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 3 장

5

 

눅눅한 부엌바닥에 쭈그리고앉아 아궁이에 대고 푸푸 입바람을 불어넣던 김운해는 불이 일기는 고사하고 되려 연기만 꾸역꾸역 밀려나오는통에 할수없이 무릎을 털고 일어나고말았다. 그새 한번도 불기운을 보지 못해 누기가 찰대로 찬 아궁이여서 아무리 마른 삭정이를 갖다넣어도 효과가 없었다.

누기가 찬데도 있었지만 자기로서는 도저히 불을 살굴것 같지 못했던것이다. 아무래도 석유를 얻으러 간 박룡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수밖에 없다고 여긴 그는 마당으로 나와 포도넝쿨아래에 있는 나무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동안 합숙에서 침식을 하다가 며칠만에 집에 왔으나 집꼬락서니를 보니 그새 박룡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게 헨둥했다. 워낙 일이라는건 전혀 할줄 모르는 사람인데다가 말할수 없는 게으름뱅인줄은 모르는바 아니였지만 그래도 집을 이 모양으로 해놓은데는 불만스러웠다. 보매 자기가 없는 동안 내내 옆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하루 세끼 밥까지 얻어먹은게 분명했다.

방안 옷걸이에는 한여름의 남방샤쯔가 그대로 걸려있는가 하면 농짝우에 있는 이불은 습기가 차서 쥐여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것 같았다.

사실 오늘은 박룡이에 대한 그런 불만을 손수 그앞에서 시범을 보이는것으로써 자극도 받게 하고 감화도 되게 해보려고 했으나 당초에 그 결심을 집어던지고말았다. 자기가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부엌이며 방안청소를 한 다음 이불까지 내다 너는데도 같이 일을 할 생각은 않고 옆에서 멍하니 지켜보기만 하는 박룡의 태도에 부아가 났던것이다.

《아니, 그렇게 우두커니 서있기만 하면 어떻게 하우? 답답하기란 과연…》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그럼 이걸 해라, 저걸 해라 시키구려. 내가 하자는건 제가 앞질러 다 해치우구선…》

웃을수밖에 없었다. 하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인것만은 사실이였다.

《불쏘시개감이라도 좀 구해오구려, 석유나 휘발유 같은게 있으면 더 좋고.》

그때에야 그는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린듯 부엌으로 들어가 바께쯔를 들고나섰다. 그런데 그 바께쯔는 먹는 물을 담아두는 그릇이였다.

《아니, 거기다 휘발유를 담을 작정이요? 내 원참!》

할수없이 헛간으로 들어가 찌그러진 양철통을 그의 손에 직접 들려주었다. 양철통을 손에 들고 문밖을 나서던 박룡이 무슨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되돌아서며 묻는것이였다.

《한데 이걸 들고 어딜 가야 휘발유를 준다는거요?》

《어이구, 하느님맙시사!》

이거야말로 눈뜬 장님하고 산다고 하는수밖에.

김운해가 장군님의 배려로 대성산기슭에 있는 이 아담한 사택을 배정받은것은 보름전이였다. 전쟁의 중하를 지니시고도 자기 생활에 대해 세심한 관심을 돌려주시는 장군님의 은정에 그는 목이 메였다. 그러나 쉰이 다된 나이에 그것도 전쟁이 한창인 때에 가정을 꾸린다는것이 아무래도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될것 같았고 그렇다고 텅 빈 집을 혼자 쓰고 살자니 청승맞은 수절과부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집을 꾸려주러 나온 후방부장에게 말했었다.

《나도 장군님께 말씀올리겠소만 부장동무도 좀 말씀드려주구려. 내한테 무슨 집이 필요하다고 그러오. 당장 집이 필요한 사람이 많을텐데 그들한테 돌리도록 말이요.》

하지만 사람좋은 후방부장은 수염이 시꺼먼 턱을 쳐들고 껄껄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도 보금자리가 있어야 짝이 날아듭머니. 바로 장군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요. 글쎄 두고보라니. 이제 봉황이 날아들지 않나!》

《봉황?》

김운해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웬걸, 정말 짝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건 봉황이 아니라 봉황과는 너무나도 판다른 룡이 뛰여든것이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때 입북한 박룡이가 같이 살자고 온데는 아연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하필이면 다른 사람도 아닌 박룡이가 올건 뭐람! 더우기 그가 같이 입북한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고 자기한테 온것은 리해할수가 없었다.

《자네도 아다싶이 그들이야 나와 처지가 다르지 않나. 그들은 그래도 과거는 어떻든 련석회의이후부터 련공, 통일을 위해 애써온 사람들이지만 나야 어디… 백조의 무리속에 있는 까마귀랄수밖에… 그런데 어디 갈데가 있어야 말이지. 그래서 이렇게 체면불구하고 자네를 찾아왔네.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 역시 자네가 나를 몹시 질시하리라는건 모르지 않네. 그런걸 아는 나로서 이 집에 뭐 오래 있자는건 아닐세. 오래 있을수도 없구. 다만 내 운명이 결정될 때까지만이라도 있게 해달라는걸세.》

김운해는 박룡이와의 이런 기이한 상봉이 놀랍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했으며 또 우습기도 했다.

따져보면 자기와 박룡이는 서로의 처지는 물론 경력까지도 비슷한데가 없지 않았다. 둘이 다 일본에서 20년가까이 감옥생활을 한것이나 둘 다 일본에 있지 못하고 거기서 뛰쳐나오지 않으면 안되였다는 사정 그리고 둘이 다 처자는 물론 가까운 친척 하나 없는 혈혈단신이라는 점은 어떻게 보면 쌍둥이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비슷한 점보다 몇배 뚜렷한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두사람이 여태껏 상반된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이였다. 이 차이점은 륙척장신인데다가 뾰족한 얼굴을 한 자기와 자그마한 키에 둥그런 얼굴인 박룡이와의 외형적차이보다 몇곱절이나 더 두드러지는것이였다.

한사람은 해방전부터 오직 혁명을 위해 살아온 공산주의자라면 다른 한사람은 그 혁명을 원쑤처럼 치부하던 무정부주의자였다. 한사람은 일본공산당요직을 거쳐 오늘은 조국에 와서 당중앙위원회 부장일을 하고있지만 다른 한사람은 《민단》단장에 괴뢰《국무위원》까지 겸했던 반동이였다. 말하자면 살아온 환경은 비슷했으나 목적했던 지향과 걸어온 길은 전혀 딴판이였다. 그런데 운명은 자기들 두사람을 하나로 련결시켜놓은것이였다.

김운해는 박룡이가 어떻게 평양에까지 오게 되였는가 하는것이 처음 못내 불가사의하게 여겨졌지만 그가 겪은 그동안의 경난들을 듣게 되자 곧 자기가 알던 그전날의 박룡이가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자네처럼 한길을 곧바로 걸어오지 못하고 비탈길, 진창길에서 허우적거리다나니 이렇게 됐네. 일본에 있는 덕수 그 사람한테는 말했네만 사필귀정이구 인과응보랄수밖에! 그러나 난 용서를 바라는건 아닐세. 물론 바랄 처지도 못되구. 내 죄야 자네도 잘 알지 않나. 민족을 배반한 대역부도죄에다가 동포들을 배신한 반역죄, 거기다가 제 살붙이한테까지 씻을수 없는 원한을 남기였으니… 감옥에서 죽은 후미꼬의 몸에서 난 딸애는 일본에 버리고 그후에 얻은 처자식은 또 서울에 버리고 …자, 이런 안팎의 죄인인 내가 무엇을 바라겠나. 단지 총화라도 깨끗이 지어야겠다는 그 한가지 생각뿐일세.》

확실히 박룡은 자기자신을 이젠 세상에 다시 없는 죄많은 악한으로, 그것으로 하여 그 어떤 멸시와 굴욕을 받는다 해도 피할수 없는 인간으로, 나아가서는 이제 와선 그 굴욕을 씻을 가능성마저 잃어버린 인간으로 치부하는듯 했다.

그날부터 결국 두사람은 한집에서 같이 살게 되였다. 그런데 두사람이 다 여태까지 생활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똑같은 홀아비들이여서 꾸린다는 살림은 영 말이 아니였다. 별 해괴한 일이 다 벌어져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군 했는데 둘이 동거한지 며칠 안되여 벌써 이웃들한테서는 《부처》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그 별명이 붙게 된 날이였다. 그동안 계속 이웃들 신세만 져온 이들은 오늘은 집들이겸 자기들 손으로 음식을 한번 만들어 사람들을 청하자고 약속하고 일에 달라붙었다.

박룡이는 부엌에서 밥을 짓고 김운해는 마당가에 있는 뽐프장에서 부식물로 공급받은 닭을 손질했다. 부산스런 신고끝에 마침내 음식을 상우에 차려놓고는 옆집에 사는 교육상 백남운이와 무임소상 리극로를 청해들였다. 지금껏 두사람은 그들 집에 자주 가 식객노릇을 하군 했다.

《그동안 페를 많이 끼쳤는데 오늘은 우리 량주가 성의라도 보이자고 했으니 그리 알고 변변찮지만 달게 들어주기 바랍니다.》

김운해의 그럴듯 한 초대사에 이어 박룡이가 술병을 들고 매 잔들에 술을 따르었다.

먼저 술을 한모금 들이킨 리극로가 앞에 놓인 닭고기 한점을 집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갑자기 오만상을 찌프렸다. 두개의 박사학위가 있는 학식의 대가일뿐아니라 무전세계일주려행가로서 온갖 체험을 다해본 그였지만 세상 그 어디에서도 아직 이런 음식은 먹어보지 못했다는 표정이였다.

《아니, 도대체 무슨 닭고기가 이런 소태란 말인가! 아무리 달게 먹으라고 해도 이거야 어디…》

그의 말에 모두들 닭고기를 입에 넣어보고는 질겁을 했다. 정말 혀를 놀릴수 없으리만치 쓰거웠던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거요?》

박룡이의 물음에 방금 입에 넣은 고기점이 초약처럼 쓰거웠으나 그것이 자기가 직접 한 료리라는것으로 하여 김운해는 미간을 찌프리지도 못했다. 다만 긴 목을 빼들고 황새처럼 사람들을 두릿두릿 살피기만 했다.

《모를 일인걸! 고기는 물론 내장까지도 말끔하니 씻어서 삶았는데…》

《내장까지? 그러니 내장을 통채로 다 삶았단 말이요?》

백남운의 물음에 김운해는 더욱 어리둥절해하며 대꾸했다.

《그럼 내장은 버린다는거요?》

《아하! 이런 변이라구야. 그러니까 그놈의 똥집이며 열까지 몽땅 삶아치웠구만. 별나게 고기가 쓴데다가 새까맣다 했더니…》

내장에서 열주머니는 떼내야 한다는 설명을 들을 때까지도 김운해는 두눈을 슴벅거리기만 했다. 여태까지 숱한 닭고기를 먹으며 살아왔지만 그래야 한다는건 듣느니 처음이였다. 아니, 우선 닭한테도 열이 있다는게 놀라왔던것이다.

《하긴 김부장이 한 음식을 먹겠다는 우리가 잘못이지.》

할수없이 백남운이 자기 집에 가 들고온 북어며 멸치로 안주를 대신했다.

식사를 하려고 했을 때였다. 먼저 밥사발뚜껑을 연 리극로가 이번에도 아연한 기색을 지었다. 흰쌀로 한 밥이 분명한데도 사발에 담겨있는 밥은 보리밥보다도 더 까맸던것이다.

《아니, 밥은 또 왜 이 모양이요? 쌀에야 열주머니도 없을텐데…》

모두의 눈길이 밥을 한 박룡이한테로 쏠렸으나 그는 그 말뜻이 무엇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했다. 단지 밥그릇을 손에 들고 해빛이 비치는쪽으로 기웃해보이는 품이 저로서도 리해할수 없다는 기색이였다.

백남운은 다시금 탄성을 터뜨렸다.

《이 량반은 보아하니 쌀을 씻지도 않은채 밥을 했구려. 가유명사에 30년부지라더니 쌀을 씻지도 않고 밥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닭을 통채로 삶는 사람이 있을줄이야! 하긴 반생을 가막소에서 해주는 옥밥만 자시며 살아온 부처들이니 그럴수밖에!》

모두들 웃지조차 못했다. 그런데 잠자코 앉아있던 김운해가 박룡이를 건너다보며 한다는 말이 걸작이였다.

《그래도 나야 씻기라도 했지만 이 사람은 씻지조차 않았으니! 아무렴 씻지도 않은 쌀로 밥을 하다니, 원!》

그래도 자기가 조금은 낫다는 식이였다.

《허! 무엇 묻은 개가 겨묻은 개보고 흉질한다더니 참 가관이요.》

리극로의 말에 그제야 웃음이 터졌다.

결국 신세를 갚겠다고 한 노릇이 도리여 또다시 페를 끼치고말았다. 이때부터 이들에게는 얼핏 듣기에는 점잖아보이지만 따져보면 우습고도 창피스러운 《부처》라는 별명이 붙고말았던것이다.…

박룡이가 오지 않나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큰길쪽을 내다보던 김운해는 그만 우뚝 굳어지고말았다.

큰길가에 서있는 승용차가 낯익다 했더니 량켠에 피마주가 주런이 서있는 길로 박룡이와 함께 걸어오시는분이 분명 김일성동지이시기때문이였다.

(어떻게 갑자기 여기까지?…)

사전에 아무런 련락이 없었던것으로 보아 혹시 급한 일이 제기된것이 아닐가 하고 짐작해보았으나 그런것 같지는 않았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군복상의에 목이 긴 장화를 신고계시였지만 장군님의 표정에는 시종 여유가 느껴졌다.

그러나 장군님곁에서 걸음을 옮기는 박룡의 얼굴은 백지장같이 창백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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