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회)

제 5 장

8

 

자리에서 일어나신 장군님께서는 대나무화분이 놓여있는 창문쪽으로 다가서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쏘련당이 우리의 립장을 지지해준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그리고 일본공산당에서 자기 로선을 검토하고 새로운 길로 나서겠다는것 역시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이웃나라 당들의 지지와 변화가 곧 우리 주장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것입니다.》

《?…》

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시금 긴장해졌다. 더우기 덕수는 이젠 일본공산당자체가 자기의 잘못된 로선을 시인했고 중국당이나 쏘련당이 그것을 인정하고있는데야 무슨 문제가 더 있을가싶어 얼떠름한 눈길로 장군님을 우러렀다.

《왜냐하면 잘못된 재일조선인운동을 바로잡는것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기때문입니다. 주변나라의 지지와 성원은 어디까지나 우리에 대한 응원이지 직접 운동장에 나서서 꼴을 넣는 선수는 아닌것입니다. 일본공산당이 자기 로선이 옳지 않았다는것을 인정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국내에는 든든한 방어진, 철벽같은 요새가 그대로 구축되여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실제로 그 방어진을 뚫고들어가 꼴을 넣어야 하는것은 우리자신입니다. 말하자면 로선전환은 우리 힘으로, 그것도 통쾌한 꼴을 넣을 때만이 이룩된다는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미부터 어떻게 해야 우리가 완전한 승리를 쟁취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을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니 장군님께서는 로선전환을 결심하실 때부터 벌써 오늘의 사실을 예견하고계시였다는것이 아닌가! 오늘의 변화된 정세가 그에 맞는 새로운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길을 요구하고 또 그 길로밖에 나갈수 없다는것을 이미 확고히 믿으시고 그에 기초하여 재일조선인운동의 전망까지도 모색하고계시였다는것이 아닌가!

이런 새로운 충격으로 하여 덕수는 다시금 굳어지고말았다.

《자, 보십시오. 이것이 이제까지 걸어온 재일조선인운동입니다.》

앞으로 다가서신 장군님께서는 손바닥을 세우시고 책상우에 금을 죽 그으시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는 이 길로 가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방금 그은 금에서 수직으로 뻗은 금을 또하나 그으시였다.

《말은 로선전환이지만 이미 가던 길을 고쳐가는것이 아니라 이렇게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사람으로 비유해 말하면 병이든 질환을 고치는것이 아니라 피를 완전히 새로운것으로 바꾸어야 하는것과 같습니다. 그러자면 무엇이 장애로 되는가?》

장군님께서는 방금 그은 금앞에 책상우에 있는 재털이를 놓으시였다.

《우선 사대주의와 교조주의가 골수에까지 꽉 들어차 이제까지 일본공산당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받아물던 종파분자들이 우리의 로선을 반대해나설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로서는 우리의 주장을 리해할수도 없거니와 설사 리해한다고 해도 인정할수가 없기때문입니다. 그것을 인정한다는것은 곧 저들이 조국과 민족을 배반했다는것을 자인하지 않으면 안되기때문에 놈들의 책동은 더 발악적일것입니다. 당과 민족을 배반한자들일수록 자기들의 죄행을 감추기 위해 갖은 책동을 다하는 법입니다. 박헌영이나 리승엽의 실례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애는…》

이번에는 또다시 성냥곽을 집어놓으시며 사람들을 둘러보시였다.

《놈들의 책동으로 하여 적지 않은 일군들과 동포들이 조국에서 멀어지고 무관심하게 된 사정, 종파들의 정체를 모르고 그저 그들이 시키는대로 행동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정도 애로로 되지 않을수 없습니다. 이 모든 사실들은 결국 로선전환을 쉽게 또 빠른 시일내에 실현하기는 어렵다는것을 말해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덕수동무?》

《?!…》

덕수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저로서는 전혀 생각도 해보지 못한 문제들을 장군님께서 얼마나 구체적으로 또 명백하게 지적해주시는지 거듭되는 감탄을 누를 길이 없었다.

문득 쓰딸린이 말했다는 세계를 움직이는 정치가라는 말이 새삼스런 의미로 느껴지면서 가슴을 후덥게 했다.

《그럼 로선전환을 위해 우리가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하는것입니다. 나는 우선 우리 재일조선인조직이 앞으로는 철저히 일본의 그 어떤 세력이나 단체에 구속되거나 복종되지 않는 완전히 자주적이고 애국적인 조직으로 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과 동포들이 일본공산당과의 조직적인 련계를 끊는 동시에 그들이 동포들에게 내리먹인 일본혁명을 위한 투쟁과업을 우리가 이미 천명한바 있는 조국을 사수하고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옹호고수하는 과업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장군님께서는 이것이 중요한 문제라는듯 손을 들어보이시였다.

《종파들의 책동의 본질을 동포들에게 꾸준히 해설하여 동포대중이 놈들의 죄행을 똑바로 알게 하는것입니다. 로선전환의 성과는 동포들이 종파들의 죄행을 어느 정도 깊이 파악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때문에 조급해하지 말고 동포들에 대한 교양사업을 심화시켜 애국핵심력량을 키워내야 합니다. 새 로선을 관철해나갈 새형의 일군들을 미리부터 준비해놓아야 첫걸음을 힘차게 뗄수 있습니다. 이 두가지 과업을 수행하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것은 일본인민들과의 친선을 강화하는것입니다. 민대파의 책동으로 하여 일본사람들이 민전이나 조선사람들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있는것만큼 일본인민들과의 친선을 도모하는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섭니다.》

덕수는 장군님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자기가 점점 그 어떤 절대적인 불가항력에 끌리여들어가는것만 같은 착각에 휘말리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가슴을 허비는 뼈저린 자책에 휩싸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재일조선인운동이 과연 얼마나 위험한 구렁텅이에 빠져있는가 하는 새삼스런 느낌이였고 그런 엄청난 후과가 차례진건 전적으로 자기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때문이라는 자책감이였다.

《장군님!》

덕수는 자기의 그런 심정을 그대로 말씀드리지 않으면 어쩐지 장군님께 죄를 짓는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장군님말씀을 듣고보니 제가 장군님뜻을 너무나도 받들지 못했다는 자책이 재삼 가슴을 허빕니다. 제가 장군님 가르치심대로만 운동을 이끌었다면…》

《아닙니다!》

장군님께서는 덕수를 마주보시며 고개를 저으시였다.

《오늘의 시련은 결코 덕수동무가 일을 잘못해서 제기된 문제가 아닙니다. 조국이 아닌 이역땅에서 투쟁한다는 어려움, 특히 여느 나라 해외교포들이 걸어보지 못한 새길을 개척하자니 부득이하게 제기되는 시련이고 난관입니다. 나는 도리여 우리가 오늘과 같이 해외교포운동사에서는 처음으로 되는 그런 길을 개척하게 된데는 바로 덕수동무를 비롯한 애국적인 활동가들과 재일동포들이 잘 싸웠기때문이라고 봅니다. 만약 재일동포들이 해방후부터 조국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면, 조국을 견결히 옹호하지 않았다면 벌써 미제와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 굴복했을것이고 또 종파들의 책동으로 하여 조국을 잃어버렸을것입니다. 오늘의 성과는 어디까지나 그런 시련속에서도 조국을 위해 싸워온 재일동포들과 애국적인 활동가들이 이룩한 성과입니다.》

그러면서 장군님께서는 조국에서 취해야 할 대책들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시였다.

먼저 조국전선호소문을 통해 재일동포들이 로선전환에 대해 옳게 리해할수 있도록 하는 한편 앞으로는 일본정부에도 재일동포들이 우리 나라의 해외공민인것만큼 일본인민들과의 관계에서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지킨다는것을 밝힘으로써 동포들에 대해 적대시정책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것이 바로 일본정부에 대한 재일동포들의 권리와 리익을 보호하기 위한 공화국정부의 립장인 동시에 동포들의 로선전환투쟁에 대한 조국의 의사를 정책으로 선포하는것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정녕 우리 장군님이시야말로…)

덕수는 장군님말씀을 되새길수록 그 말씀에 담긴 심오한 뜻과 함께 장군님모습에 더 어리둥절해지는것이였다. 군복을 입고 장화를 신고계시는 장군님이시였지만 마치 하늘이 내린 어떤 성인을 대하는듯 한 심정에 빠져들기만 했다.

문득 5년전 장군님을 처음 뵈왔을 때의 일이 떠오르면서 그때는 젊으신 모습과 뛰여나게 수려한 미목으로 하여 정신을 가다듬을수 없었다면 오늘은 전혀 새로운 모습과 함께 남들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엄두도 내지 못할 문제들을 환히 내다보시고 서슴없이 해결하시는 그 심원한 사상과 담력에 감동되는것이였다. 새삼스레 그는 우리 장군님이시야말로 우리 민족을 되살리시고 우리 인민을 강자로 키우시며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자리에 올려세우시는분이라는것을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은연중 그런 장군님의 품에 안겨산다는 긍지와 자랑으로 하여 가슴이 터질듯 했다.

(아- 이런 행복! 나 하나만이 아닌 60만재일동포들 아니, 전체 우리 민족이 누리는 이런 행복은 오로지 장군님을 모시고있기에 누리는 무상의 행복이 아닌가! 누가 과연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고 했는가! 아니다!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는 진정한 의미는 바로 우리 장군님같은 특출한 인걸이 새시대를 낳고 새 력사를 창조해간다는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책이나 론리에서 얻은 결론이 아니라 생활을 통해 절감하게 된 이 절대적인 진리로 하여 덕수는 흥분을 억제할수 없었다. 어쩐지 코허리가 저려들면서 눈굽이 달아오르기만 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하는 일을 계속하시는듯 한 그런 평범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림춘호동무! 오늘 여기서 토론된 내용을 중국에 있는 김훈동무에게 알려주어야겠습니다. 될수록 구체적으로 말이요.》

이것으로 모임을 끝내자는듯 책상앞에서 물러서신 장군님께서는 무엇때문인지 곧 덕수에게 시선을 멈추시였다.

《덕수동무!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덕수동무가 옆에서 도와주어야겠습니다.》

《?…》

무슨 뜻으로 하는 말씀인지 몰라 덕수가 긴장해지자 장군님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다름이 아니라 지영동무와 영신이의 결혼식입니다. 집은 마련했다지만 준비가 어떻게 돼가는지… 영신이를 봐서도 그렇고 지영동무를 봐서도 덕수동무가 주인이 되여야 할것 같아서 그럽니다.》

《알겠습니다. 제 힘껏 돕겠습니다.》

덕수는 기꺼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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