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회)

종 장

1

 

유난히 맑게 개인 날이였다.

가없이 푸르게 펼쳐진 하늘이였다.

일본 도꾜의 한복판, 한복판치고도 가장 번화한 곳에 자리잡은 아사꾸사공회당앞의 드넓은 공지에는 명절차림을 한 수많은 동포들이 손에손에 공화국기를 들고 모여있었다. 이른아침부터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해가 퍼지는 지금에 와서는 벌써 공지를 가득 메우고있었다. 거뜬한 양복차림의 남자들이며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녀인들, 백발을 날리는 로인들과 까까머리 아이들… 나이차림은 각양각색이였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싱글벙글 웃음이 피여있었다. 미리 조직한것도 아니고 누가 알린것도 아니였으나 오늘을 손꼽아기다리던 동포들이 너도나도 여기로 모여든것이였다.

1955년 5월 25일.

여태껏 갈길을 찾지 못해 비극적인 수난을 겪어오던 재일동포들이 머리우에 무겁게 드리웠던 암운을 밀어던지고 마침내 자기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존엄있는 해외공민이라는것을 자랑차게 시위하는 날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독창적인 해외교포운동사상의 빛나는 산아이며 그리하여 인류해외교포력사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첫 주체형의 해외교포조직인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의 장엄한 탄생을 온 세상에 엄숙히 선포하는 날이였다.

공회당입구쪽에서 새납소리와 장구소리가 들려오는가싶더니 곧 요란한 꽹과리소리와 함께 울긋불긋한 바지저고리차림을 한 농악대가 어깨춤을 추며 들어서고있었다. 어느 지부에서 오늘을 축하하기 위해 조직한 농악대가 틀림없었다.

《꽹과당 챙- 꽹과당 챙!》

《삘리리- 삘리 삘리 삘리리 리-》

늙은이들은 벌써 농악대속에 섞이여 어깨를 들썩이는데 신명이 나서 어쩔바를 모르는듯 손벽을 치며 소리까지 질러댔다.

《쭈우- 타!》

《조-오 치!》

사람들은 하나같이 흐뭇한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보았고 아이들도 덩달아 좋아라 농악대주변을 맴돌이쳤다. 농악대뒤를 따르며 까치걸음을 치는 놈이 있는가 하면 손나팔을 만들어 새납부는 흉내를 내기도 했고 어떤 놈은 갑자기 귀청을 찢는 꽹과리소리에 화닥닥 질겁을 하며 귀를 막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가운데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열두발상모를 신기한 눈길로 지켜보다가 그 상모끝이 자기 눈앞을 피끗피끗 스칠 때마다 한마디씩 지껄여댔다.

《히야- 히얀하제, 그치?》

《저기 우리 조선춤이라는기다.》

《춤이 뭐꼬. 저건 춤이 아니고 사까스다.》

《사까스가 아니라 춤이란데.》

《아니야, 사까스야!》

《춤이야!》

《사까스야!》

《춤!》

《사까스!》

코를 맞대고 춤과 사까스를 겨끔내기로 웨쳐대던 두녀석은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쟝- 께이.》하고 손을 공중에 쳐들어올렸다가 《쉿!》하며 내리였다. 아마 론쟁으로 결판나지 않을 때에는 쟝 께이를 해서 결정하기로 약속돼있는것 같았다.

《온다!》

드디여 누군가가 이렇게 웨치자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공회당으로 들어오는 입구쪽으로 쏠리였다. 《축》이라고 쓴 커다란 초롱이 매달려있는 아치형대문으로 오늘 회의를 주관할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오고있었다.

얼굴에 웃음을 띠운 한덕수가 량옆에 있는 리계백, 윤덕곤, 리심철과 무슨 얘기를 주고받으며 걸어오는데 그뒤로 김상기, 림광철, 리진규, 윤봉구가 녀맹위원장 김은순, 구월서방 사장 로병우, 조선통신사 사장 김병소, 통일동지회 회장 문동건 등 각 단일단체 책임자들과 함께 따르고있었다.

《저가운데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연설을 한 사람이요?》

누군가 옆사람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유명한 연설이라니?》

《왜 민전 19차중앙위원회에서 민대파들을 이리 치고 저리 치고 해서 민전을 뒤집어엎은 그 연설 말이요.》

《뒤집어엎다니?》

안경을 낀 사람이 펄쩍 뛰였다.

《이 량반 큰일날 소리 하는구먼. 민대파들이 범한 과오를 비판하고 바로잡은게지 뒤집어엎었다는게 뭐요?》

《아따, 둘러치나 메치나 한가지가 아니요.》

《하긴 그 소리도…》

펄쩍 놀라던데 비해서는 너무나도 수월하게 수긍하는 안경쟁이였다.

이번에는 반대쪽에 서있던 사람이 다시 그에게 물었다.

《저 의장이 조국에서 파견돼왔다는 말이 맞소?》

《뭐-요?》

안경쟁이가 이번에는 더 화들짝했다.

《이 량반 정말 큰일날 소리 하는구먼. 저 사람이 바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이란 말이요.》

《그러니까 결국 조국에서 파견된거나 같은게 아니고 뭐요.》

《하긴 그것도 그래.》

이번에도 역시 제꺽 고개를 끄덕이는 안경쟁이였다.

모든 사람들이 한덕수를 선망이 어린 눈길로 지켜보는데 갑자기 두 젊은이가 그앞으로 달려나갔다. 현우와 서민이였다.

《축하합니다, 의장동지!》

두사람의 손을 잡은 덕수의 얼굴에도 밝은 웃음이 어리였다.

《나도 대표자명단에서 동무들 이름을 봤소. 현우동문 해신(《해방신문》)대표고 서민동문 히로시마대표라지? 그동안 수고들이 많았네. 특히 해신이 이번에 큰일을 했어.…》

말을 이으려던 덕수는 옆에서 웬 로파가 다가와 덥석 팔을 붙잡는 바람에 그리로 돌아서지 않을수 없었다.

《이보이소, 의장요. 그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기요.》

태길이 어머니 박할머니였다.

《내 이제사 우리가 바른길을 가는갑다 하니 눈물이 납니더. 우짜믄 이 길로 가는기 그렇게도 힘이 들었습니껴, 예? 태길이… 그 눔이 살아있으면 얼마나 좋아할고 생각하믄… 그렇지만 걱정마이소. 내 울지 않습니더. 오늘같은 날 눈물을 보여서야 안되지요. 내 울지 않습니더.》

그러나 박할머니의 두눈에는 눈물이 그렁하니 고여있었다.

《어머니!》

덕수는 박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진정이 넘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젠 우리가 괜한 고생을 하지 않게 되였습니다. 남들때문에 목숨을 잃지도 않고 더는 피를 흘리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된것이 다 태길이의 영웅적투쟁이 있었기때문이고 또 어머니같은분이 우리를 적극 도와주셨기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자- 우리와 함께 회의장으로 가십시다.》

덕수가 태길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회의장으로 향하자 옆에 있던 리계백이며 윤덕곤은 물론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까지도 하나같이 박수를 치며 환영해주었다.

태길이 어머니와 함께 걷노라니 덕수의 눈앞에는 은연중 조국에서 돌아와 로선전환을 준비하고 실천하던 2년세월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치였다. 정말 간고하고 치렬했던 2년이였다.

어떻게 하면 장군님께서 주신 로선전환의 력사적인 과업을 관철하겠는가에 대해 이다바시에 있는 자그마한 목조려관방에서 매일처럼 밤을 새워가며 토론하던 일이며 먼저 조국통일호소문관철을 위한 투쟁에로 동포들을 조직하면서 조선대학 건설위원회와 구월서방을 창립하던 일, 박룡이가 준 자료에 근거하여 리종훈의 정체를 《해방신문》에 폭로하고는 민전 4차전체대회에서 저들이 결정한 3반투쟁을 반리승만투쟁을 첨가하여 4반투쟁에로 돌려세우던 일, 그런가 하면 앞으로의 사업을 위하여 젊고 패기있는 일군들을 투쟁일선에 인입하던 일…

그러나 민대파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일본공산당 수뇌부로부터 로선을 바꾸어야 한다는 지시가 떨어지자 그들은 아연실색했다. 아니, 당황망조했다. 여태까지 그처럼 완강하게 주장해온 재일조선인운동에 대한 지도와 무장투쟁로선에 대한 포기가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이 아닐수 없었다. 처음에 놀라던 일이 다음에는 반발을 불러일으키는것처럼 민대파들도 곧 발악적으로 책동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4반투쟁에로 전환한 투쟁방침을 다시 3반투쟁으로 돌려세웠는가 하면 민전서기장 리계백대신 그 자리에 김충구를 들여앉히였다. 또한 도꾜중고교장인 림광철을 종내 몰아내고 저네들 주구를 박아넣었으며 다시금 《해방신문》을 민전기관지로 만들기 위해 자기의 심복을 편집국장으로 밀어넣으려 했다. 그러나 덕수는 원철의 민전기관지책동은 기관결정위반일뿐더러 새 편집국장파견도 날조된것임을 폭로하고 놈들이 절대 발붙이지 못하게 리심철과 최은한에게 과업을 주었다.

그러자 이젠 저들로서도 로선전환을 막을수 없다는것을 깨달은 민대파들은 비렬하게도 교활한 책동에 달라붙었다. 그것은 《정세가 발전되였기때문에 재일조선인운동도 투쟁방법과 조직형태가 전환된다》는 소위 정세발전론과 전술전환을 들고나온것이였다.

그렇게 주장함으로써 여태껏 재일조선인운동을 그릇되게 이끌어온 저들의 죄행을 가리우는 동시에 설사 비판이 되는 경우에도 전술상과오이지 로선상과오는 아니라는것을 인식시키자는것이였다.

그러면서 로선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덕수를 비롯한 애국적인 활동가들을 도리여 청산주의자니 편협한 민족주의자니 하면서 악착하게 헐뜯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놈들의 책동에 대해 료해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곧 54년 8월과 55년 2월 두차례에 걸치는 공화국외무성성명을 발표하도록 하시였다.

성명들은 일본과의 관계에 대한 공화국정부의 원칙적인 립장을 천명한것이였다. 재일동포들은 일본의 소수민족이나 민족의 파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화국공민이라는 립장으로부터 일본의 주권과 법을 존중하는 대신 일본정부도 동포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것을 요구한것이였다. 성명은 결국 일본과의 관계만 아니라 이제까지의 재일조선인운동이 일본의 주권타도의 앞장에 섬으로써 일본 내정에 간섭한데로부터 일본인민들로부터 고립되였고 중요하게는 조국이 부과한 임무에서 완전히 리탈되고있었다는것을 명백하게 지적한것이였다. 말하자면 민대파들이 범한 과오에 대한 철추인 동시에 앞으로의 투쟁방향과 투쟁형태를 밝힌것이였다.

(그렇다! 바로 이것은 장군님께서 공화국정부의 립장을 일본 정부에 밝히심으로써 우리들에게 로선전환의 결정적인 시기가 왔다는것을 알리는것이다. 더는 주저하지 말고 로선전환을 위한 총공격을 개시해야 한다는 장군님의 명령이다!)

이런 확신과 신심에 충만된 덕수는 곧 그 공격을 3월에 열리는 민전 제19차중앙위원회로 정했다. 이 회의를 통해 동포들에게 민대파들의 과오를 전면적으로 폭로하는 동시에 장군님의 로선전환방침의 정당성을 똑똑히 알게 해야 했다. 놈들의 과오가 얼마나 반민족적이고 반애국적인가를 낱낱이 밝혀내고 온 세상에 새로운 재일조선인운동의 장엄한 포성을 울려야 했다.

그날부터 덕수는 운명이 판가리되는 날까지 단 하루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그 방도들에 대해 모색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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