형제들이 생기고 왕건과 같이 따르고싶은 인물이 나타난것은 그야말로 행운이 아닐수 없었다.

금필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아버님! 평생의 스승이신 아버님! 이 아들은 아버님의 유언을 절대로 저버리지 않겠나이다.)

왕건과 마주하고 앉은 이 시각에도 금필은 다시금 이런 맹세를 다지고있었다.

《유형은 정말 곡절을 많이도 겪으셨소그려.》

왕건은 진심으로 금필을 위로했다.

《그대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로 호의호식한 귀공자오이다.》

왕건은 연신 머리를 끄덕거렸다.

금필은 왕건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가 다 마음에 들었다. 아직은 첫 대면에 불과하였지만 그에게는 저도 모르게 끌리는, 한사코 따르고싶은 견인력이 있었다.

금필이 이전부터 귀동냥해들어온 항간에 떠도는 왕건의 집안래력도 범상치는 않았다. 고구려의 큰 관료의 후손으로 그의 선대의 본터는 평양성이라는것으로 금필은 알고있었다. 고구려 재건의 뜻을 품고 태백산(백두산)으로 들어가있다가 7대조에 이르러서는 때가 되였다며 부소압(송악북쪽)에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고 하였다. 그때부터 이곳 송악에 터를 닦고 지금껏 번성해오고있다는것이다.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은 송악과 그 린근에서 제일가는 토호였다. 아버지인 왕륭(일명 룡건이라고도 한다.)대에 와서는 조선서해는 물론 중국 당나라 해안에까지 그 세력을 뻗치였다. 장사로 서남해를 주름잡고 삼남의 도읍지들을 메주밟듯 하면서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고 당나라 산동일대의 여러 해안마을들에까지 본거지를 꾸려놓고 줄을 당겼다 늦췄다 하고있었다.

가문의 이만한 재력이면 뒤받침은 걱정이 없는 왕건이였다. 그가 아직은 어른이 아니되였다며 거동을 자제하고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한때일것이였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크게 용을 쓸 재목감이였다.

금필은 이러한 왕건의 웅지를 한번 가늠해볼 생각이 들었다.

《성주님, 성주님과 자리를 같이한 이 저녁상을 저는 일생 잊지 않겠소이다. 믿어보시오이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것이옵니다. 성주님의 뜻을 끝까지 따르겠소이다.》

금필의 말에 왕건의 얼굴이 정숙해졌다.

《그래, 유형은 이 사람의 뜻이 무엇인것 같으시오?》

《전 고구려사람이올시다.》

《나도 고구려사람이요.》

《고구려재건은 이 나라 겨레모두의 소망인줄 아옵니다.》

《나도 그것이 평생의 소망이요.》

웅글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왕건의 눈빛이 일순간 번쩍했다.

번개의 섬광과도 같은 그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금필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면 그럴테지!)

금필은 솟구쳐오르는 열기를 가까스로 참으며 그의 눈빛을 뚫어져라 맞받아 응시했다. 가슴은 금시 터질듯 방망이질을 했다.

《저도 고구려재건을 바라는 사람이온데…그만에야 출신이 신라사람이다보니…》

술희가 분수없이 분위기를 깨고들었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가운덴 신라출신도 많소이다.》

왕건이 빙그레 웃으며 술희를 마주보았다.

《성주님은 그들에게 무어라고 답을 주시오이까?》

술희가 다급히 되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고구려도 신라도 다 같은 단군의 후손이라고 말해주오이다.》

《그렇소이까!》

술희는 벌씬 웃으며 코밑을 훔치였다. 기분이 좋을 때 하는 버릇이였다.

왕건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외람된 생각인지는 모르오나 나는 재건된 고구려로 겨레의 통합을 이루는것을 생의 좌우명으로 삼고있소이다. 이것이 내 인생의 뜻이오이다.》

《성주님!》

금필과 술희는 약속이나 한듯 동시에 부르짖었다.

《됐구나!》

두사람의 얼굴에 희열이 넘쳐올랐다.

그들의 모양을 바라보며 왕건은 머리를 끄덕였다. 빙그레 웃음짓는 그의 눈가에 물기가 서리였다.

방안엔 터질듯싶은 격정이 차고넘쳤다. 하나의 포부로 가슴을 끓이는 젊은이들의 열기앞에서 초불도 기세차게 타오르며 춤을 추었다.

(이젠 됐다. 이 사람과 한생을 함께 하자!)

이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는 금필의 뇌리에 피뜩 능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이 자리에 없는것이 참으로 아쉬웠다.

금필은 왕건에게 능산의 행처를 묻지 않을수 없었다.

《참, 능산이라고 우리 형제 한명이 성주님 슬하에 한발 먼저 찾아온 일이 있겠는데요?》

왕건은 알만 하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있소이다. 그는 어제 쇠두레로 갔소이다.》

《그는 원래 우리와 만난 뒤에 함께 성주님을 뵙자고 약속을 하였더랬소이다. 그리고 우리 셋은 다 성주님 슬하에 있자고 언약을 하였소이다. 》

《나에게도 그 이야기는 했소이다.》

왕건은 궁예의 부탁으로 손탁이 센 군사 서른명을 쇠두레로 보내게 된 사연을 말해주었다.

《능산에 대해선 그쯤 알고계시오. 때가 되면 만나게 될것이요.》 왕건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하지만 금필도 술희도 못마땅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당초의 약속을 집어던지고 제 먼저 왕건을 만나고 또 궁예한테 가다니…

금필이나 술희는 능산이 쇠두레로 자진해간것이 의아쩍기 그지없었다. 그가 몇해전 궁예의 호위병으로 잠시잠간 있은것을 잊지 못해 왕건을 버리고 달아난것이 아닐가?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잠간새에 변할수 있는가? 금필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허나 왕건은 웃기만 할뿐 더이상 말이 없었다.

금필은 능산이 내친바에 궁예도 만나보고 궁예쪽 시선에서 왕건을 좀 더 가늠해보려고 작정한줄을 알수 없었다.

왕건만은 능산의 속심을 짐작하고있었다. 속이 깊고 령리한 능산이 왕건자신과 궁예를 놓고 자기 식으로 두 인끔을 가늠해보려고 하는것임을…

능산은 5년전 금필과 헤여져 북원의 량길부대에 들어간 뒤 때마침 량길부대에 들어온 궁예와 함께 있은적이 있었다. 량길은 궁예를 후하게 대해주면서 어린 능산과 술희를 호위병으로 붙여주었다. 그때 술희는 때없이 주저앉아 곯아떨어지기가 일쑤인데다 더우기는 잘 때 코를 너무 세게 골아 궁예의 노여움을 샀다. 능산은 깔끔한데가 있어 고와하였는데 어느날 옻이 올라 온몸이 무섭게 부어오르면서 앓는통에 그만 궁예와 떨어지게 되였다. 궁예는 능산을 여간만 아쉬워하지 않으면서 행군로상인지라 길옆의 농막에 떨구어주면서도 치료가 끝나면 꼭 자기를 찾아오라고 당부했었다. 술희도 능산의 치료를 핑게로 함께 떨어졌다. 이들이 궁예로부터 떨어져나온 사연은 이러했다.

이런 능산을 궁예가 반가와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궁예에게 간 능산은 그의 남다른 총애를 받게 되였다.

능산은 한동안 궁예밑에 눌러있으면서 또 다른 시각으로 왕건을 료해했다. 하여 궁예를 속속들이 알게 되면서 왕건에 대한 기대가 더 굳어진 사람이 바로 능산이였다.

금필은 능산의 이런 속내를 달포가 지나서야 알게 되였다. 그동안 궁예밑에서 나름대로 가늠할것은 다 가늠해본 뒤에야 능산은 금필에게 자기 속심을 알려왔던것이다. 때를 보아 궁예에게 적당한 구실을 대고 시간을 얻어 송악으로 올라오겠으니 그때 정식으로 식을 올리자고 약속했다. 우리에겐 왕건이밖에 없다, 그러니 그와 사지동거를 맺고 그를 따라야 한다는 제의였다. 금필은 두말없이 찬성했다.

병진(896)년 마지막날 밤.

초불이 무르녹는 왕건의 침실에서 금필의 의형제들은 왕건과 한형제가 되였다. 네명은 각기 자기의 가운데손가락을 깨물어 뽑은 피를 한사발의 술에 풀어 나누어 마신 뒤 맹세했다.

《오늘 이 시각부터 우리 형제는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 목적은 오직 하나, 내 나라 고구려의 재건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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