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2 장

6

 

방안에 들어선 덕수는 엉거주춤 일어서는 재호를 정겨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거 안주가 변변치 못하군그래.》

막걸리사발이 놓인 밥상을 내려다본 그는 재호의 어깨를 눌러 자리에 앉혔다.

《안 먹겠다는데 형수님이 자꾸 권하지 않습니껴.》

재호는 부엌에 있는 수임에게 한쪽눈을 찡긋해보였다. 그리고는 제잡담 큰소리로 말을 이었다.

《넨장! 요즘처럼 바빠서야 어디 일해먹겠십니껴. 제대로 잠을 자나, 먹길 하나. 이건 하루종일 학교요, 지부요, 분회요 하고 오금에 자개바람이 일도록 뛰여다녀야 하니…》

덕수의 기분이 흡족하다는것을 느낀 재호는 이마살을 잔뜩 찌프린채 볼부은 소리부터 했다.

어느때나 덕수의 기분상태를 정확히 알아맞추고는 그때마다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있는 그였다. 그의 판단에 의하면 덕수가 흐뭇해할 땐 덩달아 기뻐하기보다 도리여 불만, 그것도 일에 다몰리여 눈코뜰새없다고 투정이 섞인 불만을 털어놓아야 더 좋아한다는것이였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어느 정도는 상대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고 또 맞출줄 알아야 한다는것이 재호의 생활신조였다. 특히 덕수와 같이 남달리 기질이 드센 사람일수록 그것이 억센 치차에 치는 기름처럼 항시적으로 필요할뿐더러 그래야 자기의 의도도 실현할수 있다는것이였다.

《그게 바로 보람이라는거지!》

아니나다를가 덕수의 한쪽입귀가 실룩했다.

《그러나 오금에 자개바람이 뭔가, 불이 일어야지. 그러자면 일에 쫓겨다니지 말고 일을 쫓아다녀야 해. 안 그런가?》

재호는 고개를 끄덕이기는 하면서도 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자기의 생각을 털어버리고 덕수를 납득시키겠는가를 따져보았다. 사실 덕수에게 무턱대고 자기의 주장을 고집한다는것은 알몸으로 호랑이굴에 기여들어가는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 아닐수 없었다. 더우기 그냥이라면 몰라라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부정하기 위해 들어왔다는것을 알면 상대가 누구든 사소한 주저도 없이 물어메칠것은 뻔한 일이였다. 그런만큼 절대로 정면으로가 아니라 측면으로, 그것도 최대의 조심성을 기울여야 하는것이였다. 그런 긴장으로 해서인지 막걸리를 몇잔 들이켰는데도 정신은 말똥말똥하기만 했다.

《형님도 한잔 하시구려!》

상우에 있는 빈사발에 막걸리를 기울인 재호는 다꾸앙쪼각이 담긴 접시까지 앞으로 밀었다. 혼자 홀짝홀짝 들이키기가 거북하기도 했거니와 덕수의 기분을 눙쳐보려는 속심에서였다.

부엌에서 동자질을 하던 수임은 벌써 아이들을 데리고 이웃집으로 간 모양이였다. 그는 언제나 남편을 찾아와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 때면 그가 누구든 자리를 피해주군 했다.

《그래 가나가와에선 신입생들을 얼마나 받았나?》

《말도 마시우. 내 두손 바짝 들었수다.》

정말 두손을 버쩍 들어보인 재호는 고개까지 설레설레 저었다.

《150명을 예견했는데 270명이 뭡니껴. 선생이 있습니껴, 교실이 있습니껴. 그래 운동장에 천막들을 치고 공부를 하는데 하루 3부제, 4부제지요. 선생들은 눈에 피발들이 서고 다리는 다 이렇게 부어올랐지요.》

바지가랭이를 걷어붙인 그는 자기의 가느다란 종아리를 들어올리고는 퉁퉁 부어오른 시늉을 해보였다. 그 모습에 덕수는 몸을 뒤로 제치며 큰소리로 웃어댔다.

《그러니 우리가 내놓은 구호가 얼마나 옳았나. 다른 현들에서도 하나같이 학생수가 늘어나고 조직에 인입된 사람들도 불었어. 암, 자랑찬 일이지! 이젠 동포기업가들도 떨쳐나섰네. 많은 기업가들이 글쎄 자기가 번 돈을 학교건설에 써달라고 바치고있단 말이네!》

흡족해하는 덕수를 보며 그만하면 분위기가 괜찮아진다고 여겼으나 재호는 왜서인지 선뜻 속심을 비칠수가 없었다.

《하긴 이젠 〈재산취득령〉에서 제외되기까지 했으니까. 사실 우리가 이번에 조국의 두리에 뭉치자는 구호를 들고 싸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재산취득령〉에서 제외될수 있었겠나?》

(《재산취득령?》)

막걸리사발을 손에 쥐려던 재호는 저도 모르게 주춤했다. 학생수나 조직성원들이 늘어난것은 그렇다 해도 《재산취득령》에서 제외된것을 동포들이 투쟁한 결과 이룩된 성과로 보는데는 뜻밖이였다.

재호의 견해에 의하면 《재산취득령》은 일본정부가 일본에 거주하고있는 외국인들이 기업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내놓은 악법으로서 이미부터 사회적물의를 일으켜오던 문제였다. 특히 그 법이 제정되자 일본공산당은 일본에 강제로 끌려온 재일조선인이나 재일중국인에게는 그 법을 적용시킬수 없다는것을 내외에 호소하는 한편 여러차례의 대중항의투쟁까지 조직했었다. 결과 내외여론과 인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친 일본당국은 부득불 재일조선인과 재일중국인들은 그 법에서 제외한다는것을 선포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동포들의 투쟁결과로 보다니?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기에 언제나 객관적인 현실을 무시하고 모든 문제를 자기 식으로만 해석하는 덕수의 습벽이 있다는것을 통감한 재호는 더는 비위를 맞출수 없다고 결심했다. 용기를 내여 상앞에 다가앉은 그는 곧 진지한 표정으로 덕수를 마주보았다.

《실은 내 오늘 형님한테 할말이 있어 왔습니더.》

《할말?》

덕수는 의문이 실린 눈으로 재호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 난 요즘 형님이 지내 외곬으로 나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단 말입니더.》

《외곬이라니?》

덕수의 미간에는 대뜸 주름이 잡히였으나 재호는 말을 이었다.

《전번 17차 중앙위원회에서 내놓은 보고도 좋고 구호도 좋아요. 그러나 내 생각엔 형님이 지나치게 한쪽방향으로 치우친단 말입니더. 조국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조국의 립장에서만 결론을 내리는데 재일동포들이야 까놓고 말해서 일본이라는 환경을 무시할수 없지 않습니껴. 학교문제도 그렇지요.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교육을 시켜야 하지만 일본이라는 립지조건을 무시할수야 없지 않나 말입니더. 아무래도 난 형님이 너무한것 같습니더.》

《…》

재호를 바라보는 덕수의 눈길은 새삼스러웠다. 그는 자기의 생각을 리해하지 못하거나 부정하는 사람을 마주할 때면 마치 생전 처음보는 사람을 대하는 그런 눈길로 바라보군 했다.

《나라는 해방됐다 해도 일본에서 사는 재일동포들은 아직 해방되지 못하지 않았습니껴. 여전히 일본당국의 탄압속에서 살아야 하니 말입니더. 그런 동포들이 자기의 처지를 바꾸기 위해서는 어째얍니껴? 반동들과 싸우는기지요. 그 길밖에 없단 말입니더. 그건 결국 일본을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나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일본공산당의 목적과 같은기지요. 때문에 동포들의 리해관계는 일본로동계급과 그 전위부대인 공산당의 투쟁목표와 같단 말입니더. 지금 일본공산당이 얼마나 승승장구하고있습니껴? 두석밖에 없던 국회의석을 서른다섯석으로 늘였습니더. 이것만 봐도 일본공산당이 얼매나 인민들의 지지를 받고있는가 하는걸 알수 있고 또 바로 그런 힘이 있어 동포들의 처지도 달라지는게 아입니껴. 형님은 이번 〈재산취득령〉에서 우리가 제외된기 동포들이 투쟁한 결과라고 하지만 난 그렇게 보는기 아입니더.》

《그럼 우리가 그 법에서 제외된게 일본공산당때문이라는건가?》

덕수의 어조는 물음이라기보다 노기가 어려있었다.

《그렇지 않구요!》

어찌나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지 덕수는 재호의 말이 대단히 대담한것인지 아니면 대단히 우둔한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천천히 창문쪽으로 시선을 돌린 덕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어째서 다른 사람도 아닌 재호가 아직도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을가 하는 괴로움으로 하여 속이 답답했다. 해방직후 조련을 조직할 때나 정치로선을 놓고 반동들과 치렬한 투쟁을 벌릴 때 얼마나 용감하게 싸운 재호였던가! 열정도 있고 투지도 있고 눈물 또한 많은 인정깊은 친구였다.

덕수도 재호가 왜 이렇게 되였는가 하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흔히 짓밟히고 억눌려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재호도 해방직후부터 활활 타번지기 시작한 혁명의 불길속에 휘말려들었다.

혁명을 위해서라면 모든것을 다 바칠 각오에 충만돼있는 그로서는 무언가 더 큰일, 열광적인 일에 자신을 내맡기고싶어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금이라고 할가? 아니, 팽팽하니 켕기운 활시위에 잠긴 화살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런 그의 열정이 더욱 무섭게 타오른것은 3. 1정치학원을 다니는 과정에서였다. 조련에서 자체의 간부양성기관으로 설립한 조련중앙학원이 있었지만 거기가 협소하고 답답하게 여겨진 그는 원철이가 세운 3. 1정치학원에 들어갔다. 일본공산당이 주관하는 그 학원은 당간부들이 직접 강의를 했고 주로는 국제공산주의운동과 세계혁명에 대해 학습했다. 당장 조련중앙학원으로 넘어오라고하면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아따, 중앙학원이면 어떻고 3.1학원이면 어떻습니껴. 혁명을 잘하자고 배우기야 마찬가진데… 형님! 이제야 나도 눈이 좀 트이는것 같습니더.》

결국 눈을 떴다는게 한쪽눈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람이 재호 하나만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련 17차 중앙위원회를 계기로 자기의 갈길이 어디며 어떻게 가야 한다는것을 알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아직도 《세계혁명》의 소용돌이속에 휘말려있었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오늘 보니 재호야말로 확실히 한쪽으로 기울어지고있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위험한 지경에 이를수도 있다는 위구까지 들었다.

불현듯 장군님을 뵈올 때 재호에 대해 말씀드리던 일이 생각났다.

사실 일본에 돌아오자마자 그 사연을 그대로 전달해주려고 했으나 다시 생각해보고 그러지 않았다. 그것은 달아오르기 잘하는 그가 그 벅찬 흥분을 도저히 이겨내지 못하리라는 걱정과 함께 그가 가까이 하고있는 원철이나 3. 1정치학원출신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때문이였다. 덕수는 그것으로 해서 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댔지만 오늘은 말하지 않은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인간적으로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재호와 이젠 그 어떤 보이지 않는 간격이 생기는것 같아 은근히 불안스럽기도 했다.

《이것 보라구, 재호!》

덕수는 그 간격이 더는 넓어지지 않게 해야겠다고 결심하며 그에게로 돌아앉았다.

《말해두지만 이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해. 이전과는 다르다는걸 알아야 한단 말이네. 전에는 자네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 그러나 이젠 달라졌어. 무엇이 달라졌나? 우리의 지향과 목표가 달라졌고 그에 따르는 투쟁방도가 달라졌지. 그전에는 일본에서 살기때문에 일본이라는 환경을 중시했지만 이젠 바로 그렇기때문에 더 조국의 두리에 뭉쳐야 한다는거야. 그리고 그전에는 동포들이 해방되지 않았다고 보았지만 이젠 해방된 민족, 공화국의 당당한 해외공민으로서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거야, 알겠나? 그래서 중총에서는 오늘…》

문득 오늘 의장단모임에서 결정한 문제가 떠올랐다. 그것은 멀지 않아 학교들에서 벌어지게 될 운동회를 그냥 운동회가 아니라 학생, 학부형, 일군들까지 합심해서 하는 대운동회로 하자는것이였다. 이제까지의 성과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아직도 재호처럼 기성관념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목표가 무엇이며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를 똑바로 인식시키기 위해서였다. 다른 의장들은 전국의 모든 학교들에서 일제히 그런 운동회를 조직할수 있겠는지 하는 우려를 표시했으나 덕수는 무조건 해야 한다고 내밀었다. 재호의 말을 듣느라니 그 결정이 옳았다는것을 새삼스레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운동회요?》

잠자코 있던 재호가 의아한 눈길로 덕수를 쳐다보았다.

《물론 운동회도 필요하겠지요. 그렇지만 난 우리 사람들끼리 모여 하는 그런기 바로 적들한테 탄압의 구실을 주게 되고 또 바로 그런기 민족적인 틀이라고 봅니더.》

재호의 표정도 어느새 단호한 빛이 어려있었다.

《이젠 우리가 하나의 사업을 하고 하나의 투쟁을 해도 일본공산당과 발을 맞추는기 중요하단 말입니더. 그런데 형님은 한사코 동포들을 딴데루 데리구 가자고만 하니…》

《뭐라구?》

재호를 마주보는 덕수의 눈에서 불꽃이 번쩍했다.

《자네 혹시 여기 오기 전에 누굴 만난건 아닌가?》

재호의 말이 원철이가 하던 말과 같아 따져물었으나 재호는 펄쩍 뛰였다.

《만나긴 누굴 만난단 말입니껴. 난 그저 형님이 걱정돼서 그러는겁니더. 이제 내 말이 맞지 않나 두고보시우. 형님도 내 말이 옳았다는걸 느낄 날이 있을겁니더.》

《…》

덕수는 안타까운 눈길로 재호를 바라보았다.

《재호! 자넨 내가 외곬으로 나간다지만 그건 내가 외곬으로 나가는게 아니라 바로 자네가 잘못된 눈으로 세상을 보기때문이야. 운동회만 놓고보아도 그렇지. 이제 우리가 하려는 운동회는 공화국두리에 뭉친 우리 동포들의 기상이 어떤가를 한번 마음껏 떨쳐보자는거네. 우리에게도 조국이 있다는걸 또 조국의 두리에 뭉친 우리의 힘이 어떻다는걸 보여주자는거란 말이네.》

《…》

재호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이제 무슨 말을 더 한대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것을 안 사람의 락심한 표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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