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서  장

1

 

날이 어두워지자 파도는 더 사나와졌다.

일본의 오랜 도시 교또가까이에 있는 마이즈루항을 떠날 때는 물론 이 고장 사람들이 흔히 큰 섬, 작은 섬이라고 부르는 갓무리지마, 꾸즈지마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사뭇 잠잠하던 바다였으나 삼라만상이 어둠에 묻혀가는 지금에 와서는 점점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마치 여태까지는 대지에 절대불가항력의 존재인 광명이 깃을 펴고있어 어쩔수 없었지만 어스름이 짙어가는 이제부터야말로 검고 사납기로 소문난 바다의 위용이 어떤것인가 하는것을 단단히 시위해보려는것 같았다. 그러고보면 바다 역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캄캄한 밤에야 본성을 드러내는 야수와 같은것인지, 정말 허연 거품을 가득 문채 배를 향해 느물느물 육박해오는 파도는 악마의 이발같이 무시무시해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덕수는 그런 바다를 줄곧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있었다. 두툼한 회색솜옷을 어깨에 걸친채 선실에 기대여 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두눈은 세찬 맞바람으로 쪼프러져있기는 했으나 류다른 광채로 빛나고있었다. 눈도 눈이지만 량쪽입가에 괄호모양으로 새겨진 주름가운데 한일자로 쭉 가로 그어진 두툼한 입술은 한결 인상이 각별했다.

여느때도 다소 아래입술이 나와있는 그였으나 기분이 내킬 때면 더욱 밖으로 밀려나오군 했는데 더는 나올수 없을 정도로 한껏 삐여진것을 보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흡족한 때임이 틀림없었다. 남들이 볼 땐 무슨 비위가 상한 일이 있거나 몹시 심사가 꼬인것 같이 보이는 그런 때가 그에게는 이상하게도 제일 흐뭇한 때였다.

사실 그에게는 모든것이 좋았다. 지금처럼 세상만물이 아름답고 황홀하게 여겨진적은 일찌기 없었다. 산악같이 덮쳐드는 격랑도 좋았고 어둠속을 뚫고 기운차게 달리는 배의 발동소리도 좋았다. 이따금씩 배머리를 후려갈기는 야무진 파도며 그때마다 머리우에 뿌려지는 얼음쪼각같은 물방울은 더욱 마음을 상쾌하게 했다.

(이 길이 과연 어떤 길인가?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있단 말인가?)

벌써 스무번도 더 외워본 말이지만 그는 다시금 속으로 되뇌였다. 자기가 어디로 가고있는가 하는 생각에 미치자 그의 가슴은 이제까지의 신비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지던 감정과 함께 또 하나의 감정, 비상한 충격이라고 할수 있는 그런 벅찬 격정으로 하여 부르르 떨렸다. 그는 이번에도 차마 자기가 가는 그곳을 입밖에 내여 말할수 없어 다만 《아-》하는 벅찬 환희의 탄성만 쏟아놓을뿐이였다.

문득 생각이 깊어지면서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자기가 가는 이 길이 단지 그 치욕의 을사년, 악독한 일제가 조선에 총독정치를 세우고 야수적인 폭압통치를 실시한 때로부터 수많은 우리 동포들이 나라를 잃고 낯선 이 이역땅으로 건너왔던 그 길이여서가 아니였다. 두차례의 전쟁,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왜놈들이 징용과 징병이라는 명목으로 또다시 수백만이 넘는 우리의 무고한 청장년들을 강제로 끌어왔던 원한서린 그 비애의 바다여서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바로 자기가 망국노의 설음에 가슴뜯을 때마다 그토록 간절한 꿈으로, 희망의 등대로 여기며 기어이 안기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좌절되지 않으면 안되였던 길, 그래서 살아 못 가면 죽어서라도 가리라 그처럼 벼르던 그 길을 오늘에야 비로소 가고있기때문이였다.

(정녕 이 길이 조국으로 가는 길이란 말인가!)

그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너무나도 꿈만 같은 사실이여서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내가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조국으로 가고있다니!)

저절로 숨이 막히면서 가슴이 후두두 뛰였다. 누구나 평생을 두고 바라마지 않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질 때면 기쁨보다 의혹이 앞서고 지어는 자기가 어떤 엄청난 착각에 빠져있지나 않나 하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듯이 그도 아직 그런 정신상태에 처해있었다.

석달전이였다.

동방에서 처음으로 되는 인민의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기 전야에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일본에 있는 조련(재일본조선인련맹)에 국제전보를 보내시여 공화국창건을 경축하는 재일조선인축하단을 친히 조국으로 불러주시였다.

말그대로 마소와 같이 온갖 천대를 다 받으며 살아온 재일동포들에게는 공화국이 창건된것만으로도 꿈만 같은 일이였다. 자기를 품어주고 안아주는 어머니조국이 생긴것만으로도 더없는 기쁨이고 영광이고 행복이 아닐수 없었다. 그런데 공화국창건을 경축하는 축하단까지 조국에 불러주시다니!

장군님의 사랑에 목이 메인 동포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설음에 멍든 가슴을 부여안고 꺼이꺼이 통곡을 터뜨리기도 했다.

조련중총(조련중앙총본부)에서는 곧 100여명의 대표들을 축하단성원으로 선출하여 일본에 대한 일체 통치권을 행사하고있는 미군정청에 출입국신청을 냈다. 그러나 군정실시 첫날부터 재일조선인들에 대해서는 줄곧 적대시정책을 실시해온 맥아더사령부는 종시 그 신청을 부결해치웠다.

어떻게 할것인가? 어떻게 해야 합법적인 승인을 쟁취하여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되는 력사적인 조국방문을 실현할수 있을것인가?

중총의장단성원들은 매일같이 아침에는 한자리에 모여앉아 대책을 토론하기에 골몰했고 낮부터는 동포들과 함께 도꾜역사앞에 있는 미군정청으로 몰려가 항의와 진정운동을 벌리였다.

일본은 항복서에 도장을 찍은 그 순간부터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군정청의 지시를 받지 않으면 안되였다. 자체의 립법, 사법, 행정기관이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허상에 불과할뿐 일본을 실지 움직이는것은 그우에 군림한 미군정청 즉 맥아더사령부였다.

태평양전쟁당시 흔마중장이 지휘하는 일본군에 의해 남태평양의 막바지섬 코래히드까지 쫓기여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그때 오스트랄리아로 달아나면서 그가 한 말은 《나는 다시 돌아올것이다.》라는것이였지만 쫓기면서 하는 빈주먹질같은 그 소리를 믿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가 정말 다시 돌아왔는데 그것도 그냥 돌아온것이 아니였다. 이번에는 극동군사령관이 아니라 일본의 항복을 접수할뿐더러 패전국 일본을 마음대로 주물러댈 권한까지 가진 련합군사령관이 되여 나타난것이였다. 그때부터 그는 일본을 통치할 최고권한을 가진 《총독》이 되였고 일본은 하루아침에 그의 천하로 변하고말았다.

《그러니 아직도 미군정청의 허가를 바라고 이렇게들 앉아있단 말이요?》

그새 간사이지방에 출장을 다녀온 한덕수가 방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머리를 맞대고있는 의장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역시 다섯명의 의장들중 한사람이였다.

《그들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게 뭐요? 지난 4월 그들한테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 하는걸 벌써 잊었단 말이요?》

한덕수는 불만이 어린 어조로 말했다.

지난봄 일본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일떠서는 조선인학교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긴 일본반동당국은 민족교육을 탄압할 목적밑에《조선인설립학교의 취급에 대하여》라는것을 들고나왔다. 그때 한싱지방동포들은 이 부당한 처사에 맞서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미군정이 당장 사태를 바로잡아주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미군정청은 너무나도 응당하고 정당한 동포들의 요구를 지지해줄 대신 도리여 군정실시후 처음으로 되는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하여 동포들의 투쟁을 총칼로 막아나섰다. 그 횡포한 탄압으로 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났고 수백명이나 되는 일군들과 동포들이 검거투옥되였다.

동정과 지지를 바랐던 미군정청으로부터 뜻밖에도 총칼세례를 받은데 격분한 동포들은 더욱 완강한 기세로 일떠섰다. 근 다섯달동안이나 필사적인 투쟁을 벌려 끝끝내 민족교육의 권리를 쟁취하고야말았던것이다.

《그러니 어쩐단 말이요? 그들의 승인이 없이야 갈수가 없는걸!》

그중 나이가 많은 윤의장의 말에 덕수는 대뜸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럼 그들이 승인하지 않는다고 가지 않을 길이란 말입니까? 그럴수야 없지요. 목숨을 내대고라도 가야 합니다. 지금 이 일본이라는 섬나라는 미군이 타고앉은 배가 되였고 그 배의 키는 맥아더가 틀어잡고있습니다. 이런 배우에 실린 동포들의 운명이 어찌될지 우리자신도 모르고있지 않습니까.

더우기 미군이나 일본은 우리 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고있을뿐아니라 우리가 공화국기를 게양하는것조차 총칼로 탄압하고있습니다.

그래 이런 형편에서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를 가르쳐줄분이 누굽니까. 가야 합니다. 기어이 조국에 가서 김일성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야 한단 말입니다.》

사실 여느때도 그랬지만 공화국이 창건된 이후 동포들을 어느 길로 어떻게 이끄는가 하는것은 일군들에게 있어서 더없이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제가 아닐수 없었다.

우선 재일조선인운동의 총적방향을 어떻게 정하고 당면하게는 어떤 과업들을 내세워야 하는가 하는 토론이 벌어질 때마다 서로의 견해가 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조국의 남북관계가 어떻게 되는가 하는것을 지켜보다가 목표를 정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동포들이 일본에 사는 이상 일본정부의 태도와 립장에 따라 과업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을 통치하고있는 맥아더사령부와의 관계부터 잘 가지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때마다 덕수는 언제나 조국의 지도를 받아야 하며 그래야 재일동포들이 정확하고도 옳바른 길을 갈수 있다고 주장했다.

덕수의 말을 긍정하면서도 일본이라는 고립되고 소외된 현실속에서 살아온 의장들에게는 조국이 하늘너머 허공에서 반짝이는 별처럼 아득하게만 여겨졌다.

《그럼 내 결심을 말하지요.》

언제나 자기의 결심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하는데 버릇돼있고 아무 일이나 미리 말을 하고 하는것은 말없이 하는것에 비해 그 가치가 백분의 일도 안된다고 믿는 덕수라는것을 잘 아는 의장들은 이 량반이 벌써 무슨 일을 꾸며놓지나 않았나 하는 호기심이 어린 눈길로 지켜보았다. 아니나다를가 자기 일에 대한 자신을 느낄 때면 늘 그러듯이 비죽하니 내밀리였던 덕수의 아래입술이 쩝하는 소리를 내면서 웃입술과 떨어졌다. 이럴 때마다 그의 입에서는 늘 놀라운 말이 튀여나오군 했다.

《이번에 교또에 가서 배를 한척 구했습니다. 실은 장군님께서 축하단을 불러주신 그때부터 교섭해왔는데 이번에야 겨우 합의를 봤지요. 그런데 문제는 배가 자그마한 어선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탈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아무리 타산해보아도 대표단을 예닐곱명정도로밖에 구성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의장들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래졌다. 백명으로 예견된 축하단이 일곱명으로 줄어들었다는데도 있지만 보다는 겨우 일곱명이나 태우는 배라면 전마선이나 다름없는 쪽배에 지나지 않겠는데 그런 배를 타고 어떻게 파도사나운 바다를 건느랴 하는, 이 량반이 지금 제정신이기나 한가 하는 기색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몇사람의 이름이 적힌 종이장을 꺼내놓으며 하는 덕수의 말에 더 아연해지고말았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나와 함께 조국에 갈 대표들입니다. 길이 험하니만치 젊은 사람들로 꾸렸는데 의장동지들 의견이 어떤지…》

《…》

침묵이 깃들었다.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동포들의 앞날을 위해서는 누구든 바다를 건너야 하며 또다시 건너와야 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으나 그것이 성공을 기약할수 없는 모험이라는것도 모르지 않았다. 그 모험이 바다 한복판에서 결딴날 때에는 재일조선인운동의 앞날은 물론 동포들의 장래를 떠메고나가야 할 덕수며 젊은이들이 바다에 묻히거나 철창속의 이슬로 사라지고만다는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였다.

이윽고 윤의장이 가슴에 눌러박았던 턱을 천천히 쳐들었다.

《내 생각은…》

벌겋게 피발이 선 그의 눈에서 의미심장한 불꽃이 번뜩이였다.

《여기 모인 의장들중에서 내 나이 그중 많은 사람이요. 이역살이도 오래 했고 인생의 황혼기를 맞는 이 시각에 흘러간 한생을 되돌아보면 걸음걸음 피눈물뿐이고 빛이 나는 자욱들은 보이질 않소.

이역땅에서나마 민족의 얼을 지켜보려고 동포들과 어깨를 겯고 모지름을 썼지만 한층의 탑도 쌓아올리지 못했소. 그래서 내 언제부터 죽기 전 한번은 우리 동포들을 위해 공을 세우리라 다짐했던 사람이요. 한의장, 내가 조국에 가겠소.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몸이지만 조국에 갔다올 기운은 남아있소. 한의장은 아직 젊기도 하거니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소. 파도속에 묻혀도 안되고 옥중에 갇혀도 안될 몸이란 말이요.》

덕수는 뜨거운 눈길로 윤의장을 바라보았다.

《우릴 중하게 여겨주는 그 마음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덕수의 목소리는 떨리고있었다.

《조국으로 가는 길이 순탄치 않습니다. 파도에 배가 부서질수도 있고 적들과 맞다들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젊은이들을 데리구 가야 합니다. 저의 이런 마음을 리해해주길 바랍니다.》

새삼스레 의장들은 덕수의 기질적인 특성, 한번 결심한 일에 대해서는 사소한 드팀도 없는 완강한 성미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 놀라움으로 하여 그들은 덕수가 선발한 대표단성원들에 대한 의견은 물론 그 어떤 다른 사소한 요구조차 꺼내놓지 못했다.

그렇듯 간절한 마음과 열렬한 뜻을 품고 운명의 등대, 태양이 빛나는 조국으로 떠난 덕수네였다.

덕수가 추억에 잠긴새에도 대표단을 실은 배는 여전히 풍랑을 헤치고있었다. 별빛 한점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무섭게 뒤설레는 대양의 한복판에 뛰여든 너무나도 작고 가냘픈 쪼각배였지만 대표단성원들의 불같은 환희와 격정에 떠밀려 앞으로 앞으로 힘차게 내달렸다.

《바람이 찬데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덕수가 돌아보니 눈잔등까지 푹 눌러쓴 털모자를 끈으로 턱밑에 든든히 비끄러맨 리진규가 서있었다.

중총에서 교육사업을 책임지고있는 그는 이번 축하단의 총무이기도 했다. 나이는 자기보다 열살아래인 서른이지만 니홍대학 교육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데다 아무리 복잡한 일도 덤비거나 스치는 일없이 아주 정확하게 처리하군 하는 그를 덕수는 못내 미덥게 여기는터였다.

지난 4월에 있은 한싱교육투쟁때도 그는 현지에 내려가 끈질긴 노력으로 현지사를 담판장으로 끌어냈을뿐아니라 빈틈없는 론거를 들이대여 종내 우리가 요구하는 서약서에 도장을 누르게 하고야말았던것이다.

《난 여기가 좋네! 그래, 다른 친구들은 어떤가?》

《사기들이 났습니다. 무슨 유람선이라도 탄 기분들이지요.》

《유람선?… 허, 어디 얼마나 더 견디나 두고보세. 아마 래일 새벽쯤엔 모두들 풀자루가 돼있을걸.》

덕수의 말에 진규가 웃으며 뒤를 달았다.

《왜요? 그래서 다들 배꼽에다 반창고를 붙이지 않았습니까!》

그 소리에 덕수도 웃지 않을수 없었다.

배에 오르기 전 《해방신문》기자로서 조국방문기간 대표단의 취재를 담당한 현우가 멀미를 막는 결정적인 대책이라면서 모두에게 손바닥만 한 크기의 반창고를 나누어주고는 그것을 배꼽에다 붙이라고 지시했다.

제가 맡은 임무를 취재에 국한시키지 않고 범위를 훨씬 넓혀 대표단의 전반활동을 돌보는 고문격으로 확신하고있는 현우였다. 누가 시킨것은 아니지만 그는 스스로 걸머진 이 무겁고도 영예로운 임무에 온갖 열성을 다 쏟아붓고있었다. 그 권한이 어떤 때는 단장인 덕수나 총무인 진규보다도 훨씬 더 절대적이였다. 소지품은 무엇무엇인데 누가 건사하고 어느것은 어떻게 보관해라, 어떤 음식은 먹되 무엇만은 절대로 먹지 말아라, 하여튼 시시콜콜한 지시가 끝이 없었다.

하지만 반창고를 배꼽에 붙여야 한다는데는 모두들 어리둥절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코웃음을 치며 돌아섰으나 그의 열성을 편들어주고싶었던데다가 또 그다지 품들 일도 아니여서 덕수는 제 먼저 그것을 받아 붙였다. 그 바람에 다른 사람들도 할수없이 따라붙였는데 여태껏 멀미를 하지 않는것이 그 덕인지도 모를 일이였다.

《진규! 자넨 어떤지 모르겠지만…》

옆에 있는 진규를 돌아보며 덕수는 생각깊은 어조로 말했다.

《난 아직도 우리가 조국으로 가고있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질 않네. 첨엔 내가 꿈을 꾸고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었댔지만 이젠 이건 결코 꿈이 아니라 분명 내가 배를 타고 동무들과 함께 바다를 건느고있다는건 알지. 그런데 이번엔 이 엄연한 사실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고 지난날의 일들과 겹쳐지면서 혹시 그때 일이 어떤 환영으로 눈앞에 펼쳐지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단 말일세.》

덕수는 두눈을 쪼프린채 배전으로 밀려드는 파도를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그 일렁이는 파도를 타고 잊을수 없는 추억들이 하나 또 하나 눈앞에 서서히 다가오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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