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회)

제 3 장

15

 

짙은 안개속에 웅크리고있는 대마도는 꼭 옛말에 나오는 커다란 뱀이 서리서리 똬리를 틀고 누워있는것처럼 으스산하게 보이였다.

푸르스름한 안개는 차츰 섬을 둘러싼 벼랑들과 성곽들, 그뒤로 연연 겹놓인 구릉들을 벗어나 서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섬의 자태가 선명하게 드러나자 생각탓인지 비릿한 해감내와 함께 피비린내 같은것이 들쩍지근하게 풍겨왔다.

어디선가 맹수의 체취같은것이 시큼시큼하게 날아오는것 같기도 했다.

고려의 전함들은 이미 약속한대로 열척 혹은 스무척씩 패를 나누어 조용히 흩어지였다.

섬을 동서남북으로 에워싸고 일격에 해변의 군사시설들과 성곽을 분쇄한 다음 지체없이 대마도의 중심부인 기미쯔시미와 이즈하라로 돌입할 계획이였다.

좌군을 맡은 김종연과 우군을 맡은 최칠석이 각각 20척의 전함을 이끌고 좌우로 갈라져나간 뒤 박자안과 윤통, 최단이 각기 10여척의 전함을 달고 때맞춤하게 바다쪽으로 밀려나오는 안개발속으로 스며들었다.

김종연은 동쪽을 치고 최칠석은 서쪽을 깨치며 최단은 북쪽을 공격하고 윤통과 박자안은 가미섬(웃섬)과 시모섬(아래섬)을 견제해야 했다.

전군을 총찰하면서 중군을 통솔하기로 한 박위는 나머지배를 이끌고 섬의 남쪽어구인 동시에 섬의 중심부를 통하는 관문인 쯔시요리(두지포)를 돌파해야 했다.

고려의 전함들은 섬을 에워싸고 소리없이 전진하여 대안바투까지 접근했으나 섬안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

바다우에 아직도 짙은 안개가 깔려있어 진공하는 고려함대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저들의 소굴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굳게 믿고 마음을 푹 놓고있는지?!…

애초에 박위는 대마도앞바다에서 치렬한 싸움을 한차례 벌린 뒤에야 섬에 상륙할수 있으리라 타산했었다.

헌데 왜구들은 고려의 전함들이 하나둘 닻을 내리는 지금까지도 사뭇 기척이 없었다.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촌시도 머밋거릴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팽배한 전투의욕을 안고 전함들의 움직임과 섬의 지형을 엇갈아 갈마보던 박위는 눈이 시도록 빛나는 장검을 번쩍 추켜들었다.

목이 터지게 웨치였다.

《군사들, 싸움의 승패는 불의의 타격과 높은 진공속도에 달려있다. 먼저 화포를 터쳐라!》

박위의 령이 내리기 바쁘게 박위가 탄 천료주에서 제일먼저 요란한 포성이 터지였다.

《꽝!》

시뻘겋게 익은 박통같은 포알이 위잉― 무자비한 죽음의 노래를 읊조리며 창공높이 솟아올랐다.

하늘우에 두개의 해가 매달리였다.

그중에서 어느것 하나가 급기야 적진을 향해 곤두박히였다.

때를 같이하여 수십척의 전함들에서 화포들이 흠칫흠칫 몸을 떨며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꽝! 꽝! 꽝!…

화전, 철령전, 피경전, 철탄자, 류화, 주화(각종 포탄들과 불화살들)가 천지를 진감하는 굉음을 터치며 기수없이 날아갔다.

좌군과 우군도 성과적으로 공격위치에 진입하여 포격을 개시한듯 동서량면에서도 요란한 포성이 북치듯 울려왔다.

해변은 금시 하늘땅이 터져나가는듯 한 포성과 버섯모양의 연기덩이들, 치솟아오르는 불길로 뒤덮이였다.

저 멀리 대마도의 중심지역도 불길과 연기에 휘감기여 어디가 어딘지 거의나 가려볼수 없었다.

허나 박위는 이미 마음속으로 열번도 더 확인해본 중심지대의 지형을 다시금 머리속에 그려보며 두번째 령을 내리였다.

《중군은 모두 나를 따르라!》

박위는 서슬푸른 장검을 비껴들고 선참으로 배에서 뛰여내리였다.

박위의 뒤를 따라 화살과 창, 검과 철퇴를 틀어잡은 원정군사들이 사태처럼 쏟아져내리였다.

와― 우렁찬 함성을 울리며 파괴된 성곽과 우죽삐죽한 바위를 타고넘은 중군은 섬의 중심부를 향해 성난 파도마냥 달리였다.

좌우군도 공격을 개시한듯 이쪽저쪽에서 고려군대의 기세찬 함성이 왁자하게 들려왔다.

박위를 선두로 한 중군이 시가지어구인 오덴야근방에 이르자 그제서야 급급히 편성된 왜구의 방어군이 바퀴떼처럼 무질서하게 밀려나왔다.

싸늘한 랭소를 머금고 놈들을 노려보던 박위는 뒤따르는 군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였다. 가쁜 숨을 헐썩거리며 힘차게 웨치였다.

《군사들은 내 말을 들으라!

고려국의 존엄을 걸고 정의로운 징벌의 전장에 나선 우리의 용맹을 당할자 세상에 없다.

모두다 죽기를 두려워 말고 지금껏 우리 백성들이 흘린 피로 벼려온 정의의 검을 유감없이 휘날리라!

오늘로써 백여년의 원한을 풀고 고려군의 무적필승의 기상을 만천하에 떨치라!》

박위의 열띤 호소에 목갈린 함성으로 호응한 군사들은 다시금 맹렬한 기세로 박위의 뒤를 따라 왜구의 무리속으로 뛰여들었다.

그렇게도 바라던 대마도에서의 격전은 드디여 시작되였다.

박위는 왜구들이 나타날 때마다 장검을 틀어잡은 손에 전신의 용솟는 힘을 그러모아 내리긋고 올리찌르고 앞으로 내찔렀다.

놈들은 다가서는 족족 피범벅이가 되여 자반뒤집기를 하였다.

박위의 곁에 바싹 붙어선 오천은 어딘가 잔인해보이는 미소를 머금고 드세게 칼질을 해대는데 왜구가 나동그라질 때마다 영낙없이 한마디씩 씹어뱉았다.

《고려군사의 칼맛이 짭짤할테지?》

《이건 우리 부모님의 피값이다!》

《오냐, 장인장모의 원한까지 풀자면 아직 멀었으니…》

두터운 입술을 푸들푸들 떨며 오천의 뒤를 따르는 고들이도 실한 몸을 잽싸게 날리며 칼을 휘두르는데 피바래가 일 때마다 그 역시 오천의 흉내라도 내듯 씨벌거리였다.

《이놈, 죽촌 〈두부자루〉의 칼솜씨가 어떠냐?》

《이놈아! 우리 색시의 피가 물인줄 알았더냐?》

고들이와 나란히 달리는 《만사태평》도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왝왝 내지르며 갈범마냥 펄펄 날고뛰였다.

박위의 뒤를 따르는 여삼이와 현중이도 연해 《받아라!》, 《먹어라》하고 소리를 지르며 살을 날리고 돌을 던지였다.

알몸뚱이에 칼 하나 잡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다가 창끝에 찔려 나번져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웃옷의 한쪽소매만을 걸친채 마구 칼을 휘두르다가 상판에 화살을 맞고 뒤번져지는 놈도 있었다.

개중에는 독한 놈도 있어 화살에 멱을 찔려가지고도 칼을 지팽이처럼 짚고 비척비척 걸어나오다가 《도쯔께끼》를 부르며 모재비로 꺼꾸러지는 놈도 있었다.

드디여 왜구의 방어군은 누데기모양으로 여기저기 터지고 찢어지여 주춤주춤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연록색의 햇이파리가 무수히 내돋은 노린재나무와 쪽동백나무들이 듬성듬성 널려있는 행길어구에는 탕친 고기뭉치처럼 된 왜구들의 시체가 너저분하게 깔리였다.

고려군사들은 성난 맹수들처럼 계속 다기차게 활을 날리고 검을 휘두르며 섬의 중심부를 향해 진격했다.

중군의 맹렬한 공격에 거적때기 밀리듯 맥없이 뒤로 밀리던 왜구들은 마침내 상투꼭지를 뒤로 제끼고 줄행랑을 놓았다.

도망치는 왜구들을 쫓아 내달리던 박위는 갑자기 달음을 멈추었다.

이렇게 몰이군이 메돼지무리 튀기듯 무작정 왜구들을 밀고나간다면 놈들은 필경 장거리를 돌아 관사아래쪽으로 내뺄것이였다.

중군은 시가지중심으로 돌입하고있고 좌우군은 관사의 량익측을 압박하고있는 이때 관사아래쪽은 거의 개방된 상태에 있었다.

예까지 왔다가 한놈의 왜구라도 놓쳐버린다면 그것은 완벽한 승리라고 말할수 없었다.

왜구들에게 아니, 온 세상에 고려군대가 어떤 군대이며 고려국의 존엄과 기상이 어떤것인가를 유감없이 과시하자면 단 한놈의 왜구도 구릉지대의 숲으로 스며들게 해서는 안되였다.

박위는 현중을 소리쳐 불렀다.

《현중아, 너 얼른 우군에 뛰여가서 관사의 지붕에 불화살을 쏘아박으라고 일러라.

관사에 불이 나면 왜구들의 기세는 더욱 쭈그러들게다.》

현중은 한창 독을 품고 왜구들을 쏘아잡는 재미에 자리를 뜨기 싫었으나 군말없이 우군이 있는 쪽으로 뛰여갔다.

박위는 재차 여삼을 찾았다.

《너는 좌군으로 가서 전라도원수께 내 령을 전해라.

군사를 두쪽으로 나누되 한패는 계속 관사의 옆구리를 조이고 다른 한패는 관사아래쪽 길을 막으라고 해라.

그렇게 되면 왜구는 필시 날개부러진 까마귀 채롱속에 든 격이 되리다.》

멍구럭을 걸메고 무작정 뛰여가려던 여삼은 다시 박위쪽으로 돌아서더니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근심의 빛을 가득 떠올리였다.

《소인이 자리를 뜨면 장군의 신변은 누가 시위하리까?》

《이놈! 무슨 군말이냐? 어서 가지 못할고―》

미치미치하는 여삼을 쫓아보내듯 떠밀어보낸 박위는 중군의 기본집체를 이끌고 시가지중심으로 돌입했다.

쑤셔놓은 벌둥지마냥 수라장이 된 왜구들의 병영 하나를 순간에 해일처럼 휩쓸어버린 박위는 얼마후 관사의 청기와지붕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드넓은 대통로에 들어섰다.

용기백배하여 관사의 량익을 각일각 조이는 좌우군군사들의 장한 모습이 한눈에 안겨왔다.

관사의 아래쪽에서는 어느결에 벌써 왜구의 퇴로를 차단한 김종연의 군사들이 밀려내려오는 놈들을 세괃게 올리밀고있었다.

관사의 지붕우에서는 두리기둥같은 불길이 널름널름 하늘을 핥고있는데 화광이 얼른거리는 대문 앞마당에서는 왜구들이 오뉴월 개천에 자가사리끓듯 오글복작거리고있었다.

왜구들은 벌써 싸움판에 나선 군대가 아니라 사냥군들의 포위에 빠진 굶주린 늑대무리나 다를바 없었다.

싸움은 벌써 다 이겨놓은 싸움이였다.

박위는 벌써부터 몰밀려드는 전승의 환희로 하여 숨이 가빠났다.

그는 더러운 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붉은 장검을 높이 추켜들었다.

필경 이번 원정에서 마지막군령으로 될 령을 내리였다.

《중군은 관사정면으로 돌입하라!》

중군의 집체는 한달음에 행길을 건너 대문 앞마당으로 쏟아져내리였다.

박위는 중군만이 아니라 원정군전체의 마지막전투를 지휘하기 위해 행길가에 시체처럼 자빠져있는 돌탑우에 우뚝 올라섰다.

중군의 군사들이 모두 앞마당으로 달려나간 까닭에 박위의 주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데 불현듯 등뒤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같은것이 울려왔다.

《박위는 내 칼을 받으라!》

박위는 관습적으로 날래게 칼을 비껴올리며 홱 몸을 돌리였다.

체구가 청바위처럼 단단해보이는 어떤 왜구가 소대가리같은 상판을 꼿꼿이 쳐들고 자신만만하게 다가오는데 놈의 심술궂게 생긴 눈에서는 퍼런 불덩이가 이글거리고있었다.

어디선가 마주쳤던 놈 같았으나 얼추 생각나지 않았다.

(여기 왜국에 내 얼굴을 아는 놈이 있다?!

헌데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자기의 칼을 받으라고?!…

이놈이 미쳐도 이만저만 미친놈이 아니로다.

모두들 죽을기를 쓰고 도망질을 하는 판인데 언감 내 이름까지 부르며 싸움을 걸어?!…)

박위는 돌탑우에서 훌쩍 뛰여내리였다.

칼을 추켜든채 침착하게 마주 걸어나가며 위엄있게 웨치였다.

《너는 대체 어떤 놈이기에 하늘 높은줄 모르고 함부로 기광을 부리는거냐?》

괴한은 누런 이발을 사려문채 칼잡은 손을 부르르 떨며 개승냥이처럼 울부짖었다.

《나는 대마도의 령주 사다께다. 우리는 오늘 운이 기울어 패했으나 나는 너와 단병접전을 하여 네놈의 목대를 분질러버릴테다.

나 개인의 승리를 하겠단 말이다. 내 칼이 무섭지 않거든 이리 썩나서라!》

박위의 심장은 가볍게 골풀이쳤다.

이놈이 바로 사다께로구나.

10여년전 황산강에서 마주섰던 원쑤, 우리 백성들을 수없이 살해하고 우리 나라에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들씌운 살인귀…

하기에 내 이놈과 마주서기를 꿈결에도 원하지 않았던가.

헌데 이놈은 제쪽에서 먼저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고 마구 날뛰지 않는가?!

박위는 랭소가 어린 입술을 느리게 터치였다.

《오냐, 네가 바로 해적떼의 대두령 사다께로구나.

같잖게 노는 꼴을 보고 벌써 그런 짐작을 했었다.

내 이미 편지로 알렸지만 나 역시 네놈과 판가리싸움을 하는것이 소원이였다.

하거늘 내 어찌 네놈의 칼을 피하겠느냐. 네놈이야말로 내앞에 썩 나서거라!》

박위는 사다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사다께도 자못 용기있게 박위앞으로 다가들었다.

…사실 사다께는 퍽 오래전부터 박위가 대마도공격을 준비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고려국력과 형세로 보아 고려군의 한 지방부대가 완전히 요새화된 대마도를 친다는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설사 박위가 쳐들어온다 해도 자신을 희세의 모사로, 용장으로 과신하고있는 사다께는 일거에 고려군을 불개미떼처럼 쓸어내칠 자신이 있었다.

헌데 이 아침 상상밖으로 강력한 타격력을 앞세운 정예한 고려군이 사태처럼 밀려들었다.

북치듯 울리는 화포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여난 사다께는 처음 한동안 코웃음을 킁킁 쳐가며 여유작작하게 방어군을 편성하여 보내고는 파발군들을 이리저리 띄워 각방면의 전투를 지휘하였다.

고려군의 첫 타격에 해변가의 견고한 방어시설과 적지 않은 병력, 수많은 전투기재들이 파괴되고 소멸되였다.

왜구들은 그전날 강도배의 용기같은것은 어느 구석으로 날려보냈는지 얼혼이 빠지여 갈팡질팡했다.

방어군의 선두에 서서 가장 치렬한 전방인 오덴야근방에 나갔던 지또는 어째보지도 못하고 허깨비처럼 나떨어지였다.

방어군은 떠밀어보내는 족족 화토불에 가져다댄 연덩이처럼 물렁물렁 녹아버리였다.

고려군의 물샐틈없는 포위환은 각일각 조여들었다.

고려의 경상땅을 거의나 제 주머니에 따서 넣은듯이 생각했던 사다께, 박위의 원정군같은것은 눈가루처럼 가볍게 날려버릴수 있다고 타산했던 사다께는 그제서야 자기가 오산을 하고 착각을 해도 얼마나 엄청나게 했는가를 통감하였다.

이제 박위가 관사에 뛰여드는 순간이면 모든것이 끝장이였다.

오늘의 막강한 권세와 부귀도, 막부의 높은 자리를 획득할 래일의 거창한 꿈도 다시는 이룰수 없을것이였다.

허나 사다께는 닥쳐온 자기 인생의 파멸이 강도배의 응당한 말로로 생각되기는커녕 하늘의 온당치 못한 처사로 여겨지였다.

분하고 억울했다.

하늘이라도 찢어발기고싶도록 악이 치받쳐올랐다.

대마도는 비록 망해도 자기만은 세상과 력사앞에 용맹한 사나이로, 승리한 《천자》의 아들로 알려져야 한다는 비장한 최후의 결심이 돌덩이처럼 굳어지였다.

사다께는 훌렁 뒤번져진 입술밑으로 으득으득 이를 갈았다.

《소라도부 도리 아도오 개가라와즈.》(하늘을 나는 새는 자기의 보금자리를 더럽히지 않는다는 뜻)

이어 사다께는 그 어떤 타산이나 감정에 끌려서가 아니라 순수 관습의 힘에 떠밀리워 니찌렌상이 걸려있는 방으로 뛰여들었다.

니찌렌상앞에 지그시 눈을 감고 최후의 명상에 잠기였다.

(아아, 니찌렌도노!

얻는것은 세월의 힘이요 잃는것은 천도의 순서이니 내 이제 와서 과연 무엇을, 누구를 원망하리까.

나의 대마도는 비록 가혹한 운명의 희롱에 말려들어 멸망의 위기에 처했으나 이 사다께는 혼자서라도 력사앞에 희세의 남아로 찍혀지고싶사오니 부디 소원을 이루게 해주소서…)

벙긋이 눈을 뜬 사다께는 홀린듯이 니찌렌을 쳐다보았다.

니찌렌은 대마도와 대마도의 령주가 파멸의 위기, 림종의 시각에 처했건만 오늘도 변함없이 련꽃단우에 단정히 올라앉아 이상야릇한 미소를 피우고있었다.

사다께의 흉중에서 부지불식간 그 어떤 강렬한 반발감과 거부반응이 불길처럼 치밀어올랐다.

전지전능하기는커녕 우직하고 매정한 이 돌덩이가 지금껏 자기에게 손톱눈만 한 리득도 가져다준적 없다는 엄연한 현실감이 떠오르자 이번에는 무분별한 복수의식이 발작적으로 북받쳐올랐다.

《퉤!》

사다께는 일생 그렇게도 깊이 숭상해온 니찌렌의 거룩한 상판에 걸쭉한 가래침을 뱉았다.

가차없는 발길질로 그 신성한 돌덩이를 힘껏 떠밀어넘기였다.

해괴한 요설과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인간들을 기만하고 세상을 희롱하던 니찌렌은 자기의 독실한 적자의 발길질에 걸리여 볼꼴없이 나자빠지였다.

사다께는 야릇한 환희를 느끼며 니찌렌의 몸뚱이를 타고넘어 밖으로 나갔다.

대마도는 불길과 매연에 뒤덮여있었다. 어디 가나 시체와 재무지가 밟히였다. 불달린 들쥐마냥 방향없이 마구 헤바라다니던 사다께는 마침내 나자빠진 돌탑우에 서있는 낯익은 고려장수를 찾아내였다.

그는 지체없이 대마도의 최고통치자 《천자》의 적자의 명예를 걸고 박위에게 《력사적인》 단병접전을 요청했다.…

박위의 칼과 사다께의 검은 연해 바람가르는 소리를 홱홱 일으키며 세차게 맞부딪치고 힘차게 엇갈리였다.

쨍쨍… 날카로운 금속음이 주위의 소란스러운 대기를 아츠럽게 들찢었다.

퍼렇게 불타는 두쌍의 눈은 허공을 태우며 무섭게 엇갈리였다.

만만치 않은 용력과 칼재주를 가진 뛰여난 두 검객은 연방 악악 고함을 터치며 성난 표범처럼 날고뛰였다.

사다께의 근력과 검술은 그가 일쑤 내놓고 흰목을 뽑을만큼 절등한것은 사실이나 박위와 겨룰만 한 수는 못되였다. 게다가 사다께는 전면적인 패망을 눈앞에 둔 죄많은 도적두령이라 맹수의 단말마적인 발악같은것은 있어도 승리에 대한 신심이나 자긍심같은것은 꼬물만큼도 있을리 없었다.

원쑤에 대한 치솟는 분노와 증오, 정의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안고 자신만만하게 공세를 취하던 박위는 어느 한순간 사다께가 병든 닭새끼처럼 비치닥거리자 때를 놓칠세라 번개같이 달려들었다. 서슬푸른 장검으로 사다께의 굵은 목덜미를 힘껏 내리찍었다.

허연 비게살이 훌렁 뒤번져지며 검붉은 피가 덩어리처럼 왈칵 쏟아져나왔다.

사다께는 밑둥잘린 통나무처럼 위태롭게 기우뚱거리더니 행길가의 파란 풀밭우에 모재비로 나가떨어지였다.

불맞은 송충이마냥 두어바퀴 나딩굴던 사다께는 차츰 사지를 뻣뻣하게 내뻗치였다. 박위는 먼지와 피로 얼룩진 커다란 갖신으로 사다께의 가슴팍을 힘껏 지르밟았다.

각일각 흐려지는 사다께의 뿌잇한 동공을 내려다보며 힘진 어조로 부르짖었다.

《네 이놈, 다시한번 지껄여봐라.

네놈은 우리 고려사람들에게 이루 헤아릴수 없는 불행을 들씌웠을뿐아니라 우리 민족, 우리 군대를 모독하는 망발을 수없이 늘어놓았다.

또한 〈해뜨는 나라의 천자〉요, 〈력발산 기개세〉요 하면서 흰소리, 개소리를 수없이 뇌까렸다.

우리는 네놈의 모든 죄행을 어느것 하나도 용서할수 없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고려국의 존엄을 유린하고 모독한 죄는 특히 용서할수 없다.

죽으면서라도 똑똑히 알아둬라.

앞으로도 이 세상에 고려국의 존엄을 조금이라도 해치는 놈들이 있다면 우리는 이렇게 하늘땅 끝에라도 찾아가 철저히 무자비하게 소탕할것이다!》

박위는 사다께의 두터운 가슴팍에 기운껏 칼을 들이박았다.

악! 항아리가 터져나가는듯 한 비명과 함께 검붉은 피줄기가 한길이나 솟구쳐올랐다.

박위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관사쪽으로 힝힝 걸어나갔다.

행길가에 어우러진 각색 이채로운 나무들이 박위의 래림을 환영하듯 손에 손을 맞잡고 가볍게 설레이였다.

흰 꽃송이들이 구름처럼 피여난 백당나무, 황록색꽃송이들이 주렁진 딱총나무, 이제 겨우 남자색, 붉은색꽃망울들이 쌀알처럼 다닥다닥 맺혀있는 순비기나무, 누리장나무, 작살나무들이 이 시각을 위해 고이 아껴두었던 독특한 꽃향기를 진하게 내뿜고있었다.

이곳의 자연도 결코 불결한것이 아니였다.

자연은 언제한번 인간을 괴롭힌적 없건만 이곳의 악당들이 그리도 악명을 떨쳤기에 대마도는 자연과 지명마저 세인의 저주와 규탄을 받아온것이였다.

하고보면 고려의 원정군은 포악무도한 강도배들을 징벌한 정의롭고 용감한 군대인 동시에 이 땅의 자연에도 순수한 아름다움을 되찾아준 고결하고 성스러운 미의 건설자들이였다.

승리의 기쁨과 환희로 하여 술이라도 마신것처럼 얼굴이 벌개진 김종연과 최칠석을 비롯한 장수들이 반달음을 놓고 다가오고있었다.

그뒤로 오천이와 여삼이, 현중이와 고들이… 알고 모르는 수백수천의 고려군사들이 목청껏 환성을 올리며 강물처럼 밀려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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