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회)

제 4 장

6

 

어둠에 싸인 포구쪽에서는 마을사람들이 즐기는 봄맞이놀이의 흥겨운 노래소리가 들려오고있었다.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하고 날이 흐리기로 유명하며 또 온천이 많기로 소문난 이 돗도리지방사람들은 봄이 오면 일본에서 제일먼저 봄명절놀이를 하는것으로도 소문나있었다.

워낙 어부들이 많은 고장이여서 노래들도 거의 바다생활과 관련된것이였다. 주렁주렁 매달아놓은 꽃불초롱아래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추는 춤동작도 대체로 조개를 캐거나 고기그물을 잡아당기는 시늉들이였다. 한사람이 선창을 떼면 모두가 다같이 《얏사-에》, 《얏사- 에》하며 후렴을 따라부르는데 어떤 노래는 장밤 불러도 끝이 나지 않는것도 있었다.

 

    어이타가 조개잡이 되였느냐

    불쌍쿠나 불쌍해

    얏사 에- 얏사 에-

 

    살타고 몸여위는줄

    내 어이 몰랐더냐

    요사노 삿사 요사노 사-

 

제법 신명이 나서 부르는 노래였으나 지영이한테는 그 노래소리가 왜서인지 메마르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어딘가 아득히 먼곳에서 들려오는 구슬픈 호곡같은가 하면 어떤 때는 귀전에서 앵앵거리는 모기소리처럼 귀찮게 들리기도 했다.

그처럼 애타게 그리던 영신이, 만나는 순간에 와락 그러안고 불같은 애무를 퍼부으리라 여겼던 영신이였으나 어째서인지 그런 감정은 고사하고 이상하게도 그 어떤 소외감,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와 같은 어성버성한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 느낌은 자기만 아니라 영신이도 마찬가지인것 같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서로가 더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지기만 하는것이였다.

사실 영신이를 생각할 때마다 지영은 늘 심장을 비트는듯 한 아픔을 느끼군 했다. 그 아픔은 그와 있었던 모든 사실들이 언젠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자기도 역시 그 모든것을 기억하고있으나 어쩐지 자기 아닌 누군가가 이전에 있었던 일을 자기의 기억속에 남겨둔것처럼 메마르고 빈약하게 느껴지면서도 그것으로 하여 더욱 성급하게 오는 아픔이였다.

영신이를 마주한 지금에 와서도 그는 그 생생하게 살아서 검질기게 달라붙는 추억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자기가 일본에 오게 된 사정이며 입북한 아버지의 소식을 전할 때도 영신이는 놀라거나 기뻐할 대신 줄곧 고개를 숙인채 듣기만 했다. 그의 그런 태도는 마치 굳게 닫겨진 문을 마주했을 때의 기분, 그것도 안에 사람이 있다는것을 알고 두드리지만 종내 열리지 않을 때의 소외된 느낌이 들게 했다.

지영은 자기와 영신이사이에 가로놓여있는 장애가 무엇인가를 모르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는 지금껏 조국에서 영광의 절정에서 온갖 행복을 누리며 생활했지만 영신이는 반대로 일본땅에서 갖은 고생을 다했다는 너무나도 상반된 처지에서 오는 차이, 생활이 준 감정의 차이였다. 자기가 행복했던것만치 영신이는 불행과 설음을 느끼고있으리라 여겨 그는 될수록 자기 생활에 대해서는 비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막상 그러자니 할말이 없었다. 사랑하는 처녀앞에서 하고싶은 말은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것이 그로서는 마치 숨을 쉬지 않고 노래를 불러야 하는것만치나 어렵고 힘든 일이였다. 더우기 영신이에게는 꼭 해주어야 할 말이 있었던것이다.

《영신이!》

지영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영신이를 바라보았다. 곱게 다듬어진 턱이며 굽슬굽슬 흘러내린 머리칼 그리고 꼭 다물린 자그마한 입술은 여전히 옛모습 그대로 단아하고 아름다왔으나 말없이 한곳을 응시하고있는 두눈만은 이전과는 달랐다. 눈도 그때의 맑고 순진한 눈이였으나 그 눈으로 보는 시선이 전과는 달랐다. 그 시선이 나타내는 의미는 이제는 인생이 어떤것이라는것을 알고 그 과정에 숱한 슬픔과 번민을 겪어보았으며 또 그 슬픔과 번민을 견디여낸 사람만이 지닐수 있는 그런 의지와 자신심이 어려있었다.

새롭게 변모된 영신이의 모습이 오늘따라 자기에게는 더욱 과만한 존재로 느껴졌고 그럴수록 바로 래일이면 이 아릿다운 처녀가 자기와 함께 조국으로 가게 되며 조국에 가서는 여태껏 그처럼 바랐지만 이룰수 없었던 생활, 그래서 더욱 행복하고 황홀한 새생활을 마음껏 누리게 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막 어질어질해지면서 현기증이 일었다. 그런 감정은 은연중 애써 마음속에 숨기려 했던 말을 터놓지 않을수 없게 했다.

《영신이! 난 사실 영신이가 일본에서 어떤 고생을 하는지도 모르고… 될수록 영신이를 잊으려고 했소. 아무리 영신이가 그립고 보고싶어도 소식을 전할수도 없고 만날수도 없으니 잊을수밖에 없다고 여겼댔단말이요. 그런데 그런 나의 심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신분은 바로 김일성장군님이시였소.》

《?!》

비로소 고개를 든 영신이는 조심스러운 눈길로 지영이를 마주보았다. 그의 눈은 놀라움이라기보다 어떤 의혹, 지금 지영이가 하는 말이 사실인지 아니면 혹시 자기를 놀래우려고 하는 말이 아닐가 하는 의혹이 서려있었다.

《사실이요. 내 말을 믿어주오. 그때 장군님께서는 나에게 사정이 있다 해서 흔들리는 사랑이라면 그게 무슨 사랑인가고, 이역땅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도 오직 동무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영신이를 생각해서라도 어떻게 그런 마음을 품을수 있느냐고 하시면서 내가 미처 터놓지 않았던 마음속 비밀까지도 꿰뚫어보시는게 아니겠소.

그날 장군님께서는 나에게 동무가 영신이를 잊을수밖에 없다고 하는것이 다만 그를 만날수 있겠는지 하는 리유 하나때문인가고 물으시였소. 난 어쩐지 속이 뜨끔했으나 부지중 그렇다고 말씀올렸소.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아니.〉하고 고개를 저으시고는 내가 보건대 동문 지금 제 량심을 속이는것 같다고 하시면서 혹시 영신이 아버지가 〈민단〉단장이였다는것과 어머니가 일본녀자라는데 대해 우려하는건 없는가고 다시 물으시는것이 아니겠소. 난 가슴이 철렁했소.

사실 난 영신이를 생각할 때마다 늘 영신이의 부모들, 특히 동포들을 배신한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끓어올랐소. 영신이가 보고싶을 때도 그 아버지에 대한 저주를 되새기며 감정을 달래군 했소. 조국을 배반한 반동의 딸이다 하고 말이요. 그러면서도 난 내가 영신이를 잊으려 하는것은 그때문이 아니라 단지 영신이와 다시 만날 길이 없기때문이라고 스스로 자신을 기만했던거요. 그런데 누구도 모르게 감춰온 그 마음속 비밀을 바로 장군님께서 들여다보신거요. 장군님께서는 내가 아무 대답도 올리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있자 바로 그런 처지에 있는 영신이기에 더 열렬히 사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런 영신이가 동무 아니고 도대체 누굴 믿고 살아가겠느냐고 하시면서…》

지영은 목이 잠겨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

방금전까지만 해도 지영이의 말이 사실인가아닌가를 의심하던 영신이의 낯빛이 돌연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까딱 움직이지도 않고 지영이를 지켜보는 품이 숨조차 쉬지 않는상싶었다. 너무나도 커다란 충격이 생각은 물론 호흡까지도 방해하는게 분명했다.

지영은 될수록 영신이가 자기 말을 새겨들을수 있도록 여유를 두면서 말을 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소. 〈그렇기때문에 난 다른 사람들한테는 장가를 가라고 하지만 동무한테는 그런 말을 못하는거요. 아니, 안하는거지. 알아두오만 동무마음만 변함없으면 어느땐가는 꼭 영신이를 만나게 되오, 또 만나야만 하는거고. 내가 이런 말을 하는건 단지 영신이 한사람 운명때문이 아니요. 일본에 사는 우리 동포들모두가 다 복잡다단한 운명의 길을 헤쳐온 사람들이 아니요. 하나같이 수난자들이란 말이요. 이역땅에 목숨을 붙이고 살자니 무슨 일인들 없었겠소. 간혹 조선사람의 얼을 지키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몰리운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모두가 다 우리와 피를 나눈 동포들이고 겨레들인데 그 이상 무슨 전제나 조건이 필요하오. 우린 언제나 그들모두를 한품에 안고 운명을 같이해야 하오.…〉

나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장군님께서 영신이에 대해, 재일동포들에 대해 베푸시는 사랑이 얼마나 크고 뜨거운가 하는것을 비로소 절감했소.》

《…》

갑자기 한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영신이가 고개를 비틀며 모로 돌아앉았다. 마음을 진정시키려는듯 두눈을 꼭 감았는데 감긴 눈시울이 바르르 떨리는가싶더니 어느새 그 긴 속눈섭끝에는 수정같은 맑은 눈물이 가랑가랑 맺히였다.

《영신이! 일시나마 시련앞에 맥을 놓고 주저앉아 영신이를 잊으려 했던 나를 용서해주오.》

고개를 젓던 영신이는 얼른 두손에 얼굴을 묻었다. 무슨 말을 하고싶었으나 말보다 앞서는 격정으로 하여 자신을 다잡지 못하는상 싶었다.

《아… 아니예요. 저 역시, 저 역시… 지영씨를.》

영신이의 가냘픈 목소리는 제대로 이어지질 않았다.

《아버지때문에… 또 어머니때문에… 저같은건 지영씨의 반려가 될수 없다고… 그래서 이 세상을 버리고 수도원에까지 갔댔지요. 다시는 지영씨를 못 볼줄 알았지요. 그게 내 운명이라고… 그게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라고… 그런데… 아, 그런 우리를…》

영신이는 와락 방바닥에 엎드려 울음을 터치였다. 무작정 소리내 울고싶은 욕망이 온몸을 엄습했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에 대고 자기의 진정을 토로하고싶은 욕망, 자신이 이제까지 겪은 고통을 하소하면서 몸부림치고싶은 욕망이 끝없이 치밀어올랐다.

그러면서도 그는 무어라고 형언해야 할지 알수 없는 또 하나의 감정에 휩싸여있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그런 벅찬 흥분과 열광이 자기를 어떤 알지 못할 신비스런 세계로 휘몰아가는것 같았다. 아니, 육체를 떠난 자기의 넋이 그 황홀한 열광에 실려 어디론가로 훨훨날아가는것만 같았다.

흔히 사람들은 뜻밖의 행복에 접할 때면 지나간 과거의 불행을 추억하기마련이고 그 불행한 과거로 하여 오늘의 행복을 더 값지게 느끼는 법이라고 하지만 영신이의 경우에는 행과 불행을 따져볼 경황이 아니였다. 그것은 자기에게 차례진 행복이 너무나도 크고 아름찬 나머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가 하는 두려움과 불안이 먼저 마음을 차지하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한가지만은 똑똑히 깨닫게 되는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기가 오늘까지 살아온것이 그것도 제 길을 따라 걸을수 있은것은 바로 저로서는 짐작할수도, 상상할수도 없었던 그렇듯 고귀하고 따사로운 은정이 미쳤기때문이라는 그것이였다. 이미 덕수를 만난 후부터 그도 자기에게 어떤 힘이, 단순한 인정이나 동정에서 출발되는것이 아니라 그보다 몇배 더 크고 억센 힘이 미치고있다는것을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지만 그 사랑이 이처럼 따사롭고 광휘로울줄은 미처 짐작도 못했다. 자기만이 아니였다. 오욕의 구렁텅이에서 헤매던 아버지까지도 그 품이 있어 재생의 길을 걷고있는것이 아닌가! 이 모든것이 상기되자 새삼스레 자기며 아버지는 물론 지영이의 존재까지 자못 의심스러워지는것이였다.

(그러니 이 모든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나한테 정말 이렇게도 크나큰 영광과 행복이 닿았단 말인가! 도대체 내가 뭐길래? 내가 뭐길래 그처럼 애타게 바라고 찾던것이 이렇듯 일시에 이루어진단 말인가!)

늘 의혹으로만 느껴지던 그것이 오늘은 현실이 되여 눈앞에 펼쳐졌다는것을 깨닫게 되자 지난날 외우던 성서의 구절들이 다시금 되새겨지는것이였다.

(정녕 이것이 주의 구원이 있기를 바라며 땅을 그러안은채 밤낮으로 기도를 드린 대가란 말인가? 이것이 과연 안타까이 문을 두드리며 목메여 찾고 부르던 나에 대한 지존막대하고 무소불능한 하느님의 은총이란 말인가.)

불현듯 마태복음 한구절이 생각났다.

《주님은 악한자에게도 선한자에게도 골고루 해빛을 주시였고 바른자에게도 바르지 않은자에게도 다같이 비를 주시였나니…》

(아니, 아니다! 주님은 나에게 단 한줄기의 해빛도, 단 한모금의 단비도 주지 못하였다. 허구한 날 갈길 몰라 헤매던 연약한 소녀에게 자기 운명의 길을 틔워주고 힘을 주며 이끌어준 애국의 빛발… 우리 교단에 세워주고 그 길에서 참된 삶의 보람을 알게 한 그 빛발은 바로 장군님의 다함없는 사랑이고 은총이 아니랴!)

영신이의 두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여태껏 가슴속에 서려있던 해묵은 설음과 고뇌를 가셔주는 눈물이였고 불쌍하기 그지없던 자기가 행복의 요람속에 안기였다는 기쁨과 환희의 눈물이였다.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목놓아 울어도 자기를 알아주고 지켜주는 따사로운 품이 있다는 벅찬 행복으로 하여 솟구치는 눈물이였다.

《영신이, 난 래일은 일본을 떠나야 하오. 덕수동지소식이랑 이 일본의 실태에 대해 장군님께 한시바삐 보고드려야겠단 말이요. 시간이 급하오. 그러니 영신이도 빨리 준비를 해야겠소.》

《?!》

지영이의 이 말은 이제까지 구름우에 둥둥 떠있던 영신이를 대번에 현실로 끌어내렸을뿐아니라 여태껏 자기가 못내 의심스러워하던 모든것이 사실이며 실지 자기가 짐작하는것보다 몇배 더 값지고 황홀하다는것을 뚜렷이 실증해주었다. 그의 눈앞에는 장군님앞에서 두손을 모으고 깊숙이 고개숙여 인사올리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는가 하면 그런 자기를 회오와 자책 그리고 이젠 진정이 어린 눈길로 지켜볼 아버지의 모습도 보이였다. 그런가 하면 여태껏 바랐지만 이룰수가 없었던것으로 하여 더 행복할 지영이와의 생활의 순간순간이 영화화면처럼 새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의 의미들을 느끼게 되자 불시에 어떤 새로운 충격이 마음을 사로잡는것이였다. 그것은 마치 더없이 값진 보석을 손에 쥐게 된 사람이 하도 그 사실이 놀랍기도 하거니와 자기가 혹시 보석을 어지럽히지나 않을가보아 은연중 내밀었던 손을 움츠리게 되는것과 같은 심정이라고 할가!

사실 영신이는 너무나도 과분한 행복앞에 서있는 자기의 존재가 두려웠다. 고스란히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분에 넘치는것이여서 그런 행복을 안겨주신 장군님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고싶었다. 아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는 마음에 걸리여 두고두고 자기를 후회하게 될것만 같았다.

《지영씨!》

흐르는 눈물을 씻을념도 않고 마주보는 영신이의 얼굴에는 그 어떤 결심이 어려있었다.

《전 저에게 돌려주신 장군님의 사랑이 어떤것인가를 알게 될수록 또 그것이 얼마나 고귀하고 은정깊은것인가를 깨닫게 될수록 어쩐지…》

북받쳐오르는 격정에 영신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저도 조국에 가고싶어요. 가서 장군님께 인사를 올리고… 정말이지 마음껏 행복해보고싶어요. 그런데 제가 장군님께서 조국에 오는것을 바라신다고 해서 그대로 행동한다면 제자신은 무슨 면목으로 장군님을 뵙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영신이의 눈빛과 표정에는 자기가 생각하는것이 옳으리라는 확신과 함께 그것을 지영이가 리해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기대가 비껴있었다.

《더우기 장군님께서 늘 덕수동지에 대해 걱정하고계시는데 그를 곁에서나마 도울수 있는 제가 조국으로 간다면… 그래도 제가 덕수동지를 돕고있다면 장군님께서도 다소나마 마음을 놓으시지 않겠어요. 정말이지 전 이젠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장군님께서 절 지켜주시고 지영씨가 절…》

영신이의 두눈에는 무엇인가 빛나게 타오르고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초월한 더없이 고결한 희열이라고 해야 할 그런것이 그의 마음속에 도사리고있던 비애를 뚫고 힘차게 솟아오르는듯싶었다. 그런 영신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게 느껴지는지 지영이에게는 마치 그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차지하고도 남는 자기의 그 아름다움을 꺼리여하면서 될수록 그 아름다움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쓰는듯이 보였다.

《영신이!》

지영은 저도 모르게 영신이의 손을 잡았다. 여태껏 느끼지 못했던 영신이에 대한 새로운 애정이 심장을 활활 태우면서 손으로 또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자기가 이미 알고있는것보다 몇곱절이나 더 아름답게 변모된 영신이의 정신적내면과 원했던바대로 행복하지 못했던 과거를 이제부터는 오직 장군님을 위해 바치려는데서 찾으려는 그의 불같은 마음에 대한 찬탄이였다.

지영은 어떻게 자기가 영신이를 그러안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쿵쿵 하는 심장의 박동소리만 들려올뿐이였다. 영신이의 타는듯 한 입김을 귀가에서 느꼈으나 그는 그것이 입김이 아니라 무엇인가 영원히 생기발랄한 어떤 힘과 기쁨처럼 여겨지는것이였다.

《영신이-》

《지영씨-》

그 시각부터 지영이와 영신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뜨거운 불이 주위에서 무서운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듯 한감을 느낄뿐이였다. 두사람사이에는 그들만의 새로운 대화 즉 마음과 마음의 신비로운 대화가 이루어지고있었던것이다.

 

   돌아가는 배길은

   노잡이 성수나지

   얏사 에- 얏사 에-

 

   그리운 랑군님이

   나를 기다린다네

   요사노 삿사 요사노 사-

 

밤은 깊었으나 명절노래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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