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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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는 야전용승용차 뒤좌석에 기대앉으신채 차창밖에 펼쳐지는 농촌풍경을 바라보고계시였다.

풍요한 가을날이였다.

불비 쏟아지는 전화의 나날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만큼 평화로운 날이였다. 선들선들 불어오는 바람결에 가로수의 잎새들은 무슨 노래라도 부르는듯 마냥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설렁거렸다. 언제 씨를 뿌리고 김을 맸는지 들판의 곡식들은 온통 누렇게 익어가고있었다. 강냉이는 바싹 마른 대들에 팔뚝같이 실한 이삭들을 업고있었다. 멀리 비탈진 과수원의 사과나무가지들에도 사과알들이 홍보석처럼 다닥다닥 여물어있었다. 모든 정경은 방금 다녀온 전선과는 너무나도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있는것으로 하여 어쩐지 신기한감조차 드시였다.

(그래, 벌써 가을이지! 고지에는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으니까!)

그이께서는 지금 전선동부 최연선인 직동령 서쪽에 있는 무명고지를 거쳐 1211고지와 한줄기로 련결된 1237.3고지에까지 나갔다가 돌아오시는 길이였다.

적비행기들의 폭격을 무릅쓰고 큰물에 길이 잠겼을 때에는 에돌아가기도 하고 다리가 물에 떠내려가버린데서는 떼배로 강을 건느기도 하면서 험한 령을 넘고 사나운 길을 걸으시였다.

놈들이 《추기공세》를 준비하면서 《하기공세》때와는 달리 전선서부에 대대적인 병력과 군사장비들을 들이밀 때까지도 그리고 첫 공격을 가할 때까지도 줄곧 전선동부의 정황들을 예리하게 주시하고계시던 그이께서는 놈들의 주공방향이 이번에도 역시 전선서부가 아니라 동부라고 판단하시였다. 서부에서 시작된 놈들의 공격이 바로 아군의 주목을 그리로 끌어 저들의 전선동부에 대한 결정적인 《공세》를 은페하기 위한 가소로운 기만술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간파하시였다.

그이께서 적들의 주공방향이 동부라고 규정하신데는 명확한 근거가 있었다. 우선 전선동부가 차지하고있는 군사전략적인 중요성이였다. 다른 하나는 최근 놈들이 일본해상자위대소속 소해정들을 은밀히 원산앞바다에 내몰아 소해작업을 하고있다는 최사정찰조의 정보였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근거들을 쥐시였다. 그중에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은 노르망디상륙작전 당시 련합군항공륙전대사령관으로서 떨친 명성을 《추기공세》로 다시한번 시위함으로써 조선전쟁을 결속짓지 못한 맥아더의 뺨을 후려치는 동시에 트루맨의 기대에 보답해보자는 릿지웨이의 야심만만한 심보였다.

직접 고지에 오르신 그이께서는 고지를 지키고있는 인민군장병들에게 놈들의 《추기공세》의 음흉한 기도에 대해 까밝히시면서 전선동부에서 주봉을 이루는 1211고지를 철벽으로 지킬데 대한 강령적인 명령을 하달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전사들에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1211고지는 전략상 더없이 중요한 고지요. 적들에게 1211고지를 내주면 그뒤에는 방어거점이 될만 한 고지가 없기때문에 금강산은 물론 원산까지 내놓지 않으면 안되오. 놈들도 바로 이 점을 타산하기때문에 전선동부에 더욱 필사적으로 달라붙을것이요. 그러므로 1211고지는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내야 하오.》

모든 포들을 고지우에 끌어올려 포화력밀도를 강화하며 방어진지를 갱도화하고 적들의 공격을 강력한 반타격으로 좌절시켜야 한다고 하신 그이께서는 적들의 폭격속에서도 군수물자를 제때에 수송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도로와 다리가까이에 비행기사냥군조를 배치해야 한다는데 대해서도 일깨워주시였다.

아침저녁으로 벌써 선기가 도는 날씨였지만 지휘관들과 병사들은 아직도 해진 여름군복을 그대로 입고있었다. 그러나 포연탄우에 그슬린 얼굴들에는 하나같이 원쑤를 때려부실 멸적의 기세가 충천했다.

《장군님! 조금도 걱정마십시오. 놈들이 아무리 비행기로 폭탄을 떨구고 대포로 포격을 가한다 해도 이 1211고지에는 단 한놈의 적도 기여오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이 최현이가 살아있는 한 말입니다.》

숱진 눈섭을 곤두세우고 이것만은 조금도 의심하지 마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는듯이 주먹을 흔들어보이던 군단장 최현이였다.

《최현이가 살아있는 한》하는 말을 듣는 순간 장군님께서는 문득 가슴아픈 추억, 잊을수 없는 상실의 비통함이 가슴을 훑어내리는것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사실 전쟁이 일어 1년남짓한 사이에 벌써 얼마나 많은 전우들이 우리곁을 떠나갔는가. 김책, 강건, 최춘국…)

혁명의 첫시기부터 20여년세월을 온갖 시련을 다 헤치며 함께 싸워온 열혈투사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그처럼 철석같이 맹세하고 조국해방을 이룩한 혁명동지들이였으나 그만 조국해방전쟁에서 희생된것이였다. 남진의 길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친 최춘국이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엄혹한 시련을 이겨내고 재진격이 시작될 때 희생된 김책이도 그랬지만 진격하는 부대의 지휘를 보장하기 위해 바로 옆에 있는 고향마을에도 들리지 못했다는 강건이를 상기할 때면 가슴이 미여지는듯 하시였다.

그가 희생된 곳이 바로 그의 고향마을 가까이라는 소식을 들은 장군님께서는 너무도 기가 막혀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시였다.

유격대시절은 물론 해방후 건국사업을 거쳐 총참모장이 되여서까지도 그처럼 자기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강직하던 그였지만 고향에 있는 부모들얘기가 나올 때면 대뜸 두눈에 그렁하니 눈물을 담군 하였다. 그런 그가 부모형제들이 있는 고향마을옆에서 희생됐지만 그의 부모들은 아무것도 모르고있으니…

(안된다! 이젠 그 누구도 더는 희생되여서는 안된다! 김책이, 강건이, 최춘국이가 희생된것만 해도 가슴이 터질것 같은데 이제 또 희생된다면… 그럼 앞으로 어떻게 미제를 때려부신단 말인가! 옳소! 최현이! 끝까지 살아서 기어이 조국의 고지를 지켜내야 하오.)

조금도 걱정말라고 하던 최현의 말을 곱씹어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몸을 일으키시였다. 한덕수가 써보낸 편지구절이 상기되시여서였다.

《장군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놈들의 탄압이 심하고 사대주의자들의 책동이 악랄하다 해도 우리가 물러서겠습니까?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 한덕수가 주저앉겠습니까? 주저앉지 않습니다.》

《최현이가 살아있는 한》이라는 말과 《한덕수가 주저앉지 않는다》는 말은 듣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의미는 같은것이였다. 조국이 가장 준엄한 시련을 겪고있을 때 가장 어려운 임무를 맡고있는 전사가 가장 명백하게 자기의 심정을 드러낸 말이였다. 그들이 한 그 한마디 말에는 위기에 처한 조국의 운명을 서슴없이 자기 한몸으로 막아나서려는 충신만이 지닐수 있는 불같은 신념의 맹세가 어려있었다.

문득 그이께서는 덕수와 최현, 두사람이 가장 어려운 때에 가장 어려운 임무를 맡고있을뿐아니라 똑같은 각오를 가슴에 품고있으며 지어는 외모까지도 비슷하다는 생각에 이르시였다. 둘이 다 크지 않은 다부진 몸매에 숱진 눈섭, 아래로 처져내린 고집스런 두볼… 마치 친형제같은 두사람의 용모에 저절로 웃음이 새시였다.

(한사람은 치렬한 격전이 벌어지는 1211고지에 있고 또 한사람은 반동들이 살판치는 일본에 있지만 심장은 꼭같이 조국을 위해 불타고있다. 그래서 심중에서 솟구치는 맹세도 같은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참된 혁명전사의 심장은 그 어떤 시련이 앞을 막아나서도 또 그 어떤 절해고도에 있다 해도 언제나 조국의 뜻, 인민들의 지향을 체감하는 법이다. 아니, 체감하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하는 법이다. 바로 그래서 진정한 혁명동지란 서로의 결심이 같고 행동이 같을뿐아니라 장래를 내다보는 눈 또한 같은 사람을 두고 말한다지 않는가! 혁명의 새벽길을 나서던 그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런 혁명동지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김혁, 차광수, 김책, 강건 그리고 최현, 한덕수…)

장군님께서는 그런 동지들이 옆에 있었고 또 있다는것이 더없이 긍지로우시였다. 그 긍지와 미더움으로 하여 새로운 용기가 가슴속에 솟구쳐오르시였다.

하지만 한덕수의 사정은 마음을 놓을수 없으시였다. 조국과 아무런 련계도 지을수 없는 이국땅에서 혼자 고생하는 그라는데도 있었지만 지금 벌어지고있는 사태를 그대로 방임한다면 앞으로는 더 엄중한 후과가 미치리라는것을 예감하지 않을수 없으시여서였다.

민대파들은 확실히 이젠 민족의 넋을 버리고 일본공산당의 맹목적인 하수인으로 전락된자들이였다. 한덕수나 김운해가 추방된 기회를 리용하여 운동권을 쥐려고 획책하는 그자들이 민전을 가로타고 앉는다면 과연 재일조선인운동은 어떻게 되고 동포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것인가! 물론 덕수를 비롯한 애국적인 활동가들이 그자들의 책동을 허용하지는 않을것이다. 그러나 그자들의 책동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후과가 어떤것이라는것을 동포들이 알게 해야 한다. 시급히 김운해를 만나 재일조선인운동에 대한 대책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김운해의 얼굴이 떠오르자 불현듯 그의 수척한 모습과 함께 지금도 합숙생활을 하고있는 외로운 처지가 되새겨지시였다.

(아무리 전쟁이라 해도 이역땅에서 고생스레 살아온 그에게 계속 합숙생활을 시킬수야 없지 않는가! 보금자리가 있어야 짝도 생기는 법이니까…)

우선 집이라도 한채 배정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이런 생각에 젖어계시느라고 장군님께서는 자동차가 멎는것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시였다.

《길이 끊어졌습니다, 장군님!》

앞자리에 앉아있던 최진이 뒤돌아보며 말했을 때에야 그이께서는 시창앞쪽을 내다보시였다. 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도로가 폭격에 뭉청 허리가 끊어지면서 그 자리에 집터만 한 웅뎅이가 생겨났다. 키높이 자란 뽀뿌라나무가 그옆으로 비스듬히 자빠져있었다.

은연중 그이의 생각은 전쟁이라는 엄혹한 현실로 다시 되돌아왔다.

길복판에 내리신 장군님께서는 차가 웅뎅이를 에도는 사이 최진과 함께 개울가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고요한 들판이였다. 서늘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가로수들의 잎사귀들이 마치 하얀 양철쪼각처럼 눈부시게 반짝거리였다.

길옆으로 흐르는 개울주위로는 넓다란 들판이 펼쳐져있는데 거기에서는 한마리의 어미소가 한가로이 새김질을 하고있었다. 어미소의 사타구니에서는 난지 한두달이 되나마나한 애송아지가 젖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지 아니면 재롱섞인 장난에서인지 콕콕 대가리질을 해가면서 젖을 빨아대고있었다. 그러다가 무엇이 좋은지 이번에는 깡충깡충 모둠발질을 하며 까불어대기 시작했다.

정녕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만치 평화롭고도 목가적인 풍경이였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한덕수 생각으로 여전히 마음이 밝아지지 않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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