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장

1

 

눈이 내리고있었다. 함박눈이였다.

기세좋게 펑펑 쏟아져내리는 눈송이들이 얼마나 크고 소담스러운지 귀를 기울이면 어떤 정가로운 소리가 들릴것만 같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좁쌀알같은 싸락눈을 조금씩 쥐여뿌리던 하늘이 한나절이 되면서부터는 호함진 눈송이들을 마구 쏟아놓았다. 어느덧 이해도 다 저물어가는데다가 오늘은 년간계획을 앞당겨끝냈다는 자랑찬 소식도 있으니 그걸 위해 한껏 축하의 꽃보라를 뿌려주는듯 싶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집무실의 창가에 서시여 흰눈이 내려덮이는 정원을 바라보고계시였다.

방금 있은 내각산업부문 일군회의에서 48년도에 계획했던 모든 과업들이 빛나게 수행됨에 따라 규모가 작고 복구하기 쉬운 공장들은 물론 나라의 중요한 공장, 기업소들까지 거의나 복구된것을 자랑차게 총화지으신 그이이시였다. 만장이 환희로 끓던 그 시각의 흥분이 아직도 그이의 가슴속에 그대로 어리여있었다.

공화국이 창건된지 석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는 놀라운 기적과 위훈이 창조되고있었다.

황철로동계급은 단 이태사이에 왜놈들이 10년이 걸려도 다시 돌리지 못한다고 한 해탄로와 용광로를 살려냈으며 올해에는 또 선재압연공장까지 확장하여 강재를 꽝꽝 뽑아내고있었다. 얼마전에는 평양화학공장과 부령발전소를 비롯한 큰 기업소들이 복구개건되고 지방에 있는 중소규모의 공장들과 합작사들도 자체의 힘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있었다. 농민들의 기세도 좋았다. 평남도에서는 수백리밖에서 물줄기를 끌어오는 관개공사를 농민들자체의 힘으로 해제끼고있었다.

정녕 공화국의 창건과 더불어 착취받고 압박받던 인민대중이 동방에서 처음으로 력사의 주인으로 등장하여 위용을 떨치고있었다.

새 조국건설의 나날에 인민들은 벌써 자기들이야말로 사회와 국가의 당당한 주인이며 자기들이 떨쳐일어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확신을 굳게 가지게 되였다. 공화국창건은 그야말로 인간탄생의 장엄한 선언이기도 했다.

인민들의 이런 불같은 기세와 신심을 헤아려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앞으로 단 두해사이에 진행할 부흥기의 과업 즉 아직 채 복구하지 못한 공장들을 완전히 복구하고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해방전 수준을 훨씬 뛰여넘어서기 위한 웅대한 전망을 펼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끓어오르는 열정을 느끼며 먼 하늘쪽으로 시선을 옮기시였다. 눈발이 자욱히 드리운 광막한 하늘을 바라보느라니 문득 여태껏 잊고있었던 한가지 생각이 되살아나시였다.

(그러니 오늘도 소식이 없는 모양인가?)

은연중 무거운 숨을 톺으시였다. 공화국창건절을 계기로 조국에 초청한, 그래서 이제는 올 때가 되였다고 믿고있는 재일조선인대표들에 대한 생각이시였다. 날이 갈수록 그들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지기만 했다.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들려오는 새 소식을 접할 때는 물론 크고작은 일들을 끝낸 깊은 밤이면 의례히 그들에 대한 생각에 젖어들군 하시였다. 혹시 놈들의 방해책동으로 떠나지 못하지나 않았는지? 아니, 《해방신문》에는 분명 공화국창건축하단을 무어 기어이 조국으로 간다고 했었다. 그럼 지금쯤 난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고생하고있지나 않는지? 그들을 마중할 사람을 원산에 내려보냈고 동해안의 해군부대에까지 해당한 지시를 주었지만 자못 근심이 되시였다.

그이께서는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시였다.

장령복차림의 강건이 문앞에 서있었다.

최근 인민군대내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들으려고 그를 부르시였던것이다. 아울러 제1중앙군관학교사업이 아직도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시였기에 강건을 통해 실태를 알아보시고 오늘 그와 함께 현지에 나가볼 계획이시였다.

강건의 표정에서 떠날 때가 되였다는 기미를 읽으신 장군님께서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나서 말씀하시였다.

《아직 시간이 있지 않소. 그렇게 한자리에 굳어있지 말고 이리 오오. 담배나 한대 피우고 떠나기요.》

언제나 짧게 말하고 짧게 대답하면서 지나치게 절도를 중시하는 강건이여서 마주할 때면 은근히 불편스러워지는 장군님이시였다.

일부러 한두마디 롱담도 던져보지만 그에게만은 그것도 잘 통하지 않았다. 워낙 유격대에서 싸울 때부터 오직 맡은 임무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행동해온 그가 요즘에 와서는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라는 직책과 어깨우에 놓인 장령별로 하여 한결 더 심중해진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서는 강건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머금으시였다. 언제 봐야 변함없이 규칙적인 강건이라는 느낌도 느낌이였지만 방금까지 경제문제를 놓고 사색하셨다면 이제부터는 군사문제를 놓고 론의해야 한다는, 말하자면 사색의 지나친 비약과 함께 그런 비약을 필수적으로 하는 새 조국건설사업자체가 가져다주는 열정과 흥분으로 하여 새나오는 미소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런 벅찬 소용돌이속에 계시는 자신이 기뻤고 만족스러우시였다.

원탁우에 있는 담배곽에서 담배를 꺼내드신 그이께서는 강건에게 권하시였다.

이때 손기척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책임부관 최진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뒤에는 키가 성큼한 림춘호가 따라서고있었다.

《장군님! 장군님께서 회의지도를 하시는 사이 전화가 있었습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경위중대원이였던 최진은 예나 지금이나 장군님을 보좌하는 임무는 물론 군복차림새며 지어는 엄숙한 표정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전화라니?》

《원산에 내려가있는 지영동무한테서 왔습니다.》

《지영이한테서?!》

장군님의 눈에서는 대뜸 밝은 불꽃이 번쩍하고 작렬했다. 성큼 최진이앞으로 다가서신 그이께서는 다그쳐 물으시였다.

《그래, 그가 뭐라고 했소?》

《재일조선인대표단일행이 마침내 오늘 새벽 쪽배나 다름없는 조그마한 어선을 타고 원산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재일조선인대표단이?!》

이렇게 되받아외우신 장군님께서는 그 말을 그대로 믿어야 할지 어떨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는듯 다시 물으시였다.

《아니, 그게 사실이요?》

그이께서는 마치 최진의 표정을 통해 그 진실여부를 확인하려는듯 그를 유심히 지켜보시였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곧 미소가 실리였다. 눈가에 어리였던 밝은 빛이 점점 입가에 번지는듯 하더니 어느새 환한 불길이 되여 만면을 활활 태우는것이였다.

《왔구만, 음? 마침내 오고야말았어!》

기쁨이 넘치는 눈길로 최진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이것 보오, 강건동무! 우리가 그처럼 기다리던 재일조선인대표들이 조국에 왔다오. 그래 누가 왔다오, 몇명이나 되고?》

장군님께서는 다시 최진을 마주보시였다.

《조련의장중의 한사람인 한덕수동무가 여섯명의 대표들과 함께 왔다고 합니다.》

《한덕수? 역시 한덕수동무가 왔구만. 나도 그가 올줄 알았소. 그가 오리라고 믿었단 말이요!》

장군님께서는 그제야 모든 사실을 믿어마지 않는다는듯 호탕한 웃음을 터치시였다.

《한덕수동문 조련의장들중에 제일 젊은 동무요. 지영동무 말에 의하면 남달리 대가 세고 애국심이 강해서 동포들속에서 아주 신망이 높다고 합니다. 지영동무를 4월련석회의때 조련대표의 한 사람으로 평양에 보낸것도 바로 그였다니까…》

강건은 물론 방금 들어선 림춘호까지도 이처럼 기뻐하시는 장군님을 보기가 드문 일이여서 눈을 슴뻑이였다.

《저…》

아직도 자기의 보고가 끝나지 않았다는것을 알리려는듯 고개를 든 최진이 재일조선인대표들이 왔다는 소식이 있으면 림춘호를 자신께 보내달라고 하신 장군님지시대로 그를 불러왔다는것까지 덧붙이고나서야 뒤로 물러섰다.

《알겠소. 내가 림동무를 찾은건 림동무가 재일조선인대표들을 만나볼 필요가 있기때문이요. 처지는 서로 다르다 해도 일본에서 일하나 중국에서 일하나 외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을 위해 일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요. 그래서 동북에 들어가는 길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강건동무!》

장군님께서는 곧 강건에게로 돌아서시였다.

《아무래도 우리가 계획했던 일은 뒤로 미루어야 할것 같습니다.

재일조선인대표들이 왔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다른 일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할 여유가 생기지 않는구만.》

여느때없이 기뻐하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통해 자기가 계획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리라는것을 짐작하고있었다는듯 강건은 꽉 다문 입술에 더욱 힘을 주었다.

《우리가 얼마나 기다리던 사람들입니까. 또 얼마나 귀중한 사람들입니까. 글쎄 얼마나 조국이 그리웠으면 쪽배나 다름없는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왔겠나 말입니다. 혹시 추운 날씨에 동상이라도 입지 않았는지… 자, 우리 이젠 앉아서 그들을 어떻게 맞이하겠는가 하는걸 토론해봅시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조국에서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일들로 하여 마음이 즐거우셨다면 이번에는 조국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 해외에서 사는 교포들의 문제, 당장은 조국에 처음으로 온 재일조선인대표들을 맞이할 일로 해서 더욱 벅찬 희열을 느끼는 장군님이시였다.

그이께서는 또다시 새로운 방향으로 급전된 사색속에 잠겨들면서 먼 해외에까지 닿아있는 새 조국건설사업의 거대한 폭과 깊이를 새삼스레 절감하시였다.

의자가 있는쪽으로 걸음을 옮기시던 장군님께서는 강건을 돌아보시였다. 변함없이 꼿꼿한 자세로 한자리에 서있는 그의 표정이 마음에 걸리시였다.

《왜 그러구 섰습니까? 강건동무도 해외교포들과는 무관한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작년 초까지 재중동포들이 있는 동북지구에서 활동했으니 말입니다.》

사실 강건은 장군님의 지시에 따라 해방직전부터 동북에서 활동했었다.

1945년 8월, 김일성동지께서는 해방성전을 위해 조국으로 진군하는 강건에게 부대를 이끌고 중국동북지구에 진출하여 발악적으로 나오는 일본관동군을 제압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었다. 한창 고조기에 이른 중국혁명을 도우려는 의도와 함께 그 일대 주민의 절대다수인 조선사람들을 패잔병들의 만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강건은 그때 길동분구사령원으로서 조선사람들을 보호하는 임무와 함께 국민당반동군벌들을 소탕하는 동북해방전투까지 빛나게 치르었다. 그 과정에 그는 오랜 세월 청춘을 바쳐 받들어온 혁명이라는 거창한 사업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심장으로 깨달았다. 혁명은 조국해방이라는 위대한 성업인 동시에 자기 동포들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처절한 혈전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중국 전령토에서 중국인민해방군이 결정적인 우세를 차지하게 되자 그를 조국으로 소환하시고 대신 이미부터 재중동포들과 련계가 있던 림춘호를 동북에 파견하시였다. 그의 임무는 군사활동이 아니라 연변지구에 있는 동포들의 생활을 안착시키는것이였다.

그때부터 림춘호는 그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연길에 들어가 사업하는터였다.

얼마전 조국에 온 림춘호에게서 그동안의 사업정형과 재중동포들의 생활정형을 보고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재일조선인축하단이 올수 있다는것을 예견하시고 그를 대기시키시였던것이다.

《일본땅에서 갖은 천대를 다 받으며 살던 그들이 지금 조국땅을 밟고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긴 의자가 놓여있는 곳에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흥분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 역시 오랜 세월 이역땅에서 싸우다가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때의 감정이 순수 감격이나 기쁨만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이역땅에 살면서 조국을 애타게 그리던 사람들만이 조국의 귀중함을 잘 알고 또 그런 사람들이기때문에 결코 눈물없이는 조국땅을 밟을수가 없는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림동무!》

《…》

림춘호는 언제나처럼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옆에 있는 강건을 슬며시 건너다보았다. 장군님께 말씀을 올리고싶지만 자기의 변변치 못한 구변을 생각하고는 그것을 좀 대신해주었으면 하고 쳐다보는 눈치였으나 큰 별이 번쩍이는 장령복을 입고있는 강건은 그런데는 상관해서 안된다는듯이 네모난 턱을 쳐들고 부동자세로 서있기만 했다.

그런 두사람을 지켜보던 장군님께서는 웃음을 머금으시였다. 다정한 사람들의 낯익은 버릇을 대하게 될 때 지으시는 미소였다.

림춘호와 강건, 성격은 물론 살아온 경위도 판이한 두사람이였다.

경상도에서 태여나 어려서부터 로동판으로 떠돌아다니다가 유격대에 들어와 지휘관이 된 강건은 그야말로 모루우에서 벼려낸 강철같이 굳고 모가 서있다면 중학을 거쳐 고려의학을 밑천으로 유격대군의로, 나아가서는 정치일군으로 성장한 림춘호는 누가 봐도 인심좋은 약국장이였다.

림춘호는 원래 말이 없을뿐더러 웬만한 감정은 내비치기 싫어하는 성미였다. 아무리 우스운 일이 있어도 덤덤한 태도로 낯색 한번 달리하지 않는것은 물론 남들이 배를 그러쥘 지경에 이르러서야 겨우 입귀를 소리없이 실룩해보이는게 고작이였다.

실은 남달리 다감하고 섬세한 감정을 타고나서 공청시절에는 연예공작도 훌륭하게 감당했으나 그후에 시작된 유격대군의생활이 그를 무뚝뚝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말았다. 마취제는 고사하고 수술칼 하나 변변한것이 없는 조건에서 생살을 도려내고 파편을 꺼낸 다음 봉합까지 해야 하는 그 간고한 처치과정이 그를 어느새 근엄한 인간으로 변신케 했던것이다.

《장군님!》

이윽고 강건이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무겁게 닫긴 입을 열었다.

《한가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하시오.》

《다름이 아니라 저는 3시까지 제1중앙군관학교에 도착해야 합니다. 장군님께서 그리로 가시리라는것을 예견하고 지휘관들을 거기에 다 모이도록 지시해놓았는데 이젠 시간이…》

《음, 그렇지. 내가 미처 그 생각을 못했댔구만. 어찌겠소, 지휘관들에게 전달해주시오. 내가 오늘은 못 가지만 며칠후엔 꼭 간다고 말이요.》

장군님말씀이 끝나기 바쁘게 강건은 원탁우에 있는 모자를 쓰고 차렷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당장 돌아설듯싶던 강건이 잠시 주춤거리였다. 장군님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한순간 자리를 뜨기 서운해하는 표정이 스쳤다.

《걱정마오. 일본에서 온 동무들한테는 내가 대신해서 강건동무의 인사도 전할테니.》

《고맙습니다, 장군님.》

그제야 강건은 힘주어 대답하고는 문쪽으로 돌아섰다.

그런 모습을 미더운 눈길로 지켜보던 장군님께서는 강건이 문을 열고 나가자 림춘호에게로 다가서시였다.

《림동무! 지금 밖에는 눈이 내립니다. 꽃같은 눈입니다. 하늘도 일본에서 우리 동무들이 온줄 아는것 같습니다. 오늘같이 기쁜 날에 시원히 눈을 맞아보는것도 괜찮을것 같은데. 자… 우리 밖으로 나갑시다.》

림춘호가 미처 대답도 올리기 전에 장군님께서는 그의 팔을 잡고 출입문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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