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 회)
지금의 금필은 한줌의 창자도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5년전의 떠돌이소년이 아니라 례성강중상류대안 아근에서 자기와 지인용을 겨를자가 있으면 나와보라고 소리칠 정도였다. 금필의 이같은 성장은 주인인 우봉령주 송씨의 덕분이라 해야 할것이였다. 금필이 송령주를 처음 만난것은 5년전 례성강 벽란도나루에서였다.
능산이네와 헤여져 고향 다지홀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송령주는 처음부터 금필에게 반했었다. 비록 꿰진 옷을 걸친 행색일망정 뼈대가 굵고 훤칠한 키의 듬직한 체구와 그 어떤 무거운 무게가
실려있는듯싶은 꾹 다문 한일자 입이며 광채도는 눈빛은 송씨의 마음을 대번에 끌어당겼다. 아들이 없는 송씨로서는 이만저만 탐나는 대상이 아니였다.
송령주는 제잡담하고 금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금필은 다지홀에 다시 가야 살갑게 맞아줄 혈붙이도 없는 처지였다. 제 자식 거두기에도 힘이 부친 이웃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었던 금필은 군말없이 송씨의 청을 받아들이였다. 지내본즉 송씨의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다. 본시 총명한 금필은 한해가 지날 때쯤 해서 벌써 웬만한 글자는 제스스로 쓰고 읽었다. 아버지와
함께 산중에 은거해있던 그때에 시작을 떼였던 글공부여서 송씨의 딸이 공부하는것을 시중드는 짬에 어깨너머로, 귀동냥으로 함께 받아쓰고 깨친것이
그에 이른것이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금필은 이미 아버지손탁에서 익힌 주먹치기와 팔매질, 재주넘이따위는 말할것도 없는데다 가병들이 훈련하는것을 따라배워
석달안팎에 그들과 일대일접전쯤은 우습게 해냈고 얼마 지나서부터는 아예 그들을 데리고 노는 정도가 되고말았다. 그도 그럴것이 금필은 이미 아버지와
산중에서 살 때 활쏘기와 칼쓰기, 창쓰기의 기초동작은 배워두었던것이다. 금필의 나이가 열아홉쯤 접어든무렵부터 고을 아무곳에 호랑이가 내려왔다 하면 어김없이 금필에게 도움을 청하여왔다. 그 이듬해부터는 보름이건 한달이건 시간을 허락받고 어디론가 나다니다 와서는 온갖 병쟁기 부리는 솜씨를 펼쳐놓아 송씨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그때 벌써 금필은 주변은 물론 멀리로 벗어나 치악산이며 수양산, 장수산, 구월산까지 찾아다니며 산중에 은거해사는 옛 고구려후손 무인들의
무예를 한수도 빼놓지 않고 배워낸 무사가 되여있었다. 치악산과 장수산은 금필이 아버지와 함께 제일 오래동안 은거해있은 곳으로서 눈감고도 누빌수 있는 곳이였다. 그의 창술, 검술, 궁술,
기마술은 고구려때 정예군사들이 련마했던것을 그대로 옮겨받은것이였다. 그가 옛 평양성터에 갔다온 뒤 고구려장수 연개소문이 지었다는 그 무슨 병법책까지 통달하고있는것을 본 송씨는 그만 두손을 들고말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 병법책이라는것이 《손자병법》을 앞선다는 평을 듣는 그야말로 고금동서에 제일로 치는 병서라 한다는것이였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금필이 기합술까지 소유하고있다고 하였다. 어느핸가 평양성 지나 룡악산의 무사촌에 가서 배워왔다던가. 하여간 검날을 지그시
힘을 주어 휘는것을 보기도 했고 누구네 집 떡판을 주먹으로 간단히 깨여서 다듬어주기까지 했다는것이다. 손바닥 두개 겹친 두께의 소나무판자를
손가락끝으로 찔러 쪼개놓더라는것을 보면 영 거짓말은 아닌것 같았다. 원래는 최면술까지 배우려다가 부정한짓을 할수 있다며 그만두었다던지… 어쨌든 송씨는 금필의 눈부신 성장에 온몸이 오싹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혹시 집안의 화근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구심마저 가지게 되였다.
그러나 약한 놈은 죽고 강한 놈만이 살아남을수 있는 지금의 란세에 금필이같은 장사를 데리고있는것은 다행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송씨는 여직 그를
끼고있는것이였다. 금필이 송씨집안과 사이가 어설퍼지게 된 일은 정말이지 우습게 시작되였다. 망종을 갓 넘긴 지난해에 있은 일이였다. 산과 들에 초록이 짙어져 사냥엔 그닥 좋은 철도 아니건만 송씨는 머리도 쉬울겸 사냥을 간다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지꿎게 졸라 사냥에 따라나왔던 주인의 딸이 하루밤을 풍막에서 자보더니 그만 집으로 먼저 돌아가겠다고 하는통에 결국 금필이 그를
데리고 돌아오게 되였다. 그날 금필은 주인의 딸을 앞세운채 걸음을 재촉하고있었다. 이들이 걷고있는 길 오른쪽은 가파른 절벽이고 왼쪽은
례성강기슭이였다. 마침 썰물때여서 강기슭개펄이 절반나마 드러나있었다. 《어마, 저 고기 좀 봐!》 처녀가 개펄을 가리키고있었다. 팔뚝같은 누치 한마리가 개펄우에서 뒤척이는것이 보이였다. 물곬이 막혀 흘러내려가지 못하고 감탕우에 댕그랗게
올라앉고만것이였다. 누치가 뒤척일 때마다 서쪽으로 기운 해빛에 반사되여 검푸른 등때기와 희읍스름한 배때기가 눈부시게 번쩍거렸다. 처녀는 말에서
내리워달라고 하더니 한걸음, 두걸음 개펄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랑자님! 어찌시려고 그러니이까?》 금필이 다급히 소리쳤건만 처녀는 벌써 신발과 버선을 벗어던지고 바지깃을 무릎까지 걷어올린채 개펄바닥에 맨발을 들여놓고있었다. 한손을 뒤로 흔들어보이는것이 마치 고기가 놀라서 달아날라 소리치지 말라는 시늉 같았다. 금필은 그만에야 얼굴을 돌리고말았다. 아직 한번도 본적이 없는 처녀의 조약돌같이 반들거리는 발꿈치에다 파아란 피줄까지 내비친 희디흰
종다리가 그만 그의 눈뿌리를 자극한때문이였다. 뽀각 뽀각…처녀가 감탕겉층을 디뎌짚는 소리가 금필의 등뒤로 들려왔다. 몇걸음 걸었을가?… 《어마나!》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금필은 급히 머리를 돌렸다. 아뿔싸! 처녀가 감탕속으로 빠져들어가고있었다. 해빛에 드러난쪽 감탕은 웃층이 굳어져 딴딴했지만 얕게나마 물이 고인쪽 감탕은 물러서 흐물흐물했던것이다. (내가 미처 그생각을!…) 금필은 나는듯이 감탕으로 내달았다. 《살려주세요!》 처녀는 새된 소리를 질렀다. 감탕은 벌써 처녀의 허리께를 넘고있었다. 금필은 딴딴한쪽 감탕우에 모로 엎드려 제 몸을 유지하면서 한손으로
처녀의 허리를 그러안았다. 그다음 제 몸을 뒤틀면서 빨려들어가는 처녀의 몸을 끌어올렸다. 언뜻 금필의 몸우에 실렸던 처녀의 몸체가 반대쪽
감탕우에로 털써덕 뉘여졌다. 그 순간 금필은 또한번 두눈을 질끈 감았다. 솜처럼 말근말근한 처녀의 몸이 그의 전신에 눌리운때문이였다. 처녀를
부축여 길가로 나올 때까지 금필은 달아오른 얼굴을 어쩔줄 몰라했다. 그들이 몸매를 수습하고 집에 다달은것은 해시(밤 9시)가 다된무렵이였다.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제 딸이 겪은 봉변을 듣고있던 송씨 마누라의 얼굴이 순간에 컴컴해진것이였다. (다 큰것들이 시퍼런 대낮에 감탕우에서 맞붙어돌아가다니…) 누가 본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이게 될번이나 한 일인가? 고을두령의 외동따님을 하인배나 다름없는 가병총각이 손을 대다니. 아무리 금필이가
자기 집을 지켜주는 파수장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그는 종이나 다름없는 존재인것이다. 송씨의 마누라는 제 딸을 살려준 은인이라는 생각은 감감 잊은채 의심의 가닥만 쳐나가고있었다. 내 딸의 몸을 만지다니. 이게 다 령감이 금필을 아래우없이 대해준탓이다. 그러찮아도 지금 주변에서는 금필과 우리 딸사이가 례사롭지
않다고들 말한다. 돌이켜보면 금필은 이 집에 들어온 날부터 이 집의 가병이였고 구체적으로는 딸의 호위군사였다. 딸이 방에 앉아 글을 읽을 때는 문밖에서
지켰고 잠시라도 밖에 나갈 때는 금필이 그림자처럼 따라서군 했다. 딸의 나이도 이제는 열일곱이다. 과년은 아니되였더라도 혼인기로 말하면 때가 되고도 남은 나이가 아닌가. 금필이 저 녀석은 또 어떤가.
정확히 제 생일은 모른다고 하지만 스물은 넘긴지 오랜 나이다. 그가 정말로 내 딸을 넘보려 든다면 그땐 랑패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송씨 마누라의 얼굴이 꼿꼿해졌다. 며칠이 지나 사냥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마누라는 단도직입 들이댔다. 《금필이 저 사람을 내보내시오이다.》 송두령은 마누라의 말을 들으며 미간을 찌프렸다. 《금필은 내가 아들처럼 여기는 사람이야. 그가 응하기만 했다면 벌써 아들로 삼은지도 오랬겠소. 다시는 그런 말을 입밖에 내지도 마오. 》 으름장을 놓긴 했으나 송씨도 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수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 딸이 금필에게 동하는 날엔… 송씨는 다급해나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고을 령주들에 비해 차지하고있는 땅뙈기로 보나 인가의 수로 보나 군세로 보나 물산의 가지수로 보나 우위에 서지 못하고있었다.
자랑거리가 있다면 오직 하나 고운 딸을 둔것뿐이였다. 그래서 두해전에는 송악성주에게 은근히 제 딸을 비추어 보이였었다. 그도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패서일대(평안도일대)와 해서일대(황해도일대), 경기일대에서 송악성주의 장남인 왕건만큼 뛰여난 인물이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송악으로부터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마치 그런 말이 오고간적도 없는듯이… 한껏 자존심이 상해있는 요즈음에 와서 송씨에게는 한가지 엉뚱한 생각이 갈마들고있었다. 때는 바로 신라의 조정이라는것이 부패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어 나라는 엉망이고 백성들은 매일같이 떼죽음을 당하고있는 시기였다. 곳곳에서는
반기를 든 세력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관청을 치고 백성들도 쳤다. 지방마다 고을마다 한수만 앞서는 식자에 칼만 잘 쓰는 인물이 있다 하면
어김없이 패당을 뭇고 울타리를 치고는 두령이 되고 령주가 되는 시절이였다. 조정의 통치체제라는것이 경주고을에서나 맥을 출뿐 나라에서 내린 관직따위는 상관 않고 고을두령에 령주노릇하며 사는 때가 지금의 이 나라
모습이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의 귀를 따갑게 해주는 한 인물의 소식이 이 우봉땅에도 날아들었다. 궁예란 중이 백성들을 위해 의기를 들었는데
동으로는 명주까지 뻗치고 쇠두레(철원)에 도읍을 정하고나서 이제 이쪽 패서를 정복하러 온다는것이였다. 약한자일수록 강자에게 붙어야 산다는 제나름의 일가견을 지닌 송씨인지라 그의 행보가 누구보다 빠르게 쇠두레로 잇닿았었다. 송씨가 례성강 량안일대에서는 제일선참으로 궁예를 찾아가는 인물이 되는통에 금필도 궁예란 인물을 볼수 있었다. 스스로 제왕인양 자부하는 그
행색에서 그리고 그가 거느린 부하장수들의 오만방자한 일거일동에서 금필은 호감보다는 반감만을 가진채 돌아왔었다. 《불국정토》니 《미륵대제국건설》이니 하는 낱말도 귀설었지만 백성들을 대하는 그의 위선이 문제였다. 쇠두레근방의 백성들은 궁예에 대해 서로 다른 소리를 하였다. 군사들과 밥도 같이 먹고 백성들과 밭김도 맨다는 등…반대로 사람죽이기를 이
잡듯 하더라는 등 알쑹달쑹한 소문뿐이였다. 금필은 송씨를 따라 쇠두레에 갔다온 일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불쾌했다. 그날 송씨는 호피, 산삼 등 고을의 일등가는 물산들을 다섯바리에
나누어싣고 쇠두레로 갔었다. 궁예는 송씨를 선선히 맞아주었다. 그는 마치 임금이 다 된듯싶었다. 궁예의 장수들은 송씨에게 궁예앞에 엎드려 임금에게 하는 절인 고두배를
하게 했다. 그런데도 궁예는 응당 그래야 한다는듯 고개를 끄떡거리고있었다. 금필이 격분한것은 그것뿐이 아니였다. 일행의 갖춤새로 보면 금필은 송씨의 호위장이였다. 송씨가 그래도 한 지방의 령주인것만큼 그를 수행하는 무장인 금필은 응당 일행의
부장인셈이였다. 그러나 궁예의 장수들은 송씨와 금필의 지위따윈 애초에 무시해버리였다. 저녁에 벌어진 주연때도 궁예는 한단 높게 차린 중앙의 상좌에 덩그러니 앉았는데 송씨는 그로부터 열걸음이나 떨어진 뜨락바닥에 멀찍이
앉혀놓았다. 지나가던 걸인을 잠시잠간 들여다 앉힌 꼴이였다. 궁예의 장수들은 좌우로 렬을 지어 한상씩 받고 앉아 흥청대는 반면 금필에게는 주인 송씨의 뒤쪽에 두자너비의 귀떨어진 소반을 댕그라니
놓아주었을뿐이였다. 그런데도 송씨는 머리만 조아리고있었다. 궁예의 장수 하나가 궁예를 대신하여 송씨에 대한 치사를 몇마디 하고 잔을 들자고 하는 때였다. 《이봐라! 우리 령주님 앉을 자리를 다시 보아드려라!》 금필이 목청을 돋구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모두 놀라 금필이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궁예마저 흠칫하며 입으로 가져가던 잔을 멈추었다. 《우리 령주님 앉을 자리를 다시 보아드리라 하지 않느냐!》 재차 울리는 금필의 웨침소리에 궁예네 장수들의 눈빛이 꼿꼿해졌다. 여기가 어디라고 무엄하게 호령질이냐, 저놈을 어떻게 다듬어주어야 좋을가
하는 눈치들이였다. 《우리 령주님은 앉으실 때 반드시 호피 다섯장을 접어깔고 앉으신다. 여기엔 호피가 없는 모양인데 보료라도 내오든가 아니면 우리가 가져온
짐바리에 호피가 있으니 가져오도록 하라.》 모두의 눈이 퀭해졌다. 《아니 이사람, 자네 무슨 호피타령인가. 좀 가만 있지 못하겠나?》 송씨는 금필의 생주정에 몸둘바를 몰라했다. 《우리 어르신과 마주한것만도 감지덕지할터인데 되지 못하게 무슨 자리타발이냐?》 주연의 시작을 알리였던 궁예의 측근장수가 금필에게 호통쳤다. 《주인과 손님사이에 간격이 하도 심하기에 그걸 바로잡자는거요.》 《그대는 주인과 손님사이만 생각하고 웃사람과 아래사람사이는 생각지 않느뇨?》 《주객사이의 례의가 분명치 않은데 우아래 례의는 구태여 가려서 뭘 하겠소!》 《뭣이?》 궁예의 장수가 칼자루를 움켜쥐였다. 웅성거리던 주연장이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아아, 여보게. 손님의 제의를 받아주도록 하게.》 처음부터 금필을 주시해오던 궁예가 측근장수를 제지시켰다. 《호위장수의 요구대로 송령주께 보료를 내다드리시게.》 《아아, 난 이대로가 좋소이다.》 송씨는 몸둘바를 몰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금필은 가져온 보료를 차곡차곡 접어깔고 그우에 송씨를 닁큼 들어 앉혔다. 뒤뚝하게 높아진 자리에
올라앉은 송씨는 더더욱 안절부절하며 쩔쩔맸다. 《자, 그럼 어서들 드십시다.》 궁예는 재미있다는듯 웃어제끼며 제 먼저 잔을 들었다. 그런대로 어색한 분위기속에서 술자리가 익어갈무렵이였다. 아직까지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거리는 환선길을 띠여본 궁예가 그를 눅잦히려는 심산인듯
송령주에게 넌지시 말머리를 돌리였다. 《송령주께선 호위부장 하난 정말 잘 두셨소.》 궁예의 칭찬에 송씨는 몸을 옹송그렸다. 《어찌 어르신 슬하의 장수들에 비하겠소이까.》 《부럽소그려. 저 장수를 나에게 주지 않으시려오?》 《예?…》 궁예의 말에 송씨는 목을 움츠렸다. 복종을 표하러 왔다가 막심한 피해를 보게 된것이였다. 송씨가 갑자르기만 하고있을 때 금필의 목소리가 또 울렸다. 《난 우리 주인님과 떨어지면 안되옵나이다.》 《으응?》 궁예의 한쪽눈섭이 꿈틀했다. 《그대는 내가 싫은가?》 금필은 궁예가 정말로 싫었다. 그렇다고 면전에서 그대로 내뱉기도 멋적어 금필은 듣기좋게 둘러댔다. 《우리 주인님이 여기로 오신것은 복종의 뜻을 표하기 위함이고 나역시 어르신의 슬하가 된 몸인데 부디 여기에 떨어지지 않은들 내 처지가
달리되는것도 아니지 않사오니까?》 궁예는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실은 그렇구나. 그대도 이젠 내 사람이나 같으니까. 우봉의 군세가 너무 허술해져도
아니되는것이고…그렇지 않소, 송령주?》 아쉽기는 하나 포기한다는 뜻이였다. 이때 궁예의 심복 하나가 속살거렸다. 《저 송령주에게 보기드문 절색의 딸자식이 하나 있다 하니 그를 취하심이 어떠하신지.…》 《그러니 나더러 송령주의 딸을?!…당치않은 말이요. 미륵정토를 세우려는 나에게 그 무슨 망령된 요구시오?》 궁예는 단번에 면박을 주었다. 허나 이 순간 송씨는 궁예의 얼굴을 잽싸게 훔쳐보았다. 자기가 속으로 은근히 바라고 계획해나가던 일이였기때문이였다. 금필은 하마트면 궁예의 직속부하로 될번 하였던것을 단호히 거절하고 돌아섬으로써 후날 궁예와 운명을 함께 하는 비운을 당하지 않게 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