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5 회)
제 2 장
10
《아니, 왜 그렇게 놀라는거야? 무슨 귀신같은것이 다가붙는가 했는 모양이지, 호호호…》
온몸이 화락하게 젖었으나 후줄근해보이기는커녕 여느때보다 오히려 더 싱싱해보이는 취금은 유쾌한 꽃다림놀이에라도 나선듯 상글상글 웃으며 경쾌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가 걸음을 내짚는대로 젖은 나무잎들과 풀포기들에서 구슬알같은 물방울들이 후둑후둑 튀여났다.
치마자락에서도 구슬꿰미같은 물방울들이 줄줄 떨어져내리였다.
《아니, 취금이가 어떻게?!…》
천생 반죽좋고 숫기좋은 오천이건만 전혀 예상밖의 일이라 혀가 굳어지여 얼추 말마디가 굴려지지 않았다.
놀라움이 가라앉자 이처럼 지겨운 날씨에 기어이 자기뒤를 밟아온 취금의 고집스러운 성격과 뜨거운 속마음이 헤아려지여 가슴이 뭉클해났다.
취금이도 오늘의 이 길이 험악한 드잡이판과 이어질수 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것이 후날 녀자로서는 이겨내기 어려운 악형과 옥살이로 번져질수 있다는것도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도 취금은 종주먹을 부르쥐고 끝끝내 뒤쫓아온것이였다.
홀로 비내리는 숲속길을 걸어서, 그것도 상글상글 웃으면서…
단지 바늘 가는데 실 따라간다는 식의 세속적인 인정에 끌려서일가.
물론 그런 마음도 아주 없는것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모진 고생속에서도 비꼬이지 않고 결바르게 자라난 처녀의 가슴속에는 왜구격멸의 전장에 화포알 하나라도 제힘으로 마련하여 섬기고싶은 열렬한 마음, 오천이와 고난도 위험도 함께 나누려는 고결한 마음이 끓어넘치고있기때문이 아니겠는가.
오천은 감동에 젖고 비물에 젖어 그냥 쓰려나는 눈을 재게 슴벅거리며 공연히 헛기침을 톺아올리였다.
희멀끔한 얼굴탓인지 뚱뚱할사 한 몸집탓인지 비물, 흙물에 매닥질이 되였어도 보름달처럼 환하게만 안겨오는 취금의 얼굴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잠시 오천을 마주보던 취금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살며시 뜻있는 웃음을 빼여물었다.
취금은 오천이가 도망이라도 치듯 혼자 몰래 떠나온것이 조금 고깝기는 했으나 바로 거기에서 자기를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내의 웅심깊은 속마음을 더욱 저저이 느낄수 있었다.
생각할수록 뜨거운 정이 사품쳐끓었다. 허나 이런 때면 대개 그러하듯 취금은 자기의 끓어오르는 마음을 웃음과 생청같은 화제로 가리우고싶었다.
《흠, 그렇게 혼자 도망을 쳐서야 그게 무슨 인정이람. 참, 알량도 하지…》
《할말이 없게 됐군.》
《헌데 이렇게 장참 먼길을 걸어서야 매맞은 어혈이 어디 풀리겠어?》
취금의 표정과 어투는 여전히 맑고 명랑했다. 허지만 옥쪼각처럼 반짝이는 처녀의 눈을 여겨보는 오천의 가슴은 갈수록 그들먹하게 괴여올랐다.
오천은 힘겹게 머리를 흔들며 떠드박거리였다.
《그까짓거… 이젠 거지반 풀렸는데 뭐.》
《아니야. 지금도 쑤시고 결리는걸 애써 참겠지.
아무튼 그렇게 모진 매를 맞으면서도 절간소리는 한마디도 내놓지 않았다니 그녁이 독하긴 독한 사람이야.》
《독하기야 뭘, 말을 해서는 일을 그르치겠기에 참고 견딘거지…》
《어쩜 사람이…》
오천의 넓둥그런 얼굴에도 격정이 어리고 취금의 퉁퉁한 낯에도 감동이 실려있었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색고운 노을빛은 억수로 쏟아지는 비물도 씻어내지 못했다. 이윽하여 취금은 꽤 묵직해보이는 베보자기를 오천이앞에 들어올리였다.
《참, 울아버지 몰래 그녁이 좋아하는 수수탁배기를 한방구리 떠가지구왔어.
이걸 마시고 걸으면 다리도 덜 아프고 허리도 덜 쑤실거야.》
《아니, 그건 뭘… 난 취금이가 이렇게 따라나선것만 해도 기운이 나는데 뭐…》
오천은 주체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속이 넘쳐나는 바람에 종시 말끝을 여미지 못했다.
축축하게 젖은 손으로 후끈후끈해나는 얼굴을 문지르며 술방구리를 받아들념을 내지 못했다.
진정 취금의 맑고 랑랑한 말마디에서는 얼마나 후덥고 진실한 사랑의 향기가 풍기고있는가!…
어머니를 여읜 뒤 지금까지 녀자의 살뜰한 정이라고는 받아보지 못한 오천은 자기의 몸에 생긴 별치 않은 상처의 뒤탈까지 깊이 념려해주는 취금의 다심한 마음에 그만 코끝이 매워나고 눈시울이 깔깔해났다.
취금은 취금이대로 오천이가 여느때없이 사랑스러웠다.
예전에는 노상 싱글거리며 다니는것이 어딘가 맺힌데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허나 근래에 이르러보니 오천은 온갖 시련과 난관을 웃음으로 휘감아던지며 간고한 인생길을 자신만만하게 맹속으로 달리는 쾌남아였다.
그의 넓은 가슴에는 진정 비길데없이 높은 뜻과 가지각색 재주, 뜨겁고 웅심깊은 인정이 넘치도록 출렁이고있었다.
오천은 어느모로 보나 일등의 품격을 갖춘 군사요, 제일로 믿고 따르고 사랑하고싶은 사내였다.
촉촉하게 젖은 눈시울을 내리깐채 높은 가슴을 세차게 들먹이던 취금은 오천의 담벽같은 가슴에 살며시 볼을 가져다대며 눈을 감았다.
《누군 뭐 그렇지 않나. 나도 그녁만 곁에 있으면 아무것도 겁나지 않아. 힘이 나고…》
꿈속에서처럼 분명치 않은 소리를 흘리는 취금의 곱게 감겨진 눈에서는 순결한 처녀의 한생에 두번다시 있을수 없는 사연깊은 눈물이 소리없이 굴러내리고있었다. 오천은 부지불식간 자기로서도 쉬이 제어할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에 떠밀리워 취금의 실한 어깨를 와락 그러안았다.
그 서슬에 처녀의 발밑에서 술방구리가 박살나는 소리가 울리였으나 두사람은 다같이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비는 여전히 몰박으로 쏟아져내리고있었다.
인적없는 숲속에 쉬임없이 내리는 초가을의 소나기는 을씨년스러웠으나 불타는 사랑과 열정으로 충만된 두 청춘에게는 그것이 저들의 사랑을 축복하여 뿌려주는 자연의 선물처럼 의미깊게 느껴지였다.…
…신라의 미추왕때 고구려에서 넘어온 아도라는 법사가 이 땅에 처음으로 불법을 전파하면서 세웠다고 하는 상당히 미심쩍은 유래를 가지고있는 봉은사는 보전(절의 기본건물)도 웅장하고 승방(중들이 사는 집)과 암자도 무수히 많았다.
종루(종을 매달아두는 다락)와 경주(불경을 보관해두는 건물), 절문과 절탑따위들도 여느 절에 비교할수 없을만큼 크고도 근감했다.
그런데다 방금 휩쓸고 지나간 소나기에 함씬 미역을 감은 절의 건물들과 주변의 울창한 숲은 기름이라도 발라놓은것처럼 선명하게 색이 두드러지여 더한층 현란한 맛을 돋구고있었다.
8각의 돌탑과 대웅전, 웅진전, 무량수전, 극락전, 보당전 등 각색건물들의 추녀끝에 주렁주렁 매달린 풍경들은 오가는 바람결을 타고 잘그랑잘그랑 부드러운 금속음을 내는데 그 소리 또한 이 절의 유구한 력사와 풍미를 은은히 자랑하는듯싶었다.
어디선가 향불타는 냄새가 풍겨왔다.
목탁소리, 불경 외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세상사가 여의치 못해 절을 찾아온 속인들이 제를 지내놓고도 불당의 령험이라는것이 아무래도 좀 미타하여 예서제서 수군덕거리는 소리도 띄염띄염 울려왔다.
오천은 절문앞에서 떼를 쓰는 취금을 강다짐으로 떨구어두고 절의 중심건물을 향해 힝힝 걸어나갔다.
본전앞에 이른 오천은 주지를 찾아낼 길이 난감하여 잠시 사방을 두릿거리는데 때마침 대웅전에서 비둔하게 생긴 주지가 뚱뚱한 몸을 띠뚝거리며 걸어나왔다.
원체 중일반을 삭발한 협잡배로 경멸하는 오천은 상판이 유들유들한 주지와 마주서자 피가 역류하는듯 한 생리적인 혐오감을 느끼였다.
하지만 애써 속을 누르고 공손히 인사를 차리고나서 역시 공손한 어조로 이미 여러번 되풀이했던 이야기를 다시금 절절히 펼쳐나갔다.
《…스님께서도 잘 아시는바이지만 지금 왜구들은…》
오천의 말이 끝나자 군살이 두겹으로 처져내린 푸들진 턱을 느리게 들어올린 주지는 귀에 길이 나도록 들은 당치도 않은 장광설을 뜨직뜨직 곱씹어내리였다.
《소승이 이미 루차에 걸쳐 이야기했소만 아도법사가 열반에 드신 이후(죽었다는 뜻의 불교술어) 천년 가까이 줄곧 석가를 모시고 돈독히 불법을 지켜오는 우리 사찰을 이제 와서 벌둥지쑤시듯 하겠다니 천지간에 이런 괴변이 어디에 또 있으리오.
소승이 불가에 적을 둔지 수십년세월이 흐른터여서 속세의 일을 자상히 알수는 없으나 사찰침해는 교리와 천도에 어긋나는 범행이요, 국법에도 저촉되는 중죄라는것만은 분명히 알고있소.
상고해보면 우리 고려국은 태조대왕이래 지금까지 팔관회나 연등회를 해마다 빠짐없이 실행해오는데 그것은 모두 불법을 귀중히 여기는데서 나온것이요.
또한 임금의 맏아들은 대대로 태자가 되지만 둘째아들은 반드시 불가에 적을 두게 하는 관례를 엄격히 지켜오는것도 불법을 존중시하는데서 나온것이요.
또한 상감께서 매달 중전마마를 대동하시고 절에 올라…》
주지는 이번에도 역시 왕가의 행사와 그 무슨 국법의 위엄을 빌어 오천의 소청과 기세를 찍어누를 잡도리였다.
오천은 이 뻔뻔스러운 주지가 수많은 토지와 노비, 지어 10여명 처첩까지 거느리고 만판 호강을 하는 파계승이며 패덕한이라는것을 이미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도 주지는 상판에 돼지가죽을 뒤집어쓰고 나서서 또다시 불법이 어떻소 국법이 어떻소 하며 자기야말로 불법과 국법에 충실한듯이 진수작을 늘어놓고있었다.
오천은 무작정 주지의 우둥퉁한 볼퉁이를 불이 번쩍 나게 후려갈기고싶었다.
하지만 후날의 화를 피하자면 가능한껏 소동을 피우지 말아야 했다.
오천은 끓어오르는 부레를 애써 누르고 다시금 말주머니를 끌러놓았다.
《스님! 아무리 불법이 중하고 국법이 엄하다 해도 나라가 있고야 그 모든것도 있을게 아닙니까.
갈수록 광패스러워지는 왜구를 이제 더이상 내버려둔다면 우리 경상땅은 불시에 페허로 변할것이며 나라는 위험에 빠지게 될것입니다.
그때 가서 불법은 누구에게 론하고 국법은 또 어디 가서 휘두르겠습니까. 지금에 이르러 제일로 급하고 중한 일은 군사일이요 왜구를 때려잡는 일입니다.
우리는 여기 봉은사의 중들이 고구려시기 중들처럼 승병을 무어 싸울것을 바라는것도 아니고 살례탑을 쏘아죽인 김윤후스님처럼 어떤 요란한 적장을 잡아줄것을 원하는것도 아닙니다.
다만 염초를 만들 마루밑의 먼지를 내달라는것인데 따져놓고보면 그것은 절을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절을 깨끗이 부셔내는 일입니다. 그렇게라도 우리 일을 도와주면 이 절의 스님들도 여러가지로 좋으면 좋았지 나쁠게 무엇이겠습니까?》
주지는 사실 진정으로 그 어떤 법도나 불도를 지키자는것이 아니라 같지않아보이는 상놈들의 일에 함께 말려든다는것이 시끄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 공연히 심술을 부리는판이였다.
헌데 오천의 론박할수 없는 리치에 몰리워 더이상 할말이 없게 되자 지금껏 눌러오던 분통이 저절로 터져올랐다.
《그러니 너희들은 기어이 우리 절을 부셔놓아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뜻인데…
우리는 살생을 철저히 엄금하지만 신성한 불가에 대한 무도한 침해는 살생을 내면서라도 막아야겠다.
이놈― 지금의 이 일을 가람신께서 지켜보시는줄 알기나 하느냐?―》
주지의 돼지멱따는듯 한 소리가 채 잦기도 전에 승방과 암자쪽에서 칼을 든 알대가리들이 가사자락을 훨훨 날리며 꾸역꾸역 쏟아져나왔다.
주지란 놈은 이미 오천이와 싸움을 벌릴 잡도리로 불한당같은 놈들을 따로 골라 등대시켜놓았던것이 분명했다.
가슴 한귀퉁이가 철렁 무너져내리였다.
싸움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소동을 피할수 없게 된것이 난감해서였다.
하지만 중놈들이 먼저 칼을 뽑아들고나서는데 뒤탈이 싫다고 하여 부처님처럼 곱게 앉아서 당할수는 없었다.
이왕지사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제일로 심악스럽게 나오는 이 절의 주지와 중놈들에게 단단히 버릇을 가르쳐주고 또 여러 절의 주지들에게도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했다.
오천은 결코 양순하게만 자라난 사람이 아니였다.
왜구들에게 량부모를 다 잃은 뒤 여기저기로 떠돌이생활을 할 때 오천은 어느 명성높은 소악패에 들어가 두목으로 활약한적도 있었다.
4월 초파일 등불놀이때면 집집의 대문앞에 내다 건 수박등을 깨치고 도망하는 놀음도 수다히 해보았고 잔치집, 상가집에 둔을 치고있다가 개비위를 부리며 밀려드는 각설이떼를 쫓아내는 장난도 적지 않게 해보았다.
화통도감에 들어간 뒤, 더우기는 여기 군영에 내려온 후 오천은 이를 악물고 무술을 련마하였고 기를 쓰고 왜구들과의 싸움판에 뛰여들었었다.
하기에 오천은 지금 칼을 빼들고 우쭐거리며 다가오는 중놈들이 두렵기는커녕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비양기가 실린 미소를 머금고 다가드는 중놈들을 노려보던 오천은 슬며시 옆구리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천천히 중놈들을 마주쳐나갔다. 불현듯 절문밖에 떨구어둔 취금이 생각이 들자 오천은 칼을 쳐든채로 피끗 절문쪽을 돌아보았다.
절문밖에서 두손을 모두어잡고 떨고있으리라 생각했던 취금은 치마자락을 날리며 이쪽으로 달려오고있었다.
그의 손에는 보기에도 앙증스러운 자그마한 활이 들려있었다.
오천의 심장은 바람이라도 머금은듯 삽시에 확 부풀어올랐다.
이 세상에 자기와 생사를 같이할 의지를 지닌 처녀가 있다는것은 더없이 행복한 일이였다.
이것은 결코 어느 사내나 다 맛볼수 있는 범상한 행복이 아니였다.
(고맙다, 취금아. 뉘라서 행복이라는것이 저 멀리 아득한 곳에 자취없이 숨어있는 진귀한것이라 하더냐.
내게는 네가 곧 행복이고 기쁨이다.
이 오천이가 있는 한 그 어떤 놈도 너의 머리칼 한오리 다치지 못한다.)
오천은 중놈들을 향해 달음쳐나갔다.
날카롭게 반짝이는 오천의 칼과 둔탁한 빛을 뿌리는 중놈들의 환도 여러개가 허공에서 막 엇갈리려 할 때였다.
무거운 정적이 드리워있던 아래쪽솔숲에서 불시에 우렁찬 영각소리가 울리였다.
이어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 구성진 노래소리가 울려왔다.
에라― 에헤라
울타리옆 꽃가지에
까치 우짖네
그리운 우리 님
이내 돌아오시리
유난스레 쨍쨍하게 울려오는 노래소리의 임자는 분명 염초장의 으뜸가는 수다쟁이인 옥보였다.
말재주를 부리는 솜씨를 보아서는 대단히 성급할듯 하나 실은 한정없이 성미가 느려빠진 그는 이제야 사람들을 이끌고오는것이였다.
그것도 제 나이에는 맞지도 않는 사랑가를 느릿느릿 흘려뽑으며…
오천은 싱그레 웃으며 칼을 내리웠다.
업혀가는 돼지눈처럼 뿌연 눈을 디룩거리던 중놈들도 하나, 둘 추켜들었던 칼을 맥없이 떨구었다.
입만 벌리면 이 땅의 천만중생을 다 사랑해야 한다고 떠벌이던 불교승들이 숱한 사람들앞에서 칼부림을 한다는것이 저들 생각에도 부끄러웠던지 아니면 이쪽으로 밀려오는 사람들도 오천의 짝패들로 짐작되여 지레 겁을 먹었는지…
중놈들은 둥지를 털리운 개미새끼들처럼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흑돼지같은 주지도 애어린 상좌중의 부축을 받으며 허둥지둥 웃방향의 암자쪽으로 내뛰였다.
《핫하하! 타고난 복은 귀신도 못 물어간다더니 이 오천의 복은 정말 누구도 어쩌는 수가 없는 모양이로다!》
오천은 중놈들이 내빼는 꼴을 두루 훑어보다말고 큰소리로 웃어제끼였다.
칼을 들었다가 한번도 휘둘러보지 못하고 내리운것이 조금 싱겁기는 했으나 옥보네들의 출현으로 하여 중놈들의 기세를 소리없이 찍어누르고 소동을 피하게 된것은 여간만 기쁘지 않았다.
이제는 먼지를 말끔히 퍼낸 다음 원상대로 마루널을 정히 놓아주고 깨끗이 청소까지 해놓고 가면 후일에 무슨 탈이 생길것 같지 않았다.
오천은 취금에게 모든 일이 썩 잘되여간다는 뜻으로 지끈 눈을 감았다떠보이고나서 절문안으로 우줄우줄 들어서는 옥보네들을 향해 씨엉씨엉 걸어나갔다.
그리 멀지 않게 보이는 솔숲우에는 현란한 칠색무지개가 천궁으로 들어가는 신비의 대문인양 드높이 걸려있었다.
무지개를 떠받들고 서있는 소나무들의 우듬지에서는 무수한 물방울들이 은구슬처럼 눈부시게 반짝이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