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회)
1. 송악에 모이다
계곡으로 질러나간 달구지길로 두필의 말이 줄달음을 놓고있었다.
하나는 진누런 공골말이고 다른 하나는 검은 가라말이였다.
말우에는 각기 무사풍의 두 젊은 사나이가 타고있었다. 공골말을 탄 사나이는 키가 큰편인데 등에다 칼을 두개나 포개여멘것이 쌍검도를 잘하는 모양이였다.
배허벅에 두뼘짜리 쇠막대를 찌른 간편한 차림새의 가라말을 탄 사나이는 편곤(쇠도리깨나 철퇴따위로 하는 무술의 일종)에 능한듯싶었다. 아니면 한창 배우는중이라 멋으로 차고다니는지…그만큼 그는 애돼보였다.
날씨는 무더웠다. 하늘도 땅도 뙤약볕에 단 가마속 같았다.
그런데도 둘은 길을 축내는데만 열성이였다. 퍼그나 먼길을 달린듯 말도 사람도 땀줄기로 얼룩져있었다.
한본새로 계곡을 누벼가던 두 사나이가 웬일인지 주춤 멎어섰다.
길옆에 박혀있는 지경돌을 본것이였다.
《이제부턴 송악땅이군요.》 애돼보이는 사나이의 말이였다.
《한숨 돌리고 가지 않으련? 슬쩍 끼얹고 가자.》
키 큰 사나이가 가리키는 길아래켠에 계곡개울을 건성으로 막아 만든 물웅뎅이가 보이였다.
《좋아요. 》
약속이 되자 둘은 길아래켠으로 미끄러져내려갔다.
얼핏 웃도리만 적시자던것 같더니 급기야 아래도리까지 벗어제꼈다.
말들까지 물에 몰아넣고나자 둘은 세월은 가든말든 알바 아닌듯 물장구질에만 정신을 팔았다. 그러다나니 개울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인기척도 느끼지 못하였다.
《너희들은 누구냐?》
웬 두억시니 하나가 물가에 버티고 서서 뇌까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둘은 정신을 수습했다.
《 ?…》
《뭘 하고들 있냐 말이야?》
재차 날아오는 호통질에 애돼보이는 사내의 눈쌀이 찌프러졌다.
《보면 모르겠소?》
별 싱검둥이 다 보겠네, 미역감는걸 몰라서 묻나? 하는 투였다. 하긴 알몸으로 물속에 앉아있는 저희들을 말짱히 내려다보는데는 화가 날만도 하였다.
《공손히 물러가시오. 괜히…》
애된 사내가 제법 으름장을 놓았다.
두억시니같은 군졸이 발을 굴렀다.
《우에서 물을 흐려놓고도 큰 소리야? 봐라! 우리 어르신이 금방 물에 들어서다말고 이쪽을 보고있잖아?》
군졸이 가리키는 개울아래쪽을 얼핏 보니 절반나마 아래도리를 까제낀채 엉거주춤 서있는 사람이 하나 보이였다.
그뒤로 길우에 그냥 멈추어서있는 말이며 군사들도 잇달아 보이였다.
《거기 어르신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요? 그렇게 노할것이면 그쪽에서 먼저 웃쪽을 차지하실것이지, 왜?》
《이‥이놈이?…》
군졸은 애숭이한테 훈계를 당하자 기가 막힌듯 두눈만 떼룩거렸다.
《가서 어르신 일보라고 하시우. 형님, 우린 그만 일어섭시다.》 애숭이는 할말 다했다는듯 사채기를 가린채 불쑥 일어섰다.
《안될 소리, 귀잡고 절하기 전엔 아무데도 가지 못해.》
군졸은 어망결에 이들의 옷가지를 주어들고는 야료를 부릴 잡도리를 하고있었다.
귀잡고 절을 하라구? 그러니 아래도리를 보이라는 수작 아니야? 거기를?! 아이고, 까무러치겠네.
보매 애숭이라고 여간 깔보고 접어드는 자세가 아니였다.
그때까지 얼굴만 물밖으로 내놓은채 병졸의 거동을 지켜보던 키 큰 젊은이가 한마디 점잖게 하였다.
《옷 놓고 물러가시오, 괜히 머리가 돌려지리다.》
《너도 어서 나와 절을 해. 겨우 솜털이나 난것들이 내우하긴.》
군졸은 이쪽 젊은이도 애숭이로 아는 모양이였다.
《뭐, 솜털?…》
애숭이사내는 얼결에 제 아래께를 내려다보았다.
솜털이라니, 두손바닥으로도 다 가리우지 못해 숫밤송이 가시마냥 내뻗친것이 보이는데 솜털이라구? 안되겠고나!
《형님, 어떡할가요?》
《네 생각대로.》
《하오면…》 애숭이사내는 즉시에 몸을 솟구쳤다.
《그럼 솜털맛 좀 보소.》
절버덕! 물차는 소리가 나더니 이어 야료하던 군졸이 빙그르 돌아 물웅뎅이에 처박혔다.
첨버덩! 소리와 함께 군졸의 웃몸뚱이는 간곳 없고 두다리만이 물밖에서 버둥거렸다.
《찬물 먹고 정신차리소.》
병졸이 물속에 거꾸로 박혔던 몸을 바로하는 사이에 두 젊은이는 벌써 옷을 찾아 꿰지르고 쌍검도며 쇠막대며를 점검하고는 말을 끌고 길우로 올라섰다.
이쯤 되자 개울아래쪽이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놈들을 당장 잡아 묶어라!》
누군가가 소리치자 길우에 서있던 군졸들이 창을 꼬나들며 다가들었다.
《형님! 이거 좀 놀아주다 가야 할가보군요.》
《오래 끌것 없다. 겨우 열둘이야.》
《그럼 형님은 구경이나 하시우.》
《저 개울가에 서있는 어르신은 내가 맡으마.》
《알겠어요. 》
몇마디 주고받는 사이에 군졸들은 벌써 두 사나이를 에워쌌다. 그리고는 앞뒤 옆구리로 창격을 가해왔다.
《요것들이 어디 놈들일가? 쇠두레군사를 우습게 아는가본데…퉤!》
오장격의 군졸이 손바닥에 침을 뱉아 비비더니 한발 앞서나와 접어들었다. 그러자 나머지것들은 눈치있게 벌려섰다가 다시 에워싸며 조여들었다. 마치 송사리를 가두어잡는 고기잡이군들 같았다.
그만에야 꼼짝없이 잡혔다싶은 순간 둘은 공 튀듯 솟구쳐올랐다.
형되는 사내는 아예 군졸들의 머리우를 날아넘어 개울가로 떨어져내렸다.
그 모양을 퀭해서 바라보던 군졸들은 머리우에서 깔깔거리는 애숭이사내를 보자 그만에 몸들이 굳어져버렸다. 동생되는 사내가 오장격의 군졸의 창대우에 두손을 짚은채 거꾸로 서서 웃음보를 터뜨리며 재롱을 떨고있는것이였다.
《요런 암통스러운 놈 봤나?》
약이 오른 군졸이 창대를 이리저리 휘젓다가 그만 콱 놓아버렸다.
그럴줄은 예견 못한듯 애숭이는 순간에 내리쏠리는 몸무게를 주체하지 못한채 그만 땅바닥에 코를 박으며 엎어지고말았다.
《왓하하!》
폭소가 터졌다.
《거 손대볼나위도 없는 애였군.》
군졸이 시까스르자 애숭이의 눈자위가 뒤집힐듯 치켜졌다.
《안할 말씀을!》
휘익! 바람소리와 함께 애숭이는 다시한번 튀여오르며 어느새 뽑아든 쇠막대로 군졸의 이마노리께를 내리쳤다. 딱 소리와 함께 이죽거리던 군졸은 아이쿠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싸쥐고 나딩굴었다.
《?!…》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광경에 모두가 눈들이 떼꾼해졌다.
《그만해라, 아우야!》 그쯤하면 되였다는듯 제 아우를 제지시키고난 이쪽 키 큰 사나이는《그대들이 쇠두레군사들이라니 이만하겠소만 알몸으로 물속에 든 사람을 조롱한것은 잘못되였소. 가만 보니 내 당신네 어르신을 모르는바 아니여서 만나보고 가겠으니 점잖게들 서있소.》 하고는 강가로 스적스적 내려갔다.
그러자 나를 안다니 어떤 놈인가 하는 표정으로 키 큰 사나이를 뚫어져라 쏘아보던 어르신의 두눈이 말눈깔모양으로 커지였다.
《이게 누군가?…우봉령주 송씨댁 무장이 아닌가?》
몇번 두눈을 슴뻑이던 그는 다시금 되물었다.
《이름이 유…금필이라고 한것 같은데…》
《그렇소. 우봉사람 유금필이요.》
《음…》 신음소리 비슷이 내뱉은 그는 이번엔 아우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쪽도 낯이 익다. 가만…너 북원에 있던 술희가 아니야? 드렁코 박술희!》
《아니, 이게 환선길두령님이 아니오이까? 잠보 박술희 문안드리옵니다. 》
《몰라보겠고나. 그사이 어디 가있었느냐?》
《산귀신 술희 갈데가 있소이까. 이산저산 산돌이를 했소이다.》
《그랬었구나. 헌데 지금 어디 가는 길이냐?》
《송악으로 갑니다.》
《송악으론 왜?…》
《송악성주의 슬하에 들가 해서요.》
술희로 불리운 애젊은 사나이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둘이 같이?!》
《예. 》
《금필무장은 무슨 연유로 우봉령주와 리별했다는거요?》
《그럴 사정이 좀 있어서요.》
《거 참 모를 일이군…참, 술희는 쇠두레로 갈 생각이 없나? 그곳에 선종께서 자리잡고계신줄 알테지?!》
환선길은 술희쪽에만 관심을 두는듯 또 물었다.
《저야 코를 너무 골아 늘 선종님의 핀잔을 사지 않았소이까. 불편하게 해드리고싶지 않소이다.》
《그때야 한천막안에 들었으니 그렇지. 지금은 사정이 달라. 이제 천하를 굽어보는 대왕님이 되실거네. 가면 긴히 써줄터인데…》
《전 지금 이대로가 더 좋소이다.》
《하기야 송악도 이제는 선종의 관할이니까…아무랬든 매일반이지.》
환선길의 횡설수설에 두 사나이의 얼굴이 대번에 흐려졌다.
환선길은 이들의 기분에는 아랑곳 않고 계속 입을 놀렸다.
《참, 술희도 능산을 알테지?》
《 그런데요?》
《능산이 쇠두레로 갔어. 선종을 모시고있게 됐지.》
《능산형이 쇠두레로요?…》
술희는 어안이 벙벙해서 굳어졌다.
《왜 그러나? 내 지금 송악을 거쳐서 오는 길이네. 내 청을 능산이가 쾌히 수락했어. 송악성주에겐 내가 량해를 구했지. 그가 능산을 놓아주기 아쉬워는 했지만…선종의 령이라니 생각을 돌리더군. 쇠두레내군을 보강하는데 인재를 아끼지 말라는 선종의 령을 따를수밖에.》
《?!…》
술희는 망연자실해서 금필을 마주보기만 할뿐 다른 말을 못하였다.
《그럼 잘 가게. 난 우봉에 잠간 다녀올 일이 있어서…》
환선길은 떠나갔다.
《능산형이 쇠두레로 가다니요? 우리와 한 약속을 하루밤새 뒤집을수가 없겠는데?…》
《글쎄말이다. …》
금필은 지금 돌덩이를 삼킨 기분이였다.
《저 환선길이가 금시 거짓말을 지어낸게 아닐가요?》
술희는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술희 자기의 머리를 휘저어놓느라고 거짓소리를 하는줄로만 여기는듯싶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였다.
능산과 금필, 술희는 5년전 매소물(인천)에서 만나 앞날을 함께 하기로 언약한 의형제들이였다. 송악의 젊은 성주 왕건을 찾아가기로 의논을 몰아간것도 능산이였다. 능산이 술희에게 금필을 데려오라 이르고 저는 한발 먼저 송악에 들어가 기다리겠다고 한것이 바로 어제 그제 일이였다. 그런데 그가 금필이나 술희와는 만나지도 않고 의논도 없이 쇠두레로 갔던것이다.
세상에 이런 배반도 있는가? 금필도 술희도 아직은 그 까닭을 알수가 없었다.
환선길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왕건은 만난것 같았다. 하다면 무슨 쪼간이 있는것이 분명하였다.
《빨리 갑시다. 송악에 가서 왕건을 만나보면 그 속내를 알게 아니나요?》
술희의 독촉이였다.
《그러자. 》
금필은 말의 배허벅을 힘껏 내질렀다.
둘은 번거로운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급속으로 말을 때려몰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