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2 회)
제 1 장
10
하지만 덕수는 여전히 마음을 사로잡고있는 하나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주위에서 벌어지는 얘기에 잠시 정신이 팔렸다가도 그 얘기가 끝나면 어느새 생각은 다시 본래대로 되돌아가는것이였다. 마치 어떤 무게에 눌리워 일시 기울어졌던 저울눈금이 물체를 내려놓자 저절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는것과 같다고 할가.
모두들 을밀대란간에 붙어서서 최승대쪽을 가리켜보이며 하시는 장군님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있었으나 그만은 그쪽을 보기는 하면서도 속으로는 자기 생각에 잠겨있었다. 어떻게든 장군님곁에 남고싶은 자기의 간절한 소원이라도 말씀드리고싶었고 그러면 혹시 장군님께서 자기의 소망을 들어주실지도 모른다는 감정에 휩싸여있었다.
《저길 보십시오.》
덕수에게로 다가서신 장군님께서는 한곳을 가리켜보이며 말씀하시였다.
《지금은 겨울이니 그렇지 얼음이 풀리면 저 강동쪽에서 흘러내리는 대동강물이 이 아래쪽에 있는 청류벽이나 부벽루를 감돌아흐르는데 갖가지 꽃들이 만발한 봄철에는 참으로 장관입니다. 그래서 을밀상춘이 예로부터 평양팔경의 하나로 꼽히고있습니다.》
천천히 을밀대정각을 나서시여 구들장같은 천연바위를 밟으시던 장군님께서는 한가지 생각이 떠오른듯 걸음을 멈추시였다.
《덕수동무!》
장군님의 사색이 깃든 표정을 통해 그이께서 이미부터 생각해오시던 어떤 문제에 대해 말씀하려 하신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들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 드는것을 어쩔수가 없습니다.》
덕수는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도 어리둥절한 눈길로 장군님을 우러렀다.
《무엇이 미안하고 송구스러운가? 동무들도 알다싶이 나는 해방직후 재일동포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앞으로 공화국이 창건되기만 하면 동포들은 모든 측면에서 조국의 보호와 사랑을 받게 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공화국이 창건되였지만 우리가 동포들에게 해준것이 무엇입니까. 정치적으로나 생활적으로 무엇 하나 이렇다하게 도와준것이 없습니다. 이것만 해도 마음에 걸리는데 더 송구한것은 그런 우리를, 아직은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는 조국을 동포들은 어머니라 부르며 한결같이 따르고있다는것입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고생하는 자식을 대할 때의 심정이라고 할가…》
《장군님! 그거야…》
옆에 있던 진규가 얼른 한걸음 나서며 진정어린 목소리로 말씀올렸다.
《공화국이 갓 창건된데다가 조국에서 함께 살지 못하니 그럴수밖에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이미부터 그런 말을 하리라는것을 짐작하고계셨다는듯, 그러나 그 말은 맞지 않는 말이라는듯 고개를 저으시였다.
《물론 제 나라에서 살지 못하기때문에 어려움이야 있겠지요. 그러나 해방이 되고 나라가 선 오늘까지도 동포들을 그런 상태에 있게 한다는데는 가슴이 아픕니다.
방금 덕수동무가 몇푼 안되는 돈을 위해 최승희를 만나러 갔던 얘기를 했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는 일제때니까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이젠 재일동포들이 공화국의 해외공민이 되였고 일본 전국에 수백개의 우리 학교가 일떠서있다, 그 학교에서 6만명이나 되는 우리 아이들이 새 조국의 역군으로 자라나고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애들을 위해 해준것이 무어냐? 책 한권 만들어 보내주지도 못했거니와 아이들 손에 연필 한자루 쥐여주지 못했다, 과연 이것이 자식에 대한, 그것도 남의 집에서 갖은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사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처사냐 하고 말입니다.》
지나친 말씀이라고, 지금 조국사정도 어려운데 그걸 바랄 동포들이 어데 있겠느냐고 말씀드리고싶었으나 덕수는 말이 나가지 않았다. 가슴속에 소용돌이치는 열망때문이기도 했으나 보다는 재일동포들을 그토록 뜨거운 사랑으로 대해주시는 장군님의 은정에 목이 메여서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마디 말씀드리지 않고는 견딜수 없어 그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군님! 재일동포들은 이젠 조국이 있는것만으로도, 장군님이 계신다는것만으로도 힘을 내고 용기를 냅니다. 정말입니다. 재일동포들에겐 더는 아무것도 부럽지도 두렵지도 않습니다.》
이 말만은 진정으로 믿어주시기 바라마지 않는다는듯 덕수는 절절한 어조로 말씀올렸다.
《결코 그렇게만 생각할것이 못됩니다. 재일동포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세계 여러 지역에 수많은 교포들이 있지만 우리 재일동포들처럼 멸시와 수모를 받으며 고생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때문에 나는 늘 어떻게 하면 이젠 그들을 일본사람들은 물론 온 세상이 다 쳐다보는 그런 존엄있고 긍지높은 해외공민으로 내세우겠는가 하는것을 생각합니다. 말로써가 아니라 실지로 아무것도 부럽지도 두렵지도 않는 그런 사람들로 말입니다.》
덕수는 다시금 가슴이 뭉클했다. 새삼스레 장군님의 품에 안겨산다는 자랑과 행복감이 온몸에 전류처럼 퍼져나갔다.
《한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이쪽으로 갑시다. 미끄럽지 않은데로 말입니다.》
좁은 오솔길이 나지자 그이께서는 덕수를 앞세우시였다.
《나는 재일동포들을 생각할 때마다 언제면 그들이 조국을 마음대로 오갈수 있고 조국에서 우리와 함께 살게 될가 하는것을 따져봅니다. 죽을 쑤어 나누어먹더라도 동포들을 데려다 함께 살고싶습니다. 사실 우리 동포들이 얼마나 조국의 품에 안기고싶어하겠습니까.》
《?!》
덕수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조국의 품에 안기고싶어하는 동포들의 심정에 대해 하시는 말씀이 바로 자기의 심정, 지금 자기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충동을 꿰뚫어보시고 하시는 말씀같았기때문이였다.
《지금은 놈들의 방해책동으로 하여 동포들이 조국에 맘대로 오지 못합니다. 동포들은 고사하고 동무들 몇사람이 오는것도 얼마나 힘들게 왔습니까. 하지만 앞으로는 그럴수 없습니다. 누구나 응당 자유로이 조국으로 올수 있어야 하며 오는 경우에도 온 세상이 보라는듯이 당당히 와야 합니다. 난 언젠가는 그런 날이 꼭 오리라는것을 확신합니다.》
(장군님말씀은 한두사람이 조국으로 오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60만 동포전체가 조국의 품에 안겨야 한다는, 그렇기때문에 나에게는 자기 하나의 소원이 아니라 전체 재일동포들의 운명을 먼저 생각하고 그런 날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아닐가? 다시말해 장군님께서는 나의 소망을 나 하나의 소망으로가 아니라 재일동포모두의 한결같은 소원으로 받아들이신다는 뜻이 아닐가?)
서서히 잠을 깬 리성의 목소리는 자기의 이 판단이 옳으며 그것을 믿어야 한다고 속삭이였다.
《그런데 동포들을 존엄있는 해외공민으로 내세우는것이나 조국에 마음대로 올수 있게 하는 어려운 과업들을 누가 수행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동무들입니다. 바로 동무들의 어깨우에 이 무거운 과업이 지워져있단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덕수동무!》
덕수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는 장군님안광에서 펑끗하고 타오른 섬광과도 같은 불꽃이 번개불같은 속력으로 자기 눈안으로아니, 심장으로 흘러드는것을 똑똑히 느끼였다.
사실 장군님께서는 지금 자신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덕수에게 털어보이고싶었고 리해를 받고싶으시였다. 덕수와 같이 진실한 사람에게는 그 어떤 감정도, 그것이 설사 아무리 괴로운것이라 해도 어물쩍 넘기거나 피해서는 안된다고 여기시는 그이이시였다. 진심을 진정으로 리해하게 될 때 더욱 강해지고 억세여지며 지어는 그 누구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놀라운 기적을 창조하는것이 덕수처럼 고지식한 사람의 특징인것이다.
《동무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도 무겁습니다. 오매에도 그리던 조국을 찾아온 동무들인데 따뜻한 대접도 못한채 짐만 잔뜩 지워서 보내니 말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마음을 무겁게 하는 사실이 더 있었으나 그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시였다. 차마 입밖에 낼수가 없으시였다. 그것은 우리가 이렇게 헤여지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기약할수 없는 작별에 대한 피할수도 숨길수도 없는 통절함이였다. 실로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드는 일이 아닐수 없으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짐짓 흔연한 표정을 지으신채 덕수를 바라보시였다.
《덕수동무! 나도 동무의 심정을 모르는바 아닙니다. 덕수동무가 얼마나 조국에 있고싶어하는가 하는걸 잘 압니다. 그렇지만 나는 동무가 일본으로 되돌아가길 바랍니다. 아니, 돌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나도 그렇지만 덕수동무나 여기 있는 동무들 모두가 자신을 조국과 동포들을 위해 바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기때문입니다. 조국을 위하고 동포들을 위한 투쟁에서 기쁨을 찾고 행복을 느끼는 조선의 혁명가들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리유는…》
고개를 돌리신 장군님께서는 대표단성원들에게 말씀하시였다.
《바로 덕수동무와 같은 애국자가, 조국을 알뿐아니라 이미부터 동포들에게 신망이 있는 사람이 재일조선인운동을 이끌어야 하기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내 말이 리해됩니까?》
시선을 떨구는 덕수의 눈귀가 가늘게 떨리였다.
힘껏 다문 입술이 움씰하더니 한쪽으로 이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런 덕수의 모습이 눈부리를 아프게 찌르는것으로 하여 장군님께서는 마음이 쓰리시였다.
《동무들도 짐작하리라고 봅니다만…》
걸음을 멈춘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덕수며 대표단성원들을 유정한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기약도 없이 헤여지는것이 가슴아픈 일이고 또 그 말을 하면 덕수가 괴로와하리라 여겨 말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께서 더 괴로울것만 같으시였다.
《우린 이렇게 헤여지면 앞으로 언제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과연 다시 만날수 있겠는지 하는 의문도 없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작별은 상봉을 담보하지 못하는 그런 작별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목이 잠겨 말씀을 이을수가 없으시였다. 문득 김혁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오리나무숲이 우거진 강가에 나가 바래워줄 때까지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던 그 마지막 모습이 생생히 기억되시였다. 그때도 바로 이런 겨울이였었다. 강가에는 허연 얼음장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어쩌면 그때와 같은 작별이 오늘에 와서까지 있을수 있단 말인가.
갑자기 가슴속에서 불뭉치같은것이 솟구쳐올라 호흡하기 어려우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그렇지만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도 지척이고 마음이 천리면 지척도 천리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비록 몸은 천리에 떨어져 있어도 조국을 위하는 한마음, 동포들을 위하는 한마음으로 억세게 살아갑시다. 나는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언제든 다시 꼭 만나게 되리라는것을 확신합니다.》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떼시였다. 대표단성원들의 시선을 피하려는듯 그들보다 앞서 걸으시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곧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같은것을 들으시고는 주춤하시였다. 그 소리가 바로 덕수가 터뜨린 흐느낌이라는것을 아시였으나 차마 되돌아설수가 없으시였다. 상혈되여 검붉어진 덕수의 얼굴과 한손으로 입을 틀어막고있을 그의 모습이 상기되자 일시에 눈앞이 흐려지시였다. 가슴이 미여지는것만 같으시였다.
《장군님-》
갑자기 터뜨리는 덕수의 오열에 장군님께서는 멈춰서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제가 미처… 제 생각이…》
온몸을 와들와들 떨며 이렇게 마디마디를 토해내는 덕수는 당장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을것만 같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용서를 비는 간절한 애원과 함께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고통이 어려있었다.
《장군님!》
두손을 뻗친 덕수는 어린애처럼 와락 장군님품에 안기였다. 그리고는 더욱 세차게 어깨를 들먹이였다.
사실 덕수는 자기 생각이 짧았다는 뉘우침때문만이 아니였다.
장군님과 헤여지게 되였다는 석별의 정이나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아니,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할수도 있다는 비통한 심정때문만도 아니였다. 그것은 자기의 뉘우침이나 괴로움보다 장군님께서 느끼시는 고통과 비감이 몇십, 몇백배나 더 크다는것을 통감했기때문이였다. 바로 그 사실이 참을수도 견딜수도 없게 가슴을 허벼뜯는것이였다. 그런 장군님이시라는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이제껏 자기 생각 하나만 앞세운것으로 하여 그이께 괴로움을 끼친 자신을 더없이 가혹하게 타매하고 매질하고싶어지는것이였다.
《알았습니다. 장군님! 장군님뜻을 잘 알겠습니다. 일본에 돌아가면 제 어떤 일이 있어도…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백번 쓰러지면 백번 일어나 동포들을 조국의 두리에, 장군님두리에 굳게 묶어세우겠습니다.》
《내 마음을 리해해주어 감사합니다.》
눈물이 번들거리는 얼굴을 꿋꿋이 들고 웨치듯 하는 덕수의 모습에서 그이께서는 그 어떤 시련에도 물러서지 않을뿐아니라 그 어떤 좌절에도 주저하지 않고 용감하게 일떠설 강직한 전사의 불사신같은 기상을 절감하시였다. 그러자 그에 대한 다함없는 믿음이 새삼스레 세찬 파도가 되여 밀려와 무엇인가 더 큰 힘, 더 큰 사랑을 주고싶으신 충동이 가슴을 치는것이였다.
《덕수동무! 내 약속하겠습니다.》
덕수의 어깨를 잡으신 장군님께서는 그의 얼굴을 마주보시면서 확고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오늘은 비록 우리가 헤여지지만 후날 다시 만나게 될 때, 그땐 꼭 조국에서 함께 일할것을 말입니다. 더는 헤여지지 않고 같이 일할것을 말입니다. 난 이 약속을 잊을수 없는 전우였던 김혁이의 유한을 걸고 덕수동무에게 담보합니다. 그 역시 함께 일하자고 약속했지만 새로운 임무로 적구로 가지 않을수 없었고 거기에서 그만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다시 있을수 있겠습니까. 혁명이 간고한것이기는 하지만 결코 엄격한 요구와 무자비한 원칙만 있는 몰인정한 세계는 아닙니다. 그러니 나의 이런 심정을 알고 부디 건강해서…》
장군님께서는 말끝을 흐리시며 덕수의 어깨를 힘껏 그러안으시였다.
장군님주위를 에워싼 대표단성원들도 하나같이 어깨를 떨며 흐느끼였다.
그때 맞은켠 오솔길로 걸어오는 한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웠다. 그는 을송정에서 송별회준비를 끝내고 장군님을 마중하기 위해 나오는 지영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