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회)

제 4 장

11

 

흰 위생복을 입은 의사들과 간호원들이 분주스레 자기앞을 오갔지만 구급실앞에 서있는 수임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자기의 팔에 매달려 한사코 앉으라고 권하는 간호원의 말조차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다만 까만 눈을 반짝거리며 쳐다보는 호일이의 모습과 당장 구급실문을 박차고 《엄마!》하고 뛰여나올것만 같은 아들의 목소리가 들릴뿐이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의 육신같지 않게 덜덜 떨리기만 하는 어떤 공포에 전률하면서 제발 이 순간이 악몽이기만을, 그 악몽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뿐이였다.

조금전 수도가에서 빨래를 하던 그는 낯빛이 새파래서 달려온 옆집 아이의 말에 그만 가슴이 철렁했다. 호일이가 무슨 음식인지 잘못먹고 길가에 쓰러진걸 누가 병원으로 업고갔다는것이였다.

《음식이라니?》

대뜸 요즘 배를 곯는 호일이가 찬장우에 얹어놓은 고구마를 잘못먹고 체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요즘 점심은 아예 건느다싶이 하고 아침저녁으로만 보리밥이나 양파로 겨우 끼니를 에우는 형편이였다. 워낙 쌀이 귀하기도 했거니와 쌀을 구할 돈이 없었다. 더우기 돌잡이 호철이가 자주 앓는 바람에 그 약값을 장만하기에 경황이 없었던것이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온 수임은 아연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체했으리라고 여겼던 호일이가 구급실에 들어가있다는것도 놀라왔지만 아무리 떼를 써도 의사들이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것이였다. 자기가 나타나길 기다리기라도 한듯 앞을 막아선 나어린 간호원이 구급처치를 하고있으니 마음을 놓으라는 말만 반복할따름이였다. 그러면서도 수임이를 정면으로 마주보기는 꺼려했다.

《우리 애가 그렇게도 위급한가요? 말해주세요, 도대체 무엇을 잘못먹었길래…》

수임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빨래를 하느라고 걷어올렸던 팔소매는 물론 헝클어진 머리조차 쓰다듬을 경황이 없었다.

《애가 끼니를… 끼니를 제대로 에우지 못했더군요.》

옆에 있는 의자에 수임이를 앉힌 간호원은 손을 마주비벼대며 마른침을 삼켰다.

《오늘도 점심을 굶었는지 위가 텅 비여있었는데… 그렇지요? 물론 생활이 어렵다는건 리해돼요. 그래도 한창 먹을 나인데 점심을 싸주어야…》

그 말에 수임은 아무 대꾸도 할수 없었다. 자기나 영신이는 점심을 건늬여도 호일이만은 굶길수 없어 학교에 갈 때마다 꼭꼭 동전 두잎씩은 들려보내군 했다. 20엔이면 빵 한개는 사먹을수가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호일이는 처음 몇달동안은 빵을 사먹지 않고 동전을 고스란히 가지고 돌아오군 했다. 왜 빵을 사먹지 않느냐고 묻자 대뜸 볼부은 소리로 대꾸했다.

《엄마도 영신아지미도 못 먹잖아?》

수임은 그 말에 가슴이 뭉클했으나 화가 치밀었다.

《엄마나 영신아지미는 누룽지도 있고 참대순도 있지 않니. 그리고 어른들은 배고픈줄 모르는거야. 이제부턴 빵을 사먹어라. 안 사먹으면 성을 낼테다. 알겠니?》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호일에게 빵을 사먹었느냐고 물으니 호일이는 대답대신 책가방고리부터 풀었다. 천으로 만든 들가방안에서 종이에 싼 빵을 꺼내는 순간 수임은 가슴을 찔리우는듯 한 아픔과 함께 정말 참을수 없는 화가 솟구쳐올랐다.

《이걸 왜 가지고 왔어, 왜 먹지 않고 가지고 왔냐 말야. 당장 먹어! 엄마앞에서 어서!》

여느때의 엄마답지 않게 무섭게 다그어대는 바람에 어리둥절해있는 호일이를 수임은 더욱 엄한 눈길로 노려보았다. 어머니의 꾸지람에 빵을 손에 쥐기는 했지만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야 할지 어쩔지 망설이던 호일이는 다시 재촉하는 바람에 엉겁결에 빵을 입으로 가져갔다. 빵을 한입 깨문 그때까지만 해도 호일의 표정은 어딘가 어줍어하면서도 미안해하는 기색이였다. 그러나 그런 기색은 곧 빵맛이 입안에서 나타내는 효력, 여태껏 참아오던 허기에 포로가 되여버린데로부터 폭신폭신한 빵이 주는 달콤하면서도 감미로운 효력으로 바꿔지기 시작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차마 그냥 보고있을수가 없었던 수임은 얼른 물을 뜨러 가는척 하면서 방을 나섰다. 그러나 방앞에 벗어놓은 아들의 깁고 또 기워 뒤굽이 다 무너진 운동화를 보는 순간 그만 앞치마로 입을 싸쥐고말았다. 책가방은 못 사줘도 신발만은 꼭 새것을 신기여 학교에 보내려고 했댔으나 그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니 변질된 음식을 먹었는가요?》

수임의 물음에 고개를 저어보인 간호원은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꾸했다.

《글쎄 인공호흡을 시키던 끝에… 위액을 추출해보니까…》

만약 의학에 약간한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간호원이 한 말을 무심히 듣지 않았을테지만 수임이로서는 인공호흡을 시키고 위액을 추출하는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다른건 아무것도 없고 그저 오뎅국물이 약간 나왔을뿐이였어요.》

《오뎅》이라는 말에 수임은 피뜩 정신이 들었다. 낮에 출장을 떠나는 영신이를 바래주고 왔을 때였다. 영신이는 요즘 덕수의 지시로 지방에 있는 조직들이며 사람들을 만나러 자주 출장을 다니군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호일이가 가방을 놓기 바쁘게 자기앞에 다가와 얼른 손바닥을 펴보였다. 거기에는 구멍이 뚫린 5엔짜리 동전이 놓여있었다. 빵을 사먹기는 했지만 20엔짜리가 아니라 15엔짜리를 사먹고 남긴 돈이 분명했다.

《왜 돈을 남겼니?》

《15엔짜리 고빼빵이 더 큰데 뭐.》

《그래도 속이 있는 빵이래야 맛도 있고 근기도 있는거야. 이제부턴 그걸 사먹도록 해라. 알겠지?》

5엔을 남겨온것을 대단한 일로 여기는 아들을 바라보며 수임은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남긴 돈인데 네가 쓰려무나.》

그러나 5엔이나 가지고는 아무것도 사지 못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문득 호일이가 두눈을 반짝이며 쳐다보는것이였다.

《엄마, 나 이걸로 오뎅 사먹을가? 곤냐꾸 하나에 5엔이야!》

녀석이 오죽 그걸 먹고싶었으면 그런 말을 하랴 하는 생각이 든 수임은 얼른 주머니를 뒤지였다. 마침 출장을 떠나면서 영신이가 주고간 돈이 있었다. 10엔짜리 동전 한잎을 호일이 손바닥우에 놓아주며 수임은 말했다.

《자, 이걸 가지고 가서 사먹어라!》

《야-》

호일이는 대뜸 신이 날 때면 그런것처럼 한팔을 빙빙 돌리며 거리쪽으로 뛰여갔다.

포장마차에 커다란 화로를 싣고 가마에다 찌꾸와(고기떡의 일종)며 곤냐꾸(묵의 일종), 우봉 등을 끓여서 가라시(겨자)에 찍어 먹을수 있게 만들어 파는 오뎅을 아이들은 말할것도 없고 어른들까지도 무척 좋아했다.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는 곳이면 그 구수한 냄새에 끌리여 마을조무래기들이 다 모여들군 했다.

《그러니까 그 오뎅을 잘못먹었다는건가요?》

따지는듯 한 수임의 독촉에 놀란 간호원은 어망결에 대꾸했다.

《잔뜩 허기진데다가 뜨거운걸 급히 먹다나니 그게 그만 기도로 들어가 숨구멍을…》

《숨구멍을?》

뚫어지게 간호원을 쏘아보던 수임은 불시에 후닥닥 자리를 차고일어났다.

《그럼 호일이가… 우리 애가?》

그리고는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며 황황히 구급실을 향해 달려갔다. 그제야 자기의 실수를 알아차린 간호원은 두손을 모두어쥐고 발을 동동 굴렀다.

구급실안으로 뛰여든 수임은 방복판에 놓여있는 침대를 보는 순간 한자리에 굳어지고말았다. 왜서인지 의사나 간호원은 한사람도 없었다. 다만 댕그라니 놓여있는 침대우에는 침대길이의 절반이나 되나마나한 자그마한 체구우에 백포가 씌워져있을뿐이였다. 일시에 싸늘한 공포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퍼져나갔으나 수임은 속으로 부르짖었다.

(아니, 여기 있는건 호일이가 아니야! 호일이는 분명 다른데 있고 여기엔 다른 아이가 누워있는게 틀림없어!)

그러면서도 수임은 침대로 선뜻 다가설수가 없었다. 무언지 모를 힘이 그의 온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놓는것이였다. 언제나 다급한 정황에 부딪칠 때면 그러하듯이 수임은 벌써 자기의 감정과 행동을 다잡을 능력도 의지도 다 잊어버리고말았다. 다만 《아니다.》, 《아니다.》하는 말만 입속으로 되뇌이며 침대로 다가가 후들후들 떠는 손으로 조심스레 백포를 들치였다.

《아!》

수임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터뜨리였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의 웨침이라기보다 어떻게 들으면 반가움의 탄성같기도 했다.

침대에 반듯이 누워있는 호일이의 모습은 너무나도 눈에 익은 모습, 언제나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을 때의 그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모습이였다.

《호일아!》

늦잠을 자는 호일이를 깨울 때처럼 수임은 두손으로 아들의 목을 감싸안으며 조용히 불렀다. 그럴 때면 늘 두팔을 쳐들어 기지개를 켜면서도 눈을 뜨지 않은채 웃음을 짓군 하던 호일이였다. 지금도 자길 안아일으켜주길 바래 당장 팔을 벌릴것만 같았다.

《자, 눈을 떠라! 내가 왔다, 엄마가 왔어!》

이부자리에서 안아일으킬 때마다 하는 버릇대로 호일의 뺨에 볼을 갖다대던 수임은 그만 흠칫하고말았다. 늘 보동보동한 보드라운 살결에 전해지군 하던 따스한 체온대신 여태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싸늘한 촉감이 가슴을 지졌기때문이였다.

얼른 옷을 들치고 가슴이며 배를 쓸어보았으나 온통 다 싸늘하였다.

《아니, 얘가? 얘 호일아! 호일아!》

호일이의 어깨를 흔드는 수임은 벌써 제정신이 아니였다. 처음에는 조심스레 흔들었으나 그래도 대답이 없자 점점 세차게, 그러다 나중에는 마치 과실나무에서 열매를 떨어뜨릴 때처럼 그렇듯 맹렬한 기세로 흔들어댔다. 이리저리 흔들리우면서도 호일이는 여전히 두 눈을 감은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뒤늦게 달려들어온 의사들이며 간호원이 팔을 쥐자 수임은 와락 호일이를 부둥켜안으며 부르짖었다.

《호일아- 이게 웬일이란 말이냐? 어쩌면 네가… 아- 호일아-…》

호일이를 껴안고 몸부림치던 수임은 갑자기 한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였다. 그리고는 목을 비틀며 괴로운 신음소리를 토하더니 온몸을 늘어뜨리였다. 그의 맥없는 몸뚱이가 털썩 침대아래로 미끄러져내렸다. 주체하지 못할 비통함이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그를 실신케 했던것이다.

의사들이 그에게 달라붙었다. 호일이대신 이번에는 그의 응급처치를 시작하였다.

덕수가 병원에 온것은 호일이의 시체가 령안실에 옮겨진 후였다.

진정제주사를 맞은 수임이는 호일이가 누워있던 그 침대에 누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있었다.

리계백, 윤덕곤, 김상기 등과 함께 령안실에 들어선 덕수는 검은 널우에 반듯이 누워있는 호일이를 아무말없이 내려다보기만 했다.

한참 그렇게 서있던 그는 그앞에 천천히 주저앉으며 나직한 소리로 아들을 찾았다.

《호일아!》

조용히 입속말로 아들을 불러보는 그 순간에야 그는 자기가 여태껏 오늘처럼 다정하게 호일이를 불러본적이 없었다는것을 상기했다. 그러자 언제나 자기를 두려운 존재로 여기면서 오래간만에 만나지만 방 한구석에 오도카니 서서 눈치만 살피던 호일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았다.

두손으로 호일이의 볼을 감싸쥔 덕수는 목메인 소리로 중얼거렸다.

《용서해라, 널 한번 따뜻이 안아주지도… 배불리 먹여주지도 못한 이 못난 아버지를 용서해라.》

저도 모르게 와락 호일이를 그러안은 그는 아들의 가슴에 머리를 박으며 사자의 울부짖음같은 소리를 토했다.

《아- 호일아! 불쌍한 내 아들아-》

덕수의 이 절통한 부르짖음에 뒤에 서있던 사람들도 하나같이 어깨를 들먹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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