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 회)
제 1 장
6
《그러니까 아직도 지영동진 그 처녀가 누군가 하는걸 대줄수 없다는겁니까? 좋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뭐 그를 알아내지 못할것 같아서요? 천만에!》
옆방에서 들려오는 현우의 목소리에 덕수는 귀를 기울이였다.
제법 마디마디에 힘을 주어가며 으르기도 하고 아닌보살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듯이 코나발을 불어대기도 하는 품이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영이의 과거사를 뿌리채 들추어내고야말 잡도리였다.
어제 저녁 마당에 나와 산보를 하던 지영이가 서민이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혹시 영신이라는 처녀를 모르는가고 물었었다. 서민이가 청년들과 사업하는 민청대표라는데로부터 물어본 말일테지만 이 한마디가 대표단일행에게 일으킨 파문은 대단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가 지났는데도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고있는 그를 못내 의아스레 여겼었고 그럴 때마다 혹시 일본에 있을 때 어떤 처녀와 약속이라도 있지 않았을가 하는 의혹을 품고있던차였다.
《틀림없네, 무슨 곡절이 있어! 이제부턴 동무가 그 영신이라는 처녀가 누구이며 옛날 서로 어떤 관계였는가 하는것까지 말짱 다 알아내라구. 알겠나? 그런데서야 동무가 선수가 아닌가!》
서민이가 현우에게 준 분공이였다. 서민이가 현우한테 그 분공을 준 리유는 그가 해방직후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들을 색출해내는데 적지 않은 공로를 세웠기때문이였다. 일제때 《협화회》나 《흥생회》, 《일심회》와 같은 반동단체에 망라되여 왜놈의 앞잡이노릇을 하던자들이 해방이 되자 교활하게도 이름과 경력을 바꾸고는 조련이나 그 산하단체에 기여들려고 했다. 그때 그는 제 표현대로 하면 《남다른 애국심과 결부된 뛰여난 탐정적기질》을 발휘하여 수많은 반동들을 찾아내여 폭로했고 어떤 놈들은 신문에다 사진까지 받쳐서 공개해치웠다. 그런 경력이 있는 현우에게 있어서 지영이의 과거사를 들추어내는것쯤은 실상 아무것도 아니였다.
그러나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닌것 같았다. 흔히 현우와 같이 지꿎은 사람은 상대가 난처해하거나 부끄러워할수록, 특히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흥미를 가지고 지싯지싯 검질기게 달라붙는 법인데 지영이의 경우에는 그 말만 나오면 곧 표정이 굳어지면서 심각해지기때문이였다.
《말하기가 거북한 모양인데 그럼 내 말을 들어보고 맞으면 맞다고만 하십시오.》
현우는 자기한테는 아무리 심각한 기색을 지어야 소용이 없으며 성을 내도 헛수고라는듯 배포유한 어조로 말했다.
《일본에 있을 때 서로 가까이 지냈습니다. 어떻습니까? 앞날에 대한 약속까지 있었지요. 그러나 지영동지가 조국에 온 다음부터는 그만 서로 련계가 끊어졌지요. 맞습니까? 잊자니 약속을 저버리게 되고 약속을 지키자니 바다가 가로놓였고 그렇다고 그 처녀를 탓할수도 없고 자기 잘못도 아니고 뭐 이런게 아닙니까?》
처음에는 정면돌파를 시도했으나 그것이 효과가 없다는것을 알았는지 이번에는 변죽을 울리며 포위전으로 넘어가는 현우였다.
(엉큼한 녀석같으니…)
현우에게 물리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으로는 괜히 그 말을 꺼냈다고 후회하고있을 고지식한 지영이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덕수는 저절로 웃음이 샜다.
《그럼 한가지만 물어봅시다. 그 처녀의 아버지가 누굽니까? 영신이라는 처녀는 몰라도 그의 아버지가 누군가 하는걸 알면 쉽게 찾을수도 있지요.》
현우는 한걸음 포위진을 더 좁히였다.
《처녀의 아버지에 대해선 묻지도 말게. 말하기도 싫거니와 말할 필요도 없네!》
여태껏 침묵을 지키던 지영이의 퉁명스런 대꾸였다.
《왜요?》
《조련이라면 한사코 피를 물고 달려드는 반동의 두목을 말해선 뭘한단 말인가!》
《반동의 두목이라니요?》
그 말에는 덕수도 긴장되지 않을수 없었다.
《내 말하지. 그까짓걸 숨겨 무엇하겠나. 이제야 다 지나간 일인걸.》
이렇게 말하는 지영이의 목소리에는 현우의 단련에 견디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제까지 혼자 가슴속에 품고있던 어떤 상서롭지 못한 사연을 털어놓는다는 일종의 고뇌가 어려있었다.
《옳네! 동무가 말한것처럼 영신이는 내가 일본에 있을 때 가까이 지내던 처녀네. 서로 앞날에 대한 약속도 있었고. 그런데 그 처녀가 누군가 하면 바로 〈민단〉단장인 박룡이의 딸이라네!》
《예?》
질겁을 하는 현우였으나 더 놀란것은 덕수였다.
(박룡의 딸? 지영이가 그럼 그 반동의 딸과?)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을수가 없었다.
지영이가 박룡의 딸과 사귀였다는것도 놀라왔으나 문득 떠오른 한가지 사실에 더 굳어지지 않을수 없는 덕수였다. 그것은 첫날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 앉았을 때 장군님께서 박룡에 대해 물어보시던 일이 되살아났기때문이였다.
그때 덕수는 박룡이 그자가 얼마나 못되게 놀았으면 장군님께서 다 물어보시랴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말씀올렸다.
사실 박룡이라면 재일동포들은 물론 일본사람들까지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1921년 무정부주의단체인 《흑도회》와 《의혈단》, 《부령사》 등을 뭇고 김구와도 련계를 가지면서 일제와 친일파에 대한 테로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22년 가을 《황태자》의 성혼식을 계기로 《천황》을 암살할 거사를 꾸미던중 그만 경찰들에게 체포되여 해방이 될 때까지 23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했던것이다.
조국이 해방된 후에도 그는 감옥에서 쉬이 풀려나지 못했다. 미군정은 그를 정치범일뿐아니라 살인미수범이라 하여 석방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미군정을 대상으로 매일같이 항의투쟁을 벌린것도 또 그 투쟁으로 하여 아끼다형무소에서 출옥하는 그를 성대한 환영연으로 맞은것도 다 조련동포들이였다.
석방되여 도꾜로 온 그와 만난 덕수는 앞으로 조련에서 같이 일하자고 권고했다. 그 역시 그때는 감격해마지 않으며 같이 일해보자고 했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무엇때문인지 갑자기 돌변하여 조련과 엇서기 시작했다. 조선사람의 기개를 떨치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려 했던 과거의 의사가 로골적인 반동의 길로 기울어졌던것이다.
민족반역자들을 규합하여 《건동》을 조직한 그는 그것을 모체로 하여 《민단》을 꾸리고는 남조선괴뢰《정권》의 《주일국무위원》이 되여 조련일에 대해서는 한사코 방해해나섰을뿐아니라 모임때나 행사때면 괴한들을 보내여 무장습격까지 감행하군 했다.
그날 덕수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고계시던 장군님께서는 한때는 한다하던 민족주의자였던 그가 그처럼 돌변한 리유가 무엇인가고 물으시였다.
사실 덕수도 처음엔 그가 왜 그렇게까지 악착하게 나오는지 리해하기 어려웠지만 한편으로는 짐작이 가는것도 있었다. 박룡이한테는 뚜렷한 정치적신념이 없었다. 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도 무정부주의자였던 그가 택한 길은 테로였다. 민족의 거창한 힘에 대해서는 인식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다. 때문에 그는 민중을 떠난 유아독존의 허상에 불과한 자기를 영웅으로 여기였고 동포들이 그렇게 떠받들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동포들은 그를 멀리했고 그가 조련을 반대해나서자 경멸하기 시작했다. 무정부주의자의 증오심은 곧 조련을 향해 폭발했다.
덕수는 장군님께 자기의 이런 판단을 그대로 말씀올렸다.
납득이 잘 가지 않는듯 고개를 기웃해보이시는 그이께 덕수는 최근 박룡이가 처해있는 처지에 대해서도 말씀올렸다.
날이 갈수록 조련이 동포들속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데 비해 《민단》은 점점 고립되는데다가 요즘은 내부까지 복잡해져서 매일처럼 싸움판이 벌어지고있었다. 《단독선거》로 괴뢰《정권》을 조작한 리승만은 곧 일본에 자기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정한경을 주일대사로 파견하여 《민단》을 사주케 했는데 그때부터 《민단》내부는 박룡파와 정한경파의 파벌싸움으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멀지 않아 박룡이가 밀려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나도는 판이였다.
이런 내용을 말씀드리던 그때까지만 해도 덕수는 장군님께서 일본에 있는 반동세력에 대해 알아보시기 위해 박룡에 대해서 물어보시겠거니 했었다. 그러나 지영이의 말을 듣고보니 그런것만 같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박룡에 대해 물어보시던 그이께서 저쪽식탁에 앉아있는 지영이를 건너다보시던 일이 상기되자 그것이 더욱 엄연한 사실로 여겨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덕수는 곧 미닫이를 열고 옆방으로 들어섰다. 자기의 출현에 놀라면서 어색해하는 지영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는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고 누가 속을줄 아나? 총각때 체포되여 감옥살이한 박룡이한테 무슨 딸이 있단 말인가! 원 거짓말을 해도 분수가 있지.》
사실 누구든 그렇게만 알고있었다.
《정말!》
현우가 대뜸 무릎을 치며 응수했다.
《그러나 그에게 딸이 있는것만은 사실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지영이의 표정은 이것이야말로 사실이며 또 그 사실은 자신밖에 모르는 일이라는듯 정색한 표정이였다.
《박룡이가 〈천황〉암살을 준비할 때 옆에서 그를 도운 이또 후미꼬라는 일본녀자가 있지 않았습니까. 박룡이와 함께 체포되였다가 감옥안에서 자살한 녀자 말입니다. 바로 그 두사람사이에서 난 딸이 영신이였습니다.》
《?!》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덕수는 어리둥절해지고말았다.
(그들사이에 딸자식이 있었다니?)
그도 한때 일본신문들을 법석 끓게 만들었던 이또 후미꼬에 대해서 모르지 않았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신문팔이, 비누장사 등을 하면서 고생스레 자랐지만 타고난 미모로 하여 열여섯살에 벌써 유라꾸쬬에 있는 일류료정에 팔려가지 않으면 안되였던 후미꼬였다. 그때부터 박룡이와 알게 된 그는 처음에는 남달리 사내다운 박룡을 존경했으나 그 존경이 어느덧 사랑으로 변했다. 순진하고도 결곡한 성격을 지닌 후미꼬는 곧 진정으로 박룡을 믿고 따르게 되였으며 마침내는 그와 일심동체가 되여 《천황》암살을 위한 거사에까지 나서게 되였던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그만 수포로 돌아가고말았다. 두사람이 체포되자 교활한 일제는 이 사건을 곧 조선사람을 탄압하기 위한 좋은 구실로 삼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수세에 몰린 저들의 난처한 처지를 모면하기 위해 리용할 악랄한 흉계를 꾸미였다.
당시 일제는 간또대진재를 계기로 2만 3천여명에 달하는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학살한것으로 해서 일본국내에서는 말할것도 없고 국제적으로까지 비난을 면치 못하는 처지에 있었다. 이 비난과 탄핵을 모면하기 위해 놈들은 박룡의 《반역죄》를 대폭 과장할 음모를 꾸미고는 그 도구로 바로 후미꼬를 리용했던것이다. 박룡에 대한 후미꼬의 열렬한 애정을 알고있던 놈들은 그에게 박룡이가 《천황》만 아니라 《황태자》까지도 암살할 계획이였다면서 그걸 사실대로 대라고 따지고들었다.
성미가 대바른 후미꼬가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다고 부정하자 네가 그걸 직접 확인해보라면서 그를 박룡이가 있는 독감방에 밀어넣었다. 두사람의 대화가 자연 있지도 않은 《황태자》암살얘기로 번져지게 되자 악착한 놈들은 이것을 저들이 편리한대로 꾸며내여 세상에 공개했다.
그때에야 자기가 놈들에게 리용당했다는것을 안 후미꼬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에로 재촉케 한 자신의 씻을길 없는 죄책과 교활한 특고들에 대한 사무친 원한을 서슴없이 자살이라는 항거로 표시했다.
《박룡이와 이또 후미꼬에 대해서는 세상이 다 알지만 그들사이에 딸이 있었다는건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이 거사를 준비하면서부터는 갓난 딸을 숙부벌되는 집에 맡겨두었으니까요.》
지영이의 얼굴에는 흔히 자기 혼자만 알고있는 기막힌 사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이는 그런 서글픈 애소가 어리였다.
《그러다나니 영신이자신도 어릴 때 자기 부모가 누군가 하는걸 모르고 자랐습니다. 그 집에서 하숙을 하던 저 역시 그런 내용을 전혀 몰랐으니까요. 해방이 되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그의 숙부가 일본을 떠나면서 비로소 그런 사연에 대해 말해주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정으로 하여 지영이는 이번에도 그랬지만 해방후부터는 더욱 자기가 영신이를 돌보지 않으면 안될 보호자로 나서지 않을수 없었다. 학동에서 일을 보게 된 그는 영신이를 자주 학생들의 모임에도 데리고 다니였고 조국의 정세며 앞날의 희망에 대해서도 말해주군 했다. 그때 지영이는 스물네살의 열혈청년이였고 균형이 잡힌 몸매며 조화롭게 다듬어진 용모까지도 어머니를 그대로 빼닮아 지나치는 사람마다 뒤돌아보지 않을수 없게 하는 영신이는 스물두살의 활짝 핀 처녀였다.
둘이 마음만 먹으면 숙부가 물려준 집에서 얼마든지 새생활을 시작할수도 있었으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일가친척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자기들의 결혼은 응당 아버지가 출옥한 후로 미루어야 한다는 립장이였다. 또 그것이 오랜 세월 감옥살이를 한 아버지에 대한 응당한 도리라고 여기였다.
바로 그때 지영이는 장군님께서 서울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덕수를 찾아가 자기의 희망을 실현시켰다.
출옥한 박룡이가 조련을 외면하고 《건동》을 조직했다는것을 서울에서 안 지영은 불안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반동의 길로 내닫는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안절부절하고있을 영신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는가 하면 어떤 때는 밤새껏 고민으로 모대길 영신이의 모습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서울로 보내온 영신의 편지를 보니 그 불안이 현실로 되였다. 아니, 상상하던것보다 몇배 더 가혹했다.
조련학교 교원으로 일하던 자기를 아버지가 새로 생긴 《민단》학교에 강제로 끌어넣었는가 하면 거기에서 일을 못하겠다고 하자 아예 밖에도 나다니지 못하게 집에 가두어놓았다는것이였다.
이젠 무엇이 옳고그르며 어느 길로 가야 한다는것을 아는 자기로서는 아버지가 더없이 저주로울뿐아니라 더는 그런 아버지와 함께 있을수 없다는것, 때문에 어디론가 먼곳으로, 아버지가 찾을수 없는 그런 곳으로 떠날 결심이라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크면 클수록 이제 와선 어머니 생각이 나고 그때면 은연중 조선사람인 아버지와 일본사람인 어머니의 딸로 태여난 자기의 조국은 과연 어디일가 하는 생각이 가슴을 허빈다는것이였다.
얼마후 도꾜에 돌아온 지영이가 덕수에게 개별적인 사정이 있다고 한것은 바로 영신이를 만나보고 자기들 문제를 매듭지어야겠다고 결심했기때문이였다.
그때 그의 마음속에는 정반대되는 두가지 감정이 서로 다투고있었다. 하나는 박룡이가 자기들의 결합을 반대하는 경우(반대하리라는것은 명백했지만) 영신이가 바라는대로 그와 함께 어디론가 먼곳으로 가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와는 달리 아무리 영신이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해도 반동의 두목인 박룡의 딸인데야 어떻게 결합될수 있으랴 하는 계급적인 위구심이였다. 한마디로 말해 자기의 운명을 사랑의 감정에 맡기느냐 아니면 리성에 복종시키느냐 하는것인데 그는 서로 상반되는 이 두 감정중에서 어느쪽을 택하리라는 결심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박룡이를 만났던것이다.
아무말없이 지영이를 노려보던 박룡은 한마디한마디를 쪼아박듯이 말했다.
《자네가 왜 내 딸과 가까이 하려는지 모르지 않네. 자네들은 지금 딸애를 통해 나를 어째보자는건데… 말하자면 자기네쪽으로 끌어당기던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없애치우던가! 비렬하네, 어리석어! 그래 내가 그런것도 모르는 청맹과닌줄 아나? 천만에! 명심해두게만 이젠 조련이나 일공(일본공산당)이 나한테는 왜놈들보다 더 미운 원쑤로 됐단 말일세. 알겠나? 때문에 난 딸애조차 조련일을 하거나 조련사람인 자네와 가까이 한다면 원쑤로 여길수밖에 없네. 그러니 괜한 미련을 품지 말고 내앞에서 사라지는게 좋아! 어디 내가 자네들 손에 잘못되나 아니면 자네가 내 손에 먼저 잘못되나 하는건 두고보세!》
지영은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박룡에 대한 증오도 증오였으나 보다는 영신이에 대한 자기의 진정을 그가 너무나도 가혹하게 유린하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였다. 여태까지 자기를 괴롭히던 두가지 감정으로 하여 어느쪽을 택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자기가 택할 길은 바로 이 길이다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뇌리를 쳤다. 말하자면 박룡이가 한 말이 감정에 포로되여 무디여진 자기의 리성을 깨우쳐주었다. 그것은 결코 일시적인 감정에 운명을 맡겨서는 안되며 또 맡길수도 없다는 랭철한 리성의 부르짖음이였다.
(아무리 영신이가 사랑스럽다 해도 이런 무지막지한 반동의 딸하고야 어떻게…)
그날 저녁 자기를 찾아온 영신이에게 자기들관계가 더는 지속될수도 없고 지속되여서는 안된다는것을 선포한 지영은 다음날 분연히 서울로 건너가고말았다.
그러다가 올해 봄 그는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라는 덕수의 지시를 받았던것이다.
사실 그때의 그의 심정은 이젠 영신이를 영영 만나지 못한다는것으로 하여 슬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저로서도 헤여나기 힘든 운명의 갈림길에서 벗어나 새 출발하게 된것이 다행스럽기도 했었다.
《그랬단 말이지…》
지영이의 말을 듣고나니 덕수는 어쩐지 한숨이 새나왔다. 지영이에게 그런 사정이 있었다는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탓으로 그에게는 물론 영신이 마음에도 상처를 입혔다는 자책감과 함께 본의는 아니라 해도 자기가 두사람의 결합을 방해했다는 일종의 자격지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보다 더 가슴을 허비는것은 세상에 사랑이 빚어내는 비극이 많다고 하지만 과연 이처럼 기구한 사랑도 있을가싶은 통절함, 이것 역시 남북으로 갈라진 조국의 현실로 하여 일본에서도 조련과 《민단》으로 갈라져있는 가슴아픈 력사가 빚어낸 비극이 아닐수 없다는 비탄이였다.
《참!》
덕수는 얼른 지영이를 마주보며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동무의 그런 사정을 혹시 장군님께서 알고계시는게 아닌가?》
고개를 숙이는 지영이의 얼굴에는 못내 송구스러워하는 빛이 어리였다.
《알고계십니다. 나이가 있는데 왜 장가를 가지 않았느냐고 물으시기에 영신이와 있었던 일에 대해 말씀드렸지요.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이 심중한 안색을 지으시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전 말씀드렸지요. 첨엔 보고싶기도 했고 생각나기도 했지만 이젠 괜찮다고 또 아무리 생각한대야 우리의 처지에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사실 영신이 생각이 날 때면 마음이 괴롭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상처라는건 첨엔 피가 나고 아프다가도 시간이 가면 아물기마련이 아닙니까. 이젠 저도…》
지영이는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태연한 표정을 지어보였으나 목소리에는 어딘가 한가닥의 구슬픈 애수가 깃들어있었다.
이때 마당에서 자동차소리가 나는가싶더니 이어 문이 벌컥 열리였다.
뜻밖에도 군복을 입은 최진이 방안에 들어서는 바람에 모두들 어리둥절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평양에서 오는 길인듯싶었으나 최진은 수인사 한마디 없이 곧바로 덕수앞으로 다가섰다.
《한덕수동지! 장군님께서 대표단일행과 함께 곧 평양으로 오시랍니다. 평북도일대를 현지지도하시던 장군님께서는 대표들이 려독을 충분히 풀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정세가 그럴 여유를 주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앞으로의 재일조선인운동에 대해 토론해야겠다고 하시였습니다.》
《?!》
대표단성원들은 하나같이 굳어진채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