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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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은 파도처럼 끓어올랐다.

조련 제17차 중앙위원회에 참가하고있는 중앙위원들과 각 현 대표들 그리고 수많은 방청들은 덕수의 보고가 끝나자마자 한사람같이 자리를 차고일어나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내였다. 입나팔을 만들어 뭐라고 웨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손을 번쩍 쳐들어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나도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덕수는 어리둥절해지고말았다. 이름할수 없는 충동과 격정으로 가슴이 터질듯 했다.

사실 오늘 회의를 위해 줄곧 밤을 밝히다싶이해온 덕수였다. 눈을 붙이는 경우에도 사무실책상에 코를 박고 잠간 쪽잠을 자는데 지나지 않았으나 지치거나 피곤하기는커녕 저로서도 이상하리만치 온몸에 왕성한 기운이 뻗치군 했다.

장군님사상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하며 과업들에 대한 대책은 무엇부터 세워야 하는가를 일군들과 수십번도 더 토론했다. 보고뿐아니라 회의장이며 회의형식까지도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하자는데 합의를 보았던것이다.

회의장정면에 세계혁명지도자들 초상화와 《전세계 무산자들은 단결하라!》는 구호를 붙이던 전례를 깨고 장군님초상화만 정중히 모시고는 그밑에다 《공화국에 직결하자!》는 새로운 구호를 내걸었다.

회의장이 달라진데 놀라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덕수는 확신에 넘쳐 말했다.

《이제부터는 모든 회의장을 다 이렇게 꾸립시다. 우리들이 언제나 김일성장군님만을 우러르며 따른다는 원칙에서도 그렇고 조국의 두리에 뭉치는것이 우리의 생명선이라는것을 강조하는 의미에서도 이 구호를 걸어야 하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신념이고 의지란 말이요.》

모든 준비들이 그만하면 순조로왔으나 하나만은 잘 풀리지 않았다. 그것은 보고를 어떻게 서술해야 장군님말씀을 사실대로 정확하게 전달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의장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덕수네가 조국에 가서 직접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았다는걸 모르고있을뿐아니라 몰라야 한다는데 있었다. 덕수는 장군님의 말씀을 어떻게든 그대로 전달하고싶었으나 그렇게 하면 조국에 갔다온 사실이 드러날수 있었다. 요즘 덕수에게 있어서 제일 안타까운 일은 장군님을 직접 만나뵈온 그 꿈같은 사실에 대해 누구에게도 지어는 가족들한테조차 비칠수가 없는것이였다. 동포들이 자기가 조국에 가서 장군님으로부터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받았다는것과 그이께서 한시도 동포들을 잊지 못해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놀라고 기뻐하랴만 그것을 그대로 전할수 없는것이 여간만 속이 타지 않았다. 몸살이 날만치 고통스럽기도 했다. 마치 꿀먹은 벙어리가 아니면서도 벙어리시늉을 해야 한다는것이 무엇보다 괴로운노릇이였다.

《이렇게 합시다.》

나이는 있지만 묘한 궁리를 곧잘 해내군 하는 신의장이 두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어디까지나 보고에 장군님말씀이 그대로 전달되여야 하는만큼 장군님께서 우리들에게 편지를 보내주신것으로 하잔 말입니다.》

모두들 그게 비슷하다고 고개를 끄덕이였으나 덕수는 반대했다.

《그럼 모두들 당장 그 편지를 보자고 달라붙을판인데 그땐 어떻게 하오?》

《그거야 어려울게 뭐요? 장군님교시를 정중히 적어보여주면 될게 아니요.》

《그게 편지야 아니지 않소. 그리고 력사적인 사실이 외곡돼서도 안되는거고.》

《내 생각엔…》

턱을 슬슬 쓸어만지던 윤의장이 생각깊은 어조로 말했다.

《중요한건 보고에 장군님말씀이 정확히 전달되게 하면서도 그 말씀을 장군님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는감은 없어야 하는건데 그러자면 다른 방도는 없소! 그건 바로 한의장한테 달렸소. 보고를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데 달려있단 말이요. 한의장이야 원래 글재주가 있지 않소. 그걸 이번 기회에 한번 시위해보구려. 말하자면 조국에 가진 않았지만 장군님을 만나뵈온것처럼 하면서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무런 의혹도 품지 않게 말이요.》

《아니, 그거야 황소를 타고 바늘구멍을 빠지라는 소리가 아니요.…》

덕수의 대꾸에 의장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그때부터 덕수는 책상에 마주앉아 끙끙 갑자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소를 타고 바늘구멍으로 빠지는것만치나 고된 신고였다. 썼다가는 지우고 다시 썼다가는 또 고치고…

보고는 앞으로의 재일조선인운동은 철저히 김일성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진행된다는 원칙, 다시말해 재일조선인운동과 재일동포들의 령도자는 오직 김일성장군님 한분이라는것을 밝힌 력사적인 선언이여야 하는 동시에 모든 동포들이 《공화국에 직결하자!》는 구호아래 조국의 두리에 튼튼히 뭉칠 때만이 자기 운명을 해결할수 있다는 새로운 리정표의 제시로 되여야 했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조국에 복무하는 훌륭한 민족간부로 키워야 한다는 강령적인 지침이 힘있게 강조되여야만 했다.

보고초안을 읽어본 의장들은 하나같이 눈이 둥그래서 정말 글재주가 보통이 아니라며 감탄해마지않았다. 그러나 덕수는 불안했다.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 재일조선인운동에 대한 심오한 사상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것 같아서였고 지어는 도대체 이런 새로운 로선이 어떻게 불시에 마련되였는가 하는 의혹을 자아내지 않을가 하는 위구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공연한것이였다. 덕수의 보고가 끝나자마자 회관강당에 꽉 들어찬 사람들이 너도나도 흥분과 감격을 감추지 못했던것이다.

덕수는 회의참가자들모두가 장군님께서 밝혀주신 재일조선인운동의 새로운 방향에 완전히 감동되고 매혹되고말았다는것을 깨달을수 있었다. 그에게는 이들의 모습이 단순한 흥분이나 격동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기쁨과 환희만도 아니였다. 그것은 바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하는 자기들을 따뜻이 한품에 안아주실뿐아니라 휘황한 앞길을 밝혀주시고 손잡아 이끌어주시는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고마움의 표시였으며 풍파사나운 이역땅에서도 그이를 영원히 받들어모시려는 불같은 마음과 마음들의 폭발이였다.

갑자기 회의장 맨 앞줄에 앉아있던 거대한 체구의 사나이가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중총조직국장 김훈이였다. 워낙 어떤 감정도 숨길줄 모를뿐더러 숨기기 싫어하는 사람이였으나 지금은 언권을 청하지 않은채 일어섰다는것쯤은 안중에도 없는것 같았다.

《이젠 힘이 생깁니다. 눈앞이 환히 트인단 말입니다. 이제야말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하며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를 똑똑히 알게 된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리해할수 없는건 말입니다.》

청중들쪽을 돌아본 그는 장내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어째서 여태껏 그렇게도 명백한 우리자신의 앞길을 몰라 좌왕우왕했는가 하는겁니다. 그리고 더 신기한건 일본에 와보신적도 없는 장군님께서 어쩌면 그리도 우리의 실정을 환히 꿰뚫어보시고 이렇게도 정확한 길을 밝혀주시는가 하는겁니다. 혹시 장군님께서 백두산에서 싸우실 때처럼 지금도 축지법을 쓰시는게 아닌지요?》

여기저기서 웃음이 일었다. 박수로 호응하는 사람도 있었다.

《글쎄요.》

덕수도 웃음이 어린 어조로 대꾸했다.

《장군님께서 축지법을 쓰시는지는 몰라도 일본에 있는 우리들 사정을 구체적으로 알고계시는것만은 사실인것 같습니다. 이젠 우리의 〈해방신문〉이나 〈건설통신〉이 조국에도 가니까요. 그러나 내 생각엔 그보다 중요한건 마음때문이라고 봅니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도 지척이고 마음이 천리면 지척도 천리라는 말처럼 비록 몸은 천리밖에 계시지만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가까이에 있는 조국인민들보다 더한 심정으로 우리들을 보살피고계신다는것입니다.》

덕수가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자 만장에는 다시금 우렁찬 박수가 터져올랐다.

회의진행을 맡은 신의장이 다음회순으로 넘어갈 차비를 하는데 회의장 중간쯤에서 한 젊은이가 손을 번쩍 쳐들며 소리쳤다.

《한가지 제기해도 되겠습니까?》

(제기?)

덕수는 은연중 옆에 있는 의장들을 돌아보았다. 그들 역시 긴장한 눈길로 덕수를 마주보았다.

넙적한 이마와 삽날처럼 뾰족한 턱으로 하여 얼굴전체가 세모꼴로 보이는 퍼그나 날파람있게 생긴 청년이였다. 어딘가 낯익은 모습이여서 덕수는 그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세모진 얼굴 한복판에 류달리 우뚝 솟은 매부리코를 보는 순간 덕수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저게 태길이가 아닌가! 최태길!)

한가지 추억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해방된 그해 겨울, 어느날 덕수는 본부관하 동포청년들이 파출소를 습격했다는 련락을 받고 부랴부랴 현지로 달려갔었다.

일제의 야만적인 폭압에 너무나도 짓밟히고 억눌리던 동포들이여서 해방이 되자마자 곳곳에서 종종 그런 소동들이 일어나긴 했으나 파출소를 습격했다는것은 듣느니 처음이였다.

현지의 파출소에 이른 덕수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습격을 받았다는 파출소가 유리 한장 깨지기는커녕 제복을 입은 경관들까지 다 제자리에 있었기때문이였다. 무슨 착각이 생긴게 아닌가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단단한 몸집에 얼굴이 세모지게 생긴 청년이 제꺽 앞으로 나서며 괴상한 경례, 주먹을 들어 자기의 커다란 코옆에다 갖다붙이는것이였다. 그의 행동은 마치 자기 주먹과 코가 어느쪽이 큰가를 맞혀보라는듯 했다. 처음 보는 경례도 경례였지만 그의 입에서 튀여나온 말은 더욱 해괴했다.

《로트 프론트!》

(이건 또 뭐야?)

어리둥절해있는데 한걸음 다가선 그가 씩 웃어보이고는 무슨 비밀이라도 털어놓듯이 속삭였다.

《의장동지, 알아두십시오. 〈로트 프론트〉라는건 국제공산주의자들의 인사말입니다.》

그러면서 한걸음 뒤로 물러선 그는 이번에는 아주 정식으로 보고하는것이였다.

《의장동지! 저희들은 오늘에야 일제때부터 우리 동포들을 특별히 못살게 굴던 이놈의 시모가와파출소를 점거했습니다.》

그러자 여태껏 무슨 일인가 해서 엉거주춤해있던 《경찰》들이 일제히 발을 모두며 차렷자세를 취하는것이였다. 그제야 덕수는 모든 사정을 짐작할수 있었다. 습격이 아니라 말그대로 벌써 파출소를 점거했을뿐아니라 경찰들로부터 제복까지 뺏아입고있었던것이다.

《누가 파출소를 점거하랬나? 누가?!》

덕수는 대뜸 《서장》을 쏘아보며 따지고들었다.

《누가 지시한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의장동지! 이걸 보십시오.》

그의 태도에서 한번 해볼만 한 일을 한 자기들에게 칭찬은 아니라 해도 어째서 성을 내느냐 하는 의혹과 함께 립장이 난처하게 된 저들의 처지를 어물쩍 굼때보려 한다는것을 눈치챈 덕수는 다짜고짜 구석에 세워놓은 격검채를 들고나섰다. 그러자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일시에 와- 하고 뺑소니를 쳤다. 후에 알고보니 그때의 《서장》이 바로 그곳 민청지부위원장이던 최태길이였다.

《그래, 제기할 문제라는게 뭐요?》

덕수는 그가 혹시 또 어떤 엉뚱한짓을 하면 어쩌나 하는 위구를 품은채 물었다.

《이건 저 하나의 의견이 아니라 여기 온 민청대표들의 한결같은 요구라는것을 알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요구?)

덕수는 더욱 불안해졌다.

《다름이 아니라 이젠 중총뿐아니라 우리 민청본부나 지부들에도 장군님초상화를 모시게 해달라는것입니다. 본부나 지부는 물론이고 학교의 매 교실마다에도 초상화를 모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소-》

《왜 학교나 기관들뿐입니까. 매 가정들에도 초상화를 모셔야지요!》

여기저기에서 너도나도 호응해나섰다.

《좋습니다.》

덕수는 자신있게 소리쳤다.

《해결해드리겠습니다. 모든 동포들이 이제부턴 장군님을 우러러모시고 조국을 위해 싸워나갈 하나의 결심인데 초상화를 왜 해결해드리지 못하겠습니까. 방금 최태길대표의 제기를 긴급제의로 받아들이고 전체 대표들이 돌아갈 때 기관들은 물론 매 집들에도 초상화를 모실수 있게 조직사업을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회의장은 또다시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로 진감했다. 회의는 이제부터였으나 벌써 성과적으로 끝난것을 축하하는듯 한 우렁찬 박수소리가 만장에 파도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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