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제 1 편
달 비
제 4 장
김일환이 《숙반》의 호출을 받은것은 그로부터 한달이 지나서였다.
리계순이 남편에 대한 사랑과 정성과 긍지와 자부를 안고 오가던 길을 일환은 근엄한 표정으로 걷고있었다.
(끝내… 그것이 오고야말았구나…)
김일환은 크게 심호흡을 한번 했다. 주먹을 꽉 부르쥐였다. 함께 일하며 정들었던 로동자들과는 후에 다시 만나자고 웃으면서 헤여졌지만 일환은 이 길이 마지막길로 되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찬바람이 우수수 불어왔다. 락엽이 날렸다.
김일환은 성큼성큼 바람을 맞받아 걸었다. 전장으로 나가는듯 한 심정이였다.
집에 들렸다가려고 웃마을쪽으로 가는데 연자방아가 있는 곳에서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흰 무명수건을 머리에 쓴 안해가 고리버들로 결어만든 키로 쏴 좌르르쏴 좌르르 하며 낟알을 까불리고있었다.
김일환은 그 자리에 서서 물끄러미 안해를 쳐다보았다. 자기가 조직부장을 할 때나 현당서기를 할 때나 또 해임되여 구국군공작을 할 때나 탄광에 나가 로동자들과 함께 갱에 들어가 일할 때나 변함없이 낯색 한번 흐리지 않고 오히려 이 남편의 마음속에 그늘이 질세라 늘 생글생글 웃으면서 충실하게 받들어주고 떠밀어준 고맙고도 미더운 안해…
문득 결혼해서 불과 몇달 되지도 않았을 때 저 안해가 룡정으로 가겠다고 자진해나서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일환의 눈을 지진것은 짧게 자른, 어깨에 닿을가말가한 중발머리였다. 그것이 가슴을 불처럼 달구었었다. 언제 어느 시각에 잘못될지 모르는, 독기어린 눈들이 골목마다에서 지키는 위험천만한 적구로 떠나면서도 생긋 웃으며 《…누가 그러던데 신혼부부도 좀 떨어져 살다가 만나야 더 정이 든대요. 그래야 더 깨가 쏟아지구… 호호호.》하고 어머니를 위안하던 안해… 그 어떤 고난과 시련앞에서도 오늘보다 래일을 내다보며 락천적으로 언제나 웃으면서 자신있게 살아가는 사람, 기지있고 지혜롭고 명랑하고… 저 사람에게는 애당초 우울과 비관과 고민과 같은 어두운 그늘이 비껴들지 못할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내가 죽으면 저 사람은…
갑자기 가슴속에서 격한 그 무엇이 욱 치밀어오른다. 격해질대로 격해진다.
두해전 가을 그처럼 사랑하던 오빠가 희생되였다는 비보를 듣고 쓰러졌던 일이 떠올랐던것이다.
저런 불같은 사람일수록 그런 비보로 하여 받는 심리적타격은 더욱 큰 법이다. 그걸 참고 이겨내기 위해 남들보다 몇배로 더 모지름을 쓴다. 끝내는 슬픔을 딛고 일떠서지만 그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남몰래 삼켜야 하는지 여느 사람들은 다는 모를것이다.
일환은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지난봄 어느날 밭을 갈다가 최뚝에 앉아 이제 태여날 새 생명을 두고 밝은 미래를 꿈꾸던 일이 떠오르며 목까지 꽉 메여왔다. 숨이 막혔다.
김일환은 돌덩이같이 땅땅한 그것을 주먹을 부르쥐며 애써 넘겼다.
그렇다, 그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무엇을 주저하랴. 무엇을 서슴으랴. 혁명이란 결국은 미래를 위한것이다. 지금껏 혁명에 모든것을 다 바쳐온것처럼 이제 남은 생도 오직 혁명에 리롭게만 바쳐갈것이다. 안해도 그렇게 살것이다.
김일환은 성큼성큼 안해에게로 다가갔다.
안해는 키를 연자방아밑 돌턱에 대고 날랜 솜씨로 으깨여진 수수쌀을 그러담는다. 그리고는 얼른 쪼그리고앉아 또다시 쏴 쫘르르― 하고 키질을 한다. 으깨여진 수수알들이 허공중에 떴다가 떨어져내리며 껍데기와 북데기, 먼지들을 불어버린다.
《여보!》
일환은 가까이 다가서며 나직이 불렀다. 수수쌀을 까불리던 계순이 얼핏 돌아보더니 방싯 웃었다. 눈언저리부터 웃는 정겨운 그 모습…
《아이, 당신이군요. 언제 오셨어요?》
《방금 오는 길이요.》
《그런걸 난 또… 이 수수로 뭘 좀 만들어가지고 당신을 찾아가려댔어요.》
《당신두 참… 어머님은 무고하시오?》
《예, 이 수수도 어머님이 얻어오셨어요. 저 덕산오빠네랑 영순오빠네랑… 그 집들에서 보태주었어요.》
김일환은 가슴이 뭉클해왔다. 그도 여기 근거지 식량형편이 지금 얼마나 어려워졌는가 하는것을 알고있었다. 어랑촌, 왕우구, 삼도만의 주민들 수천명이 이 좁은 처창즈골안에 모여들다보니 지금이 마가을인데도 벌써부터 송기를 벗기는 집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저 고동하로 흘러가는 내물은 송기를 어찌나 우려내였는지 피빛처럼 벌거우리하다. 무서운 기아를 예감하면서도 고마운 사람들은 이렇게 한줌두줌 수수쌀을 모아준다. 일환은 그것이 저 임신을 한 안해를 위한것임을 알고있다. 그러나 안해는 그것으로 이 남편을 위해 음식들을 만들어오군 하는것이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눈물나게 고마운 안해였다.
일환은 쩡―하니 코안이 매워오고 눈부리가 시큰해져서 갈린 어조로 말했다.
《자, 어서 집에 올라갑시다. 내 급히 할말이 있어서 그러오.》
계순은 남편의 어조와 낯빛에서 심상치 않은 기미를 느낀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윽히 남편을 올려다보다가 다 까불린 수수쌀을 자루에 넣었다. 한되가 좀 넘을가한 량이였다.
계순은 그 자루를 키에 담아 옆구리에 끼였다. 남편과 나란히 걷다가 조심히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숙반〉지도부의 호출을 받았소.》
일환은 범상한듯 한 어조로 말했지만 계순은 벼락이라도 친듯 와뜰 놀라며 남편을 쳐다보았다.
《뭐… 뭐라구요? 〈숙…숙반〉의?…》
너무도 끔찍한 말이여서 떠듬떠듬하다가 종내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조차 못한다.
《그렇소. 〈숙반〉의 호출이요.》
계순은 경악한 눈길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푸들푸들 떨면서 더 말을 못한다.
《자, 어서 갑시다.》
일환은 흔연히 안해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계순은 온몸의 피가 발끝으로 다 새여버린듯 맥없이 스르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숙반》의 호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있는 계순이였다. 계순의 옆구리에서 수수쌀자루를 담은 키가 저절로 떨어졌다.
계순은 두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자기도 모르게 흐으흑 소리내며 어깨를 떨기 시작했다.
점점 세차게 떨고있는 안해의 어깨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일환이 나무라듯 독촉했다.
《남들이 보겠소. 어서 갑시다.》
김일환은 안해를 데리고 집에 올라오자 어머니도 앉은 자리에서 조용한 어조로 안해에게 말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오. 내가 일본놈의 주구단체인 〈민생단〉과 관련이 없다는건 세상이 다 알것이요. 하지만 난 이제 가면 살아나지 못할것이요. 그러나 나는 떳떳이 가겠소. 그것은 내가 혁명가의 절개를 끝까지 지키다가 이곳에서 〈민생단〉으로 몰려 죽는것이 오히려 타당하다고 생각하기때문이요. 만약 내가 살기를 원하여 적에게 투항하여 변절한다면 혁명에 더 큰 손실을 줄게 아니겠소. 이렇게 되면 혁명을 배반한 나의 죄악은 천추만대에 씻을수 없게 될것이요.
마지막으로 내가 부탁할것은 온 가족이 우리 나라가 해방되고 독립되는 날까지 변치 말고 잘 싸워달라는 그것뿐이요.》
김일환은 그길로 《숙반》지도부로 갔다.
리억만이네들은 김일환을 《민생단》감옥에 가두고 별의별 고문을 다 들이댔다. 김일환은 그것들이 내드는 《자료》들을 하나하나 까밝히며 맞서싸웠다. 뒤가 켕기우자 그것들은 《민생단》이라고 자백하라는 그 한마디만 뇌까리며 리성을 잃고 발광했다. 자기의 추행을 다 알고 추궁까지 한데 대한 무자비한 복수였다. 그렇게 실컷 독이 요동치는대로 분풀이를 하고는 재판장에 끌어냈다.
김일환에 대한 재판소식은 그가 가서 공작을 하던 이웃마을의 손장산 반일부대에도 알려졌다. 그곳에는 김일환이 대신 박덕산이가 가서 공작하고있었다.
《그 형님같은분이, 그 선생같은분이 〈민생단〉이라니 도대체 웬말인가.》
덕산은 물론 반일부대 대원들까지 재판장으로 달려왔다. 어떻게, 뭐라고 재판하는가 보자며 든든히 틀고앉았다.
아닌게아니라 리억만의 악의에 찬 론고는 온통 허위와 날조로 차있었다. 그의 입에서는 침방울이 마구 튀여나왔다.
《이자는 반동치고도 아주 지독한 반동이다. 오래동안 심문했으나 한마디도 불지 않았다. 속에 구렝이가 있는지 독사가 있는지 알수가 없다. 이런 놈들을 그냥 살려두면 우리 혁명이 10년안팎에 넝마쪼각처럼 거덜날수 있다. 살려야겠는가 죽여야겠는가?》
여기저기서 놀란 소리들이 튀여나왔다. 온몸이 찢기고 피투성이가 된, 입은 옷이 성한 곳이란 하나도 없이 된 김일환의 모습을 억이 막혀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아니, 저런 사람들까지 죽이면 혁명은 어떻게 한다는거요?》 소리들이 점점 커진다. 밤바다처럼 움씰움씰 설레인다, 분화구를 찾지 못해 끓어번지며 소용도는 용암처럼… 심상치 않은 기미를 느낀듯 리억만이 서둘러 종이장 같은것을 펼쳐들고 뇌까렸다.
《이런 〈민생단〉우두머리는 절대로 살려둘수 없다. 판결문을 읽겠다. 에, 〈숙반공작위원회〉는 〈민생단〉우두머리 김일환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순간 쩡― 하고 장내를 얼구는 정적… 정적…
계순은 억이 막혔다. 눈앞에서 별찌같은것이 막 떠다녔다. 사형이라니… 저것들이 끝내 저이를… 심장이 통채로 떨어져내리는듯 해서 계순은 가슴을 주먹으로 꽉 눌러대며 리억만을 쏘아보았다. 저자는 왜 아까운 사람들을 마구 잡아죽이는가, 정말 《민생단》이라고 믿어서인가 아니면 단순히 직위욕, 권세욕때문인가? 이것은 분명 왜놈들의 간계이다, 저 리억만이가 왜놈들과 내통하는건 아닐가? 왜놈들은 무력으로는 혁명을 말살할수 없으니 이런 악랄한 간계를 꾸미고있는것이 분명하다, 교활하고 악착한 왜놈들이 무슨짓인들 꾸며내지 못하겠는가, 천추에 용서 못할 오랑캐놈들…
왜놈들의 간계에 놀아나는 저 우둔하고 무지막지한 리억만이네들은 또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사랑하는 남편을 죽이려드는 왜놈들과 리억만이네들에 대한 참을수 없는 분노와 증오가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갑자기 남편이 껄껄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순은 놀란 눈길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두팔을 묶이운 남편은 리억만이네는 상대도 안된다는듯 고개를 돌리고 웃고있는것이다.
《여러분, 겨울이 아무리 사납다 해도 봄이 오는것은 막지 못하는 법입니다. 력사는 반드시 흑백을 갈라줄것입니다. 오늘의 이 현실에 신심을 잃지 말고 동요하지 마십시오. 래일을 내다보며 억세게 싸워주십시오. 장군님께서 계시는 한 조선은 반드시 독립됩니다.》
쿵쿵쿵 남편의 말은 계순의 흉벽을 북처럼 두드렸다. 그것은 남편이 바로 계순이 자기에게 하는 말이였다.
리억만이 게거품을 물고 소리쳤다.
《야, 빨리 사형판결… 집행하라, 총살하라!》
《그래선 안되오.》, 《안되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났다. 리계순은 놀랐다. 《악질 민생단》을 비호했다간 자기들도 《민생단》으로 몰린다는것을 잘 알면서도 불의를 참지 못해 일떠서는 사람들… 눈물이 쑥 나왔다. 재판장한가운데 틀고앉았던 반일부대 대원들도 일어났다. 키가 억대우같은 한 대원은 앞으로 씨엉씨엉 걸어나가더니 총구를 리억만의 턱밑에 들이댔다.
《야, 네놈은 뭐야. 네가 진짜〈민생단〉이 아니야? 김일환선생을 왜 죽이려 하는가. 그분은 우리의 선생이고 은인이다. 내가 앓아죽게 되였을 때 전염병이라고 다들 가까이 오기 꺼려했지만 저분만이 약을 가져다 치료해주었다. 사흘밤을 내 머리맡에서 꼬박 밝히면서 나를 살려주었어. 내가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면 좋은가고 하니 저분은 내 손을 꼭 잡고 그저 건강해서 왜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낼 때까지 유격대와 함께 싸우는것이 보답하는거라고 했다. 저런 혁명가가 〈민생단〉이라면 도대체 〈민생단〉이 아닌 사람이 누구인가. 김일환선생은 우리가 보증한다. 총살형을 취소하지 않으면 네놈부터 가만두지 않을테다.》
《옳소. 그놈이 진짜〈민생단〉이요. 왜놈의 개요.》
《김일환형님을 손가락 하나라도 다쳐만 봐라. 네놈들을 몽땅 요정낼테다.》
계순은 눈앞이 뿌예지고 목이 자꾸 메여올랐다.
한 반일부대 대원은 절컥 장탄까지 한 총을 앞으로 내뻗쳤다. 리억만을 향해 한걸음 다가섰다.
《어느 놈이냐. 네가 〈민생단〉이야? 당장 나서라. 개처럼 쏴죽일테다.》
《아… 아, 이러지들 마시오. 취소요, 사형은 취소요.》
리억만은 두손을 내저으며 제발 자중해달라고 애원했다. 얼굴이 새까맣게 질려 뒤걸음질쳤다.
김일환은 구원되였다. 마을사람들과 반일부대 대원들은 김일환을 옹위하여 집에까지 데려다주었다.
리계순은 사람들에게 목메여 말했다.
《정말 고마와요.》
반일부대 대원들과 함께 왔던 박덕산이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건 우리한테 할 말이 아니요. 일환동지가 평시에 사람들과의 사업을 잘했기때문이요. 친혈육처럼 돌봐주고 깨우쳐주고… 반일부대에도 일환동지를 형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오. 선생님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많고… 일환동지를 잘 치료해주오. 그것들이 다시는 〈재판〉놀음을 벌리지 못할게요.》
그들이 돌아가자 계순은 시어머니와 함께 상처를 씻어낼 물을 덥힌다, 어혈에 좋다는 약을 구해온다 하며 뛰여다녔다. 더운물에 소금을 풀어 상처부위를 깨끗이 씻어내고는 유격구병원에서 얻어온 고려약을 붙였다.
남편은 그렇게 험한 상처를 다루는데도 신음소리 한번 없었다. 벽에 기대앉아 눈을 감은채 얼굴 한번 찡그리지도 않는다. 꼭 잠에 든것 같다.
계순은 피범벅이 되고 너덜너덜 찢겨진 남편의 옷을 빨아 아궁의 불에 말리웠다. 가슴이 무딘칼로 허벼내는듯 쓰리고 아파 아궁앞에서 소리없이 울었다. 옷이 마르자 방안에 올라가 단추 두개와 바느실을 가지고 내려왔다. 자꾸만 눈물이 나와 방안이 아니라 남편이 보지 못하는 아궁앞에서 단추를 달고 옷을 기우려는것이였다. 찢겨진 옷을 한뜸두뜸 깁노라니 이 자리로 남편의 그 귀중한 몸에 매가 날아들었으리라 생각되면서 손이 떨렸다. 또다시 눈이 쓰려왔다. 손등으로 눈굽을 훔치는데 밖에서 찾는 소리가 났다.
《누구예요?》
옷을 다 깁고 단추를 달던 계순은 의아해서 부엌문을 열었다. 순간 계순은 몸을 흠칫했다. 문밖에는 키가 작달막하고 턱에 수염이 더부룩하게 난 텁석부리사나이가 서있었다. 《숙반》에 다니는자였다.
《어떻게… 왔어요?》
계순의 목소리가 맵짜졌다.
그자는 잠시 쭈밋거리다가 어물어물 말했다.
《〈숙반〉에서 찾수다. 재판은 잘못되였다고 했수다. 그래서 문건을 다시 정리하다가 급히 확인해야 할것이 있어서… 제꺽 왔다가라고 하우다. 잠간이면 된다면서… 지금 사람들이 기다리고있수다.》
계순은 가슴이 서늘해왔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자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방금 잠드셨는데… 래일 아침에 가면 안되겠어요? 옷도 이렇게 한창 깁던중인데…》
그자는 대뜸 큰일이나 난듯 눈을 뜨부럭거리며 언성을 높였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우? 〈숙반〉에서 지시하는 일인데…》
지금은 《숙반》지도부가 근거지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있었다.
지도부의 말은 곧 《법》이였다. 금방 잠에 들었던듯싶던 남편이 《음―》 하고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무슨 일이요?》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저 좀…》
계순이 서둘러 말을 얼버무리며 텁석부리를 밖으로 떠밀려는데 그자가 먼저 말했다.
《〈숙반〉에서 잠간 왔다가라우다. 제꺽 확인할것이 있다면서…》
《〈숙반〉?》
남편은 그자를 쳐다보며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움쩍 몸을 일으켰다.
《갑시다.》
계순은 그 순간 번개같이 뇌리를 치는 한 생각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자들이 혹시?…
남편이 아직 문가에 서있는 계순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서 옷을 주오.》
계순은 또다시 몸을 떨며 옷을 꽉 그러안았다.
《안돼요. 가선 안돼요. 못 가요.》
웃목에 쪼그리고 누웠던 오옥경이 벌떡 일어나앉으며 두손으로 머리를 비다듬어 넘겼다.
《못 간다. 정 그렇다면 내가 갔다오마.》
《숙반》에서 온 텁석부리가 퉁방울눈을 또다시 뜨부럭거렸다.
《이거 왜들 이러시우? 급히 확인할게 있다는데… 〈숙반〉지도부사업을 방해하려는거요?》
《동문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김일환은 무엇인가 더 지껄이려는 텁석부리의 말을 엄하게 막고는 어머니에게 돌아섰다.
《어머니, 내가 이제 안 가면 그들이 또 별의별 보자기를 다 씌울겁니다. 〈숙반〉의 일을 방해한다느니 도망을 치려 한다느니 하고 말입니다. 난 그런 말을 듣고싶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흠이라도 잡히고싶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욕하실줄 알지만… 난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내 한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비정상적인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싸워야 할 사람입니다. 이제 장군님께서 원정에서 돌아오시여 여기 실태를 아시게 되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습니까. 제가 살아있는 한 막을수 있는껏 막아야 합니다.》
남편은 이러며 계순에게 옷을 빨리 달라고 손짓을 했다. 계순은 더는 남편의 걸음을 막을수 없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하지만…
계순은 옷을 꼭 가슴에 그러안은채 애원하듯 말했다.
《여보, 그럼 잠간만이라도… 단추라도 마저 달게… 조금만 더 앉아계셔요, 예? 한개만 더 달면 되는데…》
《됐소. 그냥 주오. 갔다와서 마저 답시다. 그들이 기다린다는데 공연히 시간을 끌 필요가 있겠소. 사람은 존엄이 있어 사람이라 하는거요. 제꺽 갔다오겠소.》
계순은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방안으로 올라가 옷입는것을 도와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저도 함께 가겠어요.》
일환은 옷을 다 입자 빙긋 웃으며 안해의 어깨를 눌러앉혔다.
《당신은 밤길을 걸어선 안되오. 자기 몸을 생각해야지. 나야 운동선수가 아니요. 한때는 소문을 내면서 운동장이 좁다하게 뛰여다닌 축구선수였단 말이요. 공격수! 알겠소? 허허허… 걱정하지 마오. 어머니, 그럼 갔다오겠습니다.》
일환은 껄껄 웃으며 문밖으로 나서다가 얼핏 계순을 돌아보았다. 계순은 얼른 그를 따라나갔다.
일환은 또다시 계순의 어깨우에 손을 얹었다. 불같이 뜨거운 어조로 속삭였다.
《여보, 혹시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신심을 잃지 말고 잘 싸워주오. 이제 장군님만 원정에서 돌아오시면… 다 잘될거요. 내 늘 말하지만 장군님만 계시면 우린 꼭 승리하오. 내 문제두 풀리구… 조국두 해방되구… 그건 진리요. 우리에겐 그런 밝은 래일이 있소. 래일을 믿구 살아갑시다. 그러면 힘이 생기는 법이요.》
계순은 그 말이 유언처럼 들려와 가슴이 섬찍했다. 자기도 모르게 와락 남편의 손을 부둥켜잡았다.
《여보, 돌아오지 못하다니요. 안돼요. 절대로 그래선 안돼요. 당신은 꼭 돌아와야 해요.》
저앞에서 텁석부리가 우뚝 서서 기다리다가 《헝.》하고 기침을 한번 하고는 돌아서서 스적스적 걸어갔다. 그를 피끗 바라본 김일환은 안해의 어깨를 다정히 도닥였다.
《돌아오오, 돌아오지 않구. 내가 어떻게 당신과 헤여질수 있겠소. 난 그저 천번중 단 한번이라도 그런 일이 생길가봐 이야기하는거요. 어떤 일이 있어두 변치 말라구 해서… 마음놓구 기다리오. 인차 갔다온다니까.》
계순은 눈물이 핑 돌았다.
《꼭… 꼭 와야 해요.》
《걱정말구 기다리라니까. 어머니가 기다리겠소. 어서… 어머니를 안심시켜드리오.… 늦어질수도 있으니 먼저 주무시라고 하오.》
일환은 안해를 집안으로 떠밀어 들여보내고 문까지 닫아주고서야 마당에 내려섰다.
계순이가 어머니에게 먼저 주무시라고 자리를 보아드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남편은 이미 어둠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계순은 남편이 간 《숙반》지도부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불길한 예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바줄처럼 마음의 허리를 휘감고 점점 죄여든다. 남편의 그 성미에 그자들과 맞서싸우다가 혹시… 장군님께서 여기 일을 아시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는가고 하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 이 비정상적인 일을 막기 위해 싸워야 한다면서 《숙반》지도부로 간 남편이다. 그래서 위험한줄 알면서도 보내지 않을수 없었다. 자나깨나 장군님만을 생각하는 남편… 죽어도 장군님을 받들다 죽겠다는 남편…
그런 남편을 두었다는 긍지와 함께 불안은 더욱 커진다.
차거운 마가을 밤바람이 우수수 불어왔다. 머리우에서 찬이슬을 머금은 황철나무잎사귀가 팔랑거리며 떨어져내려 어깨우에 올라앉았다. 남편이 다독여주던 그 어깨였다.
계순은 그 락엽을 생각없이 쓸어 떨어뜨리며 호― 하고 한숨을 내그었다. 또다시 찬바람이 불어왔다.
《새아가야, 추운데 이젠 그만 들어오려무나. 그러다 감기들면 어쩔려구 그러니.》
방문을 열며 시어머니가 근심스레 하는 말이였다. 며느리의 몸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하자 누구보다도 걱정이 많은 시어머니였다. 남편과 둘째아들을 왜놈들의 《토벌》에 잃고 맏아들마저 현당조직부장이요 현당서기요 하며 집을 나가살다싶이 하여 늘 사람을 그리워하던 오옥경은 며느리를 끔찍이도 귀애하였다. 머지않아 두벌자식을 안아볼 기쁨을 남모르게 체험해보고있는 그로서는 며느리의 건강에 더더욱 큰 관심을 돌리고있었다.
《예, 이제 곧 들어가겠어요.》
계순은 그러며 남편이 간쪽을 한번 더 바라보고서야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 사람들이 왜 그이를 불렀을가? 무엇을 더 확인해보자는것일가?)
시어머니의 옆에 쪼그리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잠이 든듯 말이 없었다. 그러나 고르롭지 않은 숨결소리로 보아 잠들지 못하고있는것이 분명했다. 하긴 잠에 들리가 없다. 아들이 《숙반》지도부에 갔는데 마음이 편할수가 없는것이다.
계순은 시어머니가 듣지 못하게 또 한숨을 내그었다. 자꾸만 속이 떨리고 불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문밖에서는 바람소리가 솨―솨― 들려왔다. 이밤따라 별로 바람이 갈개는것 같다. 마당밖의 황철나무가 몸부림을 치는듯 한 뒤설레이는 소리가 났다.
문득 저 멀리서 발자국 비슷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여럿의 발자국소리였다.
계순은 금시 심장이 멎는듯 했다. 자기도 모르게 가슴우에 두주먹을 꼭 눌러대며 숨을 들이그었다.
(혹시 그이가?…)
계순은 발자국소리가 가까와오자 더 참지 못하고 일어나앉았다. 고콜불을 다시 켰다. 발자국소리가 마당안에 들어섰다. 계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오세요?》
대답대신 누구인가 문을 왈칵 잡아당겼다. 고콜불이 꺼질듯 뒤로 누웠다.
《여기 김일환이 오지 않았어?》
그자는 뜻밖에도 리억만이였다. 그의 뒤에는 바로 아까 왔던 텁석부리가 서서 퉁방울눈을 이리저리 굴리고있었다.
리계순은 놀라서 떨리는 소리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우리 주인이야 당신들이 데려가지 않았어요?》
《데려갔다구? 그자는 우리 〈숙반〉지도부로 오다가 도망쳤단 말이요. 우리가 급히 확인할것이 있어서 불렀는데 오는 도중에 무엇이 께름한지 도망을 쳤어!》
《뭐라구요? 그것도 말이라고 해요?》
《그건 사실이야. 이 사람보고 물어보라.》
리억만이 게거품을 물고 소리치다가 뒤에 선 텁석부리를 가리켰다.
계순은 너무도 뜻밖이여서 처음엔 제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심장이 화들화들 떨리는게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다.
《아니예요. 그럴수가 없어요. 절대로 그럴수가 없어요.》
리억만이 발을 구르며 기염을 토했다.
《허튼소리말어. 뭐, 〈민생단〉이 저 죽을줄 모르구 순순히 찾아오겠어? 당장 빵크날것 같으니 도망쳤단 말이다. 순순히 내놓아. 남편이 어디로 갔어, 엉? 로친! 아들이 어디로 갔나 말이야.》
어느새 일어나앉았던 오옥경이가 무엇인가 짐작한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옳다, 너희들이 그랬댔구나. 저희들이 잡아가구 뭐 우리보구 내놓으라구? 그래, 내놓아라. 내 아들을 어쨌느냐, 응? 내 아들을 내놓아.》
계순이도 그제야 사태를 짐작하고 텁석부리앞으로 다가섰다.
《당신이 우리 남편을 데려가지 않았어요? 똑똑히 말해요. 우리 남편을 어떻게 했어요, 예?》
텁석부리가 황황히 손을 내저으며 뒤걸음질을 쳤다.
《아… 아, 난 모르오. 난 앞에서 가댔으니까… 한참 가다가 따라오는것 같지 않아 돌아보니 없어졌드란 말이요.》
계순은 억이 막혀 따지고들었다.
《거짓말말아요.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우리 남편이 어떻게 도망을 칠수가 있어요? 똑똑히 말하세요. 우리 주인을 어떻게 했어요?》
《아, 아, 그건 사실이요. 난 정말 모르오.》
뒤걸음치던 그자가 발을 헛짚고 토방에서 뒤로 벌렁 넘어졌다.
리억만이 《아이쿠.》하고 비명을 지르는 텁석부리를 흘깃 돌아보더니더 승이 나서 삿대질을 했다.
《너희들이 진짜 몽땅 〈민생단〉이구나. 좋다. 어디 두고보자. 김일환이를 내놓지 않으면 너희들도 다 〈민생단〉감옥에 끌어갈테다.》
오옥경이가 리억만에게 다가들었다.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울분을 토했다.
《좋다. 다 잡아가라. 내 아들이 가있는 곳에 이 어머니가 가는게 천만번 옳지. 가자, 어서 가자. 내 아들을 어쨌는지 난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
《이 로친이? 좋다, 어디 두고보자!》
리억만은 어쩔수 없는듯 뒤걸음치다가 휙 돌아서서 황황히 달아났다.
그것들이 가버리자 둘은 잠시 멍하니 서있었다. 침묵… 침묵… 꼭 꿈을 꾸고난 사람들같았다.
《새아가야… 우리 집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되였다는거냐, 응?》
오옥경이 떨리는 어조로 기연가미연가해서 조심스레 묻는 말이다.
계순은 그 누구인가 돌덩이로 가슴을 쥐여박는듯 한 충격에 몸을 흠칫했다. 그제야 남편이 잘못되였을수 있다는 현실적감각이 든것이다. 무딘쇠붙이로 가슴을 훑어내리는것 같이 뻐근해왔다.
계순은 대답을 못하고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나갔다. 목놓아 불렀다.
《여보!》
남편이 어둠속 어딘가에 쓰러져있는것만 같았다.
《민생단》감옥에서 받은 고문상처자리에 그 어떤 치명적인것이 숨겨있는것을 모르고있은것은 아닌지… 마음이 급했다. 한걸음이라도 늦으면 그만큼 위험할것 같았다. 결코 도망을 칠 남편이 아니였다. 분명 고문받은 상처가 독을 써서 쓰러져있을것이다.
앞산에는 하현달이 허리를 꼬부리고 푸릿한 얼굴로 대지를 굽어보고있다.
계순은 《숙반》지도부가 있는 아래마을까지 정신없이 뛰여갔다. 그러나 남편이 《숙반》지도부에는 아직도 가지 못한것 같다. 계순은 길주변을 샅샅이 살피며 푸릿한 달빛속을 헤매이였다. 경황이 없었다. 오직 한시바삐 남편을 찾아야 한다는 그 생각뿐이였다.
남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정신없이 온 마을을 다 찾아다니였다. 오솔길, 숲속… 개울가… 나중엔 고동하기슭까지 다 훑었다.
처음엔 남편이 분명 어디에 쓰러져있을거라는, 절대로 도망쳤을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을 찾기만 하면 남편을 업고가서라도 《숙반》지도부의 그 억측을 뒤집어엎으리라 마음다졌었다. 그러나 남편이 현실적으로 근거지에 없다는것이 확인되자 더럭 겁이 났다.
혹시 저것들이 우리 남편을?
계순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완강하게 도리머리를 했다.
아니, 아니야. 설마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그럼 그이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도망을 쳤는가 하고 생각하는것자체가 그이에 대한 모욕으로 될것이다.
그렇다면…
계순은 안타까이 남편을 찾아다녔다. 그날도 또 다음날도…
여보, 당신은 정녕 지금 어디에 가있어요, 예? 한마디라도 해주세요, 예? 여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