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4 회)
제 3 장
16
력사에 길이 빛날 민족사적인 대공을 세운 고려의 군사들은 대첩의 기쁨으로 가슴들먹이며 고국으로 돌아오고있었다.
하늘도 기쁨에 물젖어 떨기떨기 꽃구름을 피워올리고 바다도 기쁨에 둥 떠올라 소복소복 잔파도를 말아올리였다.
장수들과 함께 지휘선의 갑판에 나와 류량한 군악을 울리며 회군하는 고려함대의 장쾌한 모습을 둘러보던 최칠석은 솟구쳐오르는 격정을 억제하기 어려운듯 벌겋게 짓물린 눈을 슴벅이며 시 한수를 뽑아올리였다.
기발은 어이 저리 빛나게 나붓기고
군악소리 어이 저리 우렁찬고냐
외방의 왜구를 산산이 쳐부시니
고려군의 높은 기개 장하기도 하여라
2월의 봄바람은 옥촉처럼 고른데
천하가 다투어 우리 군대 칭송하리
칠석이가 시읊기를 마치자 장수들은 너나없이 그의 시재를 과분할 정도로 치사하고나서 또다시 승리의 기쁨을 들썩하게 나누었다.
《오늘의 승리는 실로 크게 자랑할만 한 일이요.》
《백세의 수치를 씻고 만세에 존엄을 떨쳤으니 이 아니 통쾌하리오.》
《박장군의 담대한 기상과 신묘한 지략이 오늘의 대성을 낳았소그려.》
사사건건 개경량반의 재세를 쓰고싶어 몸달아하던 박자안까지도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빠질세라 께끼였다.
《옛말에 얌전하게 생긴 선비가 귀신을 쫓는다더니 정말 미모의 박장군께서 이렇듯 큰 승리를 빚어놓을줄은 몰랐소그려.》
이어 장수들의 시선은 박위쪽으로 돌아갔다.
배머리에 홀로 뒤짐을 지고나선 박위는 장수들이 주고받는 말마디를 전혀 가려듣지 못한채 하염없이 고려의 하늘가를 바라보고있었다.
그의 눈길은 저 멀리 고국의 푸른 하늘가에 박혀있었으나 그의 마음은 잊지 못할 지난 나날들, 잊지 못할 사람들의 얼굴을 더듬어보고있었다.
재가루가 펄펄 날리던 그 아침의 죽촌풍경이 떠오르는가 하면 바로 그날 어떤 일이 있어도 왜구의 소굴을 들부셔야 한다고 주장하던 오천의 모습이 안겨왔다.
달밝은 그밤 염초감대기를 메고 지고 바다가로 흘러가던 염초장사람들의 행렬이 다가오는가 하면 혼자 칼쓰기련습을 하던 고들이, 노상 바다가에 붙박여살던 옥보와 구서방, 여삼이와 《만사태평》의 얼굴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은하수 비끼였던 그밤 저대를 장검처럼 비껴잡고 동네의 군사일을 지휘하던 죽촌의 행수로인과 그의 지휘를 물고 열심히 뛰여다니던 백동이 엄마를 위시한 죽촌사람들의 모습도 얼찐얼찐 다가왔다.
눈으로 보지는 못했으나 왜구의 소굴을 뛰쳐나오던 리옥의 도담하고 슬기로운 모습도 방불하게 그려지였다.
최칠석과 김종연, 윤통과 최단, 최무선과 이미 작고한 리일경의 얼굴도 언뜰언뜰 비껴들었다.
원정의 승리로 하여 한껏 부풀어오른 박위의 가슴은 더더욱 세차게 끓어번지였다.
(내가 대마도원정을 결심한 때로부터 오늘까지 얼마간의 나날이 흘렀는가.
넉넉잡아도 열달은 넘지 않으리다.
한 인간의 일생에서 열달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나날에 한생을 두고도 체험하지 못할 인생고초를 다겪었고 평생을 두고도 깨치기 어려운 세상사의 새 리치를 분명히 감득하지 않았는가?!
하고보면 이번 대마도원정은 우리 고려군대가 민족의 존엄을 얼마나 귀중히 여기는가를 소리높이 과시한 력사적인 군사원정인 동시에 인생의 새로운 리치를 심장으로 깨달은 뜻깊은 인생원정이로다.)
박위는 채수염이 훨훨 날리는 동그스름한 턱을 자랑스럽게 들어올리였다.
하얀 비단옷을 일매지게 차려입은 갈매기들이 한껏 부푼 돛폭을 감돌며 그리 곱지는 못하나 더없이 열광적인 소리로 단조로운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박위에게는 무심한 바다새들조차 원정대를 마중나온 고국의 친근한 사절마냥 정답게 안겨왔다.
박위는 허리춤에서 건둥거리는 묵직한 칼자루를 으스러지게 틀어잡으며 내심깊이로 부르짖었다.
(그렇다. 세상사의 리치, 인생사의 철리는 더할나위없이 명백하다.
군사의 심장이 사랑과 증오로 열렬히 불탈 때 그가 잡은 검은 순간의 동요나 좌절도 없이 활활 불타오르거니.
검이 불타면 인생길에 시련은 있을지라도 실패는 있을수 없다.
검이여, 불타라!
애국에 차넘치고 슬기와 용맹으로 충만된 백성들의 심장과 함께…
그러면 승리는 언제나 확정적이다!)
갑판에 나와있던 군사들이 불시에 와― 환성을 터치였다.
《고국이 보인다!》
《우리 군영이 보인다!》
군사들은 소리소리 지르며 손을 흔들고 발을 굴렀다.
떠나온지 이제 겨우 열흘정도밖에 되지 않건만 민족의 존엄과 영예를 떨치고 돌아오는 길이여서 고국은 그리도 눈물겹게 반가운것이리라.
박위는 들레이는 가슴을 안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아닌게아니라 고국의 모습, 군영앞동네의 모양이 한폭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안겨왔다.
동구밖에 의좋은 형제마냥 쌍으로 솟아올라 꼭 성문처럼 보이는 두그루의 소소리높은 향오동나무.
아지랑이 가물가물 피여오르는 황산강가의 드넓은 벌판.
그 벌판의 여기저기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거나 태평스레 배를 붙이고 엎드리여 느릿느릿 새김질을 하는 누렁소들…
자세히 여겨보면 싸움터에 나간 지아비와 아들을 기다리며 서성거리는 녀인들의 희맑은 얼굴도 보일것 같았다.
들국화처럼 청초하고 그윽한 리옥이 아니, 단검처럼 단호하고 용감한 리옥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젖살이 포동포동 오른 아기를 껴안은 얌전이의 모습 그리고 회군하는 즉시 성례를 치르기로 한 취금이의 얼굴도…
박위는 사품쳐오르는 그리움의 열물로 하여 가슴의 벽이 데는것 같았다.
그는 숫제 눈을 꾹 감아버리였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내 나라 고려인가.
아사달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리우며 단군이래 수천년의 자랑스러운 력사를 새겨온 우리 민족.
선조의 뼈가 묻혀있고 귀중한 사람들이 살고있으며 래일의 희한한 꿈이 꽃펴나는 삶의 요람…
과연 어느 오랑캐가 우리 고려를 한발자국이라도 범할수 있으며 어느 왜적이 언감 우리 민족을 순간이나마 턱아래로 굽어볼수 있단 말이냐.
이 땅에 뜻높은 무관들과 백성들이 있고 서슬푸른 장검이 있는 한우리 고려는 영원히 철의 수호속에 민족의 존엄과 기개를 온 세상에 떨쳐가리라.…
승리자의 기쁨과 자랑, 고려군사의 영예와 긍지를 가득 실은 전함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승벽내기를 하며 기운차게 썩썩 달리고있었다.
고려의 푸른 바다는 살찐 가슴을 들먹이며 승리하고 돌아오는 민족의 장한 아들들을 고국으로, 고국으로 힘차게 떠밀어주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