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

종 장

3

 

덕수의 눈에는 감격에 겨워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회의장을 진감시키는 우렁찬 환호소리조차 어딘가 먼곳에서 들려오는 우뢰소리같기만 했다.

방금 전원일치의 찬성으로 채택된 새 조직, 총련의 선언과 강령과 규약의 구절구절들이 아직도 귀가에 울리면서 거기에 호응하는 사람들의 환호가 마치 장중한 선률이 되여 자기를 그 어떤 황홀하고도 신비스러운 세계로 이끄는듯싶었다.

(과연 이제부턴 우리가 새 출발하게 된단 말인가! 아직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장군님께서 몸소 열어주신 그 휘황한 큰길을 따라 그 누구의 간섭도 받음이 없이 힘차게 걸어간단 말인가!)

그는 해외교포들로서는 도저히 믿을수도 없고 믿어지지 않는 이 놀라운 사실로 하여 동포들이 더 감격해마지 않는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다음은…》

회의 사회를 맡은 리계백이 단상에 나서서 사람들을 둘러볼 때에야 회의장은 다소 진정되는듯싶었다.

《전체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우리 60만재일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 올리는 감사편지를…》

그제야 정신이 든 덕수는 탁우에 놓여있는 편지를 두손에 들었다. 어쩐지 가슴이 후두둑 뛰면서 그 흥분이 온몸을 쩌릿하게 지지였다. 이제 자기가 장군님께 올리는 감사편지를 읽어야 했다. 자자구구를 다듬고 또 다듬어 뜬금으로 외울수 있는 편지였으나 왜서인지 제대로 읽을수 있겠는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는 심장의 박동이 서서히 박차를 가하는것을 아니, 어떤 나사에 감긴 악기의 현처럼 점점 팽팽하니 헹기우는것을 느끼며 연단으로 나섰다. 정히 접은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여 첫장을 펼쳐든 순간 그는 자기에게 일어난 그 어떤 불가사의한 현상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여태껏 자기의 귀가에서 울리던 우렁찬 함성이 서서히 잦아들고 대신 더없이 부드럽고도 그윽한 선률이 자기를 포근히 감싸는것이였다. 은연중 그 선률에 이끌리여 어디론가로, 멀리 아득히 푸르른 잔디가 펼쳐진 드넓은 광야로 활보하던 자기가 어느새 억센 수리개마냥 창공높이 훨훨 날기 시작하는것이였다. 높은 산과 깊은 강이 있고 아슬한 절벽들이 무수히 솟아있는 계곡들을 넘고넘어 흰갈기를 일으키며 설레이는 무연한 망망대해우를 힘차게 힘차게 날아가는것이였다. 온 세상을 한눈에 굽어보며 기세좋게 날아가다가 갖가지 꽃들이 아름답게 만발해있고 고운 새들이 지저귀는 무릉도원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정경에 그는 그만 어리둥절해지고말았다. 저쯤 앞쪽에서 꽃밭을 거니시는분이 분명 장군님이시였고 장군님께서 환한 미소를 지으신채 자기를 바라보고계시기때문이였다.

《아- 장군님!》

덕수는 저도 모르게 목메여 부르짖으며 그이께로 달려가 두손을 짚고 엎드리였다.

《제가 왔습니다. 장군님께서 주신 로선전환의 과업을 관철하고 총련을 결성한 한덕수가 장군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갈길을 몰라 헤매일 때에는 앞길을 밝혀주시고 힘을 잃고 쓰러졌을 때에는 따뜻이 안아 일으켜세워주시더니 절망의 나락에 굴러떨어져 다시는 일어설 념을 못하자 이번에는 온 세상을 뒤흔들어 이렇게 남들이 다 쳐다보는 그런 자리에 우리를 세워주시였습니다. 이국의 모진 풍파속에서 눈물로 살아오던 저희들, 조선사람도 사람이냐며 죽창에 찔리워 죽고 생매장당해도 어디에 하소할 곳 없었던 저희들이였습니다. 조직을 해산당했을 때에도, 학교를 빼앗겨 한지에 나앉은 불쌍한 어린것들을 볼 때에도 가슴만 치던 저희들이였고 지어는 〈프로레타리아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구호아래 애꿎은 피를 흘리고 억울한 목숨을 잃을 때에도 그저 남의 나라에서 사는 기구한 운명만 저주하며 몸부림치던 저희들이였습니다. 그러나 장군님!》

덕수는 어느새 고개를 들고 떳떳이 긍지에 넘쳐 말씀올리였다.

《그런 저희들이 오늘은 이렇게 밝게 웃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 밝혀주신 로선전환의 방침에 따라 칠칠흑야에 묻힌 가시덤불길을 헤치고 이렇게 긍지높이 서있습니다. 바로 장군님께서 온 세상이 쳐다보는 그런 자리에 저희들을 세워주시였습니다.》

덕수는 무거운 암운이 뒤덮인 하늘에서 갑자기 천지를 진감시키는 우뢰소리와 함께 푸른 번개가 번쩍하는것을 느끼였다. 그러자 신기한 조화, 그 천층만층의 먹장구름이 산산이 흩어지면서 희붐히 열리는 하늘가에 서서히 자태를 드러내는 눈부신 태양이 똑똑히 보이였다.

아- 태양!

《그렇습니다, 장군님! 태양이 비칩니다. 해빛이 쏟아집니다. 태양이 있어 이 땅에 봄이 있고 만물이 존재하듯이 그래서 사람들은 예로부터 태양을 숭배해왔습니다. 그러나 태양을 숭배한다고 하여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것은 아니였습니다. 어떤 종족은 태양신에게 사람제까지 지냈고 또 어떤 종족은 태양가까이에 닿으려고 안데스의 높은 산정에 올라가 살았지만 이끼낀 태양신전과 고대문화만을 쟝글속에 남기였습니다.

이 일본땅에 사는 저희들 역시 태양을 목마르게 그렸습니다. 천조대신을 해의 신으로 숭배하면서 그때부터 국호를 〈해의 뿌리〉라고 했다는 일본이지만 도리여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사나운 날씨여서 더욱 태양을 애타게 바라던 저희들이였습니다. 그런 저희들에게 이젠 태양이 따뜻이 비쳐옵니다. 어지러운 구름장들을 갈가리 찢어발기고 이젠 이렇게 저희들을 따뜻이 안아줍니다. 어찌 저희들뿐이겠습니까. 온 3천만겨레가 아니, 온 세상이 다 장군님의 품을 그리워하고 부러워합니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서 무수한 행성을 움직이는 위대한 힘을 가진 구심체라면 장군님이시야말로 온 세상의 중심에서 태양과 같은 인력으로 저희들과 온 겨레들 또 온 세상을 하나로 끌어당겨 천지만변을 주도해가시는 위대한 태양이십니다. 장군님! 장군님은 정녕 우리의 영원한 태양이십니다!》

《만- 세-》

김일성장군님 만- 세-》

갑자기 터져오르는 열광적인 함성에 덕수는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그는 자기가 편지를 다 읽었다는것을 그리고 자기의 볼이 눈물에 젖어있다는것을 알았다.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하나같이 뜨거운 눈물이 줄지어내리고있었다. 그 눈물은 자기들을 한품에 안아주신 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눈물이였고 자기들의 탄생을 기뻐하는 환희의 눈물이였으며 또 영원히 절망에서 벗어난 긍지와 행복에 넘친 눈물이였다.

덕수는 자기들이 그처럼 힘들게 걸어온 지나간 생활들이 저아래 아득한 골짜기로 어슴푸레 사라지면서 넓고도 광휘로운 앞길이 환히 펼쳐지는것 같았다. 환히 트인 앞길우에는 푸른 하늘이 가없이 펼쳐져있는데 그 하늘 한복판에는 유난히 밝은 태양이 찬연한 빛을 뿌리고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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