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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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당중앙을 가까이 할수록 덕수의 마음은 진정할수 없었다. 무슨 사연부터 장군님께 말씀드렸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이미 신포에서 조국에 오지 않을수 없었던 사정에 대해 장군님께 전화로 보고드리기는 했지만 정작 장군님을 마주한다고 생각하니 그 기막힌 사연들이 다시금 상기되면서 목이 메여올랐다.

민대파들은 재일조선인운동을 이젠 저들이 틀어쥐였다고 확신하자 민전자체를 일본공산당에 내맡기려고 했다. 이전에는 그래도 민전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당원활동가들은 민전내의 당그루빠가 맡아보았으나 이때부터는 민전의 매 단위, 매 부서마다에 당세포를 따로 내오고 모든 활동을 세포의 지시에 따라 해나가게 했다. 회의때도 원철이나 민대파들이 아니라 일본공산당 국내지도부의 거두들이 뻐젓이 나타나 앞으로의 과업을 제시하는가 하면 제기된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겉은 민전이였지만 속은 나날이 일본공산당의 지시를 집행하는 산하조직처럼 변해갔다. 동시에 그들은 덕수가 발을 붙이고 활동하는 《해방신문》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악착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덕수의 측근들을 철저히 배제해야 조국파세력들을 말끔히 청산하게 될뿐아니라 그 어떤 문제도 아무장애없이 저들 마음대로 처리할수 있다는 타산이였다.

그러나 《해방신문》을 유일한 무기로 삼고 싸우는 덕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신문만은 그들에게 빼앗길수 없다는 단호한 결심을 품고 결사전을 벌리였다. 신문사일군들에 대한 꾸준한 교양사업과 함께 기사들을 더욱 조국을 옹호하는 사상으로 일관시켜나갔다. 그러자니 더욱 발악적으로 나오는 그들의 책동을 막기 위해 주야로 경비를 서야 하는것은 물론 신문사경영에 필요한 자금을 구하기 위해서도 동분서주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돈이 없으면 단 한호의 신문도 낼수가 없었던것이다.

《해방신문》을 저들의 기관지로 만들기 어렵다는것을 알자 놈들은 곧 도꾜중고 교장인 림광철과 《학우서방》사장인 김상기를 공격하는데로 화살을 돌렸다. 그자들은 수시로 학교와 《학우서방》에 나가 세포회의를 지도하면서 교원들과 일군들앞에서 공공연히 교장과 사장의 《사상적과오》를 비판했다. 그 과오라는것은 그들이 덕수가 쓴 《애국진영의 순화와 강화를 위하여》라는 론문을 선전함으로써 《민족적편향》을 범했으며 조직의 분렬과 모순을 꾀했다는것이다. 이와 함께 덕수에 대해서는 입에 담지도 못할 악담을 퍼부었는데 이젠 민족파나 조국파라는 정도가 아니라 《평양나팔》이라고 꺼리낌없이 떠들어대는 판이였다.

《보시오, 그가 사람들로부터 어떤 랭대를 받고있는가. 이젠 동포들로부터도, 운동권으로부터도 완전히 고립당하고말았소. 지금은 세상의 움직임을 똑똑히 보고 나팔을 불어야지 평양소리만 듣고 나팔을 불어서는 안된다는거요. 평양나팔에 귀를 기울이며 춤추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와 같은 운명을 면치 못한다는것을 똑똑히 알아두시오.》

덕수는 자기에 대한 비난은 참을수 있었지만 진정으로 조국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피해를 받고 민전이 일본공산당의 산하조직으로 전락되여가는것만은 참을수가 없었다. 그런 절망과 분노를 느낄수록 조국에 보낸 김훈이의 소식이 기다려졌으나 김훈은 중국에서 조국으로 들어간다는 련락만 보내왔을뿐 더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일각이 삼추같기만 했다. 다시 조국에 련락을 띄우고싶었으나 그럴 형편도 못되였다. 아니, 이젠 자기가 직접 장군님께 보고드리고 가르치심을 받지 않고서는 견딜수가 없었다. 또 자기가 아니고서는 이 절망적인 사태를 장군님께 정확히 보고드리지 못할것 같았다.

그리하여 사선을 뚫고 다시 조국에 온 그였다. 그러나 신포에서 장군님의 로선전환에 대한 방침을 전달받는 순간 그는 말뚝처럼 굳어져버렸다. 놀라왔다. 아니, 신기했다. 저절로 환성이 터져오를 지경으로 경탄스러웠다. 어쩌면 복잡한 재일조선인운동의 실태를 그리도 정확하게 꿰뚫어보시고 내리신 결심인가! 어쩌면 남들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엄두도 내지 못할 그런 용단을 내리시였단 말인가! 그야말로 온 세상을 줌안에 놓고 들여다보시며 나라와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난관도 서슴없이 맞받아나가시는 장군님이시였다.

하지만 불안도 없지 않았다. 그 로선이 위기에 처해있는 재일조선인운동과 경각에 달해있는 재일동포들의 운명을 구원하는 길이라는것을 깨닫게 되면 될수록 그것이 아직 해외교포운동에서는 전대미문의 로선이라는것과 또 그것을 실현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이였다.

자기 나라 문제이긴 하지만 동포들이 사는 일본이라는 환경과 결부되여있고 자기 동포들에 대한 문제라고는 하지만 여태껏 해외교포들의 활동이 규범화된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원칙과 관련되여있는것이 아닌가! 과연 기성관례나 리론이 장군님의 새 로선을 어떻게 받아들일것인가? 또 일본공산당 수뇌부는 그것을 어떤 립장에서 받아들일것인가!

줄곧 이 하나의 생각에 젖어있던 덕수는 자동차가 당중앙청사마당에 도착하는 순간 그만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마당을 가로질러 자기를 향해 마주오시는 장군님모습, 군복을 입으시고 목이 긴 장화를 신고계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보았기때문이였다.

(아- 장군님!)

전쟁이 한창이며 그 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시기 위해 밤낮을 이어 분투하시리라 짐작하면서도 장군님께서 군복을 입고계시리라는데 대해서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덕수였다. 언젠가 지영이한테서 군복을 입으시고 묘목을 심더라는 말을 들을 때에도 실감으로 느끼지는 못했었다.

바로 저 군복을 입으시고 해방된 남녘땅에 가셨을것이고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엄혹한 시련을 이겨내셨으리라. 저 군복을 입으시고 1211고지에 나가시여 미제에게 죽음을 선고하시였을것이며 당과 정부를 전복하려고 했던 반당반혁명분자들의 악랄한 책동을 분쇄하셨으리라. 항일의 20여성상 입고계셨던 그 군복을 오늘까지도 벗지 못하신 장군님! 어째서 장군님 한생은 남다른 시련과 고생으로만 계속되는것인가.

그러나 그 수수한 군복을 입으신 장군님의 온몸에서 내뿜기는 위엄은 첫눈에도 벌써 세계《최강》을 떠드는 미제가 벌벌 떠는 까닭을 직감할수 있게 하는것이 있었다. 얼굴모습은 5년전 그때와 다름없는 품위와 조화, 활기를 그대로 간직하고있었고 후리후리한 몸매는 용솟음치는 젊음과 불같은 열정, 강철같은 힘을 드러내고있었다. 간고한 전쟁의 시련은 장군님을 무척 변하게 하였지만 그것은 장군님의 모든 비범하고 초인간적인 자질을 더욱 완성하고 더욱 빛내이고있었다.

《장군님!-》

《덕수동무!》

장군님께서는 덕수의 손을 잡으시며 말씀하시였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나는 덕수동무가 이렇게 불시에 조국에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덕수는 자기가 조국에 오지 않을수 없었던 사정에 대해 다시 말씀올리려 했다.

《알고있습니다. 종파들이 얼마나 못되게 놀고 그것으로 해서 동무의 맘고생이 어떠했으리라는것을 다 알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청사안으로 덕수를 이끄시며 물으시였다.

《그래 집에서는 어떻게 지냅니까? 아주머니는 건강합니까? 호일이가 잘못된 후 몸져누웠다는 말을 들었는데…》

《예, 이젠… 몸도 추서고 아이들도…》

고개를 숙인채 띠염띠염 말씀올리던 덕수는 얼른 얼굴을 들고 죄스러운 눈빛으로 장군님을 우러렀다.

《장군님! 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심려가 많으신 장군님께서 저의 일때문에… 정말 죄송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

장군님께서는 말없이 덕수를 지켜보시였다. 어쩐지 가슴이 미여지는듯 하시였다. 그처럼 순박하고 활기찬 모습대신 고생의 흔적이 력연한 창백하고도 여윈 모습은 거의 딴사람같은 인상을 느끼게 했다. 허울만 남은것 같은 사나이가 후렁후렁한 옷을 너풀거리며 서있는 모양은 갖은 풍상고초를 헤쳐오신 장군님의 눈에도 너무나 가슴아픈 모습이 아닐수 없으시였다. 더우기 그 어떤 경우에도 좌절을 모른다는 그가 짓이겨진 떡잎처럼 후줄근해서 오로지 모든것은 자기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때문이라고 여기면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있는것은 얼마나 기막힌 모습인가! 그이께서는 가슴이 찢어지는듯 하시였다. 그럴수록 기어이 로선전환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결심, 그래야 재일동포들을 구원하게 될뿐아니라 여태껏 고생만 시켜온 덕수에게도 다소나마 인간적인 도리를 지키게 된다는 각오로 굳어지시였다.

사실 덕수를 대하는 순간 장군님께서 느끼신 감정은 살벌한 적구에서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운 용감한 전사에 대한 다함없는 미더움과 그런 전사에게 너무나도 무심했다는 자책이시였다. 그것은 덕수가 남다른 고생을 하면서도 그 누구에게 하소연할수도, 구원을 바랄수도 없는 처지에 있었다는것과 바로 그를 그런 외롭고도 고독한 처지에 놓이게 한것이 바로 자신이신것만 같은 피할길 없는 자격지심이였다.

그를 혁명의 요구라는 원칙에 복종시킨것으로 하여 그자신에게는 얼마나 많은 희생과 눈물이 따랐는가. 생활의 보람도 가정의 행복도 모든것을 다 혁명을 위해 바쳤건만 혁명이 그에게 준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사실을 되새길수록 어쩐지 덕수에 대한 련민의 정과 함께 무언가 열배, 백배의 보상이 되는것을 가슴가득 안겨주고싶으시였다.

마치 남의 집에서 갖은 수모와 천대를 받는 자식이라는것을 알면서도 도와주지 못한 부모의 심정이라고 할가. 아니, 살이 터지고 온몸이 멍든 자식이 두팔을 벌리고 와락 달려들 때의 심정이기도 하시였다. 다시는 품에서 떼놓을수 없으시였고 떼놓고싶지도 않으시였다. 또 다시는 그 위험한 적구에 들여보낼수도 없으시였다.

《덕수동무!》

장군님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덕수의 팔을 뜨겁게 잡으시였다.

《내가 여태껏 동무를 너무 고생시켰습니다. 동무가 고생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5년전 조국에 그냥 떨어졌으면 하던 동무의 소원을 풀어주지 못한것이 여간 마음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이제부턴 우리 함께 일합시다. 더는 헤여지지 말고 조국에서 함께 일하잔 말입니다.》

덕수의 손을 잡아흔드는 장군님의 눈가에는 어느덧 눈물이 맺혀있었다.

이때 출입문이 열리면서 박룡이와 영신이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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