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제 4 장

2

 

《내 의견을 말하면…》

침묵을 깨뜨리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몸집이 갈람하고 날카롭게 생긴 김충구였다. 원철이와의 관계로 보나 민대부 간또지역의 책임자라는 위치로 보아 아무래도 자기가 나서야 한다고 용단을 내린것같았다. 충실한 부하들이 그런것처럼 그도 원철이의 의도와 기분을 알아맞추는데는 각별히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있었다.

《지금 단계에서 우리가 중시해야 하는것은 무엇보다도 민전을 더욱 광범한 대중적인 조직으로 확대강화하는것이라고 봅니다. 왜 그런가? 지금이야말로 민전을 확대할 온갖 조건과 가능성이 주어져있기때문입니다. 어떤 조건과 가능성인가?》

언제나 무슨 말을 할 때면 자기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화제를 끌고가면서 의문을 제기하고는 그것을 스스로 해명하군 하는 그였다.

《이미 〈통일동지회〉를 이끌고 민전에 들어온 리종훈의장이나 김성일의장이 〈해방구원회〉를 민전에 망라시킨것처럼 지금도 많은 단체들이 민전에 들어올것을 희망하고있습니다. 실례로 〈대한청년단〉에서 리탈한 통일파성원들과 〈학동〉(한국학생동맹)에서 분리된 좌파들이 당장 민전에 들것을 요망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한결같이 하나의 사실에 우려를 품고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그는 한손가락을 공중에 쳐들어보이며 목청을 돋구었다.

《그것은 바로 민전강령 1조에 대한 의견입니다. 이미 언급이 있었지만 민전은 조련과는 성격이 다른 광범한 조직들의 통일전선체입니다. 그런데도 조련때와 같은 강령을 유지하면서 문을 닫아매고있는것은 민전의 성격에도 맞지 않을뿐아니라 민전을 더욱 대중적인 조직으로 발전시킬데 대한 당의 요구에도 부합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민전의 성격이라는건 뭐고 당의 요구라는건 또 뭐요?》

맞은켠에 앉아있던 김훈이 웅근 목소리로 물었다. 몸집이 거대한 그는 목소리도 굵었지만 자기 주장에 대한 속대도 록록치 않은 사람이였다. 조련 조직국장으로 일하다가 민전시기부터 의장이 되였으나 민전이 점점 일본공산당쪽으로 기울어지자 그에 불만을 품고 민대파와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였다. 의장단회의때면 윤덕곤과 함께 민대부의 지시를 받아무는 다른 의장들과는 의견을 달리하는것으로 하여 매번 마찰이 일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그들에 대한 불만을 스스럼없이 털어놓군 했다. 여느 사람같으면 감히 입밖에도 내지 못할 《당의 요구》에 대해 말한것도 바로 그때문이였다.

《민전을 결성할 때도 우리는 민전이 공화국만을 지지하는 단체라는것을 명백히 밝혔소.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사람들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강령을 삭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동거를 들인다 하여 집문패를 바꾸는것과 다를바가 뭐요? 문제는 그들을 위해 강령을 바꿀게 아니라 그 강령을 인정하는 사람들만 받아들여야 한다는거요.》

《옳소!》

윤덕곤이 무릎을 치며 응수했다.

《민전은 절충적인 중간조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기 조국, 공화국의 리익을 수호하기 위한 애국단체요. 그런데도 강령을 삭제하다니? 그럼 과연 우리 조국이 어디라는거요. 남이라는거요, 북이라는거요?》

《아니, 윤의장은 왜 그렇게 일면적으로만 생각하시오?》

가뜩이나 체소한 몸을 한껏 쪼그린채 앉아있던 리종훈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하는 바람에 처음엔 누가 말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곧 주먹만 한 머리를 쳐든 그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라는듯 곱사등같은 허리까지 난딱 추켜올렸다.

《난 말입니다. 이젠 우리가 그런 극단에서 헤여나올 때가 되였다는겁니다. 난 남이고 넌 북이다, 이것이 무엇때문에 필요합니까? 일본에서 사는 우리들만이라도 제발 남이니 북이니 하며 싸우지 말자는겁니다. 그래 우리가 강령 1조를 삭제한다고 해서 일본사람이 되겠소? 일제때도 조선사람으로 남아있은 우리가 해방된 오늘에 와서 일본사람이 되겠느냐 말이요. 내가 민전에 들어올 결심을 한것도 일본에 있는 조선사람들은 다 하나로 뭉치자! 공화국을 지지하느냐, 지지하지 않느냐 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조선사람이면 대동단결하자 이거였소.》

《그렇소! 미제와 일제를 반대하는 조선사람이면 다 단합하자는거란 말이요!》

정동은이 대뜸 엉치를 달싹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아니, 공화국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미제와 일제를 반대할수 있소?》

김훈이 어처구니 없다는듯이 고개를 저었다.

《미제를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지금 미제와 맞서 싸우고있는 공화국을 지지하지 않을수 없단 말이요!》

《그러니까 김훈동지는 재일동포들은 하나같이 공화국만을 따라야 한다는건데…》

도저히 저로서는 리해되지 않는다는듯이 말꼬리를 길게 끈 리종훈의 눈가에는 살웃음이 스쳤다. 눈귀를 좁히고 새물새물 웃는 그의 모습은 마치 자기가 입을 열면 김훈에게는 결코 리롭지 못한 말이 나오리라는 그런 기색이였다. 그러나 워낙 자제력이 부족한데다 남의 아픈 곳을 건드리기 좋아하는 그는 종내 그것을 참지 못하고 입에 담고야말았다.

《가정을 꾸리는데서는 지역과 사상을 초월한 김훈동지가 사업에서는 왜 그렇게 일면적인지 리해하기 어렵구려!》

그 말에 김훈의 얼굴은 대번에 검붉어졌다. 성미가 과한 사람이 모욕을 받았을 때 터뜨리군 하는 그런 성급하고도 격렬한 분노가 치밀어오른게 분명했다. 가정을 꾸리는데서 지역과 사상을 초월했다는 말은 김훈이 제일 아파하는 곳을 건드리는것으로서 그가 일본녀성과 살고있다는것을 념두에 둔것이였다.

《뭐, 말이면 다 하는줄 아우?》

윤덕곤이 대뜸 눈을 부라리며 리종훈을 노려보았다.

《그게 도대체 지금 토론하는 문제와 무슨 상관이요!》

《난 단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따름이요. 하지만 그게 인신공격으로까지 되였다면 량해하시우, 예!》

그러면서 그는 정말 김훈에게 고개를 갑삭갑삭해보였는데 눈가에는 아까보다도 더 짙은 살웃음이 어리였다. 그 웃음은 바로 너희들이 아무리 이제 와서 강령삭제를 반대한다 해도 소용이 없을뿐더러 그러면 그럴수록 김훈이처럼 망신만 당하게 된다는것을 암시하는듯 했다.

의장단성원들은 물론 방안에 모인 사람들모두가 김훈과 리종훈이의 관계를 모르지 않았다. 두사람의 충돌이 사업상견해나 주장때문만이 아니라 보다는 서로의 가슴속에 쌓여있는 타협할수 없는 감정때문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민전을 결성할 때부터 기둥역할을 해왔고 수석의장으로서 누구보다 수고를 많이 한 사람은 김훈이였다. 그런데 리종훈이가 민전에 들어오면서부터 민대파들을 등에 업고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 바람에 이제 와서는 그가 민전의 주인으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굴러온 돌이 배긴 돌을 밀어낸 형국이였다.

《난 이렇게 생각하오!》

리심철이 확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정세의 요구나 조직의 확대라는 미명아래 우리가 결코 근본을 놓쳐서는 안된다는거요. 민전은 어디까지나 공화국의 해외공민단체이기때문에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도 또 래일도 공화국만을 지지하며 목숨바쳐 지켜야 한단 말이요.》

《그게 바로 편협한 민족주의자라는거요.》

갑자기 째지는듯 한 소리를 지르며 방바닥을 두드린것은 정동은이였다.

《그래 지금이 민족이나 조국을 운운할 땐가? 프로레타리아에게는 조국이 없다는걸 모르는가?》

분별이 없고 경솔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흥분에 도취된 그는 벌써 아무것도 가리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는 자기보다 나이가 열살이나 우인 리심철에게 마구 삿대질을 해대며 기염을 토했다.

《그래 당신은 당원이요, 아니요? 당의 지시가 안중에 있소, 없소? 당원이라면 응당 당의 지시에 복종해야 할게 아니요.》

그의 말은 여기 모인 사람들은 거의다 당원들이기때문에 당의 지시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것을 즉 원철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것을 암시하는것이였다.

《아, 시즈까니, 시즈까니…》(자, 조용히, 조용히…)

원철이가 곧 손을 들어보이며 나섰다. 저도 모르게 버릇처럼 새나온 일본말이였으나 그는 자기가 마주하고있는 상대가 덕수라는것으로 하여 하려던 말을 중둥무이했다. 그러나 정작 조선말로 바꾸려고 하자 이번에는 자기가 덕수의 눈치를 보는것처럼 여겨져 불쾌했다. 하지만 지금은 참을수밖에 없었다.

《오늘 우리가 토의하자는것은 바로 앞으로 재일조선인운동을 한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요. 혁명투쟁에서 선차적인 문제가 정확한 투쟁목표와 혁명력량에 대한 옳은 리해라고 한 선행리론에는 누구든 이의가 없을거요. 어떤 목표를 가지고 누구와 함께 싸우느냐, 바로 여기에 투쟁이 승리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비결이 있소. 혁명선배들은 우리들에게 자기 계급 혹은 계층이나 집단이 매 시기 어떤 환경과 처지에 있는가 하는데 대한 정확한 평가와 판단만이 옳은 투쟁과업과 방도를 제시한다고 가르쳐주었소.》

원철은 자기 말 한마디한마디가 마치 천냥이나 되는 무게를 가지는듯이 천천히 또 또릿또릿하게 발음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덕수는 점점 더 비위가 상했다. 원철은 무슨 말을 할 때면 특히 상대방을 납득시켜야겠다고 결심할 때면 언제나 선행리론과 혁명선배를 운운했는데 그것이 참말로 고전가들의 명제를 인용하는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숭배하는 일본공산당의 어떤 일군의 말을 흉내내는것인지 아니면 또 자기 말을 리론으로 가장하는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어떤 경우라 해도 심사가 꼬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더 참을수 없는것은 그 말을 할 때마다 그의 비만한 얼굴에 떠오르는 숨길수 없는 우월감이였다. 지금도 마치 하늘꼭대기에 틀고앉아 아래를 굽어보는듯 한 그의 거만한 태도에 덕수는 부아가 치밀어 견딜수가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는 지금 재일동포들이 처해있는 처지와 환경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특별히 중요하오. 물론 우리는 조선사람이요. 그러나 조선이 아니라 일본에서 살고있는 조선사람들이요. 말하자면 조선의 변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본의 변화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게 돼있는 사람들이란 말이요. 례를 들어 인민군대가 남조선 전지역을 해방하고 제주도에 붉은 기발을 꽂았다고 합시다.

조국통일이 이루어졌다고 하잔 말이요. 그러나 우리들, 이 일본에서 사는 재일동포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겠소? 무엇이 달라지는가 말이요. 직업이 해결되오? 생활이 안정되오? 그렇다고 탄압이 근절되오? 우리자신에게는 그 어떤 변화도 있을수 없소. 여전히 미군정과 일본당국의 박해에 시달리지 않을수 없단 말이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우리들 문제는 우리자신이 스스로 해결하는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것을 말해주는거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건 바로 우리들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온갖 반동의 사슬을 우리 손으로 끊어버릴 때에만 즉 일본의 프로레타리아와 함께 일본혁명을 수행할 때에만 우리 문제가 종국적으로 해결된다는거요. 알다싶이 오늘의 일본정세는 모든 혁명력량이 단합하여 결정적인 투쟁에 떨쳐나설것을 요구하고있소. 이런 사명을 일본로동계급과 함께 수행해야 할 재일동포들이 그전날의 강령, 낡고 고루한 민족적과업을 내세운 강령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력사적인 위업수행에 지장을 주어서야 되겠소? 되겠는가 말이요!》

(낡고 고루한 민족적과업?)

덕수는 당장 《조국도 민족도 모르는 이 반역자야!》하고 소리치며 원철의 유들유들한 상판을 후려갈기고싶었다.

《내 좀 말하겠습니다.》

이때 로재호가 고개를 들고 주위를 돌아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난 강령에서 공화국사수조항을 삭제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더.

조국을 위해 살자는 우리가 강령 1조를 없앤다는건 말이 되지 않지요.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전략적인 견지에서 볼 때 그렇단 말입니더. 오늘 우리앞에 놓인 당면과제는 무엇보다도 우리자신이 처한 처지와 조건 그리고 주변정세를 혁명에 유리하게 리용하는 전술을 세워야 한다는겁니더.》

어떤 중요한 말을 할 때면 그렇듯이 재호는 고개를 한번 기웃해보이고나서 말을 이었다.

《오늘의 환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전략인 조국을 위해 싸우고 우리자신의 권익을 쟁취할수 있는 그런 전술을 세울것을 요구하지요.

전략에 따르는 전술은 시기와 정황에 따라 달라지기마련입니더. 꿩을 잡기 위해서는 매에다 방울을 달수도 있고 뗄수도 있는것처럼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일시 강령을 삭제할수도 있다는겁니더. 지금이 바로 그런 전술을 요구하는 때라는겁니더. 그렇기때문에 나는…》

덕수와 시선이 마주친 로재호는 얼른 말끝을 흐리였다. 마주 노려보는 덕수의 눈이 칼날같이 번뜩이면서 목언저리를 지나간 퍼런 동맥이 무섭게 살아났기때문이였다.

사실 덕수는 당장 자리를 차고일어나 재호를 정신이 들게 해주고싶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싶은가 하면 멱살을 틀어쥐고 방바닥에 태질을 하고싶기도 했다.

(이놈아! 뭐가 어찌고어째? 때에 따라서는 강령을 삭제할수도 있다구? 네가 지금 얼마나 눈이 멀었는지 알기나 하느냐? 쓸개가 빠져도 분수가 있지!)

어떤 일이 있어도 재호를 가만놔둬선 안되겠다고 벼르면서 덕수는 원철이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재일동포들이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로동계급과 함께 무장투쟁을 해야 한다는건데 그것이야말로 동포들에게 자기 조국이 조선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호소하는것이 아니고 뭐요. 방금 누군가 이제야 우리가 일본사람으로 되겠는가고 했지만 천만에! 조국을 버리면 일본사람으로 되는거요. 설사 국적은 조선이라 해도 넋은 쪽발이로 되고만단 말이요. 당신들은 동포들을 바로 그런 쪽발이나 반쪽발이로 만들자는것 같은데 만약 그렇게만 해보오. 그런 당신들을 동포들이 가만 놔둘상싶소? 조국이 용서할상싶은가 말이요!》

덕수의 말이 또다시 페부를 찔렀으나 원철은 이번에도 자기에게는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는듯이 흔연한 기색을 지었다. 아니, 입가에 느슨한 미소까지 띠였다.

(가만 놔두지 않는다구? 그래, 내가 먼저 널 가만 놔두지 않겠다. 더는 용서하지 않겠단 말이다!)

이발을 부드득 하고 간 그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늘이야말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함으로써 덕수가 더는 자기에게 맞서지 못하게 하며 다시는 그를 사업에도 비치지 못하게 하리라고 결심했다. 비록 사지가 묶여있는 맹수라 해도 숨통을 눌러놓아야 안심이 되는 법이니까.

《좋소!》

자기의 내심을 사람들이 눈치챌가봐 그는 줄곧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자기 상전의 이런 버릇, 아무 생각이나 결심이 없는듯이 가장해보이군 할 때가 제일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는것을 알고있는 민대파성원들은 하나같이 숨을 죽이고 그를 지켜보았다. 아니나다를가 그의 두눈에는 갑자기 무서운 독기가 서리였다.

《당신은 오늘 당의 결정과 지시를 거부했을뿐아니라 정면에서 도전함으로써 스스로 조직내 당책임자의 위치는 물론 당원의 자격까지 상실한 사람이요. 난 당 민대부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앞으로 우리 사업의 발전을 위해 당신이 다시는 당활동과 민전의 일체 활동에 참가하지 못한다는것을 밝히는바요.》

《…》

원철을 노려보는 덕수의 두눈에서는 불이 이글이글 일었다.

《왜놈들이 나를 공직에서 추방하더니… 이젠 당신이 나를 당에서?…》

지나친 분노로 하여 덕수는 자기 목소리같지 않은 소리로 말했다.

《좋소. 아무 미련도 없소. 그러나 알아둘것은 당신이 나를 당직에서 제외할수는 있어도 결코 운동권밖으로 내몰수는 없다는거요.

왜냐하면 재일동포들을 어느 길로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가 하는것은 일본공산당이 아니라 조국이, 김일성장군님께서 나한테 주신 과업이기때문이요. 알겠소? 재일조선인운동에 대해 말한다면 당신이나 민대부야말로 조금도 좌우지할 권한이 없다는걸 똑똑히 알아두시오. 다시 말하지만 강령 1조는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절대로 다치지 못하오, 절대로!》

덕수가 일어나자 김훈이며 리심철, 윤덕곤이도 따라일어섰다.

하지만 원철은 네사람이 방에서 나가자 마치 그러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던것처럼 두손을 머리우에 쳐들고 탁탁 손바닥을 쳐보였다.

그것은 자기는 여전히 이렇게 여유작작하다는것을 동료들에게 보여주려는 동시에 이제부터는 화락한 술판에 젖어보자는 의도를 려관집주인에게 알리는 신호였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고있던 번대머리주인이 손벽소리를 듣자마자 방으로 달려나왔다. 그러나 그는 어리둥절해지고말았다. 자기를 찾은 사람이 분명 그 무섭게 생긴 오야붕인줄 알았는데 그가 아니라 맞은편에 앉아있던 거대한 체구의 사나이기때문이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의혹을 곧 직업적인 웃음으로 지워버리며 깊숙이 허리부터 숙이였다. 누가 오야붕이든 그에게는 그저 돈을 벌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고마왔던것이다. 주방으로 향하던 그는 기분이 좋을 때면 하는 버릇대로 홀딱 벗어진 자기 이마를 찰싹 소리가 나게 두드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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