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2 장

1

 

도꾜의 상공에는 한겨울의 차디찬 기운이 퍼렇게 엉켜있었다. 성에가 불린듯 허옇게 식은 해가 허공에 외로이 떠있었다. 그 싸늘한 하늘아래 펼쳐져있는 인간세상 역시 살얼음에 싸인듯 온통 랭기를 뿜었다.

그러나 덕수의 안해 수임은 추운줄도 힘든줄도 몰랐다. 도리여 요즘은 이래저래 기쁜일만 겹쳐져 정신이 다 얼떨떨할 지경이였다.

그중에서도 여태껏 품을 놓고 찾아다니며 애를 써도 구할수 없었던 일자리를 하나 얻은것이 무엇보다 기쁜 일이였다. 그 일이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다마가와강바닥에서 오물을 파내는것인데 일은 다소 고되였지만 정한 시간이 없이 아무때나 일할수 있는데다가 파낸 오물량에 따라 일당으로 삯돈을 받게 돼있는것이였다.

허벅다리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고 고무앞치마를 두른채 강바닥에 내려가 감탕이며 썩은 넝마쪼각들을 삽으로 퍼낼 때면 역한 악취로 하여 머리가 휘휘 내둘리고 눈알이 다 아렸으나 그런 오물일지라도 많기만 했으면싶었다. 그래서 오물이 많은 자리를 골라잡기 위해 언제나 날이 밝기만 하면 강으로 나가군 했다. 다만 걱정스러운건 유리나 사기쪼각을 밟아 장화가 꿰지지나 않을가 하는것과 남편이 자기가 하는 일을 알면 어쩔가 하는것이였다. 굶는 한이 있어도 일본사람들한테는 절대로 허리를 굽히지 말라는 남편이여서 이웃들도 눈치채지 못하게 시작한 일이였다.

그러나 그 직업이 생긴것으로 하여 늘 때식때면 상우에 노란 다꾸앙쪼각만 댕그라니 올려놓군 하던것이 가끔 생선토막이라도 곁들일수 있게 된데다가 이따금 아들 호일이에게 솜사탕도 들려줄수 있게 된것 또한 이를데 없는 기쁨이였다. 아직 철도 없는 다섯살짜리가 집에 돌아오지 않아 찾아나가보면 늘 윙윙 돌아가며 뭉실뭉실한 뭉치를 만들어내는 솜사탕기계옆에 붙어있군 했는데 그때면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그런 기쁨도 기쁨이였지만 요즘 그를 더 즐겁게 하는것은 얼마전부터 남편의 기분이 전에없이 좋아진것이였다. 어떤 경우에도 속생각을 내비치지 않을뿐더러 설사 기쁜 일이 있을 때조차 그것을 나타내지 않는 남편이여서 늘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고 무슨 말을 물어볼 때도 눈치부터 살피군 해야 했으나 요즘에는 그런 눈치를 보기는커녕 도리여 남편의 흡족한 기분에 저절로 휘말려들게 되였다. 사람이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질수 있으랴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야 비로소 남편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것을 알게 되는것 같아 부지중 웃음이 새기도 했다.

(같이 살아봐야 알게 되는게 남편이라더니…)

사실 담도 크게 남편될 사람의 이름 석자와 사진 한장만 가지고 현해탄을 건너 일본까지 와 살림을 꾸린지 6년, 그새 아들딸 하나씩 낳아기르기는 하면서도 어느 하루 맘편히 지낸 날이 없었다. 한집에서 밤낮 코를 맞대고 사는 남편이 그렇게도 어렵고 두려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남들은 시집살이가 시부모들때문에 고되고 힘들다고 하지만 수임은 남편과 단둘이 살면서도 말 한마디조차 마음대로 할수 없었다.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이국땅에서 무슨 운동을 하다나니 장가철을 놓쳤는데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 고정한 사람이니 그리 알고 마음놓고 심신을 의탁하라는 말만 믿고 덕수를 찾아왔는데 처음 그와 만나는 날 웃방에 있는 그를 몰래 문틈으로 훔쳐보고는 그만 가슴이 철렁했다. 아무리 장가철을 놓쳤다기로서니 저렇게도 나이든 사람일줄이야? 알아보니 자기 나이 두곱이나 된다지 않는가! 그런데다 생기기는 왜 그리도 무뚝뚝한지 눈앞이 캄캄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상대가 두렵고 눈앞이 새까매도 이미 고향에서 부모들끼리 혼약을 맺은터여서 어쩔수 없었다.

《나라가 해방되기 전에는 장갈 안 가려고 했소. 더우기 이 왜놈의 땅에서 가정을 꾸린대야 무슨 보람이 있겠소. 하지만 인연이니 할수 없지. 좋든 싫든 같이 살아봅시다. 그런데 한가지 알아야 할건 나하고 살자면 남달리 많은 고생을 겪어야 한다는거요.》

남편한테서 처음 들은 말이였다.

(가정을 꾸린대야 무슨 보람이 있다니? 인연이니 할수 없다는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러니 얼마간 살아보고 좋으면 살고 싫으면 헤여지자는건가? 아이구, 기막혀라.…)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수임은 웃음이 터지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천상 말이라고는 하지 않을 미륵같은 사람이 자기를 마주보지도 않고 비스듬히 돌아앉아있는 모습도 모습이였지만 놀랍게도 자기를 보고 예입을 쓰는것이였다. 그래도 남편은 자기를 안해로 여기는것 같았으나 저로서는 도저히 그가 남편처럼 느껴지질 않았다. 한데 이상한것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면서도 왜서인지 싫지는 않았다.

해방되는 해에 첫아들 호일이를 낳았다.

남들은 해방이 되였다고 서로마다 앞을 다투어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남편만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이 오히려 해방전보다 더 바삐 지냈다. 늘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가 하면 어떤 땐 며칠씩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불쑥 집에 나타나 갑자기 도꾜로 이사를 가자고 했다. 다른 직무, 중총에서 더 무거운 직무를 맡게 되였다는것이다.

《우린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껴?》

이사짐을 챙기며 수임은 조심스레 물었다. 언제부터 묻고싶던 말이였으나 남편의 기색을 살피느라고 줄곧 미루어오던 물음이였던것이다.

《고향에? 가야지! 그러나 이 일본땅에 우리 동포들이 있는 한 내가 먼저 가진 못하오. 왜냐하면 그건 얼마전 김일성장군님께서 재일동포들을 걱정하시여 편지를 보내주시였는데 그 가르치심대로 동포들을 보호하고 이끌기도 해야 하기때문이요.》

《그 일을 일이 아버지가 해얍니껴?》

남편의 기분이 누그러져있다는것을 안 수임은 버릇처럼 아들이름을 생략하여 부르며 용감성을 발휘하여 재차 물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그 일을 일이 아부지한테 맡기셨나 말입니더.》

《그렇소. 내한테 맡기신거나 다름없소! 그래서 도꾜로 이사를 가는거요.》

얼마나 자신있게 확정적으로 대답하는지 수임은 그 말을 진담으로 믿어야 할지 아니면 롱으로 치부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워낙 롱이라고는 하지 않는 남편이라는것을 알고있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그 말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놀라운 사실이 아닐수 없었다.

그전까지는 나이차이와 함께 과묵한 성격으로 해서 대하기 어렵던 남편이였다면 이때부터는 그런데서 오는 어려움이라기보다 남편이 하고있는 일의 중요성과 바로 그런 일을 하는 남편이라는데서 오는 존경으로 하여 더 쉽사리 대할수가 없었다.

확실히 그때부터 수임은 남편이 여느 사람과 다르다는것을, 그것이 성격이나 취미때문이 아니라 가슴속에 품고있는 지향이 다르기때문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그때에야 그는 어째서 밖에 나가서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설도 하고 강연도 하는 사람이 집에 들어와서는 한마디의 말도 없는지, 또 흔히 늦게 본 자식일수록 사랑이 간다고 하지만 마흔이 되여 본 호일이한테조차 왜 그다지 잔정을 보이지 않는지 그리고 어째서 끼니때마다 까만 보리밥에 무우짠지 하나밖에 없는 상을 차려놓지만 타내거나 군소리 한마디 없는지 리해할수가 있었다. 집에 돌아와 말이 없는것도, 아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지 않거나 음식을 탓하지 않는것도 다 그런데 신경을 쓰기보다 몇배 더 중요하고도 절박한 일, 자기로서는 미처 짐작할수 없는 일이지만 남편에게는 한시도 마음놓을수 없고 미뤄서는 안될 일로 하여 늘 비상한 정신적인 긴장속에 싸여있지 않으면 안되기때문이였다.

남편이 하는 일을 돕지는 못할망정 리해라도 해야 하는것이 안해의 도리라고 여긴 그는 부족하나마 있는 성의를 다하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밤늦게까지 글을 쓸 때에는 방해가 되지 않게 아이를 업고 밖에 나가있는가 하면 끼니때에도 없는 살림살이긴 했지만 찬거리에 신경을 쓰군 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리해되지 않는것이 있었다. 그것만은 아무리 따져봐도 납득이 가지 않았는데 그것은 남편이 월급이라고는 단돈 한잎도 집에 들여놓지 않는것이였다. 다른 직책이라면 몰라도 이젠 조련사업을 주관하는 의장이 아닌가! 물론 책임자의 위치에서 돈 쓸일이 남보다 많으리라는것은 짐작이 되지만 그래도 다문 얼마라도 주어야 먹을 쌀을 살수 있을게 아닌가! 중총에서 일하게 된 다음부터 속으로 품어온 의문이였으나 별찮은 말을 물어보자고 해도 며칠씩 별러야 하는 수임으로서는 도저히 돈에 대한 말은 입밖에 꺼낼 용기가 없었다. 그 소리를 하기 바쁘게 무슨 벼락같은 소리라도 지르지 않겠는지 무섭기도 했었다.

(참자! 바쁜데가 있어 썼을테지. 그래도 다음달은 다문 얼마라도 줄거야.)

하지만 다음달도 그 다음달도 종무소식이였다. 그는 얼굴이 달아오르는걸 참아가며 이웃에 사는 동포네 집에 돈을 꾸러 가군 했다. 가게방앞을 지나던 호일이가 사탕이나 라무네(음료의 일종)를 사내라고 조를 때면 저도 모르게 남편이 원망스러워지기도 했다. 집안사정이 어떻다는걸 모르지 않으면서 또 그런 집안을 부둥켜안고 자기 혼자서 얼마나 아득바득 애쓰는가 하는걸 모르지 않으면서 돈을 주기는커녕 수고한다는 말조차 한마디 없는 남편이 무정하다못해 어떤 땐 야속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자기하고 살면 고생이 많다고 한 말이 바로 이때문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 솟구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하루 이다바시에 사는 경실이가 왔을 때 수임은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물었다. 경실은 중앙학부형회 회장을 하는 윤덕곤의 처로서 아련한 생김새와는 달리 성격이 무척 활달하고 우스개소리도 곧잘하는 녀자였다. 부부가 다 함경북도 성진에 고향을 두었기때문에 그런지 남달리 금슬이 좋았고 그래서인지 나이는 덕수와 같았으나 덕곤에게는 벌써 자식들이 자그만치 다섯이나 되였다.

《경실언니! 회장아주버님 전달월급을 얼마나 줍디까? 우린 아무리 쪼개쓰느라고 하는데도 글쎄…》

《무시기 월그비?》

눈이 동그래진 경실은 한동안 수임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래, 그 집 의장님은 월그비 아이줍데? 그러이께 그놈의 령감이 요꼬나가시(딴데로 빼돌리는것.)하는고마. 이봅세 동생, 눈단다이 밝히라이. 남자들 소가지는 구렝이 한가지라이.》

이렇게 엮어대던 경실은 갑자기 까르르하고 웃어댔다. 그리고는 수임의 손목을 붙잡고 차근차근 일러주는데 조련일군들인 경우에는 지부나 본부는 물론 중총 의장이라 해도 월급이 없다는것,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것이라는것, 돈을 받지 않고도 동포들과 조국을 위해 일하기때문에 그들이 바로 애국자들이라는것을 제법 류창하게 엮어댔다.

《지금 우리 일군들이 어렵게 살긴 하지만 밖에 나가서는 얼매나 땅땅 큰소리를 치오. 왜놈들이 다 벌벌 떨지. 옛날 같으믄사 어림도 없는 일이지비. 이게 다 뉘덕이겠수? 장군님덕이구 공화국덕이지. 그리고 그런 남편을 멕여살리는 우리 녀편네들 덕도 쬐꼼은 있는기 아이겠수. 난 그저 그 자랑 하나로 살아간다이. 그렇지만 한가지만은 주의합세. 그건 령감이 집에 들어와서까지 큰소리치게 해서는 아이된다는기지비, 알았지야?》

그날 저녁 수임은 여태껏 같이 살면서도 그런 남편이라는것을 리해하지 못하고 속으로 원망하기까지 했던 자신의 매련없는 행동이 죄스러워 견딜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잘못을 빌리라 맘먹은 그는 우선 남편이 좋아하는 고등어 한토막을 구워 상우에 올려놓았다. 그렇게라도 해야 매듭진 마음이 다소나마 풀어질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자기의 마음은 알지도 못하고 남편은 상에 마주앉기 바쁘게 숟갈로 밥을 퍼서 입에 넣는것이였다.

《일이 아부지요, 욕마이 하이소. 지가 잘못했십니더.》

저도 모르게 튀여나온 말이였으나 목소리는 떨리였다.

《무슨 소리요?》

입이 불룩하게 밥을 문채 의아스런 눈길로 이쪽을 돌아보는 남편, 그새 밤패워 일하느라고 두눈이 때꾼해진 남편을 보는 순간 수임은 눈굽이 저려들어 견딜수 없었다. 차마 그런 남편을 마주볼수가 없었던 수임은 얼른 부엌으로 내려서고말았다.

그때부터 수임은 또다시 새로운 눈으로 남편을 대하지 않을수 없었다. 다만 동포들을 위해 투신하고있는 남편을 리해하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남편이 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도와야 한다는 안해로서의 의무감이 작용했던것이다. 자기로서는 별로 도울 일도 또 도울수도 없다는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잠자코 있을수만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미군정과 일본당국의 탄압책동을 반대하는 시위며 동포들의 권익을 위한 투쟁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그는 비로소 자기가 사는 일본이라는 사회에 대해, 거기서 사는 재일동포들이 어느 길로 어떻게 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새삼스레 많은것을 깨달았던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불안도 체험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매일처럼 벌어지는 치렬한 투쟁끝에 수많은 일군들과 동포들이 검거투옥되는가 하면 지어는 남조선으로 추방되기까지 하는 살벌한 환경, 그 위험한 마당 한복판에 서있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기때문이였다. 숱한 항의투쟁과 시위집회를 조직할뿐아니라 매번 그 선두에서 동포들을 이끄는 남편을 볼 때면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수가 없었다. 해방전 일본에 건너와 갓 살림을 꾸렸을 때 남편의 뒤를 따르던 형사들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면서 오싹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는 호일이를 품에 꼭 껴안고는 남편이 제발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온밤을 뜬눈으로 밝힌적인들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작년말, 갑자기 온천에 간다면서 떠난 남편이 열흘이 되고 스무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을 땐 그만 가슴이 덜컹했다. 틀림없이 무슨 변이 있지 않고야 이렇게까지 소식이 없을리 만무하다고 여겼던것이다. 맏딸 음전이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누구를 찾아가 물어볼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 경실이와 함께 찾아온 윤덕곤이 하는 말이 이제 며칠 있으면 설인데 그때까진 남편이 꼭 돌아올것이라고 하면서 남편이 보내서 가져왔다는 미역꾸레미를 내놓았다. 수임은 남편이 그런 부탁을 할리 없다는것을 잘 알았으나 다심한 덕곤이부부가 고마왔으며 무엇보다 남편이 무사하다는 소식에 숨이 나갔다.

정말 남편은 정월초에 돌아왔다. 한데 그때부터는 사람이 전혀 딴사람으로 변한것 같았다. 중총일군들이 매일처럼 집으로까지 찾아오는가 하면 어떤 문제를 놓고 밤새껏 서로 열을 올려 떠들어대다가도 갑자기 집이 떠나가게 폭소를 터뜨리군 했다. 며칠동안 단 한순간도 눈을 붙이지 않는것 같았다. 분명 무슨 큰 회의를 준비하는게 틀림없었다. 어떤 땐 앉은뱅이책상에 마주앉아 글을 부지런히 쓰다가는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며 빙그레 웃는가 하면 호일이를 품에 안고 《장하고나 우리들은…》 하고 무릎을 들썩거리기도 했다.

《일이 아부지… 온천에 갔다오시더니 마이 달라졌습니더, 예?》

기쁜김에 한마디 했을 때였다.

《달라져? 하긴 그럴수도 있지.》

흔히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보이는 그런 친절하고도 다정한 어조로 남편은 대꾸했다.

《내가 간 온천은 여느 온천과는 다른데란 말이요. 어떤 온천인가? 사람의 심신을 다 깨끗하게 정화시켜주는 그런 희한한 온천이지. 우리 앞으로 같이 가기요. 아이들이랑 다 데리고 말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수임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솟구쳐올랐다. 같이 살면서 그렇게 다정하고 곰살궂게 대해주는 남편을 처음 보았던것이다. 이런걸 두고 사람들이 흔히 행복이라고 하는지… 수임은 자기나 아이들은 그만두고라도 그런 온천이라면 어떻게든 돈을 벌어 남편만은 한해에 한번씩 꼭 보내리라 결심했다.

그런 기분으로 하여 수임은 요즘 저도 모르게 자주 코노래가 흘러나왔다. 지금도 그는 젖을 빨다가 잠든 음전이를 눕혀놓고 방걸레질차비를 하면서도 언제나 흥이 나면 부르는 노래 《백두산말-기에》를 입속으로 흥얼거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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