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2 장

11

 

키찌태풍이 파헤친 상처가 미처 가셔지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리히터척도로는 가늠할수 없는 드세찬 지진이 또다시 온 일본땅을 뒤흔들었다. 하늘에 이어 땅이 토하는 잔혹한 세례였다. 그러나 이 지진은 땅속이 아니라 땅우, 다시말해 일본전국에 널려있는 조선인학교가 자리잡은 곳만 골라가며 터진 무자비한 폭진이였다.

조련과 민청을 강제로 해산한 일본반동당국이 이번에는 조선학교들에 대한 강제페쇄령을 내린것이다. 조련해산으로부터 한달만에 취해진 또 하나의 강도적인 만행이였다.

조직을 잃은 동포들한테서 학교까지 빼앗는다면 더는 발붙일 곳이 없을뿐더러 다시는 추서지 못하리라는 타산밑에 감행한 횡포무도한 탄압이였다. 그야말로 목을 누른 다음에는 칼을 박기까지 해야 자기 목적을 실현할수 있다는 살인마의 본성그대로였다.

조선인학교들이 《일본법을 무시하고 민족적이며 공산주의적인 내용의 교육을 하기때문》에 페쇄한다는 문무성과 법무성의 련명으로 된 통고에 의하면 조련이 자체로 경영하는 92개의 학교에 대해서는 강제페쇄, 재산몰수를 하고 나머지 245개의 학교들에 대해서는 교육내용과 시설들을 당장 자기들의 요구대로 개조해야 한다는것이였다.

이런 저들의 조치가 조련해산 당시 학교는 조련의 재산이라 해도 몰수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과 배치되며 4. 24교육투쟁때 서로 나눈 각서와도 완전히 어긋나는것이였으나 폭압에 혈안이 된 놈들은 아무것도 가리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놈들의 만행에 격분한 동포들은 즉시 학교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섰다. 그러지 않아도 조련의 강제해산으로 해서 터져오르는 분노를 참을길 없었던 동포들은 아예 결사의 각오로 학교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섰다.

《이제 학교마저 빼앗기면 우리한테 남을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목숨을 걸고라도 학교만은 지켜내야 한다!》

《우리들이자 우리 학교고 우리 학교자 곧 우리 조국이다. 놈들이 학교를 페쇄하려는 목적은 우리와 조국을 떼놓자는데 있다. 조국을 지키는 한마음으로 기어이 우리 학교를 지켜내자!》

학교주변에서 사는 동포들은 말할것도 없고 멀리에 있는 동포들까지 너도나도 쌀과 가마를 지고 학교로 달려왔다. 곧 학교방위위원회를 구성하고 까마귀떼처럼 달려드는 경찰들과 하루에도 몇차례씩 치렬한 육박전을 벌리였다. 싸우는 부모들을 위해 중학생들은 물론 어린 초급학교 학생들까지도 주먹밥을 만드는가 하면 이웃학교들과의 련락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경찰들과 접전이 있을 때마다 수많은 동포들이 련행되군 했는데 그 수가 한 학교에서만도 수십명에 달하였다.

학교가 경찰에게 점거되지 않은 곳에서는 이처럼 교문을 지키면서 완강한 방어전을 벌리고있었지만 벌써 경찰들에게 점령당해버린 학교들에서는 반대로 교문을 지키고있는 경찰들의 저지선을 뚫기 위해 필사의 공격전을 들이대고있었다. 이런데서는 경찰들에게 련행되여가는 사람보다 놈들의 곤봉에 맞거나 구두발에 채워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전국적으로 볼 때 놈들이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단행한 오사까, 교또, 야마구찌, 규슈지방의 학교들은 페쇄되였으나 동포들과 학생들이 한덩어리가 되여 필사적으로 싸운 아이찌, 히로시마, 효고, 미에 등지의 학교들은 여전히 굳건히 우리 교육을 실시하고있었다.

그런가 하면 도꾜, 가나가와지역처럼 일본지방자치제가 우리 학교를 강제로 접수한데서는 제멋대로 도립이니 공립분교니 하는 간판을 붙여 민족격리정책에 의한 동화교육을 실시하고있었고 시가, 기후, 이바라기, 사이다마 등 동포들이 분산거주하는 지역들에서는 일본학교에 민족과목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학급을 자체로 설치, 운영하고있었다.

영신이가 일하는 아라가와초급학교도 하루아침에 일본공립소학교로 강제이관되여버렸다. 마쯔오까라는 교장과 함께 일본인교원들이 임명돼왔는가 하면 교과서도 일본교과서로 바뀌여졌던것이다.

그 바람에 영신이는 물론 조선인교원들은 거의다 해임되였다.

첫날 일본인직원들과 경찰들이 학교를 접수하기 위해 달려들었을 때였다. 놈들의 폭행에 아이들이 다칠가봐 교실로 달려간 영신이는 그만 그 자리에 굳어지고말았다. 자기 학급의 어린 학생들이 교실을 접수하러 온 일본인직원들앞에서 항변을 들이대고있었기때문이였다.

《왜 우리 학교를 빼앗나요? 이 학교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피땀흘려 지어준 학교입니다.》

《우린 절대로 학교를 내놓을수 없습니다.》

그래도 일본인직원들이 경찰들의 힘을 빌어 학생들을 교실밖으로 내몰려고 하자 학생들은 하나같이 자기 책상을 부둥켜안았다.

《안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책상을 안고 몸부림쳤으나 종내 하나하나 교실밖으로 들리워나가고말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교실로 들어가려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한 처녀애는 고사리같은 손을 뻗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타게 부르짖었다.

《돌려주십시오. 우리 학교, 우리 선생님, 우리 교과서를 돌려주십시오.》

절절히 호소하는 그 절규에 영신이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솟구쳐올랐다. 철도 없는 어린것이라고 여겨온 학생들의 가슴속에 얼마나 뜨거운 마음이 고여있는가! 무엇인가 세차게 심장을 때리면서 여태껏 알지 못하던 힘이 용솟음치는것이였다.

결국 교실은 빼앗겼으나 영신이는 다음날부터 학생들을 데리고 운동장에서 야외수업을 했다. 그러자 교무주임이라는자가 황황히 달려왔다.

《이런데서 노래를 부르고 수업을 하면 안됩니다.… 이러면 교무를 책임진 내 립장이 딱해진다는것쯤이야 알텐데…》

《무엇이 딱하다는거예요?》

영신이는 그를 쏘아보며 야무진 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립장이 딱해도 학교를 빼앗긴 우리보다 더 딱하겠어요? 우린 우리 아이들이 우리 교과서를 가지고 우리 교실에서 공부할수 있을 때까지 여기서라도 수업을 해야겠어요.》

그러자 교무주임도 가만있지 않았다.

《학생들이 스크람을 짜고 혁명가요를 부른다는것자체가 일본교육법에 어긋난단 말이요!》

《우린 우리 교육법이 따로 있어요. 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우리 아이들이 혁명가요 부르는걸 막지 말고 일본학생들이 〈캉캉무스메〉(창녀들에 대한 류행가)나 부르지 못하게 하세요.》

영신이는 학교가 어떤 형태로 변하든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그 하나의 결심을 더욱 굳게 다지며 교무주임을 마주 쏘아보았다.

(잘은 놀고있군! 뭐, 우리 교육법?)

학교페쇄가 어떻게 단행되는가를 직접 제 눈으로 보기 위해 아라가와초급학교에 나온 원철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다고 학교를 지켜낼것 같아서?)

이미부터 일본에서 사는 재일동포들이 운동은 물론 교육도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나가서는 안된다는것을 주장해온 그는 조련, 민청의 해산령에 이은 학교페쇄령은 부득불 당하지 않을수 없는 피해라고 여기고있었다. 번개가 일고 우뢰가 터진 다음에는 어김없이 소나기가 쏟아지는것과 같은 불가피한 현상이 아닐수 없다는것이였다. 그중에도 민족교육의 강화가 적들의 탄압을 가증시키는 결과밖에 가져올것이 없다는것을 거듭 주장해온 그로서는 지금 위기에 직면해있는 재일조선인운동이나 교육문제에 대한 걱정보다도 이미부터 그처럼 우려하던 재일조선인운동에 대한 자기의 견해가 얼마나 정당했는가 하는 일종의 자부심까지 느끼고있었다.

언제나 주위사람들로부터 능력이며 열정을 평가받는데 습관된 나머지 이제는 어느새 자기가 과연 비상하고도 비범한 자질을 가지고있다고 믿어마지 않았고 그로 하여 남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어렵고 복잡한 일은 의례히 자기가 나서야 한다고 확신하는 원철이였다. 그런데로부터 그는 지금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있는 재일조선인운동을 바로잡는것이 바로 자기에게 부과된 력사적인 사명이라는것, 따라서 잘못된 길로 나가는 재일조선인운동을 이번 기회에 제 궤도에 올려세우기 위해 그 어떤 희생도 각오하고 투신해야 하리라는 불같은 결의에 충만되는것이였다.

사실 그는 요즘 자기를 만족시켜주는 일, 그중에서도 이미부터 애타게 바랐지만 성사되지 않던 일들이 너무나도 쉽사리 또 일시에 이루어지는통에 정신이 다 얼떨떨할 지경이였다. 이즈막 차례진 행운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그것은 우선 여태껏 일본공산당의 웃자리에 앉아 중압적인 무게로 내리누르던 김운해가 추방령을 받고 당직에서 제외된것으로 하여 자기가 저절로 당내에서 민족문제를 주관하는 위치에 올라서게 된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이 그에게는 더큰 행운이였다.) 이때까지 재일조선인운동을 그 억센 손아귀에 틀어쥐고나가던 한덕수가 조련조직과 함께 운동권에서 물러나게 된것이였다. 조련이 해산되고 한덕수가 추방된것, 이것이야말로 겉으로는 내색할수도 없고 내색해서도 안될 일이여서 참고있지만 혼자 있을 때면 은연중 미소가 피여오르는 사실이 아닐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덕수만은 마주앉아 무슨 문제를 진지하게 토론하기는 고사하고 대상하기조차 어려웠다. 늘 아래입술을 비죽하니 내민 그가 맞갖잖은 눈길로 치떠볼 때면 꼭 당장 들이받으려고 씩씩거리는 황소를 마주한 기분이였다. 그런데 그 한덕수가 운동권에서 물러났을뿐아니라 그가 애써 키워온 조직마저 흔적도 없이 깨져버렸다. 이제부터는 자기가 모든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이런 사실들은 그에게 제딴에는 조련을 그 어떤 산악도 단숨에 뛰여넘을 준마로 길들여간다고 자부하던 한덕수가 그만 길을 잘못든 탓에 부득불 말에서 내리지 않을수 없게 된 대신 자기가 그의 모든 과실을 책임지고 새롭게 말에 오르게 되였다고 믿게 하였다. 새로운 시대가 바로 자기라는 새로운 인물을 력사의 말우에 앉히였다.

이제부터는 모든 동포들을 조국이라는 범속한 세계에서 끌어내여 혁명의 기치따라 묶어세워야 한다는 각오로 굳어졌다. 그는 벌써 자기를 선두로 한 재일동포들의 억센 대오가 협애한 민족적울타리를 벗어나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의 큰길을 따라 질풍같이 내달리는 모습을 환희에 넘쳐 바라보고있었다. 하지만 늘 인간생활이란 음영이 동반되기마련이라고 여기고있는 그는 자기에게 기쁜 일이 차례지는 이런 때일수록 더욱 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의 탕개를 바싹 다잡는것이였다.

요요기에 있는 당본부청사에 이른 그는 자기 방에 들어서기 바쁘게 며칠동안 품을 들여 쓴 원고를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당최고지도기관인 정치국에 제출할 건의서였다. 그는 그 건의서에 오늘의 정세를 분석한데 기초하여 민족문제 특히 재일조선인운동의 앞으로의 전망과 활동방향에 대한 자기의 주장을 피력했다.

새 과업을 맡은 자기의 혁명적열정과 정치능력에 대해 정치국의 평가를 받게 된다는것으로 하여 그는 정세분석은 물론 그에 따르는 견해들에 각별한 심혈을 기울였다. 모든 점이 만족스러웠지만 그중에도 자기가 새로운 각도에서 오늘의 정세를 분석하고 그에 근거하여 활동방향을 제시한 대목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현시기 혁명력량에 대한 규정을 그는 이전처럼 일본로동계급과 농민, 민주세력에만 국한시킨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무시할수 없는 강력한 력량으로 등장한 재일동포들의 정치적력량에 대해 력점을 찍어 강조했다. 특히 조련, 민청의 해산과 학교페쇄령을 계기로 일본반동당국뿐아니라 미군정에 대해서까지도 극도의 증오와 반감에 사무쳐있는 재일동포들은 지금 마치 분출구를 찾는 용암처럼 끓어번지고있다는데 대해 피력하고나서 지금이야말로 당은 이 력량을 일본혁명의 중요한 일익으로 간주해야 한다는것을 힘있게 론증했다. 그리고 조직을 잃은 재일동포자신들도 이젠 당의 직접적인 지도를 목마르게 기다리고있다고 하면서 해방후 대대적으로 입당한 동포당원들의 수를 밝혔다. 혁명의 일선에 당당히 설수 있는 조선인청년당원들의 앙양된 기세에 대해 실례를 들어가며 설명한 다음 그들에 대한 통일적인 지도를 위해 당안에 새로운 부서 《민족대책부》를 내와야 한다는것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래 이쯤하면 내가 민족문제를 어떻게 설계하고있는가를 리해하겠지.)

누가 읽어봐도 긍정할뿐아니라 감탄하리라는것을 믿어마지 않는 그는 튼튼한 두팔을 쳐들며 한껏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공을 향해 연거퍼 주먹을 날리였다. 그의 이런 행동은 권투선수가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운동을 하는것처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투지와 용기를 가다듬기 위해 하는버릇이였다.

어제 밤늦게까지 정치국위원 아끼야마와 바둑을 둔것으로 해서 어지간히 피곤했지만 그는 문앞에 세워놓은 지우산을 들고 다시 삐걱거리는 마루계단으로 나섰다. 앞으로 조직될 민대부(민족대책부)의 핵심들, 자기의 지시를 재일조선인운동에 구현할 일군들이 기다리고있는 신바시의 산별회관으로 가는 길이였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재일조선인운동이 이제부터는 새로운 궤도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는것을 알려주는 동시에 앞으로의 재일조선인운동을 철저히 당, 민대부가 직접 장악하고 지도하게 된다는것을 인식시켜야 했다.

그의 머리속에는 벌써 앞으로의 구체적인 활동계획과 함께 그 활동을 담당수행할 핵심성원들까지 명백히 찍혀있었다. 도꾜에서는 김충구, 안흥기, 오사까에서는 정동은, 최승국, 청년활동책임자로는 로재호… 모두 해방직후 자기가 운영해오던 3. 1정치학원출신들로서 리론적으로 준비돼있을뿐아니라 하나같이 열정과 투지에 충만돼있는 열혈투사들이였다.

겨우 도로가 정비되여 전차와 자동차들이 다니기는 했으나 길가에는 아직도 천막을 치고 사는 수재민들로 붐비고있었다. 거리의 여기저기에는 갖가지 오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가 하면 어떤 집들은 여전히 삐뚜름히 자빠져있거나 허리를 꺾이운채 누워있기도 했다.

(키찌태풍이 도시를 휩쓸었지만 앞으로는 키찌보다 몇배 더한 혁명의 폭풍이 온 일본땅을 휩쓸것이다. 그땐 그야말로 이 땅에서 온갖 낡고 부패한 반동의 오물들을 말끔히 쓸어버릴것이다!)

이런 벅찬 충동으로 하여 그는 걸음발을 힘차게 내디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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