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1 회)
제 3 장
13
김해의 2월은 드바쁜 일계절이다.
물이 따스해지니 어부들과 해녀들은 그물질, 무잠이질을 하느라고 젖은 몸이 마를새 없고 땅이 부근부근하게 부풀어오르니 농군들은 밭을 갈고 씨를 묻느라고 굽은 허리를 펼 틈이 없었다.
집집의 큰애기들까지 산나물을 캐고 송피를 벗기느라고 사랑에 불타는 높은 가슴을 한가락의 애가로 달래이며 이산저산을 오르내리였다.
2월은 또한 여느때없이 번잡스러운 굿계절이였다.
오랜 옛적에 벌써 《…거북아 거북아…》라는 구절로 시작된 《구지가》라는 원시적인 신앙숭배를 내용으로 한 첫 가요를 엮어낸 고장이여서 그런지 일찍부터 이 고장 무당, 판수, 승려들은 비길데없이 신귀가 밝고 불법에 능통하다고 전국에 소문이 파다했다.
하여 경향 각처에서 세상사 여의치 못해 마음고생, 몸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뻔질 이곳으로 밀려드는데 2월이면 온갖 귀신놀이가 가장 성행하는 때라 김해의 방방골골, 촌촌호호가 노상 북적북적 하였다.
허나 이해 기사년(1389년) 2월의 아침.
이 고장 사람들은 모두다 그처럼 번다한 일사를 깡그리 잊은듯 군영앞 바다기슭에 하얗게 모여있었다.
창원과 밀양, 부산과 동래를 비롯한 주변고을의 백성들, 지어 멀리 개경에서 길량식을 축내가며 부러 예까지 내려와 새벽부터 부산을 피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숱한 사람들의 맨 앞장에는 만나기만 하면 기가 나서 승벽내기를 하던 옥보와 구서방이 여느때없이 깨끗한 백저포(주로 농민, 장공인들이 입던 흰색의 겉옷)를 차려입고 의좋게 나란히 서있었다.
흐뭇한 미소를 띠운채 연해 기다란 수염을 쓸어내리는 죽촌의 행수로인과 전에없이 멀끔해진 얼굴로 바다우의 전함들을 살펴보는 백동이 엄마 그리고 어지게 생긴 황소눈을 슴벅거리는 장서방의 모습도 보이였다.
몸에 꼭 맞는 흰 저고리를 입고있어 복성스럽게 생긴 얼굴과 조금 부할사 한 탄력있는 몸매가 더욱 두드러져보이는 취금이의 생기발랄한 모습,
초록색바탕에 빨간 깃선을 댄 저고리를 차려입은 리옥이가 자그마한 꾸레미를 들고 서있는 모양도 뜨이였다.
이들은 모두 왜구의 소굴, 대마도를 요정내기 위해 출정하는 고려군사들을 전송하기 위해 백사만사를 제껴놓고 달려온것이였다.
원정군사들은 이미 전함우에 모두 올라있었다.
군영 앞바다를 꽉 메운 100여척의 전함우에서 출전의 시각을 기다리고있었다.
천료주의 갑판우에 뒤짐을 돌려잡고 서있는 박위는 아까부터 주위의 전함들과 그우에 올라있는 군사들, 봄볕에 강철의 몸체를 번쩍이는 화포들을 얼없이 바라보고있었다. 때로 바다가에 장사진을 이루고 서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내려다보기도 했다.
가슴은 하냥 후더워올랐다.
얼마나 목마르게 기다려온 이날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날, 이 시각을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리고 밤을 지새웠던가!
정녕 2월의 오늘은 자연이 안아왔지만 원정의 이 시각은 이 나라 백성들의 애국충정과 멸적의 기상이 빚어낸것이 아니겠는가?
《헛허, 이런 난감한 일이 어디 있소?》
칼을 비껴잡은 최칠석이 껄껄 웃으며 박위앞으로 다가왔다.
그제서야 사색에서 깨여난 박위는 느슨한 미소를 띠우며 물었다.
《왜 그러우?》
《아니, 글쎄 현중이녀석이 날더러 원정에 가게 해달라구 땅파기로 졸라대는구려. 나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해암이 군령으로 쫓아내시우, 헛허허.》
칠석은 모든 일이 그저 기쁘기만 한듯 노방 웃어가지고있었다.
박위는 별로 놀라지도 주저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제가 가겠다면 내버려두구려.》
칠석의 크지 않은 눈이 대번에 떼꾼해졌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뼈도 채 굳지 않은 현중이를 싸움판으로 데리고 간단 말이요?》
《원래 봉황의 새끼는 어려서부터 대공에 날아오를 마음을 가지고 기러기, 따오기새끼는 나면서부터 바다를 횡단할 꿈을 가진다오.
무관의 자식이 어려서부터 원쑤와 싸울 생각을 하는게야 너무도 응당한 일인데 무얼 놀랄게 있소?》
어느 틈에 박위의 뒤에 와 서있던 현중은 나직한 환성을 터치였다.
군사들이 입은 궁노(고려시기 군사들이 입던 통좁은 바지)를 가뜬하게 입고있어 한결 날렵해보이고 어른스러워보이는 현중은 곧 선미쪽으로 뛰여가더니 아래쪽에 대고 기운차게 손을 흔들었다.
바다가 모래불에 외따로 나와 서있던 리옥은 현중의 손짓을 보자 그윽한 미소와 은근진 고개짓으로 화답을 보내였다.
보매 현중은 이미 리옥에게 원정에 참가할 자기의 의사를 표명하였고 리옥은 그의 의향을 두말없이 찬성한 모양이였다.
이어 리옥은 보꾸레미속에서 새파란 솔잎을 한줌 듬뿍이 집어내더니 박위가 탄 천료주주위에 무슨 씨라도 뿌리듯 솔솔 뿌리였다.
오늘은 항간에서 《꽃아침》이라 이르는 날이다.
옛적부터 2월의 이 아침이면 출입문과 방안, 지어는 앞뜰과 뒤뜨락에까지 솔잎을 뿌리였다.
새봄에 들어 빈대가 성하지 못하게 바늘(솔잎)을 뿌린다는 의미였다.
별로 신통한 방책은 아니지만 솔잎을 따기 위해 봄날의 신선한 대기를 호흡하며 소나무 우거진 산으로 오르는 등산도 나쁠것 없는 일이요, 불결한것을 꺼리고 순결한것을 취하려는 건전한 생활지향도 탓할것이 아니였다.
리옥은 배둘레를 따라가며 여념없이 솔잎을 뿌리고있었다.
그는 지금 빈대가 바늘에 찔려죽듯이 왜구들이 우리 군사들의 화살에 나서는 족족 맞아죽기를 바라며 솔잎을 뿌리는것이였다.
리옥의 일거일동을 놓칠세라 바라보는 박위의 눈뿌리는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아 리옥, 정답고 소중한 그대여.
뉘라서 사랑을 마음의 부담으로 여긴적 있었던가.
사랑은 마음속의 가장 큰 재부요, 인생의 큰뜻을 떠밀어주고 생활의 의의를 증대시키는 신기하면서도 확실한 하나의 기적이 아니겠는가?!…
세련된 무희의 률동을 련상케 하는 리옥의 유연한 손놀림을 지켜보는 박위의 가슴에는 불이 일어번지였다.
보이지 않는 그 불길은 전신을 활활 태우는듯싶었다.…
며칠전 저녁이였다.
군영에서는 대마도원정작전을 최종적으로 토의결정하는 장수들의 중대한 모임이 있었다.
첫 의제인 원정날자를 정하는 대목에서부터 말썽이 일어났다.
박자안이 아닌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첫날은 모든 일을 조심하고 함부로 출입을 하지 말아야 하며 다음날에는 찰밥을 지어 제사를 하고 떠나야 한다는따위의 타령을 꺼내놓은것이였다.
박위는 즉각 자안의 귀신타령을 일축해버리고나서 출정날자를 2월초로 찍어서 눌러놓았다.
다음의제는 바다길을 어느 방향으로 택할것인가 하는것인데 그 문제는 그런대로 무난히 락착되였다.
마감으로 대마도대안에 접근한 후 어떤 형식으로 섬의 외곽을 타격하며 외곽을 깨친 후에는 어떻게 섬의 종심을 공격할것인가 하는 가장 주요한 의제에 이르자 의견은 다시 분분해졌다.
그것은 저마끔 전투경험과 실전능력이 다르고 사색의 농도와 궁냥의 깊이가 다른데도 원인이 있었지만 보다는 누구라 할것없이 대마도지형을 잘 모르는데 근본원인이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는 박위도 례외가 아니였다. 갑론을박하던 끝에 대체적인 공격안을 짜기는 했으나 그것은 꼭 장님들이 모여들어 지은 집처럼 어설프게 생각되여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무죽한 마음을 안고 처소로 돌아온 박위는 저녁상을 치르고나서 리옥이 내온 차종을 받아들었다.
오랜만에 리옥이 달여온 구기자차를 마시고난 박위는 감회깊은 어조로 말하였다.
《오랜만에 그대가 달여온 차를 마셔보네그려. 그래서인지 맛이 참 유별스러우이.》
박위는 리옥을 다시 만난 뒤로는 해라를 쓰지 않았다.
부러 쓰지 않는것이 아니라 절로 그렇게 되였다.
리옥은 그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박위를 만류하기는커녕 자연스럽게, 지어는 기쁘게 받아들이였다.
이것은 대체 어찌된 일이며 무슨 까닭인가?!…
《유별스럽다니? 맛이 답니까?》
한삼(속저고리)만 입은 리옥은 박위곁에 살풋이 모꺾어앉으며 은근지게 물었다.
《달리야 있겠소. 쓴맛이 유난히 마음에 즐겁다는 뜻이지.
아마도 칼잡은 무관은 쓴맛을 사랑해야 하는가보이. 그래야 백성들이 달게 살아갈수 있을게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리옥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수집게 들어올리였다.
《…대마도에서 돌아온 뒤 작은 사랑에 들어가보니 현중은 소녀가 짓다가 버려두고간 무관복을 서탁우에 그냥 놓아두고있더이다.
그걸 보니 소녀의 마음 아프고 쓰려서…》
《그건 그대가 버려두고간것이 아니라 왜구들탓에 채 못 지은것이지.
이제라도 마저 지어준다면 나도 기쁘고 현중이도 좋아할게요.》
박위가 여러가지 뜻을 담아 신중히 말하자 리옥의 얼굴은 더욱 붉어지였다.
이어 리옥은 꽤 큼직한 종이두루마리를 꺼내여 박위의 무릎앞에 주르르 펼쳐놓았다.
우불구불한 선들과 크고작은 동그라미들, 세모형과 네모형… 각이한 도형이 빼곡이 들어찬 종이장을 얼추 내려다보고난 박위는 의혹에 찬 시선으로 리옥을 쳐다보았다.
《이게 무엇인가?》
《대마도의 지형입니다. 소녀가 그곳에서 지낼 때 눈여겨 보아두었던것을 어제 오늘 생각을 더듬어서 그려보았습니다.
이번 거사에 꼭 필요할것 같아서…》
박위는 재빠른 시선으로 급급히 종이장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해변가의 성곽들과 바위벽들, 전함들의 정박장소와 왜구들의 병영, 무기고와 군수창고, 관사와 마을, 산야와 구릉지대…
대마도의 모든것이 그림처럼 선명하게 안겨왔다.
도형을 표기한 솜씨는 서툴렀으나 그것은 단순한 지형도가 아니라 대마도원정에 절실히 필요한 실용적인 군사지도였다.
박위는 룡의 알이라도 얻은듯 기뻤다.
리옥이가 더욱 소중하고 미더웠다.
사랑은 최고의 령봉에서 홰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연약한 아녀자의 몸으로 도적떼의 소굴을 빠져나온것만 해도 장하다 하련만 왜구의 흉계를 일격에 분쇄할 증거물을 빼오고 대마도의 지형지물까지 낱낱이 알아왔으니 리옥이야말로 세상에 소리쳐 자랑할만한 이 나라의 훌륭한 딸이요, 고금에 드문 녀걸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녀자와 사랑을 나눈다는것은 희한한 행운이 아닐수 없다.…
리옥의 맑은 얼굴과 하얀 목언저리에 박혀있는 까만 기미를 갈마보며 사색을 이어가던 박위는 종이장우에서 한마리의 귀여운 새처럼 파들파들 떠는 처녀의 작은 손을 담쑥 움켜잡았다.
속깊이에 묻혀있던 불덩이같은 진정을 폭발적으로 쏟아놓았다.
《내 여직껏 그대가 지난 여름에 보낸 편지에 회답을 못했었는데 지금 하려네.
난 그대의 마음이자 내 마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제와서 무슨 말을 길게 할게 있겠나.
바라건대 부디 현중이의 좋은 어머니가 되여달라고…》
리옥은 아무말없이 언제인가 박위가 따를만 한 사내가 생기면 선물로 주라고 했던 사연많은 단검을 두손으로 받쳐 올리였다.
떨리는 손으로 단검을 받아든 박위는 리옥의 깊은 심중에 감동되여 한동안 고개만을 끄덕거리였다.
《…그대의 심정은 고맙기 이를데 없소만… 내 나이에 너무 체신머리 없는노릇이 아닌지 모르겠네.》
박위의 말은 심히 비약된것이였으나 총명한 리옥은 대번에 그의 말뜻을 알아차리였다.
살래살래 도리머리를 젓던 리옥은 불식간에 꽈리처럼 빨갛게 익은 얼굴을 박위의 담벽같은 가슴에 묻으며 자기의 들끓는 심정을 퍼올리였다.
《소녀는 현중 아버님의 나이를 모릅니다. 하오나 불덩이같은 심장을 지니신, 백년이 가도 늙지 않는 심장을 지니신분이라는것은 누구보다 잘 압니다.
소녀는 그 심장을 사랑하고 존경할뿐 다른 아무것도 개의치 않습니다.》
《고마운 말일세.》
박위는 떨리는 소리로 대답하고나서 리옥의 싱싱한 어깨를 으스러지게 그러안았다.
군영 뒤산에서는 밤깊도록 봄날의 새생활을 토의하는 이름모를 밤새들의 청아한 우짖음소리가 유난히 정겹게 울려왔다.…
근엄한 표정으로 다시금 전함들과 군사들을 둘러보던 박위는 잠풍한 바다와 인파로 설레는 백사장이 통으로 들썩하도록 우렁차게 웨치였다.
《대취타 하라!》
나팔소리, 북소리를 크게 울리라는 뜻이였다.
지휘함선인 천료주의 갑판우에 모여서있던 고취악대(관악기와 타악기를 위주로 한 군악대)가 명문고취(군대의 전투사기를 고무하기 위한 행군음악)를 터치였다.
쿵짝쿵짝 쿵쿵쿵 짝짝…
생황, 피리, 퉁소, 큰저 등의 관악기들이 풍작거리고 소가죽으로 만든 대북이 쿵쿵거리였다.
어느 틈에 악사들사이에 끼워든 여삼이도 납주그레한 턱을 유난스레 들까불며 차거라(소라로 만든 나팔)를 불고있었다.
어디선가 죽촌의 행수로인이 오래간만에 불어제끼는 세련된 저대소리도 들려왔다.
《출동하라!》
박위의 두번째 령이 울리였다.
커다란 돛폭을 활짝 펼친 전함들은 류랑한 군악소리에 장단을 맞추어 일제히 배머리를 돌리였다.
나팔소리, 북소리, 원정군을 전송하는 사람들의 격정에 찬 환성은 하늘을 뒤흔들고 바다를 진동했다.
나라의 존엄과 기상을 온 나라에 과시할 드높은 각오, 민족의 백년숙적인 왜구를 씨도 없이 소탕할 멸적의 투지를 지닌 고려의 장한 아들들은 대마도를 향해 질풍같이 달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