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0 회)
제 4 장
8
드디여 일본력사에서는 처음으로 있게 될 사변적이고도 충격적인 시각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있었다.
도꾜 징그가이엔을 뒤덮은 50만이나 되는 대군중의 물결을 바라보는 원철은 숨이 막히다못해 온몸이 전류에 감전되기라도 한것처럼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로동계급의 명절인 5. 1절에 오늘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보기는 처음이였다. 동서남북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사람 또 사람의 파도였다. 프랑카드를 흔드는 사람, 조합기를 휘두르는 사람, 이마에 붉은 띠를 동이고 주먹을 하늘높이 쳐드는 사람, 말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고있었다.
열기띤 연설들이 계속될 때마다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힘찬 구호의 함성이 5월의 창공을 뒤흔들었다.
《민족의 독립을 완수하자!》
《재군비, 재무장을 반대한다!》
《저임금을 통일행동으로 분쇄하자!》
원철은 집회장 한가운데 세워져있는 두개의 아치형구호에 시선을 멈추었다. 집회를 준비하면서 자기가 별도로 지시해서 만들어세운 구호였다.
《일본인민의 적은 조선인민의 적이다!》
《3반투쟁은 조선사람의 과업이다!》
그는 이 구호를 통해 오늘집회가 단지 일본의 독립과 평화를 위한 일본인민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일본혁명을 함께 수행하고있는 조선사람들과의 공동모임이라는것을 보여줌으로써 일본사람들에게는 자기옆에 언제나 믿음직한 동맹자, 조선사람이 있다는것을 깨닫게 하고 또 조선사람들에게는 일본혁명수행만이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라는것을 인식시키려고 했다.
사실 그는 자기에게 그토록 중요한 임무를 맡겨준 일본공산당의 기대에 보답할 일념으로 하여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이미 봄에 있은 남조선일본회담반대투쟁과 《출입국관리령》을 반대하는 3. 7국회투쟁을 통해 원철의 지도능력을 새롭게 인식한 당지도부에서는 이번 5. 1절기념행사에서 그 솜씨를 다시한번 시위할 과업을 일임했던것이다.
따져보면 그럴만도 한 일이였다. 당의 무장혁명방침을 집행한다고 하면서도 여태까지는 소소한 롱성투쟁이나 산발적인 시위정도가 고작이였으나 원철이가 맡아 지도한 3.7국회투쟁은 온 일본땅을 법석 끓게 만들었던것이다.
잘 준비된 천여명의 조방대원들이 국회청사에까지 돌입하여 들이댄 드세찬 실력투쟁은 로농당, 개진당 등 일본의 각 정당들은 말할것도 없고 외무성과 법무성을 비롯한 내각까지 비틀거리게 만들었었다. 국회와 내각에서는 즉시 림시 휴회를 선포했지만 그것으로도 사태를 무마시킬수 없게 되자 법안에 대한 재심의를 결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원철은 일약 당내에서 리론가로서뿐만아니라 실천투사로서의 새로운 인정도 받게 되였다.
원철은 이번 5. 1절행사 역시 일본로동계급투쟁사에 금문자로 아로새겨지게 할 대담한 결심을 품고 준비를 다그쳐왔다.
요즘에 와서 그는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해도 그 어떤 비상한 일, 세상을 깜짝 놀래울 일을 한번 해보았으면 하는 참을수 없는 욕망을 느끼군 했는데 이번 일이야말로 바로 그런 중대사가 아닐수 없었다.
오늘의 실력투쟁을 준비하면서 그는 민전일군들과 조방대원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동무들! 기다리던 시각은 마침내 도래했소. 더는 주저하지 말고 단호한 공격을 가해야 할 때가 왔단 말이요. 만약 이러한 때 우리가 주저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자신의 후퇴와 패배를 의미하오. 나는 이번 5. 1절실력투쟁에서 우리 동포들이 특히 조방대원들이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어떻게 싸우는가를 일본사람들과 온 세상에 다시한번 뚜렷이 시위하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소.》
오늘투쟁에서 그가 중심에 둔것은 우선 집회가 끝난 다음 여러 방향으로 나뉘여져 하게 되여있는 시위를 폭동으로 이끄는것이였다.
그다음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다시 궁성앞 인민광장에 집결시켜 거기에서 일본반동당국의 타도를 위한 전민항쟁을 호소하는 성토대회를 열자는것이였다.
일본의 각계인사들에 이어 민전 의장인 리종훈이 단상에 나서서 축사를 한다. 축사로서는 그가 마지막차례였고 그의 축사가 끝나면 군중들이 동서남북과 중앙에 있는 다섯개 방향의 도로를 따라 행진하게 되여있었다.
원철은 곧 오늘투쟁의 지휘처로 정해놓은 뻐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제때에 정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장소로 이동하면서 지휘하자면 자동차가 편리하다고 여긴 그는 뻐스에 십여명의 시위참모들과 련락원들을 미리 대기시켜놓았던것이다.
리종훈의 축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인터나쇼날》의 우렁찬 노래소리가 터져오르면서 또다시 축기와 조합기들이 하늘높이 펄럭이였다.
일어나라 저주로 인맞은
주리고 종된자세계
…
원철은 절로 가슴이 달아올랐다.
(그래, 이것이 바로 혁명이 아닌가! 주리고 종된자들이 새 세계를 위해 결사전을 벌리는 이것이야말로 당이 바라는것이 아닌가! 아니, 바로 이것을 위해 몸바쳐온 내가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정신적희열에 만족해있는 순간처럼 자기본위가 되는적은 없는것이다. 그런 순간에는 이 세상에 자기보다 더 아름답고 위대한 존재는 없는것처럼 여겨지는 법인데 지금 원철이도 바로 그런 심정이였다.
격정에 북받쳐 걸음을 옮기던 그는 문득 한덕수를 만났던 일이며 그가 쓴 《애국진영의 순화와 강화를 위하여》라는 론문을 보고 놀랐던 일이 떠올랐다. 이런 때에 어째서 그 불쾌한 일이 떠오르는지 알수 없었으나 이상하게도 론문의 자자구구까지 선명하게 되살아나는것이였다.
서두에서 애국적인가 그렇지 못한가를 규정하는 기준은 철저히 조국의 정책을 받들고 싸우는가 싸우지 않는가 하는데 있다는것을 지적한 론문은 강령을 삭제한 자기들, 민대파성원들과 민전의 일부 지도일군들을 반민족적인 집단으로 준렬히 타매하고있었다. 그러면서 만일 이 엄중한 사태를 그대로 묵과한다면, 재일조선인운동의 지도권을 민대부와 민전의 매국매족분자들에게 맡겨놓는다면 앞으로는 동포들이 조국을 잃어버리게 될뿐아니라 다시금 망국노의 처지를 면치 못하게 된다는것, 때문에 더는 지체하지 말고 모두가 떨쳐일어나 종파사대주의자들의 책동을 단호히 분쇄해야 한다고 처절하게 호소했던것이다.
처음에는 너무나도 무분별한 한덕수의 태도에 아연했댔으나 다시 읽었을 때는 그가 무엇을 노리고 누구를 향해 비수를 겨누고있는가를 깨닫고는 은연중 긴장했다. 그러나 세번째 보았을 때는 만약 이 글을 일군들이나 동포들이 본다면 어떻게 될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등골로 오싹 소름이 끼쳤다. 더우기 덕수가 이달에 있게 될 민전 6차확대중앙위원회에서 다시 강령을 채택하기 위한 준비를 필사적으로 하고있다는것과 적지 않은 중앙위원들이 벌써 그에게 공감하고있다는것을 그도 알고있었다. 그런 조건에서 이 론문이 공개된다면…
이미 론문이 수천부나 인쇄되여 학우서방에 보관돼있다는것을 안 그는 그시로 행동대원들을 시켜 몽땅 회수해오게 했을뿐아니라 민전일군들과 민대파성원들이 보지 못하게 소각해버렸던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왜 자기가 그렇게까지 불안해했을가 하는것이 리해되지도 않았거니와 그랬던 자신이 가소롭게 여겨지기도 했다. 혁명을 위해 한몸바칠 각오로 용약 일선에 나서서 맹활동을 하고있는 자기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오늘은 50만이나 되는 대군중이 자기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고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그때 일이 흡사 어떤 그림자를 보고 놀랐던 사람이 자신을 비웃을 때와 같은 허구픈 심정에 휩싸이게 하는것이였다.
《혁명 만세!》
가슴속에 용솟음치는 흥분으로 하여 원철은 흔히 엄숙한 순간에 짓게 되는 그런 비장한 미소를 띠우며 사람들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도로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시위를 구경하기 위해 전차지붕에 올라가있는 사람들까지도 모자를 벗어 흔들거나 주먹을 쳐들어보이며 《혁명 만세!》하고 따라 웨치는것이였다.
지휘차가 대기하고있는 주차장에 이른 그는 곧 걸음을 멈추고 멀리에서 이쪽방향으로 다가오는 한 대렬, 히비야공회당앞길을 거쳐 네거리교차점을 가까이 하고있는 시위대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히비야공회당으로부터 도꾜역전거리를 지나 미군사령부앞으로 빠지게 되여있는 이 중부방향시위대가 오늘 투쟁의 봉화를 지피게 되여있었다. 일본의 전학련성원들과 조방대청년들로 구성된 이 시위대는 민대부도꾜지역 책임자인 김충구가 인솔하고있었다.
한자리에 서서 긴장하고도 초조한 눈길로 대오를 지켜보던 원철은 시위대선두에 섰던 청년들이 손나팔을 만들어 구호를 웨쳤을 때에야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모두다 인민광장으로 가자!》
《인민광장에서 성토대회를 열자!》
이 구호에 따라 시위대는 일시에 궁성에 있는 히비야음악당쪽으로 꺾어들었다.
인민광장이란 《천황》이 있는 궁성앞 넓은 공지인데 일본당국은 거기에서 일체 집회나 시위를 하지 못하게 엄격히 단속하고있었다.
하지만 원철은 오늘 투쟁의 중요성과 의의로 보아 바로 거기에서 기어이 성토대회를 가진 다음 실력투쟁을 전개할 계획이였다.
《요시다권력집단을 타도하자!》
《민주정부 수립하자!》
연방 구호를 웨치며 궁성쪽으로 밀려가는 시위대는 어느덧 구보로 달리고있었다.
쿵쿵 하고 흉벽을 치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뻐스에 오른 원철은 차를 궁성쪽으로 몰게 했다. 도화선에 불이 달렸다고는 하지만 안심할수는 없었다. 이제 그 불꽃이 장약된 폭약을 어느만치 효과적으로 터뜨리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대오의 선두가 히비야음악당앞에 이르자 거기에 있던 수백명의 경찰들이 일시에 도로를 막아나섰다. 그러나 그들은 벌써 시위대의 위세에 압도되여 주밋거리기 시작했다.
터진 보뚝에 던져지는 돌멩이가 무슨 맥을 출것인가! 아니나다를가 대하처럼 들이닥치는 시위대의 격류에 경찰들은 가랑잎처럼 뿌리워나갔다. 일차 저지선을 뚫고 미군사령부앞을 지나 궁성으로 향하는 대오는 어느새 격류가 아니라 질풍노도로 변해있었다. 노도가 휩쓰는 곳이면 모든것이 페허로 되듯이 시위대가 지나가자 미군사령부앞에 서있는 승용차, 군용차들의 유리창이 박산나는가 하면 어떤 차는 통채로 벌렁 뒤집혀지기도 했다.
도로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벌써 오늘 시위가 여느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있다는것을 직감하고 공포에 질려 바라보았다.
뻐스가 인민광장이 바라보이는 곳에 이른 순간 원철은 새로운 정황에 놀라고말았다. 궁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니쥬바시를 사이에 두고 완전무장을 갖춘 천여명의 경찰들이 전투서렬을 지은채 서있기때문이였다. 결코 이곳만은 통과시킬수 없다는듯이 또 바로 거기에 목숨을 건 자기들의 임무가 있다는듯이 자못 엄엄한 태세로 모여있었다. 모자끈들을 턱에 단단히 걸었을뿐아니라 손에는 총과 곤봉을 들고 마주오는 시위대를 무섭게 노려보고있었다.
(과연 저 저지선을 돌파할수 있을것인가! 하지만 조방대의 결사대가 어떻게든 돌파구를 열고 기어이 광장으로 들어갈것이다.)
원철은 곧 한 련락원을 시켜 요요기방향으로 행진해가는 동부시위대를 이쪽으로 돌아서게 했다. 그 시위대는 로재호가 지휘하는 기본행동대로서 이럴 경우를 예견하여 미리 궁성가까이에서 행진하도록 했던것이다.
마침내 시위대는 니쥬바시를 바라보는 공지에서 경찰들과 마주서게 되였다. 완전무장한 경찰들의 도도한 위용에 일시 주춤한 시위자들이였으나 다시 대오를 수습하고 서렬을 지었다. 그리고는 한걸음한걸음 경찰들을 맞받아나가기 시작했다.
무엇때문인지 대오가 다시 흔들리는 바람에 앞쪽을 바라본 원철은 흠칫하지 않을수 없었다. 한자리에서 시위대를 맞이할 태세였던 경찰들이 일제히 시위대를 향해 마주오기때문이였다. 틀림없이 한자리에서 방어만 할수 없다는, 이런 때야말로 도리여 주동적인 공격으로 넘어가 시위대가 다리를 건느기 전에 대오를 분산시키려는 타산이 분명했다.
이때 예상외로 한무리의 경찰들이 불시에 시위대의 뒤쪽으로 들이닥쳤다. 음악당앞에서 밀려난 경찰들이 대오를 수습하여 다시 달려든것이였다. 그 바람에 시위대는 결국 앞뒤에 있는 경찰들의 포위속에 갇히고말았다.
《절대 흩어지지 말라고 하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대오를 유지해야 하오! 이제 곧 저지선이 돌파될거요.》
원철의 지시에 따라 련락원들이 시위대를 향해 달려갔다.
바로 그때였다.
《와-》하는 우렁찬 함성과 함께 손에 공화국기를 들고 이마에 붉은 띠를 동인 수백명의 조방대원들이 마치 성난 갈범처럼 방금 시위대를 포위한 경찰들의 뒤덜미를 덮쳤다. 로재호가 인솔하는 동부시위대였다. 얼마나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던지 경찰들은 혼비백산하여 뺑소니를 쳤다.
그 사품치는 와류속에서 한 청년이 누군가를 찾고있었다. 새벽부터 재호를 찾는 태길이였다. 목언저리며 얼굴에는 진액같은 땀방울이 돋아있고 찢어진 남방샤쯔의 한쪽소매가 어깨우에서 너펄거렸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재호를 만나 덕수의 지시를 전달해야 했고 그래서 광장돌입을 저지시켜야만 했다. 그의 눈앞에는 오직 폭동에는 절대 나서지 말아야 한다고 하던 덕수의 격노한 얼굴이 얼른거릴뿐이였다. 그러나 재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사태처럼 밀려드는 인파속에서 재호를 찾을길이 없었다.
재호를 찾는것을 단념한 그는 곧 광장으로 흘러가는 대오의 선두를 향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던것이다. 광장으로 가는 대오의 선두에 있는 조방대원들을 설복하여 대오를 전진시키지 말자는 결심이였다. 그것이 바로 지금 정황에서 자기가 할수 있는 유일한 일이며 덕수가 바라는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던것이다.
담벽처럼 빼곡이 들어선 사람들의 잔등이며 어깨를 비집고 겨우 제일 앞머리로 나선 그는 다짜고짜 대오앞에 나서며 두팔을 벌렸다.
《동무들-》
한쪽어깨우에서 너펄거리던 소매자락이 언제 떨어져나갔는지 한팔은 맨살 그대로였다.
《조방대동무들! 내 말을 들으시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함성에 삼켜 들리지도 않았다. 다시 손나팔을 만들어 웨쳤으나 이번에는 조수처럼 밀려드는 사람들의 물결에 그자신이 뒤로 물러나지 않을수 없었다. 잠시도 멈춰서지 않고 앞으로만 전진하는 대오여서 그는 뒤걸음질하며 소리쳤다.
《동무들! 그 자리에 서시오. 전진하지 말아야 하오! 우리가 멈춰서야 뒤사람도 멈춰서고 그래야…》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누구도 듣지 못했고 들을념도 안했다. 무작정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웨치며 전진할뿐이였다.
문득 자신의 고립무원함에 태길은 눈물이 났다. 오직 자기 하나뿐이라는 소외감이 어떤 분노를 촉발시켰지만 아무리 분해도 자기 힘으로는 어쩔수 없다는 안타까움으로 하여 가슴이 터지는것 같았다.
갑자기 무엇때문인지 맨 앞장에 서있던 조방대원들이 흠칫하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뒤돌아본 태길은 그만 저도 모르게 소스라쳤다.
다리목을 지키고있던 수백명의 경찰들중 서렬에 있던 놈들이 일제히 총구를 겨누어든것이 아닌가!
《안되오! 절대로 전진해선 안되오!》
급해난 태길은 두팔을 마구 휘저으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하지만 곧 대렬뒤쪽에서 겁을 먹지 말라, 총을 겨누긴 했지만 쏘진 못한다,
계속 전진하라는 소리가 왕왕 울려퍼졌다. 시위참모들의 지시였다.
다시 대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무들! 제발 서시오, 그 자리에 멈춰서란 말이요.》
두팔로 대오를 막아선 태길이가 아무리 용을 쓰며 뻗디디여도 그는 계속 뒤로 밀리우기만 했다. 총을 겨누고있는 경찰들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와졌다. 15m, 10m, 7m…
숨이 막히고 가슴이 떨리였다. 언제 터질지 모를 무시무시한 정적이 온 광장을 휩쓸었다. 멀리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녀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는가 하면 눈을 가리우고 뒤로 돌아서기도 했다.
순간 갑자기 야무진 구령소리와 함께 나란히 겨누어든 총구들에서 탄알이 몰방으로 터져나왔다.
《탕! 타탕- 땅 땅!》
맨앞에서 대오를 향해 돌아서있던 태길이가 앞청년을 그러안은채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동시에 네댓명의 청년들도 허리를 비틀며 꼬꾸라졌다. 삽시에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올랐다. 대오는 말그대로 쑤셔놓은 벌둥지처럼 되고말았다. 시위자고 경찰이고 피를 본 맹수가 되여 서로 때리고 차고 받고 찌르고 하는 류혈참극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위대를 지휘하던 로재호는 그제야 사태의 심중성을 깨달았다.
이젠 어떤 힘으로도 대오를 수습할수 없다는것이 명백했다. 광장돌입이 이처럼 어려워질줄은 모르고 경찰들의 저지를 뚫을 임무를 맡아나선것이 후회되였다.
어제 저녁 전학련책임자가 달려와 갑자기 임무가 달라졌다면서 자기네가 일선에 서기는 하지만 경찰들이 광장에로의 진입을 가로막는 경우에는 조방대가 그 돌파구를 뚫어야 한다는것이였다.
(우리가?)
응당 맡을수 있는 일이였으나 어째선지 화가 났다. 오늘 투쟁이 일조공동의 인민투쟁인데 어째서 자기네는 몸을 사리고 조방대를 앞세우는가 하는 불만이 스며들었던것이다.
《그러니 당신넨 무서우니 피한다는거요?》
《무서워서가 아니라 다른 임무가 있다잖소. 어쨌든 지휘부에서는 저지선을 돌파하는건 조방대가 맡아야 한다고 했소.》
여전히 비위가 상했지만 설마 무슨 일이 있으랴싶었는데 경찰들이 총까지 란사하며 발악하지 않는가.
그는 무작정 총소리가 난 앞쪽을 향해 달리였다. 정신없이 달려가던 그는 발치에 무엇인가 걸리는 바람에 내려다보았다. 온통 얼굴이 피범벅이 된 사람이 가슴을 부둥켜안고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누군지 알아볼수 없었으나 젊은 청년임이 분명했다.
(조선사람인가?)
문득 이런 생각부터 뇌리를 쳤다. 오금을 꺾고 주저앉은 그는 얼른 청년의 팔부터 겨드랑이에 꼈다.
《자, 일어나라구!》
누군가가 자기를 부축한다는것을 의식했는지 청년은 감았던 눈을 힘들게 쳐들었다.
《아- 재호… 동지…》
《?!》
재호는 와락 달려들어 청년의 두볼을 감싸쥐였다.
《아니 이게, 태길이가 아닌가? 엉!》
《찾았습니다… 재호동지를… 왜 이제야…》
《나를?》
피가 흐르는 태길이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스쳤다.
《덕수동지가… 무장투쟁은… 폭동은… 절대로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고… 조국을 위한 일이 아니라고… 그걸 재호동지한테…》
(그러니 그걸 전하자고?)
불현듯 얼마전 네가 얼마나 조국을 배반하고있는지 아느냐고 뺨을 후려치던 덕수의 모습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자- 업히라구, 어서!》
재호가 등을 돌려대자 태길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 전 이젠 틀렸습니다… 그런데 재호동지…》
재호의 손목을 붙잡은 태길이는 간절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어째서… 어째서 조방대가… 저지선을 뚫어야 합니까? 예? 어째서 우리 조선청년들이… 일본혁명의 돌격대로 나서서 총알받이가… 돼야 하나 말입니다…》
(어째서?)
우리의 임무는 일본혁명이고 그러자면 무장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부르짖던 자기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그러자 어째선지 여태껏 귀전에서 왕왕거리던 울부짖음들이 가뭇없이 사라지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당장 터질것만 같은 가슴을 그는 저도 모르게 움켜쥐였다.
태길이를 업으려고 팔을 꼈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가쁜숨을 몰아쉬던 그는 말없이 재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한손을 내밀었다.
《재호동지… 내 손에… 기발… 공화국기발을…》
재호는 황황히 주위를 두리번거리였다. 멀지 않은 곳에 그가 쥐였던 기발이 있었다. 그 기발을 쥐려고 하는데 이쪽으로 달려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자기의 손을 무자비하게 걷어차는것이였다. 쳐다볼새도 없이 저만치 달려간 그들은 주먹을 쳐들며 목청껏 부르짖는것이였다.
《일본의 독립과 해방 만세!》
《요시다정권을 타도하자!》
여태껏 버릇처럼 외우며 쓰던 말이 어쩐지 새삼스럽게 들리였다.
처음 들어보는 말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태길이를 껴안고 일어나긴 했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 알수 없었다.
방금 어째서 우리가 저지선을 뚫어야 하는가고 하던 태길이의 말이 가슴을 때렸다. 그러자 다시금 자기를 노려보던 덕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가 하면 동포들의 운명은 오직 일본혁명을 완수하는데 있기때문에 목숨을 걸고 나서야 한다고 하던 원철의 말도 생생하니 상기됐다.
《아-》
재호는 가슴이 무너지는듯 한 신음을 토했다.
류혈참극은 멎지 않고 계속되였다. 피범벅이 된 사람들이 여기저기 길바닥에서 나딩굴었다. 가슴을 부여안고 땅을 허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쳐들고 뭐라고 울부짖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경찰들의 주먹안에 머리칼을 움켜잡히운채 마대자루처럼 질질 끌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인민광장으로 불리우는 궁성앞은 그야말로 피의 광장으로 변해버렸다.
원철은 저로서도 알지 못할 흥분에 몸을 떨었다. 눈앞에 벌어지고있는 처참하고도 무시무시한 광경에 소름이 끼치는가 하면 또 어떤 비장하고도 장렬한 쾌감으로 하여 가슴이 뻐근해지기도 했다.
그의 머리속에는 장엄하면서도 매혹적인 장면들이 연방 떠올랐다. 가슴이 답답해진 그는 와락 목깃을 풀어헤쳤다.
《꽝! 꽈광 꽝꽝!》
갑자기 천지를 뒤흔드는듯 한 요란한 폭발소리에 놀란 그는 얼른 그쪽을 바라보았다. 주차장가까이에 있는 연유탕크가 폭발하면서 무시무시한 불기둥들이 공중으로 솟구쳐오르고있었다. 연거퍼 하늘로 날아오르는 휘발유통들은 지붕우에서 폭탄처럼 무섭게 작렬했다.
타래치는 시꺼먼 연기로 하여 궁성일대와 히비야교차점, 도꾜역 상공은 온통 먹칠을 해놓은듯싶었다. 도꾜역사앞 네거리에 있는 미군사령부건물도 검은 연기에 휩싸여버렸다. 그 바람에 사령부옥상에 나붓기는 성조기와 유엔기발은 조기처럼 까맣게 물들어있었다.
(그렇다! 혁명! 바로 이것이 혁명이다!)
원철은 다시금 비상한 전률을 온몸에 느끼며 궁성쪽으로 걸음을 다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