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5 회)
제 5 장
2
《내 결심은 이렇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최고사령부 작전실의 커다란 책상앞에 앉아있는 홍명희와 김운해 그리고 김훈을 차례로 바라보시며 확고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지금 우리앞에 나서고있는 중요한 과업은 잘못된 길로 나가고있는 재일조선인운동을 바로잡는것입니다.
동무들도 알다싶이 지금 재일조선인운동은 위험에 직면해있습니다. 강령에서 공화국사수조항을 삭제하고 일본인민의 투쟁과업인 3반구호와 일본의 주권타도를 재일동포들의 기본과업으로 내세운 사대주의자, 민족허무주의자들이 이젠 조국정책을 구현하는것까지 방해하고있습니다. 더 엄중한것은 재일동포들을 일본반동정부를 반대하는 무모한 폭력투쟁의 앞장에 내몰아 많은 희생을 가져오게 하고있는것입니다.
이런 조건에서 나는 재일조선인운동을 바로잡자면 무엇보다도 일본혁명을 위해 복무하는 길로 나가는 재일조선인운동로선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말하자면 일본혁명을 위한 재일조선인운동로선을 조선혁명을 위해 복무하는 로선으로 전환하자는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장군님께서는 량손으로 작전대를 꾹 짚으시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재일동포들은 우리 공화국의 해외공민인것만큼 일본에서 산다 하더라도 조선혁명을 해야지 일본혁명을 해서는 안된다는것입니다. 재일조선인운동은 자기 조국과 민족의 발전을 위한 운동이지 일본혁명에 종속되는 운동이 아니라는것이고 일본공산당이 지도할 운동이 아니라 공화국정부의 령도밑에 벌려나가야 한다는것입니다. 그럼 이 로선을 어떻게 관철하겠는가 하는것이 문제로 됩니다. 바로 그것을 동무들과 토론해보자는것입니다.》
《…》
방안에는 엄숙한 정적이 깃들었다.
언제나 긴장할 때면 코수염을 쓰다듬군 하는 홍명희였으나 지금은 긴장의 도수가 지나쳐서인지 꼿꼿한 눈길로 한곳을 바라보기만 했다. 김운해는 물론 김훈이 역시 앞에 수첩을 펼쳐놓기는 했지만 받아쓰는 일을 잊은듯 망연자실한 기색이였다.
《물론 어려움이 많습니다. 지금 조국형편은 어느때보다 준엄합니다. 미국놈들이 당장 〈신공세〉를 감행하려 하고있고 당내에 숨어있던 반당반혁명분자들은 정부를 전복할 흉계까지 꾸미였습니다. 그렇지만 우린 우리앞에 그 어떤 시련과 난관이 있다 해도 재일조선인운동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위기에 처해있는 재일조선인운동실태가 그것을 요구합니다. 자- 의견들을 말하시오.》
《장군님.》
홍명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태도는 어떤 의견을 말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저로서는 도저히 리해가 되지 않아 묻는다는 기색이였다.
《위기에 처해있는 재일조선인운동을 바로잡아야 한다는것은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여기서 바로잡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일본에서 벌어지는 운동이니만치 우리가 관여할래야 할수 없지 않겠습니까.》
《옳습니다. 로선은 조국에서 우리가 내놓지만 그것을 실현할 곳은 일본입니다. 일본에서 해야 할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어떻게 바로잡겠는가 하는건데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우리 힘으로 로선을 전환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동포들의 운명을 책임진 우리의 임무라는데도 있지만 일본에서는 벌써 손을 쓸래야 쓸수 없는 형편이기때문입니다. 그만치 재일조선인운동은 위험한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그래서 나도 어떻게 해야 이 과업을 제대로 수행할수 있겠는가 하는걸 여러모로 따져보았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장군님께서는 심중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금 재일조선인운동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직접적인 당사자는 민대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의거하는것은 일본공산당입니다. 처음에는 종파들이 저들의 지시를 동포들에게 내리먹이였지만 지금은 일본공산당자체가 좌경모험주의로선을 동포들에게 강요하고있습니다. 저들 마음대로 운동방향을 정하는가 하면 무모한 무장투쟁에 나설것을 요구합니다. 이런 사정은 재일조선인운동의 로선을 바로잡자면 이젠 민대파가 아니라 일본공산당, 그것도 중국에 망명하고있는 당수뇌부와 직접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와 일본공산당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래서 난 중국에 있는 일본공산당 도꾸다서기장에게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장군님의 안광에는 결연한 의지가 어리였다. 혁명의 앞길을 막아서는 난관이 아무리 크고 험해도 절대로 물러설수 없다는 단호한 각오와 결단이 력연하시였다.
《난 그 편지에서 당신들이 일본혁명을 하려면 일본사람만으로도 되겠는데 무엇때문에 우리 조선사람들까지 끌어들이는가, 어째서 돌격대로 내세우는가, 공산주의자들이 국제적으로는 어느 나라 혁명을 하든지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자기 나라가 있고 자기 민족이 있는 오늘에 와서는 자기 나라 혁명을 해야 한다고 본다, 난 이것이 국제혁명에도 충실한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이제부터 조선사람자체의 조직을 가지고 자체로 운영할 결심이니 앞으로는 일본공산당에서 관계하지 말라는것을 명백히 밝히려고 합니다.》
《?!》
홍명희는 물론 김운해며 김훈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도 놀라운 사실을 너무나도 확고하게 단언하시는 장군님의 그 결심이 저들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해본 일이기때문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방구석에 있는 원탁으로 다가가시여 그우에 있는 주전자를 드시고 고뿌에 물을 따르시였다.
《나도 우리의 이런 요구에 도꾸다서기장이 의견이 있으리라는것을 짐작합니다. 일국일당원칙과 어긋난다는것이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일국일당원칙에 한하는 문제가 아니라 재일동포들의 운명과 관련되는 우리 나라의 민족문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립장을 확고히 견지하여야 하며 끝까지 관철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산에서 싸울 때부터 철저히 이런 립장을 주장해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문득 오래전 요영구에서 있은 일이 생각나시였다.
요영구회의에서 반《민생단》투쟁의 좌경적인 후과에 대해 총화하신 장군님께서는 조선혁명을 하는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자주적의무이므로 조선혁명을 위해 국경지대에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시였다. 그때 대국주의자들은 한사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중국땅에서 투쟁하는 이상 중국당의 지도를 받아야 하며 국경지대로 진출하는것은 일국일당원칙에 어긋난다고 했다. 동만당특위였던 위증민까지도 명백한 견해를 세우지 못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하신 장군님께서는 론쟁을 중단하시고 위증민과 동만공청특위로 있던 윤병도를 함께 국제당에 보내시였다. 그때 국제당에서는 장군님의 주장을 적극 지지하였었다. 장군님께서 그런 결단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조선혁명앞에 닥친 난국이 쉬이 풀리지 않았을것이다.
《김운해동무는 어떤 의견입니까?》
장군님께서는 사뭇 긴장한 표정을 짓고있는 김운해를 바라보시였다.
실상 누구보다도 김운해의 견해가 궁금하신 그이이시였다. 그것은 그가 도꾸다와 함께 오랜 감옥생활을 했을뿐아니라 일본공산당 수뇌부에서 일해왔고 바로 그를 중국에 있는 도꾸다에게 파견하실 계획이였기때문이였다. 도꾸다에게 우리의 립장을 납득시킬수 있는 사람이 바로 김운해라고 생각하시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장군님과 시선이 마주치자 눈길을 아래로 내리깐 김운해는 주밋거리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신 로선전환방침을 도꾸다가 어느 정도 납득하겠는가 하는것이…》
장군님께서는 김운해가 십분 그렇게 생각할수 있으리라는데 대해 수긍하시며 다음말을 기다리시였다.
《무엇보다 제가 우려되는것은 장군님께서 말씀하신 재일조선인운동의 새로운 로선인데 이제까지 해외에서 사는 교포들이 자기 나라 혁명을 위해서 복무하는 그런 로선을 세운 실례가 없다는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실례는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가 처음으로 해보자는것입니다.》
김운해는 의아한 눈길로 장군님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리유도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일본혁명앞에 나서는 모든 문제를 도꾸다서기장이 자기 혼자의 결심에 의해 풀어나가지 않는 다는것입니다. 그는 사소한 문제도 쏘련당과의 긴밀한 련계와 동의밑에 국내당에 지시를 떨구고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던 김훈이 입을 열었다.
《도꾸다서기장이 작년에 발표한 〈일본공산당 새 강령기초〉도 쏘련에 가서 작성한것이고 여태껏 서로 대립되여있던 소감파(노사까의 평화혁명론문에 대한 지지파)와 국제파의 당내분규도 쏘련당의 조정에 의해 화해가 이룩되였습니다. 쏘련당과의 이런 관계를 국내당지도부는 물론 일본사람들까지도 다 알고있습니다.》
김훈의 말에 힘을 얻은 김운해는 한결 명백한 어조로 말씀올렸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우선 도꾸다서기장자신이 우리의 로선전환방침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할뿐아니라 설사 마음을 돌린다 해도 쏘련당에 문의할것이 명백한데 쏘련당이 과연 그걸 어떻게 대하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첨부한다면 도꾸다서기장의 성격입니다.》
김운해는 도꾸다가 오끼나와의 가난한 집에서 태여나 대학법과를 나와 변호사가 된 경력이며 그때 사회주의사상을 접해 직업적인 혁명가로 되였다는것, 군국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리다가 체포되여 감옥살이를 한데 대해 언급하고나서 6. 6추방후 얼마간 그와 함께 겪었던 일에 대해서 말씀올렸다.
추방령을 받은 즉시 도꾸다는 중국화교의 집에 피신해있었으나 곧 어느 지구당간부네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거기서도 역시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또 다른데로 가지 않으면 안되였는데 그것은 경찰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도꾸다자신의 과격하고도 괴벽스런 성격때문이였다.
그는 자기가 피해다니는 처지라는것은 안중에도 없이 수시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가 하면 밤새껏 누구를 호되게 질책하기도 했다. 그런것으로 하여 불안해진 집주인들은 감히 도꾸다자신에게는 말을 못하고 비서나 측근들에게 제발 거처지를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도꾸다의 불같은 성미를 잘 아는 비서는 비서대로 집주인의 요구라는 말은 못하고 경찰들의 감시가 뻗쳤다는 구실을 대면서 도꾸다에게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어떤 문제나 깊이 생각하고 결심을 내리는 사람이지만 일단 결심한 문제에 대해서는 결과가 어떻든 무작정 내미는 완고한 도꾸다였다. 그래서 그의 성과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독규》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그 말을 그대로 직역하면 특급 즉 언제나 특급렬차와 같이 무섭게 내닫는다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창문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김운해가 하는 말들을 되새겨보시였다.
일본공산당과 쏘련당과의 호상관계, 도꾸다자신의 성격, 물론 무시할수는 없는것이다. 어떻게 보면 있을수 있는 일들을 예견성있게 내다보는 말이라고도 할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그대로 본다고 하여 또 앞날에 있을수 있는 일을 내다본다고 하여 정확한 판단이 되는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실에 대한 옳은 반영일수는 있지만 자기의 문제, 자기가 책임져야 할 문제에 대한 독자성과 창조성은 결여되여있기때문이다. 만약 모든 문제를 그렇게만 본다면 자신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주위환경과 국제적인 정세가 유리하게 달라지지 않는 한 자기 문제는 해결할수 없다는것이 아닌가. 지금 일본공산당이 모든 문제를 쏘련당에 의거하고있기때문에 그들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한 재일동포들의 처지도 달라지지 않는다는것이 아닌가! 천만에!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저으시였다.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절대로 이 문제를 외면하거나 수수방관할수 없습니다. 우리 동포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문제인데 그것을 어떻게 남들에게 맡길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문제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주인이 되여야 하고 또 우리가 의도하는대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김운해동무!》
장군님의 눈빛은 엄엄했고 얼굴에는 준엄한 기상이 어리였다.
《나는 재일동포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미의 해외교포운동에 대한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설사 그 누가, 그 어느 나라 당이 반대한다고 해도 또 그들이 자기들의 주장때문에 우리에 대한 립장을 바꾼다 해도 우리는 절대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행에 처한 동포들의 운명을 뒤전에 밀어놓고 우리가 무슨 원칙을 지키고 도리를 지킨단 말입니까? 일본공산당의 지도자들도 아니, 그 누구도 우리 동포들의 피를 우리처럼 귀하게 생각할수는 없습니다. 혈육들의 피는 혈육이 지켜야 합니다!》
《…》
눈길을 떨구며 생각에 잠기는 김운해를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과연 그를 도꾸다한테 보내여 로선전환의 성과를 기대할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드시였다. 그가 맡아수행해야 할 임무가 의례방문이나 외교사절이 아니라 우리의 주장, 그것도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는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새로운 로선을 관철해야 할 더없이 어려운 과제인것이다.
윤병도를 국제당에 보내기 전날 그와 함께 요영구귀틀집에서 밤새껏 앞으로 있을수 있는 정황에 대해 토론하던 일이 상기되시였다. 조선사람은 어디에서 살든 조선혁명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 주장을 그땐 국제당, 오늘은 일본 및 쏘련당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것은 비슷했으나 그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의 각오와 리해정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확실히 김운해는 아직도 일본공산당에서 일하면서 체질화된 기성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오랜 기간 일본혁명의 소용돌이속에서 살다나니 기성원칙과 주장들에 습관된 나머지 자기 문제는 자체의 힘으로 풀어야 한다는 의지와 신념이 부족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그를 믿고싶으시였다.
《나는 사실 김운해동무가 도꾸다서기장을 만나 우리의 립장을 전달했으면 했는데…》
《…》
김운해는 흠칫 놀랐다가 다시 머리를 떨구었다.
《자신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할수 없습니다. 확신이 없는 일을 하라고 할수는 없고 또 그렇게 하는 일이 성과도 있을수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생각에 잠기시였다.
(그럼 누구를 보낸단 말인가! 책임적이고도 신념이 확고한 사람이여야겠는데…)
문득 한사람의 모습이 떠오르시였다. 이럴 때 그가 상기된것이 못내 기쁘시였다. 그는 바로 일시적후퇴시기에는 비록 반혁명분자들의 간계에 넘어가 과오를 범했지만 이젠 과오를 심심히 뉘우치고있을뿐아니라 새로운 결심까지 다지고있는 림춘호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사업과 생활을 료해하시고는 그를 얼마전 황해도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시였던것이다. 일단 확신을 가지기만 하면 그것이 관철될 때까지 끊임없이 줄기차게 들이대는 그라는 점이 무엇보다도 만족스러우시였다. 이미 해외교포운동에 대한 경험과 파악이 있는 그를 지영이와 함께 도꾸다에게 보낸다면…
《좋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세사람을 돌아보시며 힘찬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김훈동무! 동무는 덕수동무와 약속한대로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가 오늘 토론된 로선전환방침에 대한 내용을 그에게 알려주시오. 될수록 빨리 말입니다. 갈 때 국문활자와 초중급학교 교과서도 한질 가지고 가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새로 복간된 〈해방신문〉이나 조선문제연구소에서 국문활자가 필요될것이고 4월에 시작되는 새 학기부터는 동포자녀들이 조국의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할수 있게 해야 합니다.》
《…》
김훈은 감사와 경탄이 어린 눈길로 장군님을 우러르기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