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2

 

정원으로 나오신 장군님께서는 소담스레 쏟아지는 눈을 그대로 맞으며 느티나무가 서있는 아래쪽으로 향하시였다. 꽃잎같은 눈송이들이 머리우에, 어깨우에 쉼없이 내려앉았지만 그이께서는 그렇게 눈을 맞는 멋이 더 즐거운듯 마냥 다감한 표정이시였다.

《재일조선인대표들이 조국에 왔다는 말을 들으니까 난 어쩐지 혁명의 초시기 함께 싸우던 전우들 생각이 납니다. 특히 김혁이나 차광수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그들도 한때는 일본땅에서 고생을 하다가 혁명을 하겠다고 우리를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였습니까.》

미덥고 다정한 사람에 대해 상기할 때면 늘 그런것처럼 장군님의 눈가에는 따뜻한 정회의 빛이 어리였다.

《한덕수동무도 벌써 오래전에 우릴 찾아오려다가 놈들에게 붙잡혀 숱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젊었을 땐 공부를 해보겠다고 대학에 적을 붙이고 신문배달, 철공로동 지어는 하늘중천에 몸을 내대야 하는 연공노릇까지 했는데 그래도 학업을 계속할수 없게 되자 동포들이 일하는 로동판에 뛰여들어 본격적인 로동운동을 시작했다는겁니다. 혁명을 하기 위해 장가도 가지 않을 결심을 하고 말이요. 참! 내 그 동무 늦장가들던 얘길 들었는데… 한번 들어보오.》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웃으시며 손을 내저으시였다. 그 모습은 이제 들어보면 누구나 웃지 않을수 없는 일이라는것을 암시하는듯 하였다.

《그 동문 왜놈들밑에서 무슨 가정이고 행복이냐면서 나라가 해방될 때까지는 절대로 장가를 가지 않을 작정이였답니다. 그런데 고향에 있는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평생 총각으로 늙게 만들것 같아 이웃에 사는 집과 사돈을 맺고는 그 집 처녀를 다짜고짜 일본에 있는 덕수동무한테로 보냈다는겁니다. 궁벽한 산골에서 수줍게 자란 촌처녀가 현해탄을 건너 불쑥 덕수동무앞에 나타났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처녀를 마주한 덕수동무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한번 생각해보시오. 장가들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수천리밖에 있는 고향땅에서 자기를 찾아온 처녀를 되돌려보낼수도 없고… 그래서 울상이 되여있는데 그 눈치를 알아차린 처녀가 눈물이 글썽해서 덕수동무를 마주보다가 자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는것입니다. 그러자 글쎄 덕수동무가 와닥닥 자리를 차고일어나 못 간다고 두팔을 벌리고 막아나섰다는겁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서른일곱에 난 로총각이 열여덟살난 처녀를 신부로… 하하!》

고개를 젖히고 호탕하게 웃으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림춘호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윽고 느티나무아래에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발을 구르며 신발에 묻은 눈을 터시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드시고 눈이 쏟아져내리는 하늘을 한참 바라보다가 생각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사실 망국노의 피눈물나는 설음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험한 사람들이 바로 재일동포들입니다. 우리와 한피줄을 타고난 그들이 어째서 부모처자와 정든 고향을 버리고 일본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였습니까? 재일동포라는 말속에는 일본에서 산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일제의 침략력사가 빚어낸 우리 민족의 수난과 피눈물이 어리여있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장군님께서는 재일동포들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군 하는 가슴아픈 사연들이 상기되시였다.

일제의 악독한 식민지통치로 말미암아 30년대말과 40년대초에 정든 고향을 떠나지 않을수 없었던 사람들, 더우기 징용, 징병이라는 명목아래 노예처럼 일본땅에 끌려간 사람들이 바로 재일동포들이였다.

일제는 840여만이나 되는 조선사람들을 전쟁대포밥으로 끌어갔다. 일본인로동자들이 위험하다고 들어가지 않는 비밀공사장들과 탄광, 광산의 지옥같은 막장들에 몰아넣고는 하루 16시간이상의 노예로동을 강요했는가 하면 그렇게 마소같이 부려대면서도 초보적인 생활조건마저 지어주지 않았다. 동포들은 개우리만도 못한 다꼬베야나 함바에서 주린 창자를 달래지 않으면 안되였고 각종 로동재해나 린치를 면할수 없었으며 군사비밀엄수라는 리유로 집단적으로 무참히 학살당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일본사람들속에서 《조선사람도 사람인가》 하는 성구아닌 성구가 생겨났겠는가!

나라없는 설음을 가슴저리게 체험한 재일동포들이여서 나라가 선 오늘에 와서는 누구보다도 행복해야 할 사람들이였지만 의연히 미제와 일본당국의 탄압대상으로 되고있다. 장군님께서는 공화국이 창건되여 우리 인민들이 누리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생각할 때마다 아직도 이역살이고생을 면치 못한 재일동포들때문에 가슴이 쓰리시였다.

늘 생각하시던 이런 문제로 하여 마음이 무거웠으나 장군님께서는 흔연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공화국창건때 초청했던 대표들이 석달이 지난 오늘에야 온걸 보면 일본이 결코 가까운 이웃은 못되는것 같습니다.》

그이의 말씀을 듣는 림춘호의 머리속에는 불현듯 석달전 공화국창건기념행사때의 일들이 떠올랐다.

공화국창건절행사에 참가하라는 련락을 받고 조국에 온 그는 당일날부터 재중동포대표와 함께 주석단에 초대되군 했었다. 경축대회와 군중시위를 비롯한 여러 기념행사들에 참가할 때마다 그는 한가지 의아스러운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장군님 가까운 곳에 있는 자리 하나가 언제나 비여있는것이였다. 첫날부터 비여있는 자리가 계속 비여있기만 했다.

그는 곧 행사안내를 주관하느라고 분주히 돌아치는 리지영을 붙들었다. 4월련석회의때 조련대표로 와서부터 외무성에서 대외관계사업을 맡아보는 그와는 이미부터 사업상련계로 하여 인연이 있었다. 특히 아직도 총각인데다가 일가친척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를 장군님께서 각별하게 여기신다는것도 잘 알고있는터였다.

《지영동무! 저 빈 자리는 누구 자리요? 어째서 늘 비여있기만 하오?》

《저 자리 말입니까?》

언제나 무슨 말을 할 때면 처녀처럼 곱살하게 생긴 얼굴에 홍조부터 띠우군 하는 지영이였다. 그만치 순진하면서도 방정한 젊은이였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 자린 장군님께서 직접 내놓으라고 지시하시였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시는것 같습니다.》

림춘호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올 사람은 다 온것 같았다. 멀리 중국땅에 있던 자기들까지 왔으니 빠진 사람이 있을수 없었다. 외국손님들도 예견했던대로 다 왔다고 했다. 누구를 기다리실가? 오랜 세월 장군님을 모셔온 자기가 공화국이 창건된 이 기쁜 시각에 그이께서 그리도 간절히 기다리시는 사람을 모른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직껏 오지 않은 사람이 누군가고 물어볼수도 없었다. 그는 장군님곁에 놓인채 늘 비여있는 의자를 뜨거운 눈길로 바라보군 했다.

경축연회가 있은 날이였다.

수많은 연회참가자들이 서로마다 앞을 다투어 공화국의 창건자이신 장군님께 축배잔을 올리려 하였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사양하시면서 자신께서 먼저 술병을 드시고 매 사람들의 잔에다 손수 술을 부어주시였다. 뜻깊은 술잔을 받아든 대표들은 감사의 마음에 어쩔바를 몰라했다. 모두들 장군님을 우러르며 그이의 말씀을 기다렸다. 공화국창건을 경축하는 이 력사적인 연회장에서 무슨 말씀을 하실가. 어떤 감격과 영광을 위해 첫 잔을 들자고 하실것인가! 눈부신 불빛이 그이께서 쳐드신 잔에 금빛으로 어리여 황홀하게 반짝이였다.

《동무들!》

이윽고 장군님의 우렁우렁하신 목소리가 만장에 울려퍼졌다.

《나는 공화국창건을 경축하는 이 자리에서 이 첫 잔을 일본에 있는 60만재일동포들을 위해 들것을 제의합니다. 거치른 이역땅에서 나라없는 설음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험하면서 누구보다도 공화국창건을 간절히 바라마지 않았을 그들이 아닙니까. 나는 그들의 대표들만이라도 공화국창건절행사에 꼭 참가하리라고 믿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오지 못했습니다. 어쩐지 올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자리를 비워두었는데… 끝내 오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걸리여 이 잔을 바로 그들을 위해 들자는것입니다.》

연회참가자들은 일제히 숭엄한 감정에 젖어들었다. 혈육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잔을 선뜻 입으로 가져갈수가 없었다. 감격의 선풍이 연회장을 소리없이 휩싸안았다.

(바로 그들이였구나. 여태껏 그들을 기다리시였구나. 바다건너 먼곳에 있는 그들을 앉히시려고 자리까지 내놓고 기다리시다니!)

림춘호는 저절로 눈굽이 달아올랐다.

문득 장군님자신께서도 조국에서보다 이역땅에서 더 많은 세월을 보내시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열네살 어리신 나이에 나라가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을 품으시고 압록강을 건느신 그때로부터 장장 20년, 만주광야의 설한풍속에서 풀뿌리로 끼니를 에우시면서도 기어이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시고 오늘은 마침내 당당한 민주국가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신 장군님!

이역의 황야에서 모진 풍상고초 다 겪으신 그 장구한 나날 그 누구보다도 또 어느 한시도 조국을 애타게 그리지 않으신적이 없는 장군님이시기에 조국에 오지 못한 재일동포들에 대해 이토록 뜨겁게 여기시는것이 아니랴!

지금도 그때의 감격이 가슴에 젖어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어느새 몇걸음 앞서신 장군님의 모습이 눈에 띄워서야 림춘호는 추억에서 깨여났다.

《같은 해외동포들이라 해도 재일동포들인 경우에는 재중동포들과는 처지가 다릅니다.》

장군님께서는 가지마다 눈을 떠이고 나란히 서있는 노가지나무들을 여겨보시면서 말씀하시였다.

《중국에 있는 재중동포들은 멀지 않아 탄생될 인민중국에서 살게 되겠지만 재일동포들은 반대로 이제까지 우리를 억압해왔을뿐아니라 앞으로도 우리를 적대시할 일본이라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살게 됩니다. 더우기 지금은 미군정이 일본을 통치하고있어 재일동포들은 미제와 일제의 이중적인 탄압속에 놓여있습니다. 중국인 경우에는 쉽게 련계도 취할수 있고 림동무를 파견하듯이 사람을 보낼수도 있지만 일본인 경우에는 그렇게 하지도 못합니다. 이런 사정은 우리에게 처음부터 재일동포들에 대한 문제를 아주 심중하고도 책임적으로 풀어나갈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림춘호는 장군님의 말씀을 새겨들으면서 그이께서 세계 각처에 널린 해외동포들의 운명을 두고 얼마나 걱정하고계시는가를 새삼스럽게 느끼였다.

(조국은 창건되였지만 장군님의 무거운 짐은 여전하구나.)

림춘호는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었다.

《만약 우리가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한다고 하여 자기 조국의 령토안에서 사는 인민의 존엄과 권리만을 주장하고 해외에서 사는 동포들은 여전히 탄압과 억압의 대상으로 남아있게 한다면 그것은 자기의 민족적의무를 다 수행하지 못하는것으로 될뿐아니라 자기 임무를 포기하는것으로 됩니다. 세상에 제 자식이 남의 집에서 구박을 받으며 사는것을 보고도 그대로 참는 부모는 없을것입니다. 지금 재일동포들이 비록 일본땅에 몸을 두고있기는 하지만 공화국의 당당한 해외공민으로서 머리를 들고 떳떳이 살아나갈수 있게 하는것, 이것이 바로 그들에 대한 우리의 동포애적도리이고 의무입니다.》

림춘호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장군님을 우러러보았다. 흔히 있는 평범한 사실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물론 어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경우에도 대뜸 리해될수 있게 명백하게 일깨워주시는 장군님이시였다. 그러나 얼핏 듣기에는 응당하고 명백한것 같지만 따져보면 볼수록 그 명백하고 응당한것이 더없이 심오한 뜻과 천근의 무게를 가지고 안겨오군 했는데 그때면 장군님의 사색의 폭과 깊이에 대해 새삼스레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모르긴 해도 세상사의 모든 리치를 그렇듯 심오하게 투시해보시면서도 명백하게 결론지으시는 바로 거기에 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시는 독특한 예지와 안목이 있는듯싶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재중동포들인 경우에는 하루빨리 생활을 안착시키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자면 왜놈들의 조중민족리간책동으로 생긴 엄중한 후과부터 빨리 가셔내야 합니다.

지난 4월, 길림성장 주보중동무가 왔을 때 그도 바로 그 문제가 제일 골치거리라고 했습니다. 주보중동무야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림동무도 잘 알지 않습니까. 난 림동무가 그와 합심해서 이 과업을 원만히 수행하리라고 믿습니다.》

믿음이 어린 눈길로 림춘호를 여겨보시던 그이께서는 저 앞쪽에 시선을 멈추고는 의아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아하, 저 동무들이 눈을 칠 잡도리구만.》

림춘호는 그이께서 가리키시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거기에는 웃동을 벗어붙인 여러명의 경위대원들이 겨울내의바람으로 모여있는데 손에 눈가래나 싸리비자루를 들고있는것으로 보아 이제부터 눈을 치려는상싶었다. 싱글벙글 웃으며 허리를 굽혔다폈다 하기도 하고 팔을 빙빙 돌리며 기세를 올리는 품이 하나같이 사기들이 나있었다. 겨울내의소매까지 둥둥 걷어붙인 경위대원들이 어느새 눈을 치기 시작했다. 기다란 비자루로 커다란 호를 그어나가는가 하면 어떤 대원은 심술궂게도 숫눈이 하얗게 깔린 차도 한복판을 뭉청 동강내고있었다. 눈가래나 비자루가 미치는데마다 하얀 눈이 벗겨지면서 시꺼먼 세멘트바닥이 상처처럼 드러났다.

림춘호는 장군님의 기색을 얼핏 돌아보았다. 장군님께서는 아름답게 이루어지던 설경이 망가지는것이 못내 아쉬운듯 모두숨을 내쉬시였다.

《제가 저 동무들한테 가서 눈을 차차 쓸라고 말해보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듯 고개를 저으시였다.

《그런다고 저 동무들이 그런 사정을 들어줄것 같습니까. 괜히 그랬다간 자기네 임무와 규정들을 하나하나 내리꼽으면서 되려 동물 규정위반자로 몰아댈겁니다. 하지만 한번 말은 해봅시다.》

장군님께서는 눈치기가 한창인 후문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경위대원들은 점점 더 성수가 나는듯 두세사람씩 짝을 무어 윽윽 소리까지 지르면서 눈가래를 밀어댔다.

《동무들,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겠소?》

경위대원들앞으로 다가서신 장군님께서는 누구에게라 없이 말씀하시였다. 일손을 멈춘 경위대원들이 하나같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제 여기로 귀중한 손님들이 오게 되오. 먼곳에서, 수천리 떨어진 머나먼 이국땅에서 오게 된단 말이요. 조국을 보러, 조국의 향기를 맡으러 난생처음 오는 동무들인데 어떻소? 오늘은 눈을 쓸지 않는게 말이요. 조국의 겨울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잔 말이요. 제 나라, 제 조국의 자연은 우리모두한테 어머니모습과 같은것이 아니겠소.》

장군님께서는 벌써 덕수네 일행을 맞이하는 심정인듯 명상에 잠겨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따뜻한 눈길이 가닿는 곳에 그 어떤 아름답고 신비한 세계가 펼쳐지는듯싶었다. 경위대원들도 장군님께서 그려보시는 그 황홀한 세계에 휩싸이는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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