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2 장

6

 

아침나절이였다.

대기는 싱그러운 여름내에 푹 젖었는데 대문너머 느티나무의 상가지에서는 방금 잠에서 깨여난 뭇새들이 밤새 저들의 목청에 별다른 고장이 생기지 않았는지 시험이라도 해보는듯 연해 짹짹 우짖고있었다.

자연은 이 땅우에 또 하루의 신선한 아침을 유감없이 펼쳐놓았으나 군영의 장군막 앞뜰에는 사뭇 험악한 공기가 떠돌고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아침, 장군막 앞뜰에서는 근래에 이르러 군영의 군기를 심히 문란시킨 오천을 징계하는 의식이 펼쳐진것이였다.

대청마루에 교자를 내다놓고앉은 박위는 엄엄한 시선으로 웅기중기 모여선 장졸들과 그들앞에 볼기를 까뭉개고 엎드린 오천을 휘뚜루 살펴보고나서 고개를 들었다.

아침나절의 느긋한 바람에 박위의 윤기도는 검은 채수염이 보기 좋게 훨훨 나붓기였다.

박위는 자그마한 입술을 아프게 옥문채 무엇때문인지 자꾸만 물러지려는 자기의 마음을 조여잡느라고 무진애를 쓰고있었다.

최무선이 만날 때마다 잘 키워달라고 신신당부하던 오천이.

자기 역시 한때는 남달리 사랑하고 중히 여겼던 오천이.

그러나 누구의 당부가 어떻든 자기의 예전의 사랑과 믿음이 어찌됐든 현재의 오천은 최무선과 자기의 기대를 저바린 인간, 군기를 문란시킨 죄인이였다.

(자고로 군대안에 군기가 해이되면 군사들의 검에 녹이 오르고 군사들의 검에 녹이 쓸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하거늘 그가 누구든 군기를 문란시키고 군무를 태공했다면 가차없이 벌을 내려야 한다.

죄는 오로지 벌로 다스릴뿐이다.)

결심을 다진 박위는 형형이 빛나는 시선을 대문너머 느티나무쪽으로 보내며 청청한 목청을 터치였다.

《모두들 듣거라. 저 오천이란 놈은 명색이 염초장을 책임진 대정으로서 의당 맡은 중임을 옳게 거행했어야 했노라.

하지만 오천은 염초장일을 자행자지(제 마음대로 했다말았다 한다는 뜻.)하는것은 물론 록산과 죽촌, 구렁과 가야를 비롯한 여러 촌촌과 봉은사와 천관사를 위시한 여러 절간들을 쏘다니며 군기와 군무를 태공하고 원정준비에 막중한 해를 끼쳤노라.

이 어찌 가벼운 죄라 하겠는가.

그런즉 지금 당장 저놈의 대정구실을 떼내치고 큰매 50대를 내리노라.》

박위의 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물에 추긴 참나무몽둥이를 꼬나든 건강한 군사들이 형틀앞으로 대들었다.

《엇사! 엇사!》

먹임소리까지 내며 언거번거로 기운차게 몽둥이를 내리박았다.

오천의 희멀쑥한 볼기짝우에 시꺼먼 먹구렝이가 얼기설기 휘감기였다.

앵두알같이 빨간 피방울이 후둑후둑 튀여나기도 했다.

오천을 지켜보는 군사들은 너나없이 입을 딱 벌리고 후들후들 어깨살을 떨었으나 형틀우에 고개를 구겨박고 엎드리여 무지스러운 매를 맞는 오천은 신음소리 한마디 흘리지 않았다.

그것이 까닭도 없이 박위의 부아를 더욱 돋구었다.

박위는 집장군사들을 노려보며 재차 령을 내리였다.

《이봐라― 저눔이 아직도 용서해줍시사 하는 소리는커녕 무언으로 앙버틸 때는 매가 무른탓이다.

사그려 조겨라!》

《예잇―》

공연히 악이 치받쳐오른 집장군사들은 더욱 사납게 몽둥이를 휘둘러댔다.

철썩철썩, 볼기짝우에 떨어지는 매소리는 한층 더 맵짜지였다.

지금껏 숨을 죽이고 서서 형장을 주시하던 장교들과 군사들이 갑자기 바람맞은 물결마냥 설레이기 시작했다.

박위는 반사적으로 장졸들을 휘둘러보았다.

뜻밖에도 자기의 강단있는 일처사에 공감을 표시할줄 알았던 장졸들은 누구라없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있었다.

(오천대정이 실지로 군기를 문란시켰는가?…) 하는 뜻의 의혹에 젖은 얼굴이 있는가 하면 (죄를 범했다쳐도 예전의 공을 아주 돌아보지 않는다면야 경우가 옳게 됐다고 할수 있는가?) 하는 의미의 못마땅한 기색이 실린 얼굴도 보였다.

지어 (오천대정이 허파에 바람이 들어 일시 과실을 범했다 해도 이건 너무 과한 벌이 아닌가?) 하는 의미의 거의 로골적인 반감이 어린 얼굴도 띄웠다.

대돌아래 시립하고있는 여삼은 잔약한 어깨를 후들후들 떨며 쏟아져나오는 오열을 간신히 씹어삼키고있었다.

여삼은 요즘도 자기같은것은 본체도 않고 나돌아다니는 오천이가 여전히 섭섭하고 원망스러웠으나 그렇다고 하여 이처럼 큰 벌이 내려지기는 바라지 않았었다.

물론 오천을 징계할데 대한 박위의 군령은 탓할것이 못되였다.

이같은 변이 터지게 된것은 전적으로 자기가 입빠르게 오천의 요즘 행실을 박위에게 일러바친데서 생긴것이였다.

본의는 어찌됐든 여삼은 결국 지금까지 자기에게 그처럼 각근한 인정을 베풀어준 오천에게 매가 떨어지도록 추동한셈이였다.

하여 여삼은 자기의 설익은 처사를 제스스로 저주하며 진정으로 괴로워하고있었다.…

한식경이나 수하장졸들의 얼룩진 표정을 살펴보던 박위는 다시 오천에게 시선을 떨구었다.

오늘 이 아침 오천에게 벌을 내린것은 군영의 군기를 옳게 세우는 일로서 백번 지당한 처사였다.

하기에 박위는 지금 사소한 후회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그냥 시서늘해나고 머리속은 번거로왔다.

과연 무엇때문인가?

박위의 교자곁에서 뚝뚝한 표정으로 뜰아래 광경을 내려다보던 윤통이 문득 고개를 돌리였다.

나직한 소리로 말을 건늬였다.

《장군, 그만하면 저놈도 자기 죄를 깨달았을것이고 장졸들도 징계가 됐음직한데 이제는 그만 분을 풀고 매를 거두는게 어떻습니까?》

《음?!》

들을만 해있던 박위는 갑자기 비명비슷한 소리를 흘리며 윤통을 쳐다보았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 윤통이였다.

며칠전까지만도 당장 벼슬을 내놓고 집으로 가겠다던 사람이 요즘은 제스스로 둔전에 나갔던 군사들을 모두 끌어들이여 밤낮으로 교련장에서 뒤굴리고있었다.

또 예전같으면 지금같은 좌석에서 박위가 매를 거두려 해도 제쪽에서 더 열을 내여 지은 죄는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한수 더 뜨고나섰을것이였다.

박위는 그의 속내를 잘 알수 없었으나 군영에 그냥 남아 군졸들의 교련에 한층 박차를 가하는 윤통이가 무등 고마웠다.

매를 거두자는 그의 소청 역시 동기는 잘 알수 없었으나 은근히 다행스러웠다.

박위는 어망처망간에 자기 목소리같지 않은 청으로 웨치였다.

《이제는 그만 매를 그쳐라!》

앞마당은 금시 고요해졌다.

박위는 술취한 사람마냥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오천을 주시하다말고 아까보다는 훨씬 눅어진 청으로 말했다.

《오천이 너 이놈! 일후에 다시 사소하게나마 군률을 어긴다면 그때는 장하에 물고가 날줄 알아라. 아니, 군영에서 아주 들내치여 원악도로 귀양을 보낼테니 알아해라. 들었느냐?》

뚜드려잡은 부엉이모양으로 거푸수수해서 서있던 오천은 고개를 들었다.

그 어떤 원망의 빛이 꽉 실려있을줄 알았던 오천의 너부죽한 얼굴에는 뜻밖에도 밝은 기색이 스멀거리고있었다.

박위는 어마뜨거라 놀랐다.

(저눔이 갑자기 실성이라도 한게 아닐가. 울어도 시원치 않을 이 마당에서 저게 무슨 모양인가.

아무리 속이 너르고 성격이 선들선들하기로서니 저럴수가 있는고?

괴이한지고…)

그러거나말거나 오천은 연한 미소가 발려있는 두툼한 입술을 힘겹게 놀리여 떠뜸떠뜸 말을 꺼내는데 그의 목소리는 거의나 명랑하게 울리였다.

《장군의 령을 골수에 새기고 일후로는 매사에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헌데 소인에게 간절한 소청이 하나 있사오니 깊이 통촉해주시오이다.》

《그 소청이라는게 무어냐?》

《예, 소인은 대정구실을 떼는것은 아무 의견도 없사오나 염초장일만은 끝장을 볼 때까지 그대로 하게 해주시오이다.

그리구 또 한가지 청은 이제 소인에게 며칠간만 더 말미를 주셨으면 하는것이오이다.》

박위는 아연한 색을 띄우며 엉거주춤 교자에서 일어서기까지 했다.

《며칠간의 말미는 해서 어디에 쓴다는거냐?》

《예, 자상한 사연은 후날 따로 사뢰일가 하나이다.》

《무얼?! 후날 따로 사뢰인다?! 저런 방자스러운 놈 보았나. 뉘앞에서 감히…》

박위는 또 한바탕 야단을 칠듯이 커다란 부들부채를 앞으로 쭉 내뻗치며 큰소리를 질렀으나 이제 와서 그의 가슴에 의혹은 있을망정 분노는 없었다.

(저놈이 며칠간의 말미는 해서 과연 어디에 쓰려는걸가?

오천은 최무선이가 각근한 애정을 담아 장래를 부탁한 녀석이다.

나도 그를 누구보다 애중해왔고 군사들도 지어 윤통까지도 귀히 여기며 두호해나서는판이다.

그러한 놈이 지금같은 때 그 모든 사람들의 기대와 믿음을 망각하고 계집에게 반해 돌아갈수 있겠는가.

혹 저 녀석이 며칠간의 말미를 달라고 하는것도 염초장일과 련관된게 아닐가?…

그렇다면… 앞뒤사연을 똑똑히 캐보지도 않고 무작정 매를 치게 한 이번 일도 근일에 이르러 한껏 좁아진듯 한 나의 마음에서 튀여나온 조급하고 서뿌른 행위가 아니겠는가.…)

박위는 다시 교자에 맥없이 들어앉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불현듯 개경에 갔을 때도 평의사사 앞뜰에서 만났던 리색이 눈물을 흘리며 뇌이던 옛 시구절이 뇌리를 지지였다.

 

이 세상 모든 일이 

참으로 아득하다

사람노릇 하기 힘들다는

옛말 바로 그대로구나

 

이윽하여 스르시 눈을 떠보니 앞마당은 굿해먹고난 집뜰처럼 괴괴하고 휑뎅그렁한데 저 멀리 동쪽하늘에서는 다홍색아침노을이 소리없이 이글거리고있었다.

노을빛을 받아 장미색을 띠고 응결되였던 구름장들은 차츰 새털모양으로 갈기갈기 찢겨져나가며 서서히 자기 본태의 순수한 흰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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