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 회)

제 5 장

9

 

흔히 생활일반이 그런것처럼 어떤 경사로운 일이 있게 되면 그 일을 치르어야 할 당사자보다도 옆에서 거들어주어야 할 사람이 더 바쁘고 분주하기마련이다. 그것도 결혼식쯤 되고보면 방조자의 부담이란 실로 이만저만한것이 아니다.

덕수도 그랬다. 신랑신부인 지영이와 영신이 모습은 보이지도 않고 오직 그가 집안팎을 돌아치면서 집을 거두기도 하고 방안치장을 하기도 했으며 문보들을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집안팎을 드나들던 그가 음식들을 실은 내각 후방차가 들이닥치자 이번에는 또 그 음식들로 큰상을 차리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우스운것은 신부의 아버지이고 신랑의 장인이 될 박룡이는 덕수가 하는 일을 뒤에서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하는것이였다. 참견은커녕 거들지도 못하다가 덕수의 지시가 떨어지면 그제야 부랴부랴 움직이는데 마치 결혼할 당자의 아버지가 덕수라면 박룡이는 그저 옆에서 분부나 시행하는 심부름군같았다.

사실 처음엔 오늘의 실권을 위해 서로 아웅다웅했으나 영신이의 혼례복을 놓고 하는 첫 접전에서 그만 덕수가 완전히 주도권을 틀어쥐고말았다. 한사코 영신이의 혼례복장을 칠보단장에 쪽도리까지 쓰게 해야 한다는 박룡이의 주장을 덕수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칠보단장이라니? 그건 안되네!》

《왜 안된단 말인가?》

《이미 준비해놓은 분홍치마저고리가 어때서? 그래,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건가?》

《아니, 그래서가 아니라 걔야 자네도 알다싶이 일본땅에서 일본어머니의 품에서 난 애가 아닌가. 그런 애가 오늘 장군님의 사랑으로 어엿한 조선처녀로 태여났는데 이왕이면 순수한 조상전래의 차림으로 장군님앞에 세우고싶어서 그러네.》

《그렇다면 더욱 치마저고리를 입혀야지. 장군님사랑으로 새로 태여난 영신이는 새 조선의 영신이지 그전날의 춘향이가 아니거던!》

도대체 신부의 단장과 새 조선이 무슨 상관인가고 의아해한 박룡이였다.

《어떻든 난 꼭 칠보단장을 시켜야겠네.》

《천만에! 치마저고리가 더 좋다는데.》

덕수를 마주보던 박룡이가 어처구니 없다는듯이 말했다.

《아니, 오늘 시집가는게 도대체 누구의 딸인가?》

《누구의 딸?》

박룡의 말을 곱씹는 덕수의 입귀가 실룩했다.

《아무리 아버지라고 해도 제 딸이 아니라고 내쫓은건 누군데?》

그 말에는 대꾸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비트는 박룡이였다. 그런 그를 보며 덕수가 확정적으로 말했다.

《내 말 안하자다가 하네만 명심해 들으라구. 내가 왜 치마저고리를 입히자는지 아나? 장군님께서 칠보단장보다 치마저고리차림을 더 좋아하시기때문이네.》

《뭘?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아?》

놀라는 박룡이에게 덕수는 자기 가슴을 손바닥으로 탁 두드려보였다.

《내가 그것도 모르고 결혼식을 주관하는줄 아나? 장군님께서 결혼식준비를 나한테 일임하신 때에야 벌써 그쯤한 지시는 다…》

뒤말을 얼버무리는 덕수였으나 박룡은 아연한 기색을 지었다.

정말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였다. 그때부터 그는 다소 의견이 있더라도 함부로 나서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더는 덕수가 하는 일에 간참할념을 못했다.

지금도 그는 큰상을 차리는 덕수를 미덥지 않은 눈길로 지켜보면서도 정작 입을 열지는 못했다. 마침 덕수가 곶감이 담긴 접시를 상앞머리에 놓자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

《그건 왜 거기다 놓나?》

《왜?》

《왜라니? 그건 그 자리가 아닐세.》

아무렴 상을 차리는것까지야 장군님 지시랴싶었던지 박룡은 얼른 상앞으로 다가섰다.

《관혼상제에는 다 법도가 있는 법일세. 유전견후라고 무른 음식은 앞에 놓고 굳은 음식은 뒤에 놓게 돼있단 말이네. 곶감처럼 무른것이 굳어진건 이렇게 중간쯤에 놓는거지. 그런 문제에서야 아무렴 내가 자네보다야 낫지!》

방금 놓은 곶감접시를 뒤에 가져다놓고 이미 놓인 과일그릇들을 다시 손질하는 박룡을 보며 덕수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하긴 자네야 아마데라스 오오미까미에다 새우젓을 발라놓으면 〈천황〉이 죽는다는것까지 다 알고있으니까.》

《하하!》

갑자기 박룡이 큰소리로 웃어댔다. 잘 웃지 않는 그였으나 일단 웃기만 하면 천진한 어린애처럼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온몸을 들썩거리였다. 그러나 그가 호탕하게 웃는것은 이젠 덕수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게 되였다는 일종의 만족감에서였다. 그렇게 웃던 박룡이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곧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덕수에게 다가앉았다.

《여보게!》

새삼스런 시선으로 덕수를 여겨보는 그의 두눈에는 왜서인지 물기가 번뜩이였다.

《옛날엔 서로 원쑤가 되여 싸우던 우리가 오늘은 이렇게 나란히 앉아 딸애잔치상을 차리고있네. 이렇게 같이 있는 우릴 재일동포들이 본다면 뭐라고 하겠나. 난 이 사실이…》

박룡의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덕수 역시 생각에 잠기였다. 정녕 장군님이 아니시고야 어떻게 자기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있을수 있을것인가! 이미부터 조선사람은 다 장군님품에 안겨야 하며 그래야 진정한 희망도 보람도 있다는 말은 해왔지만 그 말이 이처럼 값진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줄은 덕수자신으로서도 미처 알수 없었던것이다.

《참!》

한가지 사실이 떠오른 덕수는 얼른 박룡이를 마주보았다.

《내 한가지 걱정이 있는데 아무래도 자네의 도움을 좀 받아야 할것 같네.》

박룡의 두눈에는 금시 의아한 빛이 어리였다.

《내가 오늘 잔치의 주례를 맡지 않았나.》

《그런데?》

《장군님께서 몸소 참석하실텐데 우선 주례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게 근심이 돼서 그러네. 일반적으로 하는 일엽편주요, 일심동체요 하는 말이야 할수 없지 않나. 주례도 주례지만 보다 중요한건 말이네…》

덕수의 표정은 어느덧 안타까움에 젖어있었다.

《내가 오늘은 꼭 장군님앞에서 노래를 불러야겠는데 주례를 서가지고야 어떻게 노래를 부른단 말인가? 이게 난사란 말일세.》

《노래?》

노래라는 소리에 박룡은 대뜸 심중한 기색을 지었다. 그도 덕수가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며 괜찮게 부른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주례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건 모르겠네만 노래는 내가 책임지지.》

《어떻게?》

《분위기를 보다가 내가 자연스럽게 자네가 노래를 부를수 있게 하겠단 말이네. 그러니 다른 걱정은 말고 준비나 잘해두라구.》

그제야 덕수는 한시름 덜었다는듯 비죽이 웃었다. 그런 덕수를 보며 박룡이 뒤를 달았다.

《한데 조건이 있네! 노래를 꼭 한절 아니면 두절로 끝내야 한다는거네. 알겠나? 자네야 노래를 부르면 보통 3절, 4절짜리를 다 부르니 그게 문제거던. 그래 오늘은 몇절짜린가?》

《전에 조국에 올 때 지은 가사에 곡을 붙인건데 본래는 3절이였지만 이번에는 내가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된 행복까지 덧붙이였으니 모두 넉절이지.》

《넉절? 안되네. 그건 너무 길어!》

박룡이 손을 젓자 덕수는 박룡의 팔을 덥석 잡았다.

《아니, 노래야 곡도 중요하지만 가사에 진미가 있는건데 두절로야 어떻게 감정을 다 담는단 말인가. 한번 들어보겠나?》

창문쪽으로 돌아앉은 덕수는 곧 몸을 기울거리며 《조국애에 불타는-》하고 정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해서 마지막 〈이 행복- 끝이 없다네〉로 끝나는데 좀 빨랑빨랑 부르면 안되겠나?》

사실 덕수는 오늘 결혼식에서 자기가 맡은 주례도 주례지만 한번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 장군님의 칭찬을 꼭 받고싶었다. 그리고 그 노래에 그처럼 조국을 애타게 그리던 자기 마음과 이젠 조국의 품에서 장군님을 모시고 살게 된 무상의 행복을 격조높이 웨치고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였다.

…그 시각 지영이와 영신이는 청류벽밑으로 휘우듬히 뻗은 대동강변길을 거닐고있었다. 립춘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강가에는 구들장같은 얼음들이 우쭉비쭉 솟아있고 추위에 언 물오리떼들은 깃을 접은채 옹크리고있었다. 그러나 두사람은 조금도 추운줄 몰랐다.

오늘로서 자기들이 부부가 된다는 사실이 이전에는 그처럼 간절히 바라던 일이기는 했으나 이들에게는 어쩐지 못내 놀랍기도 하고 불안스럽기도 했다. 몸은 서로 만리에 떨어져있으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하나로 이어져있던 5년세월, 그 5년이 짧았는지 길었는지 이제 와선 그것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전 말이예요.》

외투주머니에 두손을 찌른채 깎아세운듯 한 청류벽의 바위돌을 쳐다보던 영신이가 생각깊은 어조로 말했다.

《오늘의 이 모든 사실들이 어쩐지 두렵기만 해요. 이 과만한 행복이 꿈이나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의 두눈에는 이것만은 저로서도 어쩔수 없는 일이라는듯 한 진정이 어려있었다.

《왜, 성서에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아요. 예언자가 모세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피스카산정에 올라 눈을 뜨고 동서남북을 살펴보아라. 그대가 요단강을 건늘수 없기때문이다.〉하고 말이예요. 피스카산에 오르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된 땅이 있지만 요단강이 가로막아 가지 못하니 자세히 살펴보기라도 하라는 뜻이지요. 예언자의 말을 따라 피스카산정에 올라 약속된 땅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던 모세처럼 저도 지영씨가 있는 조국을 하루에도 열번, 스무번 그려보기만 했어요. 그런데 오늘은 그 소원이 현실로 되였으니 그래, 이게 과연 꿈이 아니란 말이예요?》

《꿈이라니?》

지영은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도 지금 영신이가 자기가 표현하는것보다 얼마나 더 큰 행복과 환희에 휩싸여있는가 하는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런것은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범상하게 말했다.

《난 도리여 우리가 벌써 찾아야 할 행복이 늦어진것이 아쉽기만 하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제라도 그 밑진걸 봉창할수 있을가 하는 생각뿐이요.》

《그러니까 우리의 행복이 응당하다는건가요?》

《응당하지 않구!》

영신이는 미소를 머금었는데 그 미소는 지영이가 속으로는 그렇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부러 그런 말을 한다는 이를테면 다정한 사람의 낯익은 버릇을 감촉했기때문이였다.

《그래도 우리 두사람의것이라기엔 너무나도 크고 귀중한 행복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흔히 애인은 있었지만 교제가 없이 고독하게 지내온 처녀가 그렇듯이 영신이도 지영이와의 상봉으로 하여 지금까지의 자기 생활은 생활이 아니였다는것을 새삼스레 느끼는것이였다. 사색이며 감각이며 행동의 힘이 한순간에 열배나 되는듯이 느껴지는가 하면 당장 남편이 될 지영이가 전에없이 선량하고 용감하며 또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의 머리속에는 미래의 가정생활에 대한 수천가지의 공상이 끊임없이 떠오르는것이였다.

다시금 고개를 들고 모란봉이며 릉라도일경을 바라보던 영신이는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그 한숨은 가슴속에 이는 격정을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몰라 내뿜는 탄성이였다.

《이런 말 한다고 웃지 마세요.》

지영이를 바라보던 영신이는 제먼저 고개를 숙이며 방그레 웃었다.

《전 사랑이라는걸 처음엔 한사람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라고 여겼댔어요. 사랑은 곧 믿음이다, 이것이였지요. 지영씨가 우리 삼촌집에 하숙할 때는 말이예요. 그러나 그후 아버지문제로 우리사이가 복잡해지고 지영씨가 서울로 가게 되였을 때에는 사랑은 어떤 시련이 있어도 그것을 이겨낼 때에만 성취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아마 당장 사랑을 잃어버릴것만 같은 불안이 저에게 그런 생각을 품게 했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오늘에 와서 전 다르게 느껴요. 제자신의 체험을 통해 바로 사랑이란 이런것이 아닐가 하는 확신이 들기도 하구요.》

《?》

지영은 영신이가 확신을 가지게 된 사랑이 어떤것인지 궁금했다.

자기 역시 그것으로 하여 숱한 번민을 겪었고 그것으로 하여 헤여날수 없는 고통과 좌절을 겪었기때문에 더 호기심이 생기는지도 몰랐다.

《전 사랑을 결코 믿음이나 성취로 설명하기는 부족하다고 봐요. 그보다 더 본질적인것이 있다는걸 느껴요. 믿음이나 성취라는건 어디까지나 자기로부터 출발하는것이고 또 자신을 위한것이 아니겠어요. 전 진정한 사랑이란 자기의것이 없는것,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한것, 말하자면 오직 상대를 위하려는 마음의 크기에 따라 규정된다는거예요. 다시말해 자기자신을 위한 감정을 분모로 하고 상대를 위한 감정을 분자로 하여 나눈 그 값의 크기가 바로 사랑의 크기라고요. 진정한 사랑은 나 즉 분모는 없어지고 타인, 말하자면 분자만 커질 때 이루어지는것이 아닐가요. 그것이 한 인간에 대한 사랑이든 집단이나 지어는 조국에 대한 사랑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봐요. 그 분자에 사람대신 조국을 올려놓았을 때 그 값이 얼만가 하는것이 바로 그자신의 애국심의 크기겠지요. 전 이것을 바로 장군님께서 저와 재일동포들에게 돌려주시는 다함없는 사랑을 통해 깨달았고 배우게 되였어요.》

《?!…》

지영은 새삼스런 눈길로 영신이를 바라보았다.

문득 장군님께서 영신이의 처지를 재일동포들모두에 비유해서 하시던 말씀이 상기되면서 장군님의 사랑이 새로운 의미로 가슴에 사무쳐왔다.

《전 이제부턴 우리들의 사랑은 오직 장군님 한분을 그 공식의 분자에 놓고 매일 아니, 매 시각을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자기를 마주보는 영신이의 모습, 반짝이는 두눈이며 홍조가 어린볼 그리고 어깨우로 굽실굽실 물결쳐내린 윤기도는 머리칼을 보는 순간 지영은 어쩐지 숨이 막혔다. 얼마나 영신이가 이쁘고 사랑스러운지 세상에서 자기보다 더 귀중한것을 가진 행복자가 없다는 기쁨에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영신이!》

지영은 저도 모르게 영신이의 손을 꽉 잡았다.

영신이도 자기 손에 힘을 주는것으로써 대답했는데 그것이 두사람사이에는 백마디 말보다 더 열렬한 사랑의 약속이 되여 온몸을 뜨겁게 달구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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