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5 회)
제 3 장
1
가렬한 전쟁의 불길은 의연히 조국강토를 태우고있었다. 옹근 한해동안이나 가렬처절한 포화의 불바다속에 잠겨있는 조선을 세계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있었다.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옮겨지고 또 옮겨지던 전선이 저들이 침략의 불을 질렀던 바로 그 자리에 고착되게 되자 미제는 그사이 세계면전에서 당한 군사정치적패배와 수치를 만회해볼 야심으로 더욱 발악적인 공세를 들이댔다. 저들 무력 대부분과 태평양함대의 전력량, 거기다가 15개 추종국가 군대들까지 동원시켰으나 단숨에 집어삼키기는커녕 도리여 호되게 얻어맞기만 하다나니 미칠듯 한 광증에 사로잡히고말았다.
급해맞은 트루맨은 조선전쟁에서의 승리를 담보하지 못한 책임을 맥아더에게 뒤집어씌우고 그대신 릿지웨이를 련합군사령관으로 내세웠지만 목을 잘리운 맥아더는 불만스러워하거나 슬퍼할 대신 도리여 《로병은 죽는것이 아니라 사라질뿐》이라고 했다. 목은 비록 잘리웠으나 자긴 죽지 않을뿐더러 패전을 모르는 《필승장군》이던 나를 이런 비참한 운명에로 몰아넣은 조선전쟁을 도대체 너희들, 릿지웨이나 트루맨이 어떻게 치르나 지켜보겠다는 뜻이였다.
로회하기는 하지만 무관의 기질 그대로 투박하면서도 단도직입적인 맥아더와는 달리 음흉하고도 교활한 릿지웨이는 공개석상에서는 당장 정전으로 전쟁을 끝낼것처럼 떠들어대면서도 뒤에서는 트루맨의 새 전략로선을 실현해보려는 야심을 품고 대규모의 무력을 동원하여 《하기공세》를 들이댔다. 그러나 그것이 여지없이 파탄되자 이번에는 극히 모험적인 《추기공세》를 감행하려고 했다. 놈들의 이 무분별한 《추기공세》로 하여 전선은 바야흐로 또 한차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는 작전탁우에 펼쳐져있는 커다란 지도를 보고계시였다. 적아의 대치상태가 톱날처럼 예리하게 표시되여있는 군사지도였다. 《하기공세》에서 된맛을 본 놈들이 이번에는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쳐들어올것인가? 전선중부일것인가? 서부일것인가? 아니면 혹시 동부일것인가? 만약 바다로 기여드는 경우에는 어디를 목표로 할것인가?
전례없이 무모하게 나오는 놈들의 《추기공세》를 철저히 짓부셔버림으로써 전쟁의 결정적국면을 열어놓을것을 구상하시는 장군님이시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에 섬멸적인 타격을 안기여 놈들이 다시는 추서지 못하게 할뿐아니라 세계만방에 싸우는 조선의 영웅적기개를 다시한번 시위할 확고한 결심이시였다. 한해동안의 경험으로 하여 인민군장병들은 물론 전체 인민들까지도 승리에 대한 드높은 신심에 넘쳐있었다.
《장군님!》
어느새 들어왔는지 최진이 문앞에 차렷자세를 취한채 서있었다.
언제보나 엄숙한 표정과 절도있는 동작은 기계처럼 정확하고 빈틈이 없었다.
《김운해선생이 도착했습니다.》
《김운해?!》
은연중 그 이름을 되뇌이신 장군님께서는 지도우에서 허리를 펴시였다. 문득 얼마전까지 일본에 있다가 조국으로 돌아온 남달리 키가 큰데다가 준수하게 생긴 김운해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조국에 돌아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그를 만나보시려고 오늘 일부러 시간을 내신 장군님이시였던것이다.
장군님의 머리속에는 금시 준엄한 전쟁상황대신 가슴아프게 읽으신 한덕수의 편지내용과 재일조선인운동의 복잡한 실태들이 상기되시였다.
사실 재일동포들도 지금 전쟁을 겪고있는 조국인민들 못지 않게 시련을 겪고있었다. 일본반동당국은 조선전쟁을 준비하면서부터 재일동포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감행해나섰다. 조직을 해산하고 학교들을 페쇄한 놈들은 동포들을 일본사람으로 귀화시키기 위한 악랄한 흉계를 꾸미였다. 전쟁이 일자마자 조련기관지인 《해방신문》을 강제정간시키고 《건설통신》을 강제페쇄하여 동포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은 놈들은 《출입국관리령》과 《외국인등록법》을 제정시행하여 동포들을 각종 악법에 얽어매놓고 일본사람으로 귀화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남조선으로 강제추방하려고까지 했다.
놈들의 이런 탄압에 맞서싸우면서도 동포들과 애국적인 활동가들은 새로운 통일적인 조직을 내오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벌리였다. 해산당하지 않은 조직인 녀동과 교동 등의 단체들로 재일본조선인 중앙단체협의회를 무어 그 준비사업을 다그치던 활동가들은 전쟁이 일자 곧 싸우는 조국의 실정에 맞게 먼저 재일조선조국방위위원회를 결성하고 모든 애국력량을 전쟁승리를 위한 투쟁에로 결속했다. 일본각지에 조직된 조국방위위원회와 조방대(조국방위대)는 결성된 첫날부터 미제와 싸우는 조국인민들의 불굴의 기개에 호응하여 결사적인 각오로 떨쳐나섰다. 미제살륙무기의 남조선수송을 저지시키기 위한 투쟁, 미군무기수리공장의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한 투쟁 그리고 국제평화서명운동과 구국기금모집운동…
이 치렬한 투쟁과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검거되고 추방되고 희생까지 당했지만 덕수를 비롯한 애국적인 활동가들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싸우다가 마침내 금년초 조련해산후부터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해오던 재일조선인운동전반을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새로운 합법적조직인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민전)을 결성했다.
그런데 문제는 덕수를 비롯한 일부 활동가들이 추방령을 받고 공식적인 활동에 나서지 못하는것을 좋은 기화로 여긴 사대주의자, 민족허무주의자들이 민전을 가로타고앉으려고 획책하는것이였다. 조련이 해산당한것을 다행한 일처럼 떠들어댔고 새로운 조직을 내오는것도 미제와 일제의 탄압만 격화시키게 된다면서 한사코 반대하던자들이 민전이 결성되자 저네들이 장악하고있는 사람들로 조직의 주도권을 틀어쥐려고 하는 한편 활동원칙까지 규제하려 들었다. 특히 그자들은 덕수가 민전강령에 제시한 민족적이며 애국적인 과업들은 무시하고 범일반적인 과업들만 내세우고 내리먹이려 했다.
덕수는 편지에 썼다.
《장군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놈들의 탄압이 심하고 사대주의자들의 책동이 악랄하다 해도 우리가 물러서겠습니까?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 한덕수가 주저앉겠습니까? 주저앉지 않습니다. 놈들의 책동과 발악이 심하면 심할수록 더욱 용기백배하여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동포들을 조국의 두리에 굳게 묶어세우겠습니다.》
편지구절을 되새겨보신 장군님께서는 지금 덕수가 얼마나 괴로우랴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우시였다. 일제와 미제의 탄압으로 추방령을 받은데다가 이젠 내부에 있는자들까지 책동한다니 얼마나 일하기 힘들겠는가! 그가 과연 이 안팎의 어려운 시련을 이겨내고 조국이 준 과업을 끝까지 관철해낼것인가! 만약 그마저 주저앉는다면 재일조선인운동이 어느 지경에 이르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추방령때문에 귀국한 김운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아픈 마음과 함께 살벌한 땅에 혼자 남아있는 덕수에 대한 걱정으로 하여 못내 가슴이 저리시였다.
곧 면담실로 쓰는 옆방으로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김운해와 마주앉으시였다. 목이 성큼한데다가 머리칼까지 높이 쳐올린 김운해의 모습은 어딘가 앓고난 사람처럼 꺼칠해보였다.
《합숙에 있자니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닐것입니다. 전쟁을 겪다나니 미처…》
《괜찮습니다, 장군님!》
무릎우에 올려놓은 두손을 모두어쥔 김운해는 정중히 말씀올렸다.
《아무렴 일본에서 경찰의 눈을 피해가며 일하기보다야 더하겠습니까? 고생을 해도 제 나라에 오니 그게 고생으로 여겨지질 않습니다. 참말입니다.》
실상 남다른 고생을 한 김운해였다. 오랜 감옥생활과 그후에 이어진 피신생활, 추방령을 받고도 한동안은 도꾸다의 보호를 받으면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조선전쟁을 계기로 일본공산당마저 비법화되여 도꾸다자신이 핵심들과 함께 추방되여 중국으로 망명해가자 더는 발붙일 곳이 없어 조국으로 돌아온 그였다.
그런 김운해를 장군님께서는 따뜻이 맞아주시고 일본공산당에서의 활동과 재일조선인운동에서의 경력을 중시하여 당중앙위원회 부장의 중책을 맡기면서 해외교포운동도 함께 보도록 하시였다.
김운해는 장군님의 대해같은 은정에 어떻게든 보답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장군님앞에 나설 때면 은연중 어떤 자책감에 휩싸이군 했는데 그것은 재일조선인운동이 위험에 처한 시각에 동포들의 곁을 떠난것때문이였다. 일본땅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했던 사실이 조국에 와서부터는 특히 재일동포들에 대해 한시도 마음놓지 못하시는 장군님을 대하면서부터는 저절로 괴롭고 송구해지는 심정이였다.
《운해동무가 가지고 온 한덕수동무의 편지를 보니 일본사정도 매우 간고한것 같습니다. 그런데 덕수동무는 자신의 일신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추방령을 받은 상태에서 어떻게 지내고있는지, 늘 감시를 받을텐데 일은 어떻게 하며 가족들은 어떻게 먹여살리는지… 궁금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군복깃단추를 터놓으신 장군님께서는 탁자우에 놓인 담배갑을 김운해앞으로 내미시였다.
언제나 덕수에 대해 회상하실 때면 비죽이 내밀린 아래입술과 함께 커다란 목소리, 그러다가도 시선이 마주치기만 하면 얼른 고개를 숙이군 하던 순박한 모습이였으나 요즘에 와서는 그것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였다. 모진 비바람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꿋꿋이 머리를 들고 나가는 완강하고도 강의한 모습이였다. 덕수의 모습이 그렇게 달라진것이 전쟁전 추방령을 받은 윤의장이며 강의장 등 여러 사람들이 조국에 왔을 때부터라는것을 모르지 않는 장군님이시였다. 추방령을 받고 조국에 가겠다는 사람들에게 자긴 아무리 조국에 가고싶어도 갈수 없노라고, 가선 안된다고 했다는 덕수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그 모습은 활촉마냥 가슴에 배겨 지울래야 지울수가 없으시였다.
윤의장을 신의주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다른 사람들 역시 희망에 따라 대학교단이나 인민군대지휘관으로 보낼 때도 그랬지만 김운해를 마주한 지금도 그처럼 조국에 있고싶어 하던 그를 등을 떠밀어 일본에 보낸 일이 모진 아픔이 되여 가슴을 헤집는것이였다.
《덕수동무가 지금도 도꾜에 있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아픈 심정을 누르며 나직이 물으시였다.
《아닙니다. 덕수동무는 지금 가와사끼에서 삽니다. 추방령을 받자 곧 그리로 이사를 갔습니다.》
긴장해있던 김운해의 표정이 다소 활기를 띠였다.
《가와사끼는 덕수동무가 해방전에 살던 곳인데 거기에는 그때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동포들의 집단부락이라고도 할수 있지요. 아무래도 놈들의 눈을 피해 지하활동을 하자니 외따로 떨어져있기보다 오래동안 함께 지내던 사람들속에 있는것이 유리하다고 타산했던것입니다. 사실 거기 동포들이 덕수동무의 집도 마련해주었고 쌀도 가져다주며 그가 집에 와있을 때는 망을 봐주기도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한결 마음이 놓이시였다. 어려울 때일수록 믿고 의지할것은 역시 인민들이였다.
《편지를 보니 덕수동무가 모임에는 물론 회의에도 빠짐없이 참가하는 모양인데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는 민전일군들의 모임과 당원활동가들의 회의에 꼭꼭 참가하고있습니다. 그래서 매번 모임장소를 옮기군 하는데 모임이 끝나면 다시 다른 장소로 거처를 옮깁니다. 그러다나니 집에는 거의 들어가지 못합니다. 지정된 곳에서 회의를 할 때는 부득이 안내원과 호위성원들이 앞뒤를 따르고 그자신은 중절모를 쓰든가 안경을 껴서 변장을 하기도 합니다.》
매일 장소를 옮겨야 하고 변장까지 하고 다니자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덕수의 일체 생활, 그가 요즘 무엇을 먹고 건강은 어떠하며 집에 있는 처와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는가 하는 구체적인 사연까지 다 들려주었으면싶었으나 김운해는 오직 묻는 말에만 대답할뿐 다시 침묵을 지키였다.
《호일이라고 했던가? 덕수동무의 아들 말입니다. 그 애도 이젠 학교에 갈 나이겠는데…》
《…》
집안일에 대해서는 아는것이 없는지 김운해는 면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머리를 쓸어올리고나서 입을 열었다.
《다른 고생도 고생이지만 지금 덕수동무가 애를 먹는것은 민대파들때문입니다. 일본공산당 민족대책부에서 일하거나 그들의 지시를 받아무는 사람들을 민대파라고 합니다. 제가 추방되자 원철동무가 곧 당 민족대책부를 맡게 되였는데 그때부터 그는 재일조선인운동의 독자성을 무시하고 이젠 당이 직접 민전을 지도해야 한다고 하면서 〈재일동포들의 당면과업〉이라는것을 작성하여 내리먹이였습니다.》
《나도 그걸 본적이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언젠가 지영이가 가지고온 자료들에서 민족대책부가 발표한 당면과업이라는것을 본 기억이 나시였다. 각 부문별 과업들이 제시되여있었으나 어느것 하나도 긍정할수가 없으시였다.
《교육부문에 준 과업을 보니까 우리 학생들을 우리 학교에서 공부시키지 말고 일본학교에 분산입학시키라는것인데 도대체 그 리유가 무엇입니까?》
《그 리유는 우리 학생들을 일본학교에 보내야 일본학생들을 혁명적으로 각성시킬수 있고 앞으로 함께 투쟁하여 일본교육의 민주화를 이룩할수 있다는겁니다.》
장군님께서는 어처구니가 없으시였다. 그것이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꺼꾸로 된 론리일뿐더러 우리 학교를 강제로 페쇄하고 우리 학생들을 일본사람으로 동화시키려는 일본반동들의 목적과 무엇이 다른가? 오히려 반동들의 민족동화책동을 두둔하고 키질하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상공인들의 경우에도 우리 동포상공인들로 하여금 일본의 민주상공회에 가입하여 <직안투쟁>을 벌릴것을 요구하는 모양인데…》
《그렇습니다. <직안투쟁>이란 자기 거주지역의 <직업안정소>에 들어가 생활보조금을 받아내는것입니다. 그래야 일본의 재군비예산을 그만치 축낼수 있다는것입니다.》
《그것 참! 황당하구만. 일본정부가 재군비예산을 떼서 우리 상공인들한테 준다?》
자리에서 일어나신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창문쪽으로 돌아서시였다. 다시금 덕수의 모습이 눈앞에 어리였다. 민대파들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조소를 퍼붓는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절대로 우리 아이들과 상공인들에게 그따위 얼빠진 요구는 할수 없다고 무섭게 다그어대는 분노에 찬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시였다. 그러나 민대파들의 책동이 벌써 이런 단계에 들어섰다는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덕수가 과연 이 일을 어떻게 바로잡을것인가!
덕수에 대한 걱정이 들 때마다 장군님께서 제일 안타까우신 점은 안팎의 원쑤들의 탄압과 책동속에서 시달리는 그에게 안부는커녕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전할수 없는것이였다. 그쪽 소식은 조국으로 오는 인편이 있어 드문히 듣게 되지만 이쪽 소식은 도무지 알릴 길이 없었다. 방송이 있기는 했지만 대외관계를 고려하여 심중성을 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사정은 어떻든 적구의 엄혹한 환경속에서 혼자 갖은 시련을 겪고있을 그에게 너무나도 무심한것 같으시였다.
출입문이 열리면서 장령복을 입은 남일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강건이 희생된 다음부터 총참모장의 임무를 수행하고있는 그였다.
《무슨 일이요?》
《적후에 파견했던 최사정찰조가 돌아왔습니다. 놈들의 〈추기공세〉와 관련된 정보입니다.》
《급히 토론해야 할 문제입니까?》
《그렇습니다. 장군님께 보고드리고 결론을 받아야 할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전선동부에 대한 시찰준비도 끝냈습니다.》
남일의 근엄한 표정에는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할수 없구만.》
장군님께서는 김운해를 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아무래도 우리 이야기는 뒤로 미루어야 할것 같습니다. 일본반동들이 못되게 군다 했더니 이번에는 미국놈들이 또 시끄럽게 보챕니다. 내 전선에 갔다와서 다시 련락할테니 그때 만나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장군님께서는 남일과 함께 면담실을 나서시였다.
마당에는 벌써 장군님께서 전선으로 타고가실 야전용승용차가 고르로운 발동소리를 내며 대기하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