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2 장

3

 

중간파나 미조직동포들을 조직에 인입하기 위한 대책들을 토론한 덕수는 모임을 끝내자 곧 외투를 걸치고는 아래층으로 내려섰다.

요즘은 그저 매일 아니, 매 시각처럼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군 했다. 17차 중앙위원회가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동포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 전에는 미처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각양각색의 형태로 끊임없이 벌어지고있었다.

조련의 각급 조직들인 현본부와 지부들은 물론 민청, 녀맹, 교동 등 산하단체들에서는 일군들자신부터 회의정신으로 무장하기 위한 학습들을 벌리였고 모든 기관들과 학교의 교실마다에도 김일성장군님의 초상화를 정중히 모시고는 그밑에다 《장군님을 받들어 조국에 직결하자》는 구호를 써붙이였다. 그런가 하면 어떻게 하는것이 조국에 직결하는것이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토론들이 조직들과 단체들 지어는 동포부락에 설립되여있는 성인학교들에서까지 활발하게 벌어지고있었다.

동포들의 이런 비상한 열의를 앙양시키기 위해 중총에서는 수시로 일군들을 각 현들과 지부들에 파견하여 제기되는 문제들을 제때에 해결하거나 바로잡아나가군 했는데 이와 같은 적극적인 조치로 하여 동포들이 조직의 주위에 더욱 뭉쳐지고있는것은 말할것도 없고 중간파인 건청이나 지어는 《민단》산하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조련에 인입되기 시작했다.

방금 있은 모임도 동포들의 열의를 한층 고조시키는 동시에 중간파나 《민단》산하동포들을 대렬에 받아들이기 위한 대책들을 일군들과 토론했던것이다.

중총청사의 두툼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던 그는 저도 모르게 한자리에 굳어진채 빵빵거리며 분주히 오가는 자동차들과 쉼없이 이어지는 행인들의 물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원래 있던 쯔기시마의 낡은 목조건물로부터 도꾜역 야에스구찌의 으리으리한 철근 5층건물로 중총청사를 옮겨온지 얼마 되지 않은터여서 거리에 나설 때면 은연중 번잡한 소요에 어리둥절해지군 했다. 바로 여기서부터 도꾜에서도 첫째가는 번화가들인 간다, 아기하바라, 오까찌마찌, 우에노가 차례로 련결되고 그 반대쪽으로는 밤이면 푸른 등, 빨간 등들이 아롱다롱 물결치는 긴자, 유라꾸쬬의 환락가가 펼쳐지는것이였다. 이처럼 중총청사는 일본의 수도 도꾜, 도꾜에서도 제일 번화하고 화려한 거리 한복판에 여봐라 하듯이 떡 뻗치고 들어앉아있다.

2월치고는 례년에 없이 쌀쌀한 날씨였지만 덕수는 별로 추운것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금방 목욕을 하고난 사람처럼 온몸이 후끈후끈 달아오르면서 거뜬하고도 상쾌한 기분이기만 했다.

(모든 동포들을 조국의 두리에 뭉쳐세우는것, 바로 여기에 재일조선인운동의 생명이 있고 동포들의 운명이 달려있다!)

이런 생각에 젖어 걸음발을 다그치던 그는 사람들이 붐비는 네거리교차점에 이르자 잠시 머뭇거렸다. 어느쪽으로 가야 할지 망설여졌던것이다. 한쪽으로 가면 마루노우찌빌딩과 세무청이 있는 히비야공원쪽이고 그 맞은켠 길은 갖가지 상점들과 음식점, 유흥장들이 주런이 자리잡은 골목길이였다. 골목길쪽으로 접어든 그는 얼른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어느새 약속한 6시가 다 돼오고있었다.

그는 지금 박룡이를 만나기 위해 그가 기다리고있을 료정 백합을 찾아가는 길이였다.

사실 일본에 돌아오자부터 박룡이를 만나려고 했던 덕수였다. 영신이에 대해 하시던 장군님말씀을 상기할 때면 아무리 마주하고싶지 않은 박룡이라 해도 마주앉지 않을수가 없었다. 영신이를 찾기 위해 그는 벌써 각 현본부들에 지시를 주었을뿐아니라 현우와 서민이에게도 따로 과업을 주었다. 그런데 마침 오늘 아침 놀랍게도 박룡으로부터 먼저 조용히 만났으면 한다는 련락이 왔던것이다.

(그자가 어째서?)

처음엔 이런 의혹이 들면서 영신이가 다시 나타난게 아닐가 하고 생각해보았으나 아버지를 원망해서 집을 뛰쳐나간 그가 쉽사리 돌아올리도 만무하거니와 박룡이자신이 딸문제때문에 자기를 만나 잘 위인도 아니라는 짐작이 들어 고개를 저었다.

(영신이 문제가 아니라면, 그럼…)

불현듯 한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최근 박룡이가 자기자신이 처한 진퇴량난의 처지로 하여 부득불 《민단》단장직을 사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일본주재 남조선《대사》 정한경이 재일군정청공관장 리능섭을 비롯한 젊은 무정부주의자들을 내세워 박룡이를 몰아내기 위한 암약을 벌리던 끝에 끝내 주도권을 틀어쥐였다고 한다. 능구렝이같은 리승만이 일본에 주구를 파견하면서 자기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조치겠으나 그바람에 굴러온 돌에 밀려난 격이 된 박룡이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앙앙불락한다는것이였다. 론쟁을 하던 끝에 의자를 집어든 그가 상대방들을 짓뭉겨댄통에 갈비대가 부러지고 이마가 터진 사람도 있다고 했다.

틀림없이 자기가 처해있는 막다른 처지로부터 만나자는 련락을 보냈으리라는 확신이 들자 덕수는 어쩐지 이미부터 그에 대해 품고있던 반감과 함께 일종의 허구픈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 허구픈 생각은 감옥문을 나서던 그가 눈물이 그렁한 눈길로 하늘을 쳐다보며 《23년만에 보는 해빛일세.》 하고 울먹거리던 모습을 상기시키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제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몰골을 보고싶기도 했다. 같이 일하자고 손을 내민 자기며 한결같이 애국의 길로 나서길 바랐던 동포들의 기대를 배신한 그가 그 오욕의 구렁텅이에서 어떤 눈길로 자기를 쳐다보겠는지 바로 그걸 보고싶었다.

흔히 사람들을 대하는데 있어서 누구의 말을 듣고 서뿔리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오래도록 지켜보면서 신중하게 대하는것을 원칙으로 삼는 덕수였으나 대신 일단 자기가 나쁜 놈이라고 결론을 내리기만 하면 그에 대해서는 좀처럼 견해를 달리하지 못했다. 누구나 쉽사리 좋게 보기도 힘들어했지만 한번 나쁘게 본 사람을 다시 좋게 보기는 더 힘들어하는 그였다. 설사 그 당자가 어떤 인간이라는것을 사람들이 안다 해도 그는 그것을 그냥 묵과하거나 덮어두려 하지 않고 끝까지 따지고들어 그스스로가 만사람앞에서 《자, 난 바로 이렇게도 비렬한 놈이요.》 하고 실토케 하고야말았다. 말하자면 승부끝에 심판이 손을 들어주는데 만족을 느끼는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직접 제 입으로 《항복》하는 말을 하면서 무릎을 꿇고 자기앞에 엎드릴 때에야 비로소 승리를 확인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것이라고 할가, 박룡이를 만나러 가는 지금도 그는 그런 기분상태에 있었다.

물론 박룡이가 무엇때문에 만나자는지 알수 없었지만 오늘 만나는 기회에 다시는 조련을 반대하는 음모를 꾸미지 않겠다는 다짐만은 받아낼 잡도리였다. 더우기 조련 17차중앙위원회를 계기로 《민단》산하 동포들까지 조련에 인입되는 조건에서 오금을 박아놓는것이 필요했다. 많은 일군들이 그와 만날 필요가 없으며 위험한 일이라고 만류했으나 덕수는 도리여 이런 때일수록 주동적으로 반동들을 제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것이다.

다방이며 음식점이며 점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거리였지만 《백합》이라는 료정은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았다. 백합이 박룡의 애인이였던 이또 후미꼬가 일하던 곳이며 그가 누구를 만날 때면 어김없이 이 료정을 택하군 한다는것을 덕수도 모르지 않았다. 이미 작년에 교포녀성과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보았으나 아직도 후미꼬에 대한 미련이 어쩔수없이 그의 발길을 자주 백합에 닿게 하는것 같았다.

간판을 찾아보자니 할수없이 고개를 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지 않을수 없었는데 그는 그런 자기의 행동이 못마땅해서 킁 하고 코나발을 불었다. 식당은 물론이고 상점조차 제발로 찾아가본적이 없을뿐더러 그런것을 점잖지 못한 소행으로 치부하는 그여서 이런 거리에 들어서기만 해도 공연히 몸가짐이 부자연스러워지는것이였다.

《오네가이시마스, 좃도 욧데구다사이.》(부탁합니다, 잠간 들렸다 가세요.)

어떤 녀자의 목소리에 그쪽으로 돌아보니 몬뻬(일본민족옷)를 입은 한 중년녀인이 다방에 들어서는 키가 꺽두룩한 미군병사의 팔을 붙잡고있었다. 자기한테 들리라는 부탁이라면 응당 어느 정도 애교가 섞여야겠으나 그의 어조와 표정에는 애교라기보다 간절한 애원이 어려있을뿐이였다.

모가지가 성큼한데다 깨자루에 코를 들이박았다 꺼낸 놈처럼 유독 코잔등에만 주근깨가 다닥다닥한 미군병사는 녀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다방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스페샤르데 모떼나시마스, 스페샤르데…》(고급으로 봉사하겠습니다, 고급으로…)

다시금 병사의 팔에 매달려 최대의 봉사를 다하겠다고 하는 녀인의 얼굴에는 비록 나이는 들고 행색은 초라해도 아무렴 남자를 대하는데서야 날 당할 사람이 있을가보냐는듯 한 어줍은 미소가 비끼였다. 그러나 그 미소는 곧 습관되지 않은 일을 하는데 대한 어색한 실소, 보다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원망하는 서글픈 애소로 변했다.

한사코 사달라고 조르는 녀인과 맞갖잖아하는 미군병사사이에 흥정되고있는 상품은 바로 그 녀자자신이였다. 도저히 저로선 구미가 동하지 않는다는듯이 기다란 두팔을 쩍 벌려보인 병사는 그런 행동만으로는 상대가 리해하지 못하리라 여겼는지 곧 시큼털털한 개살구를 씹기라도 한 놈처럼 오만상을 찌프려보였다. 로골적인 랭소였다.

아무래도 자기라는 변변찮은 체화상품으로는 고객을 붙들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녀인은 곧 손을 들어 한곳을 가리켰다.

《쟈 아노 무스메닷다라 도?》(그럼 저 처녀라면 어때요?)

녀인이 가리키는 그곳에는 고구마며 대나무순이 가득 담긴 리야까(손달구지)를 지키고있는 한 처녀가 서있었다. 아직 열예닐곱살밖에 되여보이지 않는 애티나는 처녀였으나 자기가 흥정의 대상이 되였다는것을 눈치챘는지 공포가 어린 눈길로 할끔 이쪽을 바라보고는 얼른 고개를 숙이였다. 분명 녀인의 딸이리라. 모녀가 리야까행상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생계를 이을수가 없어 몸까지 팔고있는것이 틀림없었다.

처녀를 바라보던 병사는 대뜸 주둥이를 오무라붙이고 긴 휘파람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주먹안에서 딱 하는 소리를 내는 동시에 그 주근깨가 다닥다닥한 코를 당장 얼굴에서 떼내기라도 할것처럼 마구 쥐여뜯기 시작했다. 이제야말로 개살구가 아니라 달콤한 앵두를 입에 넣게 되였다는 식이였다.

덕수는 절로 한숨이 터졌다. 점점 한심한 꼴로 변해가는 일본이였다. 한때 《아시아의 맹주》라고 호통을 치던 일본이 지금은 해방군의 탈을 쓰고 상륙한 미군에 의해 만신창이 되고있었다. 그중에도 일본녀성을 상대로 하는 미군의 륜락행위는 짐승도 낯을 붉힐 지경이였다. 놈들은 몇푼 안되는 동전이나 휴대용야전음식들을 미끼로 기혼녀건 미혼녀건 닥치는대로 겁탈했고 그것을 마치 저들의 응당한 권리나 특전으로 여기였다.

사실 요즘은 누구나 하루 세끼는커녕 한끼도 제대로 에우지 못하는 형편이기는 했다. 오죽하면 굶어죽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이 나오겠는가. 풀뿌리로 연명해가던 일가족이 독초인줄 모르고 먹었다가 몰살되였다는 소식이 매일처럼 신문에 보도되는가 하면 며칠전에는 쌀을 탈 목적으로 산아, 육아들을 양육한다는 광고를 낸 한 부부가 아이들을 맡아가지고는 쌀만 타가지고 달아나는통에 수십명의 아이들이 자물쇠가 걸린 방안에서 굶어죽은 실례도 있었다.

이런 환경속에서 사는 동포들이여서 할수없이 넝마나 고철을 줏거나 세대주가 없는 집에서는 부득불 술이라도 고아 팔지 않을수 없었는데 놈들은 이렇게 겨우 호구지책하는 동포들을 야미장사로 몰아 가혹하게 탄압했다. 《조선사람이 야미장사해서 새 화페를 몽땅 끌어들인다.》는 악선전까지 해댔다. 놈들의 악선전은 바로 저들이 새로 내놓은 《외국인재산취득에 관한 정령》에 동포들을 얽어매여 사소한 기업활동도 못하게 하자는 음흉한 목적외에 아무것도 아니였다.

(안된다! 네놈들이 아무리 발악해도 그 법에 얽매일 우리가 아니다. 이젠 너희들도 우리들이 장군님품에 안긴 존엄있는 해외공민이라는것을 똑똑히 알게 될게다!)

마침내 《백합》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웠다. 얼핏 보기에도 제법 화려한 료정이였다. 커다란 판유리로 된 현관이며 문앞에 서서 들어서는 손님들에게 깍듯이 허리를 굽히는 멋지게 차려입은 문지기부터가 벌써 다른 료정과는 달랐다. 열려진 문사이로 들여다보이는 아담한 내정이며 그 내정우로 얼기설기 걸어놓은 빨갛고 파랗게 반짝이는 축등들까지도 꽤 요란한 인상을 자아냈다.

그러나 정작 안으로 들어서니 그렇지 못했다. 요즘 어느 식당이나 그런것처럼 백합 역시 속보다는 겉치장에 더 품을 들였다는게 헨둥했다. 금붕어나 잉어들이 헤염치고있을줄 알았던 내정의 련못에는 물고기대신 빈 담배곽과 꽁초들이 둥둥 떠있고 칸칸이 따로 들게 되여있는 별실들의 미닫이와 문발들도 각양각색의 허름한것이였다. 그래도 드나드는 손님들을 보면 남자들은 대개가 요새 류행되기 시작한 리젠트머리였고 녀자들 역시 잘룩한 상의에 발목까지 내리덮여 걸음을 옮길적마다 구두코가 쓸리군 하는 긴치마들이였다. 들려오는 축음기의 노래소리도 어딜 가나 듣게 되는 《이-즈노 야마-야마》(이즈의 산과 산)하는 《유노마찌에레지》였다.

《어디로 안내해드릴가요? 혼자 오셨는지 아니면 동행한분이 계시는지요?》

마치 설비는 다소 부족점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부족을 친절한 봉사로 보충하려는듯이 또 얼마든지 보충하여 누구에게나 만족을 주고있다는듯이 기모노를 입은 마담이 함뿍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가섰다. 그러나 덕수는 대답대신 신발 하나가 놓여있는 방문을 가리켜보이고는 그리로 향했다.

그는 일본사람 특히 녀성들을 마주할 때면 대체로 말을 하지 않고 행동만 하군 했는데 그것은 대답을 하자면 부득불 하기 싫은 일본말을 해야 한다는데도 있었으나 그들의 지나친 친절이 비위에 맞지 않았기때문이였다. 별치 않은 일에도 공연히 몇번이고 갑삭갑삭 허리를 굽히는 일본녀인들을 마주할 때면 어색해지다못해 어떤 땐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덕수의 취미와 기호가 어떻든 자기는 자신의 본분을 잘 알고있으며 또 그 본분을 성실히 리행하는 거기에서 남다른 보람을 느끼고있는듯 마담은 여전히 미소가 남실거리는 표정을 지은채 아기작아기작 앞질러 걸어갔다. 그리고는 방금 덕수가 가리킨 방문앞 마루우에 올라가 정히 무릎을 꿇고는 《손님 오셨습니다.》하고 방안에 알리면서 조용히 미닫이문을 열었다.

열려진 문사이로는 곧 한사람의 모습, 두손에 차잔을 움켜쥐고 식탁앞에 부처처럼 앉아있는 박룡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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