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편

달 비

 

제 2 장

-영생하는 삶중에서-

4

 

일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은

이내 몸이 압록강을 건넌 날일세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고 머루, 다래가 익어가는 골짜기의 여기저기에서 노래소리들이 울려나온다.

느타리버섯을 또 한송이 따서 바구니에 넣은 계순은 허리를 펴며 이마에 송골송골 내돋은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해볕이 재글재글 내리쪼이는 골안엔 바람도 한점 불어들지 않는다. 때는 가을이 한창인데도 삼복철처럼 숨이 확확 막힌다. 더워서 못 견디겠다는듯 맞은편 산에서 꿔겅 꿔겅― 하고 장끼가 울어댔다.

그래도 녀인들의 노래소리는 랑랑히 골안을 울린다.

 

년년이 이날은 돌아오리니

내 목적을 이루고서야 돌아가리라

 

계순은 방그레 웃으며 골안의 여기저기를 하나하나 눈빗질을 했다. 저 건너편 참나무와 소나무가 어울려 푸른색과 황갈색이 멋진 대조를 이루고있는 혼성림속에서도 그리고 다듬어세운듯 기묘한 벼랑밑 들국화덤불속에서도, 빨갛게 익어가는 단풍나무숲속에도, 돌돌돌 흘러내리는 내가에서도 노래소리들이 울려나온다. 래일 어랑촌유격대원들앞에서 연예공연을 해야 하는 부녀회원들이다. 부녀회만이 아니라 아동단과 소년선봉대가 합동공연을 하게 되여있다. 모두가 계순이 맡아보는 조직들이다. 리계순은 어랑촌에 와서 현정부 부녀부장으로 임명받았다.

계순은 오늘 점심시간을 리용하여 관통훈련을 했었다. 우결함들이 지적되고 고칠 방향들이 토론되였다. 아동단원들과 소년선봉대원들은 신심을 가지고 헤여졌지만 부녀회원들은 난감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은채 서로 흘끔흘끔 눈치만 보고있었다. 계순은 아래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들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아동단이나 소년선봉대는 아무때나 공연련습을 해볼수 있지만 집살림을 맡아보는 가정주부들이 대다수인 부녀회원들은 대낮에 모여앉아 아― 오― 하고 노래련습만 하고있을수는 없기때문이였다.

피뜩 무엇인가 번개처럼 뇌리를 꿰밝혔다. 계순은 방긋 웃었다.

《동무들! 우리 오후에 버섯따러 가자요.》

모두들 눈이 둥그래졌다. 부녀부장이 제 입으로 잔뜩 결함을 지적하고는 왕청같이 버섯을 따러 가자고 하기때문이였을것이다.

계순은 말했다.

《저 예지골에 버섯이 많대요. 그러니 예지골에 가서 제각기 버섯을 따면서 노래련습을 하잔 말이예요. 누가 보고 들을 곳도 아니니 오죽 좋아요? 랑군님들의 저녁밥상에 올려놓을 버섯도 듬뿍 따고… 맘껏 련습을 해보고 나중에 모여서 맞추어보자요.》

부녀회원들은 신통한 생각이라며 환성을 올렸다. 그래서 모두들 바구니들을 들고 예지골로 올라온것이다.

계순은 심호흡을 한번 했다.

(첫 공연인데… 잘되여야겠는데…)

이번 공연은 리계순 자기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도 될것이다.

금년 2월 공청조직의 지시대로 번동에 다닐 때부터 부녀회와 아동단을 맡아 지도해오기는 하였지만 한창 유격구로 꾸리고있는 어랑촌에서의 사업은 또 달랐다. 여기에서는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구실정에 맞게 모든 사업을 공개적으로 더 활발하게 진행할것을 요구하고있었다. 따라서 유격구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어느 조직이 더 활발히 움직이며 전투력이 있는가가 평가되는것이였다.

(오늘 저녁엔 오빠가 꼭 와야겠는데…)

계순은 오래동안 공청사업을 해온 오빠가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물론 여기 유격구에 그처럼 믿고 의지하고싶은 김일환이가 있지만 어쩐지 그의 도움을 받겠다고 찾아다니고싶지는 않았다. 현당 조직부장이여서 사업이 바쁘리라 생각해서 주저되는것도 사실이지만 보다는 왜서인지 자존심비슷한것이 발목을 붙잡군 하였다. 그이앞에 보다 완성된 인간으로, 그 어떤 난문제도 척척 맡아 처리하는 능력있는 부녀부장으로 나서고싶은것이 자존심이 강한 리계순의 심정이였다.

계순은 손원금의 도움을 받을가 하고도 생각해보았었다. 손원금은 그때 원동소학교를 졸업하고 연길에 가서 사범학교까지 다녔다. 사범학교에 비록 몇달 다니지 못하고 연길경찰서에(그때 벌써 그는 공청조직에 관여했었다.) 체포되여가는 바람에 학교를 중퇴하기는 하였지만…

그는 노래도 잘하고 바이올린도 잘 탔다. 그래서 화룡현 평구당조직의 지시에 따라 약장사로 가장하고 바이올린을 들고다니며 삐라공작도 하고 통신련락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한때는 공청지부 서기까지 한 손원금이지만 지금도 어릴 때처럼 허물이 없이 지내고있다.

요즈음 그는 병기창에서 작탄제조때문에 눈코뜰새없이 바삐 지낸다. 물론 도움을 청하면 마음고운 손원금이 마다하지는 않겠지만 그가 있는 병기창에서 버섯골을 거쳐 여기 어랑촌 중심마을까지 오르내리자면 힘들어 견디지 못할것이다. 그는 경찰서에 잡혀갔을 때 놈들의 고문으로 몸이 만신창이 되였던 사람이다. 그런 몸을 끌고도 경비가 철통같은 적의 소굴을 탈출하여 구정물이 허리를 치는 하수도구멍을 빠져나와 강물속에서 옹근 하루낮을 견디여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구정물과 강물속에서 놈들의 눈을 피해 숨어있자니 전신에 험한 독까지 올라 정말 보는 사람마다 그를 다 죽은 사람으로 생각했댔었다.

계순은 손원금이 그때 받은 어혈이 아직 남아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이런 그에게 노래지도를 부탁한다는것은 무례한 일이였다. 가뜩이나 요즈음 작탄제조가 잘되지 않아 밤을 밝혀 일한다는데…

제일 좋기는 오빠의 지도를 받는것이였다.

(오빠는 왜 아직 못 올가?)

헤여진지 보름도 채 안되는데 1년은 더 되는듯 기다려진다.

현당에서 오빠네 금곡지구 공청일군들에게 빨리 어랑촌으로 오라는 련락을 보냈으니 늦어도 오늘 오후까지는 도착할것이라는 김일환의 말을 들은 순간부터 눈이 빠지게 기다려지는 오빠였다.

계순은 저 골짜기어구쪽으로 시선을 모았다. 오빠가 오면 이 누이동생의 《엄명》이라면서 무조건 데리고오라고 한 부녀회원에게 《명령》을 내렸으니 틀림없이 나타날것이기때문이였다.

오빠는 이 계순의 말이라면 밤이 열둘이라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계순은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못하는 말이 있어도 오빠에게만은 마음껏 응석을 부리고 그 무슨 일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계순은 자기도 모르게 피씩 웃었다.

자기는 오빠한테 아무런 비밀도 없는데 오빠는 능청스럽게도 자기한테 감추고있는 《비밀》이 있다는 생각이 든것이다.

지금도 그때일을 생각하면 분하기 그지없다.

《얘 계순아, 너 지금 사람들속에서 말 돌고있는게 사실이가? 조직부장동지하구 눈치가 다르다는것 말이야.》

언제인가 단둘이 밤길을 걸어 수리바위굴쪽으로 가면서 오빠가 묻던 말이였다. 어머니가 묻는 말에도 기겁을 하며 아닌보살을 했던 계순이지만 오빠에게만은 솔직히 대답을 했다.

《글쎄… 그이만 보면 자꾸 가슴이 울렁거려지는게 이상해요. 하루라도 그이를 보지 못하면 허전해지구… 이게 정말 사랑이라는걸가요?》

《음… 헛소문은 아니였구만.…》

《오빠, 솔직히 말해줘요, 공청원이 자기네를 지도하는 현당 조직부장을… 그것도 나이가 많은분을 사랑한다는게 옳은 일일가요?》

《사랑에야 무슨 옳고그른것이 있겠니, 심장이 하는 일인데… 그건 더없이 고상한 감정이다. 그런데… 조직부장동지 립장은 어떻드냐?》

《그이와는 아직… 그런 문제까지는… 아이참, 그게 무슨 대수예요. 내가 좋아하면 되는거지. 그렇지 않아요?》

《그건 좀 복잡한 문제 같다. 어쨌든 나는 네가 끝까지 변치 말기를 바란다. 내 생각에도 조직부장이 성격도 좋구 괜찮은것 같더라. 한때 룡정일판에서 축구선수로 소문을 낸 사람이지. 룡정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 말이다. 축구선수들이 대개 그렇다고 하더라. 쾌활하구 순박하구 속이 크구…》

《아이참, 좋다는 말은 다 가져다붙이는군요.》

계순은 그러면서도 그 말이 싫지 않아 방긋이 웃었다.

지춘이도 흡족한듯 껄껄 웃었다.

《이 문제를 아버지, 어머니도 알고있니?》

《몰라요, 아직은 오빠만 아는 〈비밀〉이예요.》

지춘이는 어이없는듯 흠 하는 소리를 냈다.

《〈비밀〉두 잘은 〈비밀〉이겠다. 사람들이 다들 알구 수군거리는데 뭐 이 오빠만 안다구?…》

《그래두 다른 사람들이야 그 소문이 헛소문인지 진짜인지 모르지 않나요.》

《사랑이란 감추지 못하는 법이다.》

《오빠두 꽤나… 경험이 있는것처럼…》

《경험이 있을수도 있지. 이제 이 오빠가 네 형님을 척 데리고 나타나게 될지 알게 뭐냐.》

계순은 눈이 올롱해서 오빠를 쳐다보았다.

《그게 정말이예요, 정말 그런 녀자가 있어요?》

지춘이 씨물씨물 웃었다.

《있지 않구, 난 뭐 총각이 아니냐?》

《그런데 내가 그걸 왜 몰랐을가?》

《네가 모르는게 어디 그뿐이냐? 사랑에 취하면 눈이 어두워져 다른건 다 안 보이는 모양이야.》

《오빤 정말 날 어떻게 보구… 그런 말을… 그런데 그 형님될 녀자가 누구예요?》

《그거야말로 진짜 〈비밀〉이다.》

《피, 이 동생한테두 〈비밀〉이 있어요? 어서 대줘요. 누구예요, 여기 우리 공청원들속에 있어요?》

《한번 알아맞춰보렴!》

《누굴가? 손원숙이, 창희… 아니, 그들도 아닌것 같구… 그럼 은금이… 준옥이?…》

계순은 자기 소꿉동무들의 얼굴까지 떠올리며 오빠의 곁에 세워보았으나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정말 누구예요?》

《정말 〈비밀〉이란데…》

《정말?》

《정말!》

《에이, 오빤 미워.》

계순은 불시에 오빠의 량쪽 겨드랑이에 두손을 쑥 들이밀고 간지럽혔다. 남달리 간지럼을 잘 타는 오빠는 펄쩍 뛰면서 죽는 소리를 냈다.

《아갸갸, 하하 아아아.》

《정말 대주지 않겠어요. 누구예요, 누구?》

오빠는 껑충껑충 뛰면서 달아날뿐 대답을 안했다.

《그 정도에 〈비밀〉을 불것 같니? 내 〈비밀〉은 절대 안돼.》

계순은 오빠의 등뒤에 대고 주먹을 흔들었다.

《에이 분해, 오빤 남의 〈비밀〉은 다 뽑아내구선 자긴… 두구보자, 씨.》

그 일이 있은 다음에는 언제 오붓이 이야기를 나누어본적이 없다.

허지만 이제 여기 어랑촌에 오빠가 오면 형님될 그 녀자가 누구인지 꼭 알아내고야말리라.

계순은 오빠의 《비밀》을 뽑아낼 수를 생각해보며 방긋 웃었다. 또다시 참나무밑둥에서 느타리버섯을 발견했다. 오빠가 좋아하는 버섯이다. 계순은 가랑잎에 반쯤 가리워진 반달모양의 연한 재빛버섯들을 뜯었다.  손에 부드러운 촉감이 오는게 마음이 그들먹해진다. 생각은 또다시 오빠에게 뻗어간다. 오빠가 우리들이 노래하는것을 보면 뭐라고 할가. 오빠는 길림사범학교에 다닐 때 독창가수로 소문이 났댔다고 한다. 연예공연을 할 때에는 노래지도까지 하군 하였다는것이다. 실지로 계순이가 금곡에서 원동소학교에 다닐 때 오빠는 소학생들의 연예공연을 멋들어지게 지도하였었다.

노래할 때 몸가짐은 어떻게 하고 목과 턱은 어떻게 하며 입은 어떻게 벌리고 아래소리, 웃소리는 어떻게 내야 하는가 그리고 가사내용은 어떤것이니 감정을 어떻게 잡고 어떤 대목에서는 이렇게 부르고 또 어떤 대목에서는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하는것을 자기가 직접 해보이면서 따라해보라고 하군 하였다. 그렇게 한번만 지도받아도 벌써 노래소리가 획 달라지군 했었다. 그때 계순이도 오빠한테서 좀 배우기는 했지만 아직은 노래를 부르는것도 노래를 지도하는것도 자신이 없었다. 목청도 곱고 노래도 잘 부른다면서 여기 부녀회원들이 자기를 독창종목에 나가라고 자꾸 부추기지만 자칫했다가는 망신을 할수 있었다. 그래서 연예공연종목을 선정할 때 자기는 그저 중창종목에 참가하는것으로만 했었다. 어제 공연종목을 최종적으로 락착지을 때 김일환조직부장이 참가했었다. 그때 부녀회원들이 《우리 부녀부장이 노래를 잘 부르는데 독창을 하도록 현당에서 과업을 주십시오.》 하며 이구동성으로 제기하였다.

김일환은 계순을 돌아보며 찍어서 말했다.

《대중의 요구인데 그렇게 합시다.》

당황해서 손을 내흔들었지만 결국은 독창종목에 나가는것으로 락착짓고야말았다. 이것 참 야단이다. 연예공연때 틀림없이 조직부장이 나와보겠는데 그이앞에서 망신하면 어찌한단 말인가. 소문만 요란하더니 노래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고 흉볼지도 모른다.

오늘 저녁때라도 오빠가 도착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번만이라도  지도를 받았으면… 

사람들이 아무리 자기를 추어주어도 역시 오빠는 사범학교수준이고 자기는 소학교수준이 아니겠는가.

계순은 호― 모두숨을 내쉬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버섯이나 도라지 같은것이 없는가 풀숲을 샅샅이 살폈다. 도토리알도 줏고 버섯도 따면서 독창종목으로 선정된 노래를 가만가만 불러보았다.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삼천리강산을 밝게도 비치네

 

오빠가 작년 겨울 김일환조직부장과 함께 연길현 소명월구에 갔다가 길림시절부터 련계가 깊었던 동무들에게서 배웠다는 노래였다.

오빠에게서 그 《조선의 별》이란 노래를 배우던 계순은 문득 생각되는것이 있어 이렇게 물었었다.

《참 오빠, 오빠가 하숙비를 안내게 된것두 그분때문이라고 했지요?》

지춘은 그때가 생각나는지 빙그레 웃었다.

《그래 바로 그분때문이였지.》

오빠가 길림사범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오빠는 하숙집을 힘들게 정했는데 그집 령감은 얼마나 수전노였던지 집에 든 첫날 벌써 하숙비를 제날자에 물지 않으면 하루에 1전씩 리자를 붙이겠다고 선언을 했다. 열흘이 넘으면 집에서 나가야 하고…

령감은 커다란 장부책을 꺼내놓고 지춘의 이름을 적더니 탁 소리나게 접었다.

《난 일구이언을 안하는 사람일세.》

그 많은 학비와 하숙비를 제날자에 보장한다는것은 계순이네 살림살이수준에서 쉬운일이 아니였다.

리지춘은 그때문에 늘 죄스런 마음을 안고 하숙집령감을 조심조심 대해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주인집령감은 얼굴이 걜쑴하고 눈도 자그마한것이 속이 트이지 않은 꾀죄죄한 늙은이같이 보였지만 한때는 독립운동도 해보았다는, 결코 숙볼수도 없는 인물이였다. 그런 령감에게서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해 가을 길림에서는 세상을 들었다놓는 일이 터졌다. 길돈선철도 개통식을 앞두고 길회선철도부설을 반대하는 대규모시위투쟁이 벌어진것이다. 길회선은 일제의 대륙침략의 열쇠라고도 할수 있는 주요 철도선이였다. 길회선철도를 비롯한 만몽5철도가 완공되여 전만주와 조선을 련결하는 대우회선과 북만주로 통하는 직통선을 얻게 되면 일제는 병력을 비롯한 전략물자를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로 쉽게 보낼수 있는 통로를 열수 있고 조선의 민족해방운동탄압에도 매우 유리한 조건을 마련할수 있었다.

10월 26일 새벽 길림육문중학교, 길림제1중학교, 길림제5중학교, 길림사범학교, 길림녀자중학교를 비롯한 길림시내의 각 학교들에서는 일제히 성토문을 발표하고 가두시위에 들어갔다. 거리는 삽시에 수천명의 학생들로 차고넘치였다. 수백명의 군대와 경찰이 총칼로 앞을 막아나섰다. 당장 총이라도 쏴댈듯 한 험악한 기세였다. 시위군중은 잠시 주춤했다. 누가 조금만 슬쩍 건드려도 탕― 하고 터질듯 팽팽히 긴장된 그 순간…

바로 그때 리지춘이 말로만 들으며 지도를 받아오던 그 김성주학생이 성의회마당으로 오시였다. 군중대회가 열리고 김성주학생이 연설을 하시였다.

조중청년학생들은 단결하여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을 반대하여 견결히 싸우자, 단결은 힘이다, 모두가 단결하여 일본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자!

천하를 뜨릉뜨릉 울리는 우렁우렁하신 음성, 번개불이 번쩍이는 빛나는 안광, 이 세상을 통채로 휘휘 저어대는듯 한 힘있는 손세…

리지춘은 갑자기 눈물이 쿡 솟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격정이 북받쳐올랐다.

아― 저분이시구나. 저리도 젊으신분이 우리의 지도자이시구나.

용기가 백배로 솟구쳤다. 군중들은 더욱 기세충천하여 군경들의 총검을 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신시가쪽으로 파도처럼 밀려가 일본령사관앞에서 《타도 일제》를 웨치며 기세를 올렸다. 그리고는 또다시 대마로, 북경로, 중경로, 상의가 등 길림의 모든 거리들로 파도쳐갔다. 당황망조한 일제는 우선 11월 1일에 하려던 길돈선철도개통식을 무기한 연기하였다. 일본장사군들은 황황히 자기네 령사관으로 꽁무니를 사렸다.

투쟁은 삽시에 만주 전지역으로 퍼져나갔다. 할빈과 천진, 장춘, 연길…

일본상품배척투쟁도 벌어졌다.

거리마다에서는 일본인상점에서 끌어내온 일본상표가 붙은 상품들이 불타오르고 어떤 상품들은 송화강으로 무데기로 쓸어들어갔다.

하숙비를 받을 때마다 지춘에게 《임자는 이번 일에 절대 말려들지 말게. 발톱까지 철갑을 두른 왜놈들과 맨주먹으로 어떻게 맞서싸운다고 그러나. 전번 안창호선생 석방투쟁때엔 그 독군서 얼간이들이여서 이겼지만 이번엔 안돼, 기미년때 보라구. 왜놈들이 우리 조선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나. 좀 자중하게. 그 지도자라는분에게두 그렇게 권고하구…》 하고 막아나서던 하숙집 령감이 40여일이 지나서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끝내 임자네들이 이겼구만, 응? 이겼어. 이게… 정말 그 학생이 지도한건가?》

《예, 그렇습니다.》

그는 멍하니 지춘을 건너다보더니 버릇처럼 고개를 기웃했다.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였다.

벅찬 나날이였다. 어떻게 날이 가고 달이 바뀌는지 모르고 뛰여다니던 지춘은 어느날 무심히 력서를 보다가 손으로 이마를 쳤다. 아차 하숙비!

날자가 너무도 지나갔다. 하숙비를 제 날자에 물라고 약속된 날자만 지나면 하루에 1전씩 리자를 붙이는 그 열흘도 마지막날이 되였다. 기가 막혔다. 하숙집 령감은 결코 일구이언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지금까지 단 한푼도 에누리해본적이 없었다.

무슨 《운동》을 한다고 양보할 위인도 아니였다.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하숙비를 어디서 당장 얻어올데도 없었다. 40여일간이나 시위요, 연설이요, 삐라살포요 하면서 뛰여다니다나니 호주머니에 남았던 잔돈들까지 다 써먹은 동무들이였다. 집에서는 미처 하숙비를 마련하지 못해 못 보내고있을것이다. 올해는 농사도 흉년이 들었다니 돈을 마련하기가 헐치 않을것이다.

오늘이 마지막날인데… 당장 집에서 나가라고 하면… 어디로 간다?

학교에 나갔다가 점심도 못 먹고 저녁에 하숙집으로 터벌터벌 돌아오는 지춘의 발걸음은 발목에 연추라도 매단듯 저절로 무거워졌다.

하숙집에서는 뜻밖에도 주인령감이 기름진 음식들을 한상 가득 차려놓고 기다리고있었다.

《자, 오늘은 나하고 한잔 나누세.》

령감은 상우에 놓인 자그마한 놋술잔 두개에 손수 술까지 따랐다. 지춘이가 못한다고 손을 내저었지만 입에 댔다떼기라도 하라면서 억지로 술잔을 쥐여주었다.

지춘은 영문을 몰라 얼굴을 붉히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저… 사실은 제가 부어올려야겠는데…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구해서…》

《무슨 날이긴… 오늘까지 임자가 하숙비를 내지 못하면 내집에서 쫓겨나는 날이지.》

하숙집 령감이 술잔을 든채 통쾌해서 껄껄 웃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숙비가 미처 도착을 못해서…》

하숙집 령감은 지춘의 말은 들은듯만듯 술잔만 기울였다. 쪽―하고 술잔을 비우는 소리를 귀맛좋게 내더니 흐뭇해서 잔을 상우에 내려놓았다.

《이것으로 나하구 금전관계는 아예 매듭을 지읍세.》

《예?》

《내 그간 좀 알아보았는데… 정말 임자네들이 부럽네. 이번에 임자네들이 저 왜놈쪽발이들을 이기는걸 보구는 가슴이 다 후련했댔어. 이젠 우리 나라에 대통운이 텄네. 앞날이 보인단 말일세. 허허허, 그 지도자가 하라는대루만 하면 다 될걸세. 그러니 그 지도자를 잘 받들게. 나한테 바칠 하숙비가 있으면 그 지도자를 받드는데 써주게. 그래서 나도 임자네들을 조금이나마 돕구싶단 말일세.》

지춘은 불시에 가슴이 쩡해오고 코허리가 시큰했다. 눈을 슴벅이며 감개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하숙집 령감은 술잔을 든채 껄껄 웃고있었다.

술이 한잔만 들어가도 눈에 눈물이 짓물려서 《간다 간다 나는 간다》하고 울분을 토하던 사람같지 않았다.

그날부터 리지춘은 하숙집과 완전히 한식구처럼 지내게 되였다. 하숙비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용돈을 받아쓰는 정도였다.…

계순에게 《조선의 별》노래를 배워주던 오빠는 이렇게 감심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그이를 만나뵈온 사람은 누구나 매혹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곳 조직에서는 처음 한별동지로 부르댔는데 지금은 우리 혁명가들의 한결같은 마음을 담아 저 하늘의 태양이라는 의미에서 김일성동지라 부르고있다.

이번에 그분을 모시고 명월구에서 회의를 했는데… 나는 통신련락때문에 못 참가했지만 조직부장동지의 말을 들으면 그분께서는 하루빨리 항일유격대를 창건하고 항일전쟁을 전개할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고 한다. 곳곳에 유격근거지를 창설하구 조중인민들의 반일공동전선을 형성하구… 이제 봐라, 온 동만땅이 법석 끓어번질게다.》

오빠의 말이 맞았다. 그분께서는 무장한 적은 무장으로 맞서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안도에서 먼저 반일인민유격대를 무으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이 동만각지에서 무장부대들이 속속 조직되고있다. 유격대들은 벌써 북만, 남만으로 퍼져나가고있다. 이 어랑촌은 물론 우복동, 왕우구, 해란구, 석인구, 삼도만, 소왕청, 가야허, 요영구, 대황구, 연통라자와 같은 천험의 요새들에 유격근거지들이 꾸려지고있다. 김일환이 여기 어랑촌으로 오는 숲속길에서 말하던것처럼 꿈에서도 볼수 없었던 새생활이 펼쳐지고있다. 우리 장군님께서 세워주신 우리의 세상이다. 모두가 성수가 났다. 오늘엔 여기 두만강연안일대에만 이런 꿈같은 세상이 세워졌지만 머지않은 래일에는 온 나라에 우리 세상이 펼쳐질것이다. 얼마나 멋있을가, 우리의 앞날은…

할아버지가 이야기해주군 하던 고향땅이 그려진다.

가없이 넓은 바다, 끼륵끼륵 하늘을 날아예는 흰갈매기들, 쏴 처절썩― 밀려오고 밀려가는 흰파도… 하얀 모래불, 해빛을 받아 반짝이는 진주조개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줄을 지어 해당화 곱게 핀 모래불로 씩씩하게 걸어간다. 푸르른 하늘가에 울려퍼지는 랑랑한 노래소리… 자유의 강산에서 우리 자라고 평화의 락원에서 꽃피려 하는…

맨앞에서 까만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하얀 옷고름을 날리며 한 소녀애의 손을 잡고 노래하며 걸어가는 녀선생은 계순이 자기다.…

계순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날은 멀지 않았다. 우리에겐 그처럼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것이다. 그저 장군님만 따르고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하기만 하면 다 된다. 우린 벌써 이렇게 새세상을 체험하고있지 않는가. 계순은 허리를 펴며 모두숨을 내쉬였다.

한줄금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향긋하면서도 새큼한 산과일 익는 냄새가 풍겨온다.

계순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것이 더 아름답게, 더 정답게만 보인다.

우줄우줄 물결쳐간 높낮은 산들엔 울긋불긋 가을빛이 짙어가고있다. 산새소리, 바람소리, 단풍잎들이 살랑살랑 맞부비는 소리… 그우로 쏟아져내리는 눈부신 해빛… 한껏 무르익는 찔광이며 매지며 머루다래향기…

계순은 문득 이제 오빠가 여기에 오면 무슨 일을 하게 될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유격대에 들어가 총을 잡게 될가, 아니면 근거지에서 공청사업을 계속하게 될가.)

오빠는 틀림없이 총을 잡겠다고 할것이다. 명월구회의소식을 안고온 날부터 유격대를 무으면 무조건 거기 들어가 총을 잡고 싸우겠노라 별러온 오빠였다.

《난 그분을 보위하는 유격대원이 되겠어. 하숙집 령감이 당부했지만 그분만 계시면 돼. 그러면 나라를 찾을수 있어. 우리는 이기는거야.》

오빠가 유격대에 들어가면…

계순은 점점 가슴이 부풀어오르고 숨소리가 높아지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나도 유격대에 들어갔으면… 하는 생각이 불쑥 뇌리를 쳤던것이다.

오빠와 함께 총을 메고 나란히 들국화 만발한 언덕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하늘에서는 눈부신 태양이 환하게 웃으며 내려다본다.

계순은 저으기 흥분되였다.

우리의 앞날은 얼마나 멋있고 아름다울가.

 

짓밟힌 조선에 동은 트리라

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저 산아래쪽에서 누구인가 찾는 소리가 나는듯 했다.

내려다보니 골짜기입구에서 부녀회원인 정금이 엄마가 팔을 뒤로 휘저으며 황황히 올라오는것이 보였다. 오다가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소리를쳤다.

《부녀부장동무! 부장동무!》

계순은 방그레 웃었다.

계순은 바로 저 정금이 엄마네 집 웃방에서 생활하고있었다. 그래서 남달리 그에 대한 관심을 높여왔지만… 이번 공연에만은 부득이 그를 빼놓지 않으면 안될 사정이 생기였다. 난생처음 노래를 해보는 그는 음감이 전혀 없다나니 왕청같은 소리만 자꾸 내군 했던것이다. 그가 노래를 하면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열성이 어찌나 높은지 소리를 작게 내라고 주의를 주어도 어느새 제흥에 겨워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데 도무지 다른 사람들과 화음을 제대로 맞추어낼수가 없었다.

결국 《무대감독》으로 《선발》되였는데 오늘 예지골로 올라오면서 그에게는 무대를 꾸리는 일을 도와주라고 과업을 주어 마을에 떨구어놓았었다.

보다 중요한 과업은 오빠가 오는 즉시 예지골로 데리고 올라오는것이였다.

리지춘이가 노래지도를 잘한다는것을 알게 된 정금이 엄마는 누이동생인 이 계순이보다 더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그의 노래지도를 받으면 자기도 연예대에 들수 있지 않을가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부녀부장의 오빠가 오면 무조건 우리 집에 들게 할테야. 내 성의껏 대접해올릴테니… 부녀부장이 좀 말해달라구. 이 정금이 엄마두 축에 끼일수 있게 노래지도를 잘해주라구.》

아까 점심때 밥상을 마주하고앉아 정금이 엄마가 은근한 어조로 당부하던 말이였다.

정금이 엄마는 벌써 오빠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가 하는것까지 죄다 알고있다.

계순은 두손을 모아 입가에 손나팔을 해대고 소리쳤다.

《나 여기에 있어요. 왜 그래요?》

정금이 엄마는 그제야 우뚝 그 자리에 멈춰섰다.

《금곡에서 사람이 왔어요. 빨리 내려오래요.》

계순은 헉 숨을 들이켰다. 짜릿한 환희가 피줄을 따라 온몸으로 쫙 퍼져나갔다.

(오빠가 왔구나. 그런데 왜 데리고 올라오지는 않고…)

무슨 바쁜 일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정금이 엄마가 어줍어서 이 누이동생의 《어명》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는지…

여기저기서 버섯을 따던 부녀회원들이 불쑥불쑥 몸들을 솟구었다.

《부장동무, 우린 어떻게 하라요?》

《기다리라요. 내 꼭 데려오겠어요.》

계순은 나는듯이 골짜기를 따라 내려갔다. 나무뿌리에 걸채여 넘어질번 하면서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알락다람쥐 한마리가 앞발을 쳐들고 이상한듯 쳐다보다가 뽀르르 길옆 숲속으로 달려들어간다. 메뚜기들이 후르륵 후르륵 숲속으로 날고 옆에서는 시내물이 함께 가자 노래하며 따라온다.

(아무리 바쁘다 해두 무조건 데려올테야. 이 동생의 말을 듣지 않고는 못 견딜걸… 이보다 중한 일이 어디에 있다구, 호호호.)

계순은 자신이 있었다. 물론 처음엔 도리머리를 할것이다.

《뭐 당장… 어디로 가자구?》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런다지 않아요, 숱한 사람들이 모여서 눈이 까매 기다리는데…》

오빠는 눈이 더욱 커질것이다.

《무슨 사람들이… 날 왜 기다린단 말이냐?》

계순은 시치미를 따고 이렇게 말할것이다.

《그걸 어떻게 이 자리에서 다 말하겠어요. 가면서 이야기하자요. 시간이 급해서 그래요. 당장 가서 바로잡지 않으면 큰일난단 말이예요.》

오빠는 눈이 둥그래서 어쩔수없이 따라오고야말것이다.

계순은 웃음이 나갔다.

저아래 기슭쪽에서 한 남자가 올라오는것이 보였다. 정금이 엄마와 무슨 이야기인가 하더니 곧장 마주올라온다. 정금이 엄마는 도로 내려가고… 느릿느릿 발걸음도 무겁다.

계순은 이상한 예감이 들어 주춤하며 눈여겨보았다. 기대로 반짝이던 그의 눈에 한가닥 실망의 그림자가 서서히 스쳐지나갔다.

오빠인가 했더니 뜻밖에도 동만당특위에서 일하는 조아범이였다. 오빠와 함께 길림사범학교를 다녔지만 얼음같이 차게 느껴져서 얼마 대상하고싶지도 않던 사람이였다.

그의 집은 여기서 얼마 멀지 않은 대립자에 있는데 아버지는 큰 지주라고 했다. 조직부장네 아버지, 어머니도 대립자에서 소작살이를 했다니 저 사람네 땅을 부쳤을지 모른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사범학교에서는 공청소조책임자까지 하고 지금은 동만당특위에까지 들어갔는지… 사람일이란 정말 알수가 없다.

그가 어떻게 이리로 올가.

까닭없이 한숨을 내쉬고나서 다시 걸음을 옮기던 계순은 그와 가까와지자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냥 지나치려고 한옆으로 몸을 옹송그리며 빠져나갔다.

바로 그순간 계순은 흠칫하며 굳어지고말았다.

지나갈줄 알았던 조아범이가 그 자리에 우뚝 선채 《계순동무!》 하고 불렀는데 그 목소리가 의외에도 몹시 침울하고 갈려있었기때문이였다.

계순은 의아해서 서서히 몸을 돌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불길한 예감이 가슴이 서늘하도록 흘러들었다.

조아범은 눈길이 마주치자 황황히 시선을 내리까는데 그 얼굴이 별로 어둑컴컴해보였다.

《동무에게 할말이 있는데…》

《?》

《잠간… 이 개울가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좀 합시다.》

조아범은 제먼저 개울가로 다가가 자그마한 돌우에 걸터앉았다.

계순은 영문을 알수가 없어 조심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빨리 가서 오빠를 만나고싶었지만 당간부가 부르니 할수가 없었다.

조아범은 왜서인지 자기옆에 계순이가 섰는데도 기척을 못 느낀듯 묵묵히 개울물만 쏘아보고있었다.

계순은 갑자기 가슴이 옥죄여드는것을 느꼈다. 혹시 내가 무슨 잘못한 일이라도 있지 않는가?

조아범이가 자주 검열차로 다니군 한다더니 부녀회나 아동단이나 소년선봉대사업에서 무슨 흠집을 발견한 모양이다.

계순은 자기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고개를 떨구고 바구니안의 버섯들을 매만지였다. 결함은 결함이고 오늘 저녁엔 이 버섯으로 오빠를 대접할수 있게 되였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속에 기쁨이 그들먹이 차오른다. 내손으로 직접 버섯찬을 만들어야지. 그러면 오빠는 더 좋아할거야.

《아니, 이거 네가 만든 찬이 맞긴 맞니?》 하면서 날 더 기쁘게 해주려고 깜짝 놀라는척 할거야, 호호호.

그런데 이 사람은 무슨 욕을 하자는걸가.

공교롭기가 그지없었다. 하필 오빠가 온 날에 이 얼음같이 찬 사람에게 걸려들건 뭐람…

《계순동무, 혁명이란 참으로 간고한거요. 희생을 동반해야 하는것이고…》

계순은 그 침통한 소리가 별로 이상스러웠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가. 누구나 그걸 각오하고 이 길에 나선것이 아니겠는가.

계순은 흘끔 조아범을 건너다보았다.

조아범은 옆에서 하느적이는 빨간 단풍잎을 뜯어 똑똑 손톱여물을 썰며 여전히 내물만 쳐다본다. 바로 그 내물에서 혁명의 간고성을 더 찾아내려는것인지…

조아범은 또 단풍잎을 뜯었다.

계순은 아쉬운 눈길로 별모양의 그 단풍잎을 쳐다보았다. 빨갛게 익은 정말 고운 단풍잎인데…

계순은 쪼박쪼박 찢기워 맑은 내물에 떠내려가는 단풍잎쪼각들을 애모쁜 눈길로 쳐다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아이참, 남은 바빠죽겠다는데 왜 이렇게 질질 늦굴가. 아까운 단풍잎만 자꾸 뜯으면서…)

그 어떤 욕을 한대도 무섭지 않았다. 마음은 이제 오빠를 만날 생각에 들먹거리기만 한다. 춤이라도 추고싶다. 저녁밥을 먹은 다음엔 오락회를 벌려놓을테다. 노래련습을 하는겸… 오빠독창도 시키고… 형님될 녀자가 누군지 알면 데려다 2중창을 시키겠는데… 이번엔 무조건 알아낼테야. 말하지 않고는 못 견딜걸… 호호호.

오빠를 꼼짝 못하게 할 수를 생각해낸 계순은 제풀에 웃다가 얼굴이 컴컴해진 조아범을 보고 목을 찔끔했다.

다행히도 조아범은 계순이쪽이 아니라 개울물을 쳐다보며 갈린 소리로 띄염띄염 말했다.

《계순동무, 마음을… 굳게 먹소. 오빠는… 잘못되였소.》

《예?》

계순은 얼핏 조아범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의 말뜻이 잘 리해되지 않았다. 오빠가 잘못되다니. 그건 무슨 말인가. 혹시?

싸늘한 그 무엇이 가슴속으로 홱 불어들었다.

《우리 오빠가 어떻게 되였어요. 어디 상했어요?》

계순은 가슴이 섬찍해짐을 느끼며 다급히 물었다.

조아범은 천천히 도리머리를 했다. 꺼지게 한숨을 내쉰다. 계순의 눈이 더 커졌다. 불안으로 떨리는 목소리…

《그럼?》

조아범은 마른침을 애써넘기더니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급히 어랑촌으로 오라는 현당의 지시를 받은 리지춘이네 공청지부성원들은 서둘러 하던 일들을 마무리했다. 미진된것이 없는가 다시한번 곰곰히 따져보며 깨끗이 일처리를 하고 막 떠나려는데 갑자기 왜놈군경들이 그들이 있는 수리바위를 포위하고 덤벼들었다.

포위된 절벽동굴에서는 피할데도 없었다.

《피값이라도 하고 죽자!》

최후를 결심한 리지춘은 문건들을 불태운 다음 돌멩이들을 량손에 하나씩 틀어쥐고 놈들을 맞받아나갔다. 다른 동지들도 돌멩이를 집어던지다가 그나마 떨어지자 놈들과 맞붙어 결사전을 벌렸다. 그러나 맨주먹에 다섯명밖에 안되는 그들이 100명도 넘는 놈들을 당해낼수가 없었다.

놈들은 이들을 마을앞 《얘골집》마당으로 끌어갔다.

계순이 아버지를 비롯한 이들의 부모들과 마을사람들도 끌려왔다.

군경들을 거느리고온 오가사하라란 놈은 피투성이가 된채 몸도 가누기 힘들어 서로서로 의지하고 서있는 리지춘이네를 노려보며 이렇게 뇌까렸다.

《에또… 예로부터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것은 불효자식이라고 했다. 자, 봐라. 여기에는 너희들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다 와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불효자식이 되지 말고 어서 조직의 비밀을 대라, 여기 책임자가 누구냐? 그리고 어디로 가려고 했느냐. 너희들을 지도하는자는 누구냐? 솔직히 말하면 이제 당장 너희들이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가게 해줄테다.》

순간 리지춘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공청원들을 모욕하지 말라!》

《모야?》

그놈이 노해서 지춘이에게로 다가왔다. 그놈을 불이 펄펄 이는 눈길로 쏘아보던 리지춘은 퉤하고 면상에 침을 뱉았다.

《야, 이놈이 이게…》

악에 받친 그놈은 군도채로 리지춘의 머리를 마구 내리쳤다. 리지춘의 얼굴에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지춘아!》

어머니의 목메인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지춘은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가 앞을 막아선 놈들의 총창을 밀어제끼며 몸부림을 치고있었다.

아들에게로 달려나오려는것이였다.

아버지는 그저 굳어진채 두주먹을 후둘후둘 떨기만 할뿐이였다.

지춘은 목이 탁 갈리는것을 느끼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버지, 어머니들. 우리는 죽을것입니다. 그러나 서러워하지는 마십시오.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들의 아들답게 조선독립을 위해 떳떳이 죽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들. 이 아들들을 자랑으로 생각해주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철천지원쑤인 이 왜놈들을 반대하여 싸워주십시오. 왜놈들은 꼭 망하고야맙니다. 부디 잘 싸워 꼭 좋은 세상을 맞아주십시오. 믿으십시오, 그날은 꼭 옵니다.》

기관총소리가 골안을 울렸다.

《조선독립 만세!》

《내 아들아!》

《지춘아!》

지춘이네의 만세소리와 목메인 부모들의 부르짖음소리가 한데 엉켜 터져올랐다.…

계순은 무엇인가 둔중한것이 뒤머리를 세게 후려친것 같았다. 심장이 뚝 떨어져내린듯 아프고 온몸이 화들화들 떨렸다. 눈앞에서 별찌가 막 떠다녔다.

《그… 그럼… 우리… 오빠는?…》

목소리가 떨린다. 말을 더 이을수가 없다. 설마 우리 오빠가 왜놈들의 손에? 아니 아니, 그럴수 없다. 절대로 그럴수 없어.

계순은 세차게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하지만 잘못되였다는 말은?… 그럼 총에 맞고… 부상?…

계순은 망연한 눈길로 조아범을 쳐다보았다.

어디에 총을 맞았는지 물어보기조차 끔찍했다. 제발 어디 약간 스치고 지나갔으면… 눈앞에는 시물시물 웃는 오빠의 얼굴이 한가득 떠오른다. 인정많은 오빠의 그 귀중한 몸 어디에도 총탄이 스치고 피가 흐른다는게 상상만 해도 몸서리쳐졌다. 제발 총탄이 머리우에로 날아갔으면… 놈들이 허투루 쏘았으면…

《오빠가… 오빠가… 크게… 상하지는… 않았겠지요?》

간절한, 그야말로 간절한 기대를 안고 물었다. 하면서도 귀를 막고 싶었다. 무슨 대답이 나올지 두려웠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오빠는… 잘못되였소… 놈들은 그러고도 모자랐던지 오빠의 시체를 다시 〈얘골집〉안에 던져넣고 불을 질렀소. 악질공산당은 형체도 남겨두어서는 안된다면서… 그걸 본 어머니는 그만 정신을 잃고…》

계순은 더는 자기를 지탱해낼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쓰러졌는지도 몰랐다.

계순은 힘들게, 가까스로 눈을 떴다. 눌렸던 용수철처럼 튕겨일어나 고무공처럼 언제나 통통 뛰여다니던 몸이 오늘은 왜 이렇게도 지긋지긋한지 모르겠다. 그런데 무슨 사람들이 날 이렇게 내려다보고있을가. 계순은 의아해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근심스러운 얼굴들을 올려다보았다. 부녀회원들이였다.

(이게 무슨 일일가? 난 왜 이렇게 누워있고 부녀회원들은 왜 이렇게?…)

계순이 강잉히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옆에서 누구인가 《흐흑―》 하고 흐느껴우는 소리가 났다.

《부장동무!》

순간 계순은 흠칫 굳어졌다. 그제야 오빠의 소식이 생각났던것이다.

계순은 완강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니야, 이건 꿈이다. 내가 꿈을 꾼거야.

계순은 그걸 확인하려는듯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누구의 얼굴에서나 눈물자욱들이 보였다. 계순의 눈길과 마주치자 《흑―》 하고 느껴울며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는 녀인도 있다. 급기야 고개들을 외로돌리고 옷고름을 눈가에 가져가며 어깨를 떠는 녀인들도 있다.

그럼 그것이 사실이였단 말인가? 계순은 그만 눈앞이 캄캄해졌다. 또다시 눈앞에서 별찌같은것이 마구 뒤엉켜 떠다녔다.

계순은 눈을 감았다. 그의 두눈에서 피같은 눈물이 주르륵 량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오빠! 그처럼 다정하고 인정깊던 오빠… 우리 오빠를 어느 놈이 감히 죽일수 있단 말인가.

하늘이 통채로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았다. 그처럼 믿고 의지하려던 기둥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아버지, 어머니는 또 얼마나 가슴아프겠는가. 아버지, 어머니앞에서 그처럼 사랑하는 자식을 그렇게도 처참하게 죽이다니… 세상에 이런 악귀들이 또 어데 있겠는가.

창자를 끊어내는것 같은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방안에 있는 녀인들모두가 오열을 삼키느라 모지름을 쓰는것이 그대로 알린다.

모두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오빠였다. 오빠가 온다고 하자 그렇게도 좋아하면서 부러워하였는데… 이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얼마나 억이 막히겠는가.

계순은 애써 다시 눈을 떴다. 부녀회원들을 둘러보는데 문득 방 한구석에 놓인 바구니들이 눈에 띄였다. (그러니 이들은 산에서 곧장 여기로와서 지금껏 나를 걱정해서 울고있구나, 집에도 못 가고…) 하는 생각이 불쑥 뇌리를 치면서 가슴이 쩌릿해왔다.

계순은 그들을 보기가 미안했다. 얼마나 마음고운 녀인들인가.

계순은 머리를 비다듬어넘기며 일어나 앉았다. 강잉히 미소를 지으며 애써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들, 고마와요. 내 마음을 굳게 먹구… 이겨내겠어요. 밤도 깊었는데 이젠 돌아들 가보세요.》

계순은 함께 있겠다고 하는 녀인들을 억지로 돌려보냈다.

그들을 배웅하고 방으로 들어오던 계순은 또다시 몸을 흠칫했다. 방 한구석에 외롭게 놓여있는 버섯바구니를 본것이다. 싸리를 결어만든 바구니에 버섯이 절반나마 차있었다.

계순의 두눈에서는 겨우 참아내던 눈물이 동을 터친듯 또다시 주르륵 흘러내렸다. 계순은 그 바구니우에 어푸러졌다. 몸부림을 쳤다. 오빠가 오면 대접하자던 버섯이였다. 어머니는 오빠가 입맛이 없어하면 그 어딜 가서든 꼭 버섯을 구해다가 버섯볶음을 해주군 하였었다.

어머니는 지금 어찌고있을가.

마음고운 어머니… 마음여린 어머니… 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가슴이 지금 어떠하리라는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갈기갈기 찢기우고 부서지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할것이다.

가야 했다. 아무리 멀다해도 달려가 어머니를 위로해드려야 했다. 이 슬픔을 함께 나누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어머니는 이 슬픔을 견디여내지 못할것이다. 다른건 몰라도 어머니에게만은 갔다와야 한다.

계순은 분연히 머리를 쳐들었다.

급급히 말코지에서 머리수건을 벗겨 머리에 쓰며 밖으로 나왔다.

싸늘한 밤공기가 온몸을 휩쌌다.

계순은 짚신을 대충 꿰신고 허둥지둥 사립문을 나섰다. 뒤에서 정금이 엄마가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며 주춤주춤 따라오는것도 느끼지 못했다.

머리속엔 온통 어머니 생각밖에 없었다.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 딸이 가겠어요. 이 딸이… 어머니, 우리 이겨내자요. 일어나야 해요. 내 기어이 이 원쑤를 갚고야말겠으니 이 딸을 믿어주세요. 기어이 복수하고야말겠어요.

정신없이 마을 한복판을 꿰질러나가던 계순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저앞에서 사람이 얼씬 지나가는것을 보았던것이다. 어슴푸레한 달빛에 그 사람이 어깨에 걸멘 나무통이 보였다. 바이올린통이였다. 손원금이가 분명했다. 손원금은 어디를 가건 바이올린을 꼭 가지고 다니군 했다.

(저 오빠가 왜 여기로 왔을가? 병기창에선 밤낮을 이어가면서 작탄제조전투를 벌린다고 했는데… 원금오빠도 우리 오빠가 잘못되였다는 소식을 듣고오는 길이 아닐가?)

계순은 손원금이가 가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유격대지휘부 귀틀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유격대지휘부 앞마당이 좀 이상하게 보였다. 토방이 무대비슷하게 꾸려져있었던것이다. 토방을 넓히고 량옆에는 솔나무를 세우고…

순간 계순은 채찍같은것이 쫘락― 뇌리를 후려치는것을 느꼈다.

래일 연예공연을 하게 꾸려놓은 장소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손원금이도 그래서 내려왔을것이다. 노래를 하는데 바이올린으로 반주를 해주려고…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있는가, 어디로?… 래일 연예공연을 직접 맡아해야 할 내가 가면 공연은 어떻게 되는가?

계순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지금 이 어랑촌에서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유격근거지를 더욱 튼튼히 꾸리고 적들의 《토벌》로부터 보위하기 위한 사업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있다.

왜놈들이 얼씬 못하고 지주놈이 없는 우리 세상을 지켜가는 일이라 모두가 성수가 나서 뛰여다닌다. 한쪽에서는 살림집들을 계속 짓고있다. 개산툰, 다라즈, 삼도구들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들어오고있는것이다.

한쪽에서는 산고지마다 점호들을 파고있다. 천리봉, 남산, 895.9고지, 920.2고지 등 높고낮은 고지들과 계남촌을 비롯하여 적의 침입이 예견되는 도로주변과 골짜기어귀들마다 점호를 설비하고 돌무지들을 만드느라 유격대원들과 반일자위대원들이 밤낮을 이어 전투를 벌리고있다.

그들속에 누구인들 불행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들을 찾아가 힘을 주고 용기를 주어야 할 내가 오히려 제 불행만 생각한다면… 그게 무슨 부녀부장이겠는가.

나 개인이나 한가정이 아니라 이 유격근거지를, 혁명을 먼저 생각하여야 할 사람이 이게 뭔가.

계순의 량볼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계순은 맥없이 돌아섰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하면 좋은가. 어머니를 어떻게 하면 위로해드릴수 있을가. 오빠를 그리도 사랑하던 어머니, 집에 어쩌다 들리면 오빠의 안부부터 물어보던 어머니, 오빠를 기둥처럼 믿던 어머니… 어머니는 지금 심장을 통채로 뺏기운것 같을것이다.

계순은 고개를 떨군채 터벌터벌 걸음을 옮겨놓았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에게 오빠를 잃은 그 상실의 빈공간을 메꾸어드릴수 있단 말인가. 오빠의 원쑤를 내 기어이 백배, 천배로 갚고야말리라. 오빠의 몫까지 합쳐 혁명이 승리하는 날까지 싸우고 또 싸우리라. 어머니, 너무 상심마세요. 이 딸을 믿어주세요.…

아 가까이에 있다면 그렇게라도 위로해드리련만… 편지라도 써야겠다. 하지만… 열장, 백장의 편지를 쓴들 이 마음을 다 담을수 있겠는가.

계순은 앞가슴에 흘러내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싹달싹 널을 뛰는 머리태를 무심히 어깨뒤로 넘기려다가 갑자기 손을 멈칫했다. 자기도 모르게 주춤 멈춰섰다. 피뜩 떠오르는것이 있어 조심히 머리태를 어루쓸었다. 어머니가 그처럼 탐스럽다면서 대견해하던 머리태였다. 남들이 부러워할 머리태라며 기뻐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히 떠오른다. 총각들이 머리태만 보아도 반하겠다던 그 말도 가슴을 허비고든다. 계순은 아래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자기가 못 가는대신 이 머리태를 잘라 다리를 지어보내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순은 심호흡을 한번 했다. 급히 집안으로 들어가 고콜불을 켠 다음 백로지를 앞에 펴놓고 가위를 찾아들었다.

앞가슴이 세차게 오르내렸다. 정작 머리태를 자르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별로 비장해진다.

계순은 더운 침을 애써 삼키고는 가위를 앞에 놓고 천천히 머리태를 풀어내렸다. 코안이 쩡― 하고 매워옴을 느끼며 얼레빗으로 깐깐히 빗어내렸다. 어머니에게 이 마음을 전할 길이 이렇게 머리태를 잘라보내는 길밖에 없을가 하는 생각에 선뜻 가위를 들게 되지 않았다. 계순은 뜨거워오르는 눈을 슴벅거리며 몇번이고 빗고 또 빗었다. 처녀의 아름다움을 한껏 돋구어주던 곱고 탐스러운 머리태, 그 달비라는 처녀가 목숨같이 귀히 여겼다는 머리태.

계순은 결곱게 빗은 머리칼을 움켜쥐고 이윽토록 내려다보았다. 기름이라도 바른듯 반들반들 윤기흐르는 머리칼우에 한방울 또 한방울 눈물이 떨어져 불빛에 반짝인다. 이제 자르면 다시는 나에게 이런 고운 머리태가 생기지 않을것이다. 왈칵 눈물이 솟구쳐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소중한것이기에 더더욱 어머니에게 보내야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어머니를 위하여, 오빠의 복수를 위하여…

어머니는 이 머리태를 보면서 오빠의 복수를 위해 이 한목숨을 걸고 떨쳐일어선 이 딸의 드팀없는 맹세를 읽게 될것이다. 혁명의 길에 끝까지 변치 않을 이 나라 한 녀성의 굳은 절개를 읽게 될것이다.

계순은 또한번 긴숨을 들이그었다. 그리고는 가위를 들고 석둑석둑 서슴없이 머리칼을 잘라냈다. 하얀 백로지우에 길고도 탐스러운 까만 머리칼이 소복이 쌓였다.

계순은 그 머리칼을 두세번 쓸어만져보고는 곱게 달비를 지었다. 그 달비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종이를 꺼내놓고 편지를 썼다.

《어머니! 찾아가 뵙고싶은 마음 불같지만 그 못지 않은 일이 있어 이렇게 편지만 보냅니다.

제가 집을 떠난 후 오빠마저 세상을 떠났다니 얼마나 괴로우시겠습니까.

그러나 슬퍼하지 마십시오.… 원쑤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마십시오. 그러면 원쑤놈들이 좋아합니다.

저를 낳아 애지중지 키워주신 어머님, 어머님을 어떻게 위로해드렸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혁명에 바친 몸이라 인차는 아니, 얼마동안은 어머님을 뵈옵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이렇게 어머님께 저의 머리태를 잘라 보내드립니다. 제가 오래동안 어머니곁에 가지 못하더라도 나를 보듯이 이 달비를 보십시오. 혁명이 승리하는 날까지 부디 몸성히 계실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다음날 아침 계순의 머리를 제일 처음 본 사람은 정금이 엄마였다.

그는 세면을 하러 나온 계순을 흡뜬 눈으로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니… 그 머리는?》

계순은 강잉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거치장스러워서… 참, 정금이 엄마. 오늘 연예공연을… 어떻게 조직사업이 되였는지 모르겠어요?》

《연예공연?》

정금이 엄마는 고개를 기웃했다. 여전히 둥그래진 눈을 끔벅거리며 계순의 짧아진 머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공연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는것 같애, 그런데… 에그, 그 탐스럽던 머리를 어째서?…》

정금이 엄마는 못내 아쉬워하며 혀를 찼다.

계순은 얼굴에 물을 끼얹다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미루다니요. 그건 어째서…》

《저… 그건 부녀부장이… 그런 불행을 당했는데…》

계순은 갑자기 숨이 꽉 막히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급기야 눈길을 떨구고 세면대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혼자소리처럼 뇌였다.

《그럼 어떻게 해요. 유격대동무들과 약속한건데… 그리구 래일엔 반일부대에 가야 하는데…》

《유격대동무들두 다 알거야, 어제 저녁에 현당조직부장두 왔다갔으니까… 반일부대에도 통보했겠지.》

《조직부장동지가 왔댔어요?》

계순은 놀라서 다시 정금이 엄마를 쳐다보았다. 정금이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정신을 잃고 누워있을 때 와서 한참이나 있다갔다우. 몹시 걱정하면서 공연은 미루어야겠다구…》

계순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자기가 무슨 꼴을 하고 누워있었는지 알수가 없다. 슬픔을 못이겨내고 꼬꾸라졌다고, 정말 연약한 녀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오죽했으면 공연을 미루어야겠다고 했겠는가.

부끄러웠다.

계순은 얼른 세면을 하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거울을 다시 보고 얼레빗으로 빗으려니 문득 머리태를 풀고 다시 땋고 하던 품들이던 공정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자르니 간편한것만은 사실이였다. 그까짓 맵시는 봐서 무엇하겠는가. 나에겐 이젠 증오와 복수심만이 남았다. 내 기어이 그 원쑤놈들을 복수하리라. 숨이 지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오빠가 못다 걸은 그 길에 바치리라.

계순은 머리를 빗고나서 밖으로 나섰다.

정금이 엄마가 놀라서 물었다.

《아니, 밥이 다 됐는데 어델 가려구?…》

계순은 곧장 현당위원회가 자리잡은 널킨골쪽으로 급한 걸음을 옮기면서 대답했다.

《인차 갔다오겠어요.》

머리우에서 누렇게 황이 든 물황철나무 잎사귀가 팔랑거리며 떨어져내렸다. 축축히 젖은 락엽들이 여기저기 떨어져내려 부근부근 밟히는 넓지 않은 길로 계순은 총총히 걸음을 옮겼다. 마음은 그 어떤 비장한 감정에 잠겨있었다.

연예공연을 미루다니… 그래선 안된다.

이제는 저세상에 가있는 오빠도 자기때문에 일을 미루었다는것을 알면 좋아하지 않을것이다.

더구나 래일은 버섯골에 자리잡고있는 반일부대를 찾아가 공연해야 한다. 오늘은 결국 래일 공연을 위한 시연회라고도 할수 있다. 반일부대와의 사업을 잘해서 그들이 끝까지 반일을 하게 하는것이, 그들과 통일전선을 이룩하는것이 우리 장군님의 뜻이라고 조직부장이 말하지 않았던가.

지금 왜놈들의 《토벌》이 강화되자 적지 않은 구국군부대들이 쏘련을 경유하여 중국관내로 달아나고있다. 동녕현성에 집결된 부대들도 퇴각할 차비를 서두르고있다고 한다.

그래서 장군님께서는 남만원정의 피로도 푸실 사이없이 그 먼곳으로 또다시 떠나셨다고 한다.

어머님도 잃고 사랑하는 두 동생을 남겨두신채…

조직부장도 그 일때문에 어랑촌으로 왔다고 했었다. 바로 저 버섯골에 있는 반일부대와의 통일전선을 이룩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것을 아는 내가 어떻게 제 불행에 눌리워 그 중요한 사업을 미룰수가 있는가.

현당위원회에는 마침 현당서기인 최상동과 조직부장 김일환이 조아범과 마주앉아 무엇인가 토론하고있었다. 그들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계순이를 놀란 눈길로 맞이했다. 불행에 쓰러졌던 계순이가 새벽같이 찾아온것도 그랬지만 머리모양이 달라진것이 더더욱 눈들을 휘둥그렇게 만든것이다.

《오늘…계획했던대로 연예공연을 하겠습니다.》

계순은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만 말하고 돌아서 나왔다.

김일환이도 짧아진 그의 머리를 생각깊은 눈길로 바라볼뿐 아무 말도 못했다. 계순은 현당위원회에서 나오는 길로 연예대대장네 집으로 찾아갔다. 연예대대장을 불러냈다.

올해 열여섯살에 나는, 이제는 제법 코밑이 검실검실해지고 목소리도 우렁우렁해지기 시작한 달수라는 연예대대장도 쌍까풀진 눈을 껌벅거리며 놀란 눈길로 계순의 달라진 머리를 쳐다보았다.

《오늘 공연할 준비가 다 되였지요?》

《예?》

달수는 눈이 둥그래져서 이렇게 되물었다.

《오늘 공연을 합니까?》

《하지 않구요. 왜, 무슨 일이 있어요?》

《아니… 다른 일은… 없는데… 현당에서 부녀부장누나가…》

《무슨 소리를 해요? 오늘 계획했던대로 공연을 하겠으니 그리 알고 준비를 잘하세요.》

《알겠습니다.》

《아동단에도 그렇게 알려주세요.》

《예.》

달수는 그길로 옆집쪽으로 뛰여갔다.

계순은 부녀부에 들려 부녀회에서도 공연준비를 잘할데 대하여 다시한번 강조하고서야 급히 숙소로 돌아왔다. 빨리 밥을 먹고 어제 예지골에서 다시 맞추어보려다가 못한 중창련습을 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은것이였다.

 

유격대지휘부 앞마당에는 유격대원들과 반일자위대원들, 구정부 사람들과 근거지의 늙은이, 어린이 할것없이 가득 모여앉아있었다.

공연은 계순이 지도하는 부녀회와 소년선봉대, 아동단에서 각각 네종목씩 준비하고 도간도간 선동적인 연설도 끼워넣었다. 래일 반일부대에 가서 부를 노래까지 다 무대에 올리게 하였다.

지금 무대에서는 부녀회원들의 녀중창에 이어 나어린 아동단원소녀가 《고향의 봄》을 부르고있었다.

무대옆에서는 손원금이가 바이올린으로 반주를 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계순은 림시로 만든 가설막뒤에서 분통으로 지그시 눈두덩을 눌러대고 앉아있었다. 어제밤 너무 울어서 퉁퉁 부은 눈두덩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있는것이다. 안타까왔다. 계순은 또 동실한 손거울을 꺼내보았다. 그것은 오빠가 길림에서 사범학교를 중퇴하고 오면서 《도회지선물》이라며 사다준것이였다.

《어야나, 야 거울… 오빠, 이거 정말 나 주는거나?》

《그럼, 우리 귀염둥이 주지 않고 누굴 주겠니. 우리 계순이 더 고와지라고 사온거야.》

계순은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이렇게 한마디 했다.

《오빤… 돈두 없겠는데… 하숙비랑 못 보내서 아빠엄마가 수태 근심했는데…》

《난 하숙집에서 오히려 용돈을 받으면서 공부를 했어.》

계순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건 어떻게?》

《글쎄 그런 일이 있었지. 좋은분을 만난 덕에… 후에 내 다 말해줄게.》

그때 일이 떠오르며 눈가에 또다시 가랑가랑 눈물이 고여오른다. 눈앞이 다시 뿌예졌다. 눈두덩이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는데 속상하게도 눈물은 그칠줄을 모른다.

《꼭 나가겠어? 일없겠어?》

《무대감독》 역할을 하던 정금이 엄마가 근심스레 묻는 말이였다.

계순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일없어요. 나가겠어요.》

무대에서는 소녀의 노래가 계속 울려왔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내가의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노래를 마친 소녀가 절절히 호소한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들. 나의 고향도 정말 살기 좋은 고장이랍니다. 뒤에는 밤동산, 앞에는 옥토벌, 마당가엔 앵두나무, 뒤울안엔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배나무, 봄에는 꽃속에 묻히고 여름과 가을에는 과일향기 넘쳐나고… 그런데 왜놈들이 우리 집을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우리 마을을 불살라 없애고 군사기지를 닦았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랑 항의하자 총으로 마구 쏘아죽이고 우리를 내쫓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날강도들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아버지, 엄마, 오빠, 언니들. 내 고향을 찾아주세요. 내가 늘 노래를 불러드리고 이 작은 두손으로 나물이랑 뜯어다드리면서 힘껏 도울테니 왜놈들을 몰아내주세요.》

또다시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소녀의 눈물겨운 호소에 가슴을 끓이며 화답하는 열광적인 박수소리였다. 백양나무아지에 앉았던 새들이 화르륵 날아올랐다.

소녀가 물기어린 눈을 빛내이며 또랑또랑 말했다.

《다음은 독창입니다. 〈조선의 별〉, 부녀부장언니가 출연하겠습니다.》

순간 객석이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놀라서 굳어진듯 한 표정들이였다. 혹시 잘못 듣지 않았나 하는듯 서로 옆사람들을 쳐다보더니 눈들을 껌벅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부녀부장이 나온다누만.》

《어제 오빠가 희생되였다는 비보를 받았다던데…》

《오빠가 누구야?》

《아, 금곡… 공청서기 있잖아.》

《아, 그 노래 잘하는 사람?… 아니? 그 사람이 희생되였단 말이요?》

《쉬!》

계순은 무대에 나섰다. 수선거리던 장내가 약속이나 한듯 일시에 조용해졌다. 바늘귀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릴듯… 정적 또 정적…

사람들은 일제히 계순에게 시선을 모았다. 그러다 더더욱 놀라 입들을 항 벌렸다. 그처럼 탐스럽고 함함하던 머리태가 간곳 없고 단발을 하고있었기때문인것 같았다. 머리태는 왜 잘랐을가. 왜, 왜?

사람들의 눈가에 물기가 핑그르 고여오른다. 눈들을 슴벅이다가 얼른 고개들을 돌린다. 눈이 쓰려서 차마 더 볼수가 없는 모양이다. 또다시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불태웠다》, 《리지춘》, 《복수》…

계순은 울컥 목이 메여올랐다. 야속하게도 눈물이 핑 돈다.

아, 오빠!

목놓아 불러보고싶다. 왕왕 울고싶다.

계순은 눈을 슴벅거렸다.

문득 사람들 맨 뒤에 서있는 조직부장이 눈에 띄운다. 그이는 생각깊은 눈길로, 감동에 젖은 믿음에 찬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고있다.

그 순간 계순은 조직부장이 고개를 끄덕여주는것을 보았다. 불시에 가슴이 쩡 울리더니 혈관을 따라 뜨거운 그 무엇이 쫙 퍼져나갔다.

계순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저 멀리 파랗게 높아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하늘로 수리개 한마리가 훨훨 날아가고있다. 장군님 가신다는 먼 북쪽하늘이다. 그쪽엔 벌써 눈이 하얗게 내렸을것이다.

아― 장군님, 뵙고싶습니다.

바이올린소리가 들려왔다.

손원금이 전주를 타고있었다.

계순은 천천히 두손을 가슴 앞으로 모아올렸다.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삼천리강산을 밝게도 비치네

 

계순의 눈가엔 또다시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다.

오빠가 그토록 그리워하면서 배워주던 이 노래, 저 일환조직부장동지도 그토록 우러르며 따르는분…

 

짓밟힌 조선에 동은 트리라

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공연이 끝나자 김일환은 리계순을 찾아와 손을 꼭 잡아주었다.

《고맙소, 계순동무. 정말 고맙소.》

약간 흥분한듯 한 음성이였다.

계순은 별로 뜨거워진듯 한 조직부장의 손에 자기 손을 맡긴채 얼굴을 붉혔다. 고개를 수그렸다.

《공연은 정말 큰 성과를 거두었소. 사람들의 열의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모르오. 래일은 어떻게 하겠소?》

계순은 고개를 쳐들었다.

《계획대로… 반일부대에 가겠어요.》

김일환은 미더운 눈길로 이윽토록 계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황황 불타는듯 한 눈은 하많은 사연을 속삭이고있었지만 두툼한 입술사이로는 단 두마디만 흘러나왔다.

《고맙소, 계순이!》

계순이들의 노래소리는 다음날엔 반일부대병영뜨락에서 또 그 다음날엔 유격근거지의 살림집 짓는 전투장과 점호를 파고 돌무지들을 쌓는 산고지들에서 사람들의 가슴마다 타오르고있는 불을 더욱 세차게 치솟구어주며 힘있게 울려퍼지군 했다.

현당서기 최상동은 어느날 천리봉중턱 돌무지를 만들던 장소에서 연예대공연을 다시 보고는 리계순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어랑촌에서 해놓은 일의 절반은 동무네 연예대몫이요. 동무네는 정말 큰일을 하고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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