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 1 장

4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덕수는 집무실에 있는 기물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장군님께서 계시는 집무실치고는 너무나도 소박했다.

책상이며 책장들은 말할것도 없고 창문가에 놓여있는 원탁도 더 크고 윤기가 도는것이면싶었고 쪽무이를 깐 마루바닥도 좀더 이를 맞추고 면을 고루었으면싶었다.

출입문옆에 놓여있는 화분에 시선이 미친 그는 은연중 미간이 쪼프려졌다. 그것은 그 나무가 볼만한 관상용화초도 아닌 평범한 고무나무라는데도 있었지만 한쪽으로 삐여져나간 가지를 끈으로 비끄러맨것이 분명 장군님께서 직접 손을 대신것이 헨둥했기때문이였다.

(그러니 이 내각청사에 원예사나 정원사도 한명 없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는 옆에서 자기를 유심히 지켜보고있는 사람과 눈길이 마주쳤다.

박헌영부수상이였다. 검은테안경속에서 자기를 곧바로 응시하고있는 두눈이며 꾹 다물린 입모습은 첫눈에도 무척 과묵한 사람이라는 인상과 함께 모르긴 해도 그가 첨부터 자기를 주시하고있었다는것을 짐작케 했다.

박헌영에 대해서는 덕수도 어느 정도 알고있었다.

일찌기 상해에서 청년운동을 시작한 후 국내에 들어와 활동하다가 체포되여 감옥생활, 그러나 곧 정신병이라는 위장진단으로 가석방되여 쏘련으로 탈출, 거기서 대학을 다니다가 다시 상해로 들어왔으나 재차 검거, 해방후 서울에서 공산당을 조직했지만 놈들의 탄압이 심해지자 월북…

해외활동과 감옥살이로 일관되다싶이 한 그의 경력이였다. 그러나 덕수는 처음부터 그를 소격하게 대했는데 그 리유는 바로 지금 일본공산당 중앙후보위원으로 있으면서 조련일군들의 양성기지의 하나인 3. 1정치학원 원장이기도 한 원철이때문이였다.

해방직후 서울에 있는 박헌영을 찾아가 만나군 한 원철은 일본에 돌아오기만 하면 박헌영을 마치 무슨 영웅처럼 떠들어댔던것이다.

오직 김일성장군 한분만이 조선은 물론 5대양 6대주가 다 쳐다보는 세계의 위인이라고 확신해마지 않는 덕수에게는 누가 어떻고 누가 어떻다고 떠드는 사람을 볼 때면 그 사람에 대한 가소로움은 말할것도 없고 그가 우상으로 받드는 사람까지도 저절로 우습게 여겨졌는데 처음보는 박헌영에 대해 소외감이 생기는것도 바로 원철이때문이였다.

다른 문제도 그랬지만 사람에 대한 평가에서는 아주 명백한 견해를 가지고있는 덕수였다. 누구에 대해서건 그 사람을 제대로 알자면 후에 가서 바로잡기 힘든 오해나 편견에 떨어지지 않도록 두고두고 심중히 그리고 심사숙고해야 한다는것을 철칙으로 여기고있는 그였으나 그 철칙이 보다 더 철저한 하나의 원칙에 준해있었다. 그 원칙이란 바로 상대가 장군님을 어떻게 받들고 따르는가 하는 그것이였다.

아무리 빛나는 투쟁경력이 있고 아는것이 많다 해도 그가 이 원칙에 어긋나는 사람일 땐 사소한 아량이나 묵과도 없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드러내놓고 타매하고 질시하는것은 물론 나아가서는 아직도 하늘이 어디고 땅이 어딘지 분간도 못하는 불쌍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가련한 존재로 치부해버리는것이였다.

《원철동무가 잘 있습니까?》

마침내 박헌영이 입을 열었다. 어조는 부드러웠으나 변함없이 곧은 시선에는 자기가 잘 아는 사람에 대한 안부를 묻는다기보다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물음이라는 뜻이 더 강조되여있었다. 보매 그는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는 누구한테나 그런 태도를 취하는데 버릇돼있는것 같았다.

《난 이번에 그 동무도 올줄 알았는데…》

《그 동문 요즘 몹시 바쁜것 같습니다. 아마 다가오는 중의원선거때문에…》

덕수는 하던 말을 중둥무이하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의 커다란 목소리로 하여 대표단성원들과 담소하시던 장군님께서 이쪽으로 돌아보시였기때문이였다.

무슨 말을 할 때면 때와 장소에 맞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할줄도 알아야겠으나 그런 조절을 제대로 할줄 모르는 덕수여서 본의아니게 분위기를 휘저어놓을 때가 있었다.

《원철이라고 일본공산당에서 김운해동무와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얘기입니다.》

박헌영이 안경을 밀어올리며 자리를 고쳐앉는 품이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그에 대해 장군님께 보고드려야겠다고 맘먹은것 같았다.

《감옥살이를 하다가 해방이 되여서야 출옥한 동문데 일류대학 정치과 출신으로 리론에도 밝고 통솔력이 있어서 일본공산당내에서는 유망한 일군으로 꼽히고있습니다. 해방직후 서울에 온 그를 두어번 만나보았는데 열정도 있고 포부도 아주 큰 동무였습니다.》

《나도 일본공산당안에 조선인활동가들이 여럿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 중책을 지니고있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장군님께서는 덕수를 보며 물으시였다.

《중앙위원들과 후보위원들을 합치면 도합 열세명인데 그중 다섯명이 조선사람입니다. 김운해동무가 중앙위원이고 나머지 네사람은 후보위원들입니다.》

《열세명중 다섯명이면 근 절반이라는 소리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럴수밖에 없었던 사정이기도 했습니다.》

침착한 어조로 이렇게 덧붙이는 박헌영의 태도는 그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자기가 사정을 잘 알고있다는것을 확신해마지 않는 태도였다.

《원래 해방전부터 일본공산당에는 조선인활동가가 적지 않았는데 그들은 해방이 되자 곧 조련을 뭇고 독자적인 활동을 벌렸습니다. 그러나 일본공산당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리유는 당핵심들이 투옥돼있어서 당을 재건할수가 없었던것입니다. 이때 그들의 석방을 위한 투쟁을 벌린것이 바로 조련과 재일동포들이였습니다. 결국 그 투쟁으로 하여 핵심들이 감옥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당을 재건할 조직적지반이나 물질적기초는 없었습니다. 이런 때 그들을 다시 도와준것이 또 조련이였습니다. 바로 이런 사정으로 해서 자연 일본공산당안에는 조선인일군들이 늘어난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당핵심들이 감옥에서 나온것은 말할것도 없고 그들이 당을 재건할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조련때문이였습니다.》

덕수는 내심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외무상을 겸한 부수상이긴 하지만 그가 조련과 일본공산당과의 관계를 그처럼 깊이 파악하고있을줄은 몰랐었다. 한마디로 표현한데 지나지 않지만 일본의 실정을 구체적으로 알고있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말이였다.

《그러니까 지금 있는 일본공산당이 조련에 의해 재건됐다 그 말입니까?》

장군님께서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박헌영을 바라보시였다.

《…》

박헌영은 웬일인지 말을 잇지 못했다.

덕수는 일본의 형편에 대해서는 자기가 말씀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장군님! 재건된 일본공산당은 사실 조련에 의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덕수동무도 그렇게 생각한다?》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난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그들을 도와준것이지 조련이 일본공산당을 재건시켰다고 할 근거로는 되지 못합니다. 일본공산당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일본공산당원들자신입니다. 핵심들이 오래동안 감옥에 있은것으로 하여 조직적기초가 약했다 해도 결코 당의 명맥이 끊어진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동안 많은 준비를 했다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나는 일본공산당이 가따야마때부터 자기의 훌륭한 전통을 가지고있고 오늘은 그 전통을 실천으로 보여주고있다고 봅니다.》

덕수는 새삼스런 눈길로 장군님을 우러렀다. 일본공산당이 재건되고 그 력량이 확대된것이 전적으로 조련의 도움때문이라고 여겨온 자기의 일면적인 생각이 돌이켜지기도 했거니와 세상을 대하시는 장군님의 안목, 특히는 한 나라 당의 존엄을 귀중히 여겨주시는 장군님의 넓으신 도량에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나도 45년말에 일본으로 돌아가는 노사까 산조를 만난적이 있습니다. 오래동안 국제당에서 사업하다가 2차대전시기에는 중국연안에서 반제운동에 종사했던 그가 15년만에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평양에 들렸댔습니다.》

그때 일이 생각나는듯 장군님께서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시였다.

《그때가 지금처럼 추운 겨울인데도 그는 해진 군복을 그대로 입고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결심만은 훌륭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일본의 민주화를 위해 또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하면서 그러기 위해 공산당을 인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지지받는 당으로 만들겠다는것이였습니다. 바로 그런 정신이 다 일본공산당의 오랜 전통에서 이루어진것이 아니겠습니까.

일본에 돌아가도 지금은 옷 한벌 해입기가 바쁠테니 여기서 해입고 가라고 외투감을 주었더니 그는 그것을 기념으로 가지고 가겠다면서 종내 해진 군복을 그냥 입은채 돌아갔습니다.》

그때 일본으로 돌아온 노사까가 신문에 발표한 장군님에 대한 인상기의 구절이 지금도 덕수의 머리속에는 생생하니 기억되였다. 오래동안 국제당집행위원으로 있으면서 각국 공산당활동가들을 많이 접해본 노사까가 쓴 글이라는데서 더 관심을 가졌는지도 몰랐다.

…그이의 소탈한 인품과 다심한 인정에 감동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보다 더 나를 감동시킨것은 그이께서 지니고계시는 뜨거운 동포애였다. 국제적으로는 아직 전후처리가 결속되지 않았고 남북관계 역시 복잡했지만 그이께서는 그런것은 후차라고 하시였다. 찾아놓은 나라야 어디로 가겠느냐고 하시며 이제부터는 겨레를 찾고 민족을 하나로 묶어세우는것이 선차라고 하시였다.

그중에서도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들이 걱정이라고 하시면서 해방전에 남다른 고생을 한 그들이기에 더욱 마음에 걸린다고 하시였다. 두차례 만날 때마다 그이께서 제일 많이 하신 말씀은 그들에 대한 걱정이였고 그들을 옆에서 잘 도와달라는 부탁이시였다. 나는 그이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이 이처럼 뜨거운 지도자가 있었던가 하고 국제당에서 만나본 여러 나라 지도자들을 상기해보았다.…

《덕수동무! 이젠 우리 동포들에 대한 얘기를 들어봅시다.》

이제까지는 서론에 지나지 않고 이제부터야말로 본론이라는듯 장군님께서는 자리를 고쳐앉으며 말씀하시였다.

《대체로 직업이 없이 살아가고있다는건 알고있는데 그런 형편에서 식량은 어떻게 해결하고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고있습니까?》

동포들의 생활형편에 대해 말씀드리자고 생각하니 덕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그것이 장군님께 보고드릴 내용중에서 중요한 문제여서 머뭇거릴수가 없었다.

절대다수의 동포들이 탄광이나 광산, 군용기지건설장에서 고용살이를 하다가 해방을 맞았기때문에 온전한 직업을 가질수가 없었다는 사정과 전후 파국상태에 이른 일본경제가 동포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하고있다는데 대해 덕수는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며 말씀올렸다.

사실 대다수의 동포들이 하루살이막벌이를 하고있는 형편이였다. 넝마나 파철을 줏는가 하면 남새를 길러 팔기도 하고 돼지를 치기도 했다. 로력자가 없는 집에서는 부득불 술을 고아 팔기도 했는데 놈들은 이것마저 갖가지 구실을 붙여 탄압하고있었다.

장군님의 안색이 흐려지신것을 본 덕수는 얼른 힘을 주어 뒤를 달았다.

《그렇지만 저희들은 놈들의 부당한 탄압에 단합된 힘으로 맞서고있습니다. 동포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길은 오직 생활권을 확보하는데 있다는 구호를 내걸고 일본당국에 안정된 직업을 줄것을 완강하게 들이대고있습니다. 이젠 우리도 자신의 권익을 요구할수 있는 당당한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덕수가 하는 말마디에 담긴 의미들을 가늠해보신듯 잠자코 계시던 그이께서는 혼자소리처럼 되뇌이시였다.

《그러니 동포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아가고있습니까. 물론 공화국이 창건된것으로 하여 동포들의 지위가 전과는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동포들에 대한 미군정과 일본당국의 태도입니다. 지금 미제와 일본당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실시하고있는데 앞으로도 그 립장에는 변함이 없을것입니다. 한달전에 일본에 건너간 리승만이가 맥아더나 요시다를 만나 떠들어댄것만 보아도 그것을 잘 알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앞으로는 동포들의 처지가 더 어려워질수도 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그건 그렇고 모든 동포들이 그처럼 어렵게 사는데 아이들에 대한 교육은 어떻게 하고있습니까?》

문득 반가운 일이 상기되신듯 그이의 눈가에는 밝은 미소가 어리시였다.

《우리도 지난 4월에 있은 교육투쟁에 대해서는 〈해방신문〉을 통해 알고있습니다. 한싱지방동포들이 근 다섯달동안이나 완강한 투쟁을 벌린 끝에 끝끝내 민족교육의 권리를 지켜낸 사실말입니다. 자기 조국에 대한 사랑, 특히 자기 나라 말과 글까지 빼앗겼던 지난날의 원한을 자식들에게는 다시 되풀이되게 할수 없다는것을 자각한 우리 동포들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희생적으로 싸울수 있으며 또 승리할수 있겠습니까. 아주 자랑찬 성과입니다. 그래 지금 일본전국에 우리 학교가 얼마나 됩니까?》

《근 500개의 학교에 6만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공부하고있습니다.》

덕수가 올리는 대답에 장군님께서는 무척 놀라시였다.

《500개의 학교에 6만명의 학생이라… 대단하구만, 대단해!》

이것이야말로 정말 기쁜 일이 아닐수 없다는듯 그이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이때 출입문이 열리면서 최진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군복차림인 그에게 쏠렸지만 그는 그런것은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성큼성큼 장군님께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뭐라고 조용히 말씀올렸다.

《준비가 됐단 말이지요? 그렇다면 갑시다. 그런데 조국에 온 대표동무들이 섭섭하지 않게 차렸는지 모르겠구만, 자- 이젠 우리 가서 식사나 하면서 얘길 합시다.》

자리에서 일어나신 장군님께서는 따라일어서는 덕수에게 말씀하시였다.

《오늘은 밤새껏 동무들얘기를 들으려고 합니다. 래일부터 며칠간 평북도와 수풍지구로 출장을 떠나야 하기때문에 부득불 오늘은 밤샘을 해야 할것 같습니다. 그러니 동무들도 아예 눈을 붙일 생각은 않는게 좋겠습니다. 자신있습니까?》

장군님의 건강이 념려된 덕수는 어떻게 대답드릴가 하고 망설이는데 옆에 있던 현우와 서민이가 일시에 환성을 올렸다.

《좋습니다, 장군님!》

좋아서 어쩔바를 몰라하는 그들을 장군님께서는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내가 출장가있는 사이 동무들은 평양이며 가까이에 있는 공장이나 농촌들을 돌아보십시오. 그러면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선 우리 인민들의 기세가 어떤가를 다소나마 알게 될겁니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덕수를 앞세우고 출입문을 나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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