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 2 장

12

 

군영에 돌아온 박위는 팔소싸움에 나갔던 군사들에게 하루동안의 휴식을 주고나서 곧장 배무이장으로 나갔다.

푸르다못해 진록색으로 보이는 바다물우에는 그사이 새로 무은 열척가량의 천료주와 발로도, 경질주와 급수소선(각종 배이름)들이 송진내와 생나무내를 향긋하게 풍기며 물결의 노님을 따라 느리게 흥떡이고있었다.

전함들의 선수에는 대장군포와 2장군포, 3장군포와 륙화석포, 화통신포와 질려포 등 각이한 모양새의 화포들이 무게있게 틀고앉아 둔탁한 빛을 발산하고있었다.

그리 많지는 않으나 군영자체의 힘으로 새로 무은 전함들과 화포들을 바라보느라니 가슴속에서 소용돌던 온갖 구지레한 시름들이 순간에 말짱 날아나버린듯싶었다.

전에없던 신심과 용기가 취기처럼 훈훈하게 퍼져오르기도 하였다.

습관적으로 전함들의 겉모양을 깐깐히 살피며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던 박위는 방금 무어놓은듯 한 천료주앞에 이르자 무춤 굳어지였다.

어딘가 모르게 배모양이 부자연스럽게 안겨왔다. 한식경이나 전함의 모양을 상하좌우로 살펴보던 박위는 사다리를 타고 배의 갑판에 올라섰다.

때마침 천료주에 올려앉힐 화포를 목도해 메고 《어기영 치기영》 먹임소리를 쳐가며 이쪽으로 오던 장공인들과 그뒤에 따라섰던 장교들은 배우에 올라선 박위를 발견하자 황망히 포를 내려놓았다.

장교들은 급급히 사다리를 타고 배에 올라와 박위에게 다가섰다.

그사이 자귀밥과 톱밥이 하얗게 깔려있는 갑판의 구석구석을 낱낱이 살펴보고난 박위는 장교들쪽으로 돌아섰다.

장교들은 전장에 나갔다온 박위에게 인사를 차릴 차비였으나 박위는 본체도 않고 허공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꾸지람부터 펼쳐놓았다.

《이 배는 도본보다 한자이상은 키가 높아진게 분명하다. 여기 선수에는 대장군포를 앉혀야 할텐데 배의 키가 이렇게 높아졌으니 어찌 한단 말이냐?

화포를 쏠 때 진동에 의해 배가 흔들리는것은 물론이려니와 자칫하다가는 갑판이 깨져나갈수도 있겠는데 그리되면 적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고기밥이 될게 아니냐?

이게 과연 제정신들을 가지고 한짓들이냐?》

첫마디부터 된욕설을 퍼붓던 박위는 곁에 서있는 텁수룩한 장교의 손에서 자막대기를 후리쳐뽑아냈다.

씨엉씨엉 배전으로 나가더니 누가 어쩔 사이도 없이 바다물속으로 풍덩 뛰여내리였다.

허리춤을 치는 바다물은 몹시 차거웠으나 박위는 그에 아랑곳없이 자막대기로 배의 바깥높이를 한치두치 재올라갔다.

어쩔수없이 박위의 뒤를 따라 풍덩풍덩 물속에 뛰여든 장교들은 박위의 젖은 손을 움켜쥘듯이 수선을 떨며 송구스러운 어조로 한마디씩 뇌이였다.

《물이 차거운데 이제는 그만 뭍에 오르시오이다.》

《소인들이 어리석다보니 일을 다그치기만 하면서 옳게 간검을 못했소이다.》

《일후에는 다시 이런 과실을 내지 않겠소이다.》

아무런 응대도 없이 배의 높이와 너비까지 꼼꼼히 다 재보고난 박위는 휘적휘적 물을 가르고 모래불우에 올라섰다.

전복자락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였다. 추들추들해진 가죽신속에서도 꿀찌럭꿀찌럭 모래알이 섞인 누런 물이 꾸역꾸역 솟구쳐나왔다.

후줄근하게 젖은 장교들이 줄레줄레 기슭으로 나오자 박위는 자막대기를 칼처럼 휘두르며 아까와는 판다르게 절절한 어조로 말하였다.

《모든 일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군사일에서는 티끌만 한 실수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내 이미 몇번이나 일렀느냐.

우리는 구천에 사무친 민족의 원한과 수치를 씻고 나라의 존엄과 기상을 만세에 떨치려고 원정을 하자는것인데 이런 소소한 실수로 해서 원정을 망친다면 세상에 이런 창피가 어디에 또 있겠느냐? 모두들 심장에 쪼아박으라구.

천년강대국 고구려의 후손들인 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지는 전쟁을 할수 없으며 이겨도 크게 이기는 전쟁만을 해야 한다.

페일언하고 오늘 해중에 이 배의 높이를 한자세치 더 내릴뿐아니라 이미 무어놓은 배들도 정확하게 도본대로 되였는가를 세밀히 따져보도록 해라―》

《알겠소이다.》

장교들은 입을 모아 기운차게 웨치였다.

박위는 젖은 옷을 말려입을 생각도 못하고 염초장쪽으로 걸음을 돌리였다.

또다시 염초라는 두글자가 바늘뭉치처럼 따끔따끔하게 흉벽을 찌르며 돌아갔다. 납덩이처럼 무죽하게 가슴을 짓누르기도 했다.

(전함과 화포는 저런 식으로 계속 밀고나가면 그런대로 마련을 볼듯 한데 아직도 염초와 화약이 없어서 포알을 썩썩 만들어내지 못하고있으니 이게 큰일이 아닌가!

최무선장군이 보내준 화약으로 만든 포알이 서른개정도, 이미 있던 염초로 만든 포알이 스무나무개.

그리고 죽촌에서 실어온 염초로 만든 포알이 일여덟개…

이것을 가지고 또 이런 속도로 포알을 뽑아가지고 언제 원정준비를 다 끝내겠는고?…)

박위는 죽촌에 나갔던 그날 밤 그곳 사람들의 열의와 기세, 그들이 만들어낸 염초를 제 눈으로 직접 보고나니 염초를 마련하는 일이 예전처럼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아니, 죽촌백성들처럼 매 고을, 매 동네 백성들이 필사의 각오를 가지고 일치하게 떨쳐나선다면 조정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능준히 염초를 해결할것 같았다.

하여 그는 얼마전 각 고을 관가에 백성들의 애국적열의를 발동시켜 염초생산을 대판으로 벌리라는 내용의 군령을 새로 시달하였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능력간에는 언제나 현격한 차이가 있는 법이라는 엄연한 생활상의 리치가 무시로 뇌리를 들쑤시였다.

백성들이 순수 욕망 하나만 가지고 하는 일이 아무래도 미타하여 자꾸만 고개가 기웃거려지였다.

죽촌과 같은 자그마한 동네에서 벌어진 현상이 전반적인 경상고을에서도 일제히 일어날수 있겠는지는 누구도 장담할수 없는 일이였다.

최근에 이르러 염초생산에 원정승리의 열쇠가 있다는 생각이 굳어질수록 박위의 초조감과 조바심은 거의 생리적인 고통까지 동반하면서 시시로 급증되였다.…

금싸래기같은 모래불에 큼직큼직한 발자국을 찍으며 소리없이 걸어나가던 박위는 누군가가 아동판수 륙갑외우듯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웅얼거리며 다가서는 바람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자기앞에는 생면부지의 뚱뚱한 중이 념주알을 만지작거리며 서있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박위는 자기의 앞길을 가로막은 뚱뚱보중의 버릇없는 행동이 화가나기 전에 중자체가 혐오감을 자아내여 버럭 청을 높이였다.

《대사는 대체 무슨 연고로 바쁜 사람의 앞길을 막는게요?》

중은 여전히 깊숙이 내려쓴 삿갓을 짓수굿한채 항아리에 대고 하는 소리처럼 으스산하게 울리는 목청을 끌어올리였다.

《소승은 봉은사의 주지로소이다. 소승이 장군을 찾아온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곳 군영에서 대정노릇을 한다는 오천인지 륙촌인지 하는 군사의 불법무도한 행위를 항소코저 함이올시다.》

주지의 입에서 뜻밖에도 오천의 이름이 튀여나오자 박위는 이상스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우리 군영의 오천이가 대체 무슨 일을 어찌했다는게요?》

주지는 퍼덕퍼덕 나붓기는 장삼자락을 여며잡으며 슬며시 고개를 드는데 보매 그는 박위의 거친 음성이 오천에 대한 불만에서부터 오는것으로 아는 모양이였다.

《예, 그는 벌써 몇달전부터 우리 봉은사를 나들며 갖가지로 수상쩍은 행동을 하던끝에 엊그제는 열도 넘는 무뢰배를 이끌고 칼까지 휘두르며 절에 달려들었소이다.》

《칼까지 휘두르며 절에 달려들다니?… 그눔이 왜서 그런 소란을 피웠단 말이요?》

박위는 더한층 거친 청으로 울부짖듯 했다. 그것이 주지의 용기를 부쩍 돋구어주었다.

《예, 소승이 이제 그 사연을 자상히 말씀올리겠소이다.

오천이네들은 절간 마루밑의 먼지로 무슨 염초인지 염소인지 하는걸 만든다고 하면서 하루아침새 석가와 라한, 무량수불을 모신 절간들을 참혹하게 파헤쳐놓았소이다. 이런 괴변은 실로 후만고에 다시 없을 엄청난 범행으로서 마땅히…》

오천이네들은 그날 마루밑의 먼지를 퍼낸 후 마루널을 다시 잘 덮어놓은것은 물론 주변의 마당까지 깨끗이 쓸어놓았으나 상판에 개가죽을 뒤집어쓴 주지는 그들이 온 절을 까부셔놓기라도 한듯이 허겁을 떨었다.

저급한 복수의식과 도발심리로 가슴이 까맣게 달아오른 주지는 지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천이네들을 속시원히 때려눕히고싶었다.

허나 주지의 심리를 전혀 알길없는 박위는 처음으로 알게 된 오천의 뒤생활이 소스라칠 지경으로 놀랍기만 하였다.

(그러니 여직껏 오천이가 가을중 쏘다니듯 나다닌것은 구경 염초감대기를 얻기 위해서였단 말인가?…

결국 오늘에 와서 그는 염초감대기를 쓰고도 남을만큼 얻어낸셈이 아닌가.

언제인가 했던 그녀석의 장담이 결코 헛장담이 아니였단 말이렷다?…)

놀라움이 가라앉자 오천에 대한 탄복감이 치밀어올랐다. 그것은 다시 아릿한 죄의식으로 환원되였다.

(허어… 그런데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박위의 표정이 연해 석바뀌는것을 제 좋을대로 해석한 주지는 정기없는 거적눈을 험하게 번뜩거리며 더욱 승기가 나서 고아붙이였다.

《이는 정녕 석가여래를 참람히 무시하는 범행이요, 가람신(절을 지킨다는 신)을 우습게 여기는 망동이며 나라님과 국법을 허술히 보는 죄행으로서…》

원체 중 일반을 황당한 거짓말로 순후한 백성들을 미혹시키는 협잡배로, 건달군으로 경멸하는 박위는 더이상 주지의 말을 귀에 담고싶지 않았다.

오천의 일과 자기의 처사를 놓고 홀로 조용히 생각을 굴려보고싶었다.

박위는 습관적으로 뒤짐을 돌려잡고 스적스적 지향없이 걸음을 옮겨놓으며 생각하였다.

(나 역시 오래된 절간의 먼지로 염초를 뽑는다는것을 이미 알고있었다. 하지만 어이하여 나는 그것을 파다쓸 용단을 일찌기 내리지 못했는가!

궁냥이 미처 돌아가지 못했는가 아니면 후날에 들이닥칠 죄책이 두려워 애초에 몸을 사리려 했는가?…

여하튼 나의 궁냥이나 담략이라는것은 일개 군졸에게도 미치지 못하지 않았는가.

헌데 오천이란 녀석은 알다가도 모를 놈이로다.

그녀석은 벌써 오래전부터 절먼지를 퍼낼 작정을 하고 나다니면서도 왜서 내게는 일언반구도 그 소리를 하지 않았는가. 저로서는 억울한 매까지 맞으면서…)

주지는 뚱깃거리며 다가오더니 다시 박위의 앞을 막아섰다.

오천을 어떻게 다스리려는지 박위의 결심을 똑똑히 알기 전에는 자리를 뜨지 않겠다는 속심이였다.

모멸적인 시선으로 주지의 상판을 쏘아보던 박위는 준절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우리 군영 군사들의 일은 내가 알아 처리할테니 그리 알구 대사는 더이상 상관마우.

그리구 대사께 내 한마디 일러줄 말이 있소.

대사도 그 무슨 번뇌로 가득찬 어지러운 인간세상을 아름답고 깨끗한 정토의 세계로 만든다는 교리를 세우고 사는 사람이겠는데 그대가 진정으로 순정한 세상을 원한다면 번뇌를 없애는 일에 앞서 왜구를 없애는 일에 나서야 할게요.》

말을 마친 박위는 주지의 반응 같은것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음을 떼놓았다.

주지의 뿌잇한 거적눈은 독을 머금고 번들거리였다. 그 눈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오냐, 항간에 나도는 말에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네놈도 군졸놈들과 한배속이로구나.

이놈들, 승속간에 생불스님으로 명망높은 내가 이런 창피를 당하고도 곱게 두손 동여매고 앉아 부처님흉내만 내고있을줄 아느냐.

내 이제 네놈들을 모두 지옥의 기름가마 같은데 처넣구 알알이 튀겨낼테니 어디 당해봐라.》

주지의 가슴속에서 어떤 악심이 끓고있는지 알리 없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 박위는 시원한 바람이 마주쳐오는 바다가로 씨엉씨엉 걸어나갔다.

바다는 진분홍빛저녁노을을 들쓰고 고요히 누워있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쉬이 헤아려 감득할수 없는 웅건하고도 심원한 사색에 깊이 잠겨있는듯싶었다.

박위는 바다에서 하늘로 시선을 들어올리였다. 석양이 비낀 하늘은 아름다왔다. 그리고 신비로왔다.

붉은색, 분홍색, 감색으로 얼룩진 구름송이들이 처음에는 화포알을 무져놓은것처럼 보이더니 차츰 옆으로 펼쳐지면서 달리는 세마리의 군마모양으로 변하였다.

이어 세마리의 군마는 량손에 검을 든 장수가 전복자락을 날리며 칼을 엇갈아 휘두르는 모양으로 뒤번져지며 하늘높이로 훨훨 날아올랐다.

하늘에 껑충 뛰여올라 검을 든 거인의 곁에 다가서면 지상의 크고 작은 인생사의 리치가 손금보듯 선명하게 가려질것 같았다.

노을에 물든 하늘을 쳐다보며 잠시 아이들같은 공상에 잠겼던 박위는 슬며시 고개를 내리드리웠다.

아! 과연 내 인생은 어디에 뿌리를 두어야 하며 그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정녕 잡힐듯 하면서도 쉬이 더위잡을수 없는 진정한 인생사의 리치는 어디에 골박혀있는가?…

박위는 붉은 하늘, 붉은 바다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움직일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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