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1 장

5

 

지방참관을 위해 평양을 떠난 덕수네 일행은 먼저 남포유리공장을 돌아보았다.

장군님을 모시고 지난밤을 꼬박 밝히다싶이 했지만 모두들 피곤한 기색은커녕 형용할수 없는 기쁨에 떠있었다. 일군들의 사업정형이며 동포들의 생활형편에 대해 알아보시다가도 대답을 올리는 대표들의 눈에 눈물이 어리면 서둘러 화제를 돌리군 하시던 장군님이시였다.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은 행복한 밤이였다. 장군님께서 권하시는 소문난 평양랭면이며 군밤, 황주사과를 맛있게 들며 어머니조국의 뜨거운 정을 한껏 체험한 잊지 못할 밤이였다.

창가에 아침노을이 비끼고 부관이 들어와 평북도로 떠나실 시간이 되였다고 말씀드릴 때에야 대표들은 비로소 하루밤을 꼬박 밝혔음을 깨달았다. 장군님께서 쉬지도 못하시고 먼길을 가셔야 한다는 생각에 죄송함을 금할수가 없었으나 그이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동무들은 눈을 좀 붙이라고 하시였다.

하지만 대표단일행은 그시로 평양을 떠나 남포유리공장을 돌아보았고 다시 경치가 좋기로 소문난 우산장에서 하루밤 쉬고나서 오늘 황해제철소에 이르렀다.

남포에서도 그랬지만 황철을 돌아보면서 덕수는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선 조국인민들의 기세를 더욱 절감했다. 그야말로 온 나라가 최고의 애국열의로 용해로안의 용금처럼 부글부글 끓어번지고있었다.

어딜 가나 새해부터 시작될 첫 2개년인민경제계획을 승리로 장식할 힘있는 구호들이 기폭처럼 나붓기는가 하면 또 어딜 가나 《장하고나 우리들은 힘찬 근로자》하는 노래소리가 노래그대로 정말 힘차게 울려퍼지고있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한결같이 싱싱한 활력과 생기가 넘쳐나고있었는데 그것은 비로소 참된 생활을 맛보는 사람의 행복에 넘친 생기였으며 그 생활을 맘껏 향유하게 된 사람의 기쁨에 겨운 활력이였다.

숙소에 돌아오기 바쁘게 책상에 마주앉은 덕수는 일기장을 펼쳐놓긴 했으나 오늘 보고 느낀것들중에서 어느것부터 적었으면 좋겠는지 종잡을수가 없었다. 그만큼 모두가 신기하고 놀랍고 새로운것들뿐이였다.

문득 일본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래지던 파철관리공아주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일본에서 오셨단 말이우? 그런데 용케도 팔다리가 성하구려!》

보매 그는 일본에 끌려간 사람이면 누구나 팔이 부러지든가 다리병신이 되는줄 아는 모양이였다.

《우리 옆집에 있는 돌이 아버지도 징용에 끌려갔다가 반신불구가 돼왔어요. 글쎄 해방전엔 할수없이 끌려갔으니 그렇다치고 해방이 되구 나라가 섰는데야 무엇때문에 거기서 산단 말이우. 어서 와요, 예? 여기 와서 우리와 함께 삽시다. 요즘은 글쎄 맹물에 자갈을 끓여먹어도 그저 살이 폭폭 질것만 같아요. 호호!》

모두들 그의 말에 따라웃었지만 덕수는 웃을수가 없었다.

(그래! 바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텐가! 여태껏 꿈으로만 여기던 생활이 현실로 펼쳐진데 대한 희열, 또 그 희열이 영원히 자기의것으로 된데서 오는 열광!)

문득 일본에 있는 안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른새벽이면 어김없이 어린것을 둘쳐업고 직업소개소들을 전전하는 수임이, 그러다가도 자기의 아침때식이 늦을가봐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올 땐 온몸이 땀에 젖어있군 했다. 그런 모습이 안스러워 굶더라도 일판에는 나가지 말라고 하면 그는 도리여 밝게 웃으며 대꾸했다.

《걱정마세요. 그저 일이 아부지만 건강하믄 됩니더.》

사실 말로는 굶어도 일판에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그런 품팔이라도 하지 않으면 끼니를 잇지 못하는것은 물론 방세, 물세, 전기세의 부담조차 이겨낼수가 없는 형편이였다.

그런 안해가 조국의 이런 생활을 본다면 얼마나 놀랍고 기뻐할것인가! 조국에 올 때조차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얼마동안 온천에 다녀오겠다고 할수밖에 없었던것이 지금에 와서는 더없이 마음에 걸렸다. 생각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안해와 아이들을 조국에 건너오게 한 다음 이 꿈같은 생활을 맘껏 누리고만싶었다.

참으로 일본과는 너무나도 판이한 대조를 이루고있는 조국의 현실이였다.

역기다림칸이나 지하도의 어둑컴컴한 구석마다에서 누렇게 뜬 얼굴로 오가는 행인들에게 동냥을 바라는 거지만 해도 수십만을 헤아리는 일본, 매일같이 강도, 살인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가 하면 도처에는 사창굴이 조수처럼 범람하는 세상, 법이며 질서가 혼란속에 파묻힌 그 무법천지를 해방군의 탈을 쓰고 일본을 점령한 40만이나 되는 미군들이 더욱 타락의 시궁창으로 변질케 하고있었다.

제놈들이 지른 전쟁의 불길에 꺾이우고 찢기우고 뿌리채 드러나 이젠 온갖 더러운 벌레들이 창궐하여 썩을대로 썩어가는 고목이 일본이라면 조국은 그와는 반대로 바야흐로 푸른 언덕에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푸르싱싱한 아지를 하늘높이 뻗치며 기운차게 자라나는 백양나무의 기상이였다.

조국의 현실에서 덕수가 무엇보다 감동된것은 인민들의 생활과 교육에 대한 공화국정부의 시책이였다.

《해방》담배  한곽에 20전, 쌀 한되에 7원 50전 하는데 로동자들의 한달로임은 평균 800원부터  1 200원이였다.  기술자들은 1 500원이나 된다고 했다.

배급량도 어른 한사람당 4홉 2석으로서 일본에서 주는 2홉 7석보다 훨씬 많은 량이였다. 그런가 하면 정부에서는 래년부터 실시될 초등의무교육제에도 각별한 관심을 돌리고있었는데 도시마다 중학교, 전문학교들이 한창 설립되는가 하면 농촌에서는 성인학교까지 설치되여 문맹퇴치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있었다.

우산장휴양소가까이에 있는 성인학교에 들려보았을 때였다. 갈노전을 깐 방바닥에 중년사나이들과 아낙네들은 물론 머리를 박박 깎은 로인들까지 오구구 모여앉아 스무살도 안된 쌍태머리처녀선생을 쳐다보고있었다. 그런 모습도 모습이였지만 더 우스운것은 수업하기에 앞서 함께 부르는 노래였다.

 

글장님된 애달픔을 한탄만 하지 말고

일하고난 틈을 타서 배우고 또 배우자

앞선이는 이끌어서 뒤선이는 따라서서

가갸거겨고교구규 우리 글 몰라서야 수치지

이것도 모두다 새 나라의 덕이라네

내 나라 글이니 배워야지 배워야지

아 - 암 배워야지

 

남정들의 굵은 목소리에 청높은 아낙네들 소리, 거기다가 구새먹은듯 한 로인들의 속궁근 소리까지 합쳐나오는 바람에 덕수는 웃음을 터뜨리고말았다. 은연중 자기도 그들속에 뛰여들어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싶었다. 꿈속에서나마 누려보고싶던 생활이 조국땅 가는곳마다 눈앞에 현실로 펼쳐져있었다. 그 생활속에 풍덩 뛰여들어 뒤늦게나마 새 조국건설을 위해 한껏 일해보고싶은 충동을 누를수가 없었다.

그중에도 장군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일하고있는 지영이의 모습이 제일 가슴을 달아오르게 했다. 그를 련석회의 조련대표로 파견할 때까지만 해도 일가친척 하나 없는 혈혈단신인데다가 아직 가정도 꾸리지 못한 총각이라는것으로 하여 은근한 걱정조차 없지 않았는데 웬걸, 조국에 와서는 영광의 절정우에 솟아있는것이 아닌가!

그런 지영이를 대할적마다 덕수는 저도 모르게 자기가 평생을 바쳐 이루어보려고 애쓰던것을 그는 한순간에 이룩한 무상의 행복자라는 부러움과 함께 마음 한구석으로는 저도 모르게 어떤 시샘 비슷한 감정이 솟구치기도 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사람의 운명이란 참…)

지영이를 생각하느라니 은연중 그와 처음 만나던 때의 일이 떠올랐다.

덕수가 지영이를 만난것은 해방된 그해 겨울 조련이 결성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다.

자기는 스물네살난 와세다대학중퇴생이며 량부모는 관동대진재때 왜놈들에게 학살당했다는것 그리고 지금은 학동(재일조선학생동맹)총무부장으로 일하고있다는것을 밝히고난 그는 한가지 제기할 문제가 있어서 왔다고 했다. 첫눈에도 몹시 얌전하고 순박해보이는 젊은이였으나 제기하는 문제는 의외에도 왕청같은것이였다.

《절 서울에 보내달라는겁니다.》

《서울에?》

서울에 다니는 사람들을 좋지 않게 보고있던 덕수는 대뜸 맞갖잖은 눈길로 그를 마주보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전 서울에 가야겠습니다.》

그의 태도는 마치 무슨 문제를 제기하러 온것이 아니라 자기의 결심을 알리기 위해 온 사람인듯 했다.

《그래 서울로 가자는 목적은 뭐요?》

《제가 서울로 가자는건 바로 김일성장군님께서 서울에 나오신다기때문입니다. 여기서 평양을 가기는 어렵지만 서울이야 왜 못간단 말입니까?》

《?!》

덕수는 놀란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엇보다도 장군님께 나라를 찾아주시여 고맙다는 인사를 올려야지요. 그리고 연설도 하실텐데 그 내용들을 동포들에게 알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실상 덕수 역시 장군님께서 서울로 오신다는 련락을 들은 다음부터는 진정할수 없는 마음이였다. 많은 동포들이 그것이 사실인가고 또 그게 언제인가고 무시로 전화를 걸어오는가 하면 일본신문들까지 서울에 조직된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 활동정형을 수시로 보도하고있었다.

《전 의장동지가 일제때부터 장군님을 찾아뵙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가 하는걸 다 알고있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해서라도 절 꼭 좀 서울로…》

단호했던 지영이의 표정은 어느새 어떤 친밀감-당신은 날 잘 모르지만 난 당신을 알아도 구체적으로 알고있다는, 때문에 그런 사정을 봐서라도 자기를 도와주리라는것을 믿어마지 않는다는듯 한 기대가 어려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얌전하고 온순해보이지만 속은 능청스러운데도 없지 않는 친구였다.

《그렇게만 해주면 전 그걸 저 혼자의 소원이 아니라 의장동지의 소원으로 함께 여기고 기어이 성사시키겠습니다.》

덕수는 가슴이 뭉클했다. 어제날도 그랬지만 오늘에 와서는 더욱 간절해지는 소망, 자나깨나 가슴을 태우는 자기의 그 열망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이루어보려고 애쓰는 지영이를 만난것이 마치 막역지우를 찾은것처럼 기쁘고 반가왔다. 또 그런 지영이가 더없이 고맙고 대견하기 짝이 없었다.

《고맙네, 내 마음을 리해해주어서. 동무가 서울에 가도록 내 노력해보지. 그러나 알아야 할건 동무의 그 소원이 우리 둘만의 소원이 아니라 재일동포모두의 한결같은 소망이라는걸 명심하는거네. 알겠나?》

그리하여 덕수는 곧 지영이를 서울에 설치돼있는 조련서울위원회의 추가성원으로 망라시켰던것이다.

그렇게 떠난 지영이가 다시 자기앞에 나타난것은 그때로부터 반년이 지난 이듬해 여름이였다. 그때는 이미 서울에 둥지를 튼 미군정으로 하여 남조선정세는 날로 험악해지고있었고 그런 사정으로 해서 장군님께서 서울로 가시기가 어렵다는것이 불보듯 명백해진 때였다. 지영이가 왜 돌아왔는가 하는것이 리해되고도 남았으나 덕수는 제잡담 그에게 들이댔다.

《설사 사정이 달라졌다 해도 동문 자기 임무를 수행했어야지. 사정이 어려울수록 그 일에 더 달라붙어야 한단 말일세. 지금 동포들이 무얼 바라고있나? 장군님께서 북반부에 어떤 정책을 펴시면서 새조국건설을 이끌고계시는가, 또 날로 복잡해지는 남조선현실을 어떻게 보시고 나라의 통일을 위해선 어떤 방침들을 제시하시는가 하는게 아닌가! 이 모든 사실을 여기서는 알기 어렵지만 서울에서는 노력하면 얼마든지 알수 있는게 아닌가! 그런데 그걸 알아볼 생각은 못하고 장군님께서 서울에 오시지 않는다고 그냥 돌아오다니?》

《…》

고개를 숙인채 아무 대답도 못하고있던 지영은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다시 서울에 가서는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본에 온건 한가지 사정이 있어섭니다.》

그의 눈빛이며 억양으로 보아 그 사정이라는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하고도 절박한 문제라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저 개인에 한한 일인데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매듭짓지 않으면 안될 문제지요. 서울에 가도 그 문제를 처리한 다음에 가도록 해주십시오.》

그제야 덕수는 지영이한테도 그를 둘러싼 생활이 있다는것이, 더우기 한창 젊은 나이고보면 그것이 더없이 다양하고 복잡할수도 있다는것이 느껴지면서 일단 일을 맡기기만 하면 사업에 대해서만 따질뿐 그자신의 생활에 대해서는 등한히 하군 하는 자신의 버릇이 뉘우쳐졌다.

결국 그해 가을에야 다시 서울로 건너간 지영이였다.

그가 서울에 가서부터 그자신의 임무는 물론 조련서울위원회의 사업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김일성동지께서 공장이나 농장들을 현지지도하신 사실들과 회의에서 하신 연설들이 《해방신문》에 게재되는가 하면 토지개혁과 산업국유화가 실시되고있는 북반부의 소식이 그의 이름으로 자상히 소개되기도 했다.

비록 오랜 생활을 통해 아는 사이는 아니였지만 자기 일을 그처럼 책임적으로 또 착실하게 수행해나가는 지영이에 대한 호감을 새삼스레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한데 올해 봄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련석회의에 조련이 참가할 문제가 토론되면서 중총에서는 일본에서 대표들을 파견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조련서울위원회에 있는 일군들중에서 대표를 선발하기로 했다. 그때 덕수는 서슴없이 지영이를 대표명단에 찍어넣었던것이다.

그렇게 헤여진 지영이를 원산에서 다시 만난 순간 덕수는 이름할수 없는 반가움과 함께 외무성의 일군으로까지 성장한 그가 더없이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나 그 미더움은 날이 갈수록 놀라움으로 변했고 그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오늘에 와서는 말로는 다 표현할수 없는 부러움으로까지 바뀌였던것이다.

첫날 남포유리공장을 돌아보고난 후 다음참관지가 어디냐고 묻자 여기에서 멀지 않은 우산장휴양소라는 지영이의 대꾸였다.

《아니, 휴양소라니? 우리가 뭐 조국에 휴양을 하러 온거야 아니지 않나. 그러지 말고 다른데로 가자구!》

《미안합니다만 그렇게는 할수 없습니다.》

지영이의 태도는 비록 옛날에는 자기가 지시를 받는 처지에 있었지만 조국에 와있는 이상은 응당 자기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겸손한 우월감이 어려있었다.

《못하다니? 자네 보아하니 그새 사람이 꽤 딱딱해졌네그려!》

《딱딱해졌다고 해도 비뚤어졌다고 해도 어쩔수 없습니다. 대표단의 참관대상이며 일정들을 일일이 짜주신 장군님께서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적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자신께 빠짐없이 전화로 보고하라고 하시였으니까요.》

그 말에 덕수는 굳어지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들에 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관심에 도 놀라왔지만 지영이가 아무때나 스스럼없이 장군님께 전화를 한다는 사실이 놀라왔던것이다. 그런데 더 아연해진것은 지영이의 다음말이였다.

《의장동지가 정 바란다면 장군님께 보고드리고 행선지를 바꾸어보도록 하지요. 그러니까 우산장에 들리지 말고 곧바로 황철로 가자는거지요?》

장군님께 보고올리고 허락받는것쯤은 자기한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뿐더러 자기의 요구라면 장군님께서도 기꺼이 들어주시리라는 확신에 넘쳐있는 지영이를 보며 덕수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니 됐네, 그만두게. 바쁘신 장군님께 괜히 하찮은 일로… 그냥 우산장으로 가세!》

우산장휴양소에 들려 아름다운 호수가에 자리잡은 정각들을 돌아볼 때였다. 문득 생각난듯이 한마디 하는 지영이의 말에 덕수는 또다시 기가 질리고말았다.

《장군님께서는 련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서 온 김구, 김규식선생은 물론 저도 이 우산장에 불러주시였습니다. 바로 저 휴양각앞에 있는 풀밭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그때 제가 장군님 잔에 술을 부어드렸지요.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가 일본에서 왔다는걸 소개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것이였습니다.

〈난 이 동무를 볼 때마다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일본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도 난 앞으로 이 동무를 내 가까이에서 일하게 하려고 합니다. 아무때나 볼수 있고 만날수도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시고는 공화국이 창건되자 곧 저를 부르시여 외무성에서 아시아나라들과의 사업을 맡아보라고 하시면서 사업에서 제기되는것은 말할것도 없고 개인적인 문제에서도 무슨 일이 있을 때면 사소한것이라 해도 서슴지 말고 자신을 찾아와야 한다고 하시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에야 덕수는 비로소 자기가 여태껏 지영이가 누리고있는 행복의 겉만 보고 놀라와했다는것을, 실제에 있어서는 몇배 더한 행복의 알찬 속살이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확실히 지영이에게는 일반사람들한테서는 느낄수 없는 고유한 특징, 남다른 믿음과 사랑속에서 사는 사람에게만 특유한 그런 긍지와 자부심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더없이 소박하고 겸손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도 그것을 깨닫고있을뿐아니라 자기로서는 그것을 될수록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어쩔수없이 뿜어져나오는듯 했다.

그때마다 덕수는 그가 부럽다못해 마치도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그가 차지하고있는듯 한 느낌이 들면서 이제라도 이루지 못했던 소망, 이젠 눈앞에 펼쳐져있어 결심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자기의것으로 될수도 있는 그 소원을 이루어야 하리라는 충동에 사무치는것이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 충동은 곧 거대한 담벽에 부딪치군 했는데 그것은 자기의 어깨우에 지워져있는 무거운 임무와 사명감에 대한 자각이였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것이여서 이번에는 기어이 실현하리라는 불같은 욕망과 자기의 처지에서는 그래선 안된다는 랭철한 리성이 마주 부딪칠 때면 그는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터뜨리군 했다.

지금도 그는 일기장을 펴놓고 책상에 마주앉아있기는 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수 없는 이런 번뇌로 하여 혼자 모대기고있었다.

그러나 옆방에서는 행복에 취한 젊은이들이 여전히 법석 고아대고있었다.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