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제 2 장

7

 

운동회는 시간이 갈수록 더 열기를 띠였다.

도꾜 가미쥬죠에 있는 도꾜조선중고급학교운동장은 도내에서 모인 수천명의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벌리는 각가지 경기들로 하여 죽가마처럼 부글부글 끓어번지고있었다.

운동장에서는 숱한 사람들의 응원속에서 학생팀과 학부형팀간의 축구시합이 한창이고 새로 지은 가교사옆에 꾸려놓은 씨름판에서는 개인비교씨름이 성황을 이루고있었다.

그런가 하면 운동장 한쪽구석에 서있는 해묵은 방울나무에 매달아놓은 그네주위에는 처녀들과 아낙네들이 오구구 모여있는데 어째선지 그네를 타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매번 바스러지는듯 한 웃음소리만 터져오르군 했다.

경기도 경기지만 운동장주변으로 빙 돌아가며 차일을 치고 벌려놓은 과일이며 지짐이며 빙수매대들이 또한 각별한 이채를 띠고있었다. 탁주동이를 몇개씩 내다놓고 오늘같은 날 인심쓰지 않으면 언제 쓰느냐는듯이 오가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아낙네도 보였다. 기업권을 얻은 동포기업가들이 운동회를 위해 용약 무료봉사에 떨쳐나선것이다.

미리부터 짜고들어 준비해온 운동회라는데도 있었으나 명칭자체가 여느때와는 달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을 지지하는 도꾜대운동회》라는것으로 하여 더 왕성한 활기에 넘쳐있었다.

얼마전 조국에서는 새로 결성되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조련을 정식 단체로 가입시키였다. 그 력사적인 결성모임에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덕수를 직접 중앙위원으로 임명하시고는 이 사실을 일본에 알리도록 지시하시였다.

그 소식을 전달받은 중총에서는 곧 본래 예견했던 운동회보다 더 성대한 운동회와 행사들을 도꾜뿐아니라 각 현들과 지방마다에서 조직하고 중총일군들을 파견했다. 그러고보면 오늘의 운동회가 장군님은정으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정식단체로 된 조련의 영광을 시위하는 축전이기도 했다.

온 운동장이 어디라없이 다 떠나갈듯 했지만 그중에도 제일 떠들썩한 곳은 역시 씨름판이였다. 승부가 날 때마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귀청을 찢는듯 한 북소리, 꽹과리소리가 운동장을 들었다놓군 했다.

소년급부터 시작한 씨름이 숱한 사람들을 웃기는 웃음판으로 화해있었다. 조선씨름이라고는 아직 한번도 해보지 못한 조무래기들이여서 심판이 어쩔 사이도 없이 와락 맞붙어서는 서로 상대방과 밀어낼내기를 했다.

《이놈들아, 우리 조선씨름은 일본씨름처럼 그렇게 닭싸움하듯 하는게 아니야. 이렇게 척 샅바를 쥐고… 꺼럼!》

심판은 매번 조선씨름법도를 가르칠래기 땀을 빼군 했다.

《아무리 일본의 요꼬즈나(일본씨름을 제일 잘하는 선수들의 칭호)라 해도 우리 나라 예천박장사한테 갖다대면 어림도 없지, 암- 예천박장사의 특기는 배지긴데 그 배지기로 황소를 일곱짝이나 탔으니까!》

《배지기가 뭐나요?》

《배지기? 일본씨름으로 치면 쯔리다시? 아니, 우와떼나게 비슷하다고 할가. 아니, 그것도 아니야. 일본씨름에는 그런 희한한 수가 없지, 없구말구. 꺼럼! 허- 이거 아이들한테 씨름을 가르치기 위해서도 학교부터 빨리 지어야겠수다. 모두들 봤지요? 우리 아이들이 조선씨름도 모르는걸. 그러니 다들 오물쪼물하지 말고 빨랑빨랑 학교건설희사금부터 내소, 예?》

그는 어느새 심판으로부터 학교건설기금을 모금하는 사람이 되기라도 한것처럼 빼곡이 둘러서있는 사람들을 보며 소리쳤다.

《아따! 심판이나 설끼지 돈내라는 소리는 왜 한댜? 누가 안 낼가봐?》

누군가 이렇게 대꾸하자 그는 얼른 그쪽으로 돌아섰다.

《뉘시우? 어디 자신이 있으면 앞으로 나서보우. 기부금 얼마나 낸 사람인지 얼굴 한번 봅시다.》

《애개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보아 아직 돈을 내지 않은 사람이 분명했다.

《이 사람이 누구인고 허면…》

그뒤에 있던 사람이 방금 자라목이 된 사람의 잔등을 밀쳐대며 소리쳤다.

《바로 아까바네에서 고리가시(고리대)하는 다까야마상이외다.》

《고리가시? 아이고, 그러믄사 벌써 돈 천원은 잘 냈겠고마.》

누군가 이렇게 훈수하자 방금 잔등을 밀치던 사람이 말도 말라는듯 대뜸 손을 내저었다.

《돈을 내요? 생긴걸 보소, 얼마나 게찌(깍쟁이)겠나. 돈내라고 찾아가면 내가 왜 벌써 내? 내 아들 학교갈 때 낸다, 이러지 않습니까.》

여기저기서 웃음이 일었다.

《아니, 무엇때문에 일본사람이 우리 학교 건설기부금을 낸단 말이요?》

저쪽에서 누군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난 우리 학교 운동횐줄 알았더니 일본사람도 섞여있었구려. 어디 그 다까야마상 어떻게 생겼는지 관상 좀 봅시다.》

아직도 일제때 강요당한 이름을 그대로 쓰고있다는 핀잔에 또다시 왁자그르했다.

그네터도 자못 활기에 넘쳐있었다.

그러나 매번 승부를 다투는 씨름판과는 달리 여기서는 치마허리를 수건으로 질끈 동인데다가 팔소매까지 걷어붙인 한 아낙네가 그네우에 올라있는 처녀에게 그네타는 법을 가르치고있었다. 그는 오늘 손수 시범동작까지 해보이려고 마음먹었는지 복장도 아예 선녀같은 치마저고리차림이였다.

《아이고, 답답해라. 그렇게도 힘을 쓰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네가 올라? 배힘으로 오르고 팔힘으로 뜨는게 그네란디.》

《암만 힘을 써도 안되는걸 어떻게 해요?》

분명 그네라고는 처음 타보는 처녀는 안타까운듯이 발을 동동 굴렀다.

《우선 팔부터 크게 벌려봐, 이렇게!》

《이렇게?》

《아니, 더 크게! 동시에 배는 힘껏 내밀구.》

《이렇게.》

《아니, 더!》

《이렇게?》

주위에서 그 모양을 지켜보고있는 녀자들은 입을 싸쥐기도 하고 옆사람과 귀속말로 뭐라고 수군거리기도 하는데 보매 이제 무슨 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나 하고 기대하며 웃음을 참고있는 꼴이였다.

《배를 더 내밀어야 한다는디!》

녀인이 시키는대로 아래배를 한껏 내밀던 처녀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갑자기 한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깔깔 웃어댔다.

《그런데 동작이 좀 밋도모나이(창피)합니다네!》

그 말에 여태껏 웃음을 잔뜩 물고있던 녀자들이 일시에 폭소를 쏟아놓았다.

서로 한곳에 모이니 오래간만에 만나게 되는 사람도 많은것 같았다. 어디서나 마주붙들고 반갑다는 인사들이였다.

《족은아방, 족은어망, 안녕하셨수꽝.》

《원, 이기 누구디아? 잘 땐 자리에 오줌누군 하던 벵식일주? 이전 한몫 장수가 되였는디? 무싱거 먹언디?》

《무사 그럼수꽈.》

《이전 족은아방, 족은어망하믄 안된디야. 내가 바로 제주부씨의 14대종손이라 그 말이다.》

《그럼 뭐라 불러얍니까, 아잽니꺄?》

《아재가 뭐꼬? 할배다, 할배라 혀!》

《그럼 할배요, 절 받으소.》

그런가하면 다짜고짜 손목을 마주잡고 차일안으로 들어가 대포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돈을 안 내고 공짜로 먹는 술이여서 그런지 한잔이상은 더 청하지 못했다. 그런 눈치를 알아차린 주인은 오히려 제편에서 섭섭해하며 볼부은 소리를 했다.

《아따, 오늘같이 기쁜날 엔료(사양)는 무슨 엔룝니껴. 어서 드이소, 자-》

《그러다 형씨 밑천 쫄딱 녹일가봐 그럽니다.》

《홀깍대기장사에 밑천은 무슨 밑천이겠수. 그러나 그런들 걱정이 또 뭐유? 이젠 기업권도 가졌겠다 돈까지 대주는 상공련합도 있는데…》

《기업권도 가졌고 상공련합도 있지만 그뒤에는 우리를 지켜주는 공화국이 있지요. 바로 그래서 오늘같이 기쁜날도 있는게 아니겠수.》

《암, 그렇다마다요. 거 형씨! 그 말 한마디 내 맘에 쏙 들게 했수.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잔 합시다. 자, 간빠이!》

운동장가운데 특별히 커다란 차일을 쳐서 꾸려놓은 래빈석에 앉아 동포들의 이런 활기에 넘친 모습을 바라보는 덕수의 마음은 무어라고 형언할수 없으리만큼 흐뭇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또 누구를 지켜보아도 기쁨과 자랑과 긍지에 넘친 모습들이였다. 언제 우리 동포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힘차게 뛰여보았고 또 언제 저처럼 밝게 웃어보았던가!

그런 모습을 보면 볼수록 이제까지 해온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게 되면서 앞으로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겠다는 결의와 또 할수 있다는 신심이 가슴가득히 용솟음치는것이였다. 특히 자기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으로까지 내세워주신 장군님의 신임과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배가의 노력을 하리라는 불같은 결의에 충만되는것이였다.

《야단났습니다, 의장님!》

갑자기 가슴에 《학부형》명판을 단 축구선수 하나가 땀방울을 뚝뚝 떨구며 초대석앞으로 들이닥쳤다. 태길이였다. 땀범벅이 된 얼굴 한복판에 솟아있는 커다란 매부리코가 쉴새없이 벌름거렸다.

《왜?》

《우리 선수 하나가 발목을 다쳐 뛰질 못합니다.》

《그래서?》

《의장님이 좀 대신해달라는겁니다. 옛날에 축구선수였다기에…》

《그-래?》

손에 쥐고있던 부채를 탕 하고 책상우에 놓은 덕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절로 아래입술이 비죽하니 밀려나왔다.

《그럼 진작 그렇다고 할노릇이지!》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다리가 근질거리는걸 참아오는터였는데 마침이다싶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윤덕곤이 따라일어서며 소리쳤다.

《아, 의장은 안돼! 학부형팀인데 학부형도 아닌 의장이 어떻게 나가! 안 그렇소, 교장?》

옆에 앉아있는 교장 림광철을 바라보던 그는 다시 한마디 덧붙였다.

《이런 때야 응당 학부형회 회장인 내가 나가야지. 내가 뭐 괜히 학부형회 회장을 하는줄 아는게지!》

아무 일에서나 직선적이고 행동적인 덕곤은 어느새 와이샤쯔깃을 훌훌 풀어헤치고있었다. 불룩한 배가 벌써 숨가쁘게 오르내리였다.

잘못하다간 그에게 자리를 뺏기울 위험을 느낀 덕수는 얼른 앞책상을 들어옮기고는 운동장으로 나섰다. 나서고보니 뽈을 차러 나왔다는게 옷은 물론 신발도 구두를 신은채였다. 제꺽 웃동을 벗으면서 뒤꿈치로 구두를 털어벗은 그는 바지가랭이까지 둥둥 걷어올렸다.

그의 출현에 놀라기도 하고 웃기도 하던 사람들이였으나 누군가가 곧 운동화짝을 가져다주었다.

(아무렴 옛날같기야 하랴만 그래도 한번 본때를 보여주어야지!)

교남학교시절 경기때마다 골받이로 학생들을 놀래우던 일을 상기하면서 그는 그때 자기의 위력한 무기였던 번듯한 이마를 한번 쓱 쓸어보았다.

학부형팀선수들은 대체로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였으나 어떻게 된판인지 젊은 학생팀을 2 대 1로 누르고있었다. 그러나 역시 나이는 나이여서 경기마감시간이 가까와질수록 힘이 딸린 학부형팀문전에서는 자주 혼전이 벌어지군 했다.

어느새 학생팀공격수 하나가 방어수를 뚫고 꼴문을 향해 육박해들어왔다. 어찌도 다리를 재게 놀리는지 두발이 바람개비같았다. 잔뜩 허리를 꼬부리고 기회를 노리던 덕수는 그가 약간 공을 길게 몰았다싶을 때 제꺽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공을 낚아챘다. 그바람에 육중한 덕수와 정면으로 부딪친 상대방은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종내 뒤로 벌렁 넘어지고말았다.

《허- 대단한데.》

《의장 잘한다!》

《의장이 뭐요? 중앙위원이지!》

《그렇지! 중앙위원 잘한다-》

관중들의 찬사에 화답하듯 공을 중간으로 힘껏 내찬 덕수는 넘어진 선수를 일으켜세워주는 아량까지 보였다.

(어디라구 감히… 이래뵈두 한땐…)

그런 생각에 젖어있을새가 없었다. 어느새 또 공격이 가해졌다.

학생팀은 시간이 촉박해지자 연방 문대우에 공을 띄우고는 떨어지는 이삭뽈을 꼴문에 차넣으려고 시도했다. 그런 때는 자기 위치가 바로 제2문지기라는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있는 덕수는 꼴문대에 붙어서서 분주히 오가는 공을 주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때였다. 문앞으로 떠오는 공을 문지기가 나가면서 쳐낸것까지는 좋았으나 그게 상대방선수의 발에 걸려 다시 문대를 향해 날아들었다. 문지기도 없는 빈 꼴문이였다. 당장 공이 그물에 철썩 하고 걸릴판인데 이때다 하고 속으로 웨친 덕수는 기다렸다는듯이 머리를 들이대고 지끈 받아치웠다. 결정적인 위기를 모면한것이였다.

《저런!》

《의장솜씨가 정말 보통 아닌걸?!》

《완전히 프로급일세!》

《글쎄 저 정도니까 자신있게 나선거지.》

이런 탄성이 미처 가라앉기도 전에 또다시 공이 공중으로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자기뒤에 문지기가 있다는것을 알았지만 자기의 골받이위력을 다시한번 보여줄 심산으로 그는 재차 공중으로 솟구치며 머리를 휘둘렀다. 한데 빠른 속도로 날아온 공인데다가 그 공이 이마에 제대로 맞지 않는 바람에 한쪽귀바퀴가 얼얼해났다.

《아-니?!》

《와-아!》

갑자기 터져오른 함성에 덕수는 어리둥절해지고말았다. 무엇때문인지 관중들이 일시에 자리를 차고일어나기까지 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돌아본 순간 그는 그만 아연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입을 멍하니 벌린채 굳어져있는 문지기와 함께 그뒤 그물 한쪽귀때기에 걸려있는 공이 보였기때문이였다. 자기가 골받이한 공이 자기 문으로 날아들어갈줄이야!

《아이쿠!》

덕수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태길이가 땅을 치며 분해했다. 사람들은 성을 내는가 하면 배를 그러쥐고 웃어대기도 했는데 어느새 윤덕곤이 대머리를 번쩍이며 달려들었다.

《학부형도 못되는 주제에 괜히 나서더니. 그러단 또 한꼴 먹겠네. 들어가라구.》

그리고는 누가 어쩔 사이도 없이 그 짧은 다리를 놀리며 공을 쫓아가는데 그 동작이 가관이였다. 자기 위치도 없이 공이 가는데마다 따라가는것도 우스웠지만 누구의 발에 공이 맞기만 하면 괜히 저도 덩달아서 한쪽다리를 널름하는것이였다. 제발에는 공이 한번도 맞지 않았으나 쉴새없이 다리를 들썩들썩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요절을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사람들이 배를 그러쥐게 만든것은 해빛에 번들거리는 덕곤의 대머리가 공같아서 마치 두개의 공을 놓고 경기를 하는것 같았기때문이였다.

결국 경기는 2대 2의 무승부로 끝났으나 두 팀이 다 이긴것으로 선포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운동장에서 춤판이 벌어졌다.

경상도 밀양타령에 맞추어 추는 곱새춤이 나오는가 하면 충청도 사물놀이에 황해도 봉산탈춤까지 차례로 선을 보이였다. 춤도 아니고 체조라기도 어려운 발을 동동 구르면서 팔을 꾸불덕거리는 해괴한 동작도 있어 저게 뭐냐고 묻자 제주도 《해녀춤》이라는것이였다.

어쨌든 자기 고향 춤들은 다 하나씩 가지고나왔고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즉석에서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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