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1 회)
제 1 장
9
설을 눈앞에 둔 날씨치고는 너무도 잠풍했다. 흔히 섣달그믐때에는 백설이 쏟아져내려 온 천지가 백색일경으로 단장되든가 아니면 하다못해 칼날같은 바람이라도 불어 량볼을 싹싹 도려내든가 해야 설맛이 나겠는데 눈과 바람은커녕 하늘에서는 도리여 따뜻한 해빛이 내리쪼이고있었다.
그 해빛으로 하여 소나무며 측백나무의 우듬지에 상투처럼 얹혀있던 눈은 물론 군데군데 음달진 곳에 남아있던 잔설들까지도 주룩주룩 소리를 내며 녹아내리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흥건히 젖어들고있는 을밀대로 향하는 밋밋한 둔덕길을 걷고계시였다. 그이의 량옆에는 덕수와 진규가 서고 뒤에는 현우와 서민이가 따르고있었다.
오전 내각청사의 집무실에서 대표단성원들과 재일조선인운동이 나갈 방향과 방도들에 대해 토론하신 그이께서는 오후 그들과 함께 모란봉을 찾으시였다.
적구나 다름없는 살벌한 땅에 돌아가 갖은 시련을 이겨내면서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들을 위해 뭔가 각별히, 따뜻이 대해주고싶으시여 몸소 마련하신 산책이였다. 일본에 돌아가서도 그들이 조국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부족하나마 즐겁고도 인상깊은 추억으로 되새길수 있는 그런 하루로 되게 하고싶으시였다. 모란봉을 돌아본 다음에는 을밀대아래에 있는 을송정에 들려 이들을 위한 송별회를 가질 예정이였는데 그때에는 꽤 잘 부른다는 덕수의 노래도 한곡조 들어보실 작정이시였다. 송별회준비를 위해 지영이를 먼저 을송정으로 보내신 장군님께서는 다른 부수상들에게는 시간을 맞추어 그리로 오라고 일러두시였다.
《일제식민지통치시기에는 일제를 쳐부시는것이 우리의 과업이였고 나라가 해방된 직후에는 통일정부를 세우는것이 우리의 임무였다면 공화국이 창건된 오늘에 와서는 모든 사람들을 공화국두리에 묶어세워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서게 하는것이 기본임무로 됩니다.
조국에서도 그렇지만 일본에서 사는 재일동포들경우에는 그것이 더욱 절실한 문제로 나섭니다.》
장군님께서는 발아래 펼쳐진 대동강일경을 바라보시다가 손을 들어 강쪽을 가리키시였다.
《저길 보십시오. 한 나라 혁명을 저 대동강에 비유한다면 조국에서 벌어지는 투쟁은 강의 본류가 되는셈이고 재일조선인운동은 저쪽에서 흘러드는 합장강처럼 지류라고 할수 있습니다. 언제나 지류가 본류에 합류됨으로써 하나의 거류를 이루듯이 일본에서 벌어지는 재일조선인운동도 철저히 조국을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되여야 합니다.》
(본류와 지류!)
덕수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렇다. 지류가 본류에 합류됨으로써만 하나의 도도한 거류를 이루듯이 재일조선인운동도 어디까지나 조국을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조국의 진군에 발맞출뿐아니라 그 진군을 더 힘있게 떠미는것으로 되여야 한다.)
덕수는 마치 장군님께서 자기앞에 얼기설기 엉키여있는 해묵은 가시덤불들을 하나하나 치워주시면서 자기를 해빛이 비치는 밝은 곳으로 손잡아 이끌어주시는상싶었다. 그러자 그것은 곧 하나의 진리, 그 어떤 사회적운동이나 투쟁도 그 방향과 목적을 어떻게 정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는 진리와 함께 그 방향과 목적은 바로 그것을 내놓은 사상의 높이에 의해 규정된다는 절대적인 진리가 새삼스레 가슴을 쳤다.
(과연 우리 장군님이 아니시고야 누가 재일동포들의 앞길을 이처럼 명철하게 밝혀주실수 있단 말인가!)
이런 긍지와 자랑이 북받쳐오른 덕수는 흔히 흥분할 때면 그런것처럼 더욱 걸음발을 다그쳤다.
《아니, 이쪽입니다. 그리로 가면 을밀대가 아니라 을송정으로 빠지게 됩니다.》
미소를 머금고 덕수를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그제야 량옆에 대표단성원들이 서있다는것을 깨달으시였다.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라 웃음을 지으시였다. 모란봉에 와서는 사업상얘기는 하지 않기로 한 결심을 자신께서 스스로 어기고있다는것을 느끼셨기때문이였다.
화제를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하신 그이께서는 곧 진규쪽으로 돌아서시여 그가 종합대학을 참관하다가 옛날 일본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을 상기하시고는 그에 대해 물으시였다.
갑자기 얘기의 방향이 달라진데 어리둥절해진 진규였으나 눈가에는 웃음이 어리였다.
《전 사실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징병을 피해다니느라고 갖은 고생을 다하던 그여서 틀림없이 놈들에게 붙들리여 잘못되였으리라고만 여겼었는데 종합대학 강좌장이 되였으리라고는…》
《그래 그가 진규동무에게 뭐라고 합디까?》
《그저 처음부터 하는 말은 왜 아직도 일본에 그냥 있는가고, 당장 조국으로 오라는것이였습니다. 아니, 이번 기회에 조국에 떨어져 대학에서 같이 일하자는것이였습니다. 흥부동에 있는 그의 집에도 가보았는데 얼마나 단란한 생활을 꾸리고있는지…》
《조국에서 같이 일하자…》
이렇게 되뇌이시던 장군님께서는 부지중 옆에 있는 덕수에게 시선이 가시였다. 덕수 역시 그 순간 머리를 번쩍 들고 장군님을 마주 바라보았다. 문득 어제 대표단의 조국방문과정에 대해 보고하던 지영이가 요즘 덕수가 무엇때문인지 몹시 우울하게 지낸다는 말을 듣고 놀랐던 일이 상기되시였다.
《우울하게 지내다니? 혹시 어디 아픈게 아니요?》
《병원에 가자고 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제가 보건대는 몸이 아파서 그런것 같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때문이란 말이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만.》
지영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장군님, 덕수동지가 우울해진건 일본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다가와서 그런것 같습니다. 덕수동지야 누구보다도 조국의 품을 그리워하지 않았습니까.》
《으-음-》
장군님께서는 생각이 깊어지시였다. 왜 안그러랴!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에서 살다가 막상 조국에 와보니 생각이 많아질수밖에, 더우기 그처럼 조국의 품에 안기고싶어하던 그인데야. 초기혁명활동시기 왕재산에 왔다가 다시 중국땅으로 갈 때 일이며 항일유격대원들과 함께 보천보전투를 치르고 압록강을 건널 때의 일이 떠오르시였다. 그때 자신께서도 차마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우시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머리를 저으시였다.
조국에 떨어지고싶어하는 덕수의 심정이 리해되면 될수록 그만 못지 않는 또 하나의 감정, 그 소원이 아무리 간절하다 해도 그걸 들어줄수 없으며 들어주어서도 안된다는 정반대되는 감정으로 하여 못내 마음이 무거우시였다. 그것은 그의 사무친 소망을 풀어주고싶으신 간절한 마음과 그와는 달리 혁명의 요구로부터 어떤 일이 있어도 그를 일본에 되돌려보내야 한다는 명백한 결론의 부딪침이였다.
혁명에 나서신 첫날부터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숱한 슬픔과 괴로움을 겪어오시였으나 제일 마음이 아프고 쓰릴 때가 바로 이런 때였다. 혁명의 요구와 인간적인 감정, 혁명의 요구를 위해서는 인간적인 감정을 묵살해야 하고 인간적인 감정을 앞세우면 반대로 혁명의 요구를 저버려야 했는데 고통스러운것은 이 상반되는 두가지 감정이 언제나 동시에 예리한 화살이 되여 가슴에 날아와 박히는것이였다. 그때마다 더없이 괴롭기는 하지만 부득불 인간적인 감정을 누르고 혁명이 바라는쪽을 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것이 또 무엇보다 가슴을 아프게 허비였다.
그럴 때면 믿음이 가는 사람일수록 혁명임무도 무겁기마련이고 혁명가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불가피한 일이 아닐수 없으니까 하는 혁명가들 일반의 생활공리를 속으로 외워보군 하시였으나 그런 말로는 아픈 마음을 달래일수가 없으시였다. 그런 말로 달래이기에는 가슴쓰린 사연들이 너무나도 많았던것이다.
그중에도 김혁이와 헤여지던 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리여 견딜수가 없으시였다.
오래동안 적구에서 갖은 신고를 다 겪으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온 그였으나 급박한 정황은 그를 다시 보다 위험한 적구-할빈으로 떠나보내지 않으면 안되게 했다.
《성주동무! 제발 오늘 하루만이라도 같이 있게 해주우. 내 일이 위험해서나 가기 싫어서가 아니요. 다문 하루밤만이라도 같이 지내면서 그동안 쌓인 회포도 나누고 한번 실컷 웃어보기라도 한 다음에 가게 해달라는거요. 부탁이요.》
생각같아서는 그를 그러안고 며칠이라도 같이 있고싶었지만 긴박한 사정은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내가 왜 김혁동무의 마음을 모르겠소. 혁명을 하자니까 이런 일도 있는건데… 그리고 이거야 단지 우리가 잠시동안 헤여지는게 아니요. 그러나 할빈에서 돌아오면 그땐 우리 동만에 나가서 함께 있기요. 잠시도 헤여지지 말고말이요. 내 약속하겠소.》
그러나 그렇게 떠나간 김혁이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말았다. 결국 잠시라고 했던 그 리별이 영원한것으로 되고말았던것이다.
당장 떠나야 할 덕수를 생각할 때면 김혁이와 헤여지던 때의 일이 되살아나면서 가슴이 미여지시였다. 김혁이나 덕수가 다 일본에 있다가 같은 심정을 안고 찾아왔다는 사실 그리고 둘이 다 함께 있고싶어 하지만 다시 어려운 임무를 지워 위험한 적구로 떠나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정이 두사람을 더욱 하나로 일치시키는것이였다. 시를 잘 짓던 김혁이라면 노래를 잘 부르는 덕수 역시 어딘가 일맥상통한데가 있었다. 이런 비슷한 점들이 어쩐지 지나간 애절한 추억들을 불러일으키면서 더욱 목을 메게 하였다.
일제를 쳐부시고 나라를 찾기만 하면 다시는 그런 가슴아픈 리별은 없으리라 여기셨건만 새 조국이 창건된 오늘에 와서도 여전히 그런 뼈저린 체험을 하게 되실줄이야…
따져보면 어떤 측면은 그때보다 더 어려운 조건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는 서로 떨어져있어도 수시로 련계를 맺을수도 있고 보고싶으면 달려가 만날수도 있었지만 덕수가 가는 곳은 보고싶어도 볼수 없고 가고싶어도 갈수 없는 만리창파를 사이에 둔 남의 나라 땅인것이다. 소식이나 련계는 물론 건강한 몸으로 있는지 하는 안부조차 알길이 없이 달을 넘기고 해를 보내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이였다. 과연 이제 헤여지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아니, 다시 만날수 있기나 하겠는지…
다시금 이런 생각으로 하여 그이께서는 마음이 아프시였다. 덕수에게는 김혁이와 헤여질 때 한 《잠시》라는 말조차 할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더 쓰리시였다. 다만 덕수가 제발 자기의 그 간절한 소망, 일단 말을 꺼내기만 하면 자신으로서도 차마 물리치기 어려운 그 소청만은 입밖에 내지 말기를 바라실뿐이였다.
옆에서 묵묵히 따라걷는 덕수의 기색을 통해 그가 지금 모르긴 해도 분명 자신께서 우려하고있는 바로 그 생각에 옴해있다는것을 짐작하신 장군님께서는 태연한 기색을 지으며 물으시였다.
《그래 덕수동문 이번에 일본에서 같이 지내던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까?》
《예?》
미처 생각을 가다듬지 못한 상태에서 덕수가 눈을 슴뻑이자 뒤에 있던 서민이가 나직한 소리로 귀띔했다.
《왜, 극장에 갔다가 최승희를 만나지 않았습니까.》
《최승희라니? 그러니 그를 일본에서 만난적이 있단 말입니까?》
장군님께서는 의외의 사실에 놀라시였다. 덕수가 일본에서 최승희를 만난 일이 있다는 사실자체도 놀라왔으나 덕수에게 화제거리가 생긴것이 더 다행스러우시였다. 그제야 생각이 나는지 덕수의 얼굴에는 어설픈 미소가 스치였다.
《그가 일본에 와서 공연할 때 한번 만난적이 있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이여서 그를 찾아갔더랬는데…》
그와의 상봉이 뒤늦게 떠올랐기때문인지 아니면 자기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되게 된것이 아쉬워서인지 덕수는 침울한 목소리로 뜨직뜨직 말을 이었다.
…단나추도공사장에서 일할 때였다.
조선인로동자들로 야학을 조직해놓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교재를 마련해줄수가 없었다. 최소한 등사기와 원지 그리고 얼마간의 종이가 있어야 변변찮은 등사교재라도 만들수 있겠는데 그걸 구입할 몇푼 안되는 돈조차 없었던것이다.
그때 마침 일본에서 《조선의 무희》로 굉장한 소문을 내며 공연을 하던 최승희가 순회공연차로 요꼬하마에 왔다.
덕수는 그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 역시 조선사람으로서 이역땅에 끌려와 마소와 같이 고역을 당하고있는 불쌍한 동포들을 모른다지는 않을것이다. 아니, 더없이 반가와하며 얼싸안고 눈물을 흘릴것이다.
덕수는 로재호와 함께 그가 공연하는 요꼬하마극장으로 갔었다.
공연이 끝난 다음 최승희를 만나 자기들이 누구라는것을 밝히고나서 두가지 부탁을 했다. 하나는 동포로동자들이 제 나라 글을 공부하자니 돈이 드는데 그 돈을 좀 대달라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까지 왔던김에 멀지 않는 공사장에서 수천명이나 되는 동포로동자들을 위해 춤을 한번 춰달라는것이였다. 강제로 일본땅에 끌려와 고생하는 동포들이 당신의 장고춤이나 부채춤을 보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고향생각, 부모처자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흘릴것이다, 당신 역시 일본사람들앞에서 춤을 출 때보다 많은것을 느낄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최승희는 그러마고 했었다. 그러나 그는 약속한 날은 물론 그 다음날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신문을 보니 공사장에 오기로 한 날 그는 벌써 다른 곳으로 공연을 떠났던것이다. 그런데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가 공사장에 오지 못한것은 일본경찰이 공사장에서의 공연을 방해했기때문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궁금하신 눈길로 덕수를 바라보시였다.
《그래 그를 만났을 때 그때 얘기를 했습니까?》
《했습니다. 우린 사실 그때 동무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것이 경찰들의 방해때문인줄은 모르고 속으로 얼마나 욕했는지 모른다, 밤을 패워가며 가설무대를 만들었고 없는 돈을 모아 꽃다발까지 사놓고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는걸 보니 분명 이 녀자가 조선사람들보다 왜놈들을 더 중하게 여기는게 틀림없다고까지 하면서 괘씸해했는데 이제라도 그때 일을 사과할테니 량해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오히려 제편에서 사정이야 어떻든 자긴 아직도 재일동포들에게 죄를 짓고있는 심정이라고 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나도 그가 일제때 어떤 생활을 했는가 하는걸 들은적이 있습니다. 일제시기에는 누구나 하고싶어도 하지 못하고 하기 싫어도 마지 못해 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수재들일수록 더욱 그런 비운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방직후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를 규정할 때 주동과 피동을 엄격히 갈라보았던것입니다. 사정은 다르지만 일본땅인 경우에도 그렇다고 보는데 어떻습니까?》
일본이라는 환경의 복잡성으로 하여 특별히 중요한 문제로 나서는것이 사람들에 대한 평가문제라는데 대해 이미부터 생각해오시던 장군님이시였다.
《참! 생각이 난김에 한가지 말하는데 일본에 돌아가면 영신이라는 처녀를 찾아보십시오. 아버지가 우리와 다른 길을 걷는다고 해서 여태껏 우리를 따라오던 그를 내버려둘수야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럴수록 그를 찾아내여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더우기 일본녀자를 어머니로 둔데다가 늘 의지하던 지영동무까지 옆에 없으니 그가 지금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 처지에 있겠습니까. 지영동무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를 못내 잊지 못해하는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꼭 찾아보겠습니다.》
덕수는 힘을 주어 말씀올리였다.
《저도 이번에 조국에 와서야 지영동무의 애인이 박룡의 딸이라는걸 알았습니다. 놀랍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동포들을 배신한 그런 역적의 딸을 지영동무가 사랑한다는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장군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아버지는 아버지고 딸은 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진 용서할수 없는 원쑤이지만 딸이야 사실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옳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아버지때문에 죄없는 딸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면 그건 가슴아픈 일입니다. 우리야 인간의 운명을 밝은데로 이끄는 혁명가들이 아닙니까. 수난많은 력사속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은 개인의 운명도 다난할수밖에 없습니다. 조국을 잃고 망국노의 신세가 되여 이국땅에 끌려간 재일동포들이 겪은 기막힌 사연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민족이 갈길을 잃으면 개인도 인생길을 잃고 방황하기마련입니다. 그렇다는걸 알고 동포들을 대하고 일군들을 대해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장군님!》
덕수의 표정을 지켜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그제야 다소 안심이 되시였다. 지금 하고있는 얘기로 하여 덕수가 이젠 본래의 자기 생각에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것을 느끼셨기때문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