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9 회)
제 3 장
11
개경의 전옥이 중앙감옥이기는 하나 이 집 역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만든 시설이라 살창 몇개를 건숭 박아넣은 창으로도 황소바람이 들어오고 사개가 물리지 않은 문틈으로도 눈가루가 훅훅 끼쳐들어와 한지나 다름없이 추웠다.
하지만 짚검불우에 아무렇게나 몸을 뿌리고 누워있는 박위는 거의나 추위를 의식하지 못했다.
몸은 어디라없이 바늘로 찌르고 불로 지지듯 쓰리고 따가웠으나 그것 역시 세세히 감각되지 않았다.
뚜렷이 감촉되는것은 여직껏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운명적인 절망과 공허감뿐이였다.
박위는 캄캄한 옥안이요, 누구도 마주한 사람이 없건만 절통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막막한지고… 옳은 리치가 통할 길이 없고 바른 마음을 전할 길이 없으니 나는 결국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아무런 뜻도 펴보지 못하고 억울하게, 허무하게…》
문득 옥살창사이로 여러 줄기의 달빛이 꽂히듯 날아들었다.
감방벽과 땅바닥이 희벗하게 밝아지였다. 떠오르는 달인지 기우는 달인지 알수 없었으나 여하튼 눈앞이 조금 밝아지니 마음속도 다시 개이는듯싶었다.
박위는 무의식중에 슬며시 손바닥을 펼치였다.
피묻은 손바닥우에 은회색달빛이 소리없이 올라앉았다.
못 잊을 추억의 페지들이 알알하게 가슴속을 허벼파며 두서없이 번져지였다.
박위는 스르시 눈을 감으며 입속으로 조용히 뇌이였다.
(그날 그때도 달빛밝은 밤이였지.…)
그렇다. 오천이네들이 보계산과 굴암산, 신어산과 불모산의 절간들에서 먼지를 퍼가지고 염초장으로 돌아오던 그 시각에도 달이 밝았다.
이제는 퍽 오래전 리옥의 편지를 곱씹어 읽으며 뜨겁게 근질거리는 가슴을 달래던 그날그때도 사랑방 뙤창으로는 은사같은 달빛이 교교히 흘러들었다.
한일생 잊지 못할 달밤은 그날뿐이 아니였다.
박위의 뇌리속으로는 정다운 사람들의 모습이 희푸른 달빛에 어루싸이여 연줄연줄 다가왔다.
자기와 함께 옥으로 가겠다고 울부짖던 윤통의 질그릇같이 시꺼먼 얼굴.
목숨바쳐 자기를 돕겠노라며 비장한 감회에 싸이여 시구절을 읊던 최칠석의 깨끗하면서도 강건한 모습.
죽기를 각오하고 원정에 나서겠노라고 결연히 다짐하던 김종연의 무게있는 모습…
박위의 뇌리속으로는 엊그제 저녁에 있은 전혀 뜻밖의 일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저녁밥을 꿍져든 여삼은(그는 개경에 올라와 취금이와 함께 박위의 옥바라지를 하고있었다.) 여느때없이 설레발을 떨며 살창앞에 다가서더니 울먹거리는 어조로 박위를 찾았다.
박위는 심상한 마음으로 살창앞에 다가섰다.
헌데 이 어인 일인가.
희푸른 달빛이 깔려있는 앞마당에는 여삼이 혼자가 아니라 숱한 사람들이 웅기중기 서있었다.
그들은 박위를 띄여보자 눈물어린 얼굴을 번들거리며 욱 살창앞으로 모여들었다.
죽촌의 행수로인, 구서방과 옥보, 고들이와 《만사태평》… 모두들 낯익은 얼굴들이였다.
박위는 살창을 움켜쥔채 와짝 청을 높이였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모두들 어떻게 예까지 찾아왔소?》
모두들 끅끅 울음을 삼키며 절인사를 하고나서도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잠시후 행수로인이 정중한 자세로 격식바르게 말문을 열었다.
《그지간 장군께서 옥고를 치르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소이까?》
구서방이 질적한 눈굽을 찍어내며 행수로인의 뒤를 받치였다.
《소인들은 장군의 존안을 뵙고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그보다는 장군께서 입은 죄목이 터무니없는것이니 한시바삐 내놔줍시사 하는 내용의 등장을 바치는 일이 더 급하여 황망히 상경하였소이다.》
박위는 대번에 속이 울컥 괴여올랐다.
《그러니 모두들 내 일때문에 이 추운 때 그 먼길을 부러 왔단 말이요?》
《그렇소이다.》
모두들 축축하게 젖은 소리로 대답했다. 박위는 목이 꽉 감겨들었다.
역적모의죄로 옥에 갇힌 사람을 구하기 위해 등장을 돌린다는것은 여간만 위태한 일이 아니였다.
자칫하다가는 등장에 이름을 박아넣은 사람들까지 모두 역적모의죄에 걸려들수 있었다.
헌데 이들은 그런 내막을 전혀 모르고있는가.
어쩌자고 그런 위험천만한 일을 벌린단 말인가.
박위는 석쉼하게 갈린 소리로 말했다.
《그러지들 말라구. 내 일은 등장이나 돌려서 풀릴 일이 아니야.
여차하다가는 모두 해를 입을수 있으니 등장을 걷어가지고 당장 내려가라구, 당장!》
구서방에게 선수를 떼우는 바람에 은근히 속이 까부라들었던 옥보는 박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제꺽 입을 열었다.
《소인네들은 등장때문에 모두 옥에 갇혀 옥귀신이 된다 해도 그냥 내려갈수는 없소이다. 소인네들의 등장은 벌써 조정에 입문이 되였소이다.》
《그렇소이다.》
모두들 옥보와 한마음이라는듯 입을 모아 웨치였다.
《벌써 입문이 되였다고? 세상에 이런 변이 또 어디 있을고?!…》
박위는 너무도 기가 막히여 입을 하 벌린채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이나 얼벌벌한 가슴을 안고 벙벙해있던 박위는 축축하게 젖은 어조로 화제를 돌리였다.
《헌데 오천이가 어째 보이지 않는구나.》
지금껏 말참녜를 할 기회를 엿보던 여삼은 고들이와 《만사태평》이 나설세라 서둘러 대답했다.
《예, 오천대정은 군영에 그냥 남아있다고 합니다.》
여삼은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으나 박위는 오천이가 어찌하여 이 사람들의 행렬에 끼우지 않았는지 대번에 짐작이 갔다. 오천은 분명 김해땅에 박혀있는 왜구의 세작을 제 손으로 잡아내기 위해 군영을 뜨지 못한것이였다.
모두들 제나름의 충동과 흥분에 싸여 잠시 덤덤해있는데 그것이 못마땅하여 연신 헛기침을 끌어올리던 《만사태평》이 큼직한 술방구리를 살창틈으로 밀어넣으며 화제를 돌리였다.
《변변치는 못하오나 소인들이 추위를 막을수 있는것들을 가지고왔소이다. 받아주시오이다.》
그제서야 고들이도 정신을 차린듯 부근부근한 털토시를 들이밀며 웅얼거렸다.
《서툰 솜씨로 만든것이라 부끄럽기 이를데 없소이다.》
행수로인도 묵직해보이는 베보자기를 힘겹게 쑤셔박으며 송구해하였다.
《소인네 촌에서도 되지 못한 음식이나마 조금 마련해왔사온데 나무람마시고 받아주소이다.》
박위는 아까부터 무슨 말이든 하고싶었으나 혀가 굳어지여 좀처럼 말마디를 굴려낼수 없었다.
살창을 떼고 들어서기라도 할듯 그냥 제자리걸음을 하면서도 바투바투 다가서는 사람들의 모습은 갈수록 뿌잇해졌으나 그들의 마음속진정은 갈수록 선명하게 그려지였다.
그들만이 아닌 수많은 군사들과 백성들의 심장의 웨침소리는 가슴속에 커다란 공명을 일으키며 즈렁즈렁 울리는듯싶었다.
《장군께서는 왜구격멸을 위해 반드시 군영으로 돌아오셔야 하오이다―》…
박위는 슬며시 고개를 내리떨구었다.
달은 벌써 기울어졌는지 손바닥우의 달빛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였다.
허나 추억을 부르는 은은한 달빛은 마음속 깊이로 하염없이 쏟아져내리고있었다.
이제는 퍽 오래전 어느해 정월대보름날 저녁이였다.
소년 박위는 희푸른 달빛이 얼비치는 조용한 글방에 앉아 따분하기 그지없는 옛글을 읽고있었다.
문득 문밖에서 어머니의 자애에 넘친 음성이 부드럽게 울려왔다.
《이 애 위야! 잠시 책을 덮어두고 밖으로 나오너라. 아버님께서 너를 부르신다.》
박위는 분분히 밖으로 나왔다.
천지간에는 은회색달빛이 가득차넘치는데 중천에 높이 뜬 휘영청 밝은 달은 벙싯벙싯 웃으며 꿈많은 소년에게 래일의 희망을 소리없이 묻고있었다.
그리 멀지 않게 보이는 앞마을에서는 방금 배고사(룡왕신에게 새해에 풍어를 맞게 해달라고 정월대보름날에 지내는 제사)를 지낸 어부들이 북과 꽹매기를 두드리며 봉죽놀이를 하고있었다.
즐거운 배사람들의 놀이소리는 운치있게 달밤의 대기를 적시며 울려왔다.
《어야디야, 어야디야. 빨리 저어라. 바다로 나가잔다.…》
선소리가 울리기 바쁘게 노래소리, 북소리, 꽹매기소리가 와자자하게 울리였다.
봉죽놀이에 신명이 나서 벙글벙글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환히 보이였다.
거들거들 곱새춤을 추며 돌아가는 남정들.
나풀나풀 고사리춤을 추며 미끄러져나가는 녀인네들…
밭최뚝에서 쥐불놀이를 하다말고 불을 놓던 홰를 그대로 추켜든채 봉죽놀이판으로 뛰여가는 조무래기들의 모양도 환히 안겨왔다.
박위는 들썽거리는 가슴을 눌러잡고 아버지곁에 다가섰다.
생각깊은 표정으로 달빛에 젖은 앞마을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박위에게 고개를 돌리며 나직이 물었다.
《위야, 너 지금 무슨 책을 읽고있었느냐?》
《예, 〈효경〉의 〈신체발부는 수지부모하니 불감훼상은 효지시야〉라는 대목을 읽고있었소이다.》
《그래 그 문장의 뜻이 무엇이냐?》
《우리의 몸은 부모가 준것이기때문에 터럭 하나 상하지 않는것이 효도의 시작이란 뜻이오이다.》
아버지는 아무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앞마을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아버님께서 왜 이러실가?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걸가?)
박위의 가슴은 은근히 조여들었다.
이윽하여 아버지는 달빛이 어리여 더욱 청수해보이는 얼굴을 돌리더니 어찌 들으면 준절하고 어찌 들으면 곡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위야, 이 아버지는 지금껏 네가 문장으로 우리 가문을 빛내기를 바래서 너에게 고금의 문장들을 열심히 통독하게 했다. 헌데 이제와서 내 생각은 달라졌다.
너도 알겠지만 지금 북방에서는 늑대무리같은 외적들이 지분거리고 여기 남쪽에서는 이리떼같은 왜구들이 쏠라닥거리고있지 않느냐.
이러한 시국에 민족의 남아로 태여나 허구헌날 책장이나 번지고있는게 과연 옳겠느냐?
사처에서 외적들이 칼을 들고 날뛰는데 붓을 들고앉아 문장이나 익혀서야 되겠느냐 말이다.》
박위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대뜸 짐작하였다.
아버지는 필경 오늘날의 사내는 붓을 들것이 아니라 칼을 잡아야 한다고 말씀하려는것이였다.
저렇듯 흥겨운 백성들의 노래소리를 붓으로 그려낼것이 아니라 칼로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려는것이였다.
박위는 진정 기뻤다.
기실 그것은 이미 자기가 아버지에게 아뢰고싶었던 일생일대의 소원이였고 최상최대의 희망이였다.
아버지의 의미심장한 말은 계속되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 같은 때 진정으로 높은 뜻을 지닌 사내라면 문장으로 립신양명할것을 꿈꿀것이 아니라 검을 들고 전장에 나가 나라와 백성을 지킬 열망으로 심장을 태워야 한다고…
내 생각은 이러한데 네 결심은 어떠냐? 이제부터라도 병서를 탐독하고 무술을 익히는것이 좋지 않겠느냐?》
박위는 힘차게 대답했다.
《아버님, 미거한 소자도 이미 그런 생각을 가지고있었소이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이렇게 일일이 깨우쳐주시고 이끌어주시니 기쁘고 감격할뿐 어찌 다른 생각이 있을수 있겠소이까?》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아버지의 코수염밑에서 함박꽃같은 웃음이 고요히 피여났다.
《장하다, 위야. 나는 육체의 터럭 하나 상하지 않는게 효도의 시작이 아니라 검을 잡고 전장에 나서는것이 참된 효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박위는 입이 아니라 높뛰는 심장으로 대답했다.
《아버님의 뜻깊은 말씀을 일생 골수에 새기고 평생을 검과 함께 전장에서 살겠습니다.》
이어 박위를 데리고 사랑으로 들어온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주안상을 차려오라고 일렀다.
어머니는 벌써 이런 일이 있을줄 알고있은듯 이내 성의있게 차린 술상을 들여왔다. 아버지는 박위앞에도 잔을 놓아주었다.
박위는 여적 마셔본적 없는 술을 아버지앞에서 마시는것이 례의에 어긋나는듯 하여 거듭 잔을 밀어놓았다.
과묵하고 근엄하나 세속의 까다롭고 허식적인 례의같은것은 우습게 아는 대활한 아버지는 기어이 박위의 손에 잔을 쥐여주었다.
《세상의 헛된 례의야 어찌됐든 우리는 우리 집안의 례법대로 살자꾸나.
나는 네가 그토록 장한 뜻을 가지고있는것도 기쁘고 또 부자일심동체도 기쁘다.
그래서 함께 술을 마시자는것이니 어서 잔을 비워라.》
술이 철철 넘쳐나는 잔을 받아든 박위는 조금 모로 꺾어앉아서 모금모금 술잔을 기울이였다.
아버지의 기대와 믿음대로 기어이 이 나라를 철벽으로 지키는 백전불패의 장수가 되리라는 억척같은 맹세가 전신의 피줄기를 활활 태웠다.
이날로써 박위의 소년시절은 때이르게 끝났다.…
살창과 옥문틈새로 게을러빠진 겨울의 새벽빛이 느릿느릿 흘러들고있었다.
여느때없이 가볍게 몸을 일으켜세운 박위는 지척지척 살창앞으로 다가갔다.
눈덮인 앞마당과 마당앞으로 연연 겹쳐있는 전옥들의 지붕이 희끄무레하게 안겨왔다.
아직은 모든것이 선명치 않은 어스레한 대기속으로 차거운 새벽바람에 불린 눈가루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고있었다.
박위는 창살을 힘껏 틀어잡은채 저 멀리 고향하늘가로 마음의 시선을 날리였다.
청수하면서도 근엄한 아버지의 얼굴모습이 생생히 안겨왔다.
이 아침도 고향마을의 나지막한 뒤산기슭에 조용히 누워계실 아버지.
몸은 비록 봉분속에 들었지만 이 새벽도 차거운 겨울바람에 그날의 절절한 당부를 뜨겁게 실어보내고계시는 아버지…
박위의 가슴은 열탕처럼 끓어올랐다.
(아버님, 불효한 소자는 노상 전장으로 나돌아다니느라고 남들이 다 하는 막도 짓지 못했소이다.
그런데도 언제 한번 이 아들을 꾸짖은적 없으신 아버님께서는 오늘도 미거한 소자의 시들어가는 마음속에 마침 맞게 찾아오시여 또다시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니 황공한 마음, 고마운 심정 실로 한량없소이다.
소자는 아버님의 그날의 당부와 믿음을 죽어서도 잊지 않을것이며 아버님앞에 다진 그밤의 맹세를 기어이 실행하고야말겠소이다.…
나와 함께 원정을 맹세하고 준비를 다그쳐온 군영의 군사들과 백성들이여, 나와 더불어 원정의 그 길에서 생사를 같이하기로 한 지우들이여, 그대들의 기대와 성의를 내 어찌 순시인들 잊을수 있으며 저버릴수 있겠소.
내 죽어서도 그대들과 한 맹약을 지킬것이오니 부디 믿어주오.…)
새벽의 하늘은 아직 캄캄했다.
마음의 시선으로 캄캄한 하늘에 새별처럼 어리여 빛나는 정다운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던 박위는 부지중 장지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든든한 어금이로 손가락끝을 힘껏 물어뜯었다.
비릿한 피냄새가 물씬 떠오르더니 시뻘건 피가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모진 동통이 손가락을 거쳐 팔전체에 엄습해왔으나 박위는 이를 앙다문채 자기의 덞어진 가슴우에 피흐르는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한자두자 피로써 글을 새겨나갔다.
《일심원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