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 회)

종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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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전 19차중앙위원회는 신바시에 있는 시바공회당에서 열리였다. 4백~5백명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크지 않은 공회당이였으나 근 배나 되는 사람들이 회의장을 메우고있었다.

중앙위원들은 말할것도 없고 방청들까지도 이 회의에서 재일조선인운동의 근본문제가 토론된다는것으로 하여 특히는 심각하게 론의되여오던 로선전환문제가 어떻게 결판나는가 하는것으로 하여 처음부터 긴장한 표정들이였다.

덕수는 주석단입구쪽에 있는 문앞에서 연단에 나선 민전서기장 김충구의 정세보고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그의 보고가 자기들이 주장하는 로선의 근본적인 전환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가 해서였다. 그러나 보다 긴장시키는것은 이제 김충구의 보고가 끝나면 자기가 《재일조선인운동의 전환에 대하여》라는 연설을 해야 하기때문이였다.

예정되지 않았던 연설을 그것도 민대파들의 과오를 근 1시간동안이나 렬거하면서 해부할수 있겠는지,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느라고 했지만 중앙위원들과 회의참가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키겠는지, 민대파들의 소란을 예견하여 사범학교학생들로 조직된 질서유지대를 회의장 곳곳에 배치해놓기는 했으나 결코 안심할수 없었다.

이윽고 김충구의 정세보고가 끝났다. 그의 보고는 예견했던바대로 최근정세에 대한 일반적인 언급에 이어 재일조선인운동도 이젠 정세발전의 요구에 따라 로선을 전환해야 한다는 판에 박은 소리였다.

회의장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의례히 휴식시간이겠거니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리계백이 단상으로 나서서 다음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인 한덕수동지의 연설이 있겠다고 소개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옆사람을 돌아보며 뜨아해했다. 그러나 서슴없이 주석단앞을 성큼성큼 지난 덕수는 연단에 나섰다. 그리고는 침착하면서도 엄숙한 눈길로 장내를 돌아보았다.

《방금 서기장은 정세보고에서…》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문제의 본질로 육박해들어갔다.

《우리가 로선을 전환하는것이 마치 이젠 국제적으로 평화적공존이 가능하게 되고 정세가 발전되였기때문인것처럼 지적했는데 이것은 얼토당토않은 궤변이며 구실입니다.》

《?!》

어리둥절해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다시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왜 궤변이고 구실인가? 량진영의 평화공존과 평화정책은 오늘에 비로소 제기된것이 아니라 이미부터 확정된것이고 정세 역시 최근에 갑자기 좋아진것도 아닙니다. 운동이 전환되는 리유는 어디까지나 최근 수년간의 재일조선인운동이 자기의 로선에서 멀리 벗어나 옳게 전개되지 못했기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전환은 단순히 정세발전에 따르는 전술전환이 아니라 로선상오유를 바로잡기 위한 근본적인 전환으로 되여야 한다는것입니다.》

《옳소!》

《로선전환이지 전술전환이 아니란 말이요!》

회의장 여기저기에서 호응이 터져올랐다. 측근들의 응원이였다.

《아니, 이런 법이 어디 있소?》

갑자기 회의집행을 맡은 민대파의 주구인 박의장이 손을 저으며 소리쳤다.

《사전에 계획에도 없던 연설을 하는 법이 어디 있소? 이런 문제 제기방법이 어디 있는가 말이요?》

《계획에 있고없고가 문제요?》

그옆에 앉아있던 윤덕곤이 벌떡 일어났다.

《문제제기의 방법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가가 더 중요한거요. 더우기 민전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소속된 한개 단체이며 한덕수동지는 개인으로가 아니라 바로 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중앙위원자격으로 연설하고있다는걸 알아두시오.》

《…》

그 말에는 누구 하나 찍소리 못했다.

덕수는 창황중에도 민대파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기도 하고 쪽지를 돌리는것을 놓치지 않고 주시했다.

덕수는 연설을 계속했다.

먼저 재일조선인운동에서 지도적지침으로 삼아야 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교시를 밝히고 그 교시에 비추어 지난 기간의 재일조선인운동의 과오를 시기적으로 또 구체적인 사실을 들어가며 낱낱이 폭로했다. 그리고는 그 원인과 엄중성에 대해 지적한 다음 여덟가지로 된 앞으로의 투쟁방향까지 제시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하여 놀란 사람들이 점점 덕수의 토론에 심취되다가 그가 연설을 끝냈을 때는 열렬한 박수를 보내였다. 하지만 민대파들은 대뜸 고함을 지르는가 하면 어떤자는 의자를 주먹으로 쾅쾅 두드려대기도 했다. 마치 불맞은 짐승처럼 날뛰였다.

바빠맞은 박의장이 보고에 대한 토론은 래일로 미룬다고 해서야 회의장은 진정되였다.

다음날 벌어진 토론은 처음부터 맹렬한 론쟁이였다. 민대파들도 하루사이에 단단히 준비를 해가지고 나온게 분명했다.

미에현대표가 이제까지의 재일조선인운동에서 근본적인 탈선은 없었으며 분석도 정확했기때문에 서기장의 보고를 무수정 지지한다고 하자 뒤따라일어난 민애청대표가 로선전환은 어디까지나 정세발전에 따르는 전술전환이여야 한다면서 그 리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니요! 절대로 그렇게 되여서는 안되고 그렇게 될수도 없소!》

조선문제연구소 대표 김병식이 주먹을 휘두르며 자리를 차고일어났다. 그는 덕수가 장군님께서 앞으로의 운동을 위한 핵심을 키울데 대해 가르치신대로 로선전환투쟁과정에 인입한 리론에도 밝고 투지 또한 만만치 않은 사람이였다.

《이제까지의 운동은 한덕수동지가 지적하다싶이 방법상오유가 아니라 로선상오유에 있소. 일본공산당로선에만 추종한 사대매국행위란 말이요. 그런데도 보고를 지지하며 전술전환을 떠드는것은 무엇때문인가? 바로 자기들의 잘못을 가리우고 책임을 회피하자는것이요. 그것외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요.》

《옳소!》

《솔직하게 비판해야 하오!》

《아니요! 그런 주장을 하는 당신들이야말로 과거의 운동을 일체 부인하자는 청산주의자들이요.》

앞자리에 앉아있던 정동은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쳐들며 주먹을 흔들었다.

《바로 당신들의 행동은 렬세에 몰린 저들의 처지를 우리들에 대한 공격으로 만회해보자는 〈편협한 민족주의자〉들의 객기에 지나지 않소! 도대체 여태까지의 로선이 무엇이 잘못이며 어떤것이 조국을 위한것이 아니였단 말이요. 우리의 투쟁은 시종일관 조국의 리익에도 부합되게 지향되고 전개돼왔소. 있다면 3반투쟁을 과업으로 정한것인데 그것은 보고서에서도 좌경적이였다는것이 언급됐소. 그러나 그것도 방법상결함일뿐이요. 거기에 무슨 사상적문제가 있다는거요. 인정할수 없소! 절대로!》

《인정할수 없다니?》

이번에는 교동부위원장 리동준이 야무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역시 덕수가 각별한 관심을 돌려온 사람으로서 불같은 열정과 함께 대쪽같은 결패를 지닌 서른안팎의 젊은이였다. 특히 이번 회의를 준비하면서 그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되는 장군님의 저작집인 《자유와 독립을 위한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이라는 책을 내였고 그 사상으로 일군들을 꾸준히 준비시켜왔던것이다.

《만약 조국에 대한 립장이 철저하다면 어째서 서기장보고에 조국에 대해서는, 조국의 성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소? 어째서 3개년계획의 자랑찬 성과며 무상치료제실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느냐 말이요. 그리고 어째서 민전을 조국에서 떼내여 조국을 외국처럼 취급하면서 일본의 민주민족통일전선의 일익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규정한데 대해서는 피했소. 그래 이것도 방법상오유요? 이것도 조국을 배신한 본질적이며 사상적인 과오가 아닌가 말이요. 때문에 이번 로선전환의 기준은 철저히 조국이냐 아니냐의 각도에서 분석되여야 하고 그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하오.》

《심판? 누가 누구를 심판한다는거요?》

《잠꼬대같은 소리는 하지도 마시오.》

《민족파들을 몰아내라!》

누군가의 고함소리에 이어 째지는듯 한 휘파람소리가 나더니 회의장 한쪽 입구로부터 사납게 생긴 젊은이들이 여럿이 나타났다. 분명 민대파들이 끌어들인 행동대들이였다. 삽시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이미 분담을 정해놓은듯 그들은 대상자들을 찾아 회의장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반대쪽 입구에서 수십명의 청년들이 우르르 밀려나왔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는것을 미리부터 예견한듯 삼삼오오 짝을 지은 그들은 순식간에 행동대들을 제압해치웠다. 이미 대기시켜놓았던 사범학교학생들이 그들과 합세했다.

너무나도 놀라운 광경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래있는데 한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청년들에게 말했다.

《놈들을 몽땅 회의장밖으로 몰아내시오. 다시 회의를 파탄시키려는 놈이 있으면 그땐 용서하지 마오!》

그를 바라보는 순간 덕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로재호였다.

(아니, 재호가?)

로선전환을 준비하면서부터 자주 재호를 만나 민대파의 본질이며 과오에 대해 충고해주었지만 그때마다 그자신은 이렇다 하게 한마디의 견해도 표명하지 않았었다. 여느때는 속에 품고있는것을 다 털어놓아야만 시원해하는 그였으나 갑자기 딴사람이 되기라도 한것처럼 일체 묵묵부답이였다. 그런 재호를 보며 이젠 다소 자기의 결함을 깨닫고있다는것을 느끼였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는 분간할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장내를 한번 돌아보고난 재호는 고개를 떨구며 나직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도 아다싶이 나는 조방대책임자로서 민대부의 지시를 앞장에서 집행해온 사람입니더. 서기장의 보고에도 지적되였고 방금 토론에서도 언급된 그 3반투쟁을 제일선에서 집행해온 사람이란 말입니더.》

그의 흥분된 목소리에는 자책이 어려있었다.

《나 역시 방금 어느 대표가 토론한것처럼 처음에는 우리가 미제와 일제를 반대하면 그것이 곧 조국을 위하고 동포들을 위한 일로 된다고 여겼고 그래서 동포들과 청년들을 3반투쟁에로 이끌었지요. 그러나 그게 조국을 위한 일이 아닐뿐더러 동포들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것을 똑똑히 깨달았습니더. 그것을 어떻게 깨달았는가를 말하기 전에 나는 먼저 바로 나때문에 3반투쟁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청년들, 무모한 피를 흘리고 지금도 옥중에 갇혀있는 동포들에게 심심한 사죄를 표하지 않을수 없습니더.》

격정을 누르는듯 잠시 입을 다물고있던 그는 곧 고개를 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3반투쟁이란 한마디로 말해 일본혁명앞에 나서는 일본인민의 과업이지요. 우리 재일조선인들이 그 과업을 수행한다는것은 일본혁명에 나서는거고 그래서 무모한 희생까지 내야 한다는겁니더. 난 지금도 일본경찰의 총에 맞아 숨이 지면서도 어째서 우리가 일본혁명의 돌격대로 나서서 총알받이가 되여야 하느냐고 안타까이 소리치던 한 청년의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더.

일본혁명이 수행돼야 우리 문제가 풀린다고 생각하는건 어떻게 보면 주인집이 잘돼야 자기 처지도 좋아진다고 여기는 하인들의 노예근성이지요. 그래 우리가 주인을 위해 목숨을 내대는 하인입니껴? 아입니더. 우린 하인이 아닐뿐아니라 당당한 공화국의 공민이란 말입니더.

나도 처음엔 미제와 일제를 반대하면 그게 조국을 위해 싸우는것이라고 믿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미제를 반대하고 일제를 반대했다는데만 있는것이 아니라 조국을 옹호고수하지 않고 조국을 위한 투쟁을 하지 않았다는데 있단 말입니더. 방금 한덕수동지의 연설에 지적되여있다싶이 재일동포들은 어디까지나 조국의 두리에 뭉쳐 조국의 륭성번영을 위해 싸우는기 첫쨉니더. 조선사람이 조선혁명을 하지 않고 조국을 위해 투쟁하지 않았으면 그게 민족을 배반하고 조국을 반대한것이지 무엇입니껴! 여러분!》

어느새 로재호의 눈에서는 불꽃이 번뜩이였다.

《나는 내자신이 조국앞에, 동포들앞에 지은 죄가 얼마나 큰가를 가슴저리게 느끼고있습니더. 또 그 벌을 받을 각오도 돼있습니더. 난 나서겠습니더. 나처럼 죄가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나서시오. 비겁하게 꽁무니를 사리지 말고 대담하게 나서서 동포들의 심판, 조국의 심판을 받잔 말입니더.》

그의 표정이며 목소리가 얼마나 처절한지 회의장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이제껏 떠들어대던 민대파들까지도 아무 대꾸를 못했다.

덕수는 고개를 숙인채 자리에 앉는 재호를 당장 달려가 부둥켜안아주고싶은 충동을 억제할 길이 없었다.

(고맙다, 재호!)

저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울컥 치밀어올랐다.

회의는 결국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로선전환방침에 따라 재일조선인운동의 로선을 근본적으로 전환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였다. 그 결정이 전달되자 회의장에 있던 사람들은 일시에 자리를 차고일어나 폭풍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였다.

다음날 덕수는 리계백, 윤덕곤, 김상기와 함께 일본공산당본부를 찾아갔다. 이젠 일본공산당과도, 민대부의 원철이와도 명백한 계산을 할 때가 된것이다. 말하자면 일본공산당으로 하여금 조직적으로 재일조선인운동의 로선전환을 받아들이게 해야 할뿐아니라 앞으로 다시는 조선인운동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담보를 받아내야 했다.

요요기역에서 당본부청사까지는 불과 2~3분의 거리였으나 덕수는 어쩐지 발걸음이 쉬이 옮겨지지 않았다. 이 요요기며 시바, 신바시, 얼마나 감회와 추억이 깊은 곳인가! 조련준비위원회로부터 조련결성, 조선인조직의 발족과 출발이 바로 이 지역이였다. 조련중총회관이 이 신바시에 있었고 여기에서 매일처럼 일군들과 함께 화물차짐칸에 올라 출근하군 했었다. 재일조선인운동이 시작된 곳에서 다시 과거의 허물을 벗어던진 새로운 운동이 시작되려는것이다.…

 

3층 옥상에 붉은기가 나붓기는 공산당본부청사에 이르자 정문앞에는 국내당림시중앙지도부의 가스가가 덕수를 마중했다.

방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일본군대옷인 누런 잠바를 입은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인사를 했는데 그가 바로 국내당활동을 주관하는 아끼야마였다.

일본공산당5전협이후 당활동과 당내사정에 대해 언급하고난 그는 무슨 변명이라도 하는듯 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중국에 있는 당수뇌부의 지시에 따라 우리도 재일조선인운동에 대한 지도에서 과오가 있었다는것은 이미 인정했습니다만 그 집행이 본의아니게 늦어졌습니다. 우리도 이젠 재일조선인운동과 조선인당원들에 대한 지도에서 범한 과오가 바로 그들이 조국을 위한 투쟁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한데 있다는것을 심심히 뉘우치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번 전환은 결코 전술전환이 아니라 로선전환이며 따라서 그에 맞는 당민대부의 해산을 비롯한 조선인당원들의 리당문제 등 일련의 조치들을 곧 취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재일조선인운동의 전환을 성실하게 협력하겠다는것을 약속했다.

덕수는 다시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을 잡으면서도 그뒤에 서있는 원철과 김충구, 정동은의 수수떡같이 시커멓게 죽은 얼굴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여보시오!》

덕수는 원철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수 없었다.

《사람이 제정신을 잃으면 어떤 허수아비가 된다는걸 알겠소? 이젠 제정신을 가지고 사시오.》

그날부터 덕수는 새로운 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앞으로의 운동방향과 조직형태, 강령, 규약초안들을 준비했다. 그리하여 어제 있은 민전6차림시대회에서 민전시기의 과오들을 다시금 철저히 비판한 다음 민전을 해산하고 새로운 조직-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를 결성한다는것을 결정했던것이다.

바로 오늘이 그 력사적인 총련의 결성을 세상에 선포하는 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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