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 회)
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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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가 처음으로 장군님을 찾아가려고 결심한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단나추도공사장에서 일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였을 때였다.
단나추도공사는 일본철도의 간선인 도까이도선상에 있는 아따미에서 시작하여 이즈반도의 산줄기를 동서로 관통시켜야 하는 길이가 20리나 되는 긴 기차굴을 뚫는 일이였다.
일제는 16년간으로 계획된 이 력사이래의 난공사에 수천명이나 되는 조선인로동자들을 몰아넣고 인간이하의 노예로동을 강요했다. 놈들이 얼마나 가혹하게 몰아대였으면 매일처럼 이어지는 사망자로 하여 이 공사를 단나사도공사(남편을 죽음에로 내모는 공사)라고까지 했겠는가!
놈들의 이런 억압에 맞서기 위해 덕수는 같이 일하던 고향친구인 로재호와 함께 조선인로동자들로 야학을 조직했다. 그 야학을 곧 로동조합으로 발전시킨 그는 로동조건을 개선하라는 투쟁과 태업, 나아가서는 폭동까지 조직했는데 이것을 구실로 경찰이 그를 체포했던것이다. 그러나 놈들이 그를 체포한 리유는 다른데 있었다.
시즈오까형무소의 독감방에 갇힌 그는 첫날부터 악착한 고문을 당했다. 놈들은 사상범이라면 의례히 있기 마련인 심문이나 문초따위는 하지도 않고 무작정 그를 두들겨패기만 했다. 부러진 목검채가 취조실구석에 수북이 쌓여졌을 때에야 담당특고(특별고등경찰)가 조심스레, 그러면서도 동정이나 하는듯 한 어조로 말했다.
《자, 이젠 솔직히 자백하는게 어때? 우린 당신이 어째서 이 공사장에 왔으며 와서 무슨 일을 했는가 하는걸 다 안다. 또 그게 누구의 지시라는것도 다 알고있다.》
덕수는 특고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퉁퉁 부어오른 얼굴이며 터진 입술로 하여 말을 하기 어렵기도 했거니와 말끝마다 가느다란 혀바닥으로 얇은 입술을 핥아대는 특고의 간사스런 꼴이 구역질이 날만치 가증스러웠기때문이였다.
《당신이 이 공사장에 온것은 하나의 특별한 목적을 위해 왔다. 그 목적을 위해 야학과 조합을 조직했고, 말하자면 겉으로는 로동운동을 하는것처럼 위장했지만 실은 공작임무를 수행했단 말이다.
자, 이쯤하면 다 털어놓는게 어때? 내지에 파견된 김일성부대 공작원동지!》
(김일성부대 공작원?)
저절로 가슴이 활랑거리였다.
김일성장군! 실로 그 이름은 덕수에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이고 기쁨이였으며 더없는 자랑이기도 했다. 놈들의 박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나라잃은 비분에 가슴이 터져오면 터져올수록 그는 오직 김일성장군 한분의 이름을 되뇌이며 살아왔다. 백두산에서 왜적의 무리들을 삼대베듯 쓸어눕히신다는 그이, 그래서 그 이름만 들어도 삼도왜적들이 벌벌 떤다는 통쾌한 사실에 새로운 힘을 얻고 용기를 얻군 했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 이 일본땅에까지 공작원을 파견하시다니? 그렇다면 여기에도 장군님께서 지도하시는 지하조직이 뻗어있다는것이 아닌가? 쿵- 하는 충격이 다시금 흉벽을 때리였다.
그제야 덕수는 어째서 놈들이 자기를 처음부터 일반사상범과는 달리 취급했는가 하는것을 알아차릴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장군님께서 파견하신 공작원이란 말이지!)
마음속에 솟구쳐오르는 어떤 희열을 누를길 없었던 그는 자기를 마주보고있는 특고, 자기를 일약 공작원으로까지 여겨주는 《고마운》 특고에게 그만 미소를, 그것도 더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어깨를 철썩 두드려주며 큰소리로 말했다.
《고맙다!》
퉁퉁 부어오른 얼굴에 웃음을 짓는 덕수의 괴상한 모습에 어리둥절해진 특고는 곧 정색을 하며 되물었다.
《고맛다? 나니가 고맛다?》(야단났다구? 무엇이 야단이라는거냐?)
조선말을 일본말로 잘못 듣고 정말 무슨 야단이라도 났는가 해서 눈알이 꼿꼿해진 특고를 보며 덕수는 껄껄 웃었다. 나불나불하여 얄밉게만 보이던 그 주둥아리마저 더없이 고맙게 여겨졌다.
그때부터 그는 자기가 공작원이 아니라는것을 부인하기는커녕 도리여 될수록 공작원이라는것을 암시해보이려고 했다. 그것으로 하여 고문은 몇배 더 심하게 당했지만 그 대가로 놈들한테서 알아낸 사실들은 참으로 귀중한것이였다.
일본공안청자료나 내무성 경보국의 보고에 의하면 장군님께서는 유격대를 이끌고 수차 조국땅에 진출하여 큰 승리를 이룩하시였으며 앞으로 진행할 대대적인 진공전투를 위해 국내각지뿐아니라 일본에까지 공작원들을 파견하고계신다는것이였다. 오까야마6고를 비롯한 여러군데의 학교들에서는 벌써 조국광복회의 하부조직이 꾸려졌는가 하면 수많은 청년들이 그 조직과의 련계밑에 항일전을 위한 준비를 하고있다는것이였다. 유격대를 찾아 간도로 떠나간 청년들도 많다고 했다.
덕수에게 있어서 이 소식은 그야말로 불덩이우에 끼얹어진 기름이였다. 여태껏 하많은 갈래로 흩어져있던 그의 정력이 이때부터는 하나의 신념, 하나의 희망으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가자! 어떤 일이 있어도 간도로 가야 한다!)
감옥에서 나설 때 그의 육체는 찢어지고 부서졌으나 마음속에는 이런 결심이 굳어져있었다. 걸음을 옮길수가 없어 육중한 철문밖에 쓰러지는 순간에도 백두산의 숭엄한 웅자가 눈앞에서 얼른거리였다.
(아-백두산!)
그는 차거운 땅바닥에 멍든 몸을 늘어뜨린채 가없이 열린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내 웃었다. 희망의 빛발, 인생의 봄빛이 가득찬 우주가 가슴속에 통채로 안겨들었다.
《형님!》
누군가 덕수를 부둥켜안았다. 재호였다. 함께 잡혔다가 먼저 출옥한 그가 손수레를 끌고 감옥앞에 와있었다.
《형님이 공작원이라고 혼자 뒤집어쓰는통에 난 먼저 풀려나왔소. 그런데 이게 무슨 꼴입니껴? 예? 놈들이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사람을 이 지경으로…》
《됐다! 재호!》
덕수는 어깨를 떨며 부르짖었다.
《이젠 우리도 가자! 당장 차빌 해가지구 떠나잔 말이다!》
《어디로 말입니껴?》
《백두산이지. 김일성장군님 계신 백두산으로 말이다!》
눈물이 가득했던 로재호의 눈에서도 금시 환희의 빛발이 타번지였다. 희망의 봄빛은 그의 심장에도 불을 달았던것이다.
몇달동안에 걸쳐 준비를 끝낸 덕수는 뜻을 같이하는 몇명의 동료들과 함께 쯔가루해협을 건너 북해도의 하꼬다떼에 다달았다. 거기서 라진으로 가는 배를 탈 계획이였다. 라진까지만 무사히 가면 간도는 지척이였다.
당시 일제는 만주에 있는 자기네 기관들에 가끔씩 위문단과 의약품을 실어보내군 했는데 그 민간수송선이 하꼬다떼에서 덕수네를 태워주기로 약속되여있었다. 징용을 피해 고향으로 도망가는 기피자처럼 가장한 그들은 선주에게 적지 않은 목돈까지 찔러주었다.
그런데 떠나기 며칠전 갑자기 하꼬다떼일대에 형사들이 들이닥치더니 일체 선박들에 대한 출항을 금지시키고 전에 없는 검문검색소동을 들이댔다. 처음엔 무슨 영문인지 몰랐으나 그게 바로 자기들을 체포하기 위한 수색이라는것을 덕수는 후에야 알았다.
동료들중 대학에 다니던 한 친구가(그는 유족한 집안의 외아들이였으나 좌익사상으로 하여 부모들과는 늘 알륵관계에 있었다.) 집으로 써보낸 편지에서 자기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간도로 가니 해방이 될 때까지 찾지 말라고 한것이 그만 단서로 되였던것이다. 이 일로 하여 재차 놈들에게 체포된 덕수는 3년간의 복역후에도 《치안유지법》으로 해방이 될 때까지 항시 형사들의 감시속에 있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때 일을 돌이킬 때마다 덕수는 그처럼 간절한 소망을 이루지 못한 절통한 아쉬움과 함께 자기의 본의아닌 과실로 친구들에게 피해를 입힌 자책감때문에 감옥에서 자결한 성훈이로 하여 가슴이 저리군 했다.
그가 두번째로 장군님을 찾아가려고 결심한것은 해방이 되여 조련이 결성된 이듬해인 46년 봄이였다.
처음과는 목적도 달랐고 동기도 달랐다. 전에는 무장을 잡고 싸우기 위해 장군님을 찾아가려고 했다면 이번에는 앞날에 대한 가르치심을 받자는것이였다. 전번에는 자기 혼자의 소원을 이룩하기 위해서였다면 이번에는 100만 재일동포들의 운명이 달려있는 걸음이였다.
해방이 되자 미군정과 일본반동들은 재일조선인들에 대해 교활하고도 음흉한 태도를 취했다. 귀국의 배길을 막은 놈들은 동포들을 어떤 때는 적국인으로 대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일본인이나 외국인으로 취급하면서 저들이 편리한대로 탄압하려고 했다. 외국인으로 취급하려고 한것은 동포들을 《외국인 등록법》에 걸어 억압하기 위해서였고 일본인으로 취급하려 한것은 형벌제도, 세금제도 등 외국인으로서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일본사람과 똑같이 적용하려는데 있었다.
놈들의 악랄한 책동으로 재일조선인운동은 처음부터 시련을 겪게 되였다. 게다가 정확한 투쟁로선을 찾지 못해서 내부형편도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혼란을 일으킨 장본인은 《민단》을 조직한 박룡이였다. 일본《천황》암살을 기도하다가 경찰에 붙들려 23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한 박룡은 출옥직후엔 덕수를 만나 자기도 조련에서 일하겠노라고 했으나 무엇때문인지 돌연히 태도를 바꾸어 《건동》(새 조선 건설동맹)을 조직하고는 그것을 다시 《민단》으로 바꾸어 조련일이라면 한사코 방해해나섰다. 심지어 백주에 조련조직들을 습격하는가 하면 공공연히 일군들에 대한 테로를 감행하기도 했다. 그 박룡의 《민단》에 조련에서 축출된 반동들과 민족반역자들이 합세해나섬으로써 형세는 더 착잡해졌다.
새로운 정세의 소용돌이속에서 빚어지는 일들은 그뿐이 아니였다. 갑자기 서울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울에 있는 유명무명의 단체며 사람들과 손을 잡고 제딴의 재일조선인운동의 방향에 대해 력설했다. 그들은 서울에 있는 어떤 《공산당》인물과 련계를 맺고는 그를 《진정한 애국자》라느니, 《조선의 영웅》이라느니 하며 잔뜩 춰올리기까지 했다.
《무슨 소릴 하는거요?》
그때마다 덕수는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며 따지고들었다.
《감옥살이를 몇해 한게 그렇게도 영웅인가? 지하투쟁 몇해 한게 그렇게도 애국자인가 말이요! 그래 감옥살이나 지하투쟁한걸 20성상 손에 직접 무장을 잡고 강도왜적을 때려잡으신, 그래서 마침내 나라의 해방을 이룩하신 김일성장군님의 업적에 비길수 있소? 있는가 말이요! 어디라구 감히… 명백히 말해두지만 해빛이 있고야 초목도 있는 법이요!》
그럴 때면 그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보아하니 당신은 일본에서 사는 100만동포들을 몽땅 북으로 끌고가려는것 같은데 그렇게 될것 같소? 고향이 남쪽인 동포들이 그리로 쏠릴것 같은가 말이요!》
《고향? 도대체 고향이 무슨 상관이요?》
덕수는 더욱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고향이 남이건 북이건 조선사람이면 갈길은 하나요. 어느 길인가? 그건 바로 김일성장군님을 따르는 길이지. 왜냐하면 조선은 철저히 장군님의 조선이기때문이요. 장군님이 계셔서 조선도 있고 조선사람도 있단 말이요!》
이 확고부동한 신념에는 사소한 드팀도 없는 덕수였다. 그러나 동포들을 자기가 믿고있는 길로 이끌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정세는 재일동포들이 나아갈 길을 하루속히 정할것을 요구했다. 더우기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식민지정책이 로골화되기 시작해서 재일동포들의 일본재류의 장기화가 명백해졌던것이다.
(가자! 이 복잡한 일본땅에서 우리들이 나갈 길을 가르쳐주실분은 오직 김일성장군님뿐이시다!)
덕수는 곧 준비를 서둘렀다. 먼저 부산으로 건너가 이미 서울에 파견돼있는 조련서울련락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38°선을 넘을 계획이였다.
바로 그때였다. 재일동포들의 이 어려운 사정을 헤아려보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친히 《재일 100만동포들에게》라는 력사적인 공개서한을 보내주시였다. 공개서한에는 덕수가 암중모색하던 문제, 재일동포들이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뚜렷이 밝혀져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서한에서 조국의 운명의 귀추가 재일동포들의 운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것이다, 통일정부의 수립으로 우리 조선이 완전히 독립되여야 해외동포로서의 권리를 찾고 보호도 받게 될것이다, 모든 동포들이 민주주의적민족통일정부수립을 위해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한다고 호소하시였다.
온 일본땅 동포들이 사는 곳마다에서 환호의 메아리가 울려퍼졌다.
모든 동포들은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투쟁에로! 덕수는 곧 일군들과 함께 이 하나의 구호에 동포들을 묶어세웠다. 조국의 북과 남에 수립된 인민위원회를 지지성원하는 사업,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헌법초안토의사업, 미제와 리승만역도의 망국적인 5. 10단선을 반대하는 투쟁…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때에는 서울에 있는 조련서울련락위원회 성원들을 조련대표로 평양에 직접 파견하기까지 했다.
드디여 영광스러운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이 온 세상에 선포되였다. 감격의 그날, 일본땅 방방곡곡에서는 공화국창건을 경축하는 동포들의 행사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그날 덕수는 조국이 있는 서북쪽하늘을 우러르며 경건히 옷깃을 여미였다.
《고맙습니다, 장군님! 잃었던 나라를 찾아주시더니 오늘은 또 공화국을 창건하시여 저희들을 공화국의 해외공민으로 내세워주시니, 이제부턴 오직 장군님만을 따르며 나아가겠습니다.》
이젠 조국이 있고 추켜들 기치가 있어 동포들은 확고한 신심에 넘쳐 새삶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군정과 일본당국은 공화국창건을 계기로 재일동포들에 대한 탄압을 더욱 로골화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공화국을 합법적정부로 인정하지 않았을뿐아니라 남조선괴뢰들과 한층 결탁하는 방향으로 나가면서 조련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기를 쓰고 저애해나섰다. 각종 악법들을 새로 만들어 들씌우는가 하면 공화국기를 게양하는것조차 금지했다. 오죽하면 일본 각지에서 벌어진 국기게양투쟁으로 하여 사상자가 나고 체포투옥된 사람들이 수천명이나 되겠는가.
(놈들이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하리라는것은 명백한 일이다. 미제와 일제의 탄압속에서 살아야 할 재일동포들이 공화국의 해외공민으로서의 존엄을 빛내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며 생활권과 교육권을 옹호고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 남조선괴뢰들의 부추김을 받는 《민단》의 책동은 어떻게 물리치고 일본인민들과의 친선은 어떻게 강화할것인가?)
덕수의 머리속에는 공화국창건의 환희와 함께 이런 새로운 우려가 떠날줄 몰랐다. 그런데 바로 이때 장군님께서 재일조선인축하단을 조국으로 불러주신것이였다.
(그래! 우리가 나갈 앞길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친히 불러주시는것이다!)
이역만리에 있는 자기들을 한시도 잊지 않고 보살펴주시는 장군님의 은정에 목이 메인 덕수는 전보를 받는 그 순간부터 어떤 일이 있어도 축하단을 무어 조국으로 가야 하며 가되 자기가 가야 한다고 마음다졌다. 그에게는 어쩐지 장군님께서 축하단을 불러주신것이 바로 자기, 그토록 장군님의 품에 안기려고 애쓰던 자기를 불러주신것으로 여겨졌던것이다.
그가 다른 의장들과 사전협의를 보기 전부터 조국에 갈 준비를 해온데는 이런 불같은 마음이 깔려있었다.
갑자기 발밑이 꺼져내려가면서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오르는 바람에 덕수는 저도 모르게 조타실문턱을 붙잡고 배전너머를 굽어보았다.
어둠에 묻혀 잘 보이진 않았으나 산악같이 일떠선 파도마루우에 배가 달랑 올라앉은것이 분명했다. 이제 저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파도의 심연을 향해 배가 곤두박질하리라는 생각이 들자 저절로 소름이 끼쳤다. 과연 이 가랑잎같은 배가 무섭게 회오리치는 파도속에 파묻혔다가 다시 솟아날수 있겠는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미끄러지듯 그 횡포한 소용돌이속에 휘말려들었던 배는 용케도 다시 이물코를 쳐들고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타당! 땅땅땅!》
이번에는 고막을 찢어내는 야무진 금속성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틀림없이 몰방으로 갈겨대는 기관총성같았기때문이였다. 얼른 예리한 눈길로 어둠속을 더듬는데 조타실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선장령감이 석쉼한 목청으로 소리질렀다.
《걱정마이소. 파도가 심해서 스크류(추진기)가 물밖에 나오모 그런 소리가 납니더. 여기가 기중 파도가 험한데라요.》
빼빼마른 몸집에 키도 크지 않았지만 목소리만은 엄청나게 굵은 령감이였다.
《의장선생! 여기가 어덴지 압니껴?》
(여기가 어디라니?)
여느때도 대가리, 꽁지 없는 말을 곧잘 해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어놓기가 일쑤인 선장이였다.
《바로 여기지요. 〈우끼시마마루〉가 폭파된기 말입니더.》
《우끼시마마루》라는 소리에 덕수는 흠칫했다.
해방의 환희에 넘쳐있던 1945년 8월 24일, 노예살이멍에를 벗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재일동포들을 가득 태운 일본해군소속 려객수송선 《우끼시마마루》가 난바다복판에서 갑자기 원인모를 폭발을 일으켰다. 그 참사로 하여 수천명이나 되는 동포들이 무참히 희생되였다. 하지만 일본당국은 아직까지 사죄 한마디 없었고 그 원인조차 밝히려 하지 않았다.
(여기란 말이지! 그 배가 여기에서 폭파되고 여기에서 우리 동포들이…)
덕수의 눈앞에는 해방의 감격에 눈물을 머금은 동포들의 모습, 한많은 이국살이원한을 이제 만나게 될 부모처자들과의 상봉으로 달래며 그 꿈같은 순간을 고대하면서 가슴들먹였을 동포들의 모습이 우렷이 떠올랐다. 난생처음 보는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좋아라 웃고 떠들며 갑판을 뛰여다녔을 아이들 모습도 생생하니 상기됐다. 그러나 갑자기 터져오른 폭음과 치솟는 물기둥! 일대 수라장으로 변한 선실과 갑판, 서로 안타까이 찾고 부르고 하다가 가라앉는 배와 함께 한많은 원을 가슴에 품은채 난바다에서 수중고혼이 되였을 불쌍한 동포들…
저절로 숨이 막히였다. 수천명이나 되는 동포들의 원혼을 그대로 삼키고도 무심하게 설레이는 바다를 덕수는 이윽토록 굽어보았다.
이 바다는 물론 얼마나 많은 동포들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현해탄인가! 피와 눈물로 얼룩졌다기보다 동포들의 피와 눈물로 이루어진 아니, 그들의 사무친 원한으로 설레이는 현해탄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어찌 현해탄뿐이랴! 탄광이면 탄광, 광산이면 광산, 일본땅 그 어느곳을 파헤친다 해도 우리 동포들이 묻혀있지 않는데가 어데 있으랴! 북해도의 유바리나 규슈의 찌꾸호탄광에는 아직도 버럭돌 하나만 댕그라니 놓여있는 동포들의 묘아닌 묘가 얼마나 많고 저 시모노세끼의 해저턴넬속에는 또 얼마나 많은 동포들이 묘지도 없이 수장당하고말았는가! 관동대진재때 자경단의 죽창에 찔려죽고 생매장당해 죽은 2만3천여명의 동포들은 아직 이름조차 모르고있는 형편이 아닌가! 그 원한과 수난과 설음, 그것은 오로지 나라없는 죄로 하여 당한 설음이였고 나라잃은 백성이여서 겪어야 했던 수난이였다.
(하지만 이제부턴 안된다! 우리에게도 이젠 우리를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어머니품, 조국이 있다. 지난날 죄없이 흘린 피의 대가를 받아낼테다. 기어이 받아내고야말테다!)
이런 생각에 젖어있는데 다시 선장이 소리질렀다.
《의장선생은 고향이 어뎁니껴?》
조타실창문으로 얼굴을 내민 선장은 덕수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제 말부터 했다.
《내 고향은 포항인데 지금 가는 이 길로 곧바로 가믄 거기가 바로 포항이라요.》
덕수도 배가 포항을 향해 가다가 다시 원산쪽으로 북상하게 된다는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포항이라는 말은 은연중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내 고향도 포항에서 멀지 않지요. 대구니까요.》
《대구요? 아이고 그라믄 우린 서로 같은 문둥이가 아닙니껴, 예?》
선장은 마치 어떤 신기한것을 발견하기라도 한것처럼 또 그것은 자기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틀림없이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다는듯 한 그런 눈길로 덕수를 바라보았다.
《그라믄 선상도 거기에 친척들이 있겠십니더?》
《아버님과 누님이 계시지요.》
고개를 끄덕이던 선장은 갑자기 무슨 징후를 발견했는지 조타를 한쪽방향으로 팽이처럼 돌려대기 시작했다. 미리 배머리를 돌려 덮쳐드는 파도를 피하려는것 같았다.
(고향이라…)
덕수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고향을 그릴 때면 먼저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고 그때면 또 언제 한평생 고생만 한 그 아버지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지난날의 일들을 사죄할가 하고 고대해왔으나 오늘까지도 그 소원을 풀수가 없었다. 더우기 지금 고향땅을 가까이 하고있다는 사실은 그의 마음을 더없이 아프게 허비였다.
(아버님!)
그는 조용히 입속으로 되뇌였다.
(마흔이 다 된 오늘까지도 아버님께 효도 한번 드리지 못한 이 못난 아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전 지금 아버지가 기다리신다는것을 알면서도 아버지가 계시는 고향으로 가는것이 아닙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가 나서자란 곳을 고향이라 부르고 그 고향이 있는 곳을 조국이라 하지만 저는 나서자란 곳도 아니고 아버지는 물론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곳을 조국이라 부르며 그리로 가고있습니다.
그러나 어느땐가는 아버지도 제가 품은 뜻을 아시게 되고 그때면 꼭 기뻐하실것입니다.)
어느새 눈을 뜨기 어렵게 불어치는 맵짠 바람과 무섭게 울부짖는 파도소리, 곧추 일어선 파도의 검은 장벽이 배머리를 후려쳤다. 그러나 덕수의 가슴속에서는 이루 형언할수 없는 흥분과 격정이 사품쳐올랐다.
그것은 꿈만 같은 현실에 대한 무한한 기쁨과 환희였으며 자기 생에 대한 뜨거운 희열과 랑만이였다. 그리고 또 앞으로 조국에서 겪게 될 가지가지의 일에 대한 흐뭇한 기대의 정이였다.
평소에도 감정이 북받치면 노래를 부르거나 즉흥시를 읊군 하는 그였지만 지금은 여느때의 그런 흥분이나 충동이 아니라 난생처음 체험해보는 그런 류다른 격정이 가슴을 태우는것이였다. 더없이 열광적이고도 숭엄한 감정에 도취된 그는 조용히 시를 읊기 시작했다.
조국애에 불타는 60만동포들의
뜨거운 마음을 이 한몸에 안고
조국으로 가는 길 성스러운 이 길!
은연중 목이 메여오른 그는 고개를 들고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 조국이 있는 북쪽하늘을 바라보았다. 북두칠성이 자리잡은 그 웃쪽에서 유난히 밝은 빛을 뿌리고있는 새별을 바라보느라니 그의 가슴은 더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 쪼각배야 력사의 이 배야
격랑을 헤치고 어서어서 달려라
바다너머 저 멀리 그리운 조국땅에
우리를 기다리실 장군님이 계신다
우리를 안아주실 장군님이 계신다
…
덕수의 격정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배전을 후려갈긴 드세찬 파도가 다시금 야광주같은 은구슬들을 밤하늘 가득히 황홀하게 뿌려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