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7 회)
제 5 장
4
장군님께서는 서둘러 송수화기를 손에 드시였다. 귀에 익은 주은래의 목소리가 귀전에서 울리고 뒤따라 녀자통역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일성동지, 안녕하십니까? 주은래가 전화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주은래동지, 어떻게 총리동지가 갑자기 전화를 다 합니까?》
장군님께서는 통역원의 목소리가 멎기 전에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목소리라도 듣고싶어서 이렇게 전화를 하지요, 하하!》
장군님의 눈앞에는 문득 49년초 쏘련방문을 위해 모스크바로 가시던 도중 잠간 만났던 주은래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도 분명 한손을 양복앞섶에 찌른채 송수화기를 들고있을 그의 모습이 보이는듯싶었다.
그때 그는 이젠 전중국이 해방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하면서 중국인민은 언제나 중국혁명을 위해 피흘려 싸운 조선동지들을 잊지 않을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조선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항미원조보가위국운동의 기치아래 조선전선에 떨쳐나선 중국인민지원군들에게 피로써 맺어진 중조인민의 빛나는 전통을 더욱 훌륭히 꽃피워야 한다고 당부하였고 국제회의때마다 조선에 대한 미제의 침략을 준렬히 규탄했다. 얼마전에는 미제가 투하한 세균탄에 대한 진상을 세계에 고발하기 위한 국제조사단을 조직할것을 호소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은래가 전화를 한것이 필경 최근에 제기된 정전협정문제와 관련되리라고 짐작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미 그가 중국정부의 이름으로 우리의 정전협정에 대한 립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알고계시였다.
《요즘 얼마나 분망하시겠습니까? 미제가 〈신공세〉를 벌리려다가 또다시 혼이 났다지요?》
통역원이 《혼이 났다》는 말을 《도망쳤다》는 말로 바꾸어번졌으나 장군님께서는 본래의 의미대로 해석해들으시였다.
《된매를 안겼더니 어느 정도 혼쌀이 난것 같습니다.》
《놈들이 이제야 할수없이 흰기를 들고 정전협정에 응할수밖에요. 이미 정부성명을 통해서도 밝혔지만 우리는 전적으로 조선의 립장을 지지합니다. 미제가 정전협정장에 나올 땐 중국과 조선이 힘을 합쳐 다시한번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줍시다. 김일성동지! 나는 이번 전쟁을 통해 조선인민들이 참말로 용감한 인민들이라는것을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건 우리 인민이 잘 싸우는데도 있지만 우리를 피로써 도와주는 중국인민의 지원이 있기때문에 오늘과 같은 성과가 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난 주은래동지와 만난 이 기회에 우리 인민의 이름으로 영용한 중국인민지원군동무들에게 그리고 형제적중국인민과 당과 정부에 진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거야 김일성동지께서 이미 마련해놓은 중조 두 나라 인민들의 빛나는 전통이 있기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수상동지의 뜻을 모주석과 우리 인민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김일성동지, 내가 오늘 이렇게 전화한것은 말입니다.》
그제야 장군님께서는 주은래가 전화를 거는것이 정전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때문이라는것을 깨달으시였다.
《다름이 아니라 모주석동지의 부탁이 있어섭니다.》
《모주석의 부탁이라니요?》
장군님께서는 은연중 주은래의 말을 되받아외우시였다.
《며칠전 베이징에 와있는 일본공산당 도꾸다서기장이 모주석을 찾아오지 않았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 그에게 보낸 편지를 가지고 말입니다. 그는 김일성동지가 일본에서 사는 재일조선인문제에 대해 이런 요구를 하고있다고 하면서 자기로서는 의견이 다른데 중국당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걸 알고싶다는것이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제야 모든것이 명백해지시였다. 림춘호한테서 편지를 받아본 도꾸다가 처음엔 자기의 생각을 그에게 말했으리라. 그러나 림춘호가 견결한 립장을 취하자 그 편지를 가지고 곧 모주석한테로 간것이 분명했다. 언제나 쏘련당의 견해를 중시하는 그가 중국당에 찾아갔다는 사실이 뜻밖이였으나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었던 그의 심정이 리해되기도 하시였다. 더우기 어떤 문제도 그시로 해명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해하는 성미임에랴.
《그런데 그가 자기의 의견이 어떤것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갔기때문에 우린 우선 그에게 보낸 김일성동지의 편지부터 보았습니다. 모주석과 나는 그 편지를 두번씩이나 읽었습니다.
김일성동지는 편지에 재일동포들이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해 쓰면서 그들과 일본공산당과의 관계를 이미의 기존관계가 아니라 오늘의 변화된 정세에 토대하여 새롭게 밝혔습니다. 편지를 보면서 우리는 많은것을 느꼈습니다. 모택동동지는 2차 세계대전전에는 제기되지 않았고 제기될수도 없었던 새로운 해외교포운동에 대한 김일성동지의 탁견에 감탄을 금치 못해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는 커다란 감동을 받았습니다. 김일성동지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감사합니다.》
송수화기를 다른 손에 옮겨쥐신 장군님께서는 통역원이 통역할 여유를 주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단지 일본에서 사는 우리 동포들의 운명을 일본공산당이 아니라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립장을 밝혔을뿐입니다. 재일동포들은 대개가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 고생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늘은 일본공산당의 무장투쟁로선으로 하여 무모한 희생을 당하고있습니다. 아무리 계급적인 형제당이라 해도 자기 겨레의 운명을 맡길수야 없지 않습니까. 당활동과 민족문제는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모택동동지도 바로 그 동포애, 민족애에 감탄하고있습니다. 나 역시 김일성동지의 편지를 보면서 이 문제가 단순히 재일조선인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화교들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일성동지도 알다싶이 세계 어느 나라에건 우리 화교들이 가있지 않는 나라가 없지 않습니까. 수천만의 화교가 세계 각곳에 널려있습니다. 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것이 우리에게는 큰 과제였는데 김일성동지의 편지를 보니 많은것이 느껴지더란 말입니다.》
사실 아편전쟁이 있은 후 영국의 강요에 남경조약이 체결되자 미국, 프랑스, 로씨야 등이 서로마다 강요하는 조약으로 문을 연 중국은 급속히 유미렬강의 반식민지로 화해버리였다. 그때부터 식민주의자들은 중국근로대중의 극심한 생활고를 악용하여 수천수백만에 달하는 인력자원을 략탈해갔다. 영국이 동남아시아의 식민지를 《개발》한다는 명목밑에 《쿠리》무역을 벌려 끌어간 중국인들만도 수백만, 그후 중국을 침략한 일제 역시 수백만의 중국인들을 일본과 남양지방으로 끌어갔다.
《그런데 오늘 아침 도꾸다서기장이 우리의 의견을 듣겠다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김일성동지의 편지를 보고 느낀 소감을 그대로 말해주었습니다. 우리 화교들의 실정과도 결부해가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김일성동지의 립장을 지지할뿐아니라 감동되고있다고 명백히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처음엔 놀랐고 그다음엔 심각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한참후에야 입을 열었는데…》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은래의 억양을 통해 그가 어지간히 흥분해있음을 느끼시였다.
《김일성동지의 주장에 왜 모주석과 내가 공감하는지 자기로서는 리해가 된다는것이였습니다. 그것은 우선 조선과 중국이 옛날부터 류사한 력사발전단계를 거쳐왔고 오늘 역시 같은 혁명의 로정을 걷고있기때문이라고 하면서 지금 조중인민이 함께 치르고있는 조선전쟁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더우기 조중 두 나라가 일제의 침략을 같이 받았을뿐아니라 그것으로 하여 두 나라의 수백만 사람들이 일본에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는 사정은 해외교포운동에 대한 립장도 부득불 같을수밖에 없다는것이였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이 문제를 어디까지나 민족주의적인 립장이 아니라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립장, 다시말해 국제공산주의운동이 요구하는 원칙에서 보기때문에 견해를 달리한다는것과 그것을 명백히 하기 위해 쏘련당에 문의를 해야겠다는것입니다.》
이미부터 예견하고있던 일이여서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나도 도꾸다서기장이 납득하기 어려워하리라고 짐작했습니다. 이미부터 국제적으로 정식화되여오던 일국일당원칙과는 다른점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오늘의 새로운 현실은 매개 나라 공산주의자들이 우선 자기 나라 혁명을 잘 수행할것을 요구하고있고 또 그것이 바로 국제공산주의운동에도 충실한것이라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의견도 바로 그것입니다. 김일성동지가 편지에 쓴것처럼 오늘에 와서까지 일국일당원칙을 교조적으로 적용하여 해외교포운동을 거주국당에 복종하도록 하는것은 시대의 요구로보나 세계혁명의 추세로 보아 어페가 있다는것입니다.》
《어페》라는 말을 이번에는 《결함》이라는 말로 통역했으나 장군님께서는 웃으며 들으시였다.
《사실 이 내용을 모택동동지가 직접 김일성동지께 알리겠다고 하는걸 내가 맡겠다고 했습니다. 김일성동지와 한 약속도 있고 해서 말입니다.》
(약속?)
장군님께서는 약속이라는 말에 잠시 생각을 더듬으시였다.
《그래 언제 나와 한 약속을 지키겠습니까? 4년전 비행장에서 한 약속이 생각나십니까?》
장군님께서는 그때 일이 기억되시였다. 베이징비행장에서 만났을 때 그가 이젠 중국도 멀지 않아 인민정부가 수립되겠는데 그땐 국경을 사이에 둔 형제국가로서 또 동방의 첫 사회주의국가의 사절로서 꼭 중국에 와야 한다는 부탁이였다. 그러겠노라고 확약하신 장군님이시였으나 새 중국이 창건된지 얼마 안되여 그만 전쟁이 터지고말았다.
《총리동지와 한 약속을 전쟁때문에 지키지 못했는데 전쟁이 끝나면 꼭 지키겠습니다. 조중인민의 단합된 힘으로 미제를 족치고 서로 만나는 상봉이야말로 얼마나 더 의의가 크겠습니까.》
《좋습니다. 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김일성동지,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모택동동지에게도 나의 인사를 전해주기 바랍니다.》
송수화기를 놓으신 장군님께서는 잠시 그대로 서계시였다. 밝은 빛이 어리여 마치 영사막처럼 보이는 맞은편 벽에 단정한 닫긴깃옷차림을 한 주은래의 미소어린 모습이 뚜렷이 어리였다. 그러나 그 모습은 곧 다른 사람의 모습, 심각한 기색을 짓고있는 도꾸다의 모습으로 바뀌였다. 손을 흔들며 무슨 말을 하다가 불쑥 자리를 차고일어나는가 하면 앞에 앉아있는 두사람, 림춘호와 리지영을 말없이 쏘아보기도 했다.
(그러니 재일조선인문제가 일본공산당뿐아니라 중국 및 쏘련 나아가서는 국제공산주의운동과 관계되는 복잡하고도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이런 생각에 젖어 집무실로 들어서시던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서기가 따라서는 바람에 뒤로 돌아서시였다.
《장군님! 김운해부장이 급히 보고드려야 할 문제가 있다면서 찾아왔습니다.》
서기뒤에 따라 들어서는 김운해의 표정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상기되여있었다.
《장군님! 방금 련락을 받았는데 한덕수동무가 조국에 왔다고 합니다.》
《뭐요?》
너무도 뜻밖의 말에 장군님께서는 다그쳐 물으시였다.
《한덕수라니? 아니, 그가 어떻게 조국에 온단 말이요?》
《틀림없는것 같습니다. 신포에 있는 해군부대에서 보내온 보곤데 그가 한 처녀를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아마 영신이가 아닌가 짐작됩니다.》
《영신이?!》
장군님께서는 덕수가 조국에 온게 틀림없다는 확신이 드시였다.
그러나 어쩐지 잘 믿어지진 않으시였다. 지금쯤 중국에 있을 김훈과 련계가 취해졌을가 하고 따져보시던 장군님이시였다. 그러니 김훈이와는 아무 련계가 없었던게 분명했다. 그럼 혹시 그새 무슨 다른 일이? 또 새로운 정황이라도 생겼는가? 아니면 더는 일본에 있을수 없는 사정이라도…
이런 의문들이 뇌리에 떠올랐으나 그처럼 보고싶던 덕수가 조국에 왔다는 반가움이 잠자코 서있을수 없게 하시였다.
《신포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장군님께서는 김운해에게로 다가서시였다.
《그를 마중하러 부장동무가 직접 신포로 내려가시오. 공습이 있을수 있으니 갈 때 경위소대를 데리고 가시오. 참, 영신이가 왔다니까 박룡동무도 함께 가는것이 좋겠구만. 어쨌든 신포에 도착하는 즉시 나에게 전화를 하시오.》
장군님께서는 곧 송수화기를 드시고 경위련대를 찾으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