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4 장

9

 

《〈피의 메데!〉 전후 일본최대의 류혈사건! 사상자 200여명, 검거자 1 300명!》

《선혈로 물든 궁성앞 인민광장!》

《무엇을 위한 누구의 시위인가?》

온 일본땅이 법석 끓었다. 신문이라는 신문은 옹근 1면이 하나같이 5. 1절폭력시위에 대한 기사와 사진들로 메꾸어져있었다. 어느 신문이나 다 사건의 책임을 조선사람들에게 돌리고있었고 사진 역시 공화국기를 든 청년들이 경찰들과 결투를 벌리고있는 장면들이였다. 제목부터 로골적인 조선인들을 규탄한 기사들도 많았다.

《일본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장본인- 재일조선인들!》

《〈민전〉, 일본에서 무엇을 노리는가?》

《민주발전의 암, 재일조선인들 즉시 추방해야》

이런 특호활자의 제목아래 민전과 재일동포들에 대해 전에 없이 신랄한 비난을 퍼부어댔다.

신문들은 법무총재 우에다가 발표한 담화내용도 게재했다. 서슬푸른 담화에서 우에다는 《위험한 폭력단체》인 민전에 대한 법적대책을 즉시 강구하겠다는것과 함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일동포들을 《외국인등록법》과 《출입국관리령》에 근거하여 철저히 조사장악한 후 사소한 위법현상인 경우에도 가차없이 추방할 방침이라는것을 단호히 언명했다.

특히 신문들에서 눈길을 끄는것은 일본의 정계, 학계, 사회계의 이름있는 인사들이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발표한 소감들이였다. 그들은 하나와 같이 이번 사건을 《유감》으로 여기며 《불만스럽게》 생각한다는것이였고 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 나라 전쟁의 울화를 일본에 쏟아놓은 란폭한 야쯔아다리(화김에 하는 행동)에는 조소를 금할수 없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재일조선인들이 자기 나라 혁명을 일본에 수출하려는 무모한 의도를 버려야 한다.》고까지 한 정객도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이번 5. 1절폭력시위를 계기로 민전과 재일동포들은 일본사람들속에서 풀길없는 불만과 반감을 사게 된것이였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내용의 기사가 실린 신문도 있었는데 그것은 민대파들이 발간하는 일본판신문 《새조선》과 《북극성》이였다.

거기에는 《이번 5. 1절혁명적시위는 미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전후 최대의 반미저항투쟁이였을뿐아니라 요시다반동정권의 매국파쑈정책을 반대하는 거대한 민족해방독립투쟁으로서 일본혁명의 일대 전환기를 열어놓은 위대한 인민적봉화》라고 지적하고 《5 000여명의 동포들이 일본의 민주력량과 단결하여 영웅적투쟁을 벌림으로써 조선사람의 불굴의 기개를 온 세상에 다시한번 시위하였다.》고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이번 투쟁에서 얻은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과 위력을 앞으로는 전국적인 무장투쟁으로 더욱 확대해나가야 한다》는데 대해 력점을 찍어 강조했다.

덕수는 여러장의 신문들이 널려있는 편집탁주위에 둘러앉아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5. 1절폭력시위에 대한 분석과 앞으로의 활동방향을 토론하기 위해 이전 해방신문사에 모인 일군들이였다.

민전에서는 김훈, 리계백, 언론활동가들로는 리심철, 윤봉구, 김병소, 최은한, 김병식, 교육부문에서는 림광철, 리진규, 리동준이 참가했는데 늘 자리를 같이하던 윤덕곤과 김상기는 빠졌다. 그들이 참가하지 못한 리유는 5. 1절사태에 불만을 품은 일본사람들이 야밤에 윤덕곤의 집과 학우서방에 달려들어 《조선사람들을 몰아내라!》고 소리치며 돌멩이와 빈 병들을 마구 던지는 바람에 부상을 당했던것이다. 윤덕곤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지만 격분한 일본사람들을 설복하러 나섰던 김상기는 날아드는 돌멩이에 머리와 어깨를 다쳐 입원치료를 받고있는 형편이였다.

《이젠 같이 있는 일본학생들까지도 뭐라는지 압니까? 민전을 〈불순한 단체〉나 〈위험한 단체〉라는 정도가 아니라 당장 〈폭파해야 할 단체〉라고 한단 말입니다.》

도꾜중고 교장인 림광철이 모난 얼굴을 쳐들고 분에 넘쳐 말했다.

학교《페쇄령》직후 일본인교장이 배치되여오자 그는 한 학교에 어떻게 두 교장이 있을수 있느냐며 어디까지나 학교교장은 자기라는것을 만장에서 선포하는 바람에 일본인교장은 아예 주눅이 들어버렸고 그의 남다른 배짱과 결패에 감동된 일본학생들까지도 그를 교장으로 여기며 따랐던것이다.

《이젠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교장이 아니라 대장이라고 수군거리지요. 폭력대장이라는거지 뭡니까. 그리고 우리 학생들에 대한 집단폭행도 꺼리낌없이 하고있단 말입니다.》

《어제 밤에 이웃에 사는 대학교수가 갑자기 문을 두드리지 않겠소.》

이번에는 건설통신사 사장이였던 김병소가 편집탁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교단에 나서기만 하면 학생들이 묻는다는거요. 묻는게 아니라 따지고든다는거지. 〈교수님은 언제나 조선사람에 대해 호의적으로 대해왔는데 이번 사건에 대해선 어떻게 리해하십니까?〉 하고말이요. 그때마다 자긴 말문이 막히군 하는데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좀 대달라는게 아니겠소. 글쎄 내가 뭐라고 하겠소.》

《내가 걱정스러운건 무엇보다도…》

잠자코 앉아있던 리계백이 코잔등으로 미끄러져내린 안경을 밀어올리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민전 초기부터 서기장으로 일해오는 그였으나 요즘에 와서는 한사코 일을 못하겠다고 덕수에게 들이대군 했다. 그 리유는 민대파들이 하는짓이 옳지 않다는것을 알고도 남는 그가 그들의 지시를 받아물어야 할뿐아니라 집행까지 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처지에 있기때문이였다.

사실 민전에서 제기되는 모든 일들은 의장들보다도 서기장인 그가 주관해야 할것이 더 많았다. 사업을 계획하고 조직하고 집행하는것은 그가 직접 전문부서들을 통해 하게 되여있으나 문제는 어느것 하나도 자기가 의도하거나 주장하는대로 진척시키기는커녕 도리여 매번 민대파들의 지시를 좇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워낙 웬만한 불만쯤은 나타내지 않는 진중한 사람이였지만 서기장노릇만은 못하겠다고 뻗대군 했는데 그때마다 덕수는 타이르는듯 말했다.

《계백동무! 우리가 지금 자신의 고통이나 괴로움을 따질 때요? 조국이 시련을 겪고있고 동포들의 운명이 생사갈림길에 놓여있지 않소. 참읍시다, 조국을 위해 참고 동포들을 위해 참아야 한단 말이요.》

남다른 처지로 하여 요즘에 와서는 우울해있는 리계백이였으나 될수록 그런 티는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을 이었다.

《문제는 동포들과 청년들이 이젠 민대파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받아물고있다는 사실이요.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지시가 조국의 뜻인가 한단 말이요.》

리계백은 옆에 앉아있는 덕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자기 말에 어떤 대꾸가 있으리라 여기고 쳐다보는 눈길이였지만 덕수는 여전히 책상우에 놓여있는 신문을 뒤적거리기만 했다.

공직에서 추방된 다음부터 특히 최근에 오면서 덕수에게는 하나의 버릇이 생겼는데 그것은 무슨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면 여느때처럼 먼저 의제를 상정시키고 거기에 대해 토론하는것이 아니라 서로가 털어놓는 이러저러한 얘기를 한참씩 듣군 하는것이였다. 그 얘기가 개인에 한하는것이든 다른 사람의 일이든 또 그 자신의 감정이든 다른 사람의 견해든 상관치 않았다. 공식적인 모임에 못 참가할뿐더러 사람들조차 마음대로 만날수 없는 처지여서 그렇게 하는것이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기도 했거니와 그 과정에 자기가 세워놓은 판단이나 견해를 재확인해볼수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습관에서라기보다도 마음을 차지하고있는 강한 충격으로 하여 더 입을 열지 못하고있었다.

낮에 그는 일군들과 함께 장례를 치르는 태길이네 집에 갔었다. 당장 령구차에 실려 화장터로 떠나는 태길이의 널을 붙들고 통곡하던 그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데 있습니껴, 예? 관동대진재땐 남편이 놈들의 죽창에 찔려죽더니 오늘은 또 태길이까지 놈들의 총에 맞아 죽었으니, 아이-고- 난 이젠 누구를 믿고 살아갑니껴, 예? 말 좀 하이소, 아- 하늘도 무심해라.…》

덕수는 머리를 풀어헤친채 가슴을 쥐여뜯는 태길이 어머니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할수 없었다. 생각같아서는 태길이 어머니를 붙들고 같이 울고싶은 충동, 그토록 자기를 위해주던 태길이 어머니 심장에 대고 진정을 토로하면서 자신의 고통을 하소연하고싶은 욕망에 견딜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태길이를 죽인건 민대파들이라고, 조국을 배신한 그놈들이 동포들을 죽음에로 내몰았다고 소리치고싶었지만 목이 메여 말이 나가지 않았다.

《어머니!》

덕수는 태길이 어머니를 붙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용서하십시오, 다 내 잘못입니다. 태길이가 잘못된거며 숱한 동포들이 피해를 본건 다 내가 일을 제대로 못했기때문입니다.

태길이는 정말 마지막까지…》

《아이-고, 세상에-》

와락 덕수에게 달려든 태길이 어머니는 또다시 가슴이 찢어지는듯 한 통곡을 쏟아놓았다.…

《내 이번에 오사까에 가보고 깜짝 놀란건 말이요.》

언제나 무슨 말을 할 때면 마른침부터 꿀꺽 삼키군 하는 윤봉구가 긴 목을 빼들면서 가랑가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벌써 무장투쟁과업을 받아물고 준비를 다그치고있는 지부가 열세군데나 되는데 그 준비란게 하나같이 경찰서나 파출소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할 계획이더란 말입니다. 어떤데는 벌써 부대가 편성되고 훈련요강이 작성돼있길래 훈련은 어디에서 하는가고 물었더니 산에 들어가서 한다는겁니다. 모두들 윽윽 하고 벼르는게 당장 무슨 일을 칠것만 같더란 말입니다.》

《옳소! 그것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안되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우려가 자기 견해와 같다는것을 느낀 덕수는 확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번 민전 6차 확대중앙위원회에서 무장투쟁로선문제를 기본안건으로 내세운거요. 동시에 이미 군중토의에 붙인 민전강령을 저들의 의도대로 최종확정하자는것인데 이것 역시 그 결정에 따라 동포들을 무장투쟁의 일선에 내세우자는거요. 그렇소. 정황은 이처럼 위급하오. 이 위급한 상태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내 생각을 말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긴장한 눈길로 덕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번 6차 확대중앙위원회에서 기어이 강령을 다시 채택해야 하오. 이것이 첫째요. 강령을 채택하지 못하고는 놈들의 책동을 막을수 없고 우리의 주장을 관철할수도 없소. 강령을 채택하는것, 이것이 지상의 과업이요. 또 이 과업이 곧 조국을 지키는것으로 되며 탈선한 재일조선인운동을 제 궤도에 올려세우는 담보로 되오. 강령을 놓고 벌리는 이 싸움에서 우리가 이기느냐, 놈들이 이기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은 물론 재일 60만동포들의 운명이 결정된다는것을 명심하고 모두가 결사전을 벌립시다.》

《…》

모두들 숙연한 침묵에 휩싸였다. 마치 마지막계선까지 후퇴한 전사들이 최후결사전을 벌릴데 대한 명령을 받아안았을 때처럼 엄숙하고도 비장한 표정들이였다.

《이번 투쟁에서 모든 동지들이 꼭 알아야 할것은》

덕수는 한결 엄숙한 표정을 지은채 말을 이었다.

《바로 우리가 종파들의 책동을 물리치고 다시 공화국사수강령을 채택하며 그리하여 재일조선인운동을 옳바른 길로 돌려세우겠다는것을 이미 장군님께 보고드렸다는 사실이요. 지금 장군님께서는 일본의 이런 실태를 알고계실뿐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싸우는가를 지켜보고계시오. 때문에 우린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이번 싸움에서 꼭 이겨야만 하오. 모두가 이걸 꼭 명심해주길 바라오.》

격식을 차린 모임은 아니였으나 마치 모두들 큰 회의에 참가하여 더없이 무겁고도 영예로운 과업을 받아안은 사람처럼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있었다. 특히 자기의 활동이 동포들의 운명과 직접 련결되여있으며 그것을 장군님께서 지켜보고계신다는것으로 하여 모두의 얼굴들에는 한결같이 결연한 의지와 결심이 넘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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