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4 회)
제 5 장
1
서른네번째로 미합중국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가 조선전선에 펼쳐놓은 《신공세》로 하여 전선형편은 살벌했다.
2차 세계대전시기 련합국군사령관이였다는 군사적관록을 등에 지고 《우리의 번영은 전쟁번영》이라며 전쟁미치광이로서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낸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조선전선을 시찰하고는 대량살륙무기를 비롯한 원자무기의 사용까지 타산한 《신공세》를 준비했다.
서해안의 한천과 남포, 동해안의 원산에 대규모의 무력을 상륙시켜 우리의 전선과 후방을 차단하고 기본전선에서의 공격과 배합하여 아군주력을 《소멸》할것을 꾀한 놈들은 어리석게도 이 공세를 통해 련속적인 패전으로 헤여날수 없는 궁지에 빠진 전쟁국면을 저들에게 유리하게 전환시켜보려고 했다. 《신공세》에 전적으로 전쟁의 운명을 건 놈들은 미국본토와 일본으로부터 함선과 비행기 그리고 지상병력을 대대적으로 동원했을뿐아니라 지어는 새로 건설된 일본의 《자위대》무력과 장개석도당의 군대를 끌어들일것을 타산했다. 그래도 안되면 원자탄까지 사용할 계획이였다. 놈들의 이 모험적인 계획에 기가 질린 세계는 바야흐로 조선전쟁이 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있었다.
전선형편은 이처럼 엄혹했으나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최고사령부의 자그마한 앞뜰을 거니시면서 며칠전부터 마음을 무겁게 하는 한가지 문제를 놓고 생각이 깊으시였다. 그것은 전쟁과는 인연이 먼것이였다. 하지만 요즘은 한시도 그 생각에서 떠날줄 모르는 그이이시였다.
놈들의 《신공세》를 파탄시킬 작전을 구상하다가도 또 적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안길 명령을 하달하다가도 그 생각이 떠오를 때면 은연중 창밖을 내다보군 하시였다. 밤에는 잠조차 이룰수가 없으시였다.
얼마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였던 《아시아 및 태평양지역 평화회의》에 민전대표로 참가했다가 조국에 온 김훈의 보고는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재일조선인운동이 이젠 위험계선을 넘어 막다른 지경에 이른것이였다. 이미부터 재일조선인운동이 시련을 겪고있다는것은 알고계시였지만 이처럼 급전직하로 낭떠러지에 떨어질줄은 짐작 못하시였다.
반년전 일본에 갔다온 지영이의 보고를 들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험악한 형편은 아니였다. 놀랍기도 하고 노엽기도 했으나 일이 바로잡히리라는 믿음 또한 크시였었다.
일본에까지 갔다온 지영이가 영신이를 떨궈두고 온것이 노여우셨다면 민대파들이 공화국사수강령을 삭제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못내 놀라우시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그런 놀라움보다 놈들의 책동을 짓부시기 위해 동지들과 함께 억척같이 싸우고있는 덕수, 기어이 강령을 사수하고 동포들을 묶어세우고야말겠다는 그의 불같은 마음을 더 믿으시였다.
사실 덕수는 그 믿음대로 싸웠다. 수많은 일군들을 애국진영에 결속함으로써 놈들이 삭제한 강령을 다시 채택하고야말았고 《해방신문》을 비롯한 여러 출판물들을 복간하거나 새로 내왔으며 그것을 통해 동포들을 조국의 두리에 묶어세우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내밀었다.
동포들의 기세는 충천했다. 하지만 그 열화같은 기세가 지금은 일본공산당이 몰아온 무장혁명의 돌풍에 휩쓸려 처참하게 쓰러졌다.
장군님께서는 무참하게 희생된 동포들 생각에 쉬이 손에 일감을 잡지 못하시였다. 통분하기 그지없으시였다. 이제 또 어떤 참변이 일어날지 모른다. 숱한 조선사람들의 주검을 쌓아놓고도 일본공산당은 여전히 민대파를 내세워 일국일당원칙을 부르짖으며 우리 동포들에게 돌격대의 기발을 추켜들라고 호소하고있다. 조국도 겨레도 안중에 없는 민대파들은 국제로동계급의 위업이라는 엄엄한 간판뒤에서 일신의 공명과 출세를 꿈꾸며 배신의 길을 줄달음치고있다. 놈들은 민족의 피가 무엇보다도 귀중한것임을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격한 심정을 누를 길이 없으시였다. 문득 최근에 적발된 박헌영, 리승엽도당의 반혁명적책동이 상기되시였다. 조사과정에 놈들이 오래전부터 미제의 고용간첩이였다는것이 폭로되였다. 놈들의 죄행이 하나하나 드러날 때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별로 놀라지 않으시였다.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지키자면 침략자들과 외세를 등에 업은 혁명의 원쑤들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각오를 이미 다지신 그이이시였다. 인민의 원쑤들은 못하는짓이 없었다. 박헌영, 리승엽도당이나 민대파나 다같이 외세에 민족을 팔아먹으려 책동한 용서 못할 배신자들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고드름이 조롱조롱 달린 키낮은 추녀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송곳처럼 뾰족뾰족한 고드름들이 저녁해빛을 받아 마치 보석처럼 령롱한 빛을 뿌리고있었다.
(조국에는 당이 있고 대중이 있고 또 놈들을 조사할 법기관이 있지만 일본이야 그렇지 못하지 않는가! 오히려 덕수자신은 놈들한테서 박해를 받고있는 형편이 아닌가!)
《장군님, 괴롭습니다.》
덕수는 편지에 쓰고있었다.
《이 모든 사실이 장군님 뜻과 다르다는것을 알고 장군님께서 바라시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알지만 그걸 바로잡지 못했기때문에 괴롭습니다. 또 이젠 바로잡을 힘이 없기에 더욱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눈앞이 캄캄할뿐입니다.》
덕수의 그 괴로움이 장군님의 마음을 시시각각 아프게 했다. 그 괴로움이 얼마나 크면 얼마전에 죽은 나어린 아들에 대해서는 단 한줄도 쓰지 못했겠는가. 늦게 본 자식이여서 그토록 사랑스러웠으련만 종파들에 대한 사무친 증오로 하여 또 앞날에 대한 참담한 절망으로 하여 뼈를 에이는 그 슬픔조차 터놓지 못했으리라.
장군님께서는 번쩍 머리를 드시였다. 순간 그이의 안광에서는 단호하면서도 결연한 불꽃이 펑끗하고 작렬했다.
(안된다! 더는 미룰수도 없고 미뤄서도 안된다!)
단호한 결심이, 며칠동안 가슴속에 소용돌이치던 분노와 번민과 격정이 일시에 하나의 분출구를 뚫고 무섭게 터져나오는것을 의식하시였다.
(조국앞에 닥친 《신공세》가 조국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면 재일동포들앞에 가로놓인 난관은 벌써 그들의 운명을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게 하고있지 않는가! 미제가 벌리려는 《신공세》는 이제부터 우리 인민이 어떻게 싸우는가에 달려있지만 재일조선인운동은 어느새 다시 추서지 못할 구렁텅이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만약 이제 더 지체한다면 60만재일동포들은 다시금 조국을 잃고 방황하는 망국노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 더는 수수방관할수 없다. 당장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과연 어떻게 해야 놈들의 정체를 발가놓으며 모든 동포들을 애국을 위한 투쟁에로 불러일으킬것인가! 어떻게 해야 조국땅도 아닌 일본에서 벌어지는 이 위급한 사태를 바로잡을수 있을것인가.)
한껏 숨을 들이그으신 그이께서는 놈들이 도대체 무엇을 믿고 그리도 무분별하게 날뛰는가 하는 생각에 미치시였다. 아무리 흉악한 살인범이라 해도 자기 범죄를 합리화하는 구실이 있는것처럼 종파들인 경우에도 자기 책동을 타당화하기 위한 구실은 있는 법이다.
민대파들이 재일동포들을 조국에서 떼내여 일본혁명의 돌격대로 복무케 하려는데서 찾는 리론적근거는 무엇보다도 재일동포들이 조국과 떨어져 사회경제제도가 전혀 다른 일본땅에서 살고있다는 조건이다. 말하자면 지역의 공통성, 경제생활의 공통성을 민족의 징표로 보는 선행리론을 처방으로 내세우고있다. 그 견해로 하여 놈들은 재일동포들은 일본혁명이 승리하고 일본이 민주화되지 않고는 그 어떤 권리도 행복도 보장받을수 없다고 하면서 동포들을 일본혁명에로 내몰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민족의 징표를 경제생활이나 지역의 공통성에 기준할수 있는가! 특히 나라와 민족이 둘로 갈라진 우리 나라에서 민족문제를 그렇게 규정한다는것은 천만부당하며 위험한 일이 아닐수 없다. 만약 그 주장대로 한다면 남과 북으로 갈라져있는 조선사람은 한민족이 아니라 두개의 민족이라는것으로 되며 조국통일문제 역시 미제에 의해 강요된 민족의 분렬을 끝장내는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민족을 합치는 문제라는것이 아닌가!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처지와 립장으로부터 민족의 기본징표를 거주지역이나 경제생활이 아니라 혈통과 언어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남녘동포들은 말할것도 없고 일본에서 사는 재일동포들도 우리와 한 피줄을 이은 사람들이며 조선말을 하며 조선의 넋을 간직하고 사는 한겨레이다. 지금 일본에서 투쟁하고있는 한덕수와 일군들도 결코 일본혁명을 위해 그곳에 있는것이 아니다. 비록 몸은 일본에 있지만 그들은 조국을 위해 투쟁하는 조선의 애국자들인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일본에서 산다고 해도 일본의 소수민족이 아니며 될래야 될수도 없다.
여기에 또하나의 문제가 있다. 덕수도 편지에 쓴것처럼 일국일당원칙이라는 장애다. 지난 시기에는 물론 지금도 해외교포운동이 대체로 이 원칙에 근거하여 진행되고있다. 종파사대주의자들이 이 원칙에 의거하고있으며 이젠 일본공산당자체가 이 원칙을 내대고 재일조선인운동을 좌우지하고있다. 하지만 이 원칙은 한 나라에서 전위당을 표방하는 조직이 여러개 나올수 있는 위험성을 막으며 로동계급이 벌리는 투쟁에 대한 지도의 분산성을 막는것을 기본목적으로 해서 나온것이다. 그런 조건에서 일국일당원칙을 지키도록 한것은 공산주의운동의 발전을 위하여 의의를 가지였다. 물론 지금도 그 원칙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해외교포운동이 공산주의운동은 아니지만 진보적인 사회정치운동인것만큼 거주국안에서 그 나라 로동계급의 전위당과 령도권을 다투는 일이 없어야 할뿐아니라 거주국전위당이 그 나라 인민들의 혁명을 령도하는데 대해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만 재일조선인조직은 결코 일본공산당과 령도권을 다투는 그런 조직이 아니며 재일동포들 역시 일본사람과 같은 리해관계를 가지는 사람들도 아니다. 따라서 재일조선인운동이 일본혁명의 한고리가 될수 없다는것은 명백한 일이다. 더우기 운동을 지도할 조국이 있고 조선로동당이 있고 자체의 핵심력량이 있는 오늘에 와서까지도 그들에 대한 지도를 일본공산당이 맡아야 한다고 하면 그것은 분명 선행리론에 대한 교조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대국주의적경향이 아닐수 없다.
또한 이 두 문제, 일국일당문제와 민족문제는 어디까지나 별개의 문제다. 민족이라는 대의앞에서는 계급적인 문제는 물론 계층의 주장이나 견해상차이도 먼저 나설수 없다. 민족이 전체라면 계급이나 계층은 그 구성부분이기때문에 민족이라는 대의에 철저히 복종되여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 민족인 재일동포문제를 절대로 일본공산당에 맡겨둘수 없을뿐더러 맡게 해서도 안된다.
공산주의운동이 시작되여 한세기가 지나는 동안 국제당의 로선을 절대시해온 공산주의자들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세운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재일조선인운동은 기존공식이 아니라 자기의 실정에 맞는 로선을 세우며 그것을 관철해나갈것을 요구하고있다. 지체할수 없다. 결정적인 대책을 취해야 한다.
오직 그것만이 60만재일동포들의 운명을 책임지는 조국의 응당한 의무로 되며 도리로 된다.
어깨에 걸친 외투를 한번 추스르신 그이께서는 곧 몸채옆에 달린 부관실로 향하시였다.
《최진동무!》
장군님께서는 문소리와 함께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는 최진에게 말씀하시였다.
《홍명희부수상과 김운해부장동무를 부르시오. 그리고 외무성 숙소에 있는 김훈동무도 함께 오게 하시오.》
《알았습니다.》
최진이 힘찬 대답을 올리고 통신결속소로 달려갔다.
장군님께서는 다시 마당을 거닐기 시작하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